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설거지와 숫돌

 


  밥을 한다. 국을 끓인다. 반찬을 볶는다. 밥을 차린다. 밥을 먹인다. 설거지를 한다. 칼을 간다. 한 마디씩 적고 보면 몇 초면 넉넉한 집일을 아침저녁으로 한다. 쌀을 불려 밥을 하고, 모든 밥먹기를 마치고서 설거지와 칼갈기까지 마무리지어 한숨을 돌리면, 두어 시간 훌쩍 지나간다. 설거지를 하면서 ‘칼은 나중에 갈까?’ 하고 생각한다. 설거지 마치고 좀 드러누워 허리를 펴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뒤로 미루고 미루면 칼은 무디어지기 마련이요, 다음에 바지런히 밥을 차려야 할 적에 무딘 칼로 잘못 칼을 놀리다가 손가락이 다칠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칼을 덜 갈아 살짝 무딘 나머지 당근을 썰 적에 슬쩍 미끄러져서 손가락을 자를 뻔했다. 아차 하고 느껴 왼손을 잽싸게 빼고 오른손에 불끈 힘을 주어 칼이 도마를 찍지 않도록 막아 손가락이 다치지 않았다. 히유 한숨을 돌리면서 새삼스레 생각한다. 천천히 느긋하게 즐겁게, 늘 생각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진다. 1분 더 빨리 차린들 1분 더 늦게 차린들 달라지지 않는다. 천천히 차려서 천천히 먹으면 된다. 느긋하게 차려서 느긋하게 먹으면 된다. 즐겁게 차려서 즐겁게 먹으면 된다. 설거지도 느긋하게 천천히 즐겁게 하자. 설거지를 모두 끝내고 칼을 갈 적에도 숫돌에 석석 차근차근 문대면서 날이 잘 서도록 갈자. 가끔 가위도 갈고, 부엌칼 아닌 작은 칼도 갈자. 노래를 부르면서 숫돌질을 하자. 4346.8.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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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자전거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면 아주 홀가분하게 어디로든 달릴 수 있다. 달리다가 마음대로 자전거를 멈추어 바다이든 숲이든 들이든 한껏 누릴 수 있다. 아마 자전거 아닌 자가용을 몬다 하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자가용과 자전거는 아주 크게 다르다. 자가용은 찻길만 다니지만, 자전거는 찻길 아닌 데도 간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모래밭도 지나가고 논둑도 지나간다. 자가용으로는 이렇게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전거에 아이들 태우고 함께 달리면, 바람과 햇볕과 소리와 냄새를 나란히 누린다. 구름과 햇살과 새와 벌레와 풀과 나무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낀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워 사십 분 즈음 달리기만 해도 땀을 엄청나게 쏟는다. 아이들과 함께 두어 시간 자전거를 달리면 이동안 흘린 땀으로도 살이 쪽 빠졌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몰아 아이들과 다니면 참으로 즐겁고 흐뭇한데, 몸은 기운이 죄 빠져나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뒷목이 당기고 뒤꿈치가 저리다. 그러나, 아이들 밥을 해서 먹여야 하고, 아이들 씻기고 나서 옷 갈아입혀야 한다. 없는 힘을 뽑아내어 저녁을 차리고 먹이고 치운 뒤 아이들보다 먼저 자리에 눕는다.


  작은아이가 먼저 아버지 곁으로 온다. 자장노래를 몇 가락 부르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이윽고 큰아이가 아버지 곁으로 온다. 자장노래 한두 가락 더 부르다가 입을 달싹이지 못하고 한숨 포옥 쉬고는 조용히 잠든다. 아이들도 고단했으리라. 달게 깊이 잘 잔다. 새벽에 깨어 곰곰이 생각한다. 아이도 어버이도 하루를 힘껏 누리고 몸이 느긋하게 쉴 때에 가장 즐거운 나날 아니랴 싶다. 몸에 힘을 남길 까닭 없이 모조리 쓰고 나서, 아이도 어버이도 홀가분하게 드러누워 잠들면 참말 즐거운 하루 아닌가 싶다.


  씩씩하게 뛰어놀다가 사르르 곯아떨어지는 아이들처럼, 어버이도 씩씩하게 일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다가 저녁에 아이와 똑같이 스르르 곯아떨어지면 될 노릇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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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되기

 


  더운 여름날 마실을 다닐 적에 나는 아이들한테 그늘을 내주는 나무가 된다. 아이들과 함께 걸을 적에는 그늘을 내주는 구름이 되고, 아이들이 서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물을 마실 적에는 햇볕을 가려 땀을 식히도록 돕는 나무처럼 선다. 작은 아이들이라 내 몸뚱이 하나로 두 아이한테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아이들은 알맞게 깜순이와 깜돌이 되고, 나는 아이들보다 조금 더 까맣게 타는 깜버지 된다. 4346.8.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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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세 켤레

 


  아버지는 늘 고무신, 아이들은 웬만하면 고무신이면서 때때로 다른 신. 물놀이를 하러 갈 적에는 으레 모두 고무신. 마실을 가면서도 흔히 나란히 고무신. 이리하여 너도 나도 즐겁게 고무신 한식구. 발에 땀이 차면 그때그때 신을 빨고 발도 씻고. 아이들은 발에 땀이 찬다 싶으면 시골에서고 도시에서도 맨발로 뛰놀며 “자, 아버지 여기 신.” 하면서 내밀고. 4346.8.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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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해 물 흙 풀 (2013.8.3.ㄴ)

 


  우리 집에 붙일 그림을 그린다. 우리 집에 무엇이 있으면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한다. 맨 처음 네 가지는 해와 물과 흙과 풀. 그리고 사람과 바람과 나무와 숲. 이렇게 여덟 가지를 적는다. 아니, 이렇게 여덟 가지를 커다란 나뭇잎,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에서 여름날 떨어지는 가랑잎을 먼저 바탕에 그리고서 집어넣는다. 꽃과 제비는 우리 집 네 식구마다 하나씩 떠올리며 그리고, 풀포기를 그린 뒤, 무지개빛 빙빙 돌도록 마무리를 짓는다. 좋아 좋아.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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