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쉼터와 후박나무길 (13.2.22.)
고흥 길타래 4―할매 할배는 자가용 안 몬다

 


  풍양면 송정리 냉정마을에는 팽나무 우람하게 한 그루 있습니다. 여러 백 해 묵은 팽나무까지는 아니지만, 논자락 한복판에 팽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있어요. 어쩜 이렇게 팽나무 한 그루가 논자락 한복판에 있을까 알쏭달쏭한데, 논둑길 돌아 이 팽나무 앞에 서면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팽나무 앞에 돌로 세운 푯말 하나 있거든요.


  돌푯말을 읽으면, 1946년에 유박준 님이 당신 집 안뜰에서 자라는 일곱 해 된 팽나무를 당신 둘째 아들 유일성하고 지게로 짊어지고는 연못 뚝에 옮겨심었다고 해요. 너른 들판에서 한여름 땡볕 받으며 일하는 흙일꾼들이 쉴 나무그늘 하나 없었다 하는데, 이 팽나무 한 그루 무럭무럭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니, 이 언저리에서 일하던 흙일꾼은 연못 뚝 팽나무 그늘에 앉아서 느긋하게 쉴 수 있었다 합니다. 1990년에 경지정리를 한다며 구불구불 논을 반듯하게 펼 적에 팽나무를 치우면 논을 더 넓힐 수 있다고 말이 많았다 하는데, 이 팽나무 한 그루만큼은 오랜 나날 시골 흙일꾼한테 좋은 그늘 드리우는 쉼터요 벗이 되었기에 베지 말고 건사하자 해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해요. 돌푯말은 이무렵에 세웠다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고흥 곳곳에 너른 들판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너른 들판만 있고 우람한 나무그늘 하나 없는 곳이 퍽 많아요. 갯벌을 메운 논자락에는 아예 나무그늘이 없습니다. 마을마다 정자나무는 으레 있지만, 논 언저리 나무그늘은 드물어요. 밭 언저리 나무그늘도 드물고요. 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서면 줄기 굵어지고 뿌리 뻗으며 논밭 몇 평쯤 줄어든다 할 테지만, 나무 한 그루 튼튼하고 굵게 서면 좋은 그늘이 되고, 꽃과 열매를 베풉니다. 팽나무나 느티나무뿐 아니라 감나무나 능금나무, 또 살구나무나 복숭아나무 한 그루씩 논둑이나 밭둑에 있어 흙일꾼 누구한테나, 또 길손한테까지 쉼터 구실을 하도록 마음을 기울인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생각해요.

 

 

 


  풍양면 동적·백석마을이랑 천등마을로 갈리는 세거리에 섭니다. 동적·백석마을 어귀 큰돌이 쓰러졌습니다. 지난해 큰바람 불 적에 쓰러졌을까요. 마을 어귀에 세우는 돌은 워낙 크고 무거우니 사람들 손힘으로는 다시 세우기 힘들 테니, 기계를 써야겠지요. 큰바람 몰아치며 무너진 집이나 울타리나 쓰러진 나무를 모두 되돌리지 못했다 하니, 아직 마을돌 하나 다시 세우지 못했겠지만, 마을에서 세우지 못하면, 군청이나 면사무소 일꾼들이 앞장서서 다시 세워 주면 좋을 텐데 싶어요. 큰돈이나 목돈이 들어야 해 주는 일이 아니라, 따사롭게 마음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보듬으며 아낄 수 있는 마을살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볕 좋은 자리 솔숲 사이 깃든 무덤을 바라봅니다. 뚜껑을 씌우지 않고 커다란 돌을 실어나르는 짐차를 바라봅니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시골 모습을 보는 한편, 안타깝고 아쉬운 모습을 나란히 마주합니다. 저 짐차 일꾼은, 또 저 짐차에 큰 바위 실은 일꾼은, 또 고흥군청 공무원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이곳에서 일을 하며 살림을 꾸릴까요.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거나 아끼는 마음 되어 일을 하거나 살림을 일굴까요.


  천등산 끝자락과 맞물리는 조그마한 천등마을 바라봅니다. 넓게 펼쳐진 논자락 빛깔은 아직 노르스름합니다. 삼월 한복판에 접어들면 노르스름한 논자락마다 새해에 새로 깨어난 멧개구리 골골골 울 테고, 유채씨 뿌린 논에서는 푸릇푸릇 유채싹과 유채잎 오르다가 노란 물결 이룰 테며, 논갈이를 하고 나서 물을 대면 개구리알 신나게 까서 새로 태어난 개구리 노랫소리로 온 고을 가득할 테지요.

 

 

 

 


  군내버스는 별학산 따라 구비구비 돌다가 천등마을, 냉정마을, 영호마을 곁을 스칩니다. 조용한 시골자락 조용히 지나갑니다. 봄바람 일으키며 봄버스 달리고, 봄내음 물씬 풍기는 봄흙이 녹습니다.


