인형놀이 5

 


  먼 마실 나오는 길에 큰아이 인형 하나, 작은아이 인형 하나, 이렇게 둘 챙긴다. 아이들은 멀고 먼 마실길에 곧잘 인형하고 속닥속닥 이야기 주고받으면서 논다. 어버이한테는 아이들이 길벗이고, 아이들한테는 어버이가 이슬떨이인데, 아이들 손에 쥐는 인형은 우리 모두한테 놀이동무 된다. 인형아, 너는 우리 아이들하고 멀고 먼 곳까지 함께 다니는구나. 너는 아이들하고 무엇을 바라보니. 너는 아이들하고 어떤 길에 서니.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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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야, 공차자
김용택 엮음 / 보림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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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14

 


시골 아이는 시골을 알까
― 학교야, 공 차자
 마암학교 아이들 글,김용택 엮음
 보림 펴냄,1999.2.15./8500원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노래테이프나 노래파일을 잘 안 듣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바람노래와 풀잎노래뿐 아니라 개구리노래와 풀벌레노래를 들어요. 멧새노래와 제비노래 들으며 들노래와 햇살노래 듣습니다. 온 들판과 숲과 바다와 냇물에서 노래가 퍼집니다. 시골마을 모든 소리는 노랫소리요, 시골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에서도 일노래 솔솔 흘러나옵니다.


.. 빨갛고 둥근 입술을 보고 / 앵두 입술이라 그러더라. // 그럼 윤정이 입술은 / 앵두 입술이다. 빨갛고 둥그니까. // 그럼 / 동수 입술은 / 붕어 입술이다 ..  (앵두 입술)


  일하며 부르는 노래는 따로 누가 가르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짓고 스스로 부르며 스스로 듣습니다. 일하며 입으로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가만히 땀방울 똑똑 떨구면서 바람결에 묻어나는 노래를 듣고, 햇살자락에 스며드는 노래를 듣습니다. 제비가 날갯짓 하다가 노래를 들려줍니다. 따스한 날씨 되어 깨어나는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노래를 들려줍니다. 논에 물을 대면서, 도랑에 물이 흐르면서, 개구리와 도룡뇽과 맹꽁이 모두 하나둘 깨어나고 태어나면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거룩하다 여기는 어떤 노래를 듣고 보면, 꼭 숲이 들려주는 노래와 같습니다. 훌륭하다 섬기는 어떤 노래를 듣고 보면, 참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와 같습니다. 빼어나다 손꼽는 어떤 노래를 듣고 보면, 그예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와 같습니다.


.. 나는 오늘 밤 여치 소리를 들으며 / 하늘을 보았다. / 그런데 달과 별이 없었다 ..  (달)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둘레 모두 그림입니다. 풀잎 하나가 그림이고, 꽃송이 하나가 그림입니다. 열매 한 알이 그림이요, 씨알 한 톨이 그림입니다.


  나비가 춤추듯 팔랑거리는 모습이 그림입니다. 벌이 꽃봉오리에 내려앉아 꽃가루와 꿀 먹는 모습이 그림입니다. 지는 꽃잎 하나둘 떨어지며 밭자락 알록달록 꾸미는 모습이 그림입니다.


  마당에 앉아 해바라기를 해요. 마당에 앉아 아이들 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봐요.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놀고, 아이들은 흙을 파고 만지며, 아이들은 풀잎 뜯고 꽃내음 맡습니다.


  장난감 있어야 노는 아이들 아닙니다. 돌멩이 하나와 나뭇가지 하나는 멋진 놀잇감입니다. 만화영화 틀어야 재미난 아이들 아닙니다. 풀밭을 달리고 숲속을 뛰어도 재미난 놀이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영어노래 배우거나 이런저런 그림책 배워야 하지 않아요. 호미질도 배움이고 소꿉질도 배움입니다. 하늘과 구름과 햇살 모두 배움입니다. 비도 눈도 바람도 배움입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배우고 기쁘게 놀며 예쁘게 밥을 먹습니다.


