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자전거 환경지킴이 3
이상교 지음, 오정택 그림 / 사파리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2

 


자전거를 달리는 즐거움
― 초록 자전거
 오정택 그림
 이상교 글
 사파리 펴냄, 2010.2.25.

 


  이상교 님이 쓴 글이 오정택 님이 그림옷 입힌 《초록 자전거》(사파리,2010)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풀빛 자전거는 시커먼 자동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훨훨 날기도 하고, 빨간 풍선을 매달고 사뿐사뿐 나긋나긋 달리기도 합니다. 도심지를 벗어나 자전거길 있는 공원을 달리면서 풀내음을 마시기도 합니다.


.. 방학을 맞아 엄마가 새 자전거를 사 주셨어요. 날씬한 초록 자전거는 내 마음에 쏙 들었어요 ..  (3쪽)


  자동차가 한 대만 지나가도 아주 시끄럽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아닌, 여느 길을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라도 시끄럽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더라도 골목에서는 모든 사람이 담에 바싹 붙거나 비켜야 합니다. 자동차에 꼭 한 사람이 탔어도 수십 수백 사람이 비키거나 물러서야 해요.


  이 나라 교통법이나 교통행정에서는 언제나 자동차가 으뜸입니다. 걷는 사람은 맨 꼴찌입니다. 아니, 걷는 사람은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서울을 생각해 봐요. 서울에서 자동차가 한강을 건너도록 수많은 길이 있으나, 서울에서 사람이 한강을 건너도록 알맞게 길을 내지 않아요. 사람만 건널 수 있는 한강다리란 없습니다. 사람이 한강다리 한쪽 귀퉁이에서 살금살금 건널 수 있으나, 자동차 때문에 귀가 찢어져야 하고 매캐한 배기가스를 엄청나게 마셔야 합니다.

 


..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자전거처럼 조용히 지나가면 참 좋을 텐데 ..  (19쪽)


  서울을 비롯해 자전거길 있는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자전거길을 달리는 오토바이가 있습니다. 공원을 지킨다는 이들조차 자전거 아닌 오토바이를 몹니다. 게다가, 자전거길에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이 있고, 자전거길에서 뒤로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이 있으며, 손을 맞잡고 나들이를 하는 젊은 짝꿍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길 아닌 거님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리저리 뒤죽박죽입니다.


  어느 도시에는 찻길 한쪽에 자전거길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시마다 있는 자전거길은 거의 주차장입니다. 상주도 순천도 창원도 인천도, 자전거길은 자전거 다니는 길이 아니라 주차장 구실을 합니다. 자전거가 자전거길을 달리지 못합니다.


  더없이 슬프고 고단한 우리 삶터를 돌아본다면, 그림책 《초록 자전거》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삶이 너무 팍팍하고 메마르며 고달픈 나머지, 그림책에서는 시커먼 자동차를 우습게 여기듯이 자전거가 훨훨 날아요.

 


.. 자동차 소리가 멀어지자 씽씽이의 바퀴살 소리가 들려왔어요 ..  (22쪽)


  그런데, 그림책 《초록 자전거》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자전거 그림이 엉터리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자전거를 엉거주춤하게 등을 구부리고 타요. 게다가 팔꿈치가 손잡이 아래로 처집니다. 무릎도 제대로 펴지 못하면서 발판을 굴러요. 도무지 알맞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탈 적에는 등을 곧게 펴야 합니다. 아주 빨리 달리려는 경주용 자전거가 아니라면 등을 구부릴 까닭이 없어요. 더욱이, 자전거를 달릴 적에 손잡이는 곧게 편 등허리에서 곧게 뻗어서 잡습니다. 손잡이를 잡은 손등은 내 얼굴이 아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앞쪽으로 살짝 기울이도록 해야 올바릅니다. 팔을 곧게 펴서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손잡이가 이리저리 춤추어요. 아니,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 팩 쓰러집니다. 자전거 발판을 구를 적에는 한쪽 다리가 곧게 펴질 만큼 안장대를 맞추어야 무릎 관절이 안 다쳐요. 곧, 그림으로 그리자면, 한쪽 다리가 발판 아래쪽까지 곧게 뻗도록 그려야 올바릅니다.


  한편, 자전거 꽁무니에는 풍선을 줄에 매달아 달면 안 됩니다. 아주 위험합니다. 줄에 매달아 풍선을 달면, 자전거를 달리다가 풍선이 이리저리 춤추다가 줄이 뒷바큇살에 걸려요. 줄이 뒷바큇살에 걸리면 자전거가 갑자기 섭니다. 이러면서 크게 다치지요. 자전거 뒤쪽에 무엇을 달자면, 깃대꽂이를 붙인 다음, 대나무살처럼 튼튼하면서도 바람에 따라 알맞게 휘는 깃대를 꽂은 다음, 이 깃대에 달아야 합니다. 깃발이든 풍선이든 줄로 매달면 안 됩니다. 줄로 매단 채 자전거를 달리면 옆을 달리는 자동차한테도 위험하고, 마주 달리거나 뒤에서 따라오는 자전거한테도 몹시 위험하지요.


  그림책 《초록 자전거》 뒤쪽에는 “자전거를 탈 때에는 이렇게 하기로 해요!” 하면서 여덟 가지를 밝히지만, 정작 이 그림책에서는 ‘자전거를 위험하게 타는 모습’을 그린 셈입니다.


  한 가지를 덧붙여, “자전거 안전 수칙”만 아이들한테 되풀이해서 들려주기 앞서,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말할 수 있기를 빌어요. 어른들 스스로 자동차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더우나 시원하나 따뜻하나 자전거로 마실을 하는 기쁨과 웃음과 사랑을 한결 포근하게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 - 학교에 살고 있는 풀.꽃.나무 이야기 쪽빛문고 15
손옥희.최향숙.이숙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경책 읽기 57

 


학교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 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
 손옥희·최향숙 글
 이숙연 그림
 청어람미디어 펴냄, 2012.4.5.

 


  나무 한 그루 안 심은 학교가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학교에는 나무가 없습니다. 작은 방이나 건물만 빌려서 쓰는 야학도 나무를 심을 자리가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학교를 세운다 할 적에, 학교를 숲과 같이 되도록 가꾸는 곳이 아주 드뭅니다. 초등학교도 대학교도 똑같습니다. 새롭게 건물을 더 올리거나 높이려 할 뿐, 건물 둘레에 나무를 알뜰히 심어 가꾸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봄에는 노란 울타리였다가 차츰 초록 울타리였다가, 가을에 물들고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는 변화무쌍한 개나리 울타리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우리의 학교를 지켜 주는 고마운 지킴이란다 … 너희는 토끼풀 들판을 본 적이 있니? 토끼풀은 줄기가 땅을 기며 군데군데 뿌리를 내리면서 점점 퍼지며 자라는 식물이란다. 그렇게 퍼져 나간 토끼풀은 금방 들판을 뒤덮지. 잔디를 심고 잘 가꾸어 놓은 곳에도 토끼풀이 퍼져 나가 잔디를 키우는 사람들은 토끼풀을 싫어하기도 해 … 양버즘나무의 큰 이파리에 물이 고이면 새들은 이 나무 밑에 와서 물을 마신단다 ..  (13, 19, 33쪽)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습니다. 굳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낼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한국에도 ‘숲 유치원’이 생기기는 하지만, 시골에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라 해서 숲이나 들이나 바다로 날마다 마실을 가지 않아요. 교실에서만 무언가 ‘교육을 시킵’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아이들은 바깥에서 뛰놀며 숨을 쉴 수 있어야 해요. 덥건 춥건, 아이들은 마당이나 운동장에서 뛰놀며 바람을 쐴 수 있어야 해요.