  냉정마을에는 논자락 한복판에 팽나무 있으면, 영호마을에는 논자락 한켠에 빗돌이 섭니다. 누구를 기리는 빗돌을 이곳에 세웠을까요. 어떤 삶 누리던 사람이 이곳에 빗돌 하나로 남았을까요. 무덤 앞에도 빗돌이 서고, 마을 한켠과 논 한쪽에도 빗돌이 섭니다.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 줄기를 빙 둘러 시멘트가 덮습니다. 처음부터 시멘트 바닥이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후박나무 심은 흙땅에 시멘트를 부었구나 싶습니다. 길바닥 고르게 편다는 뜻이었을 텐데, 나뭇줄기 촘촘히 시멘트를 부으면, 나무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까 근심스럽습니다. 앞으로 나무가 자랄 나이를 헤아려 시멘트를 알맞게 깔든지, 나무 자랄 자리는 빼고 시멘트를 바르든지 해야 할 텐데요. 아니, 나무 자라는 자리에 왜 시멘트를 바르려 했을까요. 나무는 흙땅에서 자라고, 나무 곁은 여러 풀이 스스로 씨앗 내려 자라도록 하면, 이 길섶은 사람이 걷기에도 좋고, 큰비에도 쓸리지 않을 텐데요.

 

 

 

 


  풍남항 있는 남당마을에 닿습니다. 풍남초등학교 둘레로 양식일 하는 분들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소리 무척 큽니다. 집집마다 커다란 전압기를 매답니다. 그만큼 전기를 많이 쓴다는 뜻일 텐데, 양식일 하느라 하루 내내 기계가 돌아가며 저렇게 커다란 소리를 내면, 여느 살림집 분들은 시끄러워 제대로 잠이나 들까 궁금해요. 돈벌이도 좋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삶이 메마를 수 있겠다 싶습니다. 더 크거나 많은 돈을 바라기 앞서, 더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바랄 때에 빛나는 하루가 되리라 싶습니다.


  남당마을 버스 타는 곳 앞에 섭니다. 버스 타는 곳 앞에 소나무 몇 그루 자랍니다. 남당마을 큰돌도 지난 큰바람에 쓰러진 듯합니다. 바람은 힘도 세지요. 큰돌도 쓰러뜨리고, 체육관 지붕도 벗깁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나무를 쉬 꺾지 못해요. 큰바람에 꺾인 나무도 더러 있지만, 훨씬 많은 나무들은 큰바람이 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리고, 들풀은 큰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뽑히지 않습니다. 꽃송이가 바람에 떨어지기는 하지만, 풀포기는 제아무리 큰바람 몰아쳐도 흙땅에 단단히 버팁니다.

 

 

 


  남당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탑니다. 도화면 소재지로 갑니다. 중절모에 빨강 노랑 풀빛 깃털 꼽은 할아버지가 내 앞자리에 탑니다. 풍남항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강동마을, 여의천마을, 이목동마을 곁을 스칩니다. 이목동마을 옆으로 난 조그마한 길을 따라 죽 올라가면  원도동마을과 전어포마을로 들어서는 가화리 멧길입니다. 가화리 멧길은 바다를 옆으로 끼고 숲 사이를 지나가는 고즈넉하며 예쁜 길이에요. 고즈넉하며 예쁜 숲길 곁에 보금자리 틀어 살아가는 분들은, 숲과 길과 들과 바다처럼 예쁘며 고즈넉한 삶 꾸리시겠지요.


  지등마을과 서오치마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도화면 소재지에 닿습니다. 버스에서 내립니다. 고흥읍에서 풍남항 거쳐 도화면으로 온 군내버스는 사동마을과 풍남항 거쳐 다시 읍내로 가겠지요. 마을 할머니 한 분 버스기사한테 길을 여쭌 뒤 버스에 오릅니다. 나는 면소재지 가게에서 먹을거리 몇 가지 장만하고는 조금 기다려, 신호리 동백마을로 들어가는 군내버스를 탑니다. 풍남항에서 도화면까지 1100원, 또 도화면에서 동백마을까지 1100원. 느긋하고 한갓지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마을 저 고을 천천히 거치는 군내버스는 골골샅샅 할머니 할아버지 태우며 온갖 이야기를 실어나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군내버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 피웁니다. 마을회관에서도 당신 보금자리에서도 도란도란 이야기숲 돌보실 텐데, 버스에서 이웃을 만나고 면내나 읍내에서 동무를 만납니다. 자가용을 모는 분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더 빨리 한달음에 갈 수 있을 테지만, 자가용에서는 이웃도 동무도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지도 못합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 시골길을 천천히 거닐면 들판과 멧숲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고, 군내버스 타고 구불구불 여러 마을 지나노라면, 먼 데 사는 이웃과 동무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겁습니다. 고흥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도 군내버스로 고흥 곳곳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내려 한두 시간쯤 거닐며 이웃마을 느끼다가,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들이를 해 보면, 고흥 시골마을을 조금 더 깊이 마주하며 헤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6.3.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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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3, 풍양중학교와 별학산 기슭 (13.2.22.)
― 나무, 뒷산, 버스타는곳

 


  지난 2012년, 고흥군 도화면에 깃든 도화중·고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흙이 사라졌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우레탄을 깔며 흙땅이 사라지고, 운동장 언저리는 딱딱한 시멘트바닥으로 바뀝니다. 오늘날 도시에 있는 웬만한 학교는 흙운동장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도시 아이들은 가뜩이나 흙 밟거나 만질 일 없는데, 그나마 학교에서 운동장 흙이라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흙이 아예 없는 도시로 바뀝니다.


