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을 나와 부리나케


 시골집을 나와 부리나케 자전거를 달려 면내 버스역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시외버스 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발판을 굴린다. 자전거를 이렇게 굴리는 동안, 나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고, 어떠한 냄새도 맡지 않는다. 시외버스에서는 버스 바퀴 구르는 소리랑 엔진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해서 귀가 쩡쩡 울린다. 자가용을 탄다 한들 새소리나 바람소리를 들을 만할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내 목숨을 고이 아끼려 애쓰지 않는다면, 누구나 금세 눈멀고 귀멀며 마음이 조각조각 바스라지리라 느낀다. 힘이 들어 시외버스 걸상에 폭 안기면서 마음을 쉬지 못한다. (4344.8.16.불.ㅎㄲㅅㄱ)
 

- 지난주에 서울마실을 하던 길에 공책에 적은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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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내 가슴에 있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착하게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살아내며 착하게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맑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시골에서 지내더라도 사랑을 품지 못합니다. 언제라도 착하게 꿈을 꾸지 않는다면 멧자락 너른 품에 안긴 채 살아내더라도 사랑을 깨닫지 않습니다.

 풀벌레 우는 소리 아닌 아스팔트를 까거나 시멘트를 부수는 온갖 기계 소리로 아침을 여는 도시 여관에서 잠을 깨면서 생각합니다. 작은 새부터 커다란 새까지 바지런히 새벽을 맞이하며 먹이를 찾는 멧골집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자동차 시끄러이 내달리는 도시 한복판에 깃든 여관에서 하루를 열면서 생각합니다.

 이렇게 바깥마실을 하면서 새 보금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아버지가 힘들까요. 시골집에서 두 아이를 보듬으며 집살림을 돌보는 어머니가 힘들까요.

 내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벌써 사흘씩이나 집이 아닌 도심지 여관에서 잠을 자야 하는 일을 이야기하며 미안하다 말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분이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최종규 씨가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죽일 놈이네,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나는 다르거든요. 나는 삼백예순닷새를 늘 옆지기랑 아이랑 복닥이며 살아가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하루만 바깥으로 나돌아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리울 뿐 아니라 마음이 아파요. 그렇다고 삼백예순닷새 바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삶이 다르잖아요. 누가 낫고 누가 나쁘다는 소리가 될 수 없어요. 나는 내가 사랑하면서 꾸리는 삶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바깥마실을 하며 더없이 힘들고 고된 하루가 괴로우면서 미안해요. 좋은 숲 품에 안기어 좋은 눈길과 손길로 좋은 이야기를 일구지 못하는 하루가 참말 슬프면서 아파요.

 물소리를 듣고 싶어요.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며 사그작사그작 조용히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햇볕을 마음껏 쬐고 싶어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둘째 기저귀를 마당 빨랫줄에 널고 싶어요. 내 손은 술잔이 아니라 빨래비누나 빗자루를 들고 싶어요. 둘째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 젖가슴을 내 투박한 꾸덕살 손바닥으로 살며시 문지르고 싶어요. 옆지기 등바닥에 조용히 웅크리고 누워 살내음을 맡고 시골집을 둘러싼 풀내음을 받아들이고 싶어요.

 시외버스를 두 번 타고 시골집으로 돌아갈 길이 아주 까마득해요. 네 시간 가까이 어떻게 버티어야 할까 슬퍼요. 선뜻 여관에서 나서지 못해요. 그러나 나는 내 고운 보금자리로 돌아가야지요. 고운 새 보금자리를 찾을 때까지, 우리 살붙이한테 고마운 물과 바람과 햇살과 풀을 베푸는 멧자락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지요.

