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재우는 재미

 


  아이들을 재우기가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이 땅 아이들은 먼먼 옛날부터 잘 먹고 잘 자면서 무럭무럭 컸다. 제대로 못 먹고 자란 아이도 있을 테고, 제대로 잠들지 못한 아이도 있으리라 본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꿈꾸지 못하며 시름시름 앓아야 하는 아이도 있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모두 한마음이리라 본다. 내 아이가 되든 다른 집 아이가 되든, 모두 사랑스럽고 따사롭게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비는 한마음이리라 본다.


  어버이가 되고 어버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아이들 재우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보람차며 아름다운가를 늘 새삼스레 깨달으리라 생각한다. 참 그렇다. 잠투정을 하며 안 자려 하는 아이도, 이부자리에 등만 대면 곧바로 곯아떨어지는 아이도, 하나같이 예쁘며 귀엽다. 모두들 사랑스럽고 착하다.


  아이들 재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자장자장 노래 부르다가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진다. 아이들이 늦게까지 안 자려 하면서 방을 온통 어지르면 괜히 씩씩거리며 골을 내다가 아이도 나도 나란히 곯아떨어진다. 자는 동안 아이들이 뒹굴며 아버지 몸을 발로 찬다. 자는 동안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차며 춥다. 아이들과 한 이불 덮고 자다 보니, 아이들이 이불을 차면 다 함께 춥다. 썰렁하다고 느껴 잠에서 깨어 아이들부터 이불을 여미고는 나도 목아지까지 이불을 끌어당긴다. 한 놈이든 두 놈이든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면, 자다가 쉬 마렵다는 뜻이다. 개구지게 놀았으니 몸이 고단하고, 그렇다고 쉬를 안 눌 수도 없고, 낑낑 끙끙 소리를 내며 뒤척인다. 부시시 일어나 아이를 안거나 걸려 쉬를 누인다.


  이렇게 하루를 누리는 재미란 무엇일까.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삶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아이들 자라 열 살을 넘고 스무 살 되기까지는 아주 빠르리라 본다. 아이들 밤오줌 가리도록 돌보는 햇수란 고작 열 해쯤이지, 열 살 넘어가면 아이들은 스스로 부시시 일어나서 밤오줌을 누고는 혼자서 조용히 이부자리로 파고들리라. 아이들한테 하나하나 마음을 쓰고 손을 쓰며 몸을 써야 하는 나날은 아주 짧을 뿐 아니라,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가 넘치는 삶이라고 느낀다. 밤에 할 일 있어서 셈틀을 안 끄고 아이들을 재우다가 그만 나도 깜빡 잠이 든다. 퍼뜩 놀라 잠에서 깬 뒤, 살그마니 이불을 들추어 몸만 빠져나가려 하는데, 큰아이가 불쑥 “아버지 어디 가요?” 하고 여쭌다. 옆에서 작은아이도 누나 목소리 흉내를 내며 “어디 가요?” 하고 여쭌다. 아이고, 얘들아, 너희는 잠 안 들고 아버지만 잠들었니? 이제는 그만 자야지. 4346.11.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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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맨발로 노는 아이

 


  아버지가 으레 맨발로 살기 때문인지 모르나, 아이들이 맨발로 놀기를 무척 즐긴다. 집에서뿐 아니라 마당에서도 들에서도 바다에서도 으레 맨발이 된다. 도서관에서도 골마루 바닥을 맨발로 달린다. 고흥으로 살림 옮긴 첫 해에 서재도서관 마룻바닥을 닦느라 몹시 바빴다. 큰아이는 으레 맨발로 달리고, 작은아이는 맨손과 맨발 되어 척척 기어다니니, 신나게 바닥 물걸레질을 하면서 아이들 손발이 덜 새까매지도록 애썼다.


  집에서도 마룻바닥이나 방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느라 바쁘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어느새 맨발이 되어 마당에서 놀다가 그대로 집에 들어온다. 마루며 방에 흙먼지를 잔뜩 이끌고 들어온다. 쓸고 닦아도 뒤돌아보면 다시 흙먼지투성이 된다. ‘얘들아 너희 아버지 좀 살려 주라’ 하는 마음이랄까. 곰곰이 돌아보면, 내 어릴 적에 나는 참 개구쟁이처럼 놀았다. 온몸이 모래투성이 흙투성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바깥에서 흙모래 제대로 안 털고 들어왔다가 꾸중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문 앞에 서서 흙모래 한참 털곤 하는데, 그래도 집안으로 흙모래를 잔뜩 데리고 들어온다. 우리 집 어린 아이들도 나중에 크고 더 커서 저희 아이를 낳을 무렵이 되어야 맨발로 놀든 어찌 놀든 온몸에 흙모래 잔뜩 붙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줄 느끼거나 깨닫겠지.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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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별제비가 물고 오는 (2013.11.19.)

