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을 묶으며 사계절 그림책
테드 랜드 그림, 빌 마틴 주니어 외 글, 김장성 옮김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8



바람은 언제나 반가운 동무

― 매듭을 묶으며

 빌 마틴 주니어·존 아캠볼트 글

 테드 랜드 그림

 김장성 옮김

 사계절 펴냄, 2003.5.21.



  유채꽃 곁에 서면 노란 꽃송이가 샛노란 꽃내음을 베풀어 줍니다. 바람이 흐르지 않아도 꽃내음이 퍼지고, 바람이 흐르면 꽃내음이 훅 끼칩니다. ‘유채꽃바람’이라고 할 만한 ‘사월바람’이 부는 날에 빨래를 마당에 널면, 옷가지마다 유채꽃내음이 듬뿍 뱁니다. 나는 유채꽃내음이 밴 옷을 입으면서 흐뭇합니다. 아이들도 유채꽃내음이 가득 밴 옷을 입으면서 신나게 뛰놉니다.



.. “또 얘기해 주세요, 할아버지. 제가 어떤 아이인지.” “여러 번 얘기했잖니, 아가야. 너도 다 외웠겠다.” “그래도 할아버지 얘길 듣는 게 좋아요.” ..  (2쪽)




  삶을 이루는 기쁜 숨결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남이 나한테 선물처럼 기쁜 숨결을 베풀 수 있을 테지만, 누구보다 내가 스스로 나한테 기쁜 숨결을 베풉니다. 유채꽃바람을 쐬려면, 마당 한쪽에서 유채꽃이 자랄 수 있도록 하면 되고, 매화꽃바람을 쐬려면, 마당 한쪽에 매화나무를 심으면 돼요. 벚꽃바람을 쐬려면 벚나무를 심으면 되고, 모과꽃바람을 쐬려면 모과나무를 심으면 됩니다.


  아파트에 산다면 나무를 심기 어려울 텐데, 아파트에서는 꽃그릇을 놓으면 돼요. 그리고, 머잖아 층층이 선 시멘트집이 아닌, 마당이 있고 텃밭이 고운 넉넉한 집을 누리려는 꿈을 키울 수 있어요. 언제나 바람을 이웃으로 삼아서 지내는 삶자리를 꿈꿀 만하고, 아침저녁으로 햇볕을 곱게 쬐는 보금자리를 꿈꿀 만합니다.



.. “네 엄마가 말했지. ‘상처 입은 바람 소릴 들었어요. 오늘 밤에 사내아이가 태어날 거래요.’” ..  (5쪽)




  빌 마틴 주니어 님과 존 아캠볼트 님이 글을 빚고, 테드 랜드 님이 그림을 빚은 《매듭을 묶으며》(사계절,2003)를 읽습니다. 북중미에서 터를 잡고 사는 아이와 할아버지(인디언)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푸근하게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할아버지한테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다시 듣고 거듭 듣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고 새삼스레 들려주며 사랑스레 들려줍니다.


  아이는 늘 들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또 듣고 싶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이와 얽힌 이야기이고,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겪은 이야기이며, 아이를 둘러싼 어버이와 어른이 아이를 아끼고 돌보는 숨결이 깃든 이야기입니다.



..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 말고도 보는 방법은 많이 있어요.” “그렇고 말고. 넌 어둠을 뚫고 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 넌 할 수 있단다. 너에겐 푸른 말의 힘이 있으니까.” … “무지개는 제 눈이에요. 무지개는 저를 양떼한테 데려다 줘요. 양떼가 어딜 가든지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땐 언제나 저를 집으로 데려다 주지요.” ..  (17, 23쪽)




  우리가 나누는 말은 어느 모로 본다면 두 가지로 나눌 만합니다. 하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잔소리입니다. 이야기가 되는 말은 노래입니다. 잔소리가 되는 말은 시끄럽습니다. 이야기가 되는 노래는 사랑스러우면서 기쁩니다. 잔소리가 되어 시끄러우면 괴롭거나 싫습니다.


  아마 누군가한테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재미있을 수 있어요. 또, 누군가한테는 텔레비전 연속극이야말로 끔찍하도록 시끄러울 수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어느 대중노래가 몹시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한테는 어느 대중노래가 몹시 싫을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어떤 말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아들이지만, 어떤 말은 싫거나 성가시거나 귀찮을까요? 왜 우리는 어떤 말은 듣고 다시 들을수록 새로운데, 어떤 말은 한두 번 듣기만 해도 지겹다고 여기거나 잔소리로만 느끼면서 귀를 닫으려 할까요?



