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아벨서점 전시관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은 2002년부터 ‘아벨 전시관’이라는 곳을 꾸렸다. 헌책방지기 일삯을 조금씩 떼어 모은 돈으로 전시관을 열었다. 시청에서도 구청에서도 동사무소에서도 ‘책 전시관’이나 ‘사진 전시관’이나 ‘그림 전시관’ 같은 곳을 마련하지 않았으나, 헌책방지기가 이런 전시관을 손수 나무질까지 해서 열었다.


  2014년을 돌아보아도 시청이나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살림돈을 들여 조촐한 ‘마을 전시관’을 꾸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전시관 하나 여는 돈은 얼마나 들까? 수십 억이나 수백 억이 들까? 아니다. 십 억쯤 들인다면 참 멋지면서 재미난 곳을 새로 지을 수 있을 텐데, 십 억까지 아니어도 해마다 일 억씩 들여 동네마다 아름다운 전시관을 하나씩 꾸밀 수 있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작은 빈집을 고치면 된다. 문화와 삶이 늘 하나인 줄 깊이 헤아리면서, 문화와 삶을 가꾸는 고운 책터와 쉼터를 사랑하려는 마음을 품으면 된다.


  인천마실을 하면서 ‘헌책방 아벨서점 전시관(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에 한 발 들여놓으면 언제나 마음이 푸근하면서 즐겁다. 살그마니 휘 둘러보면서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빛이 있다. 전시관은 예술 작품을 보는 곳이 아니다. 전시관은 삶을 보고 사랑을 읽으며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곳이다. 4347.5.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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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명함



  책방 명함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책방이 사라지니까. 아니, 자그마한 책방이 사라지니까. 커다란 책방에 명함이 있을까? 이를테면 교보문고 명함이나 영풍문고 명함이 있을까? 누리책방인 알라딘이나 예스24에 명함이 있을까?


  책방 명함은 자그마한 책방에서 쓰던 쪽종이이다. 작은 책방은 책갈피(책살피)에 책방 이름을 조그맣게 박아서 나누어 주곤 했다. 커다란 책방도 커다란 책방 이름을 큼직하게 박아서 나누어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커다란 책방은 커다란 종이봉투까지 있다. 작은 책방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종이봉투 또는 종이가방이다.


  아주 작지는 않고 아주 크지도 않은 책방에서는 ‘책방 비닐봉투’를 쓰기도 한다. 웬만한 책방은 책방 이름을 새긴 비닐봉투를 ‘책방 명함’으로 삼기도 한다.


  동네마다 있던 작은 새책방에서는 명함을 거의 안 썼다. 왜냐하면, 동네 새책방이라 하더라도, 전화를 걸어 책을 주문하고, 책방에 앉아서 새책을 받으니까.


  책방 명함은 으레 헌책방에서 썼다. 헌책방은 새책방과 달리 ‘책을 사려면 집집마다 돌아야’ 하거나 ‘책을 찾으려고 고물상이나 폐지수집상을 돌기’도 한다. 그러니, 헌책방으로서는 명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동네를 돌면서 책방 명함을 뿌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건넨다. 집안에서 책을 치워야 한다면, 부디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


  지난날에는 동네마다 새책방이 많았고 헌책방도 많았다. 지난날에는 동네에서 읽은 책은 으레 동네에서 돌고 돌았다. 동네 새책방이 새로 나오는 책을 먼저 팔고, 동네 헌책방이 이 책들을 받아들였으며,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 책들을 사고 팔며 읽고 되읽으면서 마음을 살찌웠다.


  돈이 제법 넉넉하면 새책방을 찾는다. 돈이 좀 모자라면 헌책방을 찾는다. 비매품이라든지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을 헌책방이 건사하기에, 돈이 제법 넉넉해도 ‘새책방에 없는 책’을 찾으려고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한다. 미군부대나 외국인학교에서 버리는 외국책을 만난다든지, 나라밖으로 떠나는 사람이 내놓는 값진 책을 만나고 싶어 헌책방으로 마실을 한다.