  시골에서는 학교 운동장에 섣불리 우레탄을 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도 학교 운동장 흙을 걷어내어 우레탄을 깔아야 ‘문화’나 ‘문명’이나 ‘복지’나 ‘교육’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이들이 차츰 늘어납니다. 고흥읍 고흥동초등학교는 진작부터 운동장 흙이 사라졌어요. 고흥읍도 고흥군에 있는 여러 시골마을 가운데 하나라지만, 읍내 아파트나 빌라에서 살면서 읍내 마트만 들락거린다면, 이 아이들은 시골살이를 한다 하기 어렵습니다. 흙을 만지고, 흙을 마시며, 흙을 돌볼 때에 비로소 시골살이요, 시골학교이며, 시골사람입니다.


  풍양면 풍양초등학교는 아직 정갈한 흙운동장입니다. 풍양중학교도 아직 아름다운 흙운동장입니다. 운동장이 흙일 때에는 운동장 한켠을 텃밭으로 일굴 수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자라나는 풀을 만날 수 있고, 풀뽑기를 하다가 ‘먹는 풀’을 곧잘 보겠지요.

 

 


  도시학교에서는 교사 많고 교사마다 자가용 굴리니 자가용 댈 데 모자란다며 운동장 한켠에 시멘트를 부어 주차장 만든다는데, 시골학교에서도 자가용으로 드나드는 이가 많다 하더라도, 운동장 한켠 얼마든지 텃밭이나 나무밭으로 일굴 수 있어요. 석류나무 심어 석류를 딸 수 있고, 감나무 심어 감을 딸 수 있습니다. 면소재지 조그마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어버이가 으레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라 할 테고, 집에 감나무 한 그루쯤 어김없이 있다 할 텐데, 집에서는 집이고 학교에서는 학교예요. 학교에서 학교급식을 하는 만큼, 학교 운동장 한켠에서 학교 텃밭을 일구어 교장선생님부터 학생 하나하나 두 평쯤 밭자락 돌보며 이녁 먹을거리를 거두어 돌본다면, 전국 어디에서도 손꼽힐 아름다운 학교밥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또한, 교사와 학생 스스로 흙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더 오래 누릴 테니까, 허울뿐인 환경교육이나 환경운동에서도 벗어날 만하리라 생각해요.


  풍양초등학교와 풍양중학교는 학교 울타리 따라 나무가 우람하게 자랍니다. 나뭇가지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아, 좋은 나무그늘 이루어집니다. 학교 아이들도 쉴 터전이 되고, 마을사람 누구라도 쉴 자리 됩니다. 풍양면이 좋다는 얘기 듣고 이곳으로 마실을 할 나그네들도 이곳 나무그늘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시골과 삶터를 숨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풍양초등학교 곁에는 작은 문방구 〈학생사〉가 있습니다. 〈학생사〉 옆에는 예전에 꽃집이던 가게가 옛 자취만 보여줍니다. 꽃집이던 가게 곁에는 〈두뇌개발주산학원〉이 옛 자취를 새삼스레 보여줍니다. 풍양면 주산학원 다니던 분들은 어디에서 오늘 하루 일구실까요.

 

 

 


  마을이름으로도 볕이 잘 들겠다 싶은 풍양인데, 참말 풍양마을 천천히 거닐면서 따순 햇살 듬뿍 누립니다. 바람도 길자락도 따스하구나 싶습니다. 멧자락이 둥그스름하게 예쁩니다. 마을집과 마을길 모두 올망졸망 어여쁩니다.


  풍양중학교 옆문 언저리에서 자라는 비파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다가, 중학교 옆문하고 나란히 붙은 살림집 우체통을 한참 쳐다봅니다. 우체통에 제비 두 마리를 새겼어요. 좋은 이야기 물고 오는 제비라는 뜻이로군요. 이제 두 달 즈음 있으면, 머나먼 태평양 가로질러 제비무리 고흥자락으로 힘차게 찾아오겠지요.


  조계산 끝자락이 풍양중학교 뒷자리까지 이어졌을까요. 학교 뒷편에 뒷동산 조그맣게 있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뒷산에서 바깥수업 할 만하고, 뒷산 나무그늘에서 시 한 자락 쓸 만하며, 그림 한 장 그릴 만합니다.

 

 

 

 


  하얀 플라스틱판 아닌 분필 쓰는 칠판이 붙은 교무실을 살짝 들여다봅니다. 새로 오는 교사 이름과 떠나는 교사 이름을 한쪽에 적습니다. 골마루 따라 학교 아이들 작품을 걸고, 학교 건물 문간에는 여러 상패를 놓습니다. 1970∼80년대 상패에 새긴 글월과 숫자가 아련합니다.


  구령대로 나와 율치마을 쪽을 바라보는데, 군내버스 지나갑니다. 도화면에서 풍남항 거쳐 풍양면 지나 고흥읍으로 가는 버스일까요. 왼쪽과 오른쪽 모두 마늘밭 넓게 펼쳐진 길 한쪽에 ‘농어촌 버스(군내버스)’ 타는 곳이라고 알리는 작은 기둥 하나 있습니다. 자동차 많이 오가는 넓은 길에는 비를 그을 만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를 그을 지붕 있는 버스타는곳(정류장)에는, 이 버스타는곳 세운 이 이름을 새긴 조그마한 돌이 붙어요. 이제는 비와 바람과 햇살에 바래 글씨 읽기 어렵지만,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서 이 작은 건물 지어 마을에 바친 이들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가득했겠지요.

