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만
 ― 대통령 후보가 쏟아내는 말을 새겨듣는 귀를



 책을 보면서 참으로 여러 가지를 느끼지만, 참말로 여러 가지를 못 느끼기도 합니다. 백 번 듣느니 한 번 가는 편이 낫다는 금강산 구경이듯, 백 번 읽고 생각하느니 한 번 해 보느니만 못한 책읽기입니다. 그래서 책 한 권 읽지 않았어도 올바르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머리에는 지식을 집어넣지 않았으나 몸으로는 ‘그것이 지식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즐겁게 늘 하며 살거든요.

 책이나 글을 쓰는 사람을 그이가 써낸 책과 글로만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만나 보고 겪어 보고 부대끼고 일을 함께 해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나든 겪든 부대끼든 일을 함께 하든 그 사람이 지닌 온갖 모습 가운데 몇 가지만 느끼거나 알 수 있지, 모든 모습을 다 알거나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남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예부터 내려오지요.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남 이야기’는 그 사람이 지닌 온갖 모습 가운데 몇 줌 안 되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걸림돌이 있지요. 우리는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사람을 모두 다 만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나라밖 사람도 몹시 많지요. 이런 사람들은 어쩌지요? 그네들이 남겼다고 하는 책 한두 권, 또는 글 몇 조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임을 헤아려야 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모진 고문을 받고 억눌려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픈 말을 다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이가 고문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먹고살 형편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릅니다. 추운 곳에서 벌벌 떨면서 겨우 글 한 줄 썼는지, 배불리 먹고 놀면서 대충 몇 글자 휘갈겼는지, 남한테 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듯 써제겼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몸소 만나고 부대끼는 가운데 그 사람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을 몸소 만나고 부대끼면서 그이를 더 잘 안다고 한다면, 그이를 만나 보지 않고도 잘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될 수 있어야 참다운 앎이라고 봅니다. 만나 보고 나서 ‘아, 이랬구나’ 한다면, 그이를 만나지 않고 글이나 책만 보았을 때에는 ‘잘못 알거나 비뚤어지게 생각하거나 어떤 굽거나 치우친 생각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는 이야기지요. 더구나 ‘글이나 책을 보니 참 형편없는 사람이군’ 하고 생각해 버리면서, 그 사람을 몸소 만나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그 사람’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자기를 엉뚱하게 바라보고, 잘못 아는 한편, 비틀어진 이야기로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한테 시달릴 수 있습니다. 또, 우리 현실을 보면 이런 잘못되고 비틀리고 엉뚱한 말이 대단히 많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차분하게, 느긋하게 숨 좀 돌려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즐기려고 태어났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며 즐거움을 손수 맛보고, 이웃하는 이들한테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나누면서 서로 오순도순 살아가려고 태어났습니다. 책 한 권 읽든 글 한 줄 읽든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리면서 자신이 참답게 살아갈 길을 헤아리면 참으로 좋겠지요. 자기가 오늘 손에 쥐고 읽는 책을 펴낸 사람 됨됨이가 이러하느냐 저러하느냐를 따지기 앞서, 그이가 온삶을 바쳐서 일구어 낸 책 하나에 어떤 알맹이가 담겼는지, 어떤 줄거리가 살아숨쉬는지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고요.

 그러니 우리들은 꽤나 힘써야 합니다. 마음을 찬찬히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눈길을 넓히고 눈높이를 알맞게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비록 몸소 만날 수 없이 멀리 떨어진 사람이라 해도,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글을 곰곰히 되새기고 곱씹으면서 읽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 글이든, 자기가 느끼기에 얻을 만하고 배울 만한 구석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무개가 속임수를 쓰는지 뒤에 덮어놓거나 가리거나 숨기는 무엇이 있는가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만나도 참모습을 모르게 되기 일쑤입니다. 수많은 책을 냈어도 자기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고요. 어떤 속셈과 이익에 따라서 글장난을 치는지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을 쓰건 책을 내건, 그이들 삶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뭇사람뿐 아니라 그이 스스로한테도 더없이 아름답고 즐거운지도 헤아려 볼 수 있으면 한결 좋습니다.

