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이야기

 


  마실길 나오며 시집 세 권째 읽는데, 퍽 따분해서 책읽기를 멈춘다. 시를 입으로 쓰거나 머리로 쓰면 ‘문학’은 될 수 있고 ‘책’으로 태어나기도 하겠지만, ‘이야기’는 못 되며 ‘삶’으로 스며들지는 못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참말 스스로 시가 좋고 사랑이 기쁘며 삶이 아름답다고 여길까. 시를 읽는 사람은 더없이 시가 예쁘며 이야기가 반갑고 삶이 빛난다고 여길까. 삶을 사랑하면서 시를 노래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4345.9.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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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북소리

 


  파주북소리 9월 19일, ‘도서관 날’ 행사로 낮 세 시부터 푸름이들과 ‘우리 말글 이야기마당’을 꾸리기로 했다. 얼추 70∼100 사람쯤 되는 푸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 하는데, 어떠한 마당이 될까 궁금하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부터 길을 나서는데, 낮 세 시까지 잘 닿을 수 있겠지. 오늘은 새벽길 자전거를 탄다. 새벽길 자전거는 무척 오랜만이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새벽길 자전거를 타지 못했는데, 가을날 선선한 바람을 쐬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개를 잘 올라야지. 이야기마당 자료집을 미처 택배로 부치지 못해 들고 간다. 부치려고는 했는데 인쇄소에서 늦게 나온데다가 태풍이 겹쳤다. 잘 달리자. 아이들과 옆지기한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자. (4345.9.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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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길 나서기 앞서

 


  새벽부터 멀리 길을 나서야 한다. 순천 기차역에서 아침 여덟 시 오십사 분 기차를 타야 하기에, 집에서는 다섯 시 반에 자전거를 몰고 읍내로 가려 한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아침 일곱 시 오 분에 있다. 이 버스를 타면 읍내에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일곱 시 오십 분 차로 타니까, 기차 때에 맞추지 못한다. 자전거를 몰아 읍내에서 여섯 시 사십 분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경기도 파주까지 혼자 다녀오는 길이기에 자전거를 탄다. 혼자 길을 나서는 만큼,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옆지기가 두 아이를 잘 돌보면서 살림을 건사하기를 바라면서 미리 이것저것 챙긴다. 태풍이 지나가느라 제대로 못한 빨래를 몽땅 해서 넌다. 잠자는 방 깔개를 말리고, 이불도 모두 해바라기를 시키며, 방바닥을 말끔히 훔친다. 이듬날 아침에 먹을 밥을 저녁에 해 둔다. 설거지를 마무리짓고, 밥찌꺼기를 치운다. 안 갠 빨래를 낱낱이 개서 제자리에 두고, 내 짐을 꾸린다.


  새벽 일찍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며 가야 하니까, 일찍 잠들어야 하리라 생각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딱히 하지도 못하겠다. 드러누웠다가 일어나고, 또 무엇을 더 해야 하나 싶어 이것저것 살핀다.


  바람이 잠든 저녁은 고요하다. 풀벌레 노랫소리만 가득하다. 바람소리는 조금도 없다. 두 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새근새근 잘 잔다. 아이들이 넓게 자리를 차지하기에 내가 누울 자리는 없다. 나는 옆방에 깔개를 깔고 누워야지. (4345.9.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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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서 해 보기

 


  아이가 스스로 무엇이든 해 보는 일이란 참 좋다고 느낀다. 나부터 내가 아이였을 적에 참말 무엇이든 다 해 보았을 테니까. 나는 입술과 혀를 불판에 대 보는 일까지 했다. 얼마나 뜨거운가를 손으로 만지기만 해서는 잘 모른다고 느껴 입술로 대 보고는 이레쯤 입술이 부어 애먹은 적 있는데, 어찌 보면 어리석지만 어찌 보면 어린이인 까닭에 스스로 하거나 겪고 싶은 일이 많았다.


  아이 손길은 많이 서툴기에 어른 눈길로는 조마조마해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무언가를 하거나 겪을 때에는 ‘모자람’도 ‘서툼’도 ‘어설픔’도 없다. 늘 새로운 삶이며 손길이요 이야기가 된다.


  때때로 거꾸로 펼쳐 넘기기도 하는 작은아이 ‘그림책 읽기’는 놀이와 같다고 느낀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모두 곧잘 책을 펼쳐 읽으니, 저도 시늉을 내며 논다. 차근차근 혼자서 해 보렴. 그러면 너도 예쁜 손으로 예쁜 책을 넘기며 예쁜 이야기 한 자락 얻을 수 있을 테지. (4345.9.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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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람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은 비를 몰고 찾아온다. 그동안 찾아온 바람은 우리 집에서 마당을 바라볼 적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었다. 어젯밤부터 찾아온 바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분다. 바람결이 바뀌었다. 이 바람은 전라남도에 들어설 적에 목포나 강진 쪽이 아닌 여수 오른쪽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바람결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늘 불던 바람결하고 다른 탓인지 모르겠는데, 집 오른쪽 시멘트담이 와르르 하고 무너진다. 지난 바람이 불 적에 마당 오른쪽 시멘트담이 무너지더니, 이번에는 집 오른쪽 시멘트담이 무너진다.


  시멘트담을 무너뜨린 바람이 차츰 잦아들 무렵, 언뜻선뜻 해가 비친다. 해가 쨍쨍 내리쬐며 빗물을 모두 말리는 데에도 바람은 불다가 멎다가 한다. 하늘 곳곳에 파란 빛깔 눈부시게 드러난다. 문을 꽁꽁 닫고 집에서 놀던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에 내려선다.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논다. 햇살을 바라보며 논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논다. 이 바람이 부는데에도, 또 바람 따라 비가 퍼붓는데에도, 풀벌레는 곳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바람소리 사이사이 풀벌레도 나즈막하게 노랫소리 들려주었다.


  저녁이 가고 새 아침이 찾아들면 언제 바람이 불었느냐는듯이 햇살이 따사로이 들판을 내리쬘 테지. 알맹이 튼튼히 여물 무렵 찾아든 비바람에 흔들리던 나락은 따순 햇살을 받아먹으며 노랗디노랗게 익겠지. (4345.9.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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