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뜰 가득 숨탄 것들 - 한 우리말 지킴이의 삶의 뒤안길
문영이 지음 / 지식산업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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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72



아침이 밝는 노래

― 내 뜰 가득 숨탄것들

 문영이 글

 지식산업사 펴냄, 2014.9.8.



  벚나무 곁에 서면 벚나무 냄새가 솔솔 퍼집니다. 벚꽃이 피면 벚꽃 냄새가 퍼지고, 벚잎이 맺히면 벚잎 냄새가 퍼집니다. 모과나무 곁에 모과나무 냄새가 살살 퍼집니다. 모과꽃이 피면 모과꽃 냄새가 퍼지고, 모과잎이 벌어지면 모과잎 냄새가 퍼집니다.


  나무에는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나무는 그예 나무입니다. 나무마다 냄새가 다릅니다. 나무마다 결이 다릅니다. 나무마다 냄새가 다르고, 무늬와 빛깔이 달라요. 그런데, 어떤 나무이든 한 가지는 똑같습니다. 모든 나무는 우리한테 푸른 바람을 베풀어 줍니다.


  나무와 함께 살면 언제나 푸르게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늘 푸르게 빛나는 바람을 마십니다. 나무를 아끼면서 하루를 열면 나무가 들려주는 짙푸른 노래가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 두 식구만 남고서 냄비들을 작은 걸로 바꾸었다. 아무리 작은 냄비를 써도 먹고 남지 않게 만들기란 어렵다. 꾀가 생겼다. 밥그릇 세 개가 들어갈 만한 압력솥에 겅그레를 놓고 그 밑에 물을 붓는다. 살짝 데칠 시금치는 겅그레 위에 펴놓고 불을 지펴 추가 움직일 만하면 불을 끄고 바로 꺼낸다 … 가을 되면 한 해 먹을 참깨·들깨·콩·팥 팔아 씻어 널어놓고 따끈한 햇살 들에 받으며 젓는 마음 … 어느 사이 실고추 가시는 일도 멈췄다. 빨래기계와 냉장고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내 마음이 거칠어졌다면 이상한 표현이 되나? 더 바빠진 마음이다 ..  (15, 20, 21쪽)



  아침이 밝을 적에 먼 멧자락이나 바다를 바라보면 해님이 붉게 타오르면서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낮에 걸린 해는 하얗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노랗고, 새벽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에요.


  지구별에서 바라보는 해는 때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해는 늘 똑같은 빛과 볕과 살을 우리한테 베풀어 주겠지요. 해가 지구별을 언제나 골고루 비추면서 보듬어 주기에, 우리는 해를 바라보며 ‘해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하겠지요.


  가만히 보면, 별님과 달님입니다. 꽃님과 풀님입니다. 하늘님과 땅님입니다. 바다님과 숲님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은 님입니다. 짐승님이요, 벌레님입니다. 이웃님이자 동무님이에요.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반갑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나는 누구하고라도 어깨를 겯으면서 하루를 새롭게 짓습니다.



.. 시장에서 도라지 뿌리는 아무 때나 볼 수 있지만, 이른 가을(한가위 무렵)이 도라지 뿌리를 캐는 철이다. 그때를 놓치면 다시 새순이 올라오고, 그 순은 겨울을 맞아 얼어죽는 헛순이다 … 언젠가 연한 마늘종 한 줌 뽑아다 놓고 잊고 있다가 보니 줄기는 바짝 말라 있고, 줄기 끝에 시늉으로만 맺혔던 씨는 또랑또랑 여물었다. 제 몸의 양분을 아낌없이 씨에게 다 바쳤다 … 온누리는 보이지 않는 제 씨앗 사랑으로 꽉 짜여 있어, 그 힘으로 모든 숨탄것들이 살아가지만 … 지난여름 서울 거리를 무심히 걷다가 산 나무 밑동에 못질을 해 나무 표지 표를 달아놓은 것에 흠칫했던 기억도 있다. 깊이 박히는 못이 아니라고 발뺌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은 벌써 흠칫 놀란 뒤다. 수많은 전등을 나무에 매달아 치레로 쓰며 ‘나무에게는 해가 없다’는 말도 퍼뜨린다 ..  (32, 41, 59쪽)



  바람이 붑니다. 사월바람이 붑니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는 갓꽃과 유채꽃이 골고루 섞여서 노랗게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갓꽃과 유채꽃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두 가지 풀은 갓과 유채이니까, 꽃은 틀림없이 다를 텐데, 아무리 들여다보고 쳐다보고 바라보아도, 꽃송이로는 도무지 두 가지 꽃을 가르지 못 하겠습니다. 잎을 보면 갓과 유채를 바로 알아챌 수 있으나, 꽃을 보아서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면 얼추 알 듯합니다. 다시 보고 새로 보고 거듭 보면 어렴풋하게 둘을 알 만합니다.


  매화꽃과 벚꽃과 복숭아꽃을 바라볼 적에도 이와 같아요. 알 듯 모를 듯하다가도 어느새 아하 그렇구나 하고 압니다. 붓꽃과 창포꽃을 볼 적에도 이와 같지요. 이야 참 비슷하게 생겼네 싶으면서도 어느 대목에서 다른가 하고 알 만합니다.



.. 떡 방앗간에 가 보면 당원이나, 설탕 봉지를 툭툭 터서 떡가루에 쏟아붓는다. ‘음식 맛을 버려놓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싶다 … 쑥이나 모시 잎을 데칠 때도 소다를 넣어서 억지 색을 내지 않는다. 모든 음식은 만드는 재료의 맛과 제 빛이 사는 것이 제맛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학교에서도 다 같은 음식을 먹고, 직장에서도 같은 음식을 먹는 곳이 많다. 제 입맛을 고집하기가 어려운 시대다 … 온실을 짓는 억지가 없어도 고구마, 감자, 무, 토란, 더덕, 도라지, 연 뿌리, 우엉 뿌리들이 겨울을 넘겨준다 ..  (70, 71, 79쪽)



  문영이 님이 쓴 《내 뜰 가득 숨탄것들》(지식산업사,2014)을 읽습니다. 전라북도 익산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할머님이 엮은 글을 읽습니다. 할머님이 쓴 글은 수수합니다. 따로 꾸미지 않으니 수수합니다. 가만히 보면, 글을 쓸 적에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은 글 그대로 써야 글입니다. 말은 말 그대로 해야 말입니다. 밥은 밥 그대로 지어야 밥이고, 씨앗은 씨앗 그대로 심어야 씨앗입니다.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사랑스러운 기운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합니다. 바느질을 하면서 노래를 합니다. 바늘 한 땀마다 사랑스러운 숨결이 닿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모든 몸짓에 사랑을 담습니다. 따로 ‘사랑인 척’하지 않습니다. 애써 ‘사랑처럼 보이도록’ 하지 않아요. 그저 사랑이 됩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흐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모든 삶과 살림을 사랑으로 짓습니다.



