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에세이집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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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0



눈을 밝히는 말과 글

― 9월이여 오라

 아룬다티 로이 글

 박혜영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2004.6.15.



  인도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인도라는 나라는 아시아에 있지 않습니다. 지구에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아시아가 아닌 지구에 있습니다. 미국도 러시아도 호주도 모두 지구라는 별에 있습니다.


  인도라는 나라가 아닌 ‘지구라는 별’에 ‘아룬다티 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뭇사람 눈길로 이녁은 ‘가시내(여성)’입니다.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라는 사람은 ‘인도인’이나 ‘가시내’라는 허울로 살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지구사람’으로 살 뿐이고, 오로지 ‘사람’으로 삶을 노래할 뿐입니다.


  ‘지구사람 아룬다티 로이’는 딱 잘라서 말합니다. “왜 미국은 당장 전쟁을 중지해야 하는가?” 하고. 나도 아룬다티 로이라는 님과 함께 ‘지구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구별 한쪽에서 이녁 말을 받아서 새롭게 외칩니다. “왜 한국은 곧바로 군대를 없애고 전쟁을 멈추어야 하는가?”



..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은 뉴욕과 워싱턴을 위한 복수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민중에 대한 또 하나의 테러행위이다.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뉴욕과 워싱턴에서 끔찍하게 죽은 희생자 수에 포함되어야 하며,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민중이 전쟁의 승리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고, 정부가 전쟁의 패배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민중은 죽임을 당한다 ..  (48쪽)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 못지않게 전쟁 미치광이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를 보셔요. 고구려가 드넓은 땅을 차지했다면서 노래합니다. 그래요, 고구려는 드넓은 땅을 차지했지요. 드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이웃나라 사람을 끔찍하게 죽였지요. 그러고 나서, 이웃나라는 조금씩 힘을 키워 고구려한테 앙갚음을 했고, 고구려 이웃에 있는 백제와 신라와 가야한테도 앙갚음을 했으며, 먼먼 뒷날에 고려와 조선한테도 앙갚음을 해요.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전쟁 미치광이한테는 전쟁 미치광이가 찾아오는걸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바다 건너 일본이라는 나라를 얕잡거나 깔보았으며, 흔히 ‘대마도 정벌’이니 무어니 하면서 군대를 보내어 다스렸습니다. 바다 건너 일본은 ‘대마도 정벌’ 따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주 마땅히 ‘너희보다 군대 힘을 더 키워서 너희가 우리한테 했듯이 짓밟을 테야!’ 하고 외칩니다.


  군대는 군대를 끌어들입니다. 전쟁은 전쟁을 끌어들입니다. 군사독재는 군사독재를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평화는 평화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사랑은 사랑과 손을 잡습니다. 꿈은 꿈과 이어져서 아름다운 무지개로 피어납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하나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가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는듯이 여기면서 이를 학교와 언론과 사회에서 가르치려 합니다. 군대와 경찰이 하는 일이란 언제나 전쟁일 뿐이지만, 이를 제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 군대에서 젊은이가 서로 다치면서 거친 말을 일삼다가 목숨까지 잃을까요? 왜 군대에서 젊은이가 미쳐 버리고, 총질을 해대며 따돌림과 괴롭힘이 널리 퍼졌을까요? 왜 군대에서는 갖가지 부정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을까요? 전쟁무기와 군대는 언제나 이웃을 해코지하면서 제 밥그릇을 채우려는 바보짓이기 때문입니다.



.. 실제로 그들(미군)은 사람들을 죽이라는 명령은 받았지만 보호하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던 겁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분명한 거지요 … 미국 할렘의 가난뱅이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약탈한다면 그건 괜찮을까요? 그때도 똑같이 희희낙락하며 반길까요 ..  (136, 139쪽)



  지구사람 아룬다티 로이 님이 쓴 《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를 읽습니다. 조그마한 책을 찬찬히 읽습니다. 책은 조그맣습니다. 지구별에서 한 사람 몸집도 조그맣거든요. 그러나, 지구별은 바로 이 작은 씨앗에서 깨어났습니다. 작은 씨앗이 있기에 오늘날 같은 지구별이 됩니다.


