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숲마실

내가 지은 이름을 그냥 따서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러려니 하고 여기다가도 때때로 아쉽다.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사람이 모임을 꾸린다면야 그냥 쓸 만하지만, 책을 내면서 책이름으로 붙인다든지, 공공기관에서 어떤 문화사업을 꾀하면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따간다든지 할 적에는, 좀 그 이름을 가져다가 써도 되느냐고 물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새로 지은 이름에 내 저작권이나 특허권이 있다고 말할 생각이 아니다. 그 이름, 그 말, 그 숨결에 어린 뜻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듣고 새길 수 있도록 ‘이름풀이’나 ‘말풀이’를 더 찬찬히 해 달라고 물어볼 노릇이라고 여긴다. 왜 그러한가 하면 그 이름을 슬그머니 가져다가 쓰는 분들 가운데 그 이름하고 얽힌 참뜻이나 속뜻을 깊거나 넓게 짚어서 아우르거나 품는 사람이나 무리나 공공기관은 좀처럼 안 보이니까. 이름이 고와 보여서 가져다가 쓰려 한다면, 제발 사랑어린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쓰시기를 빈다. 오랫동안 “책방마실”이란 이름을 썼다가 2013년에 부산에서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기리는 책을 내며 “책빛마실”이름을 지어 보았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기리는 책을 낸 2014년에는 “책빛숲”이란 이름을 지었다. 둘레에서 ‘책방 순례’나 ‘책방 여행’이라 할 적에 나는 순례도 여행도 내키지 않아서 “책방나들이”를 썼다. 1994년 무렵이다. 그런데 이 이름을 말없이 가져다가 책에 쓴 사람이 있더라. 씁쓸하다 여기면서 2003년 즈음부터 “책방마실”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썼다. 그런데 또 2018년 1월 즈음이던가, 광주광역시에서 “책방마실”이란 이름을 따서 쓰더라. 몰라서 말없이 썼을는지 모르고, 알면서 그냥 썼을는지 모른다. 이런 이름을 열 몇 해에 걸쳐 온갖 곳에 두루 쓰며 책도 내고 했으니 그분들은 ‘일반명사’로 여겼을 수 있겠지. 그래서 다시금 이 이름을 내려놓자고, 나는 더 쓰지 말자고 여기면서 “책숲마실”이란 이름을 지어서 썼다. 그런데 “책빛마실”이란 이름이 무척 좋아 보인다면서 순천시에서 ‘순천 도서관 소식지’에 이름을 가져다가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물어보아 주어 고맙기에 얼마든지 쓰시라고 말했다.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이름 하나가 얼마나 대수로운가를 여기는 마음이 좋아 보였다. 다만, 순천시에서도 이 이름을 가져다 쓰고 싶다 하면서 이름값을 치르지는 않더라. 아무튼 나는 “책방나들이·책방마실”을 얼결에 내 손에서 떠나보냈고, “책빛마실”은 부산에 주고 “책빛숲”은 인천에 주었다. “책숲마실”은 순천에 거저로 준 셈인데, 그러면 또 새롭게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구나 하고 느낀다. 새로지을 이름을 또 누가 가져다가 쓰고 싶다 한다면, 글쎄 그때에는 이름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서야 주지 않겠다고 얘기해야겠지? 2018.10.1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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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1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음에서 온다. 너한테서 나한테 오는 사랑이 아니고, 나한테서 너한테 가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오직 나한테서 나한테 오고, 너한테서 너한테 온다. 1993.4.6.


사랑 2

사랑을 하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는 말을 오늘 비로소 느낀다. 우리 아름다운 동무가 사랑을 하니 이 아이 얼굴이 빛날 뿐 아니라, 이 아이 몸 둘레로 환한 빛줄기가 퍼진다. 거짓이 아니다. 나는 이 아이한테서 뿜어져나오는 빛줄기를 두 눈으로 보았다. 동무하고 술잔을 부딪히며 한마디를 한다. “야, 너, 사랑을 하니까 사람이 참 아름답다. 눈부셔. 너한테서 빛이 나와. 나 말야, 너한테서 나오는 빛을 봤어.” 1995.8.7.


사랑 3

가만히 눈을 바라보면 반짝반짝하면서 별처럼 초롱초롱한 물이 흐른다. 사랑이란 이렇구나. 모든 사랑은 스스로 태어나지만, 내가 너를 보면서 너한테서 흐르는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구나. 내가 스스로 짓는 사랑이라면, 너는 틀림없이 내 눈을 그윽히 바라보면서 사랑이란 어떤 춤결인가를 바로 알아챌 수 있겠구나. 2019.3.1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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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세우기

순위표는 사람을 사람 아닌 숫자로 깎아내리면서 갉아먹는다. 숫자를 하나씩 매겨서 줄을 세우는 짓은 사람들 마음에 사랑이 아닌 시샘하고 미움이 자라도록 씨앗을 심는다.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책이 그토록 많이 팔렸는데 사람들 마음이 어떠한가? 아름다운 삶이며 사랑이며 살림을 적었다고 해야 할 만한 훌륭한 책이 그렇게도 많이 팔리고 읽혔다면, 이런 책을 읽은 사람들이 슬기로운 사람으로 우뚝 서서 아름답고 밝고 따사로운 손길로 이 땅을 어루만지는 길을 갈 노릇 아닌가? 다시 말해서, 우리는 순위표를 읽을 뿐, 정작 글을 읽지는 못한 셈이다. 우리는 줄세우기를 받아들일 뿐, 막상 살림짓기를 읽지는 않은 셈이다. 2004.7.23.