.. “무서웠어요. 할아버지가 저를 부르기 전까지는. 그때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지요?” “두려워 말아라, 아가야! 네 어둠을 믿어야 한다. 바람처럼 달려라!” … “그렇지만 저는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어요.” “그래, 하지만 넌 바람처럼 달렸어.” “바람은 제 친구예요. 바람은 제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제 얼굴을 향해 웃어요.”  ..  (24, 28쪽)




  그림책 《매듭을 묶으며》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아주 포근하면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아버지뿐 아니라,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이한테 언제나 상냥하면서 따사로운 목소리와 눈길과 손짓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겠지요. 이리하여, 아이는 늘 포근하면서 부드러울 뿐 아니라, 상냥하면서 따사로운 숨결을 물려받았을 테고, 이러한 숨결을 푸른 들과 파란 하늘처럼 받아들이리라 느껴요. 그리고, 아이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들판에 조그마한 집을 마련한 뒤 언제나 들바람을 마시면서 삽니다. 들꽃을 보고 들풀을 먹으며 들판에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가 “바람은 내 동무!” 하고 외칩니다. 아이는 바람을 쐬면서 웃습니다. 바람을 쐬면서 노래할 테고, 바람과 함께 춤을 출 테지요.


  그림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꿈을 짓는 하루를 누릴 때에 웃고 노래할 만합니다. 나부터 언제나 춤추고 노래하는 상냥하고 따사로운 어버이로 살면서, 이 땅에서 흐르는 바람을 쐴 적에 “이야, 반가운 동무가 찾아왔네!” 하고 외쳐야겠습니다. 4348.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그내면과외면
마크드 프라이에 / 행림출판사 / 1990년 8월
평점 :
품절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2



너희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곳

― 한국KOREA, 그 내면과 외면

 마크 드 프라이에 사진

 행림출판 펴냄, 1990.8.30.



  제가 나고 자란 곳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굳이 다른 곳은 돌아보지 않고 제 삶자리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좀 멀리 돌아다니면서 다른 고장을 사진으로 찍을 만할 텐데, 굳이 다른 고장으로 마실을 다니지 않으면서 제 고장에서만 즐겁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사진으로 안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온갖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기쁘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찍고 저곳에서도 찍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나고 자란 곳만큼은 찾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고, 제가 나고 자란 곳에 찾아가더라도 이곳을 사진으로 안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고 자란’ 제 고장을 사진으로 찍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마음을 붙이면서 지내는’ 고장을 사진으로 찍기에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어느 고장을 사진으로 찍든, 우리는 저마다 ‘마음에 사랑스레 스며드는 고장’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서 ‘이 고장 모습’을 누구보다 잘 찍거나 훌륭하게 찍지 않습니다. 이 고장에서 나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은 사람이기에, 어쩌다 한두 번 찾아와서 며칠이나 몇 달이나 몇 해쯤 머무르는 눈길이나 몸짓으로는 ‘이 고장 모습’을 제대로 못 찍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 하늘에는 계절이 있고, 땅에는 실체가 있다. 모든 물질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듯, 모든 작업에는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



  “난희와 교에게. 여기가 바로 너희들이 태어난 땅이란다.”로 첫머리를 여는 사진책 《한국KOREA, 그 내면과 외면》(행림출판,1990)을 읽습니다. 벨기에사람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이 빚은 사진책입니다. 벨기에라는 나라에서는 손꼽히는 사진가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안 알려진 사진가입니다. 사진책 《한국》을 선보인 적이 있으나, 이 사진책은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춘 지 제법 되었습니다.


  사진책 《한국》 첫머리는 “여기가 바로 너희들이 태어난 땅이란다”로 엽니다. 무슨 말일까요? 어떤 뜻일까요? 아마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은 한국 아이를 둘 받아들여서 이녁 아이로 돌보았다는 뜻이겠지요. 한국에서 벨기에로 가야 하던 아이들한테 ‘너희가 태어난 곳’이 어떤 삶자리인지 보여주려는 마음으로 빚은 책이라는 말일 테지요.


  문득 ‘내 고장’을 떠올립니다. ‘내 고장’은 어디일까요? 내가 태어난 곳이면 내 고장이 될까요? 오늘 내가 사는 곳이 내 고장이라 할까요?