  비가 온대서 들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덥거나 춥대서 바깥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건물 안쪽에서 비디오만 보거나 그림책만 읽거나 이런저런 체험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흙을 만지고 흙을 밟아야지요. 풀을 만지고 풀을 밟아야지요. 나무를 만지고 나무를 타야지요.


  아이들한테는 따로 이것저것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배울 때가 되면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저희가 먹고 입고 자고 누리는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하나하나 느끼고 보아야 합니다. 밥이 이루어지는 흐름을 알고, 옷과 집을 이루는 얼거리를 알아야지요.


  교육은 힘이라고 합니다만, 다른 문명사회 지식과 제도를 안대서 힘이 되지 않습니다. 문명사회 지식과 제도를 모르더라도, 스스로 삶을 짓고 일굴 수 있으면 힘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못 짓고 못 일굴 때에는 힘이 없습니다. 비싼 소작료를 물면서 허덕여야 하는 살림이라면 힘이 없어요. 조그마한 땅뙈기라도 손수 가꾸고 일구면서 보듬을 수 있을 때에 힘이 있어요.


  대학교까지 다녀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마을과 사회와 나라를 잘 가꿀까요?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 정책을 잘 세워야 마을과 사회와 나라를 잘 가꿀까요? 공무원은 어떤 돈으로 정책을 세우나요? 회사원은 어떤 돈으로 회사를 꾸리나요? 예부터 중앙권력이 시골사람 품과 땀을 그러모아서 정책을 펼치고 행정을 했다지만, 여느 시골사람 살림살이가 넉넉하거나 푸진 적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중앙권력은 예부터 당파싸움을 비롯해 전쟁놀이를 할 뿐이었어요. 교육을 받거나 정책을 펼친대서 이 나라와 사회와 마을이 아름답도록 이끌지 않았어요.

 


.. 잔디는 겨울에는 누렇게 색깔이 변해. 하지만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상태로 겨울을 보내는 것이란다. 겉모습은 누렇지만 그 뿌리는 땅속 깊이 내려 추운 겨울을 잘 버티지 … 은행나무에도 작고 예쁜 꽃이 핀단다. 은행나무 꽃을 찾아 잘 살펴보면, 나무마다 꽃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 ..  (24, 41쪽)


  학교 둘레에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를 나무 그대로 가꾸는 곳이 드뭅니다. 모두들 가지치기를 할 뿐 아니라 줄기를 뎅겅 자르기까지 합니다. 조경이니 정원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며 나무를 괴롭힙니다.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만 내걸 뿐, 막상 하는 일이라고는 입시지옥으로 아이들 내몰며 괴롭히는 짓이듯, 학교에서 나무를 보살피거나 돌보는 일이 없어요. 애써 나무를 잘 가꾼 사람이 있어도, 이이가 학교를 떠나면 나무는 다시 괴롭습니다. 교사와 학생 몇몇이 나무를 알뜰히 아껴도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는 교사와 학생을 모두 들볶습니다.


  학교 둘레에 살구나무나 복숭아나무 심는 일이 없어요. 학교 둘레에 포도나무나 능금나무가 자라지 않아요. 학교 둘레에 미루나무나 버드나무가 있을까요. 학교 둘레에 감나무나 잣나무나 물푸레나무가 있는가요.


  대나무가 자라는 학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소나무를 심었어도 소나무 가지를 함부로 안 잘라 줄기가 곧게 오르도록 보살피는 학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수수꽃다리 어여쁜 학교라든지, 탱자나무 울타리나 찔레나무 울타리가 곱게 어우러지는 학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네 학교에서는 어떤 나무를 심어 어떤 나무내음을 맡으려 하나요. 우리네 학교에서 교사들은 어떤 나무를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어떤 숲노래 듣도록 이끄는가요.

 


.. 남방부전나비는 괭이밥에 알을 낳는데,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괭이밥의 이파리를 먹고 자라. 그런 다음 작은 돌 틈이나 낙엽 밑에 붙어 겨울잠을 자고 그 이듬해에 나비가 되어 날아간단다 … 우리가 키워서 먹는 식물의 경우 먹는 부분만 주로 보기 때문에 예쁜 꽃이 피는지 모를 때가 많아 ..  (133, 159쪽)


  손옥희·최향숙 님이 글을 쓰고 이숙연 님이 그림을 넣은 《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청어람미디어,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학교 둘레에 있는 나무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이야기꽃 펼치는 책입니다. 예쁩니다. 이야기가 예쁘고, 나무를 바라보는 눈길이 예쁩니다. 나무를 아끼는 눈빛이 예쁘고, 나무를 사랑하려는 손길이 예쁩니다.


  웬만한 어느 학교를 보더라도 나무 몇 그루쯤 있지만, 교사도 학생도 나무이름 제대로 모릅니다. 나무이름도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나무 둘레에서 돋는 풀마다 어떤 이름인지 제대로 모릅니다. 운동장에 돋는 풀을 “잡초 뽑자!” 하고 말하며 아이들더러 뽑도록 시키기는 하지만, 운동장에 돋는 풀이 어떤 풀인지 제대로 살피거나 들여다보는 교사도 학생도 없습니다. 이제 흙운동장을 없애고 우레탄을 까는 학교까지 퍽 늘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부터 나무와 풀과 꽃을 모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 또한 나무와 풀과 꽃을 모릅니다. 교과서 지식은 머릿속에 잔뜩 넣겠지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을 만한 시험성적은 거두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바람을 마시도록 푸른 숨결 내뿜는 나무를 모른다면, 연필과 종이와 책이 되는 나무를 모른다면, 책걸상과 옷장과 책꽂이가 되는 나무를 모른다면, 기둥이 되고 땔감이 되는 나무를 모른다면, 교사와 학생은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운 셈일까요. 나무를 가까이하지 못한다면, 나무를 돌보지 못한다면, 나무와 어깨동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메마르거나 쓸쓸할까요.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 - 환경을 사랑하는 어린이 교양 과학동화 1
백용해 글.사진 / 창조문화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환경책 읽기 55

 


꽃을 보려면 걸어야 합니다
― 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
 백용해 글·사진
 창조문화 펴냄, 2000.7.6.