 

 

 

 


  노루목마을 어귀에 마을 우물터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마을 어느 분 회갑을 기리며 놓은 앉음돌이 있습니다. 앉음돌 하나 놓고, 마을나무 한 그루 심었을까요.


  노루목마을 우물터는 안 쓴 지 꽤 오래되었겠지요. 아예 우물터를 없애는 데가 많은데, 노루목마을 어귀 우물터는 지난날 마을살이 한 자락 보여주는 아름다운 자취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도 아름다운 자취(문화유산)가 될 테지만, 바로 오늘에도 ‘지난 마을살이 돌이켜보는 자취’ 구실을 해요. 오늘날에는 수도물을 써야 문화이거나 문명으로 여기지만, 이 땅 사람들은 긴긴 나날 우물물 긷고, 냇물 마시며, 빗물 받아서 살았어요. 우리 숨결 이은 우물물이고 냇물이며 빗물이에요.


  내율마을 곁을 지나갑니다. 별학산 기슭을 따라 천천히 오르막을 걷습니다. 억새가 춤추는 한갓진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겨울 끝무렵 들바람과 멧바람을 마십니다. 조용하며 맑은 숲입니다. 시원하며 깨끗한 바람입니다. 햇살은 숲을 살찌우고, 숲은 사람을 살찌웁니다. 바람은 흙을 북돋우고, 흙은 사람을 북돋웁니다.

 

 


  볕 잘 드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무덤이 있습니다. 볕 잘 드는 곳에서 마을을 굽어살피겠지요. 볕 좋은 날 마을 어른들은 낫 들고 무덤가로 풀 베러 마실을 오겠지요.


  자동차 뜸한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는 한 해 두 해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직 키가 작은 후박나무는 열 해쯤 뒤에는 시원한 그늘 드리우는 ‘후박나무 길’로 거듭나겠지요. 나무가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숲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군내버스는 조용히 마을 사이를 지납니다. 마을길 걷는 사람은 조용히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4346.2.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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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2, 동백에서 버스 타고 죽시

― 2600원으로 군내버스 봄나들이

 


  북녘 어느 곳에는 눈바람 불기도 한다지만, 2월 22일 고흥 동백마을은 고운 봄볕 드리웁니다. 겨우내 싯누렇게 바랜 들판에 차츰 푸릇푸릇한 기운 비칩니다. 봄이지요. 북녘에는 새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면, 남녘 고흥에는 새봄 노래하는 꽃볕입니다.


  주머니에서 1500원을 꺼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는 버스표 끊는 곳 없습니다. 맞돈으로 1500원을 챙겨 군내버스 삯을 치릅니다. 올해 여섯 살은 큰아이는 앞으로 이태 뒤면 어린이표인 800원을 내야겠지요. 아직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버스삯 없이 즐거이 군내버스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지죽부터 달려 도화면 소재지를 거쳐 신호리 동백마을 지나가는 군내버스에 봄손님 가득합니다. 그래도 빈자리 하나 있어 읍내까지 20분 버스길 앉아서 갑니다. 자가용 없는 우리 집 살림으로는 군내버스가 참 재미나며 신납니다. 적은 돈으로 읍내마실 할 수 있고, 구비구비 이 마을 저 마을 거치면서 다른 마을 봄내음 맡을 수 있어요. 봉서 봉동 고당을 지납니다. 세동 덕촌 봉덕을 지납니다. 안동을 지날 무렵, 안동고분 푯말을 봅니다. 날이 더 따스히 무르익으면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 태우고 안동고분 언저리로 마실을 가 볼까 생각합니다.

 

 

 


  군내버스는 포두를 지나고 널따란 해창만 벌판을 가로지릅니다. 옛 장수마을 커다란 못 곁을 스칩니다. 자전거로 이 멧길 오르자면 한참 헐떡거려야 하는데, 군내버스는 거침없이 붕붕 올라갑니다.


  읍내에 닿습니다. 죽시(풍양) 가는 버스때를 살핍니다. 10시 50분 차를 타자 생각하며 고흥읍 저잣거리로 발걸음 옮깁니다. 읍내에 나온 김에 저잣거리 들러 식구들 먹을거리를 장만하기로 합니다. 자동차 조금 적게 다니는 안골목을 걷습니다. 대문 위쪽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꽃그릇 놓은 조그마한 집을 바라봅니다. 고흥군여성회관 오래된 건물 곁 전봇대에 붙은 ‘빼빼로’ 광고판을 올려다봅니다. 예전에는 저런 광고판 참 많았다고 떠올립니다.


  작은 기와집 한켠에 마련한 빨랫대 바라봅니다. 볕 좋은 오늘 빨래 널면 해바라기 좋겠네요. 간판 글씨 거의 떨어진 에덴완구 옆을 지납니다. 간판 글씨 거의 떨어졌어도, 마을사람은 다 이곳이 에덴완구인 줄 압니다. 간판 글씨 떨어졌으면 떨어진 대로 예쁘장합니다.