  드넓은 숲은 처음부터 드넓은 숲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아주 작은 씨앗 한 톨이 이 땅에 깃들어 자라면서 풀이 되지요. 풀씨가 퍼져서 풀밭이 되어요. 풀밭에 나무씨가 떨어져 나무로 자랍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새로운 씨앗이 터져서 차츰 퍼지고, 이 씨앗은 더욱 퍼지고 퍼져서 드디어 숲이 됩니다.


  풀밭이 되거나 숲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는 지 여느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아주 까마득한 나날이 흐를 테니까요. 고작 백 해쯤 사는 몸뚱이로는 숲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구를 알 수 없습니다.


  지구별에서 왜 수많은 정치조직과 사회조직은 전쟁을 일삼을까요? 기껏해야 백 해조차 못 살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을는지 모르다 보니, 이 짧은 삶을 싸움질과 바보짓으로 흘려 보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구별에서 즈믄 해를 살거나 만 해나 십만 해를 산다고 생각해 보셔요. 이때에도 싸움질을 할까요? 우리가 ‘밥’을 먹지 않고 ‘바람’만 마시면서도 몸이 튼튼하다면 굳이 싸움질을 할까요?



.. 인도정부가 핵무기에다가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어넣는 동안 그 무기로 지키려는 땅은 썩어가고 있다. 강이 죽고, 숲이 사라지고, 공기는 숨쉬기가 불가능하게 되어 가고 있다. 내가 사는 도시 델리는 바로 내 눈앞에서 변해가고 있다. 자동차들은 더욱 미끈해지고, 담장은 더욱 높아지고, 늙고 병든 야경꾼들 대신에 젊은 무장 경비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그러나 하수도, 철로 주변, 공터 같은 음습한 곳에는 어디서나 마치 이처럼 빈민들이 듫끓고 있다. 그 빈민들의 아이들은 산란한 마음으로 거리를 헤매고, 선글라스를 낀 특권층들은 그들을 외면한다 … 세계화란 오직 돈과 상품과 특허 서비스에 관한 것이지, 결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인권존중에 관한 것도, 인종차별이나 화학 및 핵무기, 또는 온실효과와 기후변화, 또는 정의에 관한 국제적 협약에 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5, 85쪽)



  삶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싸웁니다. 삶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을 괴롭힙니다. 삶을 살피지 못하기에 사랑을 등집니다. 삶을 깨달으려 하지 않으니 자꾸 다투면서 동무나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혼자 1등이 되려고 법석을 피웁니다.


  지구별 곳곳에서 돈 때문에 다투고, 석유와 물과 밥 때문에 다투는 까닭은 서로서로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바보이니 자꾸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핵폭탄이 일본에 두 발 떨어졌지요. 그러면 일본만 잿더미가 되었을까요? 아니에요. 1945년 그무렵에 일본 가까이 있는 한국도 아주 마땅히 ‘핵폭탄 피해’를 받지요. 몇 해 앞서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터진 일을 놓고 ‘일본 것은 못 먹’고 ‘일본에 가지 말자’는 말이 불거집니다만, 1945년 그무렵에는 어떠할까요? 바람을 타고 바닷물이 흐르니, 한국 동해와 남해와 서해에는 아주 마땅히 ‘방사능 물질’이 넘쳤을 테며, 한국 하늘을 방사능 먼지가 뒤덮었을 테지요.


  중국에 지은 공장이 내뿜는 매연과 폐수가 한국을 거쳐 일본을 지나 태평양을 가로지른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이 지구별이 왜 동그란 모습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쓰레기를 내놓으면, 이 쓰레기는 끝끝내 나한테 돌아옵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면, 이 사랑은 언제나 내 곁을 맴돌면서 따사로운 기운이 됩니다.



.. 작가라면 늘 아픈 눈을 뜬 채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창문 유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어야 하고, 날마다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 가난한 자들의 이름으로 생산되는 전력(전기)은 끝없이 탐욕적인 부유한 자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 … 다행스럽게도 나는 선거에 출마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국가가 아니라 강과 계곡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  (5, 9, 20쪽)



  지구별에서 일으키는 전쟁은 바로 내가 나를 죽이는 짓입니다. 지구별에서 자꾸 만드는 전쟁무기와 군대는 바로 내가 나를 괴롭히는 짓입니다. 입시지옥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나를 모질게 짓밟는 짓입니다. 입시지옥일 뿐인 초·중·고등학교에 그냥저냥 아이들을 집어넣는 어버이는, 어버이 스스로 이녁 삶을 짓누르는 셈입니다.


