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

냇물은 흐르는 물. 흐르는 물은 산 물, 살아숨쉬는 물. 먹는샘물이라는 생수는 이름만 ‘샘물’일 뿐 안 흐르는 물이자 페트병, 곧 플라스틱덩이에 갇힌 물. 수돗물도 댐에 갇히다가 시멘트덩이를 흐르며 시달리는 물, 이리하여 죽은 물. 페트병 생수나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면 죽은 물을 몸에 집어넣는 셈. 죽은 물로 밥을 짓는다면 죽음덩이를 몸에 욱여넣는 셈. 살아숨쉬는 물이자 흐르는 물인 냇물이나 샘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살아숨쉬거나 흐르는 물을 가까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숨쉬는 넋이 아닌, 갇히거나 억눌리거나 고달픈 채 허덕이는 셈. 물이 물답게 흘러서 밥을 밥답게 누리는 삶이 아니라면, 삶이 삶답다 할 수 있을까? 냇물을 죄다 망가뜨리는 나라지기만 있다고 한다면 그런 나라지기가 있는 곳을 삶터로 삼을 수 있을까? 1998.5.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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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런 일을 내가 겪을까? 왜 이런 삶을 내가 치를까? 왜 이런 책이 나한테 보이지? 왜 이런 글까지 내가 써야 하지? “왜?” 하는 생각이 들 적마다 오히려 스스로 “왜?” 하고 묻는다. 이런 일을 겪으며 무엇을 배울 만한지, 이런 삶을 치르는 동안 무엇을 보며 느낄 만한지, 이런 책을 눈앞에서 펼치며 어떤 길을 돌아볼 만한지, 이런 글까지 굳이 쓰면서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는가를 하나하나 곱새긴다. 모든 일은 우리를 일깨우려고 찾아온다. 모든 글은 스스로 배우는 동안 쓴다. 1999.3.2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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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이모네 집에 놀러온 큰아이가 문득 “밖에서 사먹는 피자가 아무리 맛있어도, 집에서 구워서 먹는 피자가 더 맛있어.” 하고 말한다. 큰아이 말 그대로이다. 바깥에서 파는 피자는 그럭저럭 좋다 싶은 밥감으로 굽는다면, 집에서 우리가 손수 반죽해서 굽는 피자는 가장 좋은 밥갑을 챙겨서 구우니 맛이 다를밖에. 집밥이란 가장 좋은 밥감으로 지으니 더없이 맛있기 마련이요, 집밥은 누가 먹는가를 헤아리면서 손수 지으니 가없이 맛있기 마련인데다, 집밥은 바로 우리 사랑어린 손길로 지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쓸 글은? ‘집글’이면 된다. 2019.3.1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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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책이 좋은데 읽을 틈 없이 바쁘고 힘들면, 틈을 내어 읽으면 된다. 마음을 살찌우거나 가꾸는 책을 가까이할 틈을 낸다면 어느덧 쉴 사이가 나타나고, 이 사이에 새로 기운이 나면서 마음이 따뜻하게 열리고, 몸을 번쩍 일으킬 수 있다. 글이 좋은데 쓸 틈새 없이 부산한 나날이면서 고단하다면, 틈새를 내어 쓰면 된다. 무엇 때문에 얼마나 부산한지 고단한지 바쁜지 힘든지 고스란히 옮기면 된다. 스스로 글을 쓸 틈새를 내기에 참말로 틈새를 쪼갤 만하고, 이때에 새삼스레 눈을 뜨고 손을 뻗어 온사랑으로 글 한 줄이 피어난다. 2006.3.1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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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다 3

생각해 보면, 책집마다 베스트셀러란 이름으로 책에 점수하고 등수를 매기는 짓은 줄세우기이다. 더 팔렸대서 더 훌륭한 책일 수 없으나, 언제나 팔림새 하나를 놓고서 줄을 세운다. 그래서 팔림새가 좋은 책은 더 잘 팔리도록, 아니 우리가 그 팔림새 좋은 책에 더 눈길을 두도록 이끌고, 우리도 그런 줄세우기에 절로 따라간다. 책을 줄세우기 시켜도 될까? 글쓴이나 펴낸곳을 줄세우기 해도 좋을까? 책뿐 아니라 사람도 줄세우기를 하는 마당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일까? 나라에서도 정당지지율이나 경제성장율이라 하면서 툭하면 줄세우기를 한다. 가만 보면 비례대표조차 줄세우기 아닌가? 줄세우기 아닌 새로운 앞길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나아가도록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야지 싶다. 학급에서는 모든 아이가 반장이 되어 학급을 이끌도록 할 노릇이고,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나라지기가 되어 나라살림을 꾸리도록 할 노릇이지 싶다. 투표란, 어쩌면 민주가 아닐 수 있다. 참다운 민주란, 투표 없이 모든 사람이 꼭두지기 노릇을 할 줄 알 뿐 아니라 슬기롭고 사랑스럽게 서로 보살피는 마음을 가꾸고 가르치고 배우고 나누는 살림터에서 피어나지 싶다. 2004.7.6.


재다 4

우체국에 가면 키를 재는 연장이 있는데, 이 연장에 올라서면 몸무게도 잴 수 있고, 비만율인가 체지방율도 숫자로 뜬다. 아이들은 이 키잼틀이 재미있다면서 더러 올라가서 논다. 저희 키랑 몸무게가 얼마나 나오는가 알아보는 놀이를 한다. 두 아이가 서로 키하고 몸무게가 얼마라고 읽으며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생각한다. 어느 아이는 또래보다 크거나 작다. 어느 아이는 또래보다 무겁거나 가볍다. 몸은 다 다르다. 다 다른 몸처럼 마음이 다 다르다. 어느 나이에 키나 몸무게가 어떠해야 할 까닭이 없다. 작으면 작을 뿐, 크면 클 뿐이다. 생김새도 매한가지이다. 예쁜 얼굴이란 뭘까? 잘 빠진 몸매란 뭘까? 우리는 왜 겉모습을 이토록 따지고, 겉모습을 재는 장사판이 이다지도 클까? 우리 삶에서 대수로운 대목이 마음이라 한다면, 막상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마음을 다스리고 돌보고 닦고 북돋우고 키우고 살찌우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학교에서는 직업교육에 매달리고, 도시에서 어떤 일자리를 얻어 돈을 더 잘 벌 만할까를 따지거나 잰다. 마음을 가르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가 있을까? 마음을 이야기하는 공공기관이나 회사가 있을까? 마음을 사랑하는 글이나 책은 얼마나 될까? 2019.3.1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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