.. 해맑은 웃음을 짓는 / 내 친구 용근이는 / 나와 야구공을 갖고 놀다가 / 부딪쳐서, 돌에 부딪쳐서 / 갠찮니 하고 물어 보니 괜찮다고 했다 ..  (전학을 간 용근이)


  꽃마리가 어떤 맛인가 알자면, 꽃마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너 따먹을게.” 하고 말하면서 톡 끊어 입에 넣고 씹으면 됩니다. 꽃다지가 어떤 맛인가 알자면, 고들빼기와 씀바귀와 질경이와 민들레와 정구지와 쑥과 유채가 어떤 맛인가 알자면, “너 좀 먹자.” 하고 말하면서 톡톡 뜯어 바구니에 담아 물에 잘 헹구어 입에 넣고 냠냠 씹으면 됩니다.


  식물도감이나 약초도감을 보고 외워야 아는 풀은 없습니다. 자연그림책이나 생태그림책 줄줄 꿴다거나 이런 지식 저런 학습을 해야 자연을 알거나 환경을 사랑할 줄 알지 않아요.


  아이와 어른 함께 숲에서 지내면 돼요. 아이도 어른도 나란히 들길을 걷고 들판을 일구면 돼요.


  나무도감 보아도 좋습니다만, 나무 한 그루 심으면 훨씬 좋습니다. 어린나무 장만해서 심어도 좋고, 씨앗 한 톨 심어 새싹 틀 때부터 나무를 지켜보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 지켜보면 한결 좋습니다.


  수백 해 살아온 나무를 보러 마실을 다녀요. 수천 해 지낸 나무를 만나러 나들이를 다녀요. 꼭 비행기 타고 멀디먼 나라까지 다녀와야 하지 않아요. 기차나 버스나 자가용 타고 이런 여행 저런 체험 하지 않아도 돼요. 두 팔 벌려도 안기 힘들 만큼 우람한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 만나러 어른과 아이 함께 길을 떠나요. 커다란 나뭇줄기에 귀를 대요. 커다란 나뭇줄기를 꼬옥 안고서 이야기를 나눠요. 내 숨을 나무한테 주고, 나무가 내쉬는 숨을 마셔요. 이제껏 살아온 나날을 나무 한 그루한테서 느끼고,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가슴속으로 헤아려요.


.. 인수는 나무와 집을 그리고 / 은미는 사과나무와 살구나무가 있는 집을 그리고 ..  (그림)


  도랑물 소리 맑습니다. 비록 오늘날 흙일꾼 거의 모두 농약 잔뜩 쓰면서 농약 빈병 도랑에 처박더라도, 도랑물 소리 맑습니다. 냇물 소리 맑습니다. 비록 오늘날 시골사람 거의 모두 담배꽁초나 막걸리병 아무렇지 않게 냇물에 처박더라도, 냇물 소리 맑습니다.


  도랑물도 냇물도, 또 골짝물도 바닷물도, 예부터 오늘까지 맑은 소리 들려줍니다. 도랑물에서 살아가는 목숨들, 골짝물에서 살아온 목숨들, 모두모두 맑은 소리 들으며 맑은 숨결 건사하면서 맑은 노래 부릅니다.


  다슬기도 달팽이도, 지렁이도 굼벵이도, 개구리도 도룡뇽도, 바지락도 낙지도, 왜가리도 청둥오리도, 모두모두 맑은 소리를 맑은 숨결과 함께 받아먹으면서 맑은 노래를 이 땅에 곱게 펼쳐요.


  아이들 노는 양 지켜보면, 아이들 내는 소리나 노래 참 귀엽고 예쁩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맑게 웃고 맑게 땀흘리며 맑게 어울리거든요. 이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맑은 가락입니다.