  ‘이 글을 쓰는 내’가 태어난 고장은 인천입니다. 광역시도 직할시도 아닌 ‘경기도 인천’일 적에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랐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을 늘 맡으면서 국민학교를 다녔고, 연탄공장 탄가루를 함께 마시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루 내내 철길 소리를 들었고, 큰 짐차 소리를 들었습니다. 동무들과 골목에서 뛰놀고 바닷가나 둠벙을 찾아다니며 낚시를 하기도 했지만, 내 어릴 적 고장인 인천은 매캐한 바람과 조용한 골목 두 가지입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이 고장을 떠났고, 사진을 처음 배우고 나서도 다른 고장(서울)에서 사진을 찍을 뿐, ‘태어난 고장’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생각은 조금도 안 했습니다. 서른세 살 무렵에 ‘태어난 고장’으로 돌아가서 ‘사진책도서관’이라는 곳을 연 뒤에 비로소 ‘내 고장’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태어난 고장’을 사진으로 찍지 않고, ‘사는 고장’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을 둘러보면서 그 고유한 균형미를 창출해 낸 정교한 감성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사진책 《한국》을 보면 한국 사진가로서는 거의 안 찍는다 싶은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흐릅니다. 절집 사진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한국 사진가가 절집에 찾아가서 흔히 찍는 모습을 사진책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절집으로 들어서는 문간에 붙은 백열등을 한국 사진가가 찍을 일은 없겠지요. 절집에서 빨래를 하는 스님 모습을 한국 사진가가 찍는 일도 매우 드뭅니다. 꽃무늬 문살을 찍은 사진에서도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은 ‘문살 무늬’보다 ‘문살에 드리운 그림자’가 한결 도드라진 사진을 보여줍니다.


  여느 시골집 수수한 마당과 살림살이를 보여줍니다. 시골에 세우는 기도원 같은 예배당 사진도 여러 장 나옵니다. 그런데 기도원인지 예배당인지 헷갈릴 만한 시설을 찍은 사진도, 이 시설 둘레에 우거진 숲과 파란 하늘을 함께 보여줍니다. 둘레에서 한들거리는 들꽃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사진책 《한국》은 ‘겉과 속(내면과 외면)’을 보여준다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겉과 속’이라기보다는 그저 ‘삶’입니다. 여기에서도 보고 저기에서도 보는 삶입니다. 너한테서도 보고 나한테서도 보는 삶이에요. 한국이라는 나라에 두 발을 디디고 지내는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삶입니다.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삶입니다. 올림픽을 둘러싸고 정부에서 자랑하려고 하는 높다란 건물이 서는 한국이 아니고, 포항제철이라든지 커다란 공단을 내세우려고 하는 한국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밥상에 나란히 둘러앉아서 어우러지는 수수한 삶이 흐르는 한국입니다. 골목과 고샅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는 한국이고, 저잣거리에서 부산한 이야기가 있는 한국입니다.






.. 한국사람에게나 서양사람에게나 공통적으로 통하는 말이 있다. “사진은 천 마디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



  밖에서 보아야 안을 더 잘 보지 않습니다. 안에만 있기에 안을 못 보지 않습니다. 밖에 있든 안에 있든,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난 고장’을 사진으로 찍든, ‘사는 고장’을 사진으로 찍든, 스스로 ‘이 고장’을 사랑하려는 마음일 때에는, 이 고장을 찍은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흐름’을 보거나 느끼려 하는 마음이라면, 어느 고장을 가더라도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모습만 마주하면서 이런 사진을 찍습니다.


  티벳이나 부탄이나 스리랑카에 가야 거룩한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거룩한 숨결로 거듭나면서 이웃을 거룩한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다면, 바로 이곳에서 내 옆집에 있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를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거룩한 숨결이 드러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처럼 지구별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마크 드 프라이에 님처럼 ‘한국에서 벨기에로 날아와야 했던 두 아이’를 헤아리면서 두 아이한테 선물하려는 마음으로 온사랑을 담아서 아주 작은 삶자리를 뚜벅뚜벅 걸어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삶을 찍기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찍기에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관광지에 간다면 관광사진을 찍습니다. 여행지에 간다면 여행사진을 찍어요. 명상을 하거나 종교가 흐르는 곳에서는 명상사진이나 종교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갈래를 지으면 사진이 좀 재미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일구는 삶을 바라보고,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재미있고 웃음꽃이 가득한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이 됩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다릅니다. 철마다 다릅니다. 아니, 철마다 새롭습니다. 한곳에 머물며 사진을 찍어도 철철이 다른 사진을 빚습니다. 한 사람을 바라보며 찍어도 ‘삶이 흐르고 나이가 흐르며 이야기가 흐르는’ 숨결을 얼마든지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딱 하루만 머무르더라도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에 흐르는 바람과 기운이 다르니까, 아니, 새로우니까, 다름을 느끼는 마음이라면 ‘다른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고, 새로움을 느끼는 가슴이라면 ‘새로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한 시간쯤 골목을 걸어도 사진책 한 권이 태어날 수 있을 만큼 ‘다르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다르거나 새로운 마음이 된다면 말이지요.