 벽종이에 아로새겨진 꽃 그림도 예뻐요. 다만, 나는 달리 생각해요. 흙에 뿌리내린 작은 꽃이 아주 예쁘다고 생각해요. 나도 작은 꽃처럼 흙을 밟고 흙에서 노래하고 싶어요. 새벽마다 지렁이들이 가늘게 노래를 한다고 들었어요. 지렁이들이 노래하는 줄 이제껏 몰랐지만, 늘 새벽이면 깨었으니까, 나는 잘 몰랐더라도 언제나 지렁이들 노래를 들으며 살았겠지요. 지렁이가 노래하는 줄 몰랐어도 좋아요. 안다고 해서 더 좋지는 않아요. 지렁이들이 들려주는 노래는 내가 알든 모르든 노상 내 온몸으로 스며들었어요. 매미도 여치도 방아깨비도 사마귀도 거미도 나비도 잠자리도 애틋한 동무예요. 바람을 가르며 푸들푸들 날갯짓하는 잠자리를 살가이 바라보고 싶어요. 머리에 핀을 잔뜩 꽂고는 이쁘게 웃는 어여쁜 딸아이를 기쁘게 품에 안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싶어요. 책은 내 가슴에 있어요. (434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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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할 수 없어요


 돈이 있으면 아파트를 사고 자가용을 사고 텔레비전을 살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어요. 돈이 있으면 몸을 섞는 놀이를 즐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사랑을 살 수 없어요. 돈이 있으면 맛나다는 밥을 끝없이 사다 먹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돈으로는 사랑을 담은 밥을 사서 먹을 수 없어요.

 나는 돈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나, 돈이 없으면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겠지요. 자전거를 장만할 때에도 돈이 들고, 책을 마련할 때에도 돈이 들어요. 그런데, 돈이 있대서 자전거를 열 대나 스무 대를 장만한들 이 자전거를 어떻게 타겠어요. 돈이 넉넉해서 온누리 모든 책을 다 마련할 수 있대서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요.

 나는 돈을 바라지 않아요. 나는 사랑을 바라요. 나는 자전거도, 책도 바라지 않아요. 나는 고운 사랑이랑 착한 사랑을 바라요. 더 낫다는 무언가를 꿈꾸지 않아요. 더 보드라우면서 더 따사로운 사랑이 좋아요. 맑게 살고 싶어요. 착하게 살고 싶어요. (434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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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6 : 책을 읽는 소리


 두 아이는 집에서 옆지기가 돌보기로 하고, 아버지 혼자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섭니다. 옆지기는 둘째를 낳고서 두 달 넘게 아무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나빴습니다. 둘째가 백 날째가 가까운 얼마 앞서부터 옆지기가 집일을 차츰차츰 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멧골자락 조용한 집에서 싱그러운 풀과 나무를 맞아들이면서 맑은 바람과 고운 소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일까요. 빨래기계를 안 쓰고 자가용을 몰지 않으며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우리 집에서는 모든 일을 손으로 합니다. 손으로 비질을 하고 손으로 걸레를 빨아 손으로 방을 훔칩니다. 손으로 둘째 기저귀를 빨고 손으로 기저귀를 널어 손으로 기저귀를 갭니다.

 아버지는 시골집에서 자전거를 몰며 이웃 면내로 갑니다. 이십 분 남짓 달립니다. 시골버스는 한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데,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면내로 가자면 자전거를 몰거나 한참 시골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혼자 바깥마실을 하는 날이라 자전거를 몹니다. 자전거는 시외버스 짐칸에 싣습니다. 오늘은 시외버스 기사님이 차에서 내려 “자전거 안 다쳐요?” 하고 물으며 걱정해 줍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시외버스 기사님 가운데 1/5쯤은 자전거를 짐칸에 싣는 일을 못마땅해 합니다. 3/5은 무덤덤하고 1/5은 이렇게 따사로이 말마디를 건넵니다. “네, 튼튼하지 않으면 이 자전거를 탈 수 없잖아요.” 빙그레 웃습니다.

 시외버스에 올라탑니다. 빈자리에 앉습니다. 아버지가 찾아간 면내에서 탄 시외버스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다음 면내에서는 푸름이들이 아주 많이 올라탑니다. 널널하게 앉아 책을 읽다가 가방을 모두 무릎에 올려놓고 몸을 웅크립니다. 푸름이들 얼굴이 앳됩니다. 아이들 몇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세 잠이 듭니다. 아이들은 다 함께 서울로 놀러 가는 듯합니다. 내 옆에 앉은 푸름이는 한손에 천 원짜리 여러 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꼭 쥔 채 잡니다.

