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은 ‘지저분하다’는 잘못된 생각



  헌책방은 책먼지 때문에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꽤 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도 모르고 둘도 모른다. 그러면, 도서관은 안 지저분할까?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도서관 책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놓는가? 도서관은 책꽂이를 얼마나 자주 닦으면서 먼지를 털거나 없애는가? 한편, 새책방은 안 지저분할까? 새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치고 면장갑을 안 끼는 사람은 없다. 새책을 다루면서 면장갑을 안 끼면, 책을 나르다가 날카로운 책등이나 책종이에 긁혀서 피가 나기 일쑤이다.


  새로 나온 책에도 책먼지가 많다. 새책에서 나오는 먼지는 하얗다. 외려 헌책에는 새책보다 먼지가 적다. 왜 그런가 하면, 새책을 누군가 사서 읽으면, 이동안 책먼지가 천천히 날아간다. 한 번 읽은 책은 아예 안 읽은 책과 견주면 먼지가 적다. 두 번 읽은 책은 한 번 읽은 책보다 먼지가 적다. 세 번 읽은 책은 두 번 읽은 책보다 먼지가 적다.


  헌책방에 있는 책에 왜 먼지가 있다고 여길까?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에는 왜 먼지가 많이 묻는다고 여길까?


  책이 흐르는 모습을 살펴야 한다. 헌책방에서는 출판사한테 연락해서 책을 받지 않는다.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내놓을 때에 헌책이 되어 헌책방에 책이 들어간다. 그러니,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책을 지저분하게 팽개치듯이 두다가 내놓으면, 이런 책은 하나같이 지저분하다.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정갈하게 건사한 뒤 내놓으면, 이런 책은 아주 깨끗하면서 먼지를 찾아보기도 매우 어렵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한국에서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책을 제대로 건사하거나 다루지 않는 탓에, 헌책방에 들어오는 헌책이 지저분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헌책방을 탓할 일이 아니라,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 매무새’를 탓할 일이다. 잘 보라. 헌책방에 책을 내놓는 사람들은 으레 어떻게 하는가?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고 들추지 않은 책을 그냥 묶거나 상자에 담아서 헌책방에 가져간다. 헌책방에 책을 내놓으면서 ‘집에 고이 모시느라 그동안 쌓인 먼지’를 알뜰히 닦아서 가져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헌책방 일꾼은 모두 안다. 책먼지를 닦고 가져오는 책인지, 집에 팽개친 뒤 ‘처분’하려고 가져오는 책인지 척 보면 안다. 책먼지를 닦고 고이 가져오는 책은, 책손 스스로 정갈하게 묶거나 상자에 담는다. 책먼지를 안 닦고 팽개친 책을 헌책방에 팔려고 가져오는 이들은 아무렇게 묶거나 아무렇게나 담는다. 책을 팔려고 가져온 사람 스스로 보기에도 ‘책먼지가 지저분해 보이’니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다룬다.


  자, 그러면 헌책방 일꾼은 이 책을 어떻게 받을까? 책을 하나하나 알뜰히 닦고 곱게 건사해서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헌책방 일꾼은 ‘똑같은 책이라 해도 더 값을 치러서 사들여’ 준다. 책을 아무렇게나 더럽힌 채 마구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헌책방 일꾼은 ‘똑같은 책이라 해도 그냥 싸게 값을 매겨서 사들인’다.


  새책을 쌓아 놓는 창고에 가 본 사람이 드물리라. 출판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배본소나 도매상에 가 본 일이 드물겠지. 배본소나 도매상에 갈 수 있다면, 가 보기를 바란다. 배본소 일꾼이 날마다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새책 먼지’를 마시면서 기관지를 앓는지 들여다보라. 도매상에도 얼마나 책먼지가 많이 날리는지 살펴보라. 새책을 다루는 창고는 책먼지 때문에 모두 면장갑에 입가리개를 한다. 이렇게 안 하면 숨이 막히고 코가 막히며 눈이 냅다.


  헌책방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잘못 보는 사람이다. 책을 알뜰히 다루는 사람은 언제나 정갈하고, 책을 마구 다루는 사람은 언제나 지저분할 뿐이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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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문화는 있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헌책방 문화’가 있는가? ‘헌책방 문화’를 헤아리거나 살핀 사람이 있는가? 헌책방에서 책을 값싸게 사들이려고 하는 사람,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싼값에 캐내려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만 많지 않았을까?


  그러나, 헌책방이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동네 한켠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려 책살림을 꾸릴 수 있도록 밑힘이 된 따사로운 책손도 많다. 아니, 따사로운 책손이 많기에, 헌책방이 오늘날에도 전국 곳곳에 알뜰살뜰 있다고 할 만하다.