.. 한편으로는 한국사람과 함께 살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몸소 체험해 볼 수도 있고, 종교나 철학을 탐구해 볼 수도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음식을 먹어 보거나, 그저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사진책 《한국》을 이녁 두 아이한테 선물하는 마크 드 프라이에 님은 한국사람한테도 선물을 베풉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살거나, 한국으로 와서 사는 사람 모두한테 싱그러운 선물을 나누어 주어요. 어떤 선물인가 하면, 우리 누구나 바로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하든 저마다 기쁘며 신나게 ‘삶’을 누릴 테니까, 이 삶을 고맙게 여기고 사랑스레 마주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이야기잔치를 열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는 선물입니다.


  그저 여기에 있기만 하면서도 흐뭇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어서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내가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맛집을 찾아나서도 재미있고, 골목을 거닐어도 재미있으며, 시골마실을 다녀도 재미있습니다. 이불빨래를 사진으로 찍어도 재미있고, 냇가이든 수영장이든 물놀이를 즐기는 ‘우리 집 아이’를 사진으로 찍어도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에서는 바로 ‘우리 스스로’ 고운 님이 됩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이어 게임 1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94



거짓말과 참말 사이에서

― 라이어 게임 1

 카이타니 시노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6.10.25.



  참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대로 말을 하면 참말이 됩니다. 거짓말은 어렵습니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감추거나 가리거나 고치거나 바꾸어야 비로소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참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부드럽게 흐릅니다. 내 마음에서 샘솟는 대로 하는 말이니까 참말입니다. 이와 달리 거짓말은 안 부드럽습니다. 거짓말을 하자면 이리 꾸미거나 저리 꾸미기 마련입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그대로 할 수 없는 말이 거짓말이니, 이리 막고 저리 고쳐서 꺼내는 거짓말은 그야말로 거칠거나 엉성하기 마련입니다.



- ‘지금 나의 작은 소망, 그것은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부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는 절대 이 말을 할 수 없다.’ (13∼14쪽)

- ‘무서웠다. 날마다 불안하고, 불안해서, 1억 엔을 숨긴 서랍 앞에서 한시도 떠날 수가 없었다. 밤잠도 못 자고, 나는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21쪽)




  거짓말은 자꾸 커집니다. 처음 거짓말을 할 적에는 살짝 고비를 넘기려는 마음이었을는지 모르나,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고비는 다시 찾아오고, 고비를 다시 넘기려고 하다 보니 더 크게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은 자꾸자꾸 커지고 고비도 자꾸자꾸 커져요. 이리하여 나중에는 어찌저찌 손을 쓸 길이 없다고 할 만해요.


  참말도 자꾸 커져요. 처음에 참말을 할 적이든 나중에 참말을 할 적이든 다 똑같습니다. 자꾸자꾸 커지는 참말은 커지면 커질수록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로 퍼지면서, 우리 마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노래가 흐르도록 북돋웁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참말을 하는 사람은 참말이 북돋우는 기운을 받아서 마음이 가볍습니다. 서로서로 ‘커지는 것’은 똑같은데, 거짓말은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고, 참말은 우리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 “왜 그랬어?” “아키야마 씨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 비정상이야. 보통 사람은, 눈치를 챈다고. 두세 시간쯤 지나면, 속았다는 걸.” “네? 뭐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미련스러우니 속고 다니는 거지!” (61쪽)

- “알 게 뭐야! 네 아버지가 어떻게 됐든, 내가 알 바 아니야! 나는 남의 일 같은 건 일절 관심 없으니까!” (72쪽)





  카이타니 시노부 님이 빚은 만화책 《라이어 게임》(학산문화사,2006) 첫째 권을 읽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 만화책을 바탕으로 영화와 연속극이 나왔습니다. 만화는 퍽 오랫동안 나오다가 갑작스레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고들 말이 많습니다. 아무튼, 《라이어 게임》은 거짓말처럼(?) 첫 권이 나와서 거짓말처럼(?)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은 너무나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참말이 아닌 거짓말을 하면서 저마다 삶을 새롭게 이끌려고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하는 만화이니까, 언제나 거짓말을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하는 거짓말을 생각해야 하고, 저 사람이 하는 거짓말도 생각해야 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 다르게 하는 거짓말을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그만, 이 만화를 그리는 분도 이녁 삶에서 거짓말만 가득 넘치고야 말 수 있습니다.



