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1.24.


진주에 마실을 하면서 책방에 들러 《B급 좌파 세 번째 이야기》를 장만하여 읽는다. 지난 2010년에 김규항 님이 이런 두툼한 책을 낸 적 있구나. 그무렵에는 왜 이 책을 몰랐을까 하고 돌아본다. 가만히 생각하니 2010년은 큰아이하고 곁님하고 셋이서 인천에서 살다가 이 고장을 떠나서 시골로 가려고 한창 애쓰던 터라, 그즈음 새로 나온 책 가운데 놓친 책이 많다. 2010년에 한 번, 2011년에 다시 한 번, 이렇게 어마어마한 책짐을 묶고 나르고 끌르고 갈무리하느라 새로 나온 책을 훑으며 즐길 겨를을 잘 못 냈지. 《B급 좌파 세 번째 이야기》는 어느새 새책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다. 출판사로서는 이 책을 다시 내기 버거워할는지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는 김규항 님이 이녁 아이들하고 주고받는 얘기가 꽤 있다. 김규항 님이 혼자 생각에 잠겨서 적는 글보다 아이들하고 주고받는 얘기에서 샘솟은 생각이 여러모로 살뜰하면서 요즈음 부는 ‘평등(거의 성평등) 바람’하고 잘 맞물린다고 본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성평등도 빈부평등도 계급평등도 지역평등도 아닌,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길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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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1.24.


새벽 세 시 무렵에 일어난다. 좀 늦잠을 잤나 하고 돌아본다. 엊저녁에 아홉 시 반 무렵에 누웠다. 오늘 진주마실을 가려고 이모저모 집일을 마치려 했는데 유자차 담그기는 2/5쯤 남았다. 진주를 다녀온 뒤에 마저 하자고 생각하면서 천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는다. 두 알은 부엌에 그대로 둔다. 부엌쓰레기를 치우려고 갈무리했는데 그만 부엌에 그대로 두고 나온 줄 나중에 깨닫는다. 이따가 집에 전화를 해서 큰아이더러 바깥에 내놓아 달라고 말해야겠다. 오늘 진주마실은 한 달 반 즈음에 걸쳐서 꾸리려는 ‘사전과 말 이야기꽃’ 첫 자리이다. 글쓰기를 놓고서 이야기를 펼치는 분이 대단히 많은데, 글을 쓰려면 말을 알아야 하고, 말을 알려면 생각을 읽어야 하며, 생각을 읽으려면 마음을 살펴야 하고, 이렇게 글·말·생각·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저절로 사전이라고 하는 책에 닿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사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읽거나 살피면 좋을까를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고, 이런 이야기마당도 없지 싶다. 이를 어떤 기관이나 모임에서 하기도 만만하지 않을 테니, 그동안 이웃님이 우리 책하고 사전을 사 주시신 보람으로 모은 글삯으로 나 스스로 이야기꽃을 펼쳐 보려고 생각한다. 이웃님이 나누어 준 즐거움을 이웃님한테 고스란히 돌려주는 이야기꽃이라고 할까.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놓친다. 이웃마을로 걸어가서 타는 군내버스를 타기로 한다. 동이 트려는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다. 멧새 노랫소리하고 바람소리만 흐르는 들길을 걸으며 내 목소리를 얹어 노래를 부른다. 군내버스를 기다리면서, 또 읍내로 가는 길에, 읍내에 닿아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사이에 《누구나 미술관에 놀러오세요!》를 읽는다. 살뜰한 그림책이다. 19세기로 접어들 즈음 영국 국립미술관에서 ‘기증 미술품’을 받을 만한 자리가 모자라다는 말을 듣고는 혼자 좋아서 모아 놓은 그림으로 손수 미술관을 지은 어떤 사람 이야기를 다룬다. 참 멋지네 하고 생각하다가 내 터전을 되새긴다. 나는 2007년부터 내가 그러모은 책으로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나 혼자 보기에 아깝다고 여겨서 열린 서재를 가꾸는데, 앞으로 살림돈을 푼푼이 모으면 《누구나 미술관에 놀러오세요!》에 나오는 이쁜 미술관과 매한가지로 이 나라에서 이쁘며 재미나고 새로운 서재도서관으로 한결 넉넉히 보듬을 수 있으리라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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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기공주 웅진 세계그림책 36
파트리스 파발로 지음, 윤정임 옮김, 프랑수와 말라발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그릇은 쓰려고 빚으며, 흙으로 빚는다. 흙은 사람들이 삶을 짓는 바탕이다. 흙은 씨앗을 품어 곡식이며 남새이며 열매를 베풀고, 이 흙으로 그릇뿐 아니라 집을 짓는다. 임금님은 이를 알까? 임금님도 흙이 있어야 궁궐을 짓고 심부름꾼을 거느린다. 흙을 알고 사랑하기에 칠기공주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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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1.21.


