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먹는 풀

 


  올여름 고흥 시골마을에는 비가 거의 안 온다. 남녘 다른 시골에도, 또 도시에도 비가 거의 안 온다. 아무래도 서울·경기·강원을 잇는 ‘현대문명 개발산업’ 띠가 어마어마해서 비구름이 이 둘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이곳에만 퍼부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골에서는 논에 물을 대고 밭에 물을 주느라 바쁘다. 그런데, 논도 밭도 아닌 땅뙈기에서 들풀은 씩씩하게 잘 자란다. 물을 따로 받아서 먹지 못하는 들풀은 한여름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쑥쑥 자란다.


  쑥도 이름 그대로 쑥쑥 자라고, 고들빼기도 부추도 씩씩하게 잘 큰다. 이런 들풀을 하나둘 뜯거나 꺾어서 먹으면 풀내음이 짙게 스며든다.


  저녁에 아이들과 먹을 밥을 차리면서 마당 둘레 풀을 뜯다가 생각한다. 우리가 먹을 밥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풀을 먹을 때에 몸이 살아날까. 우리는 어떤 숨결을 받아들이는 목숨인가. 우리를 살찌우는 밥은 어떠한 삶터 어떠한 빛을 머금을까.


  마을에서 지내는 들고양이가 우리 집을 저희 보금자리처럼 여기며, 한여름에는 평상 밑으로 들어가서 자고, 봄가을에는 마당 아무 데에서나 벌렁 드러누워 자곤 한다. 들고양이, 들풀, 들사람, 들밥, 들일, 들꽃, …… ‘들’ 이름 붙는 이웃들을 곰곰이 헤아린다. 4346.8.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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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9 10:51   좋아요 0 | URL
들고양이가 편안하니 흙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참 좋습니다.
아름다운 집에서 식구들도 풀들도 고양이도 다 평화로와요~

숲노래 2013-08-19 15:25   좋아요 0 | URL
다른 집에는 거의 이렇게 드러누워서 쉬지 못하는 듯하더라고요..
 

생일선물

 


  한 해에 한 번 맞이하는 난날(생일)을 여섯째 맞이하는 큰아이는 아직 ‘생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열 차례 넘게 이런 말 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큰아이 스스로 ‘태어나다’와 ‘생일’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듯하다. 그러더니, “할머니가 벼리 생일이라고 치마 사 주신다고 했어요. 치마 사 주셔요.” 하고 말한다.


  네 할머니 두 분은 너한테 고운 치마 여러 벌 사 주셨지. 맛난 밥도 차려 주셨지. 너른 사랑도 베풀어 주시지. 네 아버지는 네 난날에 맞추어 그림 하나를 그려서 준다. 하늘과 흙과 별과 나무와 꽃과 새와 풀벌레를 모두 가슴에 안는 어여쁜 꽃순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6.8.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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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9 11:10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가 아버지께 참 고운 그림선물을 받았네요~!
아버지가 마음빛으로 그려준 생일선물을 받고 즐거운 사름벼리. ^^

사름벼리야! 아줌마도 생일 축하해~~*^^*

숲노래 2013-08-19 15:26   좋아요 0 | URL
일곱 살이 되면
생일과 선물을
조금 더 잘 알아차리리라 생각해요~
 

[아버지 그림놀이] 큰아이 난날 (2013.8.16.)

 


  큰아이 사름벼리가 태어난 날에 맞추어 그림을 그린다. “꽃순이 여섯째 난날”이라는 이름과 날짜를 먼저 적고 나서, 아침에 본 나팔꽃을 그리고, 곁에 무지개를 그린다. 그러고 나서 별을 그리고 제비와 꽃을 그린다. 우리 집을 나타내는 후박나무를 한 그루 그리고서는 하늘과 바다와 땅을 찬찬히 빛깔로 입힌다. 사름벼리야, 이 그림은 네가 누릴 삶을 보여준단다. 올해까지 씩씩하게 큰 결대로 앞으로도 튼튼하게 잘 살아가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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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9 10:56   좋아요 0 | URL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는 저까지 다
눈과 마음에 고운 빛 가득 찹니다~!

숲노래 2013-08-19 15:26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
 

그래도 학교에 보내야?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유아원도 보육원도 다니지 않는다. 언제나 저희 어버이와 함께 지낸다. 두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하고 늘 함께 살아간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갈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아이들이 바란다면야 갈 수 있으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흐름을 살피면,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서면서 밥과 옷과 집을 씩씩하게 건사하는 삶을 듣거나 얻거나 나눌 수 없는 한국 사회이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시험공부만 시킨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른 말 잘 듣게 길들이는 훈련’만 시킨다. 학교는 아이들끼리 서로 다투거나 치고받으면서 밟고 올라서도록 내몬다. 학교는 아이들을 못 놀게 닦달한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겉치레와 겉꾸밈에 사로잡히도록 부추긴다.


  아마, 요즈음 어버이 가운데 이런 학교 모습을 모르는 분은 드물지 싶다. 그렇지만 막상 이런 학교 모습을 바로잡거나 고치려고 애쓰지 못한다. 이런 학교 모습에 그냥 맞추고 만다. 이런 학교 모습이라 하더라도 ‘기초교육인데’라든지 ‘의무교육인데’라는 말을 하면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만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어버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되나.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누리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도록 할 때에 아름다운 삶을 일굴 수 있을까.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제도권 학교교육인데, 그냥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아이들은 몽땅 망가지고야 만다. 아이들을 믿기만 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더라도 어른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오랫동안 서로 마주보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놀고,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한테 삶을 보여주며,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책을 함께 읽거나 생각을 조곤조곤 나누면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여느 제도권 학교에 다니더라도 슬기로움을 잃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 어버이는 집에서 ‘집 교육’을 올바르며 참답고 아름답게 잘 하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제도권 아닌 대안교육 펼치는 학교에 다니더라도 집에서 ‘집 교육’을 올바르거나 참답거나 아름답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씩씩하거나 튼튼하게 자라지 못한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그냥 학교에 다녀’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그냥 낳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집에서 함께 지내거나, 깊이 생각하고 살피면서 다 함께 즐겁게 놀고 일하며 어우러지는 삶을 누려야 한다.


  삶이 있을 때에 교육이 이루어진다. 삶이 있을 때에 사랑이 싹튼다. 삶이 있을 때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더라도 입시교육에 휘둘리거나 길들이지 않도록 마음을 쏟는 어버이나 어른이 되기를 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돌보면서 아이도 어른도 슬기로우면서 착하고 참다운 길 아름답게 걸어가는 삶을 생각한다. 4346.8.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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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버스 꾀꼬리

 


  시골집 떠나 마실을 나오는 길, 큰아이가 군내버스에서 조잘조잘 노래를 부른다. 스스로 가락과 노랫말 지어 부르다가는, 즐겨부르는 몇 가지 노래를 이어서 부른다. 군내버스는 오늘 따라 조용하다. 할매들도 할배들도 그저 조용히 타고 읍내로 간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 되어 이렇게 노래를 한껏 부르면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이 아이들한테 어떤 빛을 물려주고, 이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어떤 꿈을 이어주는 하루일까. 4346.8.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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