.. 해질녘엔 새하얀 꽃 밑에 털북숭이 열매가 달린 암꽃과 열매가 없는 수꽃이 어우러져 피는 꽃 옆에 서면, 박꽃에선 어미 젖꼭지에서 막 옮겨 받은 아기 냄새가 난다. 박잎도 아기 살갗이다. 그 곁에선 내 마음도 아기를 기르는 어미 마음이다 … ‘말복 안에 박이 열려 까치 대가리만 하면 박이 세어 바가지로 쓸 수 있다’ 하고, 그 뒤에 열리는 박은 나물감으로 귀하게 쓴다 … 박속을 떠낸 속을 들여다보면 심줄이 수박 무늬 골 지듯 골 지어 있다. 그 심줄을 긁어 버리면 박이 마르면서 바가지가 속으로 말려들어서, 박이 아무리 잘 세어도 바가지 구실을 못한다. 그런 모습을 ‘배꼽이 떨어져 못 쓰게 됐다’고 한다. 그 심줄이 다치지 않게 손가락 끝으로 살살 밀어 남은 박속을 모두 긁어내고, 심줄이 그대로 살아 있도록 마음 쓰고 물을 부어 가며 솔로 살살 닦에 볕에 말린다 ..  (88, 89쪽)



  겉모습을 꾸미기에 예쁘지 않습니다. 마음이 예쁠 때에 몸도 예쁩니다. 겉모습을 안 꾸미기에 안 예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예뻐요. 멋들어지거나 값진 옷을 입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마음이 착하면서 참다울 적에 아름답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는대서 안 아름답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고 돕는 따사로운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사람은 어떤 옷을 입든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를 배우려고 학교나 학원을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쓰려고 놀라운 스승을 찾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수많은 문학책을 읽어야 글솜씨가 늘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통째로 달달 외워야 글을 멋있게 쓰지 않아요.


  나라밖에서 뭔가를 배웠으면 글을 잘 쓸까요? 아니지요. 나라밖에서 배운 사람은 나라밖에서 배운 티를 글에 보여줍니다. 대학교를 다닌 사람은 대학교를 다닌 티를 글에 보여줍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책을 많이 읽은 티를 글에 보여주어요.


  이리하여, 삶을 사랑으로 지으면서 아이를 보살핀 사람이 글을 쓰면, 이녁 글에는 언제나 따사롭거나 포근하면서 환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 쓰레기를 만나면 자연에서 얻은 것과 사람이 만든 물건으로 쉽게 가른다. 자연에서 얻은 쓰레기는 그 모양이 아무리 고와도, 험해도, 쉽게 썩거나 더디게 썩거나 다 썩는다. 나는 그 썩는 쓰레기를 귀하게 여긴다 … 빨래는 며칠씩 모았다가 하고, 푸성귀는 밖에서 씻고, 거기서 나오는 물은 항아리에 모아놓아, 모기가 알을 낳을까 봐 비닐 한 장 덮고 뚜껑을 덮는다. 꽃밭을 가꿀 물이다 ..  (149, 150쪽)



  문영이 님이 빚은 이야기책은, 참말 이야기책입니다. 스스로 지은 삶이 이야기로 새롭게 피어나는 글을 엮은 책입니다. 하루가 밝는 아침에 이 아침을 오롯이 느끼면서 삶을 가꾸기에, 아침이 밝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글로 씁니다. 하루가 저무는 저녁에 이 저녁을 소롯이 느끼면서 삶을 짓기에, 저녁이 저무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글로 여밉니다.


  우리는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를 굳이 글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를 구태여 글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책에서 엿본 이야기’를 애써 글로 쓸 까닭이 없습니다.

  나 스스로 겪은 삶을 글로 쓰면 됩니다. 나 스스로 가꾸면서 짓고 누린 삶을 글로 쓰면 돼요. 내 삶은 못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 삶이 잘나지 않습니다. 내 삶은 그저 내 삶이기에, 이 삶을 ‘내 글’로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여다본 내 삶이 아닌, 바로 내가 스스로 바라보는 내 삶을 쓸 때에 ‘글’입니다.



.. 이른봄, 사람은 아직 봄기운을 못 느낄 때, 둑새풀과 함께 하얀 서릿발 덮고 잠자다가 햇살 낌새에 얼른 제 몸을 덥혀 서릿발을 녹이고, 반짝반짝 윤이 나던 두해살이 벼룩나물을 잊을 수 없다 … 첫여름, 들에 나가면 언제나 엉겅퀴꽃을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런데 들에서 엉겅퀴꽃 본 지가 아스랗다. 산에서는 더러 볼 수 있는 바늘엉겅퀴는 잎째짐이 깊고 가시가 억세고 꽃도 자잘한 것이 빛깔도 흐리다 … 꽃다지가 노래에만 있는 나물이 된 것처럼 이제 엉겅퀴마저 자취를 감추는가 싶어 애답다. 독일은 들에 난 풀 한 포기도 마음대로 손대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는다고 한다 ..  (171, 173, 175쪽)



  한국말사전을 뒤져야 한국말을 잘 살려서 쓰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북돋우는 사람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사랑하고 북돋우면서 글을 사랑스레 쓸 수 있습니다. 학교교육을 많이 받거나 책을 많이 살펴야 놀라운 문학을 선보이지 않습니다. 삶을 알뜰살뜰 여미면서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생각을 알뜰살뜰 여미고 보듬으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내 뜰 가득 숨탄것들》에 깃든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이웃집 할머니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웃마을 할머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곁님을 보살피며 흙과 풀과 나무를 아끼는 손길로 삶을 가꾼 할머니가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갈 아이들한테 남기는 보배 같은 글꽃입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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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새들 우리가 모르는 새들 - 생태동화작가 권오준의 우리 새 이야기
권오준 지음 / 겨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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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73



새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

― 우리가 아는 새들 우리가 모르는 새들

 권오준 글·사진

 겨리 펴냄, 2014.5.25.



