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예쁜가

 


 네 살 아이가 섬돌 앞 신을 가지런히 놓는다. 제 신을 알뜰히 여기며 가지런히 놓는다. 얼마나 예쁜가. 동생이 엎드려 노는 곁에서 그림책을 펼쳐 무릎에 얹고는 한손으로 감을 콕 찍어 앙 하고 입을 벌려 넣는다. 얼마나 예쁜가.

 

 일곱 해 남짓 쓰는 필름스캐너가 언제까지 잘 굴러갈까 걱정한다. 여러 해째 걱정한다. 이 필름스캐너를 똑같은 녀석으로 다시 살 수 있을는지 모르나, 새로 산다면 16절 종이를 얹는 크기 말고 8절 종이를 얹는 크기로 장만하고 싶다. 그런데 값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일곱 해쯤 앞서 구십만 원 가까운 돈을 치르며 장만한 필름스캐너는 그무렵 아주 빼어난 녀석이었고, 이때에 8절 종이를 얹는 필름스캐너 값은 이백육십만 원 즈음 했으나, 8절 종이 얹는 필름스캐너 값을 오늘 다시 알아보니 자그마치 사백오십만 원이란다(2004년에 나온 똑같은 녀석인데 값만 껑충 뛰었다).

 

 아이들 예쁘게 크는 모습을 가끔 파노라마사진기로 담을까 생각하면서, 어쩌다 한 번 바깥마실을 하면서 헌책방이나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파노라마사진기로 몇 통 담아 볼까 헤아리면서, 파노라마 중형필름을 찾고 파일로 긁으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야 하는가를 셈하니, 참 터무니없이 살림을 조여야 하는구나 싶다. 파노라마 중형필름을 긁을 만한 필름스캐너 값부터 그야말로 터무니없다. 아니, 중형필름 값 또한 무척 터무니없다. 파노라마사진기를 처음 써 본 일곱 해 앞서하고 견주면, 필름 사는 값이 네 곱 뛰었고, 필름 찾는 값은 두 곱이 되었다.

 

 저녁나절, 네 식구가 함께 탈 만한 자전거를 옆지기랑 한번 들여다보았는데, 이 녀석은 아직 우리 나라에 들어오지 않는 물건이지만, 이렁저렁 마련하려고 용을 쓴다 하더라도 ‘4인승 4륜 자전거’ 값이 한국돈으로 천만 원이란다. 내가 우리 집에서 아이를 태우는 자전거수레 무게가 이십이 킬로그램쯤 되니, 4인승 4륜 자전거는 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넘을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자전거라기보다 자전차에 들 녀석이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옆지기가 시골에서 살아가려는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내가 옆지기를 만나 살아가지 않는다면, 옆지기가 여느 도시내기처럼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가려던 사람이라면, 아마 우리 식구는 거의 오백만 원 돈에 이르는 필름스캐너이든, 천만 원에 이르는 4인승 4륜 자전거이든 그리 어렵지 않게 장만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그냥저냥 살아간다면 두 사람 모두 돈 제법 버는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그러모을 만하고, 이렇게 하면서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으면 필름스캐너이든 4인승 4륜 자전거이든 그리 대수로운 돈이 될 수는 없다.

 

 제 신발 가지런히 놓는 아이가 참으로 예쁘다. 어머니 옷을 뒤집어쓰며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가 더없이 예쁘다. 동생 기저귀를 개는 아버지 곁에서 빨래개기를 거드는 아이가 몹시 예쁘다. 큰아버지한테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아이가 그지없이 예쁘다. 들풀을 쓰다듬으며 노는 아이가 매우 예쁘다.

 

 아이야, 우리 살아가는 시골집은 아흔일곱 평 구백만 원이란다. 집값이나 달삯을 근심하지 않으며 살림집 얻은 일로도 아주 고마우면서 느긋하단다. 우리 이곳에서 예쁘게 살아가자. 더 나은 필름스캐너 없어도 필름만 찾아서 건사하면 되고, 4인승 4륜 자전거 없어도 너와 동생까지 태울 튼튼한 수레가 있어. 네 어머니는 네 조끼를 뜨려고 벌써 이레 넘게 뜨개질을 한다. 네 아버지는 너 날마다 먹을 밥을 차리고 너를 날마다 씻기며 너와 날마다 씨름을 한다. 우리는 서로 예쁘게 사랑하는 작은 사람이다.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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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15 16:44   좋아요 0 | URL
마지막 사진, 너무 좋은데요. 정말 얼마나 예쁜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도시에 살아도 필름 스캐너나 4인승 4륜 자전거 값은 너무 비싸네요.
사진 작업이란, 원래 돈이 많이 들지요? 사진하는 제 친구 보니 그렇던데.
빨래가 너무 깨끗합니다, 여기까지 향이 날아올거 같아요, 전 빨래 직후 향이 젤 좋답니다.