 


  밤하늘 올려다보면 별빛을 누립니다. 시골에 살더라도 등불 밝히면 별빛을 누리지 못합니다. 밤에도 전깃불을 켜면 나무가 쉬지 못하고, 논과 밭 또한 쉬지 못합니다.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밤에는 고이 쉬어야, 새로 찾아오는 아침볕에 기지개 켜고 일어나며 씩씩하게 하루를 누려요.


  시골마을 고샅에 전등을 놓아야 한다면, 사람이 지나갈 적에 밝히도록 해 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안 지나갈 적에는 깜깜해야지요. 그래야 비로소 시골빛을 누리고, 시골스러운 따사로운 기운이 감돌아요. 밤새 전등을 밝히면 논이고 밭이고 숲이고 모두 힘듭니다. 사람도 힘들지요.


  방에 불을 켜고 자 보셔요. 잠을 잔 듯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불을 끄고 깜깜한 방에서 자야 비로소 눈과 머리와 마음과 몸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도 밤에는 불을 다 꺼야 옳아요. 밤에는 가게도 문을 닫고, 술집 또한 문을 닫으며, 돌아다니지 말아야지요. 아픈 사람 있어 택시를 부를 일이 있을 테고, 병원 갈 일이 있겠지요. 참말, 이렇게 아프거나 힘들거나 어떤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도시에서도 밤을 고즈넉하게 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새벽을 여는 신문배달부와 우유배달부가 아니라면, 굳이 깊은 밤에 일어나 돌아다닐 일이 없어야지 싶어요.


.. 하늬 아빠와 하늬, 영수는 다른 생물을 조사하기 위해서 해수욕장의 서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도로변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관광버스가 줄지어 5대나 서더니 유치원 아이들 수백 명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정리하시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아이들 소리가 뒤섞여서 왁자지껄했습니다. 그런데 하늬의 눈에는 이상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손에는 제각각 플라스틱 음료수 빈병이 한 개씩 들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 하늬 아빠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환경교육을 받아야 하는 거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선생님들도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 저렇게 빈병을 들고 오게 하는 거야. 관찰하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라구.” ..  (44∼45쪽)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겨울밤에는 풀벌레나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 말고는 없습니다.


  바람이 불며 밤하늘 구름이 천천히 흐릅니다. 문득 귀를 기울여 구름 흐르는 소리를 들어 봅니다. 별빛이 드리우는 소리와 달빛이 내려앉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귀를 쫑긋해 봅니다. 달빛과 별빛을 받는 밤구름이 천천히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샅길에 켜진 전등을 바라보고,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올봄에 심은 어린 살구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면서, 우리 아이들이 언제쯤 마당 한쪽 살구나무 열매와 꽃을 누릴 수 있을까 손꼽아 봅니다.


  다른 시골에는 눈이 온다는데, 눈이 소복소복 내려 추운 시골에서는 어떤 이야기 있을까 궁금합니다. 너무 춥고 눈이 잔뜩 쌓여 자동차 다니기 힘들다고 여길까요. 눈이 소복소복 쌓일 적에 아이들과 눈놀이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즐기면서 자가용은 내려놓고 두 다리로 천천히 눈밭을 거닐며 볼일을 보려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염화칼슘인지 염화나트륨인지 화학조합물을 길바닥에 뿌릴 생각은 말고, 아이도 어른도 이 눈 기쁘게 맞아들일 수 없을까 궁금해요. 왜냐하면, 예부터 겨울에 눈이 많아야 흙이 포근하게 쉬면서 겨울가뭄 이긴다 했어요. 눈이 많이 쌓여 논과 밭과 숲을 덮어야, 겨우내 벌레들도 많이 죽는다 하고, 새봄에 흙이 한결 싱그러이 살아난다 했어요. 겨울 추위 견딘 나무들은 더욱 씩씩하게 짙푸른 잎사귀 뽐내고, 겨울눈 머금은 나무들은 더욱 튼튼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했어요.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눈을 반겨야 아름답달까요. 도시에서도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 버스도 택시도 전철도 모두 멈추고,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쉬면서, 아이들과 홀가분하게 길거리와 공원과 주차장 어디에서든 실컷 눈놀이 누리면 아름답달까요.


  봄이 오면 다 녹을 눈인걸요. 겨울이어도 포근한 햇볕 드리우면 천천히 녹을 눈인걸요.

 

 

 

 


.. “아저씨 말을 들으니 정말 화가 나요. 어른들은 자연을 보호하자고 말하면서 정작 보호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아 자연을 망치고 있으니 말이에요.” … “사람들은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조금 소문만 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다 잡아없애 버리고 난 뒤에야 후회를 하잖아. 앞으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 자연과 그 속의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말이야.” 칠게의 따끔한 말 한 마디가 하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습니다 … “이곳 사람들은 우리를 ‘갱조개’라고 부르기도 하지. 우리는 주로 영광 주변의 서해 지역 모래사장이나 남해의 모래펄에서 살아가고 있어. 그런데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닷물 때문에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단다. 사람들은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애.” ..  (47, 69, 181쪽)


  꽃을 보려면 걸어야 합니다. 자가용을 달려서는 꽃을 누리지 못합니다. 고속철도를 달리거나 시외버스를 달려도 꽃내음을 못 맡습니다. 조그마한 들꽃은 아예 들여다볼 수 없기까지 합니다.


  자가용을 달리며 개구리 노랫소리 듣는 사람 없어요. 비행기를 타거나 고속철도 달리면서 풀벌레 노랫소리 듣는 사람 없어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달리면서 제비 노랫소리 듣는 사람 있을까요.


  나물을 뜯거나 캐거나 꺾거나 끊으려면 걸어야 합니다. 자가용을 달려서는 나물을 얻지 못해요. 두 손으로 흙을 만져야 나물을 얻어요. 두 다리로 흙을 밟아야 나물을 누려요.


  이 겨울에도 어디에선가 냉이가 돋아요. 이 겨울에도 유채와 갓과 쑥과 고들빼기와 씀바귀가 새로 돋아요. 이 추위에도 코딱지나물이며 봄까지꽃이며 살그마니 고개를 내미는군요. 이 겨울추위에도 눈을 맞으며 까마중 열매 새까맣게 대롱대롱 달려요.


  그런데, 두 다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만 겨울빛을 누려요. 겨울꽃을 보고 싶으면 두 다리로 찬찬히 걸어야 해요. 걸을 때에 이야기가 샘솟아요. 걸을 적에 도란도란 마을이 살아나고 오순도순 마을이 노래합니다. 걷지 않으면, 자가용 싱싱 달리면, 모든 고샅과 밭둑과 논도랑을 시멘트로 덮으면, 마을에서도 시골에서도 노래는 몽땅 사라져요.