  새는 늘 사람 곁에서 삽니다. 새는 사람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새는 사람을 멀리하거나 꺼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새를 멀리하거나 꺼립니다. 사람이 새를 싫어하거나 미워합니다. 사람은 새가 사람 곁에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새로 짓는 건물 가운데 ‘새가 깃들도록 자리를 내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가 둥지를 틀 만한 자리를 넉넉히 두려는 사람은 없어요. 오늘날 도시에서는 오직 사람만 깃들도록 집을 짓습니다. 새뿐 아니라 벌레 한 마리조차 깃들지 못하도록 집을 짓습니다. 벌레 한 마리는커녕 개미도 바퀴벌레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집을 지어요.


  오직 사람만 살도록 짓는 집인데, 이러한 집치고 오래가는 집은 없습니다. 사람만 깃들도록 하는 집 가운데 백 해 넘게 버틸 만한 집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사람조차 살기 어려운 곳을 짓고는 이러한 데에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때문입니다.



.. 나뭇가지를 붙잡고 올라가 보니 둥지에 알이 네 개 있었다. 어렸을 적 장난치듯 찾아낸 알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그건 생명이었다 … 봄철에는 날이 가물어서 산새들이 힘겨워한다. 체온이 높아 자주 목욕을 하고 물을 마셔야 하는 새들로서는 먹이보다 물 걱정이 더 크지 않을가 싶다. 산새들은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빨아먹으며 봄을 맞이한다 … 우리 곁에는 많은 새들이 있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여기저기에 새들이 보인다. 귀를 쫑긋 세워 보면 새들의 울음소리는 물론 작은 산새들이 날개 파닥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  (11, 18, 23쪽)



  예부터 지구별 모든 집은 흙과 돌과 나무를 써서 지었습니다. 흙과 돌과 나무를 써서 지은 집에는 새가 깃들기에 좋습니다. 아니,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집이니 새가 얼마든지 깃들 만합니다. 그리고, 이런 집에는 벌레가 깃들기에도 좋아요. 아니, 벌레가 넉넉히 깃들 만합니다. 이리하여, 흙집과 돌집과 나무집에는 새와 벌레가 함께 깃들 수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목숨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 만합니다. 서로 아끼고 돕고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살 만해요.


  새가 사람 곁에서 살 적에 새는 콩 한 알을 나누어 먹습니다. 콩이 석 알 있을 적에 한 알만 나누어 먹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한 알이면 배가 부르거든요. 새는 스스로 벌레를 잡아서 먹습니다. 새는 스스로 나무열매와 풀열매를 찾아서 먹습니다. 이러면서 사람한테서 콩을 한 알 얻어서 먹어요.


  새는 사람 곁에서 살면서 벌레를 알맞게 다스립니다. 벌레를 모조리 잡아먹지 않아요. 왜 그러한가 하면, 벌레가 어느 만큼 있어야 벌레가 꽃가루받이를 해 주고, 주검이나 가랑잎을 거름으로 바꾸어 줍니다. 사람 곁에 벌레가 없으면, 나뭇잎은 하나도 안 썩을 테며, 주검도 썩을 수 없어요. 사람 곁에 벌레가 없으면 살림집 둘레는 쓰레기밭이 될 테지요.



..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식당 안에 날벌레가 한 마리도 안 보였다는 점이다. 제비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식당 안에서 잠만 잔 게 아니었다. 밤새도록 홀 안에 날아다니는 모기, 나방들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그뿐 아니다. 식당에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뜻하지 않게도 여기저기서 많은 손님들까지 몰려들었다 … 땅 주인은 새벽녘에 인부들을 동원해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베어 버렸다. 나무들이 마구 쓰러지면서 백로 둥지들이 와르르 쏟아져 버렸다. 수백 마리 새끼가 나무에 깔려 죽거나 다쳤다 ..  (30, 37쪽)



  권오준 님이 빚은 《우리가 아는 새들 우리가 모르는 새들》(겨리,2014)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사람들이 이럭저럭 알 만한 새와 사람들이 하나도 모르는 새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새가 사람 곁에 어느 만큼 가까이 있는지 보여주고, 사람이 새를 얼마나 모른 척하거나 얕보거나 짓밟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 자동차와 충돌하는, 이른바 로드킬 당하는 새는 아주 흔해졌다. 드문 일이긴 해도 비행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는, 이른바 버드 스트라이크로 죽기도 한다 …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생태학습원 건물도 유리로 짓는다는 거다. 자연보호에 앞장서야 할 곳에서 말이다 ..  (70쪽)



  우리가 스스로 사람이라면 머리를 써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시 문명과 문화가 생겨서 뿌리를 뻗은 지 기껏해야 백 해조차 안 되었고, 쉰 해도 아직 안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지구별 어디나 시골이 훨씬 넓었고, 시골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시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시골에는 들과 숲이 있습니다. 시골에는 냇물과 샘물이 흐릅니다. 시골에는 나무와 풀이 우거집니다. 이리하여, 시골에는 온갖 벌레와 새와 짐승이 한데 어우러집니다.


  벌레란 무엇일까요? 딱정벌레도 있고 애벌레도 있습니다. 나비도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 언제나 벌레입니다.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로 살아낸 뒤에라야 비로소 꽃가루받이를 해 주는 나비가 되어요. 새는 이런 애벌레를 아주 즐겨 먹습니다. 다만, 모든 애벌레를 다 먹어치우지 않아요. 새는 바보가 아닙니다.



.. 몸집이 작다고 언제나 약한 건 아니다. 꼬마물떼새나 흰눈썹황금새는 자신들이 꼭 지켜야 하는 새끼가 있었기에 엄청난 용기가 솟았다. 딱새의 경우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봤기 때문에 분노가 일었을 것이다 …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형제의 깃털을 다듬어 주던 갈색 쇠물닭 한 마리가 어린 새끼에게 다가간다. 그러더니 물풀을 뜯어 먹여 주었다. 동생을 사랑하는 형의 마음씨가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  (133, 142쪽)



  사람은 지구별 자원을 마구 씁니다. 사람은 바보입니다. 사람은 새와 벌레와 짐승을 괴롭힐 뿐 아니라, 감옥(동물원)을 짓고, 주검(박제)을 벽에 붙입니다. 사람은 사람끼리도 괴롭힙니다. 사람은 사람끼리도 함부로 죽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서로 윽박지르고, 서로 못살게 굽니다.


