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만지는 손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날마다 아이들 똥을 만진다. 큰아이가 태어난 2008년 8월 16일부터 아이들 똥과 오줌을 날마다 수없이 만지고 또 만지면서 살아온다. 어느덧 큰아이 새로운 생일을 코앞에 두면서, 오늘도 아침부터 작은아이 똥을 만지고 똥바지를 빨래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 똥과 오줌을 만지면서, 아이들이 먹은 밥이 아이들 몸에서 어떻게 삭혀진 뒤 나오는지를 알아본다. 아이들 똥내음 맡으면서 아이들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 헤아린다. 아이들 오줌내음을 맡으며 아이들이 물을 잘 마시면서 놀았는가 곱씹는다.


  아이들 똥은 냄새가 고약한가? 어른들 똥은 냄새가 구린가? 아이들을 낳아 돌보기 앞서도 똥내음이 나쁘다고 느낀 적이 없다. 흙에서 난 먹을거리를 몸에서 받아들이고 나서 흙을 다시 살리는 똥이 나오니, 이 똥이 구리거나 고약할 까닭이 없다고 느꼈다.


  그나저나, 작은아이야, 너는 네 살이 될 때까지 똥누기는 안 가릴 셈이니? 아버지는 너희 똥을 만지며 사는 사람이기는 하다만, 너도 똥은 이제 가려야지. 4346.8.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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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쌀

 


  한밤에 깨어나 새벽녘에 글일을 마치고 아이들 곁에 드러누우려 들어가려다가 문득 한 가지 깨닫는다. 아차, 어제 아이들 저녁 먹이고 나서 쌀을 안 불렸네. 누런쌀로 밥을 지어 먹는 살림이니 미리 불려야 하는데. 그래도 우리 집 물은 시골물이라 도시에서 쌀을 불릴 적보다 한결 빨리 잘 붇는다. 이제 새벽 네 시 오십 분이니 아침 여덟아홉 시쯤이면 잘 붇겠지. 한두 시간 더 기다려야 하면 다른 주전부리 준 다음 느긋하게 차려도 된다. 쌀 다 씻어 불렸으니 즐겁게 쉬자. 4346.8.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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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0] 파란하늘 하얀구름
― 삶자리에서 누리는 빛

 


  가까운 도시이든 먼 도시이든, 또 읍내나 면내이든, 시골집을 벗어나 어디로든 나들이를 다녀오면 꼭 한 가지를 크게 느낍니다. 시골집이 아니고는 하늘 올려다볼 겨를이 없고, 같은 시골 하늘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내에서마저 하늘 볼 일이 없구나 싶어요. 조그마한 도시로 나들이를 가든 커다란 도시로 나들이를 가든, 하늘 보기 어렵기는 똑같아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는 높은 건물 때문에 하늘이 가리고, 지하철이나 지하도 때문에 하늘 볼 생각조차 잊기 일쑤인데, 조그마한 도시라 하더라도 아파트는 높이 솟고 자동차가 넘쳐요. 길을 거닐 적에도 자동차 때문에 두리번두리번 살펴야 하고, 길바닥이 깨졌는지 뭐 다칠 만한 게 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해요. 아이들 데리고 도시에서 걷자면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는지 모를 오토바이까지 살펴야 하고, 자전거 모는 분들도 찻길보다 거님길을 즐겨 달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딪힐까 조마조마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거나 지내면서 하늘 느긋하게 올려다보며 파란빛과 하얀빛 누리기란 참 어려운 노릇이에요.


  도시에는 드넓게 트인 곳이 드뭅니다. 저 먼 데까지 들이거나 숲이거나 바다가 이루어지는 자리는 아주 드뭅니다. 하늘빛 시원하게 누리면서 구름빛 맑게 마실 만한 자리를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하늘빛을 누리지 못한다면 하늘숨을 마시지 못합니다. 구름빛을 즐기지 못한다면 구름맛을 나누지 못합니다.


  가을도 하늘이 높지만, 여름도 하늘이 높아요. 가을에도 하늘빛 짙게 파랗지만, 여름에도 하늘이 짙게 파래요. 끝없이 달라지면서 흐르는 구름이 드리우는 고운 그늘에서 함께 쉴 수 있기를 빕니다. 찬찬히 흐르며 뜨거운 햇볕 식히는 밝은 구름그림자에서 다 같이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8.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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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를 마친 뒤

 


  바깥나들이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이런 뒤 아이들 옷 몽땅 벗겨 씻긴다. 아이들 옷 빨래하면서 내 몸을 씻는다. 빨래를 마친 옷을 널고, 집을 비운 동안 집안에서 잘 마른 옷을 걷어 갠다. 이러는 동안 머리가 빙빙 돌고, 이럭저럭 집일을 마쳤다 싶으면 기운이 쪽 빠진다. 아이들이 배고프다 하면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먹인다. 따로 밥을 해서 먹일 만한 힘을 내지 못한다. 이윽고 아버지가 쓰러지면, 아이들은 저희끼리 조금 더 놀다가 책을 보다가 스르르 아버지 곁에 찰싹 달라붙으며 드러눕는다. 긴긴 고요한 밤이 이루어진다.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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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만화영화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일어난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개구지게 놀고도 새벽같이 일어난다. 집에서건 밖에서건 아침에 일어나는 때는 비슷하구나. 여관방은 한 칸짜리이면서 텔레비전이 아주 크다. 가장 눈에 잘 뜨이는 곳에 텔레비전이 있으니 텔레비전을 켜서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만화를 보여주는 곳을 찾는다. 이 만화 저 만화 곰곰이 본다. 이 만화도 저 만화도 ‘싸움’투성이라 할 만하다. 또는 ‘운동경기’를 한다. 싸우는 줄거리 나오는 만화에는 싸움 빼고는 아무런 보여줄 것이 없다. 예쁘장하거나 멋들어져 보이는 캐릭터가 나와, 이 캐릭터로 된 장난감을 사도록 부추기는 광고가 이어진다. 운동경기 줄거리 나오는 만화에는 ‘시합’이나 ‘시작’ 같은 일본 한자말이 아무렇지 않게 흐른다. 아이들은 집과 학교에서도 제대로 생각을 안 기울이는 어른들 말투에 길드는데, 이렇게 만화영화를 보면서 캐릭터 장난감에다가 얄궂은 말투에 물드는구나.


  숲을 노래하는 이야기 흐르는 만화영화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풀을 아끼고 꽃을 보듬으며 나무를 사랑하는 이야기 흐르는 만화영화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고무줄놀이나 소꿉놀이나 술래잡기나 온갖 놀이가 나오는 만화영화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모두들 손전화 기계를 만지작거리거나 이런저런 기계를 손에 쥔다. 무척 어린 아이들이 만화영화에서 자가용을 모는 모습으로 나오기도 한다.


  스스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집을 짓는 사람들 모습이 만화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삶을 배거나 사랑을 물려주는 일이란 없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로구나 싶다. 기계와 컴퓨터가 모든 심부름을 다하고, 돈과 카드가 있으면 살림살이에 마음 하나 안 써도 되는 흐름으로 나오는 만화영화로구나 싶다.


  어른들은 어떤 마음이 되어 만화영화를 만들어 아이들한테 보여주려 할까. 어른들은 만화영화를 보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이 되기를 바랄까.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어떤 마음이 되어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나 대학교 같은 데를 보내는가.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니며 어떤 마음이 될까.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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