 

 

 


  고흥에 있으나 ‘고흥’사진관 아닌 ‘광주’ 사진관인 가게 곁을 스칩니다. 고흥에서 ‘광주’ 이름 간판을 건 사진관이라면, 광주하고 어떤 삶줄 이어졌겠지요. 읍내 저잣거리 한켠 분식집에서 튀김 몇 점 먹습니다. 읍내 냇물 곁에서 우람한 뿌리와 줄기와 가지 뽐내는 느티나무를 봅니다. 팔백예순 살 훨씬 넘은 느티나무 곁에 정자 하나 마련했는데, 정자 마련하며 큰돌은 아직 안 치웠군요. 언제쯤 치우려나. 마을 아이들이 이 느티나무 오르내리며 놀곤 하는데, 저 큰돌 때문에 다치지 않을까 살짝 걱정스럽습니다. 멋스러이 정자 꾸몄으면,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면 참 좋을 텐데요.


  어떤 눈길로 바라보면 허름하다 할 테지만, 마을사람 눈길로 바라보면 그저 그렇게 예부터 살가이 살아온 자취 고스란히 묻어나는 저잣거리 안길을 걷습니다. 감자 한 바구니 장만하고, 느타리버섯 한 꾸러미 장만합니다. 방앗간에 가서 떡볶이떡 있는지 묻습니다. 오늘은 없다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와야지요. 며칠 앞서 매생이와 조갯살 장만했기에 오늘은 슬슬 지나갑니다. 엊그제 사 둔 갈치를 아직 안 구워먹었다는 생각 떠오릅니다. 오늘이나 이듬날에는 갈치구이 해서 아이들과 먹어야지요.


  저잣거리 바깥쪽으로 나옵니다. 냇둑 맞은편에 물고기 말리는 모습 곱습니다. 들고양이 한 마리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냄새만 잔뜩 피울 뿐, 어느 물고기 하나 들고양이가 건드릴 수 없습니다. 입맛 다시는 들고양이는 천천히 천천히, 또 천천히 천천히, 여기저기 맴돌기만 합니다.

 

 

 


  다시 읍내 버스역으로 옵니다. 풍양면 죽시 가는 버스표 1100원짜리 끊습니다. 어느 마을 할머니가 아까 버스표 끊으며 표를 안 받은 듯하다며 실랑이를 벌입니다.


  군내버스에 오릅니다. 동백에서 고흥읍 나올 적에는 자리에 앉았지만, 고흥읍에서 죽시 가는 길에는 빈자리 없습니다. 서서 가지요, 뭐. 10분 길인걸요.


  버스가 풍양면 죽시에 닿자, 할머니 할아버지 거의 모두 내립니다. 모두 풍양면 소재지에 볼일 있으신가 보군요. 예전에 버스표 팔던 가게를 바라봅니다. 지난 2012년 9월부터 교통카드 생기면서, 고흥군에 있던 작은 가게마다 ‘종이버스표’를 더는 안 팝니다. 이제 죽시마을에서 ‘죽시’ 두 글자 새겨진 종이버스표는 더 구경할 수 없습니다. 종이버스표를 더 다루지 않으면, 시골마을 작은가게 찾는 사람들 발길은 더 줄어들지 않으랴 싶습니다. 교통카드를 쓰는 일도 좋다 하지만, 고흥은 고흥 삶결대로 종이버스표를 오래오래 써도 재미날 텐데 싶습니다. 생각을 다르게 하면, 다른 모든 곳은 교통카드라지만, 고흥으로 와서 군내버스를 타면 ‘종이버스표’만 써야 한다고 할 적에, ‘버스 즐김이’들은 고흥으로 버스 타러 오거나 버스표 모으러 올 수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고흥군 ‘종이버스표’를 구경하면서 구성지고 아름다운 시골버스길 즐기러 찾아올 수 있습니다.

 

 

 

 

 


  풍양면 야막에 있다는 느티나무를 찾아 두리번두리번합니다. 면사무소에 가서 여쭐까 하다가, 어, 여기 무척 큰 느티나무 한 그루 있네, 싶어 놀랍니다. 면사무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우람한 느티나무가 찡깁니다. 건물 사이에 찡기느라 굵다란 가지 하나 뭉텅 잘립니다. 저런. 어쩜 이렇게 아프게 이곳에 있니.


  면사무소이든 군청이든, 이런 건물은 100해나 200해를 버티지 못해요. 아마 쉰 해 넘게 잇는 건물도 드물겠지요. 그러나, 이 느티나무는 200해뿐 아니라 500해나 1000해를 삽니다. 2000해나 5000해까지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면, 면사무소 건물과 느티나무 한 그루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떻게 하는 길이 풍양면과 고흥군과 느티나무와 숲과 마을과 사람을 모두 살리는 길이 될까요.

 

 

 

 

 


  풍양면사무소 주민쉼터 한쪽에 ‘친환경화력발전소 유치위원회’라는 데에서 만든 유인물 보입니다. 고흥군에 ‘위해·유해 화력발전소’ 안 들어도록 하기로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 이런 유인물이 이런 곳에 수북하게 쌓인 채 있을까요. 풍양면사무소 일꾼(공무원)은 무슨 일을 하나요.


