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2.15.


《내일의 노래》

고은 글, 창작과비평사, 1992.4.25.



  이튿날이 설인 듯하다. 아니 이튿날이 설일 테지. 오늘은 무척 푹하구나 싶어 아침부터 방문을 열어젖힌다. 어제는 처음으로 평상에 앉아서 포근한 볕살을 누리며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오늘은 한결 포근해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저녁에 해가 진 뒤에는 살짝 쌀쌀하지만 좋다. 작은아이는 우리 뒤꼍에 봄꽃이 폈다며 빙그레 웃는다. 저녁이 되니 그동안 캄캄하던 마을이 온통 불빛잔치이다. 올해에도 불꽃을 터뜨릴 서울아이가 있으려나. 책숲집에 가서 《내일의 노래》를 챙긴다. 1992년에 나온 고은 시집을 읽어 본다. 책끝에 송기숙 소설가가 고은 시인하고 얽힌 이야기를 적고, 고은 시인 스스로 니나노집 사람들하고 술자리를 마주한 이야기를 적는다. 그래, 그무렵에는 그들 몸짓도 술자리도 술짓도 ‘객기·기행’ 따위로 얼버무렸지. 허벌난 술짓을 벌인 뒤에는 ‘술김’이라는 말로 덮어버렸지. 이러면서도 한 가지를 느낀다. 고은이라는 이는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술에 절어 살면서도 용케 글을 썼네. 그러나 송기숙 소설가가 책끝에 적었듯이 이들은 술에 절어 사느라 ‘강의·강연’에서 해롱거리기 일쑤였단다. 그러고 보니, 2008년이던가 2009년에 신경림 시인이 술에 절어 해롱해롱 지분거리는 강의를 구경한 적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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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4.


《재일의 틈새에서》

김시종 글/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12.29.



  설을 앞두고 읍내에 과일을 사러 다녀온다. 설 언저리에는 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가 매우 한갓지다. 그러나 읍내에는 자동차물결로 엄청나다. 더구나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마저 넘친다. 설 언저리에는 그동안 서울이며 큰도시에 살던 사람이 시골로 몽땅 찾아드니 찻길에는 자동차로, 거님길에는 사람으로 물결이 친다. 시골버스도, 짐차도, 서울서 온 자가용도 찻길에서 꼼짝을 못한다. 나는 《재일의 틈새에서》라는 살짝 도톰한 책을 챙겼다. 잘 챙겼지 싶다. 뜻밖에 길에서 오래 보내야 했으니.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나날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일본말이나 조선말을 어떻게 배웠는가를 낱낱이 밝힌다. 훌륭한 역사 이야기이지 싶다. 그런데 대학교수인 옮긴이는 ‘번역 아닌 토씨 바꾸기’만 했구나 싶어서, 재일 지식인이나 한국 지식인이 어떤 ‘일본 말씨·번역 말씨’를 쓰는가를 엿볼 수 있다. 긴 나날에 걸쳐 쓴 글을 묶다 보니 똑같은 줄거리가 자꾸 나온다. 똑같은 줄거리라면 덜어내어 부피를 줄여도 되었지 싶다. 옮김말도 엮음새도 아쉽다. 책이 퍽 무겁다. 우리가 돌아볼 무게는 ‘재일·남북녘·역사·갈라섬·제국주의·독재·따돌림·가르침’일 테지. 시골버스에 앉아서 읽어도 책무게 탓에 손목이 저리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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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3.


《환생동물학교 1》

엘렌 심 글·그림, 북폴리오, 2018.2.8.