  사람은 그야말로 바보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드느라 돈을 헤프게 쓰고, 전쟁무기를 늘릴 뿐 아니라 전쟁영화를 찍고 전쟁문학을 쓰며 전쟁놀이를 일삼는데다가 ‘전쟁 장난감(총과 칼 따위)’을 엄청나게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팔아요.


  새는 아침저녁으로 노래합니다. 새는 콩 한 알을 먹고 넉넉히 노래합니다. 새는 아주 조금만 먹으면서도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새는 사람들이 ‘노래’를 누리도록 북돋우고 ‘춤’을 추도록 일깨웁니다. 새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춤사위가 생기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가 태어나요.


  우리는 스스로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나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알아차리고, 새가 짓는 사랑스러운 몸짓을 슬기롭게 헤아려야 합니다. 새가 죽으면 사람도 죽습니다. 새가 살 수 없는 집이라면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새가 먹을 수 없는 밥이라면 사람도 먹을 수 없는 밥입니다. 차에 치여 죽는 새가 많듯이, 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어서 눈을 떠야 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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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딜레마
레스터 브라운 지음, 고은주 옮김 / 도요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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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6



경제성장을 그치지 않을 때에는

― 지구의 딜레마

 레스터 브라운 글

 고은주 옮김

 도요새 펴냄, 2005.10.5.



  레스터 브라운 님이 쓴 《지구의 딜레마》(도요새,2005)는 이 지구별에서 경제개발을 그치지 않으면, 지구사람 누구나 수렁에 빠져서 더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더 눈부신 경제와 문명과 문화’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지어서 누리는 하루’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많은 자료와 통계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지구별 모든 나라는 경제개발과 도시문명으로 치닫기만 합니다. 도시를 줄여 시골로 가려는 나라는 없습니다. 시골을 깎아내어 도시로 키우려는 나라만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젖혀놓고 한국만 생각해도 잘 알 만합니다. 한국에서 도시는 커지고 자꾸 커집니다.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면서 애쓰지만, 시골마을을 아름답고 정갈하게 가꾸려고 하는 정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 불과 몇 십 년 만에 각 국가들은 곡물의 자급자족에서 총 곡물 수요의 70%를 수입하는 수입국으로 탈바꿈했다 … 한 국가가 산업화·현대화되면 경작지는 산업 개발과 주택 개발에 이용된다.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귀중한 경작지에는 도로, 고속도로, 주차장 부지 등이 들어선다. 농부들은 자신의 땅이 경제성을 갖기에는 너무 좁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난다 … 중국이 농산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세계시장은 전멸할지도 모른다 ..  (30∼31, 35쪽)



  중국이 온통 도시문명 사회가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중국에 있는 시골이 모조리 도시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헤아려 봅니다. 그러면 중국은 먹을거리를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려 할 텐데, 중국은 진작부터 다른 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입니다. 중국에서 새로 만든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과 쓰레기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렇지만 중국이 나아가려는 길은 오직 경제개발입니다. 이러면서 중국은 핵무기를 더 만들려 하고, 이웃 작은 나라를 함부로 쳐들어가서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미국도 도시문명 사회입니다. 미국은 시골살이를 북돋우지 않습니다. 미국에 있는 시골은 거의 모두 커다란 기계와 비행기를 앞세워 농약과 비료를 퍼붓는 땅뙈기입니다. 기계가 없으면 지을 수 없는 땅이요, 시골살이는 공장과 똑같은 산업입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 따위를 헤아리는 이들이 으레 미국으로 가서 배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에 가서 무엇인가 배우려는 이들은 도시와 문명을 배웁니다. 미국에 가서 무엇인가 보려는 이들은 어마어마한 기계와 전쟁무기를 봅니다.



.. 경작지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는 또 다른 요소는 자동차다. 전 세계적으로 40만 헥타르에 달하는 땅이 해마다 도로와 고속도로, 주차장으로 바뀌고 있으며, 이렇게 전환된 토지가 대부분 경작지에 속한다 …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집, 사무실, 공장, 쇼핑몰, 도로, 주차장을 농업에 부적합한 땅에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들은 양질의 경작지가 위치한 곳에 몰려 있다. 이는 작물의 재배에 적합한 평평하고 배수가 잘 되는 땅이 도시나 도로 건설에도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  (106, 122쪽)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거의 다 도시에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른들도 거의 다 도시에 있습니다. ‘도시사람’을 가리키는 한자말 ‘시민’은 이제 여느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처럼 삼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90퍼센트를 훨씬 웃도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서 지내니까요. 시골이라는 곳은 어쩌다가 들르는 관광지이거나 여행지이기 일쑤입니다. 도시에서 지내는 이 가운테 텃밭이나 마당을 누리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도시에서 ‘내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많되, ‘내 땅’이나 ‘내 밭’이나 ‘내 나무’를 가진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씨앗을 심어서 손수 열매를 얻는 길’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학교에서는 이러한 삶을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학교가 하는 몫은 아이들이 그저 도시내기가 되서 도시 노동자로 돈을 벌다가 도시에서 삶을 마치는 쳇바퀴입니다.



.. 중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96%를 차지하는 밀, 쌀, 옥수수의 양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2004년 호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비량보다 1200만 톤이 부족했으며, 이는 아르헨티나의 총 밀 수확량과 맞먹었다 … 소작인이 토지 소유주가 된다면 생산량은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 농부들에게 토지 소유 권한을 주면 울타리 치기나 저수 시설과 같이 장기적인 생산성에 이익이 되는 투자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생산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 다음으로 할 일은 중국의 침체된 농업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지방 관리들이 막대한 정치 수단인 토지에 대한 권한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  (177, 183쪽)



  경제성장을 그치지 않을 적에는 우리 모두 종(노예)이 됩니다. 경제성장만 바라볼 적에는 우리 모두 숫자와 경쟁과 전쟁에 종으로 얽매입니다. 입시지옥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입시지옥도 경제성장과 똑같이 숫자놀음이요 숫자싸움입니다. 회사원과 공무원이 받는 연봉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성과와 성적이 나와야 하는 회사원과 공무원은 언제나 전쟁과 경쟁이면서 숫자놀음에 숫자싸움입니다.


  그런데, 삶을 이루는 기쁨은 숫자로 안 따집니다. 100원이 있기에 안 기쁘지 않습니다. 100억 원이 있기에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 기쁨과 아이를 돌보는 기쁨은 돈이나 숫자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새봄에 마주하는 앵두꽃이나 딸기꽃은 돈이나 숫자로 살 수 없습니다. 한겨울에 쏟아지는 함박눈은 돈값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가문 날을 촉촉히 적시는 빗방울은 숫자로 어림할 수 없습니다. 서로 아끼는 사랑은 돈으로 매기지 않습니다.



