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맨발로 노는 아이

 


  아버지가 으레 맨발로 살기 때문인지 모르나, 아이들이 맨발로 놀기를 무척 즐긴다. 집에서뿐 아니라 마당에서도 들에서도 바다에서도 으레 맨발이 된다. 도서관에서도 골마루 바닥을 맨발로 달린다. 고흥으로 살림 옮긴 첫 해에 서재도서관 마룻바닥을 닦느라 몹시 바빴다. 큰아이는 으레 맨발로 달리고, 작은아이는 맨손과 맨발 되어 척척 기어다니니, 신나게 바닥 물걸레질을 하면서 아이들 손발이 덜 새까매지도록 애썼다.


  집에서도 마룻바닥이나 방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느라 바쁘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어느새 맨발이 되어 마당에서 놀다가 그대로 집에 들어온다. 마루며 방에 흙먼지를 잔뜩 이끌고 들어온다. 쓸고 닦아도 뒤돌아보면 다시 흙먼지투성이 된다. ‘얘들아 너희 아버지 좀 살려 주라’ 하는 마음이랄까. 곰곰이 돌아보면, 내 어릴 적에 나는 참 개구쟁이처럼 놀았다. 온몸이 모래투성이 흙투성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바깥에서 흙모래 제대로 안 털고 들어왔다가 꾸중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문 앞에 서서 흙모래 한참 털곤 하는데, 그래도 집안으로 흙모래를 잔뜩 데리고 들어온다. 우리 집 어린 아이들도 나중에 크고 더 커서 저희 아이를 낳을 무렵이 되어야 맨발로 놀든 어찌 놀든 온몸에 흙모래 잔뜩 붙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줄 느끼거나 깨닫겠지.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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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별제비가 물고 오는 (2013.11.19.)

 


  오늘은 제비를 그린다. 제비를 큼지막하게 그린 다음 제비 깃빛을 그리지 않고 별을 그린다. 별을 그리고 나서 무지개빛을 입힌다. 별제비 또는 무지개제비 된다. 별제비는 나뭇잎을 물고 찾아온다. 어떤 나뭇잎인가? ‘숲집’이라는 나뭇잎이다. 우리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푸른 바람 싱그러이 불도록 할 나뭇잎을 물고 온다고 할까. 별제비가 숲집 나뭇잎 물고 오는 동안 봄비가 내리는데, 봄비는 ‘삶빛’과 ‘꿈빛’과 ‘책빛’과 ‘말빛’이다. 이 빛비를 맞으며 들판에 꽃이 피어나고 풀이 자란다. 하늘에는 구름이 무지개처럼 흐른다. 큰아이가 옆에서 그림그리기를 거들어 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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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즐거움

 


  손을 잡아 주면 한결 잘 걷지만, 이레 보름 달포 지나는 사이 굳이 손을 안 잡겠다고 한다. 느릿느릿 천천히 걷더라도 혼자서 씩씩하게 걷고 싶다. 부러 좁은 길을 살금살금 거닐면서 기우뚱기우뚱하더라도 스스로 다리힘을 북돋우고 싶다.


  아이들은 우는 즐거움, 웃는 즐거움, 뒤집는 즐거움, 기는 즐거움, 서는 즐거움, 걷는 즐거움, 달리는 즐거움, 뛰는 즐거움, 무엇보다 노래하고 춤추는 즐거움,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즐거움, 하늘숨 마시는 즐거움 들을 골고루 누린다. 이 온갖 즐거움을 아이들이 스스로 누리도록 하는 몫이 어버이한테 있다.


