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푸대 나르기


 도서관에서 책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나절, 마을회관 앞을 지나가는데, 우리 웃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경운기에 찰벼푸대를 잔뜩 싣고 멈춘다. 풍양농협에 내다 파시려고 이렇게 내놓으시는구나 싶다. 지난해까지 틀림없이 두 분이 이 많은 쌀푸대를 나르셨겠지. 올해까지도 논에서 거둔 쌀을 푸대에 담아 경운기에 두 분이 싣고는 집안 마당에 두었다가 이렇게 다시 두 분이 싣고는 회관 앞에 쌓으시겠지.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졸려서 아버지 품에 안긴 아이를 땅에 내려놓는다. 조금 기다려 주라 하고는 일손을 거들겠다고 말씀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이 해야 한다며 얼른 아이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란다. 그러나 가방이며 짐을 다 내려놓고 다시 말씀을 여쭈니, 그럼 하나만 들어 보라 말씀한다. 40킬로들이 쌀푸대 하나를 들어 옮긴다. 이윽고 아주 스스럼없이 다른 쌀푸대도 나른다. 이 쌀짐을 할머니는 경운기에서 ‘들기 좋도록 아래로 내리기’만 하고 할아버지 홀로 들어서 나르셨구나 싶다. 내가 거들지 않더라도 두 분은 두 분 빠르기에 맞게 아주 천천히, 아주 더디게, 아주 품을 들여 하나씩 나르셨겠지. 그러고는 다시 경운기에 타고 당신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서로 등허리를 주무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셨겠지.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우리 논을 얻어 우리 쌀섬을 질 수 있으면서,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논에서 나올 쌀푸대도 함께 질 수 있는 날을 꿈꾼다. (4344.11.29.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에서 살아남기


 돈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힘줄 없는 사내로 태어났으면, 한국에서는 고스란히 군대살이 여러 해를 마쳐야 한다. 오른손 둘째손가락이 잘렸다든지, 오른팔을 못 쓴다든지 한다면 군대에 안 갈 수 있다. 그러나 돈·이름·힘줄 있는 사람은 온몸이 멀쩡하더라도 얼마든지 군대에 안 가곤 한다.

 나는 1995년 가을에 들어가 1997년 겨울에 마치고 나온 군부대를 떠올리기 싫어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강원도 땅을 한 번조차 밟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적어도 열 해 남짓 강원도하고 멀찍이 떨어진 채 살고 싶었다. 우줄우줄 솟은 멧봉우리만 보아도 가슴이 서늘했다.

 내가 깃들던 강원도 양구 맨 위쪽 민간인통제구역 끄트머리 북녘 병사를 서로 마주 바라보던 자리는, 온도계로 살필 때에 한겨울에 영 도 밑 47까지 내려가기 일쑤였다. 구월이 끝날 무렵부터 몹시 춥고, 이듬해 오월이 되어야 겨우 추위가 풀리는데, 예닐곱 달에 한 차례 말미를 얻어 바깥으로 나오면, 면내나 읍내 가게 바가지가 아주 끔찍했다. 1996년 양구군 동면 팔랑리 여인숙 하룻밤 묵는 데에 6만 원이었다.

 두 아이 새근새근 잠든 저녁나절 살짝 숨통을 트며 셈틀을 켠다. 다른 여느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을 만한 새소식 하나 내 눈에 확 박힌다. 어쩔 수 없이 몸에 배고 만 슬픈 생채기 때문일까. 2012년 1월부터 예비군은 저마다 몸담던 군부대로 찾아가서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새소식에 몸서리를 치고 만다.

 나는 예비군은 일찌감치 끝났다. 민방위도 머잖아 끝난다. 나 사는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 민방위소집 함께 받을 이웃 아저씨가 있을는지 아리송한데, 민방위조차 곧 끝날 몸이면서 예비군 훈련 틀이 바뀌었다는 소식으로도 몸서리를 친다. 예전 그 강원도 양구군 깊디깊은 멧골짜기 군부대가 슬금슬금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아남는 일이란 쉬울까. 한국에서 살아남는 일이란 다른 어느 나라에서조차 구경하거나 겪거나 바라보기 힘든 일들이니, 이러한 일들을 치르거나 겪는 사람은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나 사진찍기나 춤추기나 노래하기에서 아주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꽃송이를 피울 수 있을까.

 둘째 갓난쟁이 오줌기저귀를 갈다가 퍼뜩 생각한다. 아, 내 가슴이 싸하게 시린 까닭은 우리 둘째 때문이구나. 사내로 태어난 둘째 때문이구나. 이 아이가 나중에 군대에 끌려간다면 겪을 일 때문이구나.

