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4] 찬바람이



  찬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선풍기(扇風機)’라고 합니다. 더운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온풍기(溫風器)’라고 해요. 우리 집 큰아이가 ‘온풍기’를 보더니 “저것 선풍기야?” 하고 묻기에 “응? 아니야. 선풍기 아니야.” 하고 말하니, “그러면 뭐야?” 하고 묻고, “더운바람이 나오는 아이야.” 하고 말해 줍니다. “그러더니 ‘더운바람이’겠네?” 하고 말합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선풍기란 ‘찬바람이’입니다. 온풍기란 ‘더운바람이’입니다. 그렇지요. 찬바람이 나오고 더운바람이 나오니까, 이러한 모습대로 이름을 붙이면 돼요. 아이들도 알고 어른들도 모두 아는 가장 쉽고 예쁜 말을 쓰면 됩니다. 4348.4.2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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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6) 시작 75


그렇게 43일간의 기도를 이어가던 어느 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샤워와 빨래, 식사를 마친 뒤 걷기 시작했다. 수없이 반복해 온 질문이 내 안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신지아-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 32, 221쪽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 몸이 아파 왔다

→ 몸이 아팠다

→ 몸이 차츰 아팠다

 걷기 시작했다

→ 걷기로 했다

→ 걸었다

→ 천천히 걸었다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 궁금함이 다시 나왔다

→ 궁금함이 다시 터져나왔다

→ 생각이 다시 샘솟았다

 …



  아프지 않던 몸이 아플 적에는 “몸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이때에는 “몸이 아파 온다”처럼 적을 수도 있습니다. 꾸밈말을 넣어서 “몸이 차츰 아프다”라든지 “어쩐지 몸이 아프다”라 할 수 있고, “몸이 조금씩 아프다”라든지 “몸이 슬슬 아프다”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적에는 이 일을 ‘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시작’이라는 한자말은 군더더기입니다. 궁금한 말이나 질문이 다시 나온다고 할 적에도 ‘시작’은 군더더기입니다. ‘다시’라는 말마디를 적은 만큼, “다시 나온다”나 “다시 터져나온다”처럼 적으면 돼요. 4348.4.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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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흔사흘에 걸친 기도를 이어거단 어느 날 몸이 아팠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씻고 빨래하고 밥을 먹은 뒤 걸었다. 수없이 되물었던 말이 내 안에서 다시 나왔다


“43일간(四十三日間)의 기도”는 “마흔사흘에 걸친 기도”나 “마흔사흘 동안 기도”로 손보고, “샤워(shower)와 빨래, 식사(食事)를 마친 뒤”는 “씻고 빨래하고 밥을 먹은 뒤”로 손봅니다. “반복(反復)해 온 질문(質問)이”는 “되풀이해서 물은 말이”나 “되물은 말이”로 손질합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8) 시작 76


차례에 적힌 대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개똥벌레가 첫째지? 개똥벌레가 뽐내며 나서자 하얀이 눈이 반짝 빛나기 시작했어

《김향이-나는 책이야》(푸른숲,2001) 37쪽


 이야기를 시작하자

→ 이야기를 하자

→ 이야기를 꺼내자

→ 이야기를 들려주자

 눈이 빛나기 시작했어

→ 눈이 빛났어

→ 눈이 천천히 빛났어

 …



  이야기를 하거나 말을 할 때에는 언제나 그냥 ‘합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시작’하지 않아요. 책을 읽든 노래를 부르든 그냥 책을 읽고 노래를 부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눈이 빛난다고 할 적에도, “눈이 빛났어”처럼 적으면 됩니다. 또는 “눈이 천천히 빛났어”나 “눈이 차츰 빛났어”처럼 적습니다. “눈이 가만히 빛났어”나 “눈이 살며시 빛났어”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8.4.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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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적힌 대로 이야기를 하자. 개똥벌레가 첫째지? 개똥벌레가 뽐내며 나서자 하얀이 눈이 반짝 빛났어


‘차례(次例)’는 한국말로 ‘벼리’로 손질할 수 있으나,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여기’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9) 시작 77


1961년에 베틀린 장벽을 쌓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서 찍었던 사진의 후속편이었다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171쪽


 장벽을 쌓기 시작했을 때

→ 담벼락을 쌓을 때

→ 담을 처음 쌓을 때

→ 담을 쌓으려 할 때

 …



  어떤 일을 처음 할 적에는 ‘처음’이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담벼락을 처음 쌓고, 사진도 처음 찍습니다. 때로는 ‘처음’이라는 낱말조차 없이 “담벼락을 쌓을 때”와 같이 쓰면 돼요. 4348.4.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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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베를린 담벼락을 쌓을 때, 내가 가서 찍었던 사진 뒷이야기이다


