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고 싶었던 따오기
이모토 요코 지음, 고향옥 옮김 / 달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9



‘자유’ 잃는 새한테 기쁨이 있을까

― 하늘을 날고 싶었던 따오기

 이모토 요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달리 펴냄, 2007.12.31.



  올해에도 어김없이 제비가 우리 집 처마 밑으로 돌아왔습니다. 올해에는 사월 첫머리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이나 이웃 여러 마을을 살피면, 해마다 돌아오는 제비 숫자가 크게 줄어듭니다. 세 해 앞서는 커다랗게 무리지은 제비를 볼 수 있었지만 두 해 앞서는 작은 무리가 되었고, 지난해에는 몇 마리가 안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우리 마을 제비를 고작 너덧 마리만 봅니다. 보름 남짓 살펴보아도 우리 마을 제비 숫자는 너덧 마리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러다가 이듬해에는 우리 집에조차 제비가 못 돌아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머잖아 이 고장에도 제비가 뚝 끊어질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 옛날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따오기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따오기는 아름다운 날개를 탐내는 사람들에게 잇따라 붙잡히고, 논에 뿌려진 농약 때문에 자꾸자꾸 죽어갔습니다 ..  (2쪽)




  곰곰이 돌아보면, 이 고장에서 꾀꼬리를 못 본 지 제법 되었습니다. 멧자락 밑에 있는 마을이건만, 꾀꼬리 노랫소리를 못 듣습니다. 소쩍새 노랫소리를 듣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새들이 한국에서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아주 깊은 멧골마을에서 겨우 목숨줄을 잇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도시를 차츰 넓히면서 들과 숲을 잡아먹고, 새와 숲짐승은 보금자리를 자꾸 빼앗기면서 목숨을 잃거나 이 나라를 떠나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도시가 커지더라도 제비가 살 터가 아주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새는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둥지를 틀면서 살 수 있거든요. 다만, 둥지는 도시에서도 틀 수 있지만, 먹이를 얻을 들이나 숲은 꼭 있어야 합니다. 제비를 비롯한 모든 새는 들과 숲에서 벌레와 풀열매를 먹이로 삼습니다. 새는 사람처럼 가게에 가서 가공식품을 사다 먹을 수 없고, 빵집에 가서 빵을 사다 먹지 못합니다. ‘벌레가 있는’ 들과 숲이 있어야 하고, ‘풀열매와 나무열매가 있는’ 들과 숲이 있어야 합니다.



.. 긴타로 아저씨는 날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옷을 입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검은 모자, 검은 잠바, 검은 바지, 검은 장화. 비 오는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날이 밝기 전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긴타로 아저씨는 따오기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러자 따오기도 점차 긴타로 아저씨가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  (7쪽)




  이모토 요코 님이 빚은 그림책 《하늘을 날고 싶었던 따오기》(달리,2007)를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마지막 따오기가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따오기가 몇 마리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 따오기 알을 한국에 선물하기도 한다니까, 한국에서도 따오기는 씨가 말랐거나 몇 마리 없구나 싶습니다.


  그림책 《하늘을 날고 싶었던 따오기》를 보면, 첫머리에 농약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본에서도 시골 논밭에 농약을 자꾸 쓰면서 따오기가 하루아침에 크게 줄었다고 해요.


  미국에서 레이첼 카슨 님이 “고요한 봄” 이야기를 쓰면서 ‘디디티’가 들과 숲을 죽인다고 밝힌 적 있어요. 농약도 디디티도 항생제도 비료도, 참말 들과 숲을 죽입니다. 온갖 풀을 다 죽이고, 갖가지 벌레를 다 죽이며, 수많은 새와 숲짐승을 죽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농약을 줄이거나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농약을 쳐서 키운 남새와 곡식이라면, 이 남새와 곡식에도 농약이 깃들기 마련이라서 사람이 스스로 농약을 먹는 셈인데, 참말 농약을 자꾸자꾸 쓰기만 합니다.



.. “어이쿠, 귀엽기도 하지!” 긴타로 아저씨는 따오기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호 센터에서는 날마다 따오기를 잡아 오라고 재촉합니다 ..  (12쪽)




  요즈음은 초·중·고등학교 급식에서 ‘일반 쌀’은 거의 안 씁니다. 학교급식에서 쓰는 쌀은 ‘농약을 친 일반 쌀’이 아니라 ‘농약을 안 친 쌀’이거나 ‘농약을 아주 적게 친 쌀’이거나 ‘자연농으로 키운 쌀’이기 마련입니다. 아이들한테 아무 쌀이나 함부로 먹여서는 안 되는 줄 교사와 어버이가 모두 알거든요.


  그렇지만 시골에서 농약 씀씀이는 줄지 않습니다. 가게에는 ‘농약 친 쌀’과 ‘농약 안 친 쌀’이 나란히 놓이고, 더 많은 사람들은 ‘농약 친 쌀’을 더 값싸게 장만합니다.