  그저 아이 곁에서 걷는다. 아이를 가까이에서 가만히 지켜본다. 아이는 날마다 새 기운 끌어낸다. 아이는 나날이 새 빛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무럭무럭 자란다. 머잖아 어깨동무하며 걸어갈 날을 맞이하리라. 곧 나란히 손 잡으며 흥얼흥얼 노래하고 이야기꽃 피울 날이 다가오리라. 4346.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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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32] 후박나무 자전거
― 가을빛 마시는 하루

 


  면소재지 마실을 다녀온 뒤 후박나무 마당에 자전거를 세운다. 땀을 들이며 가방을 벗는다. 기지개를 켠다. 도시에서는 자전거 나들이를 마친 뒤,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집안으로 들이느라 애를 먹기 일쑤요, 자전거 둘 만한 보금자리 얻기가 퍽 어렵기까지 하다. 값싼 자전거이든 비싼 자전거이든,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 놓으면 누군가 훔쳐간다. 살짝 한눈을 파는 사이에 몰래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 자물쇠를 채웠어도 끊고 훔치는 사람이 있다.


  시골이라고 훔치는 사람이 없겠느냐만, 도시에서처럼 애를 태우는 일은 없다. 더구나, 도시에서는 자전거 댈 자리 찾느라 힘들지만, 시골에서는 자전거 둘 만한 자리가 넉넉하다.


  가만히 헤아리면, 도시에서는 끔찍하도록 늘어난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가 설 자리를 잃는다. 도시에서는 사람조차 설 자리를 잃는다. 두 다리로 느긋하게 나들이를 다니기 어렵다. 아이들이 골목이나 길에서 느긋하게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땅바닥에 금을 긋거나 돌로 그림을 그리며 놀지 못한다. 흙바닥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였고, 그나마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이라 하더라도 뛰놀 빈터가 없다. 모조리 자동차가 들어서고, 자동차가 떡하니 서지 않더라도 쉴새없이 지나다닌다.


  나무그늘 밑에 자동차를 세우지도 못하고, 자전거를 세우지도 못하는 도시이다. 도시에서는 땅을 깊게 파서 차 댈 곳을 마련한다. 도시에서는 자전거 댈 자리 거의 없다.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녀도 자전거를 마땅히 세울 빈터가 없다. 자동차는 사람들 걷는 자리까지 함부로 올라선다. 그야말로 사랑스럽지 못한 삶터가 되는 도시요, 참말로 아름답지 못한 마을이 되는 도시라고 느낀다.


  가을빛 고운 날, 후박나무 그늘에 서서 구름을 바라본다. 나무 한 그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무가 자라는 흙땅은 얼마나 싱그러운가. 나무가 마주보는 저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맑은가. 4346.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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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옷에 구멍 곱다라니

 


  큰아이 입는 잠옷 무릎에 구멍이 났다. 언제 났을까. 엊저녁에 재울 때에 보니 구멍이 제법 크다. 이 추운 날씨에 춥겠네.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이 옷을 벗을 테니 바느질로 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아침이 되어 바느질을 안 잊을 수 있을까. 바느질을 못 하는 까닭은 ‘아, 맞아, 구멍난 옷 기워야지.’ 하는 생각을 자꾸 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바느질을 하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물끄러미 구경한다. 아직 아이들한테 실과 바늘을 건네지 않는다. 손을 더 야무지게 놀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일곱 살은 어떨까. 글쎄, 일곱 살은 좀 힘들까. 여덟 살이라면 서슴없이 실과 바늘을 건네겠지.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무언가 새롭다 싶은 집일이나 바깥일이나 할 적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본다. 삶을 배운다. 삶에 깃든 사랑을 배운다. 날마다 쌀을 냄비에 받아 헹굴 적에도 날마다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여러 가지 쌀을 냄비에 골고루 담을 적에는 코를 박으며 냄새를 맡는다. 큰아이가 먼저 냄새를 맡으며 “냄새 좋아.” 하면 작은아이가 누나 따라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냄새 좋아.” 하고 말한다. 문득 생각하니, 아이들이 이렇게 “냄새 좋아.” 하고 말해 주기에, 우리 집 밥이 더 맛나고 몸에 좋구나 싶다.


  이 밤 지나고 새 아침 찾아와 큰아이가 잠옷 벗어 곱다라니 개어 놓으면, 이 옷을 살며시 집어서 찬찬히 기워야겠다. 아침에 잘 떠올리자.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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