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와 글쓰기


 옆지기 어머님이 전화를 했다. 오늘 갑자기 바람 몹시 불며 날이 썰렁해졌는데 우리 식구들 시골집에서 잘 지내느냐고 물으신다. 어머님 지내시는 집은 들판이라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한다. 트인 들판이니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우리 시골집보다 훨씬 춥다고 느끼리라 생각한다. 아이 엄마랑 아이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져서 내가 전화를 받으며 고맙다고 말씀드린다. 전화를 받는 내내, 또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이 곱씹는다. 제대로 따진다면, 날씨가 이렇게 갑작스레 추워질 때에는 아들(이나 사위) 되는 사람이 먼저 ‘잘 지내시느냐?’ 하는 인사를 두 어머니한테 따로따로 전화로 여쭈어야 할 노릇이 아니었는가. 돌이켜보면, 날씨를 여쭙는 인사이든 살림을 여쭙는 인사이든 제대로 챙긴 적이 없지 않느냐 싶다. 집식구한테 알뜰히 한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집식구한테뿐 아니라 바깥식구한테조차 살뜰히 못한다고 느낀다.

 부끄러우니까 글을 끄적인다. 두 시간쯤 앞서 곯아떨어진 집식구와 마찬가지로 나도 일찍 곯아떨어지고 싶으나, 홀가분한 저녁때에 글 한 줄이나마 적바림하고 싶어 아직 잠을 미룬다. 그러나 정작 홀가분한 저녁때를 맞이하니 글이 나오지 않는다. 불을 켤 수 없어 책을 읽지도 못한다. 억지로 볼펜을 쥔들 셈틀을 켠들 글을 쥐어짤 수 있겠나. 아이가 기저귀에 오줌을 눈 듯하다. 아이 기저귀를 갈고 나도 드러누워야겠다.

 아이 기저귀를 갈았다. 기저귀를 갈며 다리 쭉쭉이를 하니 아이 키가 또 제법 자란 듯 싶다. 날마다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조금씩 키가 자란다고 느끼기는 하는데, 이렇게 쭉쭉이를 해 보면 훨씬 잘 느낄 수 있다. 오늘 낮과 저녁, 아이가 졸음에 겨워 일부러 짓궂게(아이는 짓궂은 줄을 모르리라) 아빠 책을 마구 끄집어 내며 어지럽힐 때에 “그러면 안 되지.” 하고 말하니 “그러며 아 대지.” 하고 따라한다. “제자리에 꽂아 놔.” 하고 말하면 “지자리에 꼬아 나.” 하고 따라한다. 아, 이렇게 쏙쏙 받아먹는 아이를 어떻게 꾸짖을 수 있으랴. 이처럼 하나하나 제 엄마 아빠를 배우며 크고자 하는 아이 앞에서 어찌 이맛살을 찌푸릴 수 있으랴. 더 느긋하게 살아가며 더 차분하게 책을 사귀고 더 조용히 글을 쓰는 가운데 더 착하게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고 다짐한다. (4343.10.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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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집 골목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해마다 똑같이 피고 지는 일이란 없다. 올 오월에는 이 꽃을 보았다면 다음 2011년 오월에는 어떤 꽃을 마주할 수 있을까.

- 2010.5.7. 인천 중구 율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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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0.22.
 : 혼자 장날 마실 다녀오기



- 아침에 일찍 세 식구가 함께 읍내 장날 나들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 밥을 먹이고 아이 똥을 누이며 빨래를 한다며 이래저래 부산을 떨다가 그만 버스 때를 놓친다. 11시 50분 버스 때를 놓친 다음에는 13시 40분 버스 때인데, 이무렵에는 아이가 그만 낮잠을 잔다. 여느 때에는 낮잠 안 잔다며 칭얼거리던 아이가 요사이에는 낮잠을 아주 잘 자 준다. 더없이 고마운 한편, 꼭 이렇게 함께 나갔으면 할 때에 잠이 든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아빠가 더 일찍부터 바지런을 떨었으면 아침 때에 잘 맞추어 나들이를 다녀왔고, 아이 또한 즐겁게 낮잠에 들 수 있었겠지.

