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빗줄기


 한가위를 맞이해서 비가 내립니다. 아마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 살붙이하고 시골집에서 한가위 초승달하고 한가위 반달을 보았습니다. 한가위 보름달은 올려다볼 수 없지만, 한가위 초승달조차 여느 때 보름달보다 훨씬 밝은 줄 다시금 느꼈고, 한가위 반달은 여느 날 보름달보다 한껏 빛나는 줄 새삼스레 보았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한가위 보름달은 올려다볼 수 없으나, 길디긴 칠팔월 궂은 비가 구월에 접어들어 한동안 멎었기에 고맙습니다. 두 달에 걸쳐 비가 그치는 날이 거의 없는 채 살아오면서 둘째 기저귀 빨래를 끝없이 해댔으니, 한가위에 이쯤 비가 오더라도 기저귀가 안 마를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고마운 한가위요, 즐거운 하루하루입니다. (4344.9.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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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0원


 둘째 아이 백날을 맞이해서 흰떡을 뽑은 다음, 이 떡을 음성 읍내에서 자주 마주하면서 고맙다고 여기는 분들한테 찾아가서 하나씩 드렸다. 이 가운데 음성 시외버스 타는 곳에서 표를 파는 아주머니한테도 하나 드렸는데, 오늘 첫째 아이하고 읍내마실을 나오면서 표를 한 장 끊으려고(우리 마을을 오가는 광벌 버스표) 하는데, “어, 백일떡 잘 먹었어요. 잠깐만요. 이거(돈) 받는 거 아니에요. (표) 하나 줄게요.”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에 끊을 표를 그냥 내주신다. 내가 내민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신다. (4344.9.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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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에 내려앉은 잠자리


 새벽안개 걷히는 아침나절, 오늘 적바림한 느낌글과 함께 그림책 속그림을 누리집에 함께 띄우려고 사진을 찍는다.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사진을 찍는데 마지막 사진을 찍을 무렵, 빨랫줄에 앉아서 쉬던 잠자리 한 마리가 그림책 가장자리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잠자리한테는 이 그림책 가장자리가 쉴 만한 터로 보였을까. 잠자리도 책을 함께 읽고 싶었을까. 한동안 가만히 서서 잠자리를 바라보다가 ‘자, 나는 이제 책을 덮고 집으로 들어가야 해. 너도 네가 갈 곳으로 가렴.’ 하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린다. 잠자리는 푸드득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나도 책을 덮고 집으로 들어간다. (4344.9.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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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군대 옷


 춘천에서 시외버스표를 끊고 나서 이십 분쯤 시간이 남았다. 시외버스 타는 곳 옆에 ㅇ마트가 붙었기에 이곳에 들른다. 싸게 파는 반바지가 있으면 살까 하고 생각하지만, 반바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나오려고 하다가 민소매옷을 3000원에 파는 옷걸이가 보인다. 잘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두 벌을 고른다. 열 해 가까이 입던 민소매옷 여러 벌이 구멍나고 찢어져서 더는 못 입을 판이다. 옷값을 셈하고 나온다.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에 새로 산 민소매옷 한 벌을 입는다. 입고서 가슴에 새겨진 글을 읽는다. 알파벳으로 무어라 적혔는데 ‘NAVY’라는 낱말과 ‘AMERICA’라는 낱말이 보인다. 이런, 이 옷은 뭘 기리거나 뭘 말하거나 뭘 보여주는 옷이람?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만든 옷인데, 왜 이런 글을 새겼담? 알파벳으로 뭔가를 새기려 한다고 할 때에도 사람들한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새길 수 없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쓴 글에서 한 줄쯤 따서 적바림할 수 없나? 마더 존스 님이 외친 말에서 한 대목쯤 따서 새길 수 없나? (4344.9.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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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락으로 읽는 책


 나즈막한 책상에 책을 잔뜩 쌓은 아이가 책상 한쪽에 걸터앉아서 조그마한 그림책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책을 읽으면서 발가락은 꼼지락꼼지락. 발레 하는 아이 모습을 담은 그림책이라서 그림책 아이마냥 발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이나. 책을 들여다보는 눈길은 발가락에서 춤을 춘다. (4344.9.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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