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을 바라보면

 


  옆을 바라보면 들판입니다. 앞을 바라보아도 들판입니다. 오늘날 들판에는 온갖 풀약이 뿌려지지만, 푸른 빛깔 싱그러이 나부끼는 모습을 바라보며 좋네,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도 아이들도 나도 푸른 들판을 바라봅니다. 굳이 이곳을 바라보거나 저쪽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 삶터는 들판이기에 들판을 바라봅니다.


  들판을 바라보며 들바람을 쐽니다. 들마음을 생각하며 들마실을 합니다. 식구들 다 함께 멧길을 오르내리며 멧바람을 쐽니다. 멧마음을 생각하며 멧마실을 합니다.


  봄에는 봄바람이고 여름에는 여름바람입니다. 마을에는 마을바람이고, 나무 밑에서는 나무바람입니다. 참깨밭 앞에 서면 참깨바람이 붑니다. 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면서 잠자리바람을 일으킵니다. 제비는 제비바람을 일으키고, 나비는 나비바람을 일으킵니다.


  스스로 보고 싶은 곳을 보겠지요. 스스로 살고 싶은 대로 살겠지요. 볏포기는 천천히 푸른 빛깔을 벗으면서 노란 빛깔을 입습니다. (4345.8.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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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심 부리는 책, 주제넘게 읽는 책

 


  나는 언제부터인가 어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내가 말하거나 글쓰며 담는 낱말을 몽땅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어느 낱말은 천 번이나 이천 번, 때로는 오천 번 넘게 찾아보곤 합니다. 숱하게 찾아보아도 다시금 국어사전을 뒤적여야 하는 낱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욕심(欲心)’이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척 보아도 한자말이겠거니 싶은데, 국어사전 말풀이에는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 나옵니다. 옳거니, 한국말로 다시 적바림하자면, 한자말 ‘욕심’이란 “주제넘은 마음”입니다.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거나 꼭 써야 한다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쓸 만한 말만 씁니다. 한자말 가운데 내가 쓸 만하다 싶으면 쓰는 낱말이 있고, 겨레말이든 토박이말이든, 아무튼 한국말 가운데 내가 쓸 만하다 싶으면 쓰는 낱말이 있어요.


  사람들이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니 깨닫지 못하는데, 한자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자말은 그저 한자말입니다. 영어는 그저 영어이듯, 한자말은 한자말이에요. 영어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인 낱말이 몇 있대서 영어를 한국사람이 널리 쓸 말로 삼을 수 없습니다. 한자말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여 쓰는 낱말이 꽤 많대서 한자말이 한국사람이 두루 쓸 말이라 여길 수 없어요.


  어찌 되든, 나는 ‘욕심’이라는 낱말을 안 쓰며 살아갑니다. 굳이 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기도 하지만, 이런 낱말을 쓰면 내 마음이나 넋이 어떠한가를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나 넋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낱말을 골라서 씁니다. 곧, 나로서는 ‘주제넘다’가 내 마음입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책을 장만하거나 읽을 때에 ‘주제넘게 책을 장만하’거나 ‘주제넘게 책을 읽’는 일이 있을까?


  주제넘은 책읽기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주제넘은 일이나 주제넘은 삶이란 무엇일까 헤아려 봅니다.


  사람들은 으레 ‘욕심을 부렸다’ 하고 말하곤 하는데, 참말 사람들 스스로 ‘주제넘은’ 짓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누군가 ‘이런 책도 만들고 저런 책도 펴내고 싶었어요’ 하고 말한다면, 이 같은 책마을 일꾼은 ‘주제넘은’ 바보짓이 아닌,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하려는 마음, 곧 ‘꿈’을 꾸면서 ‘꿈을 이루려고 애쓴 땀방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른바 주제넘은 짓이라 한다면, 돈만 더 많이 벌어들일 생각으로 ‘어느 이름난 외국 작가 책을 선인세 십 억이나 십 몇 억을 주고 사들이는’ 짓쯤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려는 책마을 일꾼한테도 ‘꿈’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비록, 이녁 꿈이란 ‘돈을 더 벌기’라 하더라도, 돈을 버는 일도 꿈이라 할 만해요. 이러한 꿈을 좋게 바라보느냐 얄궂게 바라보느냐 안쓰러이 바라보느냐 기쁘게 바라보느냐 하는 대목이 다를 뿐이에요.


