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아파트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전라남도 고흥으로 가는 네 시간 길에 거치는 광양시와 순천시에 아파트가 참 많다. 이곳에 이 아파트들은 언제부터 섰을까. 이곳은 지난날 어떠한 삶자리 삶자락 보금자리 사랑터였을까. 아파트가 서기 앞서, 제철소나 공장이 올라서기 앞서, 온갖 관공서나 회사나 가게가 들어서기 앞서, 이 멧자락과 들판과 냇가와 바닷가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숲은 없고 아파트가 있다. 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사라지고 아파트로 이루어진 숲이 생긴다. 숲이 아닌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손에 쥐고 어떤 이야기를 가슴으로 아로새길까. (4344.9.2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시에서는 못 살겠다


 충주 멧골집을 떠나 부산에 닿는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에 섞이면서 대전역에서 고속열차로 갈아탄다. 길디긴 고속열차에 올라 많디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앉은 칸을 가로지르며 걷는다. 음성역을 떠난 무궁화열차는 맨 끝 역에 이르러 갑자기 늦어지며 그만 갈아탈 열차를 놓칠 뻔했다. 한숨을 돌리면서 우리 자리를 찾는다. 부산역에서 내릴 때에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1분이 채 되지 않아 열차가 선다. 무궁화열차는 안내방송이 나오고도 서다 가다 하며 한참 힘들게 하고, 고속열차는 있으나 마나 한 안내방송 때문에 부랴부랴 짐을 꾸리고 아이를 안아 밖으로 나온다. 넓디넓은 부산역으로 나온다. 쏟아지는 가게와 쏟아지는 자동차와 쏟아지는 소리 틈바구니에서 첫째 아이가 어디로 휩쓸릴지 걱정스럽다. 자칫 아이를 놓쳐 길을 잃을까 근심스럽다. 관광안내소와 백화점안내소와 부산역안내소 세 군데를 들러 ‘미아방지용 팔찌’ 같은 것을 장만할 데가 있느냐고 묻지만, 다들 모른단다.

 저 멀리까지 줄을 선 택시를 본다. 하나를 얻어 탄다. 짐을 싣는다. 짐을 짐칸에 다 안 실었는데 택시 일꾼은 일찍 짐칸 문을 닫는다. 음성에서 택시를 탈 때하고 아주 다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느긋하게 안 될까. 아버지 품에 안겨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차가 많아.” 하고 말한다. 아버지하고 읍내 장마당에 나올 때에 읍내 자동차를 보고도 ‘많다’고 말하던 아이한테 부산 시내 자동차는 얼마나 많은 숫자와 크기가 될까. 이 자동차 물결에 나도 한몫 끼면서 오직 다른 자동차 소리와 내가 얻어 탄 택시 소리만 듣는다. 우리가 얻어 지낸 충주 멧골집 마당은 시멘트 바닥이요, 맨 흙길을 찾아 걷기에 만만하지 않았지만, 찻길 바로 안쪽은 모조리 흙인데, 이곳 부산과 같은 데는 찻길 둘레도 아스팔트나 시멘트요, 집 둘레나 가게 언저리나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이다. 흙먼지 뒹구는 길은 아예 없다. 찻길 두 편으로 나무를 줄줄이 심은 일이 놀랍다고 할 만하다. 이 나무들이 죽지 않고 목숨을 잇는 일이 대단하다 할 만하다.

 이 놀랍고 대단한 나무를 가만히 올려다보면서 살그머니 줄기를 쓰다듬거나 어루만질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무가 뿌리내린 조그마한 흙 둘레에 씨앗을 퍼뜨려 애써 고개를 내밀 여느 풀은 얼마나 될까.

 배고프고 졸린 첫째와 저녁밥을 먹는다. 경상도사람이건 전라도사람이건 목소리가 크겠지. 충청도에서 지낼 때에는 읍내 밥집에서 이렇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사람을 못 보았다. 귀가 멍멍하다. 밥집에서 나올 때에 옆지기가 아이를 바삐 부른다. 아이는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려 한다. 밥집 바깥은 바로 찻길이라 아이가 함부로 나가면 안 된다. 도시 자동차는 어린이를 잘 살피지 않는다. 어쩌면, 도시는 여기이든 저기이든 아이들이 많으니까, 시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데가 아니니까, 시골에서는 갓난쟁이가 되든 네 살 첫째가 되든 나란히 읍내 마실을 다니면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마다 아는 척을 하며 아이한테 인사를 하는데, 이 커다란 도시에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나.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더더구나 이 아이들을 눈여겨보거나 고이 헤아리기 어렵다.