- ‘울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뭣보다, 믿음직한 사람이 내 편을 들어 주니까.’ (85쪽)

- “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시면 안 돼요? 이 작전의 의도를. 아키야마 씨는 작전이라고 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하는 말이라곤 그냥 선생님의 집을 감시하는 것뿐. 솔직히 저는,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무의미, 하다? 사기꾼이 즐겨쓰는 수단 중 하나는, ‘상대를 이상한 심리 상태로 만들어서 속인다’라는 거야.” (96∼97쪽)




  거짓말은 삶을 살리지 못합니다. 거짓말로는 삶을 살릴 수 없습니다. 봄인데 봄이 아닌 겨울이라고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겨울인데 겨울이 아닌 봄이라고 거짓말을 어떻게 될까요. 풀씨도 나무씨도 모두 죽겠지요. 풀씨와 나무씨가 모두 죽으면,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모두 죽고 말아요. 철에 맞추어 제대로 씨가 새로 트지 못하면, 지구별은 그저 시커먼 죽음더미가 될 뿐입니다.


  ‘착한 거짓말’이란 없습니다. 착하면 착한 말일 뿐이고, 거짓이면 거짓인 말일 뿐입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말일 뿐이요, 거칠면 거친 말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름답게 들린다고 해서 늘 사랑스러운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거칠게 들린다고 해서 안 사랑스러운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삶은 겉모습이나 겉치레가 아닙니다. 삶은 언제나 속사랑이요, 속마음이에요. 그러니까, “라이어 게임”에 휩쓸리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습니다.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한두 번쯤 옆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요.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10억 원이나 100억 원을 손에 거머쥐면 기쁠까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큰돈을 거머쥔다면, 다른 사람도 나한테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큰돈을 가로챌 수 있어요.



- “후지사와 선생님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글쎄, 1억 엔의 빚을 지게 됐으니, 평생을 바쳐 갚든가, 워낙 수상한 단체가 벌인 일이니 뒷세계로 팔려 가든가, 어찌 됐든 앞으로 그 작자의 인생은, 암흑이지.” (169쪽)




  거짓말은 거짓말로 갑니다. 참말은 참말로 갑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갑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갑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오늘 내가 두 손으로 고운 씨앗을 심으면 고운 풀이 돋고 고운 열매를 얻습니다. 어떤 씨앗을 심으려 하는지는 바로 내가 생각합니다. 네가 시켜서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네가 이끄는 대로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내 뜻에 따라 내 꿈을 심습니다.


  한꺼번에 큰돈을 손에 쥐려고 하는 생각이라면, 큰돈을 손에 거머쥐는 만큼 내 삶에서 잃는 것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큰돈을 얻으면서 사랑과 꿈을 잃는다면 삶이 즐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큰돈을 얻느라 이웃과 동무를 잃는다면 삶이 기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보살피는 따사로운 삶이 없이 돈만 두 손에 쥘 적에는 웃거나 노래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삶과 사랑과 웃음입니다. 4348.4.1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5-04-1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이어게임..잘봤죠.
뭐..저런게 있어..했는데 만화가 원작인..드라마는 이중 구조를 가져가던데.
아무튼..선생님의 말로는 슬펐어요.

숲노래 2015-04-17 11:38   좋아요 1 | URL
연속극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원작만화가
끝을 어영부영 갑자기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장소] 2015-04-1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선생님스토리가 끝이 아니고.몇개의 게임이 더 진행되요.
진짜 라이어게임을 하는 그 뒷 세계랑..아마도 시즌2나올듯..
 
오장원의 가을 문학과지성 시인선 70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10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92



시와 싸움터

― 五丈原의 가을

 복거일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8.4.15.



  봄이 무르익으면서 동이 일찍 틉니다. 이제 새벽 다섯 시 반 무렵이면 어슴푸레한 빛이 드러나고, 곧 따스한 기운이 퍼지면서 붉은 해님이 떠오릅니다. 다시 아침입니다. 어제에도 찾아온 아침이고 오늘도 찾아오는 아침입니다. 이 아침은 모레에도 새롭게 찾아오겠지요.


  아침볕을 쬐고 아침바람을 마시려고 마당에 서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새들이 푸르륵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릅니다. 처마에서 우듬지로 옮기고, 마당에 선 나무에 있다가 지붕으로 옮기며, 지붕에 있다가 지붕 너머 전깃줄로 옮깁니다.



.. 떨어지는 것은 으레 / 맨 아래 단추다. / 원래 공평하지 못한 게 삶이다. / 마음에 걸리면서도 며칠을 미적거리다, 눈 감고 찬물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 바늘을 찾는다 ..  (하숙 2)



  감나무를 바라봅니다. 새봄을 맞이한 감나무는 매화꽃이 모두 지고 매화잎이 푸르게 돋아서 짙게 퍼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움이 틉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늑장을 부리는 나무라 할 테지만, 감나무보다 무화과나무는 잎이 더 늦게 돋습니다. 감나무는 새봄 사월에 이르러 비로소 조그맣게 잎사귀를 내밀면서 보들보들한 옅노랑빛을 보여주는데, 무화과나무는 아직 겨울눈이 터지지 않습니다. 대추나무를 보면 대추나무는 훨씬 늦어요.


