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1.2.


《들어 봐! 들리니?》

앤 랜드 글·폴 랜드 그림/이상교 옮김, 책속물고기, 2017.11.5.



눈을 감아도 온통 새까맣지 않다. 눈을 감을 적에는 눈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니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빛깔을 받아들인다. 귀를 닫으면 온통 고요하지 않다. 귀를 닫을 적에는 귀 아닌 마음으로 들으니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맞아들인다. 우리가 손을 쓰지 않는다면 손짓이나 손길이 아닌 마음짓이나 마음길로 서로 어루만지면서 아끼는 길을 찾을 수 있겠지. 우리가 다리를 쓰지 않는다면 나들이를 다니는 몸짓이 아닌 마음으로 찾아가는 나들이로 이웃을 살피는 꿈을 그릴 수 있겠지. 그림책 《들어 봐! 들리니?》는 소리를 그림하고 빛깔로 나타낸다. 삶을 틀에 박히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생각을 보여준다. 한겨울에도 제법 포근한 고흥. 새해 첫날을 앞두고 아이들하고 마을 빨래터를 치운다. 작은아이는 아버지처럼 맨발로 빨래터에 들어가 신나게 물이끼를 걷는다. 겨울에도 안 어는 샘물은 어떻게 이런 따뜻한 기운일까? 여름에는 더욱 시원한 샘물은 어쩜 여름에 그토록 시원한 기운일까? 우리 입에서 터져나오는 소리, 우리를 둘러싼 소리, 우리 보금자리에서 짓는 소리, 구름이 바람을 타는 소리, 이 모두를 새해에 새삼스레 헤아려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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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1.1.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글, 창비, 2017.12.8.



귀화(歸化), 비문(碑文), 살(肉)의 눈부심, 만개(滿開), 절(寺) 벽, 창변(窓邊), 내세(來世)의 이야기, 소(沼), 고도(古都), 채식(菜食), 사색(思索), 생(生), 여법(如法)한 나라, 내생(來生), 산(山)집 …… 같은 글월을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시를 쓸 적에 이렇게 한자를 신나게 써야 할까? 이런 글월은 한자 아니라면 밝히거나 나타낼 길이 없을까? 문학이란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는 글쓰기일까? 나이가 제법 있는 이는 한자를 신나게 시에 넣고, 나이가 제법 적은 이는 영어를 신나게 시에 넣는다. 시란 누가 쓰고 누가 읽을까? 시는 어느 삶자리에 머물까? 시를 써서 나누려는 이는 어떤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일까? 시를 묶어서 책 하나로 나누려는 뜻은 어디에 있을까? 인천에서 나고 자란 뒤 문예창작학과 교수라든지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하는 분이 선보인 시집을 고흥 시골버스로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읽다가 얹힐 뻔하다. 삶을 써야 시라고 이야기하는 글쓴이한테 ‘삶을 담는 말’이란 무엇일까? 어떤 삶을 담는 말일까? 어떤 삶을 담는 말로 어떤 삶을 노래하려는 이야기일까? 고흥 읍내에 닿아 시집은 가방에 집어넣고 큰아이 손을 잡고 저잣마실을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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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7.12.31.


《여자 제갈량 1》

 김달 글·그림, 레진엔터테인먼트, 2015.7.1.



마음껏 생각날개를 펴는 만화책이란 참으로 재미있다. 이제껏 이루지 못했거나 하지 못했다고 여기던 일도 만화로 새롭게 그리거나 펼친다. 앞으로는 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 지난날 이러한 모습이었으면 한결 아름답거나 즐거웠겠지 하는 마음을 만화로 빚는다. 사내들이 죽이고 죽는 다툼질이 흐르는 ‘삼국지연의’를 다르게 읽어내어 다르게 그리는 《여자 제갈량》 첫째 권을 읽는다. 한 해를 마무르는 마음으로 만화책 한 권을 누린다. 첫째 권을 보고 나서 다음 권을 보자고 생각했는데, 막상 첫째 권을 다 읽고 나니 다음 권을 함께 장만하지 않은 내가 살짝 아쉽다. 이야기가 조금 늘어지는 듯하고, 흐름이 오락가락하기는 하며, 군말 같은 이야기도 있구나 싶지만, ‘남자 제갈량’이라든지 ‘남자 삼국지연의’이라 할 적에는 생각해 보기 어려운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재미있다. 그리고 왜 그리도 많은 사내는 지난날 싸울아비로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했고, 왜 그리도 많은 사내는 이름을 날리거나 힘을 거머쥐려고 온힘을 쥐어짰나 싶기도 하다. 나라를 가시내가 다스렸어도 군대를 거느리거나 전쟁이 잦았을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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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7.12.30.