  문화란 무엇일까. 오늘 이곳에서 싱그럽게 살아서 숨을 쉴 적에 문화라고 느낀다. 죽어서 박물관에 가면 문화가 아니다. 박물관에 처박히고 만 짚신이나 삼태기나 멍석이나 볏섬을 문화라고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이제 모두 죽은 유물이요 박제일 뿐이다.


  동네마다 있던 헌책방이 차츰 사라질 때까지 등돌리거나 내버린 행정관료와 지식인은 이제서야 ‘헌책방 문화’를 가끔 들먹인다. 그러나, 이제 와서 들먹이는 목소리는 문화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아니다. 유물이나 박제를 찾으려고 하는 지식질이다.


  예부터 모든 살림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차려서 먹던 밥은 삶이면서 문화이다. 임금님 밥상은 문화가 아니다. 임금님 밥상은 유물이요 박제일 뿐이다. 문화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집집마다 끓이는 된장국이 문화요, 집집마다 담가서 먹는 김치가 문화이다. 그러니까, 문화가 되자면 삶이어야 한다. ‘헌책방 문화’를 말하자면 ‘헌책방 삶’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멀거니 떨어진 자리에서 ‘헌책방 통계’를 따진다든지 ‘알라딘 중고샵이 어쩌고’ 하고 읊는대서 문화가 되지 않을 뿐더러 문화비평조차 되지 않는다. 스스로 즐겁게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니면 문화이다. 책 한 권을 사든 책 백만 권을 사든 대수롭지 않다. 책마실을 다니면서 책 한 권 안 사도 대수롭지 않다.


  두 다리로 책마실을 누리면 된다. 책마실을 누리는 책삶이라면 책문화이고, 이러한 책문화를 헌책방에서 맛보는 이들이 헌책방 문화를 가꾸거나 살찌운다.


  헌책방 문화는 있을까 없을까. 헌책방이 있고, 헌책방에 책이 있으며, 헌책방에서 아름다운 책 하나 만나서 즐겁게 읽으려고 하는 책손이 있으면, 헌책방 문화는 늘 이곳에 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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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돌고 돌 적에



  모든 책은 꾸준히 읽으려고 만듭니다. 한 번 읽고 덮도록 할 뜻으로 만드는 책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책은 ‘1회용품’이 아닙니다. 한 번 읽고 나서 차근차근 되읽기도 하지만, 이웃이나 동무한테 빌려주어 함께 즐거움을 나누도록 하는 책입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매무새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책이든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안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책이든 한 번 읽고 나서 한 해 뒤에 다시 읽든 두어 해 뒤에 다시 읽든 꾸준하게 들춥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읽은 책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합니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왜 사서 읽을까요. 한 번 읽고 나서 덮은 뒤에도 집에 잘 모시면,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더라도 기쁘기 때문일까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야기가 깃든 책이기에 우리 집에서 한쪽 자리를 곱게 차지하면 어쩐지 뿌듯하기 때문일까요.

  백만 권쯤 팔린 책이 있으면 적어도 백만 사람은 읽었을 테고,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이웃한테서 빌려서 읽은 사람도 꽤 많을 테지만, 아직 안 읽은 사람도 무척 많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영화를 천만 손님이 보았다고도 하는 터라, 어느 책이 천만 권쯤 팔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새로 태어나서 자랄 아이들이 먼 뒷날에 읽을 수 있을 테고요.

  오늘 우리가 읽으려고 만드는 책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책은 우리 아이들한테 이어집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우리가 만들어서 읽은 책을 물려받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책을 물려받을 수 있지만, 1회용품과 같이 만든 책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보배와 같은 책을 물려받기도 할 테지만, 무거운 종이꾸러미를 짐짝처럼 물려받기도 할 터입니다.

  돌고 돌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온 책은 막바지에 이릅니다. 헌책방에서 새로운 손길을 받아 새롭게 읽힐 수 있으면 되살아납니다. 헌책방에서 새로운 손길을 못 받으면 폐휴지처리장으로 갑니다. 고즈넉한 숨소리가 헌책방을 감돕니다. 책들은 가는 숨소리로 따사로운 손길을 기다립니다. 4347.9.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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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책꽂이



  헌책방 책꽂이를 바라보면 우리 둘레 이웃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을 안 읽는지 헤아릴 수 있다. 헌책방 책꽂이를 들여다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짚을 수 있다. 머나먼 옛날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아니다. 예전에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책을 아끼고 알뜰히 돌보았을 때에는 ‘헌책방 책꽂이 앞에 책이 쌓일 틈’이 없었다고 한다. 누구라도 책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읽으려 했단다. 지식인만 읽는 책이 아니고, 대학생만 읽는 책이 아니며, 학자만 읽는 책이 아니었다고 한다. 누구나 즐겁게 책을 손에 쥐면서 삶을 되새기고 생각을 가꾸며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책이 아니어도 볼거리가 많다. 영화가 참으로 많이 나온다. 온 나라 극장이 얼마나 많은가. 집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켜면 수많은 영화가 흐른다. 굳이 극장을 안 가더라도, 느긋하게 드러누워 술이나 콜라를 홀짝이면서 영화를 쳐다보기만 해도 된다.