 그러나, 우리 둘째가 사랑스러운 꿈과 믿음직한 마음을 고이 보살피는 나날을 누린다면, 군부대에 도살장 개돼지처럼 끌려가든, 총부리를 붙잡고 갖은 욕설과 폭력에 젖어드는 나날을 보내야 하든, 죽음과 죽임만 판치는 군부대 얼거리를 따사로이 녹일는지 모른다. 밝은 햇살처럼 맑은 이야기를 길어올릴는지 모른다. 아이를 믿으며 내 삶을 착하게 돌보자. 아이를 사랑하며 내 나날을 예쁘게 보듬자. (4344.11.23.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11-23 18:11   좋아요 0 | URL
둘째가 아들이셨죠...
그렇네요, 언젠가 군대를 가야하는군요. 우리나라는 대체 복무가 거의 없죠?

하지만 따사롭게 키우시니, 충분히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을거예요, 두째는..

숲노래 2011-11-23 18:26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는 대체복무가 한 가지 있어요.
영창(감옥)에서 군복무기간보다 훨씬 더 길게 얌전히 앉아서
관절염에 걸리는 일 하나 있답니다... -_-;;;;;;;
 



 한미자유무역협정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이루어지리라 느꼈다. 이러한 협정은 조금도 협정이라 할 수 없지만, 한국땅 흐름을 돌아본다면 뻔히 이루어질 만하다고 느꼈다. 시골사람 스스로 풀약과 비료와 기계에 기대면서 흙을 일구니까, 시골사람한테 풀약과 비료와 기계에 기대어 흙을 일구라고 내모는 도시사람이니까, 이런 나라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 따위가 이루어질밖에 없다고 느꼈다.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은 풀약과 비료와 기계를 등질 수 있어야 한다.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 스스로 가장 맛나며 가장 알찬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 스스로 맑은 바람과 시원한 물과 달콤한 햇볕을 누리는 보금자리에서 아름다이 살아가야 한다. 도시사람이 시골사람을 바라볼 때에 스스로 초라하거나 불쌍하거나 슬프다고 느낄 만한 고운 꿈을 시골사람이 흙을 만지면서 누려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도시사람들 누구나 유기농 곡식과 열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유기농 곡식과 열매가 비싸다고 이야기하지만, 비싼값 유기농 곡식은 없다. 알맞다 싶은 값인 유기농 곡식일 뿐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생각을 해야 한다. 손으로 글을 쓰는 일과 손으로 풀을 다스리는 일을 헤아려야 한다. 손으로 꾸미는 책과 손으로 일구는 곡식을 돌아봐야 한다. 손으로 바느질해서 지은 옷과 가방처럼 손으로 흙을 아끼면서 거둔 열매를 곱씹어야 한다. 아름다운 옷 한 벌이 백만 원이라면 맛난 오이 하나는 십만 원일 때에 알맞춤한 값이다. 멋들어진 자가용 한 대가 일억 원이라면 멋들어진 나무그늘 베푸는 능금나무에서 따는 능금 한 알은 천만 원일 때에 올바른 값이다.

 삶을 바꾸지 않는 한국사람인데, 한미자유무역협정이든 무엇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삶을 바꾸지 않을 때에는, 이러한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한국사람 삶은 차갑거나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돈 꼬랑지에 붙어 알랑방귀를 뀔 뿐이다.

 삶을 바꾸는 한국사람이라면, 한미자유무역협정이든 무엇이든 하나도 두렵지 않다. 삶을 바꿀 때에는, 이러한 협정이 이루어질 수 없기도 하지만 한국사람 삶은 언제나 따스하고 너그러우며 살갑다. 좋은 꿈을 좋은 손길로 이루는 좋은 길을 걸을 뿐이다.

 서울을 떠나면 되고, 텃밭을 돌보면 된다. 자가용을 버리면 되고, 아파트를 놓으면 된다. 아이들과 노래하면 되고, 책을 읽으면 된다. 바느질을 하면 되고, 자전거를 타면 된다. 대학교 졸업장을 찢으면 되고, 자격증을 내려놓으면 된다. 멧새와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풀과 나무가 들려주는 바람노래와 햇살춤을 즐기면 된다. (4344.11.23.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으로 보는 눈 171 : 예술책


 그림쟁이 강우근 님 새 이야기책 《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2011)를 읽습니다. 이야기책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강우근 님은 “삶과 멀어진 예술은 그저 상품으로 소비될 따름이다. 상품이 되어 버린 예술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창의력만을 쫓는다(13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맞는 말이기에 밑줄을 긋습니다.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읽습니다.