 자동차가 지나갈 만한 넓이일 뿐이라, 사람들은 골목길 가장자리에 바싹 붙어서 이맛살을 찌푸린 채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사람들 마음 흐름대로 걷거나 움직일 수 없다. 자동차 눈치를 살펴야 한다. 자동차에 따라 멈춰야 하고 자동차에 따라 에돌아야 하며 자동차에 따라 귀가 따가와야 한다.

 문득 옆지기가 말한다. “도시에서는 못 살겠지요?” 시골집을 나서서 커다란 도시로 들어선 하루, 옆지기 이 말 한 마디를 내내 가슴에 아로새긴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이렇게 시끄럽고 이렇게 걱정스러운 곳에서 아이하고 즐거이 살 수 없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책잔치가 있으니 찾아와서 책누리를 즐기지, 이 헌책방골목이 아니라면 이곳 부산 어디에서 숨통을 틀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는 ‘옆지기 몸이 몹시 나빠 시골로 집을 옮겼어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착하게 건사하기 힘들다.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따스히 돌보기 벅차다.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사랑스레 아끼기 힘겹다.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아이 손을 힘껏 붙잡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아이를 살가이 껴안고 아이가 마음껏 뛰놀도록 보금자리 사랑스레 일구는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다. (4344.9.23.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으로 보는 눈 168 : 책을 언제 읽어야 할까


 사람들이 나날이 책을 덜 읽는다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읽어요. 책을 좋아하면서 책을 살가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살림일 때이건 가멸찬 살림일 때이건 책을 알맞게 장만해서 즐거이 읽습니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안 읽어요. 바쁠 때에는 바빠서 안 읽고 느긋할 때에는 느긋해서 안 읽어요.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은 책을 늘 빨리 읽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언제나 많이 읽어요. 걸음이 빠른 사람은 걸음이 늘 빠릅니다. 일이 많아 바쁜 사람은 노상 일이 많아 바빠요. 삶 그대로 책을 읽고, 삶 그대로 마음을 씁니다.

 사람들은 책뿐 아니라 영화를 즐기고 노래를 사랑합니다. 춤이나 연극이나 그림을 좋아해요. 신문도 많으며 손전화로 신문글을 언제 어디서나 읽습니다. 정보와 지식이 넘치고, 상식과 소문이 흐릅니다. 그러나, 막상 내 몸으로 녹이거나 삭이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아리송해요. 책이며 영화이며 새소식이며 가득하지만, 문화나 예술은 춤을 추지만, 이들 지식이나 정보나 문화나 예술은 조각조각 난 채 내 삶을 아름다이 못 돌보거나 이웃사랑을 어여삐 못 나누지 싶습니다.

 북아메리카 토박이 사람들과 삶을 사진으로 담은 에드워드 커티스 님 책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2011)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났습니다. 저는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책을 예전에 일본판과 미국판으로 읽었습니다. 한국판으로는 나오기 힘들겠다고 여겼어요. 한국에서는 사진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진에 깃든 넋을 옳게 읽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사진책을 만지작거리면서 참 대견한 녀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판 책에 실린 사진 빛느낌은 일본판이나 미국판보다 퍽 떨어집니다. 사진을 다루는 솜씨나 매무새가 아직 못 미쳐요. 가만히 보면, 한국땅에서 디지털사진기 한 대쯤 안 갖춘 사람은 거의 없다 할 만하지만, 사진읽기와 사진보기와 사진찍기를 슬기로이 살피는 분은 퍽 드뭅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라는 아홉 권짜리 만화책을 함께 읽습니다. 옆지기는 이 만화책이 그림도 괜찮고 줄거리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샤먼 시스터즈》를 그린 타카토시 쿠마쿠라 님 다른 만화책은 한국말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샤먼 시스터즈》 또한 널리 사랑받지 못해요. 아니, 널리 사랑받지 못한다기보다 이 만화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지 못한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4권 62쪽).” 하는 말마따나, 돈이 있건 없건 이름이 높건 낮건 힘이 세건 여리건, 더 너그러우면서 한결 사랑스레 살아가지 못할 때에는 책을 손에 쥐더라도 책맛을 볼 수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을 언제 읽어야 좋을까 하고 차분히 되뇝니다.