 글만 읽어서, 책만 보면서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해서 ‘제대로 알려고 애쓰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느슨하게 풀어 놓아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애쓰며 살잖아요. 제대로 받아들이기 벅찰 수 있기에 늘 곁에 놓고 되씹고 곱씹잖아요. 몸소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깊이 살피며 힘껏 돌아보아야 좋습니다. 글로만 보든 몸소 얼굴 마주하며 만나게 되든, 어느 때나 한결같이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기 잣대를 세우고, 둘레에서 퍼뜨리는 질낮은 허튼소리나 헛소문에 휘둘리지 않아야 좋습니다. 귀는 열되 파리나 모기가 꾀어서는 안 되며, 입을 열되 가래나 침을 마구 뱉아서는 안 됩니다.

 새 대통령 뽑는 날을 한 달쯤 앞두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숱한 말이 쏟아지고 있고, 숱한 사건과 소식이 넘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말잔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든지, 아예 귀를 틀어막든지, 자기가 보고픈 모습만 보려고 한다면, 새 대통령이 뽑히고 나서 또 다섯 해 동안 지긋지긋하게 이맛살 찌푸리며 살아야 할 뿐 아니라, 갖은 나쁜법이 되살아난다든지 국가보안법이 다시 또아리를 튼다든지 한미자유무역협정보다 끔찍한 일들이 터져나온다든지 하는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휘둘릴 수 있습니다. (4338.11.12.흙/4340.11.29.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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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입시험 치른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을까?
 : 친구들아, 이제 ‘진짜’ 책을 쥐어야지



 〈1〉 시험을 마친 친구들한테


 아침부터 날이 따뜻합니다. 지금은 가을이 아닙니다. 겨울도 아닙니다. 미친날씨 탓에 뒤죽박죽이 된 철없는 아침입니다. 그러면 이 아침은 왜 철없는 아침이 되었을까요. 그냥 날씨가 미쳤기 때문일까요?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 때문일까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면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날까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린 친구들이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치르는 날은 모질게 추웠습니다. 열 해쯤 앞서는 더 추웠고, 스무 해쯤 앞서는 훨씬 추웠고,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는 대단히 추웠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올 11월은 안 춥습니다. 안 추울 뿐 아니라 낮에는 덥기까지 해서 모기와 파리가 잠들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시멘트로 지은 학교 건물에 아침부터 늦은밤까지 갇혀 지내면서 이런 미친날씨를 느껴 보았나요? 요즈음 햇볕이 어떠한지, 요즈음 하늘은 파란빛 없이 뿌옇기만 한 빛깔인지, 도시고 시골이고 백 미터 앞도 또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먼지띠가 드리웠는지, 겨울이 코앞인데 안 추운지, 여름이 한창인데 비만 퍼붓는지를 살갗으로 느껴 보았나요? 산성비와 산성이 아닌 비가 어떻게 다른지 맞아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열두 시. 친구들은 한창 연필이나 볼펜을 놀리며 문제풀이를 하고 있겠군요. 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모든 친구들이 대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은 한편, 꼭 대학교에 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대학교에 가서 학문을 깊이 갈고닦을 수 있지만, 학문을 갈고닦는 길은 반드시 대학교만이 아닙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앞으로 자기가 다니고 싶은 회사에서 쓰일 만한 실무를 익힐 수 있으나, 대학교를 안 가고 곧바로 ‘고졸’ 또는 ‘중졸’ 또는 ‘학력없음’인 채로 세상을 부대끼며 일손을 하나하나 익힐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친구들이 수학능력시험을 다 치르고 난 뒤(또는 시험을 안 치르고 보낸 뒤), 어떻게 하루를 마감할까 궁금합니다. 시험을 치르고 난 이튿날부터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까 궁금합니다. 여태껏 하고 싶었어도 못한 꿈을 펼치려는지, 여태껏 보고 싶어도 못 본 영화를 보려는지, 여태껏 사귀고 싶었어도 못 만나고 지낸 이성친구(또는 동성친구)를 만나려는지, 여태껏 다니고 싶었어도 먼나들이(여행)를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풀고자 신나게 길을 나서려는지.