 시골집에서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벌레가 풀숲에서 풀잎을 건드리는 소리하고 벌레가 스르스르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끔찍하거나 모질다 할 만한 막비가 그치지 않기에 빗소리를 참말 지겹다 싶도록 듣습니다. 그렇지만 빗소리는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사대강사업을 한대서 망가지는 자연 터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여느 사람들 스스로 자가용을 장만하여 자주자주 타면서 온갖 전자제품을 쓰고 쓰레기를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버리니까 자연 터전이 무너지면서 이 여름에 막비가 퍼붓습니다. 막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으며 햇살이 언제쯤 비칠는지 꿈을 꿉니다.

 면내로 나와 시외버스를 탈 때부터 오로지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 닿은 뒤에도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여관에서 묵을 때에는 냉장고와 정수기가 전기를 먹으며 끙끙대는 소리에다가 술이 얹힌 사람들 떠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루를 지새운 이듬날 새벽에 비로소 참새 몇 우짖으며 날아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 이 나라 사람들 1/4이 서울에 몰려서 살아간다는데 서울사람은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벌레소리도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못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다 오사무라는 일본사람이 쓴 청소년소설 《우리들의 7일 전쟁》(양철북,2011)을 여관 침대에 누워서 읽습니다. “모두 하늘 좀 봐. 별이 참 예쁘다(49쪽).”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이루어지는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떨쳐나옵니다. 버려진 건물 옥상에서 한뎃잠을 자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서울에서는 밤하늘 별을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보드라운 살내음 소리가 죽고, 책을 읽는 소리도 죽습니다.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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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헌책방


 착한 헌책방 아저씨가 짜장면을 시킨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짜장면을 한 다섯 달 만에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짜장면 한 그릇에 4500원이다. 얼마 안 된다. 몇 젓가락 휘저으니 금세 바닥이 보인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하고 처음 짜장면을 먹던 날을 돌이킨다. 벌써 열일곱 해나 지난 옛일이다. 열일곱 해 동안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헌책을 팔아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곧 일흔 나이가 될 헌책방 아저씨 두 다리는 얼마나 오래오래 이곳에서 튼튼히 버틸 수 있을까.

 나라 곳곳에서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재개발 바람이 분다. 재개발 바람이 그치면 개발 바람이 불고, 개발 바람이 멎을라치면 재개발 바람이 분다. 살가운 바람은 불지 않는다. 책을 읽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려는 알뜰한 사람들 휘파람 소리가 실리는 바람은 불지 않는다.

착한 헌책방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끄럽다. 빗소리를 시끄럽다고 느낀다. 벌써 두 달째 햇살을 가로막기 때문에 빗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낀다. 비야, 네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자꾸 너를 탓하고 마는구나. 비야, 비야, 네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꾸 너를 탓해야 할까.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올해에 양수기가 잘 돌아서 헌책방 바닥이 물바다가 되지 않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착한 헌책방 바닥을 내려다본다. 바닥이 물자국으로 가득하다. 참말 물바다는 아니지만 물자국이 많다. 비가 퍼부을 때마다 착한 헌책방이 걱정스러웠고, 수십만 권에 이르는 이 책들이 새로운 임자를 못 만난 채 물을 먹고 말까 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둘째를 낳아 함께 살아가며 올해 들어 이 착한 헌책방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한테 둘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아주 잘 되었다며 고마운 인사말을 아낌없이 베푼다.

 착한 헌책방을 즐겨찾는 나는 얼마나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까. 나는 얼마나 착한 아버지일까. 나는 얼마나 착한 옆지기일까. 나는 얼마나 착한 동무이거나 일꾼이거나 사내일까. 착한 헌책방에서 장만한 착한 책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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