.. 아빠는 일하로 나가셔다. / 엄마는 일하러 나가셔다. / 언니는 빗자루 / 나는 걸레 닦았다 ..  (일을 하자)


  어른들은 도시문명 이루려고 스스로 빈터를 없앱니다. 어른들은 물질문명 북돋우려고 스스로 들과 멧골 뒤엎어 아파트 짓고 고속도로 닦습니다. 어른들은 과학문명 빛내려고 스스로 학교를 세워 아이들한테서 놀이를 빼앗고는 졸업장과 지식을 집어넣습니다.


  이제 요즈음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못 빚습니다. 이제 오늘날 아이들은 언니한테서 놀이를 물려받지 못하고, 동생한테 놀이를 물려주지 못합니다. 골목을 빼앗겼고, 고샅을 잃었으며, 학교 운동장은 인조잔디와 주차장에 빼앗겼지요. 마을 어디나 자동차가 넘쳐 아이들은 섣불리 뛰놀지 못합니다. 도시 공원에서조차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기 힘들어요.


  놀이 없는 아이들은 손전화를 만지작거립니다. 놀이 잊은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켜고 인터넷을 엽니다. 놀이 빼앗긴 아이들은 영어노래를 부르고 영어책을 읽으며 영어강사한테서 영어일기 쓰라는 숙제를 받습니다.


.. 산산산 산은 누구보다 크지요. / 산산산 엄마처럼 / 아기를 업지요 ..  (산)


  김용택 님이 마암학교에서 아이들과 놀며 가르치던 삶을 보여주는 동시집 《학교야, 공 차자》(보림,1999)를 읽습니다. 마암학교는 이무렵 학생이 열여덟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에는 전교생 열이나 열하나나 열둘인 학교 제법 많습니다. 전교생이 아홉이 되면 학교는 어김없이 문을 닫습니다. 전교생 아홉인 학교조차 아이들은 집 있는 마을에서 꽤 먼 데까지 다녀야 했지만, 전교생 아홉 되며 학교가 문닫고 나면 앞으로 더 먼 데 있는 학교로 다녀야 합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집부터 학교로 오가며 무엇을 볼까요. 큰 학교 하나로 통폐합을 시킨다면서 노란 학교버스로 아이들을 태워다 준다고 하는데, 어릴 적부터 학교버스 타고 붕붕 달리기만 하는 아이들은 무슨 소리를 듣고 무슨 바람을 쐬며 무슨 햇살을 먹고 무슨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들은 날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모습을 보며, 어떤 무늬와 빛깔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나요. 시골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들은 참말 시골스러운 꿈이나 사랑을 건사할 수 있나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면 더 큰 읍내나 이웃 도시로 가는 시골 아이들이, 고등학교 마치면 열 가운데 열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도록 등을 떠미는 사회 울타리에서, 이 아이들은 어떤 시골멋 시골맛 시골내음 시골빛 지킬 수 있을까요.


.. 아침에 운동을 하다 / 꽃 향기가 나서 / 나도 몰으게 / 꽃 향기로 가고 ..  (꽃 향기)


  아이들이 쓴 동시를 엮은 《학교야, 공 차자》를 읽은 분들이라면 느끼리라 봅니다만, 이 동시집에서도 시골내음 맡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저 ‘도시물 조금 덜 든’ 모습을 읽을 뿐입니다. 참말 시골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시골마을 이야기는 그닥 드러나지 않습니다. 마암학교가 작고, 가까이에 섬진강을 낀다고 하지만, 학교 울타리에서는 교과서를 가르치고 웃학교(중학교)로 보내는 징검돌 구실을 하니, 시골 자그마한 학교다운 빛이나 넋이나 결을 살리기는 어려우리라 느껴요.