 벌써부터 술맛을 들인 친구도 있을 테고, 술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지내는 친구도 있겠지요. 어떠하든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저, 술 한 잔 사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며 알딸딸한 채로, 마음에만 담고 있던 온갖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일 하루쯤, 또는 이틀쯤 학교를 빠지고 고향땅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여행을 떠나 보면,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개근상을 반드시 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면 헬멧은 꼭 쓰셔요. 우리들 푸른 친구들 소중한 목숨은 하나이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우리 나라를 한 바퀴 돈 다음 학교로 돌아가도 괜찮겠지요. 자기 몸뚱이로만, 자기 두 다리로만 페달질을 하면서 홀로 노래도 부르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옴팡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밟으며 우리네 이웃사람들 삶터와 발자취를 마음껏 느껴 보아도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해는 1993년입니다. 그때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치러졌고, 저는 11월 6일과 한 달쯤 뒤에 다시 한 번 해서, 두 번 치렀습니다. 덕분에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쉴 수 없었고,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떠날 수도 없었어요. 다만, 제 살가운 너나들이네 집에 놀러갔더니, 동무 아버님께서 손수 고기를 구우시면서, “너희들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술을 마셔도 돼!” 하면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뿅 따서 내리 일곱 잔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잔을 마시면, 당신이 구운 고기를 젓가락으로 손수 집어서 입에 넣어 주시고. 이렇게 거푸 일곱 차례.

 이튿날 학교에 갔더니 열두 시 즈음 끝내더군요. 뭐, 이 나라 고등학교는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치르기’가 끝나면, 우리 친구들한테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요. 친구들 다니는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친구들이 초등학교 여섯 해, 중학교 세 해, 그리고 고등학교 세 해, 모두 열두 해 동안 배운 교과서란 무엇입니까? 한낱 대학입학시험 치르는 연장일 뿐 아닌가요. 대입시험을 치르면 찢어버려도 되는 종이뭉치, 대입시험을 치르면 헌책방에 내다 팔아도 되는 종이덩이, 대입시험을 치르면 신발로 마구마구 밟거나 종이비행기 접어서 던져도 되는 종이꾸러미…….

 아무튼, 제 고3 때를 더듬어 보면, 두 번째 수능이 끝난 뒤부터는 아주 자유로워졌고, 학교도 일찍 끝냈기에, 저는 곧바로 제 고향인 인천에 있는 모든 책방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대한서림, 동인서관, 시민서점, 동아서림, 한겨레문고, ……, 그리고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들, 부평에 있던 헌책방 광장서점 들 …….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여태까지는 ‘진짜 책이라 할 만한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책이 아닌데, 교과서 아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담은 책, 우리 이야기를 엮어낸 책, 우리 생각과 뜻과 마음을 이끌어 주거나 북돋워 주는 책, 진짜 책을 만나고 싶어서 새책방이고 헌책방이고 낮 열두 시부터 저녁 여덟아홉 시까지 박혀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종로서적에도 먼 나들이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 데는 얼마나 책이 많은가 싶어서.


 〈2〉 교과서는 가짜 책


 우리 푸른 친구들한테 여덟 가지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덟 가지 책은 제 나름대로 참 괜찮다고 느낀 책들인데, 친구들한테도 괜찮다고 느껴질는지, 그저 그렇네 하고 다가갈는지, 지루하거나 따분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책, 친구들 마음을 움직이거나 울리는 책은, 어찌 되었든 친구들 두 손으로 고르거나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제 두 손으로 이 여덟 가지 책을 찾아냈고, 읽어냈고, 가슴으로 녹여냈습니다.

 아무쪼록,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채울 꺼리는 친구들 스스로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그 꺼리는 책이 될 수 있고, 자전거가 될 수 있으며, 살가운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붓이, 인터넷이, 술이, 오토바이가, 또는 호미나 낫이 될 수 있겠지요. 종이접기가, 장구와 북이, 피리와 기타가 될 수 있고요.


