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빙글빙글 날기 (2013.9.15.)

 


  크레용을 새로 장만한다. 작은아이가 크레파스를 꽤 많이 씹어먹는 바람에 쓸 만한 빛깔이 많이 사라졌다. 서울마실 하는 김에 빛깔 많은 크레파스를 사려고 조금 큰 문방구에 들렀는데, 가게 일꾼이 크레파스라 하며 건넨 것을 시골에 돌아와서 뜯으니 크레용이다. 어쩐지 값이 비싸다 했더니 왜 크레파스 아닌 크레용을 주었을까. 아무튼, 새 크레용을 마루에 펼치고 큰아이와 작은아이와 나란히 엎드려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는 오늘 빙글빙글 춤추며 날아가는 물방울을 그린다. 이 물방울 자국을 따라 나비랑 제비랑 꽃이랑 나무랑 빗물이랑 달이랑 별을 올망졸망 집어넣는다. 물방울이 날며 남긴 발자국을 점으로 찍느라 품이 많이 들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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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떠나기 앞서

 


  오늘 볼일을 보러 서울에 다녀와야 한다. 어제부터 하루 집 비울 일을 곰곰이 헤아린다. 옆지기가 집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거나 씻길 수 있을까 돌아보면서, 시골집에 남는 세 식구 넉넉하게 먹을 만한 여러 가지를 챙긴다. 아침 일곱 시에 마을 어귀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니, 조금 뒤 여섯 시에 밥을 지을 생각이다. 새벽 여섯 시에 밥을 지을 수 있도록 쌀은 어제 씻어서 불렸다. 여섯 시에 밥을 지으면서 오늘 아침저녁으로 먹을 만큼 카레를 하나 끓이려 한다. 카레에 넣을 것은 엊저녁에 모두 손질해 놓았다. 썰어서 볶고 끓이면 된다. 옆지기 옷과 아이들 옷은 모두 빨아서 말려 개거나 덜 마른 옷은 옷걸이에 꿰어 방에서 말린다. 큰아이가 놀면서 어지럽힌 장난감이랑 책을 치워 놓는다. 내 책 잔뜩 쌓인 방도 이렁저렁 조금은 치운다. 하루 다녀오는 길이지만, 집을 비우는 동안, 또 다녀오고 나서 이래저래 할 일이 많겠지. 오늘 서울로 가는 사이에 ‘옻칠 재료’가 택배로 집에 온다. 다음주에 여러 날 집을 비울 적에 대청마루에 한 번 바를까 싶어서 1리터들이 한 통을 장만했다. 아침에 짐을 다 꾸리면 큰아이 글씨놀이 할 적에 들여다보도록 큰아이한테 편지 한 통 써야지. 4346.9.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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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3 07:25   좋아요 0 | URL
잘 다녀 오세요~*^^*

숲노래 2013-09-15 15:12   좋아요 0 | URL
이제 막 돌아왔어요.
온몸이 쑤시고
온몸이 땀투성이 되었습니다 ^^;;

후애(厚愛) 2013-09-13 10:25   좋아요 0 | URL
저도 시간이 나면 서울 나들이 해야하는데...ㅎㅎ
잘 다녀 오세요~*^^*

숲노래 2013-09-15 15:1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언제 한번 즐겁게 나들이 다녀오셔요~~
 

아이 셋

 


  큰아이와 작은아이, 여기에 ‘큰 큰아이’까지 세 아이를 보듬으며 살림을 꾸린다. 아이 하나일 적, 아이 둘일 적, 여기에 아이 어머니가 ‘큰 큰아이’와 같이 지내느라 아이 셋일 적, 하루하루 느끼는 무게가 사뭇 다르다. 한 달에 한 번, 아니 한 해에 한 번, 아이들을 잊고 혼자서 조용히 쉬고 싶단 생각을 하지만, 막상 아이들 모두 시골집에 두고 볼일 보러 큰도시로 다녀와야 할 적이면, 자꾸자꾸 집 생각이 나고 아이들 생각이 떠오른다.


