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2.5.


《거룩한 허기》

전동균 글, 랜덤하우스, 2008.2.25.



  겨울이니 물이 얼겠지. 우리 집에 깃들거나 찾아오는 마을고양이한테 주는 물그릇도 얼고, 마당에 넌 빨래도 언다. 사흘거리로 추위랑 포근함이 오갔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일이 되고, 추위도 포근함도 그저 길게 이어지는 나날이다. 이처럼 달라진 날씨는 우리한테 어떤 뜻을 속삭이는 셈인가 하고 헤아려 본다. 아침을 열고 낮을 보내며 저녁을 맞이하는 하루란 우리한테 무엇이 될 만한가 하고 돌아본다. 꿈을 짓는 하루인가, 쳇바퀴로 되풀이하는 하루인가, 새롭게 배우는 하루인가, 배울 틈이 없이 밀리거나 휩쓸리는 하루인가. 그림놀이를 하는 아이 곁에서 《거룩한 허기》라는 시집을 읽는다. 글쓴이가 아버지를 그리며 쓰는 시라든지, 가까운 이웃을 생각하며 쓰는 시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곁사람 이야기가 아닌 머릿속으로 엮어서 내놓는 시에는 군더더기가 있다. 무엇보다 시집 끝자락에 붙는 풀이글은 온통 군더더기이지 싶다. 왜 거의 모든 시집은 끝자락에 군더더기라 할밖에 없이 늘어지고 딱딱하며 따분한 풀이글을 문학평론가한테서 받을까? 우리가 이렇게 읽든 저렇게 읽든 대수롭지 않으니, 터무니없이 군더더기인 풀이글은 치워버리면 좋겠다. 군더더기 풀이글을 실을 자리를 비우거나 시를 열 꼭지 더 싣는다면 좋겠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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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4.


《백귀야행 26》

이마 이치코 글·그림/한나리 옮김, 시공사, 2017.12.25.



  내가 손을 내밀어도 맞은쪽에서 힘을 싣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한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맞은쪽에서 스스로 힘을 내면 스스로 일어선다. 나를 둘러싼 궂은 것이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아 일부러 곁사람을 두지 않을 수 있지만, 나 스스로 씩씩하고 곁사람도 스스로 씩씩하면 궂은 것은 우리를 터럭만큼도 못 건드린다. 서로 마음으로 하나라는 대목을 새길 수 있으면 즐거우면서 튼튼하다. 살몃살몃 이야기 끈을 잇는 《백귀야행》이 어느덧 스물여섯째 권이다. ‘사람만 보는 이곳’에서 ‘사람 아닌 숨결도 보는’ 아이가 새로 나온다. 그런데 사람만 보는 이들은 정작 사람조차 깊거나 넓게 바라본다고는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사람 아닌 숨결을 보는 아이가 더 깊거나 넓게 바라볼는지 모른다. 다만 사람만 보는 곁사람한테서 사랑을 못 느끼다 보니 이리저리 휘둘리기 쉽다.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어른이 나타날까. 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설까. 사람만 보는 사람들은 사람 속내를 함께 볼 수 있을까. 사람 아는 숨결을 보는 아이는 무엇을 믿고 배우면서 하루하루 튼튼하게 거듭날 수 있을까. 한글 읽기랑 쓰기를 미루고 미루던 작은아이가 요즈막에 봇물처럼 글을 읽고 쓰는 놀이를 한다. 나도 한 뼘 자라자고 생각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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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3.


《‘임꺽정’ 우리말 용례사전》

민충환 엮음, 집문당, 1995.11.15.