  도시에 사는 이웃이 ‘농약 친 쌀’을 사다 먹지 않으려 한다면, 시골에 사는 흙지기도 ‘농약을 쳐서 쌀을 거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농약 친 쌀’은 사들이지 않기로 한다면, 시골에 사는 흙지기는 ‘농약을 안 쓰는 흙일’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길로 저절로 가기 마련입니다. ‘무농약 자연농 쌀’만 나라에서 사들이면서 ‘수매값’을 올려 주면, 시골지기는 누구나 이 흐름으로 갈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러한 흐름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제비도 살고 숲짐승도 살 수 있어요.



.. ‘내가 붙잡으면 따오기는 영영 하늘을 날 수 없겠지.’ 하고 생각하며 긴타로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붙잡아서 보호하면 따오기의 목숨은 살릴 수 있지만, 자유를 빼앗는 게…….” “자유라고요? 목숨이 붙어 있어야 자유도 있는 법이에요!” 보호 센터 사람은 딱 잘라 대답했습니다 ..  (16쪽)




  그림책 《하늘을 날고 싶었던 따오기》를 더 들여다봅니다. ‘마지막 따오기’를 놓고, 긴타로라는 아저씨와 ‘따오기 보호 센터’ 공무원하고 실랑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따오기를 돌보던 아저씨는 따오기가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면서 지내기를 바랐고, ‘따오기 보호 센터’ 공무원은 ‘개체수 급감에 따라 격리 보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따오기는 ‘따오기 보호 센터’ 공무원 뜻에 따라 ‘자유’를 잃고 ‘목숨만 지키는’ 길로 가야 했다고 합니다. 따오기는 좁은 우리에 갇힌 채 서른 몇 해를 ‘한 번도 날아오르지 못한’ 채 살아야 했고, 마지막에 한 번 날아오르다가 ‘좁은 우리’ 벽에 머리를 크게 부딪히고 죽었다고 합니다.


  따오기는 끝내 죽습니다. 들과 숲을 홀가분하게 날아다니면서 살았어도 목숨을 다해서 죽거나 농약을 마시고 죽었겠지요. ‘보호 센터’에서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살았어도 그예 죽습니다.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삶을 어떻게 누려야 할까요. 자유가 없이 산다면, 자유는 없이 목숨만 이어야 한다면, 자유는 빼앗긴 채 좁은 우리에 갇혀서 먹이만 받아먹어야 한다면, 우리 삶은 무엇일까요. 100억 원이나 1000억 원을 줄 테니 ‘감옥에서 서른 해나 마흔 해를 살다가 죽어야 한다’고 한다면, 100억 원이나 1000억 원이라는 돈은 어떤 뜻이나 값이나 보람이 될까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제비가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을 즐겁게 낳아 키운 뒤, 다시 기쁘게 바다를 가로질러서 따뜻한 나라로 갈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나라 아이와 어른 모두 제비를 반가이 맞이하면서 노래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8.4.1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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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4-19 10:59   좋아요 0 | URL
참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새들의 마리수가 중요하다면 그네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잡아다가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감금하는 건 참... 도시에도 길짐승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사람들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ㅜㅜ

숲노래 2015-04-19 11:17   좋아요 0 | URL
곰곰이 보면 볼수록
`자연보호`와 `환경보호`라는 이름이
자칫 허울로만 흐르겠구나 싶어요.

우리는 `보호`하려 하지 말고
`함께 살려`고 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도깨비와 권총왕 이원수 문학 시리즈 3
이원수 지음 / 웅진주니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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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97



봄꽃 같은 아이, 봄나무 같은 어른

― 도깨비와 권총왕

 이원수 글

 권사우·설은영·이준섭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1999.7.30.



  봄에 피는 꽃은 모두 봄꽃입니다. 이월에 피건 삼월에 피건 사월에 피건 모두 봄꽃입니다. 아직 봄이라 할 수 없는 이월에 피더라도, 이 봄꽃은 삼월과 사월에도 나란히 피어요. 볕바른 자리에서 아주 일찍 피는 봄꽃이 있고, 응달진 곳에서 느즈막하게 피는 봄꽃이 있어요. 그리고, 볕바른 곳에서도 느즈막하게 올라오는 봄꽃이 있습니다.


  냉이꽃은 이월에도 보지만 사월에도 봅니다. 민들레꽃은 삼월에도 보지만 오월에도 봐요. 어느 씨앗은 겨우내 봄을 기다렸다가 아주 빠르게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서 꽃대까지 올려요. 어느 씨앗은 다른 들풀과 봄꽃이 한껏 터져서 들과 밭과 숲을 가득 메우고 나서야 비로소 기지개를 켭니다.


  가장 먼저 돋는 봄풀을 반기거나 가장 먼저 피는 봄꽃을 반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느즈막하게 돋는 봄풀이나 느즈막하게 피는 봄꽃을 반기는 사람은 드물 수 있어요. 그렇지만 풀과 꽃은 투정을 부리지 않습니다. 풀과 꽃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때에 찬찬히 온힘을 다해서 이 땅에서 깨어납니다.