  지난 석 달 두 아이를 보듬다가 지난주부터 세 아이를 보듬는 삶으로 돌아오고 나서, 며칠 몸앓이를 한다. 몸앓이는 아직 안 가셨다. 목과 코가 아프고 머리가 어지럽다. 그렇다고, 세 아이 보듬는 아버지가 집일을 젖히지 못한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며 빨래를 한다. 힘을 내어 큰아이 부른 뒤 글씨놀이 시키고 그림놀이 함께 한다. 아이들 자전거에 태워 우체국에 편지 부치러 다녀온다. 서재도서관에 가서 풀을 벤다. 아이들 옷 갈아입히고 씻기고 오줌그릇 치운다. 이불을 말리고 옷을 개며 걸레질을 한다.


  내 어머니는 나와 형 두 아이를 돌본 삶이라기보다, 나와 형에다가 내 아버지까지, 이렇게 ‘아이 셋’ 돌본 삶을 꾸리셨을까. 이 나라 이 땅 모든 어머님들은 으레 ‘큰 큰아이’를 함께 돌보느라 등허리가 뻑적지근할까. 저녁에 아이들 눕혀 자장노래 부르는데 코와 목이 너무 막혀 노래를 십오분쯤 가까스로 부르고는, 작은아이한테 “보라야, 네 아버지 목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 더 못 부르다, 미안해.” 하고 말한다.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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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하늘고래 (2013.9.8.)

 


  다른 두 식구 잠든 결에 대청마루에 종이 펼치고 크레파스통 연다. 큰아이는 아버지 옆에 엎드려 함께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는 고래를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는 저랑 어머니 모습을 그린 뒤, 아버지처럼 ‘하늘 나는 고래’를 그린다. 아버지는 촘촘하게 별을 그리고 무지개하늘 바르느라 품이 많이 들고, 큰아이는 어느덧 세 번째 그림까지 그린다. 네 손도 참 빨라졌구나. 아버지 손이 오늘은 너무 더디었나? 하기는. 고래가 바닷물 철썩이면서 첨벙 날아오르기까지 오래 걸리잖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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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4] 풀춤과 풀노래
― 무얼 하면서 놀까

 


  아이들과 살아오며 이 아이들과 무얼 하면서 놀면 즐거울까 하고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을 가만히 비우고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면, 서로 즐겁게 놀 여러 가지가 어느새 떠올라요. 미리 생각해야 하지 않아요. 따로 찾아 놓아야 하지 않아요. 자전거를 타든, 두 다리로 걷든, 군내버스를 타든, 대청마루에 앉아 빗줄기를 즐기든, 그때그때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놀이가 됩니다. 숲 사이를 걸으면 숲놀이가 됩니다. 바닷물을 밟으며 뛰면 바다놀이가 됩니다. 들 한복판에 자전거를 세우고 걸으면 들놀이가 됩니다. 마당에서 꼬리잡기를 하면 마당놀이가 됩니다. 밥을 먹다가 아그작아그작 소리를 내며 까르르 웃으면 밥놀이가 됩니다.


  하나하나 돌아보면 모든 삶은 일이면서 놀이로구나 싶습니다. 모든 움직임은 일이요 놀이입니다. 아이를 안아도 일이 되면서 놀이가 됩니다. 아이 머리를 빗으로 빗겨 고무줄로 묶을 적에도 일이 되지만 놀이가 되어요. 아이 앞에 공책을 펼치고 한글을 또박또박 적어 보여준 뒤 따라서 적으라 할 적에도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차리는 밥이란 일이자 놀이입니다. 설거지 또한 일이자 놀이입니다. 빨래도 걸레질도 모두모두 일이 되고 놀이가 돼요.


  풀밭 앞에 선 큰아이가 문득 빙그르르 돕니다. 제자리돌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풀밭에서 추는 춤이나 풀밭 언저리에서 부르는 노래를 아이한테 가르친 적 없습니다. 큰아이는 제 마음결에서 샘솟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입을 달싹입니다. 스스럼없이 춤이 나오고, 거리낌없이 노래가 흘러요.


  무얼 하면서 놀아야 할는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온 삶이 온통 놀이가 되는걸요. 무얼 하면서 일해야 할는지 근심하지 않습니다. 온 하루가 오롯이 일이 되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놀면서 어버이 일을 지켜봅니다. 어른들은 늘 일하면서 아이들 놀이를 바라봅니다. 서로 마주하면서 서로 보여줍니다.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어깨동무합니다. 4346.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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