  이래저래 책방 명함은 쓸모가 많다. 아직 헌책방이 있다면, 아직 헌책방이 씩씩하게 동네마다 책삶을 밝히고 책빛을 가꾼다면. 4347.5.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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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으니까



  책이 좋으니까 손에 쥔다. 책이 좋으니까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한 쪽 두 쪽 읽는다. 책이 좋으니까 가슴에 포옥 안는다. 책이 좋으니까 나한테 사랑스러운 이웃한테 책을 한 권 선물한다.


  책이 좋으니까 한 권 두 권 그러모아 집안에 책을 모신다. 책이 좋으니까 다 읽은 책을 책꽂이에 곱게 건사한다. 책이 좋으니까 다 읽은 책을 동무한테 건넨다. 책이 좋으니까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 아름다운 책’을 나도 스스로 써 보자고 생각하면서 연필을 쥔다. 4347.5.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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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 굽는 헌책방지기



  헌책방지기가 호떡을 굽는다. 가을과 겨울과 봄에 호떡을 굽는다. 헌책방 앞에서 굽는 호떡은 솔솔 고소한 냄새를 피운다. 헌책방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조그마한 가게에서 굽는 호떡을 한 점 두 점 먹는다.


  호떡 하나는 추운 바람을 이기도록 따순 숨결을 불어넣는다. 호떡 하나는 쌀쌀한 날씨에 즐겁게 나누는 웃음을 베푼다. 호떡 하나만 먹고 지나가더라도 헌책방은 늘 그곳에 있다. 헌책방 아닌 호떡집으로 여기더라도 헌책방은 언제나 이곳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따순 것으로 배를 채운 이들이 따순 이야기로 마음을 채울 수 있기를 기다린다. 4347.5.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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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밝히는 빛



  숲은 나무와 풀이 있어 빛납니다. 숲은 나무와 풀이 나란히 있기에 빛납니다. 나무만 있는 숲은 없습니다. 풀만 있는 숲도 없습니다. 나무는 풀을 부르고, 풀은 나무를 부릅니다. 모름지기 숲이란 나무와 풀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사랑스럽게 빛나는 터전입니다.


  책방은 책과 사람이 있어 빛납니다. 책방은 책과 사람이 함께 있기에 빛납니다. 책만 있는 책방은 없습니다. 사람만 있는 책방도 없습니다. 책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은 책을 부릅니다. 그러니까 책방이란 책과 사람이 살가이 얼싸안으면서 사랑스럽게 빛나는 쉼터입니다.


  책빛이 알록달록합니다. 이 책은 이 책대로 밝고 저 책은 저 책대로 환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즐겁게 살아오며 일군 땀방울과 웃음과 눈물이 책마다 그득 깃듭니다. 어느 책은 노랗게 빛납니다. 어느 책은 빨갛게 빛납니다. 어느 책은 푸르고, 어느 책은 파랗습니다. 어느 책은 까맣고, 어느 책은 잿빛입니다. 까만 빛깔이라 어둡지 않습니다. 하얀 빛깔이라 밝지 않습니다. 책에 담은 이야기가 밝을 때에 밝은 책이요, 책에 실은 이야기가 어두울 때에 어두운 책입니다. 그러나, 해가 지면 어둠이요, 해가 뜨면 아침이듯, 책에 어두운 이야기가 감돈다 하더라도 이 어둠이 밝히고 싶은 빛이 있으리라 느껴요. 책에 서린 밝은 이야기가 어루만지고 싶은 어둠이 있으리라 느낍니다.


  나무가 풀을 아끼고, 책이 사람을 아낍니다. 풀이 나무를 살리고, 사람이 책을 살립니다. 서로 아름답게 길동무가 되고 삶벗이 됩니다.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가 싱그럽게 웃습니다. 책 한 권과 사람 하나 맑게 노래합니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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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2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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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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