 (ㄱ) 두 친구 이야기
 : 안케 드브리스 씀, 박정화 옮김 / 양철북, 2005.11.18, 8500원



.. “엄마가?” “놀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낮에 별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자식을 팼다. 그 애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가끔 여기까지 들렸지.” “그…… 그런데…….” 미하엘은 말을 더듬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어요?”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법이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저 양반 때문에 못했다! 그 불쌍한 꼬마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도 우리 일이 아니라고 영감이 한사코 말리잖아!”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우리 일이 아니잖아. 이 세상은 골칫거리로 가득하다고. 그걸 다 당신이 해결할 수는 없잖아. 아무도 당신더러 참견하라고 부탁하지도 않았고.” 미하엘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유디트 등의 멍과 부은 자리만 생각났다. 엄마가 그랬다니! 왜 유디트는 나한테 숨겼을까? 거짓말까지 하면서. 난 유디트의 남자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말인가? ..  〈257쪽〉


 (ㄴ)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더글러스 러미스 씀, 김종철ㆍ이반 옮김 / 녹색평론사, 2002.12.10, 7000원



.. 매년 몇 십만의 사람들이 살인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큰 살인학교가 있어서, 미국에서 몇 백만 명의―주로 남자들― 사람들이 그 살인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살인학교라는 것은 물론 군대입니다. 나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만, 군대의 훈련 중에서 이런저런 기술도 가르치지만, 그 이외 군대의 훈련에는 큰 목표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저항이 있어서, 그리 간단히는 되지 않습니다. 적이라고 해도 실제로 인간의 몸을 겨냥해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그 저항을 없애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죽이지 못하는 인간을 죽이는 인간으로 훈련시킵니다 ..  〈42쪽〉


 (ㄷ)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 아룬다티 로이 씀, 정병선 옮김 / 시울, 2005.9.29, 8500원



.. 일단 시민사회가 자유를 넘겨주고 나면 투쟁 없이는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는 것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의 자유가 비록 변변치 못하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결코 하사한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를 얻어낸 것은 우리의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때때로 자유를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자유는 위축되고 맙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유를 수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초라하고 빈약한 것만 남게 될 것입니다 ..  〈24∼25쪽〉


 (ㄹ) 백성백작―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
 : 후루노 다카오 씀, 홍순명 옮김 / 그물코, 2006.7.22, 8000원



.. 국산 밀이라고 상표가 붙은 밀가루가 이따금 팔리지만, 내가 알기로는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밀가루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수입 농산물이 아무리 있어도, 사람은 진정한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은혜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78∼79쪽, 165쪽〉


 (ㅁ) 블루백
 : 팀 윈튼 씀, 이동욱 옮김 / 눌와, 2000.2.25, 7000원



.. 아벨은 어머니의 편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는, 자기가 그곳에서 어머니를 돕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밤이면 뜬눈으로 어머니와 롱보트 만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놓든 어머니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완강하고 또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지치게 하고 어머니의 시간을 허비하며 어머니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사람들은 그 땅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롱보트 만이 아벨의 어머니에게는 한 생애이자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땅이 어머니에게 남편 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날마다 그 박하나무 아래서 어머니는 아벨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서 있곤 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해가 지고 달이 가도록 변함없이 그럴 수 있는지 아벨은 당혹해 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벨은 그 모든 것들―바다, 관목숲, 집,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외로움으로부터 지켜준 것은, 그리하여 어머니를 굳건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 사랑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양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벨은 그 어머니의 사랑 덕택에, 줄곧 숨죽이는 생활을 해야 했던 도회지에서의 무미건조한 학교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얼굴에 바다의 푸르름을 적시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100∼101쪽〉


 (ㅂ) 희망은 있다
 : 페트라 켈리 씀, 이수영 옮김 / 달팽이, 2004.11.15, 8000원



.. 유럽평화운동을 하는 일원으로서 서유럽에 사는 우리는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막기 위해 시민불복종과 적극적인 비폭력운동을 통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저지른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정에 대한 마지막 대응수단으로 우리는 불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행동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법적 권리와 도덕적 권리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복종할 시민의 의무(!)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비폭력 시민저항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이 배치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고, 또 미래 세대의 생존기회가 줄어들 것이 뻔합니다. 시민불복종운동이 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소련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뿐 아니라, “미국이 이곳에 머물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 점차 급박해지는 이 질문에도 비폭력행동으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반대합니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  〈69쪽〉