  삶을 가르치는 배움터가 아니라면, 어버이 스스로 새로운 배움터를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맹자 어머니가 왜 보금자리를 여러 차례 옮겼을까요? 스스로 배움터와 삶터를 짓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군이나 학벌 때문에 옮기는 집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삶을 지을 만한 터전으로 옮기거나, 우리가 머문 이곳을 아름답게 새로 가꾸어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나 국무총리나 국회의원 같은 사람이 수없이 바뀐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달라져야 삶이 달라집니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게 짓고, 우리 아이들을 내가 손수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을 때에 이 지구별이 다시 태어납니다.



.. 우리가 계속 살아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계속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도 쉽게 포기해 버린 정치적 투쟁을 다시 우리의 것으로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 지점에서 현실을 외면해 버린다면, 우리의 예술은 별로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될지 모른다 … 너무 많이 생산하는 농민도 절망 속에 빠져 있고, 너무 적게 생산하는 농민도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  (18∼19, 32쪽)



  지구사람 아룬다티 로이 님이 들려주는 말은 아주 쉽고 또렷합니다. 미국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나부터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라고 말합니다. 텔레비전으로 ‘전쟁 현장중계’를 구경하지 말고, 텔레비전을 끈 뒤 내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지으라고 말합니다.


  아주 쉬워요. 누구나 이렇게 하면 됩니다. 쳇바퀴 도는 삶은 이제 그쳐야 합니다. 굴레에 스스로 갇힌 삶에서 스스로 나와야 합니다. ‘남(전문가)’한테 맡기는 교육이나 문화가 아니라, ‘내’가 내 삶터에서 우리 아이와 함께 삶을 지어야 합니다.



.. 지금은 ‘전문가’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낚아채 와야 할 때입니다. 공적 문제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또한 일상적인 언어로 하라고 요구할 때입니다 ..  (38쪽)



  씨앗을 심는 사람은 ‘농사 전문가’가 아닙니다. 씨앗을 심는 사람은 ‘그저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 삶을 지으려 하기에 씨앗을 심습니다. 어버이가 왜 바느질을 할까요? 옷 짓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바느질을 하지 않아요. 사랑을 실어 아이한테 옷을 주고 싶어서 바느질을 합니다. 어버이가 왜 밥을 할까요? 밥 짓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밥을 하지 않아요. 꿈을 담아 아이와 한 그릇을 기쁘게 나누고 싶기에 밥을 합니다.


  우리가 읽을 책은 ‘눈을 밝힐 책’입니다. 눈을 밝힐 책을 읽은 뒤에는 내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내 삶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고 나서 움직여야지요. 손수 삶을 지어야지요. 그러면 됩니다. 내 삶이 나한테 오도록 내 목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4337.8.2.달/4348.2.3.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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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백
팀 윈튼 지음, 앤드루 데이빗슨 그림, 이동옥 옮김 / 눌와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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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70



아름다운 숲

― 블루백

 팀 윈튼 글

 이동욱 옮김

 눌와 펴냄, 2000.2.15.



  “볏짚은 벼가 가장 좋아해요.” 시골에서 볍씨를 심어서 벼를 가꾸는 일꾼이라면 모름지기 이처럼 말합니다. 볏짚을 가장 좋아하는 목숨은 바로 벼입니다. 벼는 볏짚을 먹고 이듬해에 새롭게 기운을 냅니다.


  풀씨는 ‘시든 풀잎’을 가장 좋아합니다. 나무는 ‘가랑잎’을 가장 좋아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풀잎이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는데, 이 아이들은 이듬해 봄이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이듬해 여름이면 ‘지난겨울에 시든 풀잎’은 어느새 흙으로 바뀝니다. 가랑잎도 이와 같아요. 가랑잎은 이듬해 봄과 여름을 거치면서 조용히 흙으로 바뀝니다. 흙으로 바뀐 가랑잎은 나무를 살찌우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우면서 놀라운 거름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웬만한 시골에서는 