  아이들이 시골에서 도시와 견주어 ‘조금 더 살갑고 조금 더 따스하며 조금 더 넉넉한’ 품을 느끼는 마음을 동시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시골다운 품을 느끼기는 어려워요. 아이들이 따순 사랑을 받아먹는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막상 시골스러운 빛깔이나 무늬나 이야기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 나는 엄마 품이 좋아요. / 엄마 품은 따뜻해요. / 나는 꼭 햇님을 안은 것 / 같아요. 나는 / 엄마 품이 좋아요 ..  (엄마 품)


  3학년 어린이가 쓴 〈소〉라는 동시를 보면, “길을 가다 / 소가 일하는 걸 봤다. // 소는 참 불쌍하다. / 왜냐면 소는 일을 하니까 / 불쌍하다. // 소는 짐을 싣는다. / 소는 또 밭을 간다.” 하고 나옵니다. 소가 왜 불쌍할까요? 일하는 소가 불쌍하면 일하는 할매도 불쌍한가요? 소가 어떤 일을 하나요? 소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이는 집에서 소를 못 보나요? 아이는 저희 어머니나 아버지가 소를 부리는 모습은 못 보나요? 길에서만 소를 보고, 집이나 마을에서는 소를 못 보나요? 아이는 소한테 여물을 준 적 없나요? 아이는 소 잔등을 긁고 파리를 쫓으며 소하고 살뜰히 이야기 섞은 적 없나요?


  3학년 어린이가 쓴 〈비〉라는 동시를 보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 왜 비만 쏟아져 / 물난리를 일으켜” 하고 나옵니다. 물난리란 무엇이고, 하늘에 난 구멍이란 무엇일까요? 들이붓는 비가 마을을 어떻게 집어삼키는지 제대로 본 적 없나요? 기다리던 비와 달갑잖은 비는 어떤 모습인가요? 비가 쏟아져서 큰물 지는 모습은 시골마을과 숲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요?


  아이들 글에서 ‘생각하는 힘’이 잘 안 나타납니다. 아이들 글에서 ‘사랑하는 숨결’이 잘 안 비칩니다. 아이들 글에 생각도 사랑도 없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오늘날 여느 도시 아이들은 이와 같은 동시를 못 써요. 틀림없이 못 써요. 그런데, 오늘날 시골 아이들이 이만 한 동시밖에 못 쓴다면, 우리 시골이 얼마나 메마르거나 슬프거나 아프다는 소리일까요.


  5학년 어린이가 쓴 〈쓸쓸한 촌〉이라는 동시를 보면, “사람들이 / 다들 도시로 / 이사를 가니까 / 촌은 쓸쓸하다. // 그러면 촌은 운다.” 하고 나옵니다. 5학년 아이인데 ‘시골’ 아닌 ‘촌(村)’이라 말합니다. 어른들이 다 ‘촌’이라 말하고 ‘촌놈’이라고, 도시사람 말투로 스스로 깎아내리니, 이 아이도 이런 말을 쓸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요, 시골이 운다면, 도시도 울겠지요. 시골이 쓸쓸해서 울면, 도시는 미어터져서 울겠지요. 그리고요, 시골은 쓸쓸하지 않아요. 시골은 조용해요. 왁자지껄하대서 반드시 좋거나 안 쓸쓸하지 않아요. 즐겁게 살아가면 오순도순 재미나지요. 기쁘게 어깨동무하면 까르르 웃음꽃 터지지요.


  사람 미어터지는 도시를 떠올려요. 도시사람이 웃으면서 걸어다니나요? 도시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자동차를 모나요? 도시사람이 활짝 웃으면서 서로를 아끼거나 이웃을 사랑하나요? 사람이 많다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무얼 하고 서로를 어떻게 마주하는지 찬찬히 떠올려요. 그러면서, 예나 이제나 시골마을 사람들 얼굴빛과 마음빛을 돌아봐요.


  시골마을 어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하나하나 짚어요. 시골마을 어른들 생각이 시골마을 아이들 생각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고리를 차근차근 새겨요. 아이들은 스스로 ‘시골이 쓸쓸하니 마니’ 하고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시골이 우니 마니’ 하고 잘라말하지 않습니다. 어른들 하는 말을 늘 듣다가 이렇게 동시를 쓰는 아이들입니다. 어른들 살아가는 모양새 낱낱이 드러나는 아이들 글입니다.


