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4.


《섬진강》

 윤보원 글·그림, 구름마, 2018.1.30.



냇물이 아름답다면 삽차로 이리 파고 저리 메꾸어 반듯하게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리라. 숲이 아름답다면 이리 심고 저리 베어 이쁘장하게 손질했기 때문이 아닐 테지. 바람 해 빗물 풀벌레 숲짐승이 스스로 이루어낸 결로 흐르는 냇물이기에 아름답고, 바람 해 빗물 풀벌레 숲짐승이 고루 어우러진 터전인 숲이기에 아름답겠지. 사람은 어떠한가? 사회에 길들거나 정치를 펴거나 경제를 하거나 문화를 누리거나 과학에 몸바치거나 종교에 깃들거나 예술을 펴거나 교육을 나누기에 아름다울까? 《섬진강》은 섬진강이라는 냇물 곁에서 이 아름다운 숨결을 누리고 싶은 아주머니가 아이들하고 더러더러 누린 발걸음을 살짝 담아낸다. 워낙 아름답다는 냇물이니 글이며 그림으로 담아낼 만하리라. 한두 해쯤 가끔 돌아보고서라도 책으로 엮을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드문드문 구경한 채 빚는 글이나 그림이라면 어쩐지 엉성하다. 왜 더 누리지 않고서 그려야 할까? 왜 느긋하게 뛰놀지 않고서 엮어야 할까? 바쁜 틈을 쪼개어 찾아가서 구경하고서 빚는 그림이라면 그럴듯한 책이 될 수는 있더라도 아름다운 책까지는 안 된다. 너무 바쁘거나 서두른다. 좀 느긋하게 쓰고 그리자. 적어도 열 해쯤은 마음껏 누리고서야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담아 보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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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3.


《학교잖아요?》

 김혜온 글·홍기한 그림, 마음이음, 2019.1.5.



학교란 무엇일까. 학교란 터가 생긴 지는 얼마 안 된다. 학교란 터가 없더라도 사람들은 서로 가르치면서 배웠고, 스스로 슬기롭게 살림을 짓는 길을 나아갔다. 다만, 언제나 벼슬아치나 나라일꾼이 말썽을 부렸지.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짓이라든지, 뒷돈을 거머쥐거나 힘겨루기를 벌이는 따위는 모두 벼슬아치나 나라일꾼이다. 예부터 그러지 않았는가. 벼슬이나 감투에 눈이 멀어 돈이나 힘으로 사람들을 윽박지르려 했지. 그런데 그런 벼슬이나 감투를 얻는 길을 ‘글겨루기(시험)’로 따지는 틀까지 세워서 오늘날에 이른다. 《학교잖아요?》는 두 가지 배움터를 둘러싼 이야기를 서울 언저리를 바탕으로 들려준다. 서울 한복판이 아닌 서울 기스락 아파트마을에서 사는 어른하고 아이는 그곳에 큰가게가 없어서 아쉬워하는데, 마침 빈터에 큰가게를 짓는다고 하기에 반기다가 ‘장애인 학교’를 세운다는 말이 흐르니 집값이 떨어져서 나쁘고 큰가게가 없어서 살기 나쁘다는 목소리를 내었다지. 이때에 아이들은 “학교잖아요?” 하고 어른들한테 물었다고 한다. 생각할 노릇이다.  배우지 않거나 못한다면, 시험 지식이 아닌 삶이며 사랑이며 살림이며 슬기를 배우지 않거나 못한다면, 돈하고 이름을 거머쥔 이들이 어떤 짓을 일삼던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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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2.


《끊어진 현》

 박일환 글, 삶이보이는창, 2008.12.15.



큰아이가 사람 북적이는 데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 그렇겠지. 북적판에서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는 사람이 드물기 마련이라, 이런 곳에서 너 스스로 마음을 찬찬히 건사하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러나 북적판도 고요판도 따로 없단다. 어느 곳에 있든 어느 때를 맞이하든 우리는 오직 스스로 어떤 사랑이란 숨결인가를 바라보면 돼. 다른 사람이 뭘 버리고 잘못하고 흉질을 일삼든 쳐다보지 말자. 아니, 보이면 보되, 휩쓸리지 않으면 되지. 늘 스스로 차분하게 활짝 웃으면서 피어나는 꽃마음이 되어 보지 않겠니? 큰아이하고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이러고서 저녁을 같이 먹고 ‘예티’가 나오는 만화영화를 함께 본다. 영화 이름은 ‘Abominable’이고, 한국에는 ‘스노우몬스터’란 이름인데, ‘눈사람’인 셈이다. 눈사람이지. 눈갓에서 흰눈 같은 털빛으로 살아가는 흰마음이니까. 시골버스에서 《끊어진 현》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수수하게 쓰는 시가 마음에 든다. 다만 이 시집에도 슬쩍슬쩍 멋부리려는 글결이 보인다.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이니 멋을 부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멋을 부리면 사랑하고 멀어진다. 그럴듯한 글은 사랑스러운 글이 아니다. 아이들한테 말한다. 얘들아, 늘 즐겁게 노래하는 사랑이라면 아름답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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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1.