 (ㅅ) 깜둥바가지 아줌마
 : 권정생 씀 / 우리교육, 1998.11.20, 6000원


.. “나도 뚝배기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들이 우리를 무척 업신여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왜 그 애들을 미워하지 않는 거예요? 꾸짖지 않는 거예요?” 뚝배기는 너무 서러워 목이 꺽꺽 막히었습니다. 깜둥바가지는 여전히 상냥스레 타일렀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나쁜 짓 하는 것을 꾸짖는 게 무슨 잘못이에요?” “그게 아니란다.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만약 내가 무섭게 그 애들을 꾸짖고 욕하면 되레 우리를 더 미워할 게 아니니? 전보다 더 나쁜 짓을 하면서 대들는지도 모를 거야. 그래, 이 좁은 부엌 안에서 매일 싸움만 하고 서로 미워한다면 얼마나 불안스럽겠니?” 깜둥바가지는 잠시 말을 그쳤습니다. 된장 뚝배기는 가만히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참아야 하지 않겠니? 쬐그만 할 때는 누구라도 다 장난꾸러기인 거야. 그걸 탓하지 말고 사랑해 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된단다. 그러니까 그냥 꾹 참고 지내면 앞으로는 사기 접시도, 오목탕끼도, 수저들도 모두 뉘우치고 우리랑 친할 거야.” 된장 뚝배기는 어느새 눈물을 말끔 씻고 있었습니다 ..  〈40∼41쪽〉


 (ㅇ) 우리 말 살려쓰기 (셋)
 : 이오덕 씀 / 아리랑나라, 2005.8.25, 15000원



.. 초등학교란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보통학교, 소학교, 어린이학교, 그밖에도 몇 가지 의견이 나왔던 모양인데, 왜 온 나라 사람들의 교육을 하게 되는 학교 이름을 붙이는데 일반 백성들의 생각을 물어 보지 않고, 행정관청에서 마음대로 붙이나? 몇 천 명인가를 상대로 알아보기는 한 모양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 내 눈에는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이름을 바라나 하는 것이 훤하다. 그러니 이런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을 어떤 사람으로 하나 하는 데 따라서 얼마든지 바라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이학교’가 가장 좋다. 그러나 어린이학교로 되리라고는 바랄 수가 없었기에 내 생각을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어린이학교가 되려면 아이들 생각을 들어 봐야 하는데, 일반 교사보다 교감, 교장의 생각을 더 잘 듣는 지금의 행정당국이 아이들 생각에 귀를 기울여 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그 정도로 될 줄 알았지. 우리가 하는 정도가 그저 이런 정도밖에 안 되니까. 초등학교가 되더라도 좋으니 부디 교육이나 좀 달라졌으면, 하고 바랄밖에 없다. 국민학교, 아, 그 몸소리나는 국민, 국민, 국민총동원, 총후국민, 비국민, 황국민, 국민정신작흥주간, 대일본국민체조, 국민독본, 국민복, …… 이제 그 왜정 때의 그 지긋지긋한 국민이란 말에서 벗어나게 되려나 ..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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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얼마가 흘렀든지 다시 돌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기에 헌책방 헌책입니다. 겉이 낡고 더러워졌어도, 판권에 적힌 책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치러야 해도 살 만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때때로 500원이나 1000원밖에 안 하는 헐값에 살 수도 있는 책이 뜻하지 않게 놀라움과 반가움을 선사하기도 하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사람은 늘 새로 나고 죽지만, 책에 담긴 이야기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행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로 유행이 되는 밑거름을 건네주는 헌책방 헌책이라고도 하겠네요.


 그러나 모든 헌책방 헌책이 볼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책은 버려지지요. 뭐, 백 해나 이백 해가 지나면 모든 헌책은 옛책 구실이나 값어치를 하긴 하지만, 더구나 돈이 많고 헛간도 널찍해서 간수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조그마한 자리에서 살림을 꾸리는 헌책방으로서는, 책방 임자부터 ‘다시 볼 만한(팔 만한) 값어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곤 합니다. 그래, 다시 팔 만한 값어치가 없는 헌책은 거리낌없이 버려요. 버려지지요. 버려야 해요.


 우리 나라 방송풀그림은 어떨까요. 며칠 지난 풀그림은, 한두 달 지난 풀그림은, 한두 해 지난 풀그림은, 대여섯 해 지난 풀그림은, 열 해쯤 지난 풀그림은,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지난 풀그림은, 백 해쯤 지난 풀그림은 어떠하지요? 볼 만할까요? 볼 만한 재미나 보람이 있을까요? 다만, 방송풀그림도 아주 오래되거나 묵었다면, 자료로 값어치 구실을 합니다. 어떤 풀그림도 그렇습니다. 어떤 책이라도 무척 오래되었으면 지난날 자료가 되니까요.