숲노래 2011-12-15 18:17   좋아요 0 | URL
ㅋㅋ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파트 안 사고
자가용 안 몰고
바깥밥 안 먹고...
-_-;;;;
이렇게 몇 해쯤 해야
겨우 이렁저렁 장만하겠지요 @.@

어디에서나 사람들 모두
마당에 빨래를 널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아이들 큰아버지랑

 


 아이들 큰아버지, 곧 내 형이 여러 날 머물다 돌아갔다. 형이 머문 여러 날이 꿈처럼 지나갔다. 하루를 더 묵으려나, 하루를 더 지내려나, 하고 날마다 생각했다. 첫째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뽀르르 끝방으로 달려간다. 저 녀석,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구나, 그럴 만하겠지? 나도 내 어린 날, 우리 집 찾아온 작은아버지들을 바라고, 또 우리 식구가 마실을 간 시골집 형 누나 어른들을 기다리며 잠을 좀처럼 못 들지 않았나 하고 떠올린다.

 

 이제 형이 돌아갈 때가 되어, 파노라마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걸고 동구 밖으로 나온다. 추운 날씨에 바지 안 입겠다며 버티던 첫째 아이는 꺼이꺼이 울다가 겨우 바지를 입는다. 큰아버지 품에 안긴다. 사진 몇 장을 남긴다. 하나·둘·셋 하고 외지 않고 찍은 사진이어서라기보다, 디지털사진에는 두 사람이 눈을 감았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알아채지 못했다. 필름사진에는 어떻게 남았을까.

 

 책을 갈무리하자면 한참 멀지 않았으랴 싶은 도서관에 함께 찾아가서 돌아보고 버스 타는 데로 나오며 다시 사진을 찍는다. 아이는 강아지풀과 억새풀을 꺾고 논다.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방긋 웃는다. 그런데, 아이는 언제나처럼 눈을 말짱 뜨지만 큰아버지는 또 눈을 감았다. 내가 사진을 찍으며 아이만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이를 더 느끼고 큰아버지는 덜 느꼈기 때문일까.

 

 어쩌나, 이 사진을 뽑아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깊은 밤에 나 홀로 피식 웃음이 터진다. 그러고 보니,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 사람들이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때, 사진을 찍을 때에 ‘눈을 감았나’ 하고 생각하지 못하고는 다들 사진을 그냥 찍고는 그냥 종이로 뽑아 ‘어라, 눈을 감았네’ 하고는 놀라며 깔깔 하하 호호 하고 웃었다. 눈을 안 감았으면 참 좋았다고 여기지만, 눈을 감았어도 그때 그곳 우리 이야기를 곱게 간수할 수 있다. 아이들 큰아버지는, 그러니까 우리 형은 따뜻한 봄철에 또 먼 마실을 오겠지.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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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15 16: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보고 삭제하지만
예전에는 사진 찍으면, 꼭 누구 하나는 눈감고 나오고 그랬어요.. ^^

숲노래 2011-12-15 18:17   좋아요 0 | URL
눈 감고 찍히는 사진은
눈 감은 사람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외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요 ^^;;;;;
 

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3. 좋아하니까 사진으로 담아요 - 골목책방 2011.1207.38

 


 다큐멘터리 사진을 으레 흑백필름이나 흑백디지털로 찍으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진은 그예 사진이어야 할 뿐이에요. 사진은 필름이나 디지털이 아닌 사진이에요. 사진은 흑백이나 칼라가 아니라 사진이에요. 사진은 대형이나 중형이나 소형이 아니에요. 사진은 사진이에요. 사진은 캐논이나 라이카나 니콘이나 후지나 펜탁스가 아니에요. 사진은 오직 사진이에요.

 

 한국사람들이 ‘결정적 순간’ 같은 일본 번역말로 사진을 헤아리는 일은 너무 슬퍼요. 한국사람들이 ‘흑백-칼라’라는 외국말로 사진을 바라보는 일은 몹시 안타까워요.

 

 나는 ‘바로 이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요. 나는 ‘까망하양-무지개’를 사진으로 담아요.

 

 내가 사랑하는 바로 이 모습을 좋아하니까 사진으로 담아요. 내가 바라보는 무지개빛을 사랑하기에 사진으로 찍어요.