  면사무소 한켠에 있는 ‘상림리 삼층석탑’을 봅니다. 돌탑은 예쁘게 꾸며 놓습니다. 이와 달리 느티나무는 막대접을 받습니다. 무엇을 아끼고 어떤 삶을 지어야 즐거운가를 이곳 분들은 아직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고흥에 있는 ‘대구’식당 간판을 봅니다. 작고 예쁜 집 벽돌담을 봅니다. 풍양면 조그마한 우체국을 봅니다. 우체국 옆을 자전거로 달리는 마을 할배를 봅니다. 햇살은 따스히 내려쬡니다. 따순 햇살이 자전거 할배 몸으로 살살 스며듭니다. 볕 좋은 고흥에서도 남달리 볕좋은 풍양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풍양초등학교 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습니다. 좋은 볕 누리며 밭을 갈아엎으며 구슬땀 흘릴 수 있고, 밭일은 새벽에 한 다음, 아침 맛나게 지어먹고 2월 한낮에 슬슬 이웃마을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동백에서 1500원, 고흥읍에서 1100원, 고작 2600원이면 동백부터 죽시까지 봄마실 누릴 수 있습니다. 4346.2.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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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1, 읍내 나무전봇대 (13.2.5.)

― 사람들 살아가는 오늘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늘 누리는 삶’을 새롭게 이야기로 갈무리합니다. 옛사람은 옛날에 누리던 삶을 그무렵 이야기로 갈무리해서 옛이야기를 빚어 물려주고, 오늘 우리들은 ‘오늘이야기’를 날마다 즐겁게 빚어 우리 아이들하고 이웃한테 나누어 줍니다.


  천 해나 만 해를 잇는 옛이야기일 때에 빛나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고이 이어 앞으로 천 해 뒤나 만 해 뒤에까지 즐거이 나눌 수 있어도 빛나는 이야기 됩니다.


  어떤 유물이나 유적이 있어야 문화유산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누리는 삶을 되새길 수 있을 때에 ‘싱그러이 숨쉬고 빛나는 이야기보배’를 일굴 수 있습니다.


  문화재 번호를 받아야 문화재가 되는 고인돌은 아니에요. 고흥 시골마을 곳곳에는 문화재 번호를 안 받거나 못 받은 고인돌이 무척 많아요. 거금도 몽돌은 처음부터 문화재 대접을 받지 않았어요. 고흥 바닷가는 처음부터 국립공원이지 않았어요. 시골마을 시골사람 스스로 정갈하게 돌보고 사랑한 삶터가 시나브로 아름다운 문화재 이름을 받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마당으로 거듭나요.


  읍내 한켠 천천히 거닐며 ‘고흥읍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고흥군청 앞마당 옆에 있는 농협 건물 앞쪽 조그마한 빌라와 조그마한 살림집 사이에 나무전봇대 하나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러 읍내에 올 적, 가끔 이 나무전봇대 옆으로 지나갑니다. 팔을 뻗어 나무전봇대 몸통을 쓰다듬습니다. 나무전봇대에 씩씩하게 붙은 이름표를 올려다봅니다. 어느덧 시멘트전봇대로 바뀌어 거의 다 사라지지만, 이 나무전봇대 하나 고흥읍 한켠에 있어, 고흥읍이 지나온 발자취 하나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저 쇠딱지 하나에는 어떤 손길과 땀방울이 묻은 채 오늘까지 이어졌을까요.


  읍내 옛 소방서 건물 한쪽에는 오래된 소방차 한 대 먼지를 먹습니다. 옛 소방서 건물은 한국땅에 몇 군데쯤 남았을까요. 또, 옛 소방서 건물에 깃든 옛 소방차는 한국땅에 몇 대나 남았을까요. 옛 소방서 건물은 고스란히 박물관이 될 만하고, 옛 소방차 한 대도 먼지를 먹기보다 고흥 아이들 어여쁜 손길을 타며 오래오래 사랑받는다면 한결 아름답겠지요.


  머잖아 시골마을 우체통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손으로 종이에 글월 한 쪽 적어 우표 한 닢 붙이고는 우체통에 두근두근 설레는 즐거움으로 부치는 사람 거의 없어요. 우체국에서 글월 한 통 부치려 해도 우표 아닌 종이딱지를 기계로 뽑아서 붙여 주어요. 고흥에서라도 우체국에서 종이딱지 아닌 우표를 곱다시 붙인다면, 고흥우체국 도장 콩 찍힌 글월이 이 나라 곳곳으로 날아갈 수 있다면, 아마 2013년뿐 아니라 2010년대와 2020년대에도 환하게 빛날 새 이야기 길어올릴 만하리라 생각해요. 서류봉투에도, 관공서 간행물에도, 국회의원 의정보고서에도, 모두 우표가 붙고 손글씨로 주소를 적어 집집마다 띄운다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지겠지요.


  금산우체국 앞에서 빨간 우체통 바라봅니다. 도화초등학교 앞에 있는 옛 문방구이자 구멍가게였던 자리에 아직 남은 빨간 우체통 바라봅니다. 살짝 어루만집니다. 4346.2.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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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 이야기 두 번째.

토종씨앗을 생각하는 이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빈다.

인터넷 <고흥뉴스>에 띄운 글을 옮긴다.