  새마을운동이 몰아닥친 뒤 두레와 품앗이는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새마을운동이 아직 시골마을마다 남은 탓에 일노래와 굿판은 송두리째 사라졌어요. 일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없어요. 기계로 시끄럽게 흙을 까뒤집을 뿐이에요. 모내기노래를 하는 사람 없어요. 가을걷이노래를 하는 사람 없어요. 콩을 털면서, 깨를 털면서, 까투리를 까부르면서 노래를 하는 사람 없어요. 모두 너무 바빠요. 모두 안 어울려요. 모두 남남이 되고 농협에 수매를 하느라 부산할 뿐이에요. 농협 일꾼은 시골노래 아예 모를 뿐더러 도시 회사원하고 똑같아요.

 

 

 

 


.. “나는 게 중에서 이름을 가장 많이 가진 게야. 강화도에서는 내가 바위 지역에 산다고 ‘바구재’라 하고, 인천·경기 지역에서는 ‘박하지’라고 불러. 그리고 충청도에서는 한 번 물면 천둥이나 쳐야 놓는다고 해서 ‘천둥게’라고 부르기도 해. 전라도 북부 지역에서는 건드리면 뻘떡 일어선다고 ‘뻘떡게’라고도 부른단다. 그리고 전라도 남부 지역에서는 한 번 물면 독하게 안 놓는다고 ‘독게’라고 부르지. 그런데 정식 이름은 ‘꽃게’를 많이 닮아 ‘민꽃게’라고 하는데 어때?” …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펄흙에도 칠게나 농게의 먹이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 모래 사이에도 생물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먹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  (81, 103, 104쪽)


  갯벌 이야기 들려주는 작은 책 《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창조문화,2000)을 읽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은 동서남북 모두 갯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동서북은 매립지가 되었고, 남쪽은 우주기지 들어서면서 바닷물과 바닷가가 나란히 망가져요. 매립지 된 동서북 갯벌 자리에는 드넓게 논을 마련했는데, 이 드넓게 마련한 논에는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엄청나게 논 하나로만 만들었으니 농약이 없이는, 또 기계가 없이는 벼를 거두지 못합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데, 왜 논만 이렇게 드넓어야 할까요. 갯벌이 없으면 뭍에서 흘러나오는 찌꺼기와 쓰레기를 거를 수 없어 바다와 뭍이 함께 더러워지는데, 왜 갯벌을 이렇게 엉터리로 다 메꾸려 했을까요.


  정치꾼과 경제꾼이 흔히 말하는 ‘돈’으로 따져도, 갯벌에서 얻는 돈이 논으로 바꾼 땅에서 얻는 돈보다 훨씬 큽니다. 김을 다루며 염산을 씁니다만, 바지락을 캐거나 낙지와 쭈꾸미를 잡으면서 농약이나 염산을 쓸 일이 없어요. 논밭은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얼룩지지만, 갯벌은 그저 캐고 돌려주기만 하면 언제까지나 먹을거리를 베풀어요. 논을 얻어야 하더라도 알맞게 얻으면 되지, 지나치게 너른 땅까지 만들어야 하지 않아요. 참말 알맞게만, 참말 쓸 만큼만 논으로든 밭으로든 바꾸어야지요.


.. “사람들이 하는 대규모 공사는 수천 년, 수만 년을 흐르는 바닷물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지. 그 결과 갯펄 위에 갑자기 모래사장이 생기는가 하면 모래사장이 다시 갯펄로 뒤덮이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큰 걱정이야. 이 신공항공사로 인해서 내가 사는 강화도에도 영향이 있을 정도라구.” … 영수와 하늬는 칠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어른들이 야속하고 미워졌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을 위해서만 공항을 짓고 칠게를 비롯한 갯벌 친구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상했습니다 ..  (124, 125쪽)

 

 

 


  인천 앞바다에 있는 영종도와 용유도, 두 섬을 섬 아니게 하나로 메꾸면서 인천공항을 때려지었어요. 인천 앞바다 영종도와 용유도는 갯벌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고, 영종섬 소금밭은 매우 아리따웠지만, 이 모두 공장 터로 닦으면서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갯벌에서 살던 숱한 목숨은 하루아침에 떼죽음을 맞이했고, 갯벌로 찾아오던 수만 마리 철새는 보금자리를 다시 하나 더 잃었습니다.


  갯벌은 쓸모없는 땅일까요. 갯벌은 몽땅 뭍으로 바꾸면 될까요. 갯벌 없이 뭍과 바다만 남는다면, 이러면서 갯벌 자리에 시멘트로 높다랗게 둑을 세우기만 하면, 앞으로 이 나라와 이 땅은 어떻게 될까요. 시멘트로 쌓은 둑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바닷물을 버틸 수 있을까요.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를 고작 서른 해나 쉰 해만에 허물고 새로 짓는데, 시멘트로 막은 둑은 앞으로 백 해쯤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갯벌을 메꾸어 만든 논은 앞으로 백 해 뒤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 “고둥? 고둥은 뭐고 소라는 뭐야?” 영수의 질문에 칠게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을 했어. ‘소라’는 한문에서 유래된 말이야. ‘고둥’이 순수한 우리 말이지. 지역에 따라서는 ‘골뱅이’ 또는 ‘우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  (140∼141쪽)

 

 

 


  환경책 《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은 갯벌살이를 보여줍니다. 어린이 눈높이로 갯벌살이를 들려줍니다. 갯벌이 어떤 곳이고, 갯목숨으로 무엇이 있는지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바야흐로 2000년이 되어서야 이런 책이 나왔구나 싶은데, 이런 책이 1950년대나 1960년대나 1970년대에 나올 수 있었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요. 시골 아이들 모조리 도시에 있는 대학교나 공장이나 회사로 보내려는 오늘날 흐름 아닌, 시골 아이들이 시골을 사랑하고 아끼며 즐겁게 살아가는 빛을 누리도록 이끌 만한 교과서나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가, 이제는 하나둘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궁금해요.


  이제 와서 매립지를 다시 갯벌로 바꾸기는 어려울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깨달은 다른 나라에서는 매립지를 다시 갯벌로 바꾸려고 엄청나게 많은 돈과 품과 겨를을 바쳐요. 오직 한국만 멀쩡한 갯벌을 아직까지 더 매렵지로 바꾸려고 악을 씁니다. 오직 한국만 멀쩡한 바닷가에 시멘트둑 자꾸 쌓고, 아스팔트 관광길 새로 닦습니다. 제주섬 바닷가 찻길이 바닷물에 무너질 뿐 아니라, 바닷가를 빙 둘러 시멘트둑 쌓고 아스팔트 찻길 닦느라, 바닷가 모래가 모조리 바다로 쓸려가는데, 이런 어리석은 짓을 제대로 깨닫는 공무원도 지식인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요.


  틈틈이 고흥 발포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면서 새삼스레 느끼곤 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발포 바닷가나 다른 바닷가를 찾아가는데, 해마다 모래밭이 줄어들어요. 모래가 사라져요. 군청에서는 다른 곳에서 모래를 사다가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 엄청나게 쏟아붓지요. 여름 휴가철에만 바닷가에 가 보면, 모래밭이 드넓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늘 바라보면 모래가 얼마나 어떻게 줄어들거나 사라지는가를 알아챌 수 있어요.