.. 경칠이는 재미만 났어요. 누가 야단을 쳐도 히히히 웃으며 도망을 치고는 또 짓궂은 장난만 쳤답니다 … 어머니는 경칠이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토끼가 얼마나 착한 짐승인데 그걸 때리고 찌르고 그러니? 아기 토끼의 눈까지 멀게 해 놓았으니 가엾어서 볼 수가 없구나.” 경칠이는 시무룩하니 앉아 있다가 말했습니다. “때려 줘도 아프단 말도 안 하고 날 놀려 주지 않아?” “꼭 아프다고 소릴 쳐야만 하니? 토끼의 말소리는 네 귀에 안 들리니까 그렇지. 너도 토끼 노래를 불렀었지?” ..  (7, 9쪽)



  일월에 태어나는 아이가 있고 십이월에 태어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먼저 태어난다 싶은 아이가 있을 테지만, 먼저라고 해 본들 더 앞서 태어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이와 같습니다. 먼저 태어난 어른은 없습니다. 저마다 제때에 맞게 즐겁게 태어난 숨결입니다.


  나이가 더 어리기에 철이 안 들지 않습니다. 나이가 더 많기에 철이 일찍 들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때에 철이 듭니다. 누군가는 열 살에 철이 들 테고, 누군가는 쉰 살에 철이 들 테지요. 누군가는 일흔 살이 되어도 철이 안 들었다 할 만하고, 누군가는 열 살이 채 안 되어 애늙은이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을 마주할 적에는 나이가 아닌 숨결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이를 마주하든 어른을 마주하든 겉모습이나 겉차림이 아니라 속모습과 속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휘둘리지 말고, 속에서 환하게 터져오르는 숨결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엄마가 날마다 고된 일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구나. 집을 뛰쳐나가서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소의 신세는 가엾은 거다.’ … “그래도 난 수근이가 좋았어요. 밤에도 나와서 날 쓸어 주고 그랬어.” “그래, 수근이는 참 착한 아이였어. 그런 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니까 얼마나 좋더냐?” ..  (33, 34∼35쪽)



  이원수 님이 빚은 동화를 엮은 《도깨비와 권총왕》(웅진주니어,1999)을 읽습니다. 이 책에는 〈도깨비와 권총왕〉을 비롯해서 모두 열 가지 짧은동화를 싣습니다. 〈토끼와 경칠이〉는 힘여린 짐승을 괴롭히던 경칠이가 꿈에서 토끼를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떠나는 송아지〉는 가난한 시골집에서 송아지를 팔아야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수탉〉은 암탉을 늘 괴롭히는 수탉을 지켜보는 아이 이야기를 다루고, 〈바둑이의 사랑〉은 고양이와 한집에서 지내다가 새끼를 남기고 일찍 숨을 거둔 고양이를 마주하는 개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이름에 붙은 〈도깨비와 권총왕〉은 아이들이 보는 책에 나오는 ‘도깨비’와 ‘권총왕’이 맞서는 이야기를 다뤄요.


  짧은동화 열 꼭지는 모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입니다. 어린이가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아름다운 마음밥을 받아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랑할 뿐 아니라, 풀과 나무도 사랑하기를 바라는 숨결이 깃든 이야기입니다. 작은 벌레와 짐승도 내 몸과 같이 보살피거나 아낄 수 있기를 바라는 숨결이 깃든 이야기예요.



.. 언젠가 나비의 얄미운 꼴을 보다못해 “저놈의 짐승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 일이 있고, ‘쥐약 먹은 쥐라도 먹고 거꾸러져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걸 바둑이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죽은 건 아니겠지.’ … “불쌍한 것들아, 내가 네 엄마가 돼 줄게.” 바둑이는 새끼들 옆에 누워서 몸을 핥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새끼들이 모두 바둑이의 품안으로 기어들었습니다. “이것들아, 나는 지금 젖이 안 나니까 먹일 수 없다만, 따뜻이 품어 주니까 울지 마라.” ..  (56, 60쪽)



  언니이거나 오빠이거나 형이거나 누나라는 자리에 있는 아이라면, 제 동생을 아끼고 보살피면서 흐뭇합니다. 언제나 동생을 챙기거나 돌봐야 해서 고단하거나 힘들 일이란 없어요. 나보다 여리거나 어린 동생을 아끼면서 찬찬히 사랑이 샘솟습니다. 나보다 여리거나 어린 동생을 보듬으면서 찬찬히 어버이 사랑을 깨닫습니다. 내가 어린 동생을 돌보듯이 어버이도 나를 돌보았을 테니까요. 아니, 내가 투정을 부리거나 골을 부리더라도 어버이는 나를 가없는 사랑으로 따스하게 품었을 테니까요.


  나는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동생한테 물려줍니다. 동생은 어버이와 언니한테서 받은 사랑을 동무와 이웃한테 물려줍니다. 동무와 이웃은 저마다 받은 사랑은 둘레에 고이 물려주겠지요.


  사랑이 흐르고 흘러서 아름답게 빛납니다.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다 함께 아름답게 깨어납니다. 작은 사랑도 큰 사랑도 따로 없이 모든 사랑은 똑같이 따사로운 바람이 됩니다.