.. 과연 브라질은 1950년대 구소련이 미개척지 개발로 얻은 생태적 재앙을 피하여 빠르게 경작지를 늘려갈 수 있을까? 과연 브라질은 증가하는 세계 식량 수요에 부응하여 식량 생산을 늘림과 동시에 아마존 열대우림과 세라도의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을까 … 브라질의 콩 생산자들은 아시아 대두녹병과 씨름하고 있다. 녹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살균제 살포 비용으로 2003년과 2004년에 총 12억 달러가 소비되었고, 이마저도 잦은 강우로 씻겨 내려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때가 많다 ..  (189, 195쪽)



  삶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삶을 찾지 못합니다. 사랑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사랑을 찾지 못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이 경제성장에 목을 매다는 까닭은 그저 경제성장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목을 매야 하는 까닭은 어른과 아이 모두 입시지옥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라본다면 경제성장이 아닌 삶을 가꾸는 데에 온힘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바라본다면 입시지옥이 아니라 ‘참답게 가르치고 배우면서 기쁜 삶’에 사랑을 바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주 쉽습니다. 손수 삶을 지으면 됩니다. 우리가 갈 길은 아주 환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으면 됩니다. 《지구의 딜레마》라는 책은 갖가지 자료와 통계를 들어서 ‘경제성장’은 ‘전쟁’과 같은 바보짓인 줄 잘 보여줍니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자료와 통계를 보면서 이제부터 삶을 바꾸려고 힘을 기울일 테지요. 눈이 안 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자료와 통계를 보면서도 도시문명과 사회제도와 정치경제에 발목을 붙잡힌 채 삶과 사랑과 꿈이 없는 하루를 보내겠지요. 4348.4.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숲책.환경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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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 춤의 영혼을 지닌 여자, 신지아 이야기, 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신지아 지음 / 샨티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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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7



바람을 마시며 걷는 들길에서

―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신지아 글

 샨티 펴냄, 2014.2.3.



  아이들과 대숲을 걷습니다. 드넓은 대숲까지는 아니고 조그마한 대숲입니다. 바람이 조용한 날인데 대숲을 걸으며 댓잎이 바스락바스락 서로 부딪히면서 소리를 냅니다. 나는 이 댓잎 소리를 대나무가 우리를 반기는 노랫말로 듣습니다. 우리가 모처럼 이곳에 왔구나, 요 한동안 뜸했지? 마음으로 대나무한테 말을 겁니다. 대나무는 다시 바스락바스락 잎사귀를 흔들면서 노래합니다.


  대숲 안쪽에 동백나무가 있습니다. 문을 닫은 지 스무 해 가까이 된 시골 초등학교 둘레는 조그맣게 숲을 이룹니다. 나는 아이들과 이곳에서 책터(도서관)를 꾸립니다. 낡은 건물에 책과 책꽂이를 놓았고, 대숲 사이를 걷거나 풀밭을 밟으면서 우리 책터로 마실을 다닙니다. 문을 닫은 지 오래된 시골 초등학교라서, 이곳에 있는 나무는 어떤 사람 손길도 타지 않으면서 그대로 자랍니다. 나뭇줄기 목아지를 치는 사람이 없고, 꽃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나무답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줄기를 올리고, 해마다 알맞춤한 철이 되면 곱다라니 꽃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대숲 안쪽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에 동백꽃이 소담스럽습니다. 동백잎도 매우 보드랍고 맑습니다. 이제껏 이 시골에서 수많은 동백나무를 보았는데, 이토록 곱고 보드라운 동백잎은 처음으로 봅니다. 아마 사람 손길이며 눈길을 거의 안 탄 동백나무는 드물 테니까, 그저 나뭇결대로 싱그러이 숨쉬는 동백잎이나 동백꽃을 보기 어렵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보는 동백꽃은 참 동백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리저리 가지가 잘리고 줄기가 끊기면서 아파서 끙끙거리는 동백꽃만 보았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자유롭기 위해 태어났을 텐데 실제로는 아픔이나 괴로움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사는 경우가 많다 … 이제야 내가 얼마나 조율이 안 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소리를 내면 낼수록 내 속에 화가 많이 쌓여 있다는 게 느껴졌다 … 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코코넛 속처럼 순수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한갓 욕심이요 본능적인 열등감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너무 달고 향이 부족하다니, 그것은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언젠가는 차이도 잘 만들 수 있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나 또한 적당한 단맛과 은은한 향기로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27, 33, 34, 219쪽)



  아이들과 우리 책터 둘레에 옮겨심은 나무에서도 겨울눈이 터지려고 합니다. 아직 이 나무 이름을 모릅니다. 처음에는 마을 어귀에서 자라던 나무이지만, 군청에서 마을마다 정자를 하나 세워 준다면서, 그동안 잘 자라던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길바닥에 버렸습니다. 제법 크게 자란 나무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깝기에, 아이들과 함께 수레에 싣고 우리 책터 둘레에 심었어요.


  잘 자라렴, 이곳에서 느긋하게 뿌리를 내리렴, 이곳에서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높이높이 솟으렴, 하고 늘 말을 겁니다. 이제 이 나무는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서 겨울눈을 터뜨리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 손길을 받고, 우리 마음길과 이어지면서, 우리 사랑길하고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구나 싶어요.


  살그마니 겨울눈을 쓰다듬습니다. 살짝 입술을 댑니다. 어떤 나무이든 다 그러한데, 살그마니 쓰다듬거나 가만히 입술을 대면, 나뭇줄기가 파르르 떠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도시 한복판에 있는 거리나무도, 목아지가 뎅겅 잘라셔 슬피 우는 나무도, 우리가 곁에 다가가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만히 안아 주면 파르르 몸을 떨면서 노래를 해요.