《피의 흔적 1》

 오시미 슈조 글·그림/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19.11.25.



밤에는 겨울답게 차가운 바람. 아침이 되면 봄처럼 따사로운 바람. 어느덧 1월에 두 가지 바람을 한껏 누린다. 곳곳에서 봄나물이, 아니 봄풀이 돋는다. 모든 봄풀은 나물이니 그냥 봄나물이라 할 수 있지만, 그저 봄풀이라 이야기하자. 올해에는 어떤 나뭇잎을 덖어서 누릴까 하고 생각한다. 작은 유리병을 하나하나 그러모아야지. 밤에는 차가운 바람이라 새벽에 풀잎을 보면 이슬이 얼어붙었다. 해가 오르면 언 이슬이 살살 녹으며 빛난다. 《피의 흔적》 첫걸음을 매우 빠르게 읽어낸다. 오시미 슈조 님 만화는 언제나 매우 빠르게 넘긴다. 숨가쁘게 읽어내도록 엮는 만화라고 할까. 휘리릭 넘기며 ‘그다음은?’ 하고 궁금하게 여기도록 몰아댄다고 할까. 이렇게 한달음에 읽어내고는 숨을 가늘게 고르고서 다시 찬찬히 넘긴다. 앞선 만화에서는 어린이·푸름이가 마음에 새기고 만 멍울을 그렸다면, 《피의 흔적》은 어른, 이 가운데 어머니가 마음에 새긴 멍울을 그리는구나 싶다. 오늘 이곳에서 ‘어머니’인 분도 어린 날이며 푸른 날을 보낸 ‘아이’였고 ‘작은 숨결’이다. 어른 몸뚱이라서 이 어른을 따사롭게 마주하지 않는다면 오랜 멍울은 어떻게 될까? 멍울이 핏자국이다. 핏자국이 고스란히 멍에가 된다. 멍멍한 마음을 안아 줄 이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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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0.


《염소 시즈카》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고향옥 옮김, 보림, 2010.3.29.



지난달에 포항마실을 하며 ‘민들레글방’에서 《염소 시즈카》를 처음 알았다. 그때 만난 《염소 시즈카》는 2018년판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2010년에 진작에 나왔더라. 여덟 해가 지나며 책값을 올려 새로 낸 셈이던데, 두께가 있기는 해도 가벼운 짜임새로 바꾸어도 되지 않았을까? 2010년 25000원이든 2018년 32000원이든 그리 비싸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여느 어버이가 선뜻 다가서기에는 수월하지 않을 만하겠지. 아름다운 그림책은 틀림없는데, 왜 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할까? 왜냐하면 이쁘장한 ‘염소’하고 ‘시즈카’란 이름을 붙이며 사랑한 ‘아저씨랑 아이들’ 삶이 묻어난 이야기이니, 조금 더 단출하면서 투박하게 다시 묶을 만했다고 본다. 바람이 조용하다. 한동안 바람이 드세며 모든 것을 이리저리 휘날리더니 어느새 가라앉아 아주 참한 한겨울이다. 곁님이 그러더라. 이제 겨울이 끝나고 봄이냐고. 나도 진작에 살갗으로 어느새 봄인 줄 느끼긴 했지만, 달력은 아직 1월이잖아? 그러나 이제 달력은 접어야겠지. 오직 하늘로, 바람으로, 이슬로, 흙으로, 풀꽃으로, 여기에 시즈카를 비롯한 들짐승 눈빛으로 하루를 읽어야겠지. 이제 한국은 1월이 봄이리라. 2월은? 2월은 꽃샘바람이요, 3월이 깊으면 여름 첫머리라 해야 할 만하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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