.. “야,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대낮에 도깨비가 다 나와? 총알 맛을 보고 얘길 해.” 하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대낮에 아이들에게 총을 겨누는 놈을 그냥 둘 줄 아나?” 하고 도깨비는 요술 방망이로 벤치를 탕탕 치며 말했습니다. “총알아, 없어져라!” … 용이는 제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걸 알았습니다. 가지도 않는 고장난 시계를 가지고 그나마 어머니 아버지 몰래 훔쳐 가지고 산타 할아버지하네서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  (98, 133쪽)



  요즈음에는 ‘팔려 가는 송아지’를 보며 눈물에 젖을 만한 어린이는 한국에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요즈음에는 ‘도깨비’를 생각하면서 살가운 놀이동무로 여길 어린이도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요즈음에는 ‘권총왕’이 아니라 ‘핵잠수함’이나 ‘우주선’을 떠올리면서, 어마어마한 전쟁무기를 아주 손쉽게 떠올릴 만합니다. 1911년에 태어나 1981년에 돌아가신 이원수 님이 예전에 쓰신 동화는 오늘날 문화나 문명으로 돌아보자면 아무래도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동화책 《도깨비와 권총왕》에는 어제와 오늘을 가로지르는 ‘다른 숨결’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어린이가 가슴에 품을 사랑을 다루는 동화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짝을 짓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돌보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사랑을 보여주는 동화입니다. 지치거나 힘들 때마다 새롭게 일어서는 기운이 되는 사랑을 들려주는 동화입니다. 아프거나 괴로울 적마다 훌훌 털고 일어나서 새삼스레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사랑을 밝히는 동화입니다.


  겨울을 씩씩하게 난 씨앗이 봄에 활짝 웃습니다. 겨우내 옹크리던 풀씨가 새봄에 기지개를 켜면서 야무지게 잎을 틔우고 꽃을 터뜨립니다.


  봄꽃 같은 아이들입니다. 겨울에 손과 발이 꽁꽁 얼더라도 눈놀이를 하면서 봄을 부르는 아이들입니다.


  자, 어깨를 펴요. 시험성적이나 학원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끄고 바깥으로 나가요. 봄바람을 쐬고 봄비를 맞아요. 봄뼡을 쬐고 봄꽃내음을 맡아요.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맑은 꿈을 스스로 지어서 사랑스레 일굴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곁에서 든든한 숲이 되어 주기를 빌어요. 봄꽃 같은 아이들 곁에서 봄나무 같은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4348.4.1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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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가 되었다
조태일 지음, 신경림 엮음 / 창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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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7



시를 읽는 사람은 노래를 사랑해

― 나는 노래가 되었다

 조태일 글

 신경림 엮음

 창비 펴냄, 2004.9.25.



  봄에 꽃이 필 무렵 어김없이 벌이 찾아듭니다. 아직 이르다 싶은 삼월에도 벌이 찾아듭니다. 사월이면 벌이 무척 많이 늘어납니다. 사월에 피어나는 꽃은 삼월보다 훨씬 많아요. 마당에 선 동백나무에 동백꽃이 한창이던 때에는 벌도 수백 마리가 윙윙거렸습니다. 동백꽃이 거의 다 진 이즈음에는 동백나무 둘레에 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채꽃과 갓꽃이 곳곳에 흐드러지다 보니 갓꽃밭과 유채꽃밭은 벌떼로 아주 시끄럽다 싶을 만합니다.


  벌떼는 매화가 매화꽃을 터뜨릴 적에도 몰리고, 모과나무가 모과꽃을 터뜨릴 적에도 몰립니다. 군데군데 피어나는 민들레꽃에도 벌이 내려앉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냉이꽃과 별꽃에도 벌이 내려앉습니다. 벌과 나비는 꽃을 가리지 않습니다. 모든 꽃에 살며시 내려앉아서 꿀이나 꽃가루를 받아먹습니다. 이러면서 꽃가루받이를 해 주어요.



.. 내 어릴 적 / 산속에서 길을 잃고 / 엄마야! 엄마야! 엄마야! / 울부짖던 그 소리 ..  (메아리)



  어젯밤에 아이들과 마을 논둑에 서서 별바라기를 하며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개구리는 보름쯤 앞서 깨어나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풀밭 여기저기에도 풀벌레가 깨어나서 드문드문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직 왁자지껄한 노래는 아닙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도 드문드문 들릴 뿐입니다.


  모두 노래를 부릅니다. 낮에는 낮노래를 부르고, 밤에는 밤노래를 부릅니다. 노는 아이들은 놀이노래를 부르고, 일을 하는 어른들은 일노래를 부릅니다. 마실을 다닐 적에는 마실노래를 부르지요. 나는 밥을 지으면서 밥노래를 부르는데,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밥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과 내가 부르는 밥노래는 사뭇 다릅니다.



..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 그곳이 나의 고향, / 그곳에 묻히리 ..  (풀씨)



  조태일 님은 1999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시집 《나는 노래가 되었다》(창비,2004)는 조태일 님이 저승길로 떠나고 난 뒤에 신경림 님이 새로 엮어서 내놓은 책입니다. 조태일 님이 그동안 내놓은 시집 여러 권에서 추리고 가리고 골라서 엮은 시집입니다.


  시집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우리는 ‘시’라고 하는 글을 책으로 읽는데, 시가 깃든 책인 시집은 ‘노래책’과 같구나 싶어요. 시는 삶을 노래한 글이고, 삶을 노래한 글을 묶은 책이니, 시집은 언제나 노래책이 되리라 느낍니다.