  소설가 한 사람이 소설 하나에 담은 낱말을 살펴서 그러모은 《‘임꺽정’ 우리말 용례사전》은 우리 사전이 나아갈 길을 자그맣게 밝힌다. 모든 낱말을 모으지 않았고, 그저 소설책에 나온 낱말을 모았을 뿐인데 도톰한 책 하나가 된다. 요즈음 한국에서 소설을 쓰는 이 가운데 누가 ‘아무개 소설 사전’을 엮을 수 있을 만큼 온갖 낱말을 두루 쓰거나 다룰 줄 알면서 말살림을 가꿀 만할까? 아무래도 아무도 안 떠오른다. 소설뿐 아니라 시에서도 매한가지이다. ‘아무개 시 사전’을 엮을 수 있도록 말을 말답게 살리고 살찌우면서 살피는 이는 누구일까? 어느 모로 본다면 소설지기나 시지기뿐 아니라, 여느 글을 쓰거나 읽는 우리 스스로 말을 말답게 살피거나 살찌우거나 살릴 줄 모르지 싶다. 여느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부터 말을 말다이 나누는 삶일 적에 소설지기나 시지기도 한껏 말날개를 펼치지 않을까? 저녁빛이 고즈넉하다. 저녁별이 밝다. 저녁구름이 좋다. 아이들하고 놀다가, 그림책을 읽다가,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동영상을 사서 보다가, ‘윤식당’ 동영상도 사서 보다가, 불을 다 끄고서 촛불 한 자루를 켠 다음 가만히 꿈을 그리고는 아이들하고 잠자리에 든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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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


《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글/서은혜 옮김, 녹색평론사, 2015.9.1.



  그림을 하나 그리더니 불쑥 내밀면서 “큰아버지한테 그림 보낼래. 그리고 봄이 오면 큰아버지네에 놀러가자.” 하고 말하는 작은아이. 얼결에 오늘 우체국에 가기로 한다. 금요일이니까. 큰아이한테도 물어본다. “너도 큰아버지한테 그림 선물해 보련?” 큰아버지가 사는 고장은 인천. 인천이라는 고장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 엄청난 공장에 발전소에 고속도로에 위해시설에 참말 뒤죽박죽인 인천. 인천을 떠올릴 적마다 미나마타병이 나란히 떠오르고, 《신들의 마을》을 새삼스레 들춘다. 다 읽은 지 세 해가 되지만 아직 느낌글을 못 여민다.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다른 책 《슬픈 미나마타》를 놓고도 느낌글을 쓰기가 퍽 힘들었다. 책 하나에 모든 이야기를 알알이 담았으니 섣불리 갈무리하지 못한다고 할까. 더 가슴에 묻어두었다가 느낌글을 풀어내고 싶달까. 그러나 혼자만 가슴에 품기보다 이웃님도 이 책을 알아보면서 사랑해 주기를 바라니, 곧 느낌글을 여미어야지. 우리가 사는 마을이 모두 하느님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아니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을이 하느님 마을인 줄 알 수 있도록, 우리 보금자리가 새로우면서 아름답고 넉넉한 삶터가 될 수 있도록, 작은 꿈씨를 심고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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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1.


《진짜 동생》

제랄드 스테르 글·프레데릭 스테르 그림/최윤정 옮김, 바람의아이들, 2004.9.20.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야지 생각하다가 깜빡 잊고 지나니 어느새 2월. 그렇구나 2월이네. 새로운 달이다. 어쩌면 달력 날짜가 바뀐다고 할 만하지만, 바람도 날씨도 볕도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 집안에 쌓은 책을 좀 책숲집으로 옮기려다가 그림책 《진짜 동생》을 새삼스레 들춘다. 나도 어릴 적에 이 그림책에 나온 아이처럼 생각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참 많은 아이들이 ‘나는 주워 온 아이’라고 여길 수 있다. 꾸지람이나 지청구를 들을 적마다. 때로는 그저 미워서 꾸짖기도 하겠지만, 참말로 아끼는 사이라면 ‘함께 살림하며 살아갈 사랑’을 헤아리면서 우리 스스로 한결 거듭나자는 뜻으로 지청구를 하지 싶다. 아끼고 싶지 않은 사람한테 뭣 하러 ‘어느 대목이 아쉽거나 안타깝다’고 알려주겠는가. 참말로 아끼는 동생이라면 오로지 아끼는 동생이다. 참말로 사랑스러운 동무나 이웃이라면 그저 사랑스러운 동무나 이웃이다. 누가 낳아도 모두 아름다운 어린이요, 어느 고장이나 나라에 살아도 모두 상냥하며 반가운 동무나 이웃이다.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길을 단출한 글로 풀어내고 부드러우면서 따스한 그림으로 엮어서 빚는 그림책이란 얼마나 훌륭한가 하고 다시금 느끼는 하루, 이월 첫날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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