  가만히 나무를 바라봅니다. 지난해에도 보고 지지난해에도 보던 나무를 바라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니 해마다 똑같은 모습을 본다고 할 텐데, 해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은 그야말로 새롭게, 해마다 새로 돋는 잎도 그야말로 새롭습니다. 봄이 새롭고, 하루가 새로우며, 꽃과 잎과 나무가 모두 새롭습니다.



.. 겨울엔 / 겨울 마음으로 설 일이다 ..  (눈사람)



  나뭇줄기를 어루만집니다. 어느 나무이든 지난해와 대면 줄기가 굵고 가지가 넓게 퍼졌습니다. 나무는 해마다 차츰차츰 자랍니다. 봄이 저물고 여름이 되면,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늘도 한결 넓어지겠지요.


  나무를 어루만지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무처럼 아이들도 해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지난해에 입던 옷이 올해에 안 맞기 일쑤이고, 봄에 입던 옷이 가을에 안 맞기 마련이에요.


  그러면, 어른은 얼마나 자랄까요. 어른도 몸이 자랄까요. 아니면, 어른은 뱃살이 늘까요. 아니면, 어른은 늘 똑같은 몸으로 나이만 먹을까요. 아마, 어른도 아이처럼 해마다 새로운 철이 찾아온다고 느끼면서 기쁘게 웃으면 한결 튼튼하면서 씩씩한 몸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 퇴직금 봉투를 품에 넣어도, / 서른여덟 나이를 덮기엔 / 옷이 얇아라 ..  (사표 2)



  복거일 님이 쓴 시집 《五丈原의 가을》(문학과지성사,1988)을 읽습니다. 복거일 님이 처음 내놓은 시집이라고 합니다. 한글이 아닌 한자로 ‘五丈原’이라 적는 복거일 님은 서울대 상대를 마치고 은행과 기업체와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1983년에 사표를 내고 ‘오직 글만 쓰겠노라’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회사원을 그만두고 글쟁이가 되는 삶을 놓고 복거일 님은 ‘자유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복거일 님이 쓰는 글에 ‘자유’나 ‘자유인’이나 ‘자유주의’ 같은 낱말이 자주 나옵니다.


  ‘자유(自由)’는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모습을 ‘자유’라고 한답니다. 그러니까, 글만 쓰며 살든 회사원으로 살든, 또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든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든, 우리 스스로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내 뜻을 살리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입니다. 글만 쓰고 살더라도 ‘얽매이는 것’이 있다면 자유가 아닙니다.



.. 빈 책상들을 치우고 / 새 자리를 잡으면, / 삼차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던 入社同期도 / 추억이다 ..  (감원)



  시집 《오장원의 가을》은 자유를 노래한 글일까 궁금합니다. 사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온 이야기가 흐르는 시, 회사에서 겪은 여러 이야기가 흐르는 시, 추상과 비유가 흐르는 시, 오직 글만 쓰겠노라 외치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 이러한 시는 ‘어떤 자유’일까 궁금합니다.


  한자말로는 ‘자유’인데, 한국말로는 ‘홀가분’입니다. 한겨레도 예부터 ‘얽매이지 않으면서 제 마음대로 일구는 삶’을 가리키는 낱말이 있고, 이러한 삶을 ‘홀가분’으로 나타냅니다.


  ‘홀가분’은 “홀로 가벼움”입니다. 홀로 날갯짓을 하며 날듯이, 홀로 삶을 일굴 수 있는 모습이고, 홀로 삶을 일구기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 스스로 옥죄는 짐덩이 같은 무게가 없는 모습이기에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참다이 홀가분한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내가 홀가분하니 너를 홀가분하게 맞이합니다. 내가 홀가분하기에, 이 아름다운 홀가분함으로 너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홀가분하니까, 다 함께 홀가분하게 꿈을 꾸고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 “우리 고향에 있는 얘긴데, 능금을 먹으려면, 삼대가 걸린답니다. 능금나물 심는 사람, 가꾸는 사람, 능금을 따 먹는 사람.” 내 얼굴을 흘긋 살피고서, 박형은 말을 이었다. “지금 능금나물 심어서 따 먹잔 얘긴데…….” 말끝을 흐리면서, 그는 밖을 내다보았다. 나도 따라 내다보았다 ..  (능금나무)



  나는 우리 시골집에 나무를 심습니다. 내가 이듬해나 몇 해 뒤에 따먹을 열매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심는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 나무를 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돌보면서 저희 아이를 새롭게 낳아서 새롭게 물려줄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똑같이 ‘한 그루’이지만, 나부터 새롭게 마주하고,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마주하며,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도 새롭게 마주할 나무입니다. 같은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 모두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나부터 홀가분하고 너도 함께 홀가분한 노래라 한다면, 바로 나무를 심는 노래이리라 느낍니다. ‘나는 자유야!’ 하고 외치는 노래가 아니라, ‘나는 사랑이야!’ 하고 노래하면서,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사랑이야!’ 하고 외치는 노래일 때에 비로소 참다이 홀가분하면서 아름답게 퍼질 수 있는 씨앗 한 톨이라고 느낍니다.