‘장벽(障壁)’은 ‘담벼락’이나 ‘가림담’이나 ‘담’으로 손질하고, “사진의 후속편(後續編)이다”는 “사진 뒷이야기이다”나 “사진 뒤에 이어 찍은 이야기이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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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5) 덕분


크릭터는 잘 먹은 덕분에, 키도 더욱 길어지고 힘도 더욱 세졌어

《토미 웅거러/장미란 옮김-크릭터》(시공주니어,1996) 11쪽


 잘 먹은 덕분에

→ 잘 먹었기 때문에

→ 잘 먹어서

→ 잘 먹었기에

 …



  한자말 ‘덕분(德分)’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은혜(恩惠)’는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을 뜻한다고 합니다. ‘신세(身世)’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폐를 끼치는 일”을 뜻하고, ‘혜택(惠澤)’은 “은혜와 덕택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폐(弊)’는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을 뜻하고, ‘덕택(德澤)’은 “= 덕분”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덕분’이라는 한자말은 여러 한자말을 돌고 돌아서 다시 ‘덕분’으로 갑니다. ‘덕분 = 덕분’으로 풀이하는 오늘날 한국말사전인 셈입니다.


  그래도 이모저모 따지고 보니, ‘덕분·은혜·신세·혜택·폐·덕택’ 같은 한자말은 ‘도움’이나 ‘고마움’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쓰는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한테 고마움을 베푸는 일을 가리키는 한자말이고, 내가 누구를 돕는 모습을 나타내는 한자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 선생님 때문에

→ 선생님이 도우셔서

→ 선생님이 계셔서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 고맙게 좋은 구경 했습니다

→ 도움 받아 좋은 구경 했습니다


  선생님이 ‘도우셔서’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힘이 되어’ 주었으니 어떤 일을 잘 합니다. 선생님이 ‘계시기’만 해도 크게 힘이 됩니다. 누군가 우리를 이끌어서 좋은 구경을 합니다. 도움을 받아서 좋은 구경을 하고, 고맙게 좋은 구경을 해요.


 두 형님 덕분입니다

→ 모두 형님 때문입니다

→ 모두 형님 힘입니다

→ 모두 형님이 도와서입니다

 그동안 걱정해 준 덕분에

→ 그동안 걱정해 주셔서

→ 그동안 걱정해 주셨기에

→ 그동안 걱정해 주셨기 때문에


  한자말 ‘덕분’을 줄여서 ‘덕(德)’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차근차근 한국말로 손질해 주면 됩니다. 말흐름에 녹이면 돼요. 말결을 알맞게 살피면 됩니다. 4348.4.18.흙.ㅎㄲㅅㄱ



덕분(德分) :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 선생님 덕분에 대학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 제가 잘된 것은 모두 형님 덕분입니다 /

     그동안 걱정해 준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1) 사모


실버 부인이 바로 호피 씨가 남몰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호피 씨는 벌써 수년 전부터 그저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면서 실버 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로알드 알/지혜연 옮김-아북거 아북거》(시공주니어,1997) 14쪽


 실버 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 실버 씨를 사랑했다

→ 실버 씨를 사랑해 왔다

→ 실버 씨를 사랑하며 지냈다

 …



  한자말 ‘사모(思慕)’는 “1.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함 2. 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름”을 뜻한다고 해요. 이 보기글을 보면, 앞쪽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하고, 뒤쪽에서는 “사모하고 있었다”라 말합니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은 앞과 뒤가 똑같으니, 앞뒷말은 똑같은 뜻으로 쓴 셈입니다.


 사모의 정 → 그리운 마음 / 그리워하는 마음

 사모하는 사람 → 사랑하는 사람 / 그리운 사람

 사모하고 존경하는 정 → 깊이 따르며 섬기는 마음

 부처님을 사모하는 마음 → 부처님을 헤아리며 섬기는 마음


  ‘그리움’과 ‘사랑’은 다릅니다. 두 낱말은 다른 자리에 다르게 써야 합니다. 다만, 이 보기글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 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려 합니다. 그러니, 이런저런 낱말을 여러모로 섞어서 쓸 만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자리에서는 “실버 씨를 마음 깊이 생각해 왔다”라든지 “실버 씨를 애틋하게 그리워 했다”처럼 손질할 만합니다. 앞말과 뒷말 모두 ‘사랑’이라 적든지, 뒤쪽은 ‘깊이 생각하다’나 ‘그리워하다’로 적든지 해야 알맞습니다.