- 아이가 낮잠 자는 모습을 보다가 아빠 혼자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다녀오기로 한다. 아이랑 엄마랑 먹는 능금이 다 떨어졌다. 능금을 사고, 능금을 사는 김에 장마당에 펼쳐진 먹을거리 한두 가지를 사 올까 생각한다.

- 슬금슬금 달린다. 자전거로 달릴 때에는 사진기에 가벼운 렌즈를 붙인다. 무거운 렌즈를 붙이면 내가 바라는 사진을 한결 잘 담을 수 있으나, 이때에는 자전거를 달리며 목이 좀 아프다. 언덕길을 오를 때에는 더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고픈 마음이라면 목이 아프건 어떠하건 무거운 렌즈를 달며 자전거를 달려야겠지.

- 늘 다니는 읍내길이지만, 가을 막바지에 이르는 읍내길은 새삼스럽다. 여름날 보던 푸르디푸른 느티나무 잎사귀가 차츰 누렇게 바뀐다. 곧 샛누런 빛깔로 탈바꿈하리라.

- 비탈논을 일구는 곳 가운데 벌써 벼를 다 벤 곳이 있고 한창 벼를 베는 곳이 있다. 내 사진기로 담아도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사진기 아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도 좋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라면 사진기를 목에 안 걸어야 하지 않나? 오르막에서 멈추기 싫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셈 아닐까? 하기는. 오르막을 낑낑 오르다가 ‘아, 이 모습 사진으로 담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이 들 때에 멈추기는 어렵다. 오르막을 낑낑 오른 다음 시원한 내리막을 달리는데 ‘어, 이 모습 참 좋잖아. 찍고 싶다. 그런데 멈춰야 하다니.’ 하고 생각하다가 그예 안 멈추고 지나가곤 한다.

- 자전거를 달리면서 셔터빠르기를 1/125초까지 올리며 사진을 찍어 보다. 그러나 오르막에서 뒤뚱뒤뚱거리며 사진을 찍으니 흔들린다. 그냥 멈추어서 찍어야 한다.

- 읍내 장날에는 나처럼 자전거를 끌고 마실하는 분이 꽤 있다. 이분들은 읍내하고 제법 떨어진 곳에서 살아갈 테지. 딱히 자전거를 묶어 둘 데가 없기도 하고, 자전거 짐바구니에 물건을 담아야 하니, 다들 자전거를 끌고 장마당을 슬슬 돈다.

- 장날만큼은 시골 하나로마트가 장사를 못하는 날이라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장마당 장사꾼들 모두 물건을 잘 파는지는 모르겠다. 낮 세 시 가까이 장마당에 닿아 둘러보는데, 이때에 처음 마수를 했다는 분을 본다. 어쩌면 마수조차 못하고 장마당을 걷는 할매 할배도 있지 않을까.

- 호떡과 핫도그를 산다. 아이 엄마가 먹고 싶다는 참외까지 산다. 참외는 꼭 한 곳에서만 판다. 용케 참외를 파는 곳이 있다. 이 집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이 엄마가 먹고 싶어 한다면 추운 겨울날 딸기를 어떻게든 마련해서 먹인다’고 하던 옛말을 떠올린다.