 제가 방송풀그림을 그다지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분들 가운데 몇 달 지난 ‘재방송’을 재미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몇 해 묵은 ‘재방송’은 더더구나. 열 해쯤 지난 연속극이나 익살이야기는 어떻지요? 1991년 프로야구 어느 경기 하나를 세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수 있을까요? 1994년 어느 연속극을 한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수 있을까요? 인기를 많이 얻었다는 한국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면,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참 재미없네.’ 하는 느낌이 퍽 짙게 듭니다. 〈친구〉라는 영화를,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다섯 해나 열 해쯤 뒤에도 텔레비전에서 틀어 줄까요? 틀어 줄 때 볼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 나라 방송풀그림 눈높이는 ‘재방송으로 보여줄 값어치나 재미나 보람’이 없는 테두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재방송으로 보여줘도 한 해도 못 넘길 만한’ 테두리에 머물고 있다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즐겨 찾아서 보는 책들 가운데에도 ‘한 해 지난 뒤’에도 읽고픈 생각이 안 드는 책이 참 많습니다. 지금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지만, 그 책들이 얼마나 그 좋은 자리에 버틸 수 있을까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책들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머무를까요? 열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를 오늘날 읽을 만할까요? 스무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나 서른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는 어떻지요? 요즘 베스트셀러를 열 해 뒤에도, 아니 다섯 해 뒤에도 읽을 만하다고 느낄까요? 그래서 신문에서 ‘아무개 책방 이주 베스트셀러 목록’을 붙이는 일은 참 쓸데없는 일인 한편, 폭력이라고 느껴요. 정작 우리한테 쓸모가 있고 재미도 있으며 즐거움과 보람이 있는 책목록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니까요.

 
 책이든 방송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다른 공연이든 문화든 예술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어느 무엇이든, 지금 곧바로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즐길 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밥을 좋아합니다. 밥 한 그릇은 지금 곧바로도 제 배를 넉넉히 채워 주고 기운을 북돋워 줍니다. 새힘을 선사해요. 이 밥은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여태껏 얼마나 많은 밥그릇을 비웠을는지. 몇 만 그릇도 넘겠지요. 앞으로도 10만 그릇, 또는 20만 그릇, 또는 30만 그릇을 비울지 모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그릇이요, 지금 이때에도 낮밥이나 저녁밥으로 제게 기쁨을 선사할 밥그릇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도, 영화도, 방송풀그림도, 사진도,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곧바로 즐거울 수 있는 한편, 앞으로도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책을, 영화를, 방송풀그림을, 사진을, 그림을 좋아합니다. 지금 곧바로만 재미있는 책은 싫습니다. 앞으로 좋아질 책도 썩 달갑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책, 꾸준한 방송풀그림, 곧게 이어가는 사진이 좋습니다. (4339.10.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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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들을 읽힐 수 있을까?

이런 책들은... 아직 너무 힘들라나... -_-;;




 중학교 아이들은 읽을 책이 없다


 중학교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동화책이나 동시집은 초등학교 아이들이나 보는 책 같아서 가까이하지 않을 테지요. 소설이나 시는 아직 어려울 테니 읽기 힘들고요. 문학이 아닌 책은 중학교 다닐 만한 나이인 아이들 눈높이에 너무 높거나 낮아서 알맞지 않기 일쑤입니다. 예술이나 문화나 사회나 과학이나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말 그대로 사이에 낀, 가운데에 찡겨 버린 어중간한 나이처럼 되고 마는 아이들, 열넷부터 열여섯입니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를 다닌다는 아이들한테는 소년소설도 즐기도록 하고 동시도 즐기도록 해 주어야 알맞습니다. 어린이문학이란 어린이만 즐기는 문학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즐길 수 있는 문학’이건만, 이렇게 생각하거나 느끼는 분이 참 드뭅니다. 어쨌든, 동시도 그저 어린아이들만 읽는 문학이 아니라 낮은학년이 즐기는 동시와 높은학년과 열대여섯 아이들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문학이 따로 나뉘어 있어야 합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종교나 과학이나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책과 마찬가지로 ‘학교로 치면’ 중학교, 나이로 치면 열넷부터 열여섯 사이에 있을 아이들도 문학작품으로 문화와 예술과 종교와 과학과 철학을 맛볼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책을 펴내야 좋습니다. 문학만이 아니라, 어느 만큼 전문성을 담아내는 책도 차근차근 맛볼 수 있도록 해 주면 더욱 좋고요.