..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 / 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 // 아빠꽃 엄마꽃 형꽃 누나꽃 따라 / 아기꽃 동생꽃 쌍둥이꽃 / 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 ..  (꽃들, 바람을 가지고 논다)



  노래는 소리에 담은 가락입니다. 그저 흐르는 소리는 그저 소리이지만, 소리에 가락이 담기면 노래로 거듭납니다. 그저 흐르는 자동차 소리라든지 버스 소리라든지 기차 소리는 그냥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고즈넉하게 들을 수도 있으나,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가 끊이지 않는 고속도로 옆에 서면 온갖 자동차가 내는 소리가 시끄러워 귀청이 찢어질 듯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소리도 내 마음에 따라서 노래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마다 다 다르게 달리면서 내는 소릿결을 느껴서 가락을 헤아리면 노랫가락이 됩니다.


  개구리와 풀벌레와 꾀꼬리가 들려주는 소릿가락을 들으면서 시끄럽다고 느낄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개구리와 풀벌레와 꾀꼬리가 들려주는 소릿가락을 노래로 들을 사람이 있어요. 어느 때에는 반가운 소리이기에 노래요, 어느 때에는 달갑잖은 소리이기에 시끄럽습니다.



.. 자유가 시인더러 / 시인이 자유더러 / 멱살을 잡고 무슨 말인가를 하지만 / 전혀 알아들을 수 없네. / 우리 같은 촌놈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네 ..  (자유가 시인더러)



  네가 나한테 들려주는 말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 사르르 녹는다면, 네 말은 나한테 노래와 같습니다. 내가 너한테 들려주는 말이 네 마음에 스며들지 못하고 사르르 녹지도 못한다면, 그저 담벼락에 부딪혀서 떨어지는 돌멩이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따스한 사랑을 품고 스며드는 말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로 듣는 말은 노래가 됩니다. 이와 달리, 아무런 사랑을 담지 않은 말은 이야기도 노래도 되지 못합니다. 다투는 말이 되면서 시끄럽구나 하고 느끼는 소리로 머뭅니다.


  자유가 시인더러 무슨 말을 했을까요. 시인은 자유더러 무슨 소리를 했을까요. 둘은 서로 노래를 불렀을까요. 둘은 서로 노래하는 마음이었을까요.



.. 파란 하늘 아래 / 잠자리 날고 // 잠자리 날개 아래 / 파란 연못 잠들었다 ..  (대낮)



  시를 읽는 사람은 노래를 사랑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시를 사랑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노래가 저절로 흐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시가 저절로 솟아납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읊는 말에는 언제나 가락이 실려서 노랫말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노랫말처럼 된다기보다 그예 노래가 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어른한테서 배우는 노래가 아니라, 놀면서 스스로 기쁘고 신나서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 누구나 시인입니다. 왜냐하면, ‘어른’이라는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서 신나게 놀고 기쁘게 노래하면서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새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작가라는 이름이 있기에 시인이 아닙니다. 삶을 노래하기에 시인입니다. 시집을 내거나 잡지에 작품을 싣기에 시인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빙그레 웃고 노래하는 가슴으로 하루를 열기에 시인입니다.



.. 타고난 시골솜씨 한철 만나셨다 / 산1일번지에 오셔서 / 이불 빨고 양말 빨고 콧수건 빨고 / 김치, 동치미, 고추장, 청국장 담그신다. / 양념보다 맛있는 사투리로 담그신다 ..  (어머님 곁에서)



  조태일 님이 그동안 부른 노래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시선집 《나는 노래가 되었다》로 새롭게 태어난 조태일 님 노래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이제 조태일 님은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있습니다. 조태일 님은 더는 삶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태일 님이 부른 삶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삶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삶노래를 부르고, 우리 아이들이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삶노래를 부릅니다. 앞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아이를 낳아 저희 아이들한테 새롭게 삶노래를 물려주겠지요.


  노래가 흐르고 흐릅니다. 생각과 꿈이 흐르고 흐릅니다. 사랑과 삶이 흐르고 거듭 흐릅니다. 언제나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춤추는 노래가 흐릅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시를 쓰고, 삶을 꿈꾸기에 시를 읽습니다. 삶을 아름다이 가꾸면서 시를 쓰고, 삶을 사랑스레 보듬으면서 시를 읽습니다. 4348.4.1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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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4-18 10:13   좋아요 0 | URL
조태일 님의 <國土>를 아주 오래전에 읽은 시간이 떠오르네요.

이번에 한대수 님께서 새로 내신,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의 들어가는 말에서

- 내 노래를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느낀 것이 ˝바로 이 책이 나의 자서전이구나˝였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거나 기타를 안고 작곡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일상생활을 하면서,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들이 멜로디가 된다. 67년을 살았으니 얼마나 많았겠는가?

범죄와 끔직한 테러로 인간이 이성을 잃어가는 이때에, 우리는 평화의 노래를 ˝천천히. 꾸준히. 끝까지˝ 불러야 한다. - 에 공감이 되었어요.