 


  오늘은 제비를 그린다. 제비를 큼지막하게 그린 다음 제비 깃빛을 그리지 않고 별을 그린다. 별을 그리고 나서 무지개빛을 입힌다. 별제비 또는 무지개제비 된다. 별제비는 나뭇잎을 물고 찾아온다. 어떤 나뭇잎인가? ‘숲집’이라는 나뭇잎이다. 우리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푸른 바람 싱그러이 불도록 할 나뭇잎을 물고 온다고 할까. 별제비가 숲집 나뭇잎 물고 오는 동안 봄비가 내리는데, 봄비는 ‘삶빛’과 ‘꿈빛’과 ‘책빛’과 ‘말빛’이다. 이 빛비를 맞으며 들판에 꽃이 피어나고 풀이 자란다. 하늘에는 구름이 무지개처럼 흐른다. 큰아이가 옆에서 그림그리기를 거들어 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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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즐거움

 


  손을 잡아 주면 한결 잘 걷지만, 이레 보름 달포 지나는 사이 굳이 손을 안 잡겠다고 한다. 느릿느릿 천천히 걷더라도 혼자서 씩씩하게 걷고 싶다. 부러 좁은 길을 살금살금 거닐면서 기우뚱기우뚱하더라도 스스로 다리힘을 북돋우고 싶다.


  아이들은 우는 즐거움, 웃는 즐거움, 뒤집는 즐거움, 기는 즐거움, 서는 즐거움, 걷는 즐거움, 달리는 즐거움, 뛰는 즐거움, 무엇보다 노래하고 춤추는 즐거움,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즐거움, 하늘숨 마시는 즐거움 들을 골고루 누린다. 이 온갖 즐거움을 아이들이 스스로 누리도록 하는 몫이 어버이한테 있다.


  그저 아이 곁에서 걷는다. 아이를 가까이에서 가만히 지켜본다. 아이는 날마다 새 기운 끌어낸다. 아이는 나날이 새 빛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무럭무럭 자란다. 머잖아 어깨동무하며 걸어갈 날을 맞이하리라. 곧 나란히 손 잡으며 흥얼흥얼 노래하고 이야기꽃 피울 날이 다가오리라. 4346.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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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32] 후박나무 자전거
― 가을빛 마시는 하루

 


  면소재지 마실을 다녀온 뒤 후박나무 마당에 자전거를 세운다. 땀을 들이며 가방을 벗는다. 기지개를 켠다. 도시에서는 자전거 나들이를 마친 뒤,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집안으로 들이느라 애를 먹기 일쑤요, 자전거 둘 만한 보금자리 얻기가 퍽 어렵기까지 하다. 값싼 자전거이든 비싼 자전거이든,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 놓으면 누군가 훔쳐간다. 살짝 한눈을 파는 사이에 몰래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 자물쇠를 채웠어도 끊고 훔치는 사람이 있다.


  시골이라고 훔치는 사람이 없겠느냐만, 도시에서처럼 애를 태우는 일은 없다. 더구나, 도시에서는 자전거 댈 자리 찾느라 힘들지만, 시골에서는 자전거 둘 만한 자리가 넉넉하다.


  가만히 헤아리면, 도시에서는 끔찍하도록 늘어난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가 설 자리를 잃는다. 도시에서는 사람조차 설 자리를 잃는다. 두 다리로 느긋하게 나들이를 다니기 어렵다. 아이들이 골목이나 길에서 느긋하게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땅바닥에 금을 긋거나 돌로 그림을 그리며 놀지 못한다. 흙바닥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였고, 그나마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이라 하더라도 뛰놀 빈터가 없다. 모조리 자동차가 들어서고, 자동차가 떡하니 서지 않더라도 쉴새없이 지나다닌다.


  나무그늘 밑에 자동차를 세우지도 못하고, 자전거를 세우지도 못하는 도시이다. 도시에서는 땅을 깊게 파서 차 댈 곳을 마련한다. 도시에서는 자전거 댈 자리 거의 없다.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녀도 자전거를 마땅히 세울 빈터가 없다. 자동차는 사람들 걷는 자리까지 함부로 올라선다. 그야말로 사랑스럽지 못한 삶터가 되는 도시요, 참말로 아름답지 못한 마을이 되는 도시라고 느낀다.


  가을빛 고운 날, 후박나무 그늘에 서서 구름을 바라본다. 나무 한 그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무가 자라는 흙땅은 얼마나 싱그러운가. 나무가 마주보는 저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맑은가. 4346.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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