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39


 사전이라는 책 2


  사전이라는 책이 “삶을 담은 말을 담은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전을 엮는 이가 “삶을 담는 말”을 제대로 보거나 짚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다음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전을 엮는 이가 삶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 학문으로만 다가서면 어떻게 될까요? 사전을 짓는 이가 삶이나 사람이나 사랑이나 살림을 제대로 모르거나 겪어 보지 않은 채 ‘일만 한다면(낱말만 그러모은다면)’ 사전은 어떻게 될까요?


  사전을 엮거나 짓는 이는 언제나 눈을 밝게 떠야 합니다. 온누리를 옳거나 그르다고 가를 까닭은 없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사랑하고 기쁨을 느낄 줄 알아야 하며, 너랑 나 사이에 어떤 숨결이 흐르는가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전을 엮거나 짓는 이는 ‘제 나라 말’을 누구보다 슬기롭게 쓰거나 다루는 마음을 길러야 할 뿐 아니라, 상냥하거나 다소곳하거나 차분하거나 믿음직한 몸짓으로 하루를 가꾸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해요.


  말이란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니, 먼저 삶을 새로우면서 즐겁고 곱고 착할 뿐 아니라 참다이 바라보고 가꾸지 못한다면, 몇 가지 전문 지식으로 짜깁은 사전으로는 이웃한테 말을 말다이 알려주면서 말을 말답게 살려서 쓰는 길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곁에 둘 사전은 참고자료로 그칠 수 없습니다. 낯선 낱말이 무슨 뜻인가 알아볼 적에만 사전을 들출 수 없습니다. 가장 흔하거나 수수한 낱말을 얼마나 새롭게 살려서 쓸 수 있는가를 배우는 사전일 때에 빛납니다. 말 한 마디를 거름으로 삼아 생각을 새롭게 지펴서 마음을 넉넉히 다스리는 길을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찾도록 이끄는 몫을 맡을 적에 사전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사전은 더 많은 낱말을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전에 못 담은 낱말이 있더라도 나중에 보태면 되니까요, 사전이라는 책은 낱말을 새롭고 즐겁고 슬기롭고 사랑스럽고 곱고 참되게 살리는 길을 밝히는 구실을 할 수 있으면 됩니다. 2018.3.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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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8


 사전이라는 책 1


  사전이란 책을 제대로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사전은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낱말을 담는 책일 수 있으나, 이런 얼거리라 하더라도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말’이 무엇인가를 먼저 짚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냥 말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말을 하려면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생각을 하지 않고도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면 버릇입니다. 버릇이란 길든 몸짓이니, 생각을 안 했어도 바로 튀어나오는 말이라면 ‘말버릇’이면서 ‘말짓’입니다. 이를테면 넘어지거나 부딪힐 적에 튀어나오는 소리란 그때에 그러한 소리가 나도록 길든 버릇이면서 말짓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봐요. 나라마다 ‘부딪혀서 아프며 내는 소리’가 다 다릅니다. 나라마다 몸에 새겨지거나 깃든 말짓이나 말버릇이 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는 바로 말이란 무엇인가를 환하게 알려주지요. 모든 말은, 삶자리에서 우러나옵니다.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말’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겪거나 하거나 보거나 느끼는 ‘거의 모든 하루’라 할 만하고, 우리 삶이 낱낱이 말로 드러난다고 할 만하며, 사전은 ‘말로 옮긴 삶을 담은 그릇’이라는 뜻이지요.


  나라마다 말이 다른 까닭을 살피면 쉽습니다. 나라마다 삶이 달라 말이 다릅니다. 한 나라에서도 고장마다 삶이 다르기에 고장마다 말이 다르지요. 고장말이나 사투리입니다. 아기하고 어른도 살아온 나날이나 결이나 살림이 다르니, 서로 쓰는 말, 또는 쓸 수 있는 말이 달라요.