오늘도 함께살기님의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5-04-18 11:14   좋아요 0 | URL
한대수 님이 새로 책을 내셨군요.
그 책에도 사랑스러운 노래 같은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조태일 님 `시선집`을 읽다 보니
따로따로 `시집 한 권`씩 읽는 흐름이
한결 낫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꼈는데,
그래도 아무튼 이렇게
시선집으로 새롭게 읽으면서도
아련하면서 오래되고, 또 곧게 흐르는 노래 같은 숨결을
다시금 느껴 보았어요.

고맙습니다~
 
매듭을 묶으며 사계절 그림책
테드 랜드 그림, 빌 마틴 주니어 외 글, 김장성 옮김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8



바람은 언제나 반가운 동무

― 매듭을 묶으며

 빌 마틴 주니어·존 아캠볼트 글

 테드 랜드 그림

 김장성 옮김

 사계절 펴냄, 2003.5.21.



  유채꽃 곁에 서면 노란 꽃송이가 샛노란 꽃내음을 베풀어 줍니다. 바람이 흐르지 않아도 꽃내음이 퍼지고, 바람이 흐르면 꽃내음이 훅 끼칩니다. ‘유채꽃바람’이라고 할 만한 ‘사월바람’이 부는 날에 빨래를 마당에 널면, 옷가지마다 유채꽃내음이 듬뿍 뱁니다. 나는 유채꽃내음이 밴 옷을 입으면서 흐뭇합니다. 아이들도 유채꽃내음이 가득 밴 옷을 입으면서 신나게 뛰놉니다.



.. “또 얘기해 주세요, 할아버지. 제가 어떤 아이인지.” “여러 번 얘기했잖니, 아가야. 너도 다 외웠겠다.” “그래도 할아버지 얘길 듣는 게 좋아요.” ..  (2쪽)




  삶을 이루는 기쁜 숨결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남이 나한테 선물처럼 기쁜 숨결을 베풀 수 있을 테지만, 누구보다 내가 스스로 나한테 기쁜 숨결을 베풉니다. 유채꽃바람을 쐬려면, 마당 한쪽에서 유채꽃이 자랄 수 있도록 하면 되고, 매화꽃바람을 쐬려면, 마당 한쪽에 매화나무를 심으면 돼요. 벚꽃바람을 쐬려면 벚나무를 심으면 되고, 모과꽃바람을 쐬려면 모과나무를 심으면 됩니다.


  아파트에 산다면 나무를 심기 어려울 텐데, 아파트에서는 꽃그릇을 놓으면 돼요. 그리고, 머잖아 층층이 선 시멘트집이 아닌, 마당이 있고 텃밭이 고운 넉넉한 집을 누리려는 꿈을 키울 수 있어요. 언제나 바람을 이웃으로 삼아서 지내는 삶자리를 꿈꿀 만하고, 아침저녁으로 햇볕을 곱게 쬐는 보금자리를 꿈꿀 만합니다.



.. “네 엄마가 말했지. ‘상처 입은 바람 소릴 들었어요. 오늘 밤에 사내아이가 태어날 거래요.’” ..  (5쪽)




  빌 마틴 주니어 님과 존 아캠볼트 님이 글을 빚고, 테드 랜드 님이 그림을 빚은 《매듭을 묶으며》(사계절,2003)를 읽습니다. 북중미에서 터를 잡고 사는 아이와 할아버지(인디언)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푸근하게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할아버지한테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다시 듣고 거듭 듣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고 새삼스레 들려주며 사랑스레 들려줍니다.


  아이는 늘 들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또 듣고 싶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이와 얽힌 이야기이고,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겪은 이야기이며, 아이를 둘러싼 어버이와 어른이 아이를 아끼고 돌보는 숨결이 깃든 이야기입니다.



..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 말고도 보는 방법은 많이 있어요.” “그렇고 말고. 넌 어둠을 뚫고 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 넌 할 수 있단다. 너에겐 푸른 말의 힘이 있으니까.” … “무지개는 제 눈이에요. 무지개는 저를 양떼한테 데려다 줘요. 양떼가 어딜 가든지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땐 언제나 저를 집으로 데려다 주지요.” ..  (17, 23쪽)




  우리가 나누는 말은 어느 모로 본다면 두 가지로 나눌 만합니다. 하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잔소리입니다. 이야기가 되는 말은 노래입니다. 잔소리가 되는 말은 시끄럽습니다. 이야기가 되는 노래는 사랑스러우면서 기쁩니다. 잔소리가 되어 시끄러우면 괴롭거나 싫습니다.


  아마 누군가한테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재미있을 수 있어요. 또, 누군가한테는 텔레비전 연속극이야말로 끔찍하도록 시끄러울 수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어느 대중노래가 몹시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한테는 어느 대중노래가 몹시 싫을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어떤 말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아들이지만, 어떤 말은 싫거나 성가시거나 귀찮을까요? 왜 우리는 어떤 말은 듣고 다시 들을수록 새로운데, 어떤 말은 한두 번 듣기만 해도 지겹다고 여기거나 잔소리로만 느끼면서 귀를 닫으려 할까요?