 

http://www.gh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887

 

 

아이들이 거둔 곡식으로 지은 떡

― 고흥여성농업인센터 ‘토종 종자 이야기’ 두 번째 자리

 

 

  2012년 12월 22일, 전남 장흥군 용산면 복지회관 2층 강당에서, 아침 10부터 낮 다섯 시까지 ‘씨드림 잔치’가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마을 황새울〉이라는 이름으로, 장흥 용산초등학교와 장흥 장흥고등학교 학생들이 ‘마을논살이’ 활동을 했고, 이 활동을 마무리지으면서 학생들이 텃논에서 손수 지은 곡식으로 떡을 지어 나누는 한편, 장흥에서 ‘남도 토종자원 연구보존회’ 일을 하는 이영동 님이 〈우리 종자 토종씨앗 한마당〉을 나란히 열었다.

 

   
▲ 〈우리가 꿈꾸는 마을 황새울〉과 〈우리 종자 토종씨앗 한마당〉 행사가, 장흥군 용산면 복지회관 2층에서 열렸다.
   
▲ 행사장 모습.
   
▲ 행사장 모습.


  〈우리가 꿈꾸는 마을 황새울〉은 장흥교육희망연대에서 주관하고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에서 후원한 활동으로, 장흥 용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텃논에서 논생물을 살피고 논흙을 만지면서 ‘마을논살이’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고흥이나 장흥 아이들은 모두 시골아이라 하지만, 정작 학교수업과 입시교육에 매여 바로 곁에 있는 논밭에서 어떤 일을 하고 논밭에서 어떤 생물이 살아가는지를 도시아이보다 더 모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용산초등학교 어린이만 이 활동을 했으나, 나중에 장흥고등학교 ‘E.S.C.환경동아리’ 푸름이가 함께했고, 장흥 지역 청소년이 스스로 마을논에서 봄과 여름과 가을을 누린 이야기를 사진과 떡잔치로 보여준다.


  용산초등학교 교사 이기호 님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이야기한다. “지난 1년, 우리 아이들한테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농촌 아이들이 농사를 안다고 할 수가 없거든요. 직접 모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역 고등학교 환경동아리와 합류해서, 유기논에서는 생물이 더 많을 텐데, 그냥 관행논에서 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관행논에서 농약 쓰면 생물에 얼마나 피해가 가는가를 몸으로 느끼는 것 같았어요. 미생물·농작물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채집한 생물을 살펴본 다음 누군가 버리려 하니, ‘야, 논에 가져다주어야지’ 하며 소중히 여기더라고요. 작은 곤충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걸 봤습니다. 친환경농업 홍보보다, 생명의 소중함 느끼게 하는 데에 뜻이 있었어요. 김매기도 하고 추수도 하고, 홀테로 훑어 보기도 했는데, 먹는 것·생명·환경 들을 많이 체득하지 않았느냐 생각해요. 참 행복한 한 해였어요.”

   
▲ 장흥 학생들이 텃논에서 보낸 모습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보여준다.
   
▲ 행사장에서.
   
▲ 씨앗 모습.


  다음으로, 토종 씨앗을 알뜰히 건사하는 이영동 님이 이야기를 잇는다. “농촌이 산업화되어, 돈벌이 안 되니까 토종은 안 거두게 되었지요. 우리 바른 먹거리와 토종 종자 보급이 아주 시급해요. 이것은 우리 선조들의 귀중한 유산이에요. 저는 도시 광주 2개월 서울 6개월, 스물네 살에 딱 여섯 달 살아 봤는데, 고향 생각이 나고 고구마·옥수수·감자·밀죽 생각이 나서 도무지 못 견디겠어요. 어머니 돌아가셔서 시골로 돌아오니, 마루에 어머니가 이듬해에 심으려고 갈무리한 씨앗이 20가지가 나왔어요. 그 뒤로 이 씨를 버릴 수 없겠다 싶어, 지금 150가지 씨앗을 심어서 길러요. 오늘은 40가지 남짓 내놓았는데, 재래시장에 가거나 하며 구하기도 해요. 한번은 보성시장에 가는데 어느 할머니가 뻥튀기를 하려고 콩을 가져왔어요. 거기서 슬쩍 두 알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어요. 한 번 심어 보려고요. 그런데 두 알 심어서는 안 될 수 있어요. 다시 두 알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내 손을 탁 치면서, 남이 장사하는데 이러면 되겠느냐 해서 얼굴이 빨개진 적 있어요 …… 일반 농사꾼들은 토종 씨앗을 받아서 가져가도 잘 안 심고, 심어 봐도 잘 안 된다고 해서, 씨앗을 나눠 줘도 없어지기만 하고 이어지지 못해요. 그런데 귀농인들은 돈을 덜 바라보니까, 토종 씨앗을 받아서 해 줘요. 저도 일반농사 하면서 씨를 보호하려고 조금만 하는데, 집에다가 화분을 놓고 하나하나 따로따로 심어서 이름표를 붙이면서 하기도 하거든요. 최근 들어 토종 종자에 관심 가져 주는 분이 많으니 뿌듯해요. 지역마다 종자가 다르니까, 지역에 맞는 종자를 심으면 잘 돼요. 저는 해남·강진·영암 이 근방에서 모은 지 한 30년 됩니다 …… 토종 종자는 왜 지켜야 하는가. 첫째, 바른 먹거리. 둘째, 선조 유산. 셋째, 전통 향수. 유전자 변형 콩이 우리 세대에게 아직 영향을 안 준다고 하지만, 우리 후세에게 어떤 기형을 줄는지 모릅니다. 자연교배는 기형을 낳지 않아요. 자연교배로 이어온 씨앗은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쥐이빨옥수수 이름 얼마나 재미있어요. 참 쥐이빨처럼 생겼어요.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니에요. 자연적으로 예부터 나온 이름이고요. 청양고추가 몬산토로 넘어갔습니다. 토종이지만 우리한테 주권이 없어 로열티를 줘야 한답니다. 종자전쟁이 일어나요. 우리 것이면서 주장을 못하고, 그 사람들한테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것이지요. 언젠가 몬산토 씨앗이 부대에서 떨어져 어느 분 땅에서 자랐는데, 몬산토에서 이분을 고발했대요. 그래서 피해보상을 해야 했대요. 자기가 몬산토 씨앗을 사다 심은 것도 아니고, 트럭에서 씨앗이 떨어져서 자랐어도 로열티를 주장하며 피해보상을 받아 가요. 우리 학생들은 이 토종 씨앗이 우리 미래인 줄 느끼며 스스로 주인이 되기를 빌어요.”