줄서기

아이들을 이끌고 서울마실을 하든 혼자 바깥일을 보려고 서울마실을 하든, 시외버스를 내려서 전철로 갈아탈 적마다 으레 끼어드는 사람을 본다. 저절로디딤돌을 먼저 타려고 그냥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새치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철에서 내릴 사람이 아직 안 내렸는데 먼저 밀고 들어오는 이들이 참 많다. 요새는 퍽 줄기는 했으나 줄기는 했다뿐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아이들하고 전철을 갈아타면서 짐수레를 저절로디딤돌에 세워서 올라가려고 긴 줄을 기다리는데 또 옆에서 새치기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꽤 크게 소리를 내어 “멈추세요. 뒤로 가세요. 사이에 끼어들지 말고 줄을 서세요.” 하고 딱부러지게 말했다. 2019.3.1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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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5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 헌책집에 가서 책을 사읽었다고 하니 중대장이며 소대장이며 행보관이며 분대장이며 아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본다. 지오피 수당이며 담배값이며 알뜰히 모았지. 왜 모았느냐 하면, 군대에서 글 한 줄 읽을 수 없이 지낸 내 머리가 썩지 않도록, 바보가 되지 않도록, 짧은 휴가라 하더라도 이때에 헌책집에 파묻혀 마음을 새롭게 북돋울 책을 만나고 싶었다. 군인옷을 입고 헌책집에 가서 책을 읽었다. 단골로 드나들다가 반 해 넘게, 때로는 거의 한 해 만에 찾아온 젊은이를 본 헌책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반긴다. “군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책을 사러 와?” 하시면서 책값을 안 받으시기도 한다. 몇 아름 장만한 책을 짊어지고 인천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 책을 펴서 얼굴을 가린다. 헌책에 눈물자국이 흥건하다. 1996.9.19.


헌책 6

군대를 마치기 앞서 ‘열 해 앞그림’을 그렸다. 이 가운데 하나는 “헌책방 사랑누리”라는 모임을 새로 여는 일이다. 바깥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면서 시끄럽다. 그런데 그럴 만하지 않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는 책이란 으레 베스트셀러 빼고 없잖은가? 아름답고 알찬 책이 아닌, 잘 팔리는 책만 소개하고 다루는데, 그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은 한때 반짝일 수는 있으나 두고두고 마음에 씨앗으로 깃들 만하지는 않다고 느낀다. 이제는 ‘책 읽히는 운동’이 아니라 ‘책을 새로 보는 길’을 마련하고 이야기할 노릇이지 싶다. 책을 책답게 바라보는 길이란, 껍데기 아닌 줄거리를 바라보는 길이다. 공공도서관이며 대학도서관은 해마다 책을 엄청나게 버리는데, 이렇게 버려지는 책은 대출실적이 적은 책이다. 아무리 알차거나 훌륭한 책이라 하더라도 대출실적이 없으면 그냥 버린다. 헌책집을 다니다 보면 출판사나 신문사나 공공기관에서 버린 엄청난 책을 꽤 쉽게 만난다. 고작 스무 해밖에 안 된 책이어도 ‘낡았다’면서 그냥 버리더라. 한국에는 자료조사부라고 할 만한 곳을 영 못 두는 출판사이자 신문사라고 느낀다. 그래서 “헌책방 사랑누리”라는 모임을 열려고 한다. “헌책방 소식지”도 낼 생각이다. 이레마다 하나씩 내려고 한다. 이레마다 “헌책방 소식지”를 낸다고 해도 한 해에 고작 쉰네 가지밖에 안 된다. 고작 쉰네 곳밖에 안 되는 헌책집을 알리니 터무니없이 적지만, 헌책집 길그림을 그려서 뿌리고, 헌책집 소식지를 찍어서 나누려고 한다. 그리고 모임사람을 이끌고 서울 시내를 비롯해 전국 여러 헌책집을 찾아다니려고 한다. 눈을 틔우고 생각을 깨우며 사랑을 속삭이는 책은 바로 헌책집지기가 먼지구덩이에서 땀흘려 캐낸 헌책 하나에 있다는 뜻을 펴려고 한다. 1998.1.6.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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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번

나는 대학교를 그만두었으니 고졸이다. 고졸로 살아가는 사람한테 자꾸 “그래도 대학교에 들어갔다가 그만두었다니까 학번이 있을 거 아니에요? 몇 학번이에요?” 하고들 물어본다. “제가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기는 했습니다만, 제 삶에서 잊은 일이기에 몇 학번인지는 모릅니다. 제 나이를 알고 싶으시다면, 저는 1975년 토끼띠로 태어났으니 더하기 빼기를 하시면 됩니다.” 하고 대꾸하는데 끝까지 학번을 물고늘어진다.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손을 맞잡거나 절을 하고서도 하나같이 “몇 학번?” 하고 물으며 어느 대학교 무슨 학과를 다녔는지 따진다. 이른바 전문가 무리라고 하는 글쟁이밭이나 그림쟁이밭은, 또 책하고 얽힌 기관이나 연구소는 왜 이렇게 학번을 좋아할까? 기자들조차도 학번을 묻는다. 참으로 지겨운 나라이다. 학번을 묻는 그들은 학번으로 줄을 세우려는 뜻이 뼛속까지 새겨졌다고 느낀다. 사람 아닌 숫자를, 또 대학교 배움줄을 따지는 이들이 버젓이 판친다면, 이 나라는 멍텅구리 꼴에서 맴돌고 말리라. 2000.3.2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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