  나는 생각합니다. 내가 책을 장만하는 일이나 읽는 일이나 주제넘은 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이웃이나 동무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내 좋은 책마을 벗님들이 주제넘게 책을 만들거나 펴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꿈을 꾸면서 예쁘게 삶을 일굴 테지요. (4345.8.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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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맡 만화책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만화책에 푹 빠졌다. 만화책은 밥을 먹고 나서 읽으라 말하지만 듣지 않는다. 한참만에 겨우 밥상맡에 앉지만, 손에 만화책을 쥔다. 밥을 다 먹은 다음 보라고, 보라고, 여러 차례 되풀이하며 말하니 비로소 바로 옆에 만화책을 내려놓는다. (4345.8.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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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홍 마을

 


  마을회관 둘레에서 자라는 여러 나무는 철 따라 새 옷을 입는다. 시골마을 모든 집 또한 철마다 새삼스레 옷을 갈아입는다. 들풀은 들꽃이 되었다가 들풀로 돌아간다. 온통 푸른 빛이 가득한 시골마을은 아침 햇살이 곱게 펼쳐지면서 골골샅샅 새로운 빛무리를 펼친다. 마을회관 선 빨래터 옆 백일홍 꽃잎을 건드리는 햇볕과 바람이 곱다. (4345.8.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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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먹고 산다나

 


  이웃마을에 간다. 일산에서 자동차를 끌고 찾아와 주신 아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이웃마을에 간다. 여느 때에 우리 식구는 두 다리로 걷거나 군내버스로 다닐 수 있는 곳만 찾아가지만, 이렇게 자동차를 끌고 찾아와 주신 분이 있어 홀가분하게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가 본다.


  우리 마을도 이웃한 마을도 온통 숲이다. 우리 마을도 이웃한 마을도 온통 논밭이다. 풀과 나무가 그득한 길을 푸른 내음 가득한 바람을 마시며 달린다. 옛날 사람들은 이웃마을에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며 찾아갈 때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옛날 사람들은 굳이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다니며 살았을까 헤아려 본다. 어쩌면 내 좋은 마을에서 예쁘게 살아가면서, 나와 같이 좋은 꿈과 사랑으로 살아갈 이웃하고 예쁘게 사귀려고 마실을 누렸을는지 모른다. 오늘날처럼 찻길이 널따랗게 뻥뻥 뚫리지는 않았을 테지만, 숲길을 걷거나 들길을 걷거나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천천히 풀과 나무와 꽃과 바람과 햇살과 하늘과 흙을 누렸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좋은 마음을 다스리면서 언제 어디에서라도 좋은 이야기를 길어올렸으리라 생각한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순간이동’이 있다지만, 굳이 순간이동을 하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한갓지게 들길과 숲길과 멧길을 거닐면서 좋은 숨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 느낀다.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가장 좋은 빛을 쬐고 가장 좋은 그림을 그리면서 고운 말을 나누었으리라 느낀다.


  바다를 낀 이웃마을 가게에서 동동주 한 병을 산다. 가게 할머니가 집에서 손수 담가서 판다고 한다. 아이들과 옆지기와 할머니와 다섯이 나란히 평상에 앉아 동동주 맛을 본다. 문득 할머니가 여쭌다. “뭘 먹고 산다나?”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잘 먹고 살아요.” (4345.8.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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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8-05 08:58   좋아요 0 | URL
할머님의 말씀이 새삼 우습네요.
걱정해주시는 말씀이 분명하신데..그광경이 왜 우습죠?
동네분들은 모두다 흙 만지는 일을 열심히 하거나,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어 먹고 살고 있다라고 여기실테죠?^^

숲노래 2012-08-05 09:13   좋아요 0 | URL
아뇨.
시골에서 농사짓거나 고기잡아서는
'돈이 안 되'고,
도시에서 회사를 다녀야
'돈이 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