  시골 아이는 시골을 얼마나 아는가요. 시골 어른은 시골을 얼마나 아는가요. 시골 어른이 시골을 사랑하는 깊이와 너비만큼, 시골 아이가 시골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시골 어른 스스로 시골을 일구거나 가꾸거나 돌보는 몸가짐만큼 시골 아이가 시골살이를 누립니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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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37 : 헐뜯고 비난


모든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을 느꼈으며,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서로를 헐뜯고 비난했다
《바바라 아몬드/김진,김윤창 옮김-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간장,2013) 157쪽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는 “저도 모르게”나 “알게 모르게”나 “저절로”나 “하나둘”이나 “문득”이나 “시나브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는 “어머니 죽음에”나 “어머니가 죽은 일에”나 “죽은 어머니한테”로 손질합니다. “책임(責任)을 느꼈으며”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짐을 느꼈으며”라든지 “저마다 잘못했다고 느꼈으며”로 다듬어도 됩니다. 바로 이어지는 글월에 ‘죄책감(罪責感)’이라는 낱말이 나와요. 그러니 앞뒷말 이으면서, “죽은 어머니한테 저마다 잘못했다고 느꼈으며, 그 잘못에서”처럼 다듬으면 한결 잘 어울립니다.


  한자말 뜻을 살피면, ‘죄책감(罪責感)’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이 보기글에서는 ‘잘못’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비난(非難)’은 “(1)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2) [북한어]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곧, 한자말로는 ‘비난하다’요, 한국말로는 ‘헐뜯다’입니다.

 

 서로를 헐뜯고 비난했다
→ 서로를 헐뜯었다
→ 서로를 헐뜯고 해코지했다
→ 서로를 헐뜯고 손가락질했다
→ 서로를 헐뜯고 괴롭혔다
 …

 

  같은 낱말을 잇달아 적기보다는 ‘해코지했다’나 ‘손가락질했다’나 ‘괴롭혔다’ 같은 낱말을 뒤에 적을 때에 뜻이나 느낌이 살아납니다. 단출하게 적자면 “서로를 헐뜯었다”라고만 적으면 되고요. “서로를 헐뜯고 다투었다”라든지 “서로를 헐뜯고 미워했다”처럼 적어도 뜻이나 느낌을 살릴 수 있어요. 4346.5.6.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모든 아이들이 죽은 어머니한테 시나브로 저마다 잘못했다고 느꼈으며, 그 잘못에서 벗어나고자 서로를 헐뜯고 괴롭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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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밭 놀이터

 


  헌책방 할배가 사다리를 타고 높은 책시렁에 꽂힌 책을 끄집어 낸다. 세 살 아이가 헌책방 할배 꽁무니를 좇아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 한다. 헌책방 할배가 넌 여기 올라오지 말고 아래에 있으렴, 하고 말하니, 아래에서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세 살 아이는 사다리 함께 타고 싶다. 저도 영차영차 올라가서 더 높은 데 올려다보고, 높은 자리에서 아래쪽 내려다보고 싶다. 올라가고 싶지? 그러면 밥 즐겁게 먹으며 몸 튼튼히 자라면 돼. 하루하루 개구지게 뛰놀면서 팔도 다리도 몸도 씩씩하게 크면 돼. 그러면 머잖아 너도 이 책밭에서 책놀이 한껏 즐기는 책아이 될 테지.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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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만 마치고 사회로 나온 젊은이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담은 책 하나를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만 마쳤고 옆지기는 중학교만 마쳤는데, 우리 식구와 같은 학력자를 요즈음 둘레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못 볼는지 모르지. 대학교를 간대서 집일을 더 알뜰히 하지 않고, 대학교를 다녔기에 아이들을 살가이 사랑하지는 못하며, 대학교 졸업장으로 사랑을 빛내지는 않는다. 이 작은 책에서 이런 대목까지 슬기롭게 짚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런 대목까지 못 짚더라도, 사회 틀거리에 맞추어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로서는 굳이 대학교까지 가야 할 까닭이 없는 줄,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으면 제값 다 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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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삶이 길이 되고 꿈이 땀이 된 고졸 청년들의 이유 있는 선택
박영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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