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32] 멸치



  멸치 똥과 내장을 함께 먹으며

  멸치가 마시던 바다를

  같이 마신다.



  크다 싶은 멸치는 똥과 내장을 바를 수 있으나, 작다 싶은 멸치는 똥과 내장을 바르기 어렵습니다. 아주 작은 멸치라면 똥도 내장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통째로 먹습니다. 잘디잔 멸치를 먹으면서 이 멸치에도 똥과 내장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받아들입니다. 멸치 한 마리에는 멸치가 깃들어 헤엄치던 바다내음이 감돕니다. 멸치가 마시던 바닷물과 멸치가 누리던 바다 빛깔과 냄새와 숨결이 고스란히 나한테 스며듭니다. 4347.5.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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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31] 바람과 나무



  바람이 불어 꽃내음이 흐르고
  꽃내음이 흘러 바람이 푸르며
  내 가슴에 꽃바람 살포시.


  바람과 나무는 언제나 함께 흐르면서 푸릅니다. 바람이 있어 나무가 푸르고, 나무가 있어 바람이 푸릅니다. 나무는 나무만 덩그러니 자라지 못합니다. 나무가 자라는 데에는 반드시 풀밭이 있습니다. 풀이 우거지면서 나무가 푸르고, 나무가 푸르면서 풀이 우거져요. 풀은 조물조물 밭을 이루면서 겉흙을 단단히 붙잡습니다. 나무는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속흙을 돌봅니다. 풀과 나무는 흙을 살찌웁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숲에 깃들면 흙내음이 고소한 까닭은 풀이랑 나무가 서로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져 흙을 보살피기 때문입니다. 4347.5.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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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30] 함께 자란다



  초피알 떨어져 어린 초피나무 자라면

  곁에 정구지와 까마중이 함께 크고

  꽃마리와 꽃다지도 나란히 산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어른은 어버이가 됩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어른들도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삶에 눈뜨고, 어른들은 새로운 사랑에 눈뜹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하면서 신나고, 어른들은 새로운 일을 맞이하면서 슬기롭습니다.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꽃피웁니다. 어버이와 함께 아이는 몸이 자랍니다. 아이와 함께 어른은 몸이 튼튼합니다. 어버이와 나란히 아이는 마음이 자랍니다. 아이와 함께 어른은 마음이 해맑게 열립니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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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29] 마음자리



  즐거운 날에 새롭게 웃고

  고단한 날에 다시 노래해

  언제나 따사롭게 사랑하지.



  즐거울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지칠 적에 읽으면서 새롭게 웃는 힘이 됩니다. 고단할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까마득할 적에 읽으면서 다시 눈을 뜨도록 합니다. 아플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또 아플 적에 읽으면서 천천히 일어나도록 돕습니다. 마음자리를 따사롭게 보듬는 이야기는 언제나 스스로 남깁니다. 마음자리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이야기 또한 언제나 스스로 남깁니다. 하루하루 새 빛을 고운 씨앗으로 심을 수 있습니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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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28] 권정생



  하늘이 내린 빛을 글로 쓰고

  하늘이 빚은 아이들을 사랑하여

  하늘숨 먹고 하늘로 돌아간 넋.



  시골마을 작은 예배당에서 종지기로 있으면서 쥐와 함께 살던 아재는 어느덧 나이를 먹으며 머리카락이 한 올 두 올 빠지고 흰머리가 부쩍 늘어 할배가 됩니다. 처음에는 예배당 구석방을 얻어 아픈 몸을 이끌고 살지만, 나중에는 예배당과 등을 돌리고 혼자 밥을 먹고 풀이랑 벌레랑 하늘이랑 바람이랑 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배당에 없는 하느님 목소리를 풀과 벌레와 하늘과 바람과 해한테서 듣고, 작은 방 이부자리에서 함께 겨울을 나는 쥐한테서 듣습니다. 이제는 하늘숨 마시는 하늘나라에서 하늘빛으로 파랗게 빛나는 별이 되어 살아갑니다.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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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4-27 22:20   좋아요 0 | URL
작년에 성당에 분도출판사 수사님들이 오셔서, 반갑게 다시 구매한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의 그 깊은 이야기가 떠오르는 밤입니다.

하늘이 내린 빛을 글로 쓰고
하늘이 빚은 아이들을 사랑하여
하늘숨 먹고 하늘로 돌아간 넋.-

숲노래 2014-04-27 23:15   좋아요 0 | URL
종지기 아저씨 그 동화책은
얼마나 애틋하고 아름다운가요.
언제 다시 읽어도
눈물과 웃음을 베푸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문학이지 싶어요.

오늘 드디어 <몽실 언니> 느낌글을 쓰면서
이 짧은 '바침시'를 마무리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