.. 무용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눈물과 땀 속에서 견뎌낸 숱한 시련들은 그 순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 춤은 언제 이렇게 나를 귀하고 아름답고 자유롭게 변신시켰는가 … 생각이 없었고,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에 또 눈이 있었다. 그 눈이 바라보는 것은 이미 다른 것이었다 …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절에 다니셨고, 그것 때문에 엄마와 불화가 생긴 일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나를 지리산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지리산에서 천체를 읽는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별을 보면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44, 58, 66, 79쪽)



  바람이 붑니다. 봄바람은 상큼한 봄내음을 가득 안고 찾아옵니다. 이 봄바람을 느끼면서 아침에 빨래를 하고, 빨래를 마친 뒤 마당에 옷가지를 넙니다. 고운 볕과 상큼한 바람은 옷가지마다 골고루 스밉니다. 보송보송 마르는 동안 새로운 숨결이 옷가지마다 깃드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먼 옛날부터 이 땅 어버이는 하늘을 보면서 빨래를 했을 테고, 해와 바람을 살피면서 옷을 널었을 테며, 아이들은 해와 바람 내음이 그득 밴 옷을 기쁘게 입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봄에는 봄에 젖어드는 옷이요, 여름에는 여름에 감겨드는 옷이며, 가을에는 가을이 스며드는 옷이고, 겨울에는 겨울이 파고드는 옷입니다.


  마당에 가만히 서서 볕과 바람을 누릴라치면 으레 새가 나무에 앉아서 지저귑니다. 마당에 선 우람한 후박나무는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새들이 으레 쉬는 자리입니다. 온갖 새가 후박나무 우듬지에 앉아서 한참 노래합니다. 우리 집 위쪽으로 지나가는 전깃줄에 앉아서도 노래하고, 우리 집 헛간 지붕에 앉아서도 노래하며, 우리 집 뒤꼍 모과나무나 감나무나 매화나무 꼭대기에 앉아서도 노래합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소릿결이 다릅니다. 사람이 읊는 말도 똑같은 적이 없이 늘 다르고, 새가 지저귀는 노래도 똑같은 때가 없이 언제나 다릅니다. 새마다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철마다 노랫결이 다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노랫마디가 다릅니다.



.. “꽃을 보고 풀 냄새를 맡고, 하늘을 가슴에 안고 낮잠을 자면 너무나 좋아요. 학교 가기 싫은 것이 돈 건가요?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요. 저는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재미없어요. 나한테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말을 안 한다고 야단치고, 그리고 왜 나만 여기(정신병원) 있는 거죠?” … 내가 가진 육체로 무얼 할 수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몸으로 이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가슴이 절로 뛰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몸을 느껴 보았다. 몸이란 것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순간 내 몸이 벼락에 맞아 찌릿찌릿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 “내 기억에 나는 이 땅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비자 신청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보세요. 나는 전생에 인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나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  (85, 99, 138쪽)



  신지아 님이 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를 읽습니다. 한국에서 바알간 살결을 입고 태어난 신지아 님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보다 인왕산을 사랑했고, 학교를 마친 뒤에 인도로 건너가서 춤을 사랑했으며, 다시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새로운 꿈을 사랑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지아 님 살결을 놓고 수술을 해야 한다느니 옷으로 가려야 한다느니 말했다는데, ‘빨강’이라는 빛깔은 여느 빛깔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사랑이 빨강이요, 꽃이 지면서 맺는 수많은 열매가 빨강이며, 풀과 나무가 맺는 수많은 꽃이 빨강입니다. 우리 몸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빨강이고, 말괄량이 삐삐나 푸른지붕 앤도 머리카락이 빨강이에요.


  빨강이라는 빛깔은 우리를 살리는 숨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따뜻하면서 넉넉하게 새로 태어나도록 북돋우는 빛깔이 바로 빨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두 눈을 고정하고 집중해서 바라보면 대상도 내게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춤이란 생각이 아니고 움직임이란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움직임에 몸을 맡기면 저절로 생성되는 에너지가 춤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 내 삶을 통해서 내 몸과 마음 그 자체가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갖고 싶은 다이아몬드였다 … 그날 이후로 벌레 소리 말고도 들리는 모든 소리에 심장의 리듬을 맞춰 보는 놀이를 했다. 개들의 울음소리, 사람들이 내는 온갖 소음에도 심장의 리듬을 맞췄다. 그러고 나니 세상이 온통 리듬으로 구성된 완벽한 오케스트라라는 느낌이 들고, 세상에 시끄러운 소리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97, 143, 178. 222쪽)



  즐겁게 부는 바람을 쐬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신나게 부는 바람을 쐬는 사람은 신납니다. 이리하여, 즐거운 바람이 감도는 보금자리에서는 누구나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워요. 신나는 바람이 넘치는 일터에서는 저마다 신나게 일해요.


  바람이 기운을 빚습니다. 바람 따라 기운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바람은 어디에서 일어날까요. 바람은 왜 일어날까요.


  내가 읊는 한 마디에서 바람이 새로 솟습니다. 내 말 한 마디가 맑은 바람이 되기도 하고, 슬픈 바람이 되기도 하며, 아픈 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너한테 띄우는 말 한 마디는 바람을 타고 훨훨 날면서 온누리에 새로운 빛으로 스며듭니다. 그러니, 내 입에서 나오는 말마디는 바로 내 삶을 바꾸는 말이요, 내 삶을 새로 짓는 말입니다.


  춤을 출 적에도, 빵을 구울 적에도, 빗물로 촉촉히 젖은 들길을 걸을 적에도, 아득하게 높은 곳에 있는 커다란 못물을 만날 적에도, 우리는 언제나 바람과 함께 새로운 기운을 느낍니다. 바람은 이야기꾼입니다. 바람은 개구쟁이입니다. 바람은 장난꾸러기요 말괄량이입니다. 바람은 마법사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도록 도와주고, 바람은 들판에서 온갖 곡식이 알뜰히 익도록 돕습니다.


  내 춤사위는 바람결이 되어 퍼집니다. 내 노랫마디는 바람소리가 되어 흐릅니다. 내 몸짓은 바람이 짓는 웃음이고, 내 말마디는 바람이 베푸는 선물입니다.



.. “저는 오늘을 살고 있어요. 오늘만 생각해요.” … 무용 너머의 다음 단계를 바라보는 느낌이었고,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 밑으로 벌써 무의식이 진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 내 영혼은 자유롭게 과거의 시간으로 가고 있는 듯했다. 육체를 갖기 이전의 영혼이, 바람이나 안개처럼, 아니 마치 솜사탕 기계에서 올라오는 하얀 솜뭉치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회전하고 있었다. 언어는 없었지만,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다 … “저는 지아라는 아주 작은 행성입니다. 저 또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름답고 자유롭고 또한 항상 변화하는 제가 이 자리에서 행성 신들 앞에 꽃과 향을 바칩니다. 우주의 에너지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습니다. 두려움을 완전히 떨칠 수 있도록.” ..  (184. 269, 270∼271, 277쪽)



  신지아 님은 스스로 삶을 지으려 합니다. 남이 이끄는 삶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신지아 님은 스스로 마음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남이 읊는 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어떤 스승한테서 춤사위를 배우더라도 스승을 곧이곧대로 따라가는 춤사위가 아니라, 춤사위에 깃든 넋과 빛과 고요를 함께 바라봅니다. 길을 걷고 아이를 낳으며 밭을 일구고 빵을 구울 적에도 어떤 틀에 박힌 흐름이 아니라, 스스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다스립니다.