 그에 대한 사모의 마음이 간절하다

→ 그를 그리는 마음이 애틋하다

→ 그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사모’라는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써야 할 테지만, 이런 한자말은 어린이한테 너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한국말로 ‘그리다’가 있고 ‘애틋하다’나 ‘애타다’나 ‘애끓다’나 ‘애끊다’가 있어요. 이 나라 어린이는 한국말을 알뜰살뜰 배워서 때와 곳에 알맞게 슬기롭게 쓸 수 있기를 빕니다. 4348.4.1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실버 씨가 바로 호피 씨가 남몰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호피 씨는 벌써 여러 해 앞서부터 그저 툇마루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면서 실버 씨를 사랑해 왔다


“실버 부인”이라는 말은 알맞지 않습니다. ‘부인(夫人)’이나 ‘부인(婦人)’ 모두 혼인한 여자를 가리킵니다. ‘핫어미’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쓰는 말은 틀리지요. 이 글월에 나오는 두 사람은 혼인을 안 한 사람이거든요. 남자를 ‘호피 씨’로 적듯이 여자도 ‘실버 씨’로 적어야 합니다. 아니면, ‘호피 아저씨’나 ‘실버 아주머니’로 적어 줍니다. “수년(數年) 전(前)부터”는 “여러 해 앞서부터”로 손질하고, ‘베란다(veranda)’는 ‘툇마루’나 ‘쪽마루’로 손질합니다.



사모(思慕)

1.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함

   - 사모의 정 / 그에 대한 사모의 마음이 간절하다 / 사모하는 사람

2. 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름

   - 학문적으로 사모하고 존경하는 정이 깊었다 / 부처님을 사모하는 마음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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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56 : 깊게 심호흡



에바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밤 공기는 부드러웠고, 하늘에는 별들이 아주 높이 떠 있었다

《미리암 프레슬러/정지현 옮김-씁쓸한 초콜릿》(낭기열라,2006) 67쪽


 깊게 심호흡을 했다

→ 깊게 숨을 쉬었다

→ 깊게 숨을 마셨다

→ 깊게 숨을 들이켰다

→ 한숨을 쉬었다

 …



  한자말 ‘심호흡’은 ‘깊다(深) + 숨(呼吸)’으로 엮은 낱말입니다. 얼개 그대로 “깊은 숨”을 가리키는 ‘심호흡’입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깊은 숨”이니까, “깊은 심호흡”처럼 적은 보기글은 겹말이 되고 맙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뱉고” 같은 보기글이 있는데, 이때에도 겹말이 되고 말아요. 깊이 쉬든 크게 쉬든 모두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뱉고”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굳이 한자를 빌어 ‘심호흡’처럼 쓰기보다는, ‘깊은숨’이나 ‘큰숨’이나 ‘한숨’처럼 한국말로 쓰면 됩니다. 4348.4.1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에바는 한숨을 쉬었다. 밤 바람은 부드러웠고, 하늘에는 별이 아주 높이 떴다


“밤 공기(空氣)”는 “밤 바람”으로 다듬고, “높이 떠 있었다”는 “높이 떴다”로 다듬습니다.



심호흡(深呼吸) : 의식적으로 허파 속에 공기가 많이 드나들도록 숨 쉬는 방법

   -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뱉고 나서는


..


겹말 손질 355 : 나란히 평행선



지금 이런 독백을 읽을거리로 내놓고 있는데, 이것은 사진과 나란히 평행선을 달린다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38쪽


 사진과 나란히 평행선을 달린다

→ 사진과 나란히 달린다

→ 사진과 나란한 금으로 달린다

→ 사진과 나란히 있다

 …



  “나란히 평행선을 달린다”처럼 쓰는 글이 겹말인 줄 미처 못 깨닫는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평행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행선’은 “평행한 선”을 뜻합니다. 한자말 ‘평행(平行)’은 “나란히 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평행선’을 한국말로 옮기면 “나란한 금”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나란한 금으로 달린다”라든지 “나란히 달린다”로 손질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사진과 나란한 금으로 달린다”라고 하니까 어쩐지 어설픕니다. “이 글은 사진과 나란히 달린다”라 하더라도 어설프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 글월은 더 손질해야 합니다. “이 글은 사진과 나란히 있다”라든지 “이 글은 사진과 함께 있다”쯤으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4348.4.1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제 이런 혼잣말을 읽을거리로 내놓는데, 이 글은 사진과 나란히 있다


‘지금(只今)’은 ‘이제’로 손보고, ‘독백(獨白)’은 ‘혼잣말’로 손보며, “내놓고 있는데”는 “내놓는데”로 손봅니다. ‘이것은’은 ‘이 글은’으로 손질합니다.