  애써 머리를 굴리면서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오늘날이 된다. 우리는 머리(뇌)를 제대로 쓰지 않는데, 머리(뇌)를 제대로 쓰지도 않으면서 그나마 이런 머리조차 더 안 쓰려 한다. 생각을 놓고 영상에 사로잡힌다. 텔레비전에 영화에 그저 휩쓸린다.


  영화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기울이거나 가다듬는 일이 드물다는 뜻이다. 그냥 보고 그냥 잊는다. 재미로 삼아 본 뒤, 다른 재미를 찾아 움직인다.


  그런데, 재미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아 갈 수 있을까. 이쪽에서 재미를 보다가 저쪽으로 가서 다른 재미를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옮겨 다니면서 재미 꽁무니만 좇을 적에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남이 나한테 차려 주지 않는다.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언제나 스스로 빚는다. 스스로 놀이를 생각해 내어 즐길 때에 가장 재미있다. 스스로 놀이를 빚어 내어 함께 누릴 적에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 재미있을까? ‘재미있는 줄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줄거리 때문에 책이 재미있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뇌)를 자꾸 쓰고, 그동안 잠자던 머리를 깨워 생각을 자꾸 새로 짓기 때문에 재미있다. 내가 나아갈 길을 스스로 밝히니 재미있고, 내가 누릴 삶을 스스로 캐거나 짓거나 일구기에 재미있다.


  헌책방 책꽂이마다 책이 쌓이는 모습을 곰곰이 지켜본다. 오늘날 사람들은 참말 재미없게 사는구나 싶다. 그런데, 영화를 보든 어디 놀러갔다 오든,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다녀오든, 재미가 넘치는 얼굴이 되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다시 재미없는 얼굴이 된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재미없는 얼굴이 된다.


  책을 즐겁게 읽어서 스스로 재미를 찾는 사람만 ‘늘 재미있게 밝은 얼굴’이 된다고 말할 뜻은 없다. 책을 읽더라도 스스로 생각을 열어 머리(뇌)를 신나게 쓰지 않는다면 그저 부질없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무슨 일을 하든, 내 둘레 이웃들이 머리(뇌)를 신나게 쓸 수 있기를 빈다. 스스로 재미를 실컷 지어서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누리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빈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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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다



  책방에 책이 있다. 책에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에 넋이 있다. 넋에 사랑이 있다. 사랑에 삶이 있다. 삶에 하루가 있다. 하루에 모든 숨결이 있다. 문득 책을 덮는다. 한창 책을 읽다가 덮는다. 책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책을 골라서 읽다가, 차근차근 흐름을 살피다가, 조용히 책을 덮는다.


  책에 깃든 이야기는 어떤 숨결인지 곰곰이 되새긴다. 내 가슴속에서 늘 싱그럽게 살아서 움직이는 숨결을 찾으려고 수많은 책을 살피거나 읽은 셈일까. 내 가슴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숨결이 내 삶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다른 사람들이 적은 책을 그토록 찾거나 살핀 셈일까.


  책이 보여주는 길인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가 아니다. 곧잘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 하고 외치는 책이 있지만, 이런 책은 한 번 훑은 뒤에 다시 펼칠 일이 드물다. 내가 여러 차례 되읽는 책은 언제나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아무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라고 넌지시 고갯짓을 할 뿐이다. ‘네 가슴속에 다 있는데 뭘 그리 먼길을 나서면서 기웃기웃 구경하니?’ 하고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죽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참말 언제나 모든 것을 다 하면서 이곳에 있다.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숨결이 피어나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기에 ‘다른 책’, 그러니까 ‘다른 나’를 찾으려고 했는가 보다.


  책이 있는 책방에 선다. 책마다 수많은 ‘내’가 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내’가 있다. 나는 어떤 길을 책에서 보려 하는가. 나는 어떤 길을 익혀 내 길을 걸어가려는가. 실마리를 여는 열쇠를 가슴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이웃한테 말을 건다. 책을 펼쳐서 읽고, 책을 조용히 덮은 뒤, 한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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