- 호떡과 핫도그가 식을까 걱정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오르막을 힘차게 달린다. 읍내로 나올 때에는 텅 빈 가방이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꽉 찬 가방이다. 그예 땀을 뻘뻘 흘린다. 용산리 숯고개를 넘어 비로소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길바닥에는 숱한 뱀과 잠자리와 작은 멧짐승 주검이 깔려 있다. 납짝꿍이 된 주검을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돌면서 내리막을 달린다. 숨이 차며 집에 닿으니 아이 엄마는 아이랑 맛난 밥을 차려서 먹는다.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호떡 안 사도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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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0.21.
 : 두 번째 자전거수레



- 아이가 까까 사러 가자면서 아빠 자전거수레를 가리킨다. 아빠 손을 잡으며 수레에 탄다고 한다. 한 번 태웠을 뿐인데 자전거수레에 타면 까까 사러 가는 줄 아는가? 아이한테 바람을 쏘이고 싶기도 해서, 오늘도 엊그제처럼 보리밥집으로 달려 보기로 한다. 해질녘이기에 아이 옷을 더 두툼히 입힌다. 아이는 장갑을 싫어하고 모자도 싫어한다. 수레에 앉혀 담요를 덮여 놓아도 손을 뺀다.

- 논둑길을 달리는 동안 잠자리가 떼지어 날아오른다. 아이를 돌아보며 “잠자리다!” 하고 얘기한다. 아이는 “구름! 하늘!” 하며 딴 소리를 한다. 훗. 그러나 수레에 앉으면 잠자리는 아빠 엉덩이와 등짝에 가리고, 하늘과 구름이 훨씬 잘 보이겠지.

- 보리밥집에 닿을 무렵, 네찻길에서 뒤쪽 차와 앞쪽 차가 없는 줄 잘 살핀 다음 길을 건넌다. 건널목이 있으나 이 건널목에서 푸른불이 안 들어온 지 오래. 몇 달쯤 된 듯한데, 어쩌면 더 오래되었는지 모르는데, 건널목 신호는 안 바뀌고 귤빛 불만 깜빡거린다. 시골버스역으로 건너도록 건널목이 있는데, 이 건널목을 건널 사람은 한두 시간에 드물게 있으니 굳이 건널목 신호가 없어야 한다 할 만하다. 그러나 이 길을 건너야 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길을 건널 사람이 단추를 누르면 이내 신호가 바뀌도록 장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골에서는 건너는 사람이 뜸하니까, 때 되면 바뀌는 신호가 아니라 건널 사람이 단추를 누르면 바뀌는 신호로 고쳐 주면 좋겠다.

-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니까 아이는 이내 “다아 왔다!” 하고 소리친다. 참 재미난 녀석이다. 우리 딸내미이지만, 어쩜 이렇게 다 온 줄 알고 이렇게 말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인천 골목동네 집에 살던 때에도 한참 골목마실을 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으레 “다아 왔다!” 하고 외치곤 했다. 처음 이 말을 외친 때다 몇 달 때였을까. 열예닐곱 달쯤부터 이런 말을 외쳤을까.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둠이 깔린다. 어둑어둑한 길을 달리는데 아이가 “달!” 하고 외친다. 그래, 달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구나. 달빛이 비추어 주는 논둑길을 달린다. 마지막 꽤 가파른 비알에서 1단 기어를 넣는데 체인이 튄다. 1×2 기어는 어김없이 튄다. 왜 그럴까. 새로 바꾼 체인과 기어가 이 자리에서만 아귀가 잘 안 맞기 때문인가. 가파른 비탈을 한창 오르다가 기어가 풀리며 페달이 헛돌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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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알뜰살뜰 키우는 골목집이 무척 많다. 그리고 꽃이고 뭐고 하나도 안 키우는 골목집 또한 꽤 많다. 골목꽃을 고이 키우는 집은 당신 꽃그릇이 아닌 길바닥 틈바구니에서 돋아난 꽃을 함부로 안 뽑는다. 인천 중구 전동에 자리한 이분 또한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돋은 이 풀을 안 뽑았다. 아마 이분들은 알았으리라. 이 풀은 바로 맨드라미였음을.

- 2010.8.31. + 2010.10.7. 인천 중구 전동

 

- 2010.8.31. 

 

- 2010.10.7.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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