  더 살아낸 사람이 더 쓸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더 살아내지 못한 사람은 더 쓸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 실린 낱말을 달달 외운들 이 낱말을 제자리에 제대로 쓰기란 어렵습니다. 삶이 없이 말이 있지 못하거든요. 먼저 스스로 삶을 누리거나 겪으면 이 삶을 비추는 말에 우리 몸에 스미고, 우리 몸은 이 삶을 헤아리면서 머리에서 알맞게 낱말이 흐르는 사이, 우리 마음은 이 낱말을 고이 엮어 이야기로 터뜨립니다. 사전이 사전다우려면 삶을 삶다이 보는 눈으로 엮어야 합니다. 2018.3.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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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7


 


  한국말사전에 없는 한자말인 ‘식감(食感)’입니다. 이 낱말을 요즈음 들어 무척 널리 쓰는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곧 사전에 새 낱말로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짝 아리송합니다. “먹는 느낌”을 한국말로는 ‘맛’이라 나타내거든요.


  ‘맛’을 놓고 ‘입맛·밥맛’처럼 쓰기도 하고, ‘먹는맛·씹는맛’처럼 쓰기도 합니다. ‘맛깔스럽다·감칠맛’ 같은 낱말이 있어요. 굳이 ‘식감(食感)’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끌어들여서 써야 할 까닭은 없지 싶습니다.


  ‘맛’을 ‘입맛·밥맛’처럼 쓰듯이 ‘혀맛·코맛·눈맛·귀맛’처럼 갈라 볼 만합니다. 혀에 닿는 맛하고, 입에 넣는 맛은 다를 테며, 눈으로 보는 맛하고 귀로 듣는 맛도 다르거든요. ‘먹는맛·씹는맛’에서 한 걸음 나아가 ‘보는맛·듣는맛’이라든지 ‘손맛·그릇맛’이나 ‘녹는맛·말린맛’처럼 새로운 맛을 알맞게 나타내 보아도 어울립니다.


  “딱딱한 식감이 싫다”는 “딱딱한 맛이 싫다”나 “딱딱하니 싫다”로 손볼 만합니다. “새로운 식감으로 맛나게”는 “새로운 맛으로”나 “새로우며 맛나게”로 손보고, “말랑한 식감”은 “말랑한 맛”이나 “말랑함”으로 손봅니다.


  맛은 먹을 적에 느끼기도 하고, 글이나 말에서 느끼기도 합니다. ‘글맛·말맛’이에요. 책은 ‘책맛’이고, 영화는 ‘영화맛’이겠지요. ‘자전거맛’이나 ‘바다맛’이나 ‘들맛’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마실맛·골목맛’이 있을 테고, ‘그림맛·사진맛’이 있을 테지요.


  살아가며 누리기에 ‘삶맛’입니다. 살림하며 나누기에 ‘살림맛’이에요. 사랑하는 하루라면 ‘사랑맛’이요, ‘꿈맛·믿음맛’을 비롯해서 ‘노래맛·춤맛’처럼 갖가지 맛으로 뻗습니다.


  이야기맛은 어떤가요? 웃음맛이나 눈물맛은 어떻지요?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맛을 느낍니다. 배를 채우면서도, 삶을 지으면서도, 말을 하면서도, 상냥하거나 즐겁게 어우러지면서도 새롭게 맛을 키웁니다. 2018.4.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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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6


 왜 안 만들고 짓는가


  미처 살피지 못할 적에는 제때나 제자리에 제대로 쓸 낱말을 모릅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꾸준히 살피려 할 적에는 제때나 제자리에 제대로 쓸 낱말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을 알맞게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꾸준히 살피고 받아들이면서 배운다는 뜻입니다. 말을 아직 알맞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직 꾸준히 살필 줄 모르거나 엉성한 매무새 그대로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제가 하는 일을 ‘사전짓기’라고 말합니다. 사전이라고 하는 책은 으레 ‘엮다’를 써야 어울리지만, 저로서는 한국에서 새로운 사전을 쓰는 길을 가기에 ‘사전엮기’ 아닌 ‘사전짓기’입니다.


  ‘짓다’라는 낱말은 아직 없는 것을 처음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여러 사전을 살피면 ‘짓다’라는 낱말을 ‘만들다’라는 낱말로 엉뚱하게 풀이합니다. 두 낱말은 결이 다른데 정작 한국말사전은 이 대목을 놓치거나 안 짚습니다.