  《고양이 낸시》를 즐겁게 보았을 뿐 아니라, ‘낸시’에 나오는 아이들을 종이인형으로 그려서 노는 우리 집 두 아이는 《환생동물학교》 첫째 권이 집에 오니 얼른 읽고 싶은 눈치. 나는 기껏 예순 쪽쯤 펼치다가 아이들 손으로 넘어간다. 짐승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자잘한 영어가 꽤 눈에 뜨인다. 이를테면 기차가 달리는 소리를 ‘츄츄’로 적지만 이는 영어이다. ‘치치’는 일본말이고, 한국말은 ‘칙칙·칙칙폭폭’이다. 몇 권으로 이야기를 이을는지 모르겠는데, 조금 더 차분히 삶·죽음하고 사람·목숨하고 이승·저승 얼거리를 짚을 수 있기를 빈다. 이쁜 그림은 한때로 그칠 뿐, 마음으로 남아서 새로운 이야기꽃으로 피어나는 만화책이 되려면 더 깊고 너르면서 사랑스러운 숨결을 건드리면서 가꾸는 길을 보여야지 싶다. 겨울이 저무는 바람이 포근하다. 낮 두 시쯤 빨래를 마쳐서 마당에 널었는데, 저녁을 앞두고 다섯 시에 걷어도 거의 다 마른다. 좋네. 이 포근한 남녘 고장이란. 잠자리 들기 앞서 다 같이 모여 촛불을 바라보며 새 하루를 꿈꾸고, 아이들이 잠든 뒤에는 덜 마른 빨랫거리를 피아노방에 놓고서 밤새 마저 말린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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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2.


《솔로 이야기 6》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대원씨아이, 2018.1.15.



  장만한 지 한 달 만에 《솔로 이야기》 여섯째 권을 편다. 오랜만에 나온 《솔로 이야기》 여섯째 권을 후다닥 읽어치우고 싶지 않아 기다렸다. 일산마실을 다녀오며 하룻밤 느긋하게 쉬어 주어야 하니, 잠자리에 모로 누워서 야금야금 읽는다. 2012년에 첫째 권이 나왔으니 여섯째 권까지 꽤 걸린 셈인데, 여섯 권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사랑을 마주하면서 저마다 다른 살림을 지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키우는 이야기이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뿐 아니라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무럭무럭 자라지 않을까? 이웃들 삶을 따스히 바라보면서 살뜰히 어루만질 줄 아는 만화를 빚는 이부터 스스로 기쁘게 자랄 테니, 이 만화를 보는 우리도 스스로 기쁘게 자랄 기운을 얻으리라 본다. 혼자 놀거나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닌 ‘내 힘으로 씩씩하게 서기’를 다루는 만화이다. 이 땅에 태어난 바로 나를 제대로 돌아보고 아낄 줄 아는 마음을 길러, 내 곁에 있는 아름다운 이웃을 더없이 아름답게 아낄 수 있는 손길이 되는 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대여섯 살쯤 나이라면 이 만화를 읽을 만하지 싶다. 나이든 어른도 이 만화를 되새기면서 생각을 찬찬히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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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1.


《거미가 궁금해》

이영보 글·사진, 자연과생태, 2018.1.29.



  곁님 동생하고 짝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함께 사는 멋진 동생이 있다. 일산마실을 하면서 저녁에 이녁한테서 멋진 이야기를 듣는다. 새내기를 몽땅 불러서 주먹다짐에 얼차려로 길들이려 하는 선배가 있기에 이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는 대학교에 맞으려고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말을 했단다. 이런 말을 듣다가 내 지난날을 떠올렸다. 나도 대학교 새내기 적에 다섯 살 위인 선배가 우리 새내기들이 술을 안 마신다면서 난데없이 마구잡이로 때리고 얼차려를 시켜서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대학교에 와서 술을 안 먹으면 맞아야 합니까? 뭐 하는 짓입니까?” 하고 따졌다. 이듬해에는 엉터리 강의를 일삼는 전공 교수한테 “앵무새 기르는 강의를 스무 해 넘게 우려먹어도 안 부끄럽습니까? 누구를 바보로 압니까?” 하고 따졌지. 우리 둘레에는 바보짓 웃사람이 아직 많다. 그렇지만 참살림을 지으려 하는 또래나 뒷사람도 무척 많지 싶다. 《거미가 궁금해》를 읽으면서 거미 한살이를 쉽고 또렷하며 재미나게 들려주는 줄거리를 냠냠 받아먹는다. 바보짓 웃사람도 있지만, 슬기로운 웃어른도 많겠지? 앞으로 내가 만날 아름다운 웃어른을 그려 본다. 내 뒷사람한테 나 스스로 아름다운 앞사람으로서 즐겁게 꿈꾸며 노래하자고 되새겨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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