  갯벌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시멘트 문명이 어떤 길로 치닫는가를 깨닫지 않으면, 자동차와 물질문명이 이 나라와 이 땅을 어떻게 잡아먹는가를 알아채지 않으면, 앞으로는 ‘돈’으로 풀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몰아닥치겠다고 느껴요. 일본 후쿠시마는 먼 나라 남 일이 아니에요. 우리들이 곧 겪어야 할 일이에요. 4346.12.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퇴곡리 반딧불이
유소림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148

 


시골에서 흙 만지는 보람
― 퇴곡리 반딧불이
 유소림 글
 녹색평론사 펴냄, 2008.8.7.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나 2005년부터 시골로 삶자리 옮겼다고 하는 유소림 님이 지난 2008년에 선보인 산문책 《퇴곡리 반딧불이》(녹색평론사,2008)를 읽습니다. 유소림 님은 강원도 퇴곡마을에 오늘도 즐겁게 뿌리내리면서 추운 겨울 반가이 맞이하실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살이 얼마 안 될 무렵 내놓은 산문책에 이어, 곧 열 해쯤 시골살이를 누린다 할 텐데, 시골살이 열 해를 돌아보면서 예쁜 이야기 한 자락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지내면 누구라도 느낄 텐데, 흙일을 하느라 바쁘고 힘들어 손에 종이책 쥘 틈이 없기 일쑤입니다. 마음보다 몸이 고단해 씻고 먹은 뒤 곯아떨어지기 바쁠 만해요. 그런데 몹시 고단하면 씻지도 먹지도 않고 드러눕기에 바쁘기도 해요.


.. 퇴비 한 톨 뿌려 준 적 없건만 텃밭에서건 꽃밭에서건 더위에도 가뭄에도 까딱하지 않고 오로지 번성, 번성하는 이 풀은 어디에서 이런 생명력을 얻는 걸까  괭이질 하다가 힘들어 잠깐 멈추고 고개를 들면 앞산자락 생강나무 노오란 꽃들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밭고랑을 타고 나가노라면 어디선가 찔레꽃 향기가 번져 온다  그이는 생태니 환경이니 하는 배운 사람들의 단어를 쓰는 적이 없었지만 뛰어난 생태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소와 감자와 꿀벌과 누에에게서 저절로 얻은 감성이었다 ..  (5, 17, 22쪽)


  예부터 낮에 일하고 밤에 읽는다 했어요. 낮에는 논밭을 갈거나 김을 매고 밤에 책을 펼친다 했어요. 낮에는 집살림 돌보고 아이들하고 어울린 뒤, 해 지고 달 뜨는 깊은 밤에 비로소 조용히 책을 펼치거나 글을 쓴다고 할까요. 내 앞을 살아간 숱한 사람들 아름다운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고, 나 또한 내 나름대로 일구는 삶을 새롭게 글로 쓰는 셈입니다.


  요즈음에는 글만 쓰는 사람이 부쩍 늘었는데, 참말 글이란 글만 써서는 글이 글답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짓고 가꾼 뒤에라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건사할 줄 알아야 글을 쓸 만해요.


  왜냐하면, 글이란 삶을 담는 그릇이거든요. 삶을 비추고 삶을 밝히며 삶을 노래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삶을 일구거나 돌보거나 건사하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글로 담겠어요. 삶이 없이 어떤 글을 쓰겠어요. 머리만 굴려서는 글을 못 써요. 책과 자료를 잔뜩 그러모은대서 글을 쓸 수 없어요. 책과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쓴 글은 재미가 없어요. 삶이 없으니 재미가 없지요. 책과 자료에 얽매인 채 생각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꿈날개를 넓히지 못해요.


  다시 말하자면, 글을 쓰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구두를 닦든 빨래를 하든 일을 해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든 버스나 택시를 몰든 일을 해야 글을 쓸 수 있어요. 공장 일꾼이 되든 시골에서 논밭을 어루만지든 일을 하는 사람이 비로소 글을 써요. 학교에서 교사가 되든 시장이나 군수처럼 정치꾼이 되든 무언가 일을 할 때에 글을 씁니다.


  여행도 일이에요. 그러니, 여행을 다닌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어요. 그러나, 즐겁게 일을 하지 못하면 즐겁게 글을 쓰지 못합니다. 일을 해야 글을 쓸 수 있지만, 억지로 힘겹게 끌려다니듯 일을 하면, 글 또한 억지스럽고 읽기 힘겹습니다.


.. 아이들이 뛰노는 아파트 마당이 점점 졸아들고 있었다. 집집마다 승용차를 ‘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흙 속에 감자가 있었다. 비닐주머니 속이 아니라 아기집의 아기처럼 흙 속에 누워 있었다 … 풀들은 그냥 맛있는 게 아니라 저마다 색색의 풍미가 있었다. 더구나 사람 손에 자라지 않고 제 스스로 자라난 개두릅과 머위는 풀이 얼마나 품격있는 먹을거리인가를 새삼 느끼게 했다 … 옛날의 사람들은 누구나가 그렇게 바구니를 짜고 돌담을 고치면서 나름의 기쁨을 맛보는 ‘창조자’였다 … 왜 구태여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땅을 더럽히고 에너지를 소모하며 꼭 제철이 아닌 걸 먹어야 하는 걸까 ..  (36, 72, 73, 81, 220쪽)


  유소림 님은 시골에서 어떤 빛을 느꼈을까요.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어떤 빛을 누리면서 하루하루 일구었을까요. 흙을 만지는 보람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바람을 쐬고 볕을 쬐는 기쁨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흙을 만지는 사람은 흙내음 나는 글을 씁니다. 기름밥 먹는 사람은 기름밥 냄새 퍼지는 글을 씁니다. 정치꾼은 정치꾼 냄새가 나는 글을 써요. 교사는 교사 냄새가 풍기는 글을 쓸 테지요.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 살내음 나는 글을 쓰고요.


  저마다 이녁 삶자리에서 글을 씁니다. 아니, 저마다 이녁 삶자리에서 삶을 씁니다. 삶을 노래하고 삶을 밝혀요. 삶을 들려주고 삶을 보여주어요.


  글 한 줄로 삶 한 자락 비춥니다. 글 한 줄 읽으며 이웃 삶을 한 자락 헤아립니다. 글 한 줄로 사랑 한 자락 밝힙니다. 글 한 줄 읽으며 이웃이 누린 사랑을 한 자락 보듬습니다.


  이 겨울에는 찬바람 물씬 느끼는 글을 써요. 찬바람에 시든 풀잎, 찬눈 맞는 겨울나무, 춥디추운 날씨에도 새봄 기다리며 어느새 맺은 겨울눈, 가랑잎 사이에 깃든 조그마한 풀벌레, 고치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풀벌레 알, 모두모두 시골에서 흙내음하고 얽히는 이야기입니다. 김치를 마련하고 시래기를 널어서 말려요. 고구마를 삶고, 고구마하고 한 방에서 따스하게 지냅니다. 겨울철에는 고즈넉한 숲소리를 듣지요. 겨울철에도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멧새나 들새 이야기를 들어요. 겨울잠 자는 숲짐승을 떠올리고, 겨우내 시골집에서 어떻게 하루를 날까 하고 생각합니다.