 이 말마디 낱말 하나를 살며시 바꾸어 새로 읽습니다. ‘삶과 멀어진 언론은 그저 상품으로 쓰일 뿐이다. 상품이 되어 버린 언론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창의력(특종)만을 쫓는다.’ 다시금 낱말 하나를 살며시 바꿉니다. ‘삶과 멀어진 교육’으로 읽고, ‘삶과 멀어진 방송’으로 읽으며, ‘삶과 멀어진 정치’로 읽습니다.
 ‘삶과 멀어진 시민운동’이라든지 ‘삶과 멀어진 경찰’이라든지 ‘삶과 멀어진 인문학’이라든지 ‘삶과 멀어진 국회의원’으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이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샘솟을까요.

 삶은 겨루지 않습니다. 내 삶은 누구하고 겨룰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하루는 아이들이랑 겨루는 삶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이웃 아이랑 겨룰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를 이웃 어버이랑 겨룰 까닭 또한 없어요. 겨룰 일조차 없지만, 견줄 일 또한 없어요. 겨루기도 견주기도 없으면서 끼어들기나 쳐들어가기나 흔들기나 딴죽걸기마저 있을 턱이 없습니다.

 밥을 차려 먹을 때에 누구하고 겨룰 일이란 없습니다. 날마다 좋은 밥을 즐겁게 먹습니다. 날마다 좋은 옷을 즐겁게 걸칩니다. 날마다 좋은 집에서 예쁘게 잠들고 예쁘게 일어나서 예쁘게 살림을 꾸립니다.

 만화쟁이 시이나 카루호 님 작품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 1권(2007)을 읽습니다. 201쪽에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이루어졌어.”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버이한테서 고운 목숨을 선물받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살아오며 ‘꿈을 꾼 일이 이루어졌다’고 느낀 적이 한 차례조차 없던 아이가, ‘꿈을 말한 때에 시나브로 이루어졌다’고 느꼈다고 이야기합니다. 차갑게 닫힌 채 도무지 열리지 않던 마음문을 활짝 열어젖힌 살가운 동무와 마주하면서 ‘네(동무아이)가 고마이 나눈 좋은 기운을 받아 나 스스로 내 마음문을 열었다’고 노래하는 대목이에요.

 참 좋은 말이로구나 생각하면서 만화책을 읽습니다. 《너에게 닿기를》 2권을 읽으면서도 마음으로 와닿는 사랑스러운 꿈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래요. 맑은 넋이 되어 가슴으로 품는 좋은 꿈이라면, 이 꿈을 품으면서 조곤조곤 속삭일 때부터 이루어질 테지요. 밝은 얼이 되어 가슴으로 북돋우는 어여쁜 꿈이라면, 이 꿈을 북돋우면서 사근사근 속삭일 때부터 이루어질 테고요.

 좋은 책을 찾는 사람은 참말 좋은 책을 찾습니다. 인문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인문책을 읽고, 예술책을 바라는 사람은 예술책을 얻습니다.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은 자격증을 따기 마련이요, 돈을 벌려는 사람은 돈을 벌어요. 사랑을 이루고픈 사람은 사랑을 이루고, 권력을 노리는 사람은 권력을 얻겠지요. (4344.11.2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 짚는 손


 첫째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잔뜩 장만한다. 저녁나절, 하루가 저물 무렵 저녁밥 먹고 나서 방바닥에서 뒹굴며 그림책을 집는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내키는 그림책을 집어서 펼친다. 그래도 그림책 쥐고 아이를 무릎에 앉혀 함께 읽으면 더 좋아할까.

 옆지기가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넘긴다. 둘째 아이가 그림책을 함께 쥐기도 하고, 그림 있는 자리에 손을 뻗어 짚기도 한다. 첫째 아이도 이무렵 이렇게 놀았겠지. 다만, 둘째 아이한테는 바람씻이랑 찬물더운물씻이를 아직 못 한다. 밥차림 다스리기도 제대로 못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다스릴 살림이 벅차다고 느껴 둘째 아이 아토피 털어내는 데에 마음을 못 둔다 할 만하다. 그렇지만, 첫째 아이를 낳아 살아갈 때에는 일이 적거나 없었겠나. 어린 갓난쟁이가 아토피를 비롯해 힘겨운 몸앓이를 스스로 이기기란 참 버겁다. 어쩌면 하루이틀 흐르는 나날이 저절로 풀어 준다 할는지 모르지만, 어버이로서 옳게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나날이라 한다면, 아이 스스로 기운을 낼 수 없다. 나부터 기운을 차리고, 나부터 따사로운 숨결을 북돋아야 한다. 나부터 새힘을 내고, 나부터 모든 일을 한결 씩씩하게 어루만져야 한다.

 책을 짚는 손은, 책에 깃든 이야기를 지식으로 담는 손이 아니다. 책을 짚는 손은 온몸으로 사랑을 실어 따사로이 살아가는 손이다. (4344.11.19.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