  ‘자유’란 무엇일까요. 한자말 ‘자유’를 한국말로 옮기면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몸짓이 바로 ‘자유로운’ 몸짓이요, 홀가분한 넋이 바로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그러면 ‘홀가분하다’는 무엇일까요. 한국말 ‘홀가분하다’는 “홀로 가볍다”를 나타냅니다. 혼자 똑 떨어지기에 가볍지 아닙니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서 가볍습니다. 손수 삶을 지을 수 있기에 가볍습니다. 손수 삶을 짓는 나날을 늘 누리니, 하늘을 가르는 새처럼 가볍게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며 웃습니다.



.. “네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결혼은 지나간 공연에 불과해. 내가 너처럼 바뀌길 바라는 거야? 격 없는 히피로? 내가 아는 히피란 자유롭게 산다는 건데, 타락하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구분해야 되지 않겠어? … 우리 몸은 우리의 신전이야. 귀하게 여기고 깨끗하고 소중하게 다뤄 줘. 신을 모시는 장소니까.” … 우리는 아이의 탯줄을 땅에 묻고 작은 나무를 심으며 (첫째 아이) 아루나의 탄생을 감사했다 … 병원을 나와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갓다. (둘째 아이) 고빈다를 껴안은 채 말했다. “고빈다, ‘나는 빛이다. 나는 사랑이다. 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혼이다’ 따라해 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니 심장의 소리로 고빈다가 소리를 내었다 ..  (280, 294, 330쪽)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해서 홀가분하거나 자유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릅니다. 내 삶을 스스로 바라보는 눈길이 없다면, 스스로 하려는 길대로 가지 않고, 이리저리 휩쓸리니, 이런 몸짓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닙니다.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홀가분하거나 자유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내 사랑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마음대로’라고 할 수 없어요. 내 마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나 놀이란 없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고, 삶을 스스로 바라보며, 삶을 스스로 알 때에, 비로소 ‘마음’을 찾아서, 이 마음에 내 꿈을 씨앗으로 심습니다. 내 마음에 내 꿈을 지어서 생각이라는 씨앗으로 심기에, 내 마음대로 어떤 일이든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스스로 서야 합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손수 하루를 지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아름답게 서는 일이고, 마음대로 누리는 놀이는 스스로 사랑스레 춤추는 몸짓입니다.



.. 내 존재가 참으로 신비하고 아름답다고 읊조리면서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축축해진 잔디밭을 하염없이 걸었다 … 보석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보석이 되기로 결심했다 … 나는 모국어에 얼마나 큰 위로의 힘이 있는지 원고를 쓰면서 깨달았다 … 내가 없으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하면 사랑을 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 “바람이 너를 휘감고 스칠 때, 몸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느껴 봐. 느끼기 전에 감사하고, 감사하기 전에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 … “지금 새롭게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부정하거나 숨기고 싶지 않아 …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두려워서 그것을 피하거나, 그 결과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참사랑을 잃고 싶진 않아.” ..  (342, 343, 344, 347, 368쪽)



  예부터 지구별 누구나 손수 삶을 지었습니다. 예부터 지구별 누구라도 손수 집을 지어서 보금자리를 이루었고, 손수 밥을 일구어 살림을 꾸렸으며, 손수 옷을 짜서 기쁘게 입었습니다. 집과 밥과 옷을 손수 가꾸어서 나누기에 삶을 손수 가꾸어서 누립니다.


  학교가 있기에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배우지 않습니다. 삶이 있어야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배웁니다. 오늘날 학교를 보면, 집과 밥과 옷을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대학입시 지식만 가르쳐요. 아니, 이마저 가르침이 아닌 들들 볶아서 외우도록 하는 짓입니다. 사람 되는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못하는 채, 종이 되어 뒹구는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학교입니다. 이런 학교를 다니면서 미치지 않는다면 외려 고개를 갸우뚱할 노릇입니다.


  삶이기에 스스로 노래할 수 있고, 사랑이기에 스스로 꿈꿀 수 있습니다. 삶이기에 내 모든 숨결을 담을 수 있으며, 사랑이기에 내 온 넋을 실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고, 지난 슬픔과 아픔과 고통도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으로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 어떤 현실 속에서도 내 꿈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  (377, 378쪽)



  들길을 걷습니다. 내 모습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들길을 걷습니다. 들길을 걷는 동안 내가 나한테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숲길을 걷습니다. 내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면서 숲길을 걷습니다. 숲길을 걷는 동안 내가 바로 나한테 가장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나로 서면서 사랑이 자랍니다. 네가 너로 서면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나와 너는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기에 서로 손을 맞잡고 빙그레 웃습니다. 서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기에 이야기꽃을 함께 피웁니다.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가득한 이 보금자리에서는 삶이 고운 꽃으로 피어나고, 언제나 파란 하늘 같은 바람이 산들산들 붑니다. 해님이 벙글벙글 노래합니다. 4348.3.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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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깊은 지혜와 성찰 나무에게 배운다 1
니시오카 쓰네카즈 구술, 시오노 요네마쓰 엮음, 최성현 옮김 / 상추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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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71



나무와 함께 살기

― 나무에게 배운다

 니시오카 쓰네카즈 글

 최성현 옮김

 상추쌈 펴냄, 2013.4.5.



  나는 나무하고 함께 삽니다. 내가 아이와 심은 나무가 있고, 우리 집 나무에서 가지를 쳐서 옮겨심은 나무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 땅은 그리 넓지 않아서 나무가 몇 그루 없지만, 아침 낮 저녁으로 우리 나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도 날마다 나무를 마주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날마다 나무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자라는지 헤아릴 수 있고, 겨울눈이 날마다 어느 만큼 부풀다가 어느 날 비로소 한꺼번에 터지는지 알 수 있어요.