.. 메밀 씨앗은 땅에 떨어진 지 일주일 만에 나물이 되었다 … 엄마는 아버지 서가에 꽂힌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아마 한 권도 읽지 못했으리라. 그래도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깊고 풍부하고 감동적인 생을 살았다. 엄마는 꽃과 나무와 풀에서 그런 생을 배웠다 … 도대체 이 쓰레기들이 어디서 쏟아져나오는 것일까. 백화점과 슈퍼에 산처럼 쌓여 있는 물건들은 잠깐 사이에 이런 쓰레기로 변한다. 쓰레기장은 백화점의 또다른 모습인 것이다 … 우리 나라가 ‘조국 근대화’되고 개발되기 전만 해도 쓰레기라는 게 그다지 없었다. 지푸라기 하나도 모두 쓸모가 있었다. 초가지붕부터 짚신에 이르기까지 … 자연이 만들어낸 것 중엔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정말 자연이 풍요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풍요함 속에서 생활인들은 저절로 예술가가 되었다 ..  (91, 134∼135, 181, 213쪽)


  가만히 보면, 도시사람은 겨울이라 해서 딱히 달라지는 삶이 없습니다. 봄이든 겨울이든 도시사람이 하는 일은 거의 똑같습니다. 옷집은 봄옷과 겨울옷 바꾸어 놓는다지만, 언제나 똑같이 옷을 사고팔 뿐이에요. 빵집도 술집도 밥집도 언제나 똑같은 일을 해요. 회사원과 공무원은 철과 달과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달력은 그저 숫자와 요일일 뿐입니다. 절기를 살피는 도시사람은 없어요. 철을 따지는 도시사람도 없어요. 철을 잊은 채 한겨울에 딸기와 수박을 먹는 도시사람이에요. 철없이 한여름에 귤을 먹고 감을 먹는 도시사람이에요. 철을 모르니 봄에도 능금과 배를 먹는 도시사람이에요.


  제철을 모르니 제넋이 되지 못해요. 제철을 잊으니 제구실을 하지 못해요. 제철과 등지니 제삶을 찾지 못해요. 제철을 잃으면서 제자리를 잃어요.


  풀은 뜯으면 뜯을수록 새로 돋습니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풀은 씩씩하게 새 잎을 내놓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모든 푸성귀는 새로 나고 또 새로 나는 풀잎입니다. 사람들이 자가용 싱싱 달리며 배기가스 붕붕 뿜어도 푸른 바람을 언제나 새롭게 베푸는 풀이요 나무예요. 사람들이 농약과 비료를 퍼부어도 해마다 새삼스레 열매와 곡식을 베푸는 풀과 나무예요.


  참 놀라워요. 어쩜 풀과 나무는 흙이 그토록 시달리는데에도 새롭게 돋고 자라서 사람들한테 밥이 될까요. 어쩜 냇물과 빗물은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공장과 발전소 때문에 그토록 들볶이는데에도 새롭게 흐르고 흘러 사람들 목숨을 지켜 줄까요. 어쩜 바람은 그토록 고단한데에도 새롭게 돌고 돌아 사람들 숨결을 보듬어 줄까요.


.. 어렸을 때 내가 부러워하던 것 중의 하나는 ‘시골’이었다 …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다지 호들갑을 떨지 않으면서 그 정겨움을 순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였던 모양이다 … 봄이 오면 풀이 제일 먼저 눈을 뜬다 … 우리 나라에서는 음식 만들기나 애보기를 ‘부녀자나 하는 허드렛일’로 취급하면서 집안의 ‘가장’은 그런 구질구질한 일을 면제받는 특권을 누려 왔다. 그러나 그것은 특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권리의 박탈이 아니었겠는가. 자신의 아이가 커 가는 과정에 동참하고 장미꽃보다 예쁜 벼로 한 그릇의 밥을 지어내는 것이 어찌 사람 사는 일에서 면제되면 좋을 가치없는 일이란 말인가 ..  (143, 184, 188, 196쪽)


  큰아이가 깊은 밤에 쉬를 누려고 일어납니다. 여섯 살 아이는 대견하게 혼자 씩씩하게 밤오줌을 눕니다. 일곱 살 여덟 살이 되면 한결 대견스러우면서 더욱 씩씩할 테지요. 겨울날 대청마루 바닥은 차갑지만 맨발로 거닐고, 밤빛을 누리며 오줌그릇에 쉬 졸졸 눕니다.


  아이들 춥지 않게 방바닥에 불을 넣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는 깊은 밤에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다. 불을 넣고, 아이들 쉬를 같이 누이며, 시골집 물이 얼지 않도록 틈틈이 살핍니다. 차가운 물에도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지요. 차가운 물에도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지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어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시골이 되면, 어버이는 아이들 놀이를 숲과 들한테 넉넉히 맡길 수 있어요. 아이들은 마당이나 고샅이나 들이나 숲이나 바닷가에서 마음껏 뛰놀며 노래할 수 있어요. 어버이는 들에서 고즈넉하게 흙을 만지고, 아이들은 이곳저곳 쏘다니며 흙과 풀과 나무와 동무가 되어 놀아요. 이와 달리, 도시가 되면, 어버이는 아이들을 놀게 하려고 놀이방이나 놀이공원이나 놀이시설을 찾아야 해요. 따로 장난감을 사서 안겨야 해요. 이것저것 챙길 일이 많아요. 학교와 학원에도 보내야겠지요. 학교와 학원에서는 도시 아이들이 자연을 잊지 않도록 이것저것 가르치거나 책이나 도감을 보여주겠지요.


.. 나는 우선 내 표준말이 얼마나 맥빠진 말인가를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현재, 교양있는 사람들이 쓴다는 표준말밖에 모르는 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그 무궁무진한 남도말에 열등감을 느꼈다. 흙 냄새가 없는 말, 역사가 없는 말, 가슴속을 구불구불 적시는 정감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계 같은 말, 그것이 내가 쓰는 표준말이었다. 내가 쓰는 말로는 기껏해야 공문서나 두어 줄 쓸 수 있을 뿐 시를 쓴다는 건 택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먹는 음식도 생각해 보았다. 아아, 완전 뒤죽박죽이었다. 그저 편의에 따라 되는 대로 먹으며 살아왔다. 고추장이나 된장, 강장을 담그는 법을 엄마에게서 배운 적도 없거니와 … IMF시대 이전의 우리가 정말 기적의 주인공이었다면 우리는 그 기적을 위해 어찌했던 것일까. 이런 소년은 공장에서 수은을 마시며 일했고, 사무실의 젊은 남자들은 퇴근 후에도 룸싸롱에 가서 거래처 접대에 바빴다. 젊은 여자들은 몸을 바쳐 그 거래를 성사시켰다 … 고향의 흙과 물, 하늘과 사람을 바쳤다. 고향의 말과 풍습과 생활을 바쳤다. 그것을 치르고 얻어낸 기적이 모두 거품이었다는데, 우리는 지금 그 기적을 다시 일으켜 보자고 한다 ..  (225, 228∼229쪽)


  흙을 만지는 어버이 곁에서 흙을 만지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 곁에서 자가용을 바라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학교와 학원에 목을 매는 어버이 곁에서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어떤 아이로 자랄 때에 즐거울까요. 어떤 어른으로 일거리를 살피고 일자리를 찾을 때에 즐거울까요. 어떤 어린이로 놀이와 꿈을 키울 때에 즐거울까요.