아이들한테 큰아버지인 우리 형이 커다란 상자를 하나 보내 주었다. 뭘까 하고 생각하며 여니 태국에서 건너온 과자가 수북하고, 밑바닥에는 태국말로 된 그림책 여러 권! 일 때문에 오갈 적에 짐도 많을 텐데 어쩜 이렇게 한가득 챙겨 주시는지! 더없이 고맙다! 게다가 태국말 그림책이라니! 태국 그림책이 어떠한가를 오늘 처음으로 구경한다. 아마 태국에도 양장 그림책이 있으리라 보는데, 우리 형이 부친 그림책은 모두 가볍고 얇은 그림책이다. 태국글은 하나도 못 알아보겠네 하고 생각하지만, 낯익은 《무지개 물고기》하고 《열한 마리 고양이》 이야기가 있다. 태국글 밑에 영어로 함께 적어 놓았으니 나는 영어로 읽는다. 아이들은 두 가지 그림책 모두 한글판을 숱하게 읽었으면서 나더러 영어로 읽어 달라 한다. “너희들 다 알지 않아? 그림을 보면서 생각해 봐.” “그래도 읽어 줘.” 《무지개 물고기》부터 영어로 읽어 보는데 낯선 낱말이 꽤 있다. 사전을 뒤적이며 읽는데 ‘빛나다’를 가리키는 낱말을 너덧 가지쯤 다르게 적었구나 싶다. 한글판을 나란히 놓지 않고 영어만 읽기 때문에 한국판은 이 대목을 어떻게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떠올리기로는 한국말로는 ‘빛나다’를 나타내는 너덧 가지 한국말을 그때그때 달리 쓰지는 않았다고 느낀다. 문학뿐 아니라 그림책도 외국말로 나온 책이 있으면 되도록 그 나라 말로 읽어야 이야기나 줄거리뿐 아니라 결까지 제대로 짚겠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그나저나 나는 《무지개 물고기》가 그렇게까지 대단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무지개 물고기는 빛나는 비늘을 스스로 즐길 뿐이고, 다른 물고기는 제 비늘을 사랑하지 못할 뿐이다. 여느 물고기 하나가 무지개 물고기한테 ‘비늘을 하나 떼어서 달라’고 바란다는 대목은 참 내키지 않는다. 아니, 왜 다른 이한테 있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달라고 하지? 더욱이 그냥 달라고만 할 뿐, 무지개 물고기가 싫다 하니 홱 토라져서 다른 물고기한테 무지개 물고기를 나쁘게 빈정거리기까지 한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려면 비늘이 있어야 하는데, 제 비늘을 주면서 무지개 물고기한테 비늘을 바꾸자고 해야 걸맞지 않겠는가. 끝에 가면 무지개 물고기는 반짝비늘을 하나만 남기고 모두 동무 물고기한테 나눠 주는데, 모두들 반짝비늘을 뽐내며 좋아할 뿐, 무지개 물고기가 비늘을 떼어낸 자리에 제 비늘을 주지는 않는다. 이 대목도 참 아리송하다. 이를 사랑이나 너른 마음이나 동무 사이라고 말할 만한지 모르겠다. 나눔이란 틀림없이 아름다웁지만, 모두 똑같아져야 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모든 물고기는 저마다 다른 크기와 생김새와 빛깔이기에 저마다 아름답다. 반짝비늘이 없어도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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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22.


우리 마을에는 우리 집에서 한창 밥을 지을 적에 택배가 오곤 한다. 마을로 들어오는 자동차는 택배 짐차에 이장님 짐차에 우리 윗집 짐차를 빼고는 더 없는 터라, 택배 짐차가 대문 앞에 서면 아이들도 나도 소리를 바로 알아챈다. 그렇지만 손에 물이나 기름을 묻힌다거나 부엌칼을 쥔 채로 택배를 받으러 나가지 못하고 아이들한테 심부름을 맡긴다. 빨래를 널다가 택배를 받으면 그나마 고맙다는 말을 내가 건넬 수 있다. 오늘은 한창 밥을 하다가 택배 짐차가 서는 소리를 들어서 큰아이가 받아 준다. 책이 왔네. 밥을 다 지어서 차려 놓고서 책꾸러미를 연다. 여러 책 가운데 《동사의 맛》부터 읽어 본다. 글쓴이 스스로 ‘이름 높은 이(명사)’가 아닌 ‘움직이는 이(동사)’라고 하기에 뭔가 다른 글을 쓰거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동사의 삶》에서 ‘움직이는 모습이나 일이나 이야기’는 첫 쪽부터 끝 쪽까지 하나도 못 찾았다. 글쓴이는 글이나 책은 제법 읽고 강연을 늘 다닌다고 하는데, 이밖에 이녁한테서 ‘움직이는 삶’이란 무엇인지 하나도 알 길이 없다. 더욱이 이 책에는 글쓴이 삶이 묻어나지도 않으나, 글쓴이 생각도 너무 적다. 책 하나를 통틀어 다른 사람이 다른 책이나 누리집에 쓴 글을 따오면서 엮는다. 글쓴이는 ‘-의’나 ‘-적’이나 ‘것’을 털어내야 글이 깔끔하면서 훌륭하다고 밝히지만, 정작 글쓴이부터 ‘-의·-적·것’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책이름조차 일본 말씨 같은 “동사의 삶”이다. 움직이는 삶이란 없이 책에서 따온 글만 넘쳐서 대단히 씁쓸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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