  한국말사전뿐 아니라 사람들 입이며 책이나 방송이며 “밥을 만들”고, “요리를 만들”고, “빵을 만들”고, “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고, “사진을 만들”고, “작품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옷을 만들”어요. ‘만들다’는 공장에서 기계로 똑같은 것을 척척 내놓는 자리에 써야 알맞습니다. 틀대로 줄줄이 내놓는 모습이 ‘만들다’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틀이나 연장이나 밑감에 따라 맞추어 이루는’ 때에 ‘만들다’를 써요. 밥도 책도 집도 옷도 ‘짓’습니다. 책은 때로 ‘엮’고, 빵은 ‘구우’며, 영화나 사진은 ‘찍’습니다. 작품은 ‘짓’거나 ‘이루’거나 ‘빚’습니다.


  자리에 따라 쓰는 말이 다릅니다. 그냥 있는 자리가 아닌 살아가는 자리인 터라, 살림새에 맞추어 우리가 쓰는 말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에는 기계로 척척 찍는 아파트에 옷에 자동차에 가공식품에 떠밀리니 하나같이 ‘만들다’일는지 모르나, 손수 일구고 스스로 가꾸는 ‘지음길’을 아는 ‘지음벗’이 그립습니다. 2018.3.2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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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35


 봄단비


  봄에 오는 비라면 ‘봄비’입니다. 한동안 가물다가 반가이 내리는 비라면 ‘단비’입니다. 그러면 여름에 내리는 비라면? 가을이나 겨울에 내리는 비라면? 이때에는 ‘여름비·가을비·겨울비’가 될 테지요. 여기에서 더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봄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면?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면?


  사전에는 ‘봄비’부터 ‘겨울비’까지 싣습니다. ‘단비’도 싣지요. 그러나 봄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가리킬 ‘봄단비’는 없습니다. ‘여름단비·가을단비·겨울단비’도 없어요.


  사전에 꼭 ‘봄단비’나 ‘겨울단비’를 실어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어요. 아직 사전에 안 실렸어도 봄에 맞이하는 단비를 가리킬 ‘봄단비’를 누구나 생각해 내거나 지어서 써 볼 수 있습니다.


  사전에 ‘꽃비’가 나옵니다. 꽃잎이 마치 비처럼 내린다고 할 적에 씁니다. 그렇다면 봄에 꽃비를 만나면 ‘봄꽃비’라 하면 되겠지요. 여름에는 ‘여름꽃비’라 하면 될 테고요. 가을이면 잎이 져요. 가을에 잎이 지는 모습이 마치 비가 오는 느낌이라면 어떻게 가리키면 좋을까요? 네, 사전에 없습니다만 ‘잎비’라 하면 되어요. 가을에 ‘가을잎비’를, 겨울에 ‘겨울잎비’를 말할 수 있습니다.


  말은 누구나 짓습니다. 즐겁게 지어요. 말은 누구나 씁니다. 기쁘게 써요. 틀에 얽매이지 않기에 즐겁게 짓고, 틀에 갇히지 않기에 기쁘게 씁니다. 봄에 꽃지짐이나 꽃떡을 먹는다면 ‘봄꽃지짐’이나 ‘봄꽃떡’입니다. 가을꽃을 잘 말려서 차로 끓여 마시면 ‘가을꽃차’나 ‘가을꽃물’입니다. 여름에 찾아오는 손님은 ‘여름손·여름손님’이요, 겨울에 누리는 마실은 ‘겨울마실·겨울나들이’예요.


  살아가는 결을 살펴 말 한 마디를 새롭게 짓습니다. 살림하는 결을 헤아려 말 한 마디를 곱게 나눕니다. 동무가 쓰는 말이 봄꽃처럼 곱구나 싶으면 “넌 ‘봄꽃말’을 하네.” 하며 웃을 만합니다. ‘여름바람말·가을잎말·겨울눈말’을 그려 봅니다. 2018.4.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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