  꼭 시골에서만 살아야 아름다운 나날 되리라 느끼지는 않아요.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며 착하고 참되며 고운 빛을 즐거이 누리는 이웃이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어요. 도시에서 살면서 언제나 ‘착하고 참되며 고운 빛’을 돌아보며 흐뭇하게 웃는 이웃은 얼마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도시에서도 해를 올려다보면서 햇볕 쬐는 이웃 늘기를 빌어요. 도시에서도 별을 찾고 별자리 그리려는 이웃 늘기를 빌어요. 도시에서도 두 다리로 흙과 풀을 밟으면서 푸른 숨결 마시려는 이웃 늘기를 빌어요.


  빨래와 이불은 햇볕에 잘 마르고 보송보송한 기운 담아요. 아무리 대단하다는 빨래기계도 햇볕만큼 되지 않아요. 수돗물과 정수기와 페트병샘물은 시골자락 흐르는 시냇물과 땅밑물처럼 시원하거나 싱그럽지 못해요. 우리 스스로 무엇을 먹고 마시면서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길 때에 아름다운 넋이 되는가를 슬기롭게 깨우칠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꽃편지
유상준 지음, 박소영 그림 / 그물코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경책 읽기 54

 


풀과 나무가 띄우는 노래
― 풀꽃편지
 유상준 글
 박소영 그림
 그물코 펴냄, 2013.11.25.

 


  군청에서 경관사업을 한다며 빈논에 심도록 시키는 유채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유채논이 된 이 땅에 심은 유채씨는 어떤 유채씨일까요. 이 씨앗은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서 나고 자라던 유채풀이 내놓은 씨앗일까요, 아니면 나라밖 널따란 유채밭에서 거둔 씨앗을 사들여서 심는 씨앗일까요.


  시골 군청마다 유채꽃으로 경관사업을 합니다. 제주섬에서도, 전라도 골골샅샅에서도, 경상도 구석구석에서도, 아마 충청도나 강원도나 경기에서도, 온 나라가 겨울부터 봄까지 온통 유채꽃이 되려 합니다. 유채꽃이 질 무렵에는 벚꽃이 흐드러져요. 뭐랄까, 온 나라를 한 가지 꽃으로 뒤덮으려 한달까요. 유채가 아니면 봄에는 피어나서는 안 되고, 유채가 질 무렵 벚꽃이 아니면 피어나서는 안 되는 듯한 흐름입니다. 마치 군대처럼, 꼭 기계로 찍는 공산품처럼, 다 다른 시골마을이 다 똑같은 모양새가 되어야 하는 듯한 물결이에요.


  유채꽃 말고 자운영꽃은 안 될까요. 자운영꽃 말고 제비꽃은 안 될까요. 제비꽃 말고 민들레꽃은 안 될까요. 민들레꽃 말고 코딱지나물꽃은 안 될까요. 코딱지나물꽃 말고 냉이꽃은 안 될까요. 냉이꽃 말고 씀바귀꽃은 안 될까요. 씀바귀꽃 말고 돌나물꽃은 안 될까요. 돌나물꽃 말고 도라지꽃은 안 될까요.
  왜 모든 지자차에서 오직 유채꽃 경관사업만 벌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왜 모든 지자체에서 벚나무만 심으려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서울에 살면서도 뜰 있는 집을 고집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봄이 되면 우리 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 흔히 피는 제비꽃은 식물체의 크기가 10센티미터가 되지 않을 만큼 작고 소박한 들꽃입니다 ..  (8, 21쪽)


  언제부터인가 도시에서는 길거리마다 팬지와 패튜니아를 심었습니다. 이 꽃들이 질 무렵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가, 보기에 안 좋도록 시들었다 하면 어느새 꽃과 꽃그릇을 모두 걷어치웁니다. 그러고는 다시 돈을 들여 새 꽃을 사다가 갖다 놓습니다. 오랜 나날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들꽃을 도시 한쪽에 심거나 돌보는 일이 없어요. 거님길 갈라진 틈을 타고 피어나는 민들레꽃이나 애기똥풀꽃을 예쁘게 바라보는 눈길이 없어요. 꽃다지잎이나 넝쿨잎을 곱게 쓰다듬는 손길이 없어요.


  십이월로 접어든 고흥 시골집에서 우리 식구는 아직 부추잎을 즐겁게 먹습니다. 부추풀 스스로 꽃을 하얗게 피우고 까맣게 맺는 씨앗을 둘레에 후두둑 떨구면, 이 씨앗이 이듬해부터 찬찬히 뿌리를 내려요. 해마다 부추씨는 넓게 퍼지고, 해마다 부추잎은 더 흐드러져요. 겨울 어귀에도 부추잎은 새로 뻗어, 날마다 뜯고 또 뜯어도 넉넉합니다. 고작 한 평쯤 되는 땅에서조차 네 식구 먹을 만한 잎을 얻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도 집집마다 다문 한 평씩 ‘손바닥밭’을 누릴 수 있으면, 식구들 밥상에 푸른 내음 감돌도록 할 만합니다. 두 평도 석 평도 아니에요. 고작 한 평으로도 넉넉해요. 상추만 심어야 하지 않아요. 시금치 씨앗만 뿌려야 하지 않아요. 배추 한 포기에 무 두 뿌리여도 즐거워요. 곁에 부추도 자라고 고들빼기나 씀바귀도 자라면 돼요. 까마중도 한 포기 자란다면 잎이랑 열매를 누려요. 오늘은 이 풀을 먹고 모레는 저 풀을 먹어요. 끼니마다, 날마다 새로운 풀을 하나씩 둘씩 뜯어서 먹어요.


.. 귀화식물이 뿌리내리고 자라는 곳을 보면 대부분 환경이 파괴되어 황폐화된 곳이 많습니다. 저는 울창한 숲 속에서 귀화식물의 대표 격인 망초나 개망초를 본 적이 없습니다 … 낯선 곳을 지나다가 이따금 만나게 되는 수령 200∼300년 정도의 정자나무를 보고도 저는 감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1000년이 넘은 나무는 과연 어떻게 생겼으며, 또 얼마나 거대할까 ..  (18, 50쪽)


  풀을 뜯어서 먹는 동안 풀노래를 부릅니다. 풀을 뜯으러 밭자락이나 들이나 마당에 나오면 풀노래를 듣습니다. 봄에는 봄볕을 누리는 봄풀노래예요. 가을에는 가을볕 누리는 가을풀노래예요. 겨울에는? 겨울에도 싱그러이 돋는 풀이 있으면 반가우며 기쁜 겨울풀노래를 들어요.