 초등학교 다닐 때 배운 과목을 좀더 어렵게 배우는 단계가 중학교가 아니라면, 고등학교 때 배울 지식을 조금 쉽게 풀어서 배우는 단계가 중학교가 아니라면, 이때 아이들이 즐기고 반가이 맞이할 책을 출판사나 책방이나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기꺼이 알뜰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초등학생도 사람이고 중학생도 사람이며 고등학생도 사람입니다. 어린이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한편, 청소년도서관이 있어야 하고, 학문을 깊이 파고들 사람이 즐겨찾을 전문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가운데, 늘 바쁘고 고된 일에 매여 있는 월급쟁이들이 마음 쉬며 찾아갈 쉼터 같은 도서관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도서관을 마련하자면, 무엇보다도 중학생이 즐길 책, 고등학생이 즐길 책, 여느 월급쟁이가 즐길 책을 차근차근 엮어낼 만한 문화와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어린이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가운데에는, 제 또래보다 적잖이 앞서가는 책읽기를 하는 아이들, 그래서 열대여섯 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을 즐기는 열두어 살짜리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가운데에는, 또래들보다 조금 눈높이가 낮은 열서너 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을 즐길 수 있겠지요. 그래, 나이나 학년으로 치면 세 해이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아래로 두 해, 위로 두 해 해서 모두 일곱 해를 아우를 수 있는 눈길과 눈높이를 살피는 책을 도서관에서 갖추어야지 싶어요.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야기야 저뿐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중학교 다니는 딸아들 둔 어버이라면 으레 느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몸소 느끼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머리’로는 알고 ‘입’으로는 말씀을 하시지만 실천을 못하는구나 싶어요. 몸으로는 못 옮기지 싶어요. 출판사에서 땀흘리고 힘들여서 중학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책을 펴낸다고 해도, 잘 안 팔릴 뿐더러, 초등학교 높은학년이나 고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눈여겨보아 주지 않으니 버겁다고도 합니다. 더구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모든 ‘교양 책’을 버리고 참고서와 문제집만 달달달 외우도록 끄달리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 대학교 입시가 걸립니다. 중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 아이들은 입시에 억눌려서 책을 못 읽습니다. 책 읽을 틈이 없습니다. 교과서와 시험에 짓눌려서 마음이 답답하지요. 게다가 머리도 아파요. 아무리 좋은 책을 쥐어 준다 해도 그 책을 읽고 싶을까요? 아니, 읽을 겨를이 있을까요. 읽을 겨를을 내어주는 학교 교사가 있나요? 읽도록 마음써 주는 학부모가 있나요? 더구나 그런 책을 읽는다 해도 시험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학생 스스로 그 책을 아주 좋아해하지 않는다면 한두 권 읽다가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 스스로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교사들이 이끌지도 않거나 못하곤 합니다. 교사들로서도 학생들이 시험점수 많이 내는 쪽을 더 좋아하잖아요. 학생들이 자기한테 좋은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도록 이끌자면, 교사들은 ‘교과서 진도 넘어가기’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마음이고 품이고 시간이고 돈이고 많이 들여야 합니다. 이런 데에 마음쓴다고 학교에서 돈이 나오지도 않고 사회에서 알아주지도 않겠지요. 더군다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붙들어 매는 ‘거짓 자율학습’을 시켜야 하니, 몸이 지쳐서 제대로 된 배움을 나누는 데까지 마음을 기울이기 어렵구나 싶어요.

 그래서 중학교 아이들이 좋은 책을 가까이하도록 하자면 무엇보다도 입시제도가 사라져야 합니다. 틀에 박힌 교과서 굴레도 가벼워져야 하며, 아이들한테 지나친 공부 짐을 주지 말아야 해요.