 아이하고 마주한 자리에서는 아이 눈을 바라보며 웃으면 됩니다. 아이한테 놀잇감을 쥐어 주거나 수레에 태워 어디 마실을 가거나 값진 옷을 입히거나 값나가는 가루젖을 먹여야 하지 않아요. 따순 어머니 품에서 젖을 알맞게 먹이면서 포근한 아버지 품에서 시원을 바람을 쐬도록 안으면 됩니다. 나부터 사랑스러울 때에 아이를 사랑스레 껴안고, 나 스스로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책 하나 손에 쥡니다. (4344.9.22.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엄마가 넘겨 주는 책


 큼지막한 사진책을 바닥에 펼친다. 어머니가 한 장씩 넘기며 이야기를 한다. 무슨무슨 모습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어머니하고 큼지막한 사진책을 함께 읽는다. 사진책에 담긴 아이와 어른과 짐승과 자연과 건물과 사막과 자전거를 함께 읽는다. 살뜰히 찍은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을 함께 읽을 때에는 살뜰히 빚은 영화를 아주 천천히 보는 느낌하고 같다. 살뜰히 일구는 사랑스러운 삶이기에, 이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진으로 살뜰히 담아내겠지. 이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글쟁이는 글로 사랑스러움을 살뜰히 담을 테고, 노래쟁이는 노래로 사랑스러움을 살뜰히 나누어 줄 테지. 예부터 아이 어머니들은 아이가 먹을 밥그릇에 살뜰히 돌보는 사랑을 고이고이 소복하게 담으면서 살아왔다. (4344.9.19.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에서 깨다


 사람들이 모두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서울시장이니 무어니 하고 골머리를 앓지 말고, 조용히 내 논밭을 사랑하고 내 멧자락과 바다와 냇물을 아끼면서, 내 살붙이하고 마음과 사랑을 나누는 호젓한 시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얼마나 기쁠까.

 서울이 텅 비면 좋겠다. 자가용과 아파트와 높은건물 모두 서울에 남기고, 튼튼한 몸과 마음만 단단히 여민 채 시골로 가서 호미를 잡고 괭이를 잡으며 낫을 붙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서울시장 후보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며 땀흘리는 분들 땀방울과 다리품이 너무나 아깝다.

 출판사는 서울에 몰렸고, 책은 서울에서 가장 많이 팔리지만, 막상 서울에서 살아가면 ‘책이라는 물건’은 잔뜩 거머쥘 수 있어도 ‘책이라는 마음밥’은 하나도 곰삭이지 못한다. 좋은 쇠붙이로는 골프채 아닌 호미를 만들고, 좋은 돈과 품과 땀으로는 좋은 흙을 일구면서 잠에서 깰 수 있기를. (4344.9.17.흙.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9-17 16:07   좋아요 0 | URL
그러면 좋겠죠, 그리고
이왕이면 한국이 그럴 때 타국에서 우리를 해치지 않도록 지구 전체가 그렇다면 좋겠어요.
결국 저와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도시인은 손을 놓지 못하나봐요, 참 어리석죠... ㅠㅠ

숲노래 2011-09-17 16:54   좋아요 0 | URL
어릴 적부터 '스스로 살기'를 배우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살기를 배우지 못한 몸과 마음을 깨닫지 못해서,
어떻게 마음과 몸을 고쳐서 거듭나도록 이끌어야 하는가로
나아가지 못해요.

그래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인문책을 읽으면 안 돼"요.
인문책은 거의 한결같이 '지식을 다루는 책'이지,
'행동으로 나아가는 책'이 아니거든요.

인문책을 읽어야 나라가 살거나 바뀌지 않아요.
생각을 고치면서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흙을
아끼는 길로 나아가야 나라가 살거나 바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