.. “무서웠어요. 할아버지가 저를 부르기 전까지는. 그때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지요?” “두려워 말아라, 아가야! 네 어둠을 믿어야 한다. 바람처럼 달려라!” … “그렇지만 저는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어요.” “그래, 하지만 넌 바람처럼 달렸어.” “바람은 제 친구예요. 바람은 제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제 얼굴을 향해 웃어요.”  ..  (24, 28쪽)




  그림책 《매듭을 묶으며》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아주 포근하면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아버지뿐 아니라,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이한테 언제나 상냥하면서 따사로운 목소리와 눈길과 손짓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겠지요. 이리하여, 아이는 늘 포근하면서 부드러울 뿐 아니라, 상냥하면서 따사로운 숨결을 물려받았을 테고, 이러한 숨결을 푸른 들과 파란 하늘처럼 받아들이리라 느껴요. 그리고, 아이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들판에 조그마한 집을 마련한 뒤 언제나 들바람을 마시면서 삽니다. 들꽃을 보고 들풀을 먹으며 들판에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가 “바람은 내 동무!” 하고 외칩니다. 아이는 바람을 쐬면서 웃습니다. 바람을 쐬면서 노래할 테고, 바람과 함께 춤을 출 테지요.


  그림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꿈을 짓는 하루를 누릴 때에 웃고 노래할 만합니다. 나부터 언제나 춤추고 노래하는 상냥하고 따사로운 어버이로 살면서, 이 땅에서 흐르는 바람을 쐴 적에 “이야, 반가운 동무가 찾아왔네!” 하고 외쳐야겠습니다. 4348.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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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그내면과외면
마크드 프라이에 / 행림출판사 / 1990년 8월
평점 :
품절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2



너희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곳

― 한국KOREA, 그 내면과 외면

 마크 드 프라이에 사진

 행림출판 펴냄, 1990.8.30.



  제가 나고 자란 곳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굳이 다른 곳은 돌아보지 않고 제 삶자리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좀 멀리 돌아다니면서 다른 고장을 사진으로 찍을 만할 텐데, 굳이 다른 고장으로 마실을 다니지 않으면서 제 고장에서만 즐겁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사진으로 안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온갖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기쁘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찍고 저곳에서도 찍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나고 자란 곳만큼은 찾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고, 제가 나고 자란 곳에 찾아가더라도 이곳을 사진으로 안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고 자란’ 제 고장을 사진으로 찍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마음을 붙이면서 지내는’ 고장을 사진으로 찍기에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어느 고장을 사진으로 찍든, 우리는 저마다 ‘마음에 사랑스레 스며드는 고장’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서 ‘이 고장 모습’을 누구보다 잘 찍거나 훌륭하게 찍지 않습니다. 이 고장에서 나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은 사람이기에, 어쩌다 한두 번 찾아와서 며칠이나 몇 달이나 몇 해쯤 머무르는 눈길이나 몸짓으로는 ‘이 고장 모습’을 제대로 못 찍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 하늘에는 계절이 있고, 땅에는 실체가 있다. 모든 물질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듯, 모든 작업에는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



  “난희와 교에게. 여기가 바로 너희들이 태어난 땅이란다.”로 첫머리를 여는 사진책 《한국KOREA, 그 내면과 외면》(행림출판,1990)을 읽습니다. 벨기에사람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이 빚은 사진책입니다. 벨기에라는 나라에서는 손꼽히는 사진가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안 알려진 사진가입니다. 사진책 《한국》을 선보인 적이 있으나, 이 사진책은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춘 지 제법 되었습니다.


  사진책 《한국》 첫머리는 “여기가 바로 너희들이 태어난 땅이란다”로 엽니다. 무슨 말일까요? 어떤 뜻일까요? 아마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은 한국 아이를 둘 받아들여서 이녁 아이로 돌보았다는 뜻이겠지요. 한국에서 벨기에로 가야 하던 아이들한테 ‘너희가 태어난 곳’이 어떤 삶자리인지 보여주려는 마음으로 빚은 책이라는 말일 테지요.


  문득 ‘내 고장’을 떠올립니다. ‘내 고장’은 어디일까요? 내가 태어난 곳이면 내 고장이 될까요? 오늘 내가 사는 곳이 내 고장이라 할까요?


  ‘이 글을 쓰는 내’가 태어난 고장은 인천입니다. 광역시도 직할시도 아닌 ‘경기도 인천’일 적에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랐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을 늘 맡으면서 국민학교를 다녔고, 연탄공장 탄가루를 함께 마시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루 내내 철길 소리를 들었고, 큰 짐차 소리를 들었습니다. 동무들과 골목에서 뛰놀고 바닷가나 둠벙을 찾아다니며 낚시를 하기도 했지만, 내 어릴 적 고장인 인천은 매캐한 바람과 조용한 골목 두 가지입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이 고장을 떠났고, 사진을 처음 배우고 나서도 다른 고장(서울)에서 사진을 찍을 뿐, ‘태어난 고장’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생각은 조금도 안 했습니다. 서른세 살 무렵에 ‘태어난 고장’으로 돌아가서 ‘사진책도서관’이라는 곳을 연 뒤에 비로소 ‘내 고장’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태어난 고장’을 사진으로 찍지 않고, ‘사는 고장’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을 둘러보면서 그 고유한 균형미를 창출해 낸 정교한 감성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사진책 《한국》을 보면 한국 사진가로서는 거의 안 찍는다 싶은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흐릅니다. 절집 사진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한국 사진가가 절집에 찾아가서 흔히 찍는 모습을 사진책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절집으로 들어서는 문간에 붙은 백열등을 한국 사진가가 찍을 일은 없겠지요. 절집에서 빨래를 하는 스님 모습을 한국 사진가가 찍는 일도 매우 드뭅니다. 꽃무늬 문살을 찍은 사진에서도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은 ‘문살 무늬’보다 ‘문살에 드리운 그림자’가 한결 도드라진 사진을 보여줍니다.