 아이들이 모두 회사원이 되어야 할까요. 큰회사에 들어가 연봉 1억씩 받는 월급쟁이가 되어야 할까요. 모두 영어를 잘해서 세계시민이 되어야 하는가요. 아이들 앞날은 영업사원뿐인가요. 아이들은 인터넷 다루는 일만 해야 하는지요. 아이들이 할 일은 ‘돈 많이 버는 일’, ‘일등이나 일류가 되는 일’, ‘이름을 날리는 일’, ‘권력을 붙잡는 일’뿐인가요.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입니다. 저마다 다른 것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 가운데 연예인이나 가수도 나와야겠지만 농사꾼과 노동자도 나와야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 교사도 나와야겠지만 청소부와 운전기사도 나와야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 공무원도 나와야겠지만 장사꾼이나 광부도 나와야지요. 고기잡이도,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책을 엮어내는 사람도 나와야 해요.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아이도 나와야 합니다. 노래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나와야 합니다. 같은 노동자 가운데에도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 쇠붙이를 다루는 노동자, 종이를 다루는 노동자, 전기를 다루는 노동자, 용접을 다루는 노동자, 페인트바르기를 다루는 노동자 …… 들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된 어른이라면, 이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살아가며 일하고 어울릴 아이들임을 생각해서 아이들마다 ‘자기 됨됨이와 생각과 마음’을 알뜰하고 푸짐하고 너르게 가꾸고 추스르는 일을 학교와 집과 동네에서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좋습니다. 책은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자기 모습과 마음을 가꾸는 길잡이 가운데 하나로 곁에 둘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가운데 하나로 건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이 나라 중학교 아이들한테는 책도 없지만 삶도 없습니다. 자기 마음도 없고 꿈도 없습니다. 현실도 없고 이야기도 없고 동무도 없습니다. 뭐가 있습니까? 이것저것 많이 있는 것 같지요? 컴퓨터도 있고 손전화도 있고 이것저것 많이 가진 것 같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껍데기뿐이에요. 껍데기만 뒤집어쓰고 있어요. 바람만 불면 휙 날아가 버리고 마는 껍데기 말입니다.

 아이들한테는 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알맹이를, 튼튼한 기둥을 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 스스로 이런 속살과 알맹이와 기둥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고 살뜰하게 살아가도록 삶터만 마련해 주면 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자기 삶을 마음껏 펼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야 책은 책대로 즐기고 다른 것은 또 다른 것대로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모릅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뚫린 것 없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꾸려가기 어려운 세상이고 현실인 이 나라인 터라, 아이들한테 주어진 것은 거의 없고 아이들 스스로 즐길 만한 것도 참으로 드물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건네주고픈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런 제 마음은 아이들이 ‘책만 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책도 보고 다른 것도 즐기면서’ 자기 삶을 아이들 마음대로 신나고 즐겁게 찾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디 아이들이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창 신나게 뛰어놀고 마음도 씩씩하게 가꿀 중학교 아이들, 열대여섯 살 이팔청춘 아이들 얼굴에 그늘지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싱그러운 꽃잎이 달릴, 고운 몽우리로 피어날 꽃다운 아이들한테 어른인 우리들이 무엇을 주고 있고 무엇을 숨기거나 없애고 있는지 살피며, 또렷이, 아주 똑똑히, 빈틈없이 샅샅이 살피면서 알아차리고 다독이면 좋겠습니다. (중학교) 아이들한테 책다운 책을 내어주고, 삶다운 삶을 꾸릴 수 있는 틈을 주면서. (4338.11.1.불./2007.9.26.물.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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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도서관을 찾아온 어느 분이 제게 묻습니다. 헌책방 가운데 책값 가장 싼 곳을 알려 달라고.

 “책값 싼 데 어디 있어요? 책값 싸다고 하면 탁 떠오르는 곳 있죠?” “무슨 책을 찾으시는데요?” “책값 가장 싼데요.” “글쎄, 책값이 싸다고 다 읽을 만한 책은 아닐 텐데요 …… 그러면 고물상에 가 보셔요.” “고물상에서도 책을 팔아요?” “헌책방 책이 고물상에서 많이 들어오니까요. 다만, 골라서 살 수는 없고 뭉텅이로 사야지요.” “고물상이 어디에 있나요? 인터넷에 ‘고물상’이라고 치면 나오나요?” “글쎄요, 저는 고물상에 가 보지 않아서,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4340.9.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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