  이영동 님은 토종 씨앗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지도 이야기한다. “씨앗을 받아서 심을 때에는, 제일 먼저 나온 것을 남기세요. 가지도. 그렇게 하고 그 다음 것을 건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자 채종이 어려워요. 알고 보면, 두 번째 열리는 열매가 가장 좋아요.”

   
▲ 씨앗을 통에 담아 이름표를 붙이기도 한다.
   
▲ 학생들은 한 해 동안 즐거이 놀면서 논에서 지냈고, 마무리 행사를 벌인다.
   
▲ 씨앗을 나누어 받은 다음 하나하나 이름을 적는다.


  이영동 님은 토종 씨앗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영문이라는 분이 남해 섬으로 들어갔어요. 고추 토종 지키려면 다른 꽃가루를 받으면 안 되거든요. 그런 까닭이 있어요. 토종 고추도 비료 하면 안 돼요. 옥수수도. 비료 안 해야 해요. 비료 하면 키만 많이 커요. 그런데 토종은 달라요. 왕성하게 잘 자라서 제초제도 필요없어요. 얼른 자라 주위를 장악해요. 비료나 농약을 치면 오히려 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토종 씨앗이 아닌 대기업이나 다국적기업 씨앗을 사다 심으면, 이들 씨앗은 다시 씨앗을 받아 심어서 거두지도 못하지만, 굵기나 모양은 언뜻 살피기에 그럴듯하다지만, 비료와 풀약을 많이 써야 한다고 한다. 비료와 풀약으로 땅이 망가지면, 정작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땅을 살리면서 우리 몸에 좋은 씨앗을 심어서 나누면, 참말 누구한테 즐거운 삶이 될까.


  어릴 적부터 흙을 일구던 이영문 님은 다른 이야기도 한 가지 들려준다. “옛날엔 쟁기로 갈아서 겉흙을 살짝만 갈았는데, 지금은 로터리로 해서 깊게 갈고 비료를 주니까, 쌀도 다 쓰러져요. 토종 씨앗이라 해서 무조건 로터리 쳐서 갖다 심는 게 아니라, 씨에 맞춰서 심어야 해요. 일반 종자처럼 하지 말고. 배게 심어도 안 돼요. 콩은 울타리 곁에 심어요. 울타리 타고 올라가면, 씨앗을 심고도 안 잊어버려요. 들깨도 그렇게 하며 잎사귀 따먹어야 재미를 느끼지. 콩은 서로 교배가 안 돼요. 곁에 있어도 자기 것으로만 자라요.

   
▲ 씨앗을 담는 손.
   
▲ 씨앗을 작은 봉투에 담아 가져가도록 나누어 준다.
   
▲ 씨앗을 담는 손.


  용산초등학교 이기호 선생님과 농사꾼 이영동 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고흥에서도 고흥교육지원청에서 이 같은 활동을 마련해 고흥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아름다운 고흥 시골 텃논과 텃밭’을 느끼도록 하면 아주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고흥군청에서는 고흥군 아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대학생이 되도록 이끄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지 말고, 고흥군 아이들이 고흥 시골마을을 사랑하며 아낄 수 있는 길을 찾아, 오래오래 어여쁘고 싱그러운 들과 바다와 숲을 가꾸는 사랑을 일깨우는 정책을 마련하면 아주 좋으리라 생각한다. 문화란, 교육이란, 정책이란, 모두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즐겁게 누리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만든 작품도 나란히.
   
▲ 일본에서 쓰는 예쁜 엽서도 보여준다.
   
▲ 전시된 씨앗을 살펴본다.
   
▲ 이영동 님.
   
▲ 오른쪽 두 번째에, 용산초등학교 이기호 선생님.
   
▲ 장흥고등학교 환경동아리 푸름이들.
   
▲ 예쁜 아이들 예쁜 사진.
   
▲ 아이들이 텃논에서 거둔 곡식으로 지은 떡.
   
▲ 고흥 아이들도 텃논에서 곡식을 거두어, 마을이웃하고 떡잔치를 할 수 있는 날을 2013년에는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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