  복거일 님은 요즈음도 시를 쓸까요? 부디 조용히 시를 쓸 수 있는 넋이 되기를 빕니다. 싸움터에서 조용히 벗어나서, 아름다이 꿈을 꾸는 삶노래꾼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5-04-16 10:22   좋아요 0 | URL
아..지난 시간 88년 이면 호돌이 굴렁쇠.
늦은 4학년.먼지나는 신작로.무궁화꺽꽂이.
또..내 기억폴더에..뭐가있더라....

숲노래 2015-04-16 11:22   좋아요 1 | URL
88년에 전두환이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다른 독재자가 들어서면서
나라는 그대로 얼어붙고
어디에서나 최루탄 냄새가 자욱했지요...

[그장소] 2015-04-16 11:50   좋아요 0 | URL
그들은 그저 바톤 터치만 할 뿐 이란걸..새삼스럽게...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
를 읽다..웃다 울다..그랬어요.
복거일시인의 시선 번호가88년이면 몇번이 붙는지 몰라도 황시인은 32번 째 문지 시선 입니다.
개정도 있고 재판인쇄도 있으나..그건 그렇다 치고 83년9월
자서를 시작으로 열죠.만
웃어요.그저..시간의 흐름을 막론하고 어쩌면 지금 현대를 그대로 읊나..
싶어서. 이런 시간차 공격을 뭐라 표현하는가 싶어서..서늘해지죠.

숲노래 2015-04-16 17:23   좋아요 1 | URL
먼 옛날도 없이
오늘도 없이
늘 흐르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이 시집을 새삼스레 읽는 동안
`1980년대 첫무렵에 회사에 사표를 쓰고 당차게 나온` 그분이
오늘은 어떤 일을 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았습니다.

[그장소] 2015-04-16 17:45   좋아요 0 | URL
아..모든 글을 업으로 사는 이들은..시대를 타고 난다 아니 산다..던가?요.. 그것이 저항이든 순응이든...
 
거짓말은 왜 자꾸 커질까? 괜찮아, 괜찮아 6
헬레나 그랄리즈 글, 수지 브리젤 그림 / 두레아이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6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 거짓말은 왜 자꾸 커질까?

 헬레나 그랄리즈 글

 수지 브리젤 그림

 한결 옮김

 두레아이들 펴냄, 2015.4.20.



  아이를 다그치는 일은 참으로 나쁩니다. 그러나, 나쁜 줄 알면서 다그치는 어른이 많습니다. 아이가 어떤 일을 잘못했다 싶으면 먼저 꾸짖거나 나무라고 맙니다.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아이는 잘못인 줄 알까요? 아이는 아직 모릅니다. 모르니 어떤 일을 ‘잘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못했다’고 해서 아이를 나무라거나 꾸짖으면 아이는 주눅이 듭니다. 주눅이 드는 아이는 ‘잘 못한’ 일을 차츰 말하지 못합니다. ‘잘 못한’ 일을 한 번 두 번 말하지 못하며 지내다 보면, 어느새 ‘잘못 한’ 일까지 말을 못합니다. 이러면서 한 번 두 번 거짓말이 나오거나 ‘숨기는 말’이 나오고, 아이는 차츰차츰 ‘참말’하고 멀어집니다.



.. 그때 톰은 주머니에 기타 교습비가 있다는 게 생각났어요. 누군가 자기보다 먼저 이 장난감 자동차를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 톰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했어요 ..  (6쪽)




  잘 못했으면 잘 못했을 뿐입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을 뿐입니다. 잘 하면 잘 할 뿐입니다. 잘 하건 잘 못하건 모두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이웃과 동무가 어떤 일을 잘 못할 적에도, 그저 ‘잘 못할’ 뿐이에요.


  다리가 느려서 달리기를 ‘잘 못하는’ 어른이 많습니다. 자전거를 ‘잘 못 타는’ 어른도 많습니다. 돈을 잘 못 번다든지, 어떤 일을 솜씨있게 잘 못하는 어른도 있겠지요. 아무렴, 다 좋습니다. 다 우리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어떤 일을 ‘잘못 했으’면, 이를 잘 바로잡거나 잘 추스르면 됩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 곁에는 ‘잘못을 다독여 줄’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과 동무로 지내는 까닭을 헤아려 보셔요. 우리는 이웃과 동무를 다그칠 마음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건 이웃이 잘못을 저지르건 똑같아요. 그래, 한 번 두 번 열 번 백 번 잘못을 저지를 수 있어요. 너그러이 봐주어야 합니다.