평행선(平行線) : 같은 평면 위에 있는 둘 이상의 평행한 직선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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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51 ‘거듭나다’와 ‘바뀌다·달라지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어제와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어제와 사뭇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몸을 바꾸었을까요? 네, 몸을 바꾸었을 테지요. 몸은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마음을 바꾸었으니, 몸은 마음에 따라 바뀌었을 테지요.


  마음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그동안 흘러온 결을 고스란히 내려놓고 새로운 길로 가려 할 때에,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동안 흘러온 결을 하나도 안 내려놓으려 한다면, 나는 하나도 안 바뀝니다. 하나를 내려놓으면 하나가 바뀔 테고, 모두 내려놓으면 모두 바뀝니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달라지기는 하되 새롭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달라지기는 하는데 왜 새롭지 못할까요?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옮기느라 ‘다른 모습’은 되지만, 정작 마음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북돋우지 않으니, 겉모습은 ‘다르게’ 드러나지만, 속알맹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때에는 ‘달라지는 쳇바퀴’에 갇힌 모습입니다.


  달라지거나 바뀌기에 한결 낫거나 더 낫지 않습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달라지거나 바뀔 수 있습니다. 아름답게 달라질 수 있고, 엉터리로 바뀔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모습은 늘 달라지거나 바뀝니다. 다시 말하자면, 달라지거나 바뀌는 모습은 우리 삶자리에서 첫째 조각(1차 단계, 1차원) 언저리입니다. 좋고 나쁨을 따지는 얼거리예요. 크게 달라지거나 많이 달라져서 둘째 조각이나 셋째 조각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지거나 바뀌는 모습은, 언제나 이 자리에서만 맴돕니다. 더 나아가거나 뻗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달라지거나 바뀔 적에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자리만 옮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갔다가, 다시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는 ‘바뀜·달라짐’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면, 눈을 뜨고 깨어나야 합니다. 거듭나야지요. 새로 태어나야지요.


  거듭나거나 새로 태어나는 모습도 ‘바뀜·달라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새로 태어남’은 바뀌거나 달라진다는 말로는 모두 나타낼 수 없어요.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삶은 ‘새로움’입니다. 허물을 내려놓고 나비로 깨어난 삶은 ‘오직 새로움’입니다. 허물을 몽땅 이곳에 두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삶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새로움’입니다.


  ‘새롭게’ 나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바뀌거나 달라지더라도 쳇바퀴일 뿐입니다. 그래서, 바뀌거나 달라지는 모습에 갇혀요. 바뀌기는 늘 바뀌는데 ‘새로운’ 숨결이 없다면, 바뀌거나 말거나 늘 같습니다.


  우리는 굳이 안 바뀌어도 되고, 굳이 너와 내가 ‘달라 보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꾸려는 생각이 아니라, 거듭나려는 생각일 때에 새롭습니다. ‘너와 내가 다른 모습’이라는 겉차림에 매달리지 말고, 새로 태어나려는 생각일 때에 기쁨이 흘러넘쳐 사랑이 됩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만나서 이루는 삶’이 아닙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은 ‘이제부터 새로 태어나서 이루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나서 이루는 삶’이기에 싸움이 그치지 않고, 좋고 싫다는 뭇느낌에 얽매입니다. 이래야 좋고 저러면 나쁘다고 하는 뭇느낌에 얽매인 삶이라면, 이때에는 ‘사랑’이 아닙니다.


  거듭나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삶일 때에 비로소 사랑입니다. 거듭나서 새로 태어나는 넋일 때에 비로소 사람입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나누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홀가분하게 서려면, 날마다 늘 새로 태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어제와 다르다’에 머물지 말고, ‘나는 어제에서 오늘로 새로 태어난다’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오늘에서 모레로 새로 태어난다’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쳇바퀴를 도는 사람은 ‘날짜만 다른 나날’을 똑같이 보냅니다. 굴레에 갇힌 사람은 ‘자리만 바꾼 나날’을 똑같이 보냅니다. 내 바보스러운 버릇이나 몸짓을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바꾸거나 달라지도록 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꾸거나 달라지도록 하더라도 늘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아요. 우리는 누구나 새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 깨어나서 아름답게 눈을 뜰 수 있습니다.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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