 

 가난한 사람한테는 가난한 빛이 있겠지요. 그래, 이 빛은 틀림없어요. 다만, 가난한 빛이란, 사람을 돈에 따라 살피는 빛일 뿐이에요. 사랑스러운 사람한테는 사랑스러운 빛이 있을 테지요. 그래, 이 빛 또한 어김없어요. 그러니까, 사랑스러운 빛이란, 사람을 사랑으로 돌아보는 빛이랍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언제나 똑같이 느껴요.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책을 찾아요.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는다 할 적에는, 내가 가장 사랑할 만한 사진을 가장 사랑할 만한 빛으로 그리려 해요. (4344.12.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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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2. 읽지 않는 책은 찍지 못해요 - 뿌리서점 2011.1206.39

 


 사람들은 흔히 물어요. 내가 사들인 책을 다 읽느냐고. 이런 이야기가 궁금할 만한 값어치가 있을까요. 책 십만 권을 사들이는 사람이 십만 권을 다 읽든 열 권만 읽든 궁금할 만한 값어치가 있나요. 책 열 권을 사들인 사람이 열 가지 책을 백 번쯤 읽거나 즈믄 번쯤 읽는다면, 이러한 이야기가 궁금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가요.

 

 어떤 사람은 책 하나를 만 번쯤 읽어요.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만 권에 이르는 책을 알뜰히 읽어요. 어떤 사람은 글을 배우지 못한 채 흙을 일구면서 살아요.

 

 문학을 짓는 사람이 있고, 문학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며, 문학을 즐기는 사람이 있어요. 더 나은 사람은 없고, 더 못난 사람 또한 없어요. 더 거룩한 문학이나 더 몹쓸 문학이란 없어요. 저마다 누리는 문학이에요. 저마다 사랑하는 문학이에요.

 

 나는 나한테 주어진 책을 저마다 다 다른 꿈을 담아 좋아해요. 나는 내가 찾아가는 헌책방을 저마다 다 다른 빛으로 느끼며 사랑해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나는 책을 읽어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아끼는 헌책방을 사귀어요.

 

 읽지 않는 책은 건사하지 못해요. 읽지 않을 책은 사진으로 담지 않아요. 사랑할 수 없는 사람하고 한집에서 살아가지 못해요. 좋아하지 못할 아이들하고 예쁜 삶꿈을 이루지 못해요. 사진은 내 넋이에요. (4344.12.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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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1. 내 사진은 흔들릴 수 없어요 - 흙서점 2011.1206.12

 


 내 사진은 흔들릴 수 없어요. 집안에서 아이들 담는 사진이라 하든 집밖에서 내 사진감 헌책방을 담는 사진이라 하든, 어느 사진이든 흔들릴 수 없어요. 때로는 살짝 흔들리거나 초점이 어긋났다 하지만 한결 따스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나곤 해요. 흔들리지 않고 초점 잘 맞는 사진만 내 마음에 차거나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않거든요.

 

 나는 사진기를 처음 쥐어 내 사진길을 걷던 1999년부터 다짐했어요. 딱히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니지 않았고, 나라밖 어디로 배움길 다닌 적 없으며, 어떤 이름난 사진쟁한테나 이름 안 난 사진쟁한테나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혼자 사진기를 들고 사진찍기를 하며 사진을 배우면서 다짐했어요.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초점이 어긋났다면 다시 찾아가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즈믄 번이고 다시 찍어서 다시 얻어야 한다고.

 

 그저 찍고 또 찍고 다시 찍어요. 같은 자리에서 수없이 찍지만, 올해 지난해 다음해 언제까지나 찍고 또 찍고 다시 찍어요. 연대기 같은 사진을 생각하면서 찍지 않아요. 늘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이야기를 담으려는 사진을 찍어요. 언제나 가장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실으려는 사진을 찍어요.

 

 나한테 1/20초라면 무척 빠르게 찍는 사진이에요. 1/15초나 1/10초도 제법 느긋한 사진이에요. 헌책방 살짝 어두운 불빛에서는 감도 1600으로 맞추고도 1/8초나 1/4초로 찍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리 넓지 않은 헌책방이니까, 아니, 퍽 좁은 헌책방이니까 세발이를 놓고 찍은 적이 없어요. 맨몸으로 안 흔들리며 찍을 뿐이에요. 다른 책손이 책읽기 할 때에 헤살 놓으면 안 되니 불을 터뜨리지 않아요. 오직 내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나한테 무지개 같은 꿈빛을 베푸는 헌책방 책빛을 담아요. (4344.12.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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