.. 톰은 일단 아무 버스나 올라탔어요. 그러고는 자신의 거짓말을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 “톰!” 톰의 등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불렀어요. “네가 기타를 치는지 전혀 몰랐어.” 이웃에 사는 니카였어요 ..  (14쪽)




  헬레나 그랄리즈 님이 글을 쓰고, 수지 브리젤 님이 그림을 그린 《거짓말은 왜 자꾸 커질까?》(두레아이들,2015)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거짓말은 자꾸 커진다고 합니다. 참말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커지기만 합니다. 그러면, 참말도 커질까요? 참말도 하고 또 하면 자꾸 커질까요?


  네, 그렇지요. 참말도 커집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커집니다.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커집니다. 수수한 말이든 대단한 말이든 커집니다. 말은 사람들 입을 거쳐서 이리 흐르고 저리 흐르면서 커집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에 빚을 다 갚는다고 하는 한편, 말 한 마디로 큰빚을 진다고 해요.



.. 톰은 가슴속에 있는 돌덩이를 없앨 수가 없었어요. 그것은 날마다 점점 더 커져만 갔어요 ..  (18쪽)




  네가 나한테 들려주는 따사로운 말은 언제나 나한테 힘이 됩니다. 따사로운 말을 듣고 다시 듣고 새로 들으면서 내 마음은 아름답게 자랍니다. 내가 너한테 들려주는 넉넉한 말은 늘 너한테 힘이 되어요. 넉넉한 말을 듣고 또 듣고 거듭 들으면서 네 마음은 넉넉하게 자랍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을 말은 ‘사랑’이 깃든 말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눌 말은 ‘사랑’이 가득한 말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사랑이 깃든 말을 주고받아야 서로서로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말을 나누어야 다 함께 사랑으로 기뻐요.


  밉거나 거친 말을 해 보셔요. 밉거나 거친 말을 듣는 사람뿐 아니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한테도 미움과 거친 숨결이 자랍니다. 곱거나 포근한 말을 해 보셔요. 곱거나 포근한 말을 듣는 사람뿐 아니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한테도 곱거나 포근한 숨결이 자라요.



..“좋아, 앞으로 매주 화요일에 삼촌이 기타를 가르쳐 줄게. 그리고 네 아빠의 쉰 번째 생일에 우리 다시 생일 축가를 연주하는 거야. 어때?” 그제야 톰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어요. “고마워요, 삼촌.” ..  (24쪽)




  어린이책 《거짓말은 왜 자꾸 커질까?》를 보면, 주인공 아이는 끝내 ‘참말’을 털어놓습니다. 거짓말 때문에 오래도록 스스로 짓누르던 시커먼 돌덩이를 치웁니다. 그런데, 이때에, 주인공 아이를 둘러싼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무 말을 못 해요. 그저 멍하니 아이를 바라봅니다. 너무 놀랐기 때문일까요? 오랫동안 거짓말 때문에 스스로 괴로웠던 아이가 비로소 돌덩이를 스스로 치웠는데, 왜 아무 말을 못 할까요?


  가만히 보면, 어버이라고 해서 모두 슬기롭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지만, 아이 마음을 제대로 못 읽는 어버이도 있어요. 바로 이때, 작은아버지(삼촌)가 슬기롭게 나섭니다. 작은아버지가 아이한테 ‘거짓말을 내려놓고 참말로 일어선’ 모습을 기쁘게 맞이해 줍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아이를 북돋웁니다. 이제 거짓말을 내려놓았으니, 앞으로 참말로 아름답게 피어나자고 어깨를 토닥입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참말을 털어놓을 적에 어버이나 어른이 ‘참말을 안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거나 두려워 하니까 자꾸 거짓말을 합니다.


  아이가 그동안 거짓말을 했어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참말을 하면 다 됩니다. 이제부터 참말을 하면 반가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지난날은 아이한테 아름다운 발자국, 그러니까 ‘고마운 경험’으로 여기면 돼요. 아이는 앞으로 걸어갈 길이 멉니다. 아이는 앞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이제부터 씩씩하게 일어서서 새롭게 삶을 가꾸면 돼요.


  아이가 참말을 늘 할 수 있도록 어버이와 어른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아이가 걱정없이 참말로 노래할 수 있도록 어버이와 어른은 마음을 활짝 열고 웃어야 합니다. 언제나 따스한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