  여느 시골집 수수한 마당과 살림살이를 보여줍니다. 시골에 세우는 기도원 같은 예배당 사진도 여러 장 나옵니다. 그런데 기도원인지 예배당인지 헷갈릴 만한 시설을 찍은 사진도, 이 시설 둘레에 우거진 숲과 파란 하늘을 함께 보여줍니다. 둘레에서 한들거리는 들꽃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사진책 《한국》은 ‘겉과 속(내면과 외면)’을 보여준다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겉과 속’이라기보다는 그저 ‘삶’입니다. 여기에서도 보고 저기에서도 보는 삶입니다. 너한테서도 보고 나한테서도 보는 삶이에요. 한국이라는 나라에 두 발을 디디고 지내는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삶입니다.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삶입니다. 올림픽을 둘러싸고 정부에서 자랑하려고 하는 높다란 건물이 서는 한국이 아니고, 포항제철이라든지 커다란 공단을 내세우려고 하는 한국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밥상에 나란히 둘러앉아서 어우러지는 수수한 삶이 흐르는 한국입니다. 골목과 고샅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는 한국이고, 저잣거리에서 부산한 이야기가 있는 한국입니다.






.. 한국사람에게나 서양사람에게나 공통적으로 통하는 말이 있다. “사진은 천 마디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



  밖에서 보아야 안을 더 잘 보지 않습니다. 안에만 있기에 안을 못 보지 않습니다. 밖에 있든 안에 있든,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난 고장’을 사진으로 찍든, ‘사는 고장’을 사진으로 찍든, 스스로 ‘이 고장’을 사랑하려는 마음일 때에는, 이 고장을 찍은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흐름’을 보거나 느끼려 하는 마음이라면, 어느 고장을 가더라도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모습만 마주하면서 이런 사진을 찍습니다.


  티벳이나 부탄이나 스리랑카에 가야 거룩한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거룩한 숨결로 거듭나면서 이웃을 거룩한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다면, 바로 이곳에서 내 옆집에 있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를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거룩한 숨결이 드러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처럼 지구별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마크 드 프라이에 님처럼 ‘한국에서 벨기에로 날아와야 했던 두 아이’를 헤아리면서 두 아이한테 선물하려는 마음으로 온사랑을 담아서 아주 작은 삶자리를 뚜벅뚜벅 걸어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삶을 찍기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찍기에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관광지에 간다면 관광사진을 찍습니다. 여행지에 간다면 여행사진을 찍어요. 명상을 하거나 종교가 흐르는 곳에서는 명상사진이나 종교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갈래를 지으면 사진이 좀 재미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일구는 삶을 바라보고,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재미있고 웃음꽃이 가득한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이 됩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다릅니다. 철마다 다릅니다. 아니, 철마다 새롭습니다. 한곳에 머물며 사진을 찍어도 철철이 다른 사진을 빚습니다. 한 사람을 바라보며 찍어도 ‘삶이 흐르고 나이가 흐르며 이야기가 흐르는’ 숨결을 얼마든지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딱 하루만 머무르더라도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에 흐르는 바람과 기운이 다르니까, 아니, 새로우니까, 다름을 느끼는 마음이라면 ‘다른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고, 새로움을 느끼는 가슴이라면 ‘새로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한 시간쯤 골목을 걸어도 사진책 한 권이 태어날 수 있을 만큼 ‘다르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다르거나 새로운 마음이 된다면 말이지요.





.. 한편으로는 한국사람과 함께 살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몸소 체험해 볼 수도 있고, 종교나 철학을 탐구해 볼 수도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음식을 먹어 보거나, 그저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사진책 《한국》을 이녁 두 아이한테 선물하는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은 한국사람한테도 선물을 베풉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살거나, 한국으로 와서 사는 사람 모두한테 싱그러운 선물을 나누어 주어요. 어떤 선물인가 하면, 우리 누구나 바로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하든 저마다 기쁘며 신나게 ‘삶’을 누릴 테니까, 이 삶을 고맙게 여기고 사랑스레 마주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이야기잔치를 열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는 선물입니다.


  그저 여기에 있기만 하면서도 흐뭇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어서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내가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맛집을 찾아나서도 재미있고, 골목을 거닐어도 재미있으며, 시골마실을 다녀도 재미있습니다. 이불빨래를 사진으로 찍어도 재미있고, 냇가이든 수영장이든 물놀이를 즐기는 ‘우리 집 아이’를 사진으로 찍어도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에서는 바로 ‘우리 스스로’ 고운 님이 됩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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