  우리 집 나무는 마을에서도 좀 늦게 꽃이 피고, 이 고장에서도 좀 늦게 꽃망울이 터집니다. 다른 집이나 마을에서는 훨씬 일찍 동백꽃이 피고 매화꽃이 터지지만, 우리 집은 다른 집이나 마을과 견주면 보름 남짓 늦게 꽃송이가 열려요. 그러나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천천히 피어나는 꽃은 한결 오래도록 꽃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찬찬히 피어나는 꽃은 더 짙고 깊은 꽃내음을 오래오래 우리한테 베풀어 줍니다.



..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 책을 읽는다거나, 지식을 지나치게 채워 넣게 되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연이나 자신의 생명에 관해서는 무지해집니다 …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을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 한 그루의 나무라도, 그것이 어떻게 해서 씨앗으로 뿌려지고 어떻게 다른 나무와 겨루며 컸을까, 거기는 어떤 산이었을까, 바람이 심한 곳은 아니었을까, 햇빛은 어느 쪽으로 받았을까, 저라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  (20∼21, 22∼23쪽)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이 마을에서 땅을 차츰 넓혀서 나무를 심어서 누릴 자리를 꾸준히 늘릴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우거진 숲처럼 보금자리를 가꾸면, 우리는 언제나 맑으면서 밝은 바람을 마실 수 있어요. 나무가 잘 자란 보금자리에서는 볕이 더욱 따스하고, 그늘이 더욱 시원하며, 노래도 웃음도 훨씬 싱그럽습니다.


  나무가 있기에 벌과 나비와 새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나무가 있으니 수많은 새가 우리 집을 거쳐서 다리쉼을 하다가 다시 날아갑니다. 나무가 있어서 우리 집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만큼 아이들은 나무를 둘러싸고 놀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먼 옛날부터 나무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나무 열매를 얻기도 하지만,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살림을 짭니다. 나뭇가지를 끊어서 잘 말린 뒤 장작으로 삼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함께 노래하면서 더욱 푸르게 우거지고, 사람은 나무와 함께 춤추면서 더욱 아름답게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나무가 살아온 만큼 나무를 살려서 쓴다고 하는 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나무는 대자연이 낳고 기른 생명입니다. 나무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생물입니다 … 옮겨 심을 때, 그 나무를 그대로 경쟁시키면 이천 년 이상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무를 키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나무를 키워 내자는 생각이기 때문에 별 수 없는 일이지만 … 오래된 나무는 놀랍게도 만져 보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  (39∼40, 45, 59쪽)



  니시오카 쓰네카즈 님이 나무한테서 배운 이야기를 입으로 들려주어 빚은 《나무에게 배운다》(상추쌈,2013)를 읽습니다. 글쓴이는 나무를 만져서 집(또는 궁궐)을 짓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나무와 한몸이 되어 움직였고, 늘 나무와 한마음이 되어 삶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큰 나무장이’ 한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한국에도 나무장이는 무척 많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나무장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적이 몹시 드뭅니다. 한국에서는 나무장이뿐 아니라 여느 시골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몹시 드물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서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퍽 드뭅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책을 짓거나 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정말로 좋은 연장은 끝까지 사용합니다. 감상용 미술품 따위와는 달리 목수의 연장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자연석에 세운 기둥 밑바닥은 모양이 가지각색입니다. 지진이 와서 흔들리더라도 힘을 받는 방향이 다릅니다 … 같은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마음에 들면 소중히 다룹니다 …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쓰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 나무의 성깔을 파악하고, 그 성깔을 살려서 쓰라는 구전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  (69, 76, 101, 133쪽)



  나무장이 니시오카 쓰네카즈 님은 나무만 다루지 않습니다. 손수 흙을 짓습니다. 스스로 먹을 밥을 스스로 얻습니다. 스스로 누리는 집을 스스로 짓습니다. 다만, 옷까지 스스로 짓지는 못하는구나 싶은데,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을 줄 알 때에, 비로소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짓지 못한다면, 삶을 스스로 짓지 못해요.


  학교를 오래 다닌들 삶을 짓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가 되어 일을 하기에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습니다. 농사꾼이 가장 훌륭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흙을 지으면서 살림을 이룰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흙을 지을 적에는 해와 바람과 물을 알아야 하고, 해와 바람과 물이 살찌우는 뭇목숨을 알아야 하며, 해와 바람과 물이 어우러져서 이루는 숲과 들, 이른바 풀과 나무를 알아야 할 테지요.



.. 자기 생각으로 차 있으면 스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틀에 맞춰 지식만을 집어넣으며 경쟁을 시키는 방법이 교육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 통째로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 집을 짓는다면 거기 살 사람들의 마음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짐작하여 지으라는 것입니다 ..  (93, 112, 119, 184쪽)



  손수 삶을 짓던 옛사람이 ‘나무’라는 낱말을 지었습니다. ‘숲’이라는 낱말과 ‘풀’과 ‘꽃’이라는 낱말도 손수 삶을 짓던 옛사람이 지었습니다. 임금이나 지식인이 이런 낱말을 짓지 않았어요. 임금이나 지식인은 그저 중국에서 한자를 끌어들여 중국을 섬겼을 뿐입니다. 오늘날 대통령이나 권력자나 지식인은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나 여러 서양말을 섞어서 지식을 자랑할 뿐입니다.


  삶을 짓기에 말을 짓습니다. 삶을 누리기에 이야기를 누립니다. 나무 한 그루를 만지면서 집을 짓던 나무장이는, 나무가 자라는 숲에 보금자리를 이루어 손수 삶을 가꿀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나무한테서도 배우고, 흙과 물한테서도 배우며, 해와 비와 바람한테서도 배웁니다. 아기한테서도 배우고, 이웃한테서도 배웁니다.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삶을 배우고, 누구한테서 사랑을 베풉니다. 함께 짓는 삶이요, 함께 사랑하는 하루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한 연필과 종이가 예쁘게 만나 책 한 권이 태어납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 군말

‘번역’을 어떻게 손볼 수 없을까? ‘직역’이 아닌 ‘번역’이 되어야 할 텐데.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안타까운 일본 말투가 너무 자주 나온다. 그리고 누가 누구한테 무엇을 가르친다고 할 적에는 ‘-에게서 배운다’고 한다. ‘-에게 배운다’가 아니다. ‘위’나 ‘속’이라는 말도 너무 잘못 쓴다. “자연석 위에 세운 기둥”이 아니라 “자연석에 세운 기둥”이고, “일본 문화 속에서”가 아니라 “일본 문화에서”이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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