《홍대앞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유상현 글·사진, 눈빛, 2017.7.21.


다 같이 모여 노래를 부른다. 때로는 혼자가 되어 노래를 부른다. 서로 아끼면서 노래를 부른다. 더러 다투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울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란, 참말 어디에나 있다. 서울 홍대앞 무대에도 있고, 시골 논밭에도 있다. 부산 길거리에서 길손을 바라보며 노래를 할 수 있고, 바다에서 배를 몰면서 노래를 할 수 있다. 사진책 《홍대앞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은 서울 홍대앞에서 ‘밑무대’ 노래님을 벗삼은 이야기를 사진하고 짤막한 글월로 들려준다. 그렇지. 노래하는 이도 즐겁고 노래를 듣는 이도 즐겁다면 이만한 사진하고 글이 나올 수 있지. 이제껏 이만한 사진하고 글이 나오지 않았다면, 한국 사회가 사진을 보는 눈이 얕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노래를 즐기는 마음이 흐렸다고 해야 할까. 이마를 타고 땀이 흐른다. 악기를 켜거나 치거나 타거나 두들기거나 뜯는 손에도 땀이 맺힌다. 온몸을 불살라서 노래를 내뿜는다. 뜨겁게 타오르고 고요히 식는다. 노래는 한 줄기로 흐른다. 들을 적시는 물줄기처럼. 숲을 이루는 나무줄기하고 풀줄기처럼. 해님이 베푸는 빛줄기처럼. 싱그러이 속삭이는 바람줄기처럼. 그리고 너랑 나 사이를 오가는 마음줄기처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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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1-01 22:57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며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8-01-02 06:29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도 언제나 즐거우며 새로운
하루를 짓는
2018년 누리셔요. 고맙습니다 ^^
 

오늘 읽기 2017.12.29.


《그리는 대로》

 피터 레이놀즈 글·그림/엄혜숙 옮김, 나는별, 2017.10.27.


시키는 대로 그릴 까닭이 없지. 하라는 대로 그릴 까닭이 없어. 익숙한 대로 그릴 까닭이 없단다. 아는 대로 그릴 까닭은? 글쎄, 아리송한걸. 그렇다면 아는 대로 그리지도 말아 보자. 보는 대로 그릴 수도 있지만, 보는 대로만 그리지 않을 수 있어. 그러면 어떻게 그리라는 소리냐고?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려 보자. 눈을 감고서 마음결이 흐르는 결을 살펴서 그려 보자. 아니, 그림을 그리는데 눈을 감자니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로 느낄지 모르겠네. 그렇지만 말이야, 눈을 감고서 빛깔을 느껴 보면 어떨까? 눈을 감은 채 별빛하고 햇빛이 어떻게 달리 스미는가를 느끼고서 그려 보자. 눈을 감고서 할머니 손이랑 어머니 손이랑 동생 손을 가만히 쓰다듬은 뒤에 그림을 그려 보자. 눈을 감고서 붓이랑 종이랑 물간을 손끝으로 가만히 만져 보고서 이 결을 고스란히 그림에 담아 보자. 우리는 얼마든지 늘 새롭고 즐거우면서 재미나게 그림놀이를 할 수 있어. 우리는 그림짓기를 하는 슬기로운 사람이지. 그림책 《그리는 대로》가 차분히 이야기를 하네. 하늘은 한 가지 하늘만 있지 않다고. 바람도 한 가지 바람만 있지 않다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고 다르면서 아름다운 숨결이라고. 두 아이를 이끌고 면소재지로 자전거를 달렸다. 온갖 증명서를 떼고 나서 큰아이 통장을 새로 받는다. 겨울바람 잔뜩 맞으며 신나게 아침을 누렸다. 이 아침빛이란 무엇일까.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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