  나무 한 그루 자라는 둘레에 이런 풀 저런 풀 잘 돋아요. 나무는 나무대로 누리면서, 나무 둘레에서 자라는 풀을 얻고, 이 풀에서 피우는 꽃을 즐겨요. 나무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걸쳐 사뭇 다른 빛을 베풀어요. 새눈이 터지고, 잎사귀가 벌어지며, 꽃봉오리가 열려요. 씨앗을 맺고 열매가 떨어지며 가랑잎이 져요. 겨울눈 옹크리고 새 가지가 나요.


  풀은 우리가 심어도 나지만, 우리가 안 심어도 바람과 새가 씨앗을 날려 줍니다. 나무는 우리가 심어도 나지만, 우리가 안 심어도 바람 따라 날아오고 새 먹이 되어 먼 데까지 날아갑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무언가 가르쳐야 배운다지만, 어른이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어른 둘레에서 어른들 삶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아이들 스스로 이것저것 해 보면서 차근차근 배우기도 합니다. 흙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뭇가지를 쥐어 놀면서, 두 다리로 씩씩하게 이 땅을 박차고 구르면서 튼튼하게 자라요.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가꾸면서, 아이들은 싱그러운 햇살웃음 터뜨립니다.


  놀면서 배우고, 놀면서 가르쳐요. 놀면서 동무를 사랑하고, 놀면서 이웃을 아껴요. 노는 사이 풀빛을 누리고, 노는 결에 나무노래 들어요. 노는 동안 천천히 하늘숨 마시고, 노는 자리에서 시나브로 햇볕을 품에 안아요.


.. 애기똥풀 속의 노란 즙액에 충독을 풀어 주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하지요. 만약 산이나 들에서 있다가 모기에 물렸다면 주변에서 애기똥풀을 찾아 그 즙액을 물린 곳에 발라 보세요. 가려움은 금방 없어지고 조금 뒤에는 물린 자국도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봄의 느티나무는 연둣빛으로 삐죽삐죽 돋아나는 새싹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  (83, 88쪽)


  유상준 님이 글을 쓰고 박소영 님이 그림을 그린 《풀꽃편지》(그물코,2013)를 읽습니다. 두 분은 시골에서 살림을 일구면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지내다가 시골자락에 조그맣게 서재도서관을 꾸리기도 해요.


  시골숨 마시며 늘 마주하는 풀과 나무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모두어 《풀꽃편지》가 태어납니다. 풀이 사람한테 띄우고, 꽃이 사람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냅니다. 풀한테서 받은 이야기를 다시 풀한테 돌려주고, 꽃한테서 얻은 사랑을 새롭게 꽃한테 보내는 노래를 조곤조곤 밝힙니다.


  그런데, “민들레잎을 꺾으면 하얀 즙액이 나오고 맛을 보면 매우 쓴데, 이것은 같은 무리에 속하는 씀바귀, 고들빼기와 닮았습니다(118쪽).” 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합니다. 민들레잎은 우리 네 식구 고흥 시골집에서 즐겨먹는 풀 가운데 하나예요. 흰민들레도 노란민들레도, 잎이며 줄기며 뿌리며 모두 맛나게 먹어요. 날로도 먹고 갈아서 풀물로도 먹어요. 갈아서 먹을 적에는 꽃송이까지 모두 먹어요. 언제 어떻게 먹어도 민들레잎이 쓴 줄 느낀 적 없어요. 봄민들레도 가을민들레도 늘 산뜻산뜻 푸른 맛이라고 느껴요.


  곰곰이 생각하면, 쓰지 않은 풀이라 하더라도 사람 손을 덜 타면 쓴맛이 아주 짙을는지 몰라요. 그런데, 같은 풀을 놓고 누군가는 안 쓰고 누군가는 쓸 수 있어요. 어느 풀이 누군가한테 쓰다면, 그이는 ‘쓰게 느끼는 까닭’이 있어요. 어느 풀을 안 쓰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풀이 안 쓰다고 느끼는 까닭이 있지요.


  우리 네 식구(여섯 살 세 살 아이까지)는 씀바귀잎도 고들빼기잎도 아주 잘 먹습니다. 부추잎이건 마늘쫑이건 날풀로 잘 먹습니다. 갓잎은 좀 많이 쓰다고 느껴 많이 안 먹지만, 갓잎은 데치거나 볶으면 쓴맛이 거의 안 나요.


  “예전 저희 집 담장 주변에 심은 아주 널찍하고 시원스런 잎을 가진 후박나무도 사실은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 목련’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습니다(173쪽).”와 같은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웃합니다. 후박나무는 아무 데에서나 자라는 나무가 아니에요. 소금기 묻은 바람이 부는 따뜻한 마을에서 자라는 후박나무예요. 웃쪽에서는 거의 자라지 못해요. 바다를 낀 따스한 마을에서 후박나무가 잘 자라요. 뭍으로 깊이 들어가고 추운 데에서는 후박나무가 제대로 못 자라요. 글을 쓴 유상준 님이 ‘후박나무’인 줄 여긴 나무가 후박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였다는 뜻으로 쓴 글인가 싶기도 한데, 후박나무는 잎이 널찍하지 않습니다. 동백잎이 후박잎보다 더 널찍해요. 후박잎은 좀 갸름하다고 할 만합니다. 유상준 님이 생각하는 ‘일본목련’은 한국에서 자라는 ‘후박나무’하고 잎이며 꽃이며 열매며 모두 다릅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드는 나무요, 일본목련은 목련과에 드는 나무예요.


..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를 관리하고 보살피느라 집 주인도 무척 공을 들였겠지만, 그 나무도 따뜻한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혹한에 견디며 적응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 옛날 어른들에게 이 꽃에 대해 여쭈어 보면 대개 금낭화라는 이름은 잘 모르시고 그 대신에 며눌치 또는 며느리취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  (149, 170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나무를 사랑하고 풀을 아끼는 이웃들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도시에서 살더라도 나무를 좋아하고 풀을 그리는 동무들 하나둘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가 마시는 숨(바람)이란 나무와 풀이 나누어 주는 푸른 숨인 줄 함께 느껴요. 우리가 먹는 밥이란 나무와 풀이 흙을 살찌우기에 얻는 밥인 줄 함께 느껴요. 우리가 들이켜는 물이란 나무와 풀이 정갈하게 걸러서 흐르는 물인 줄 함께 느껴요.


  풀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나무하고 노래를 불러요. 풀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무가 부르는 노래에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풀한테 들려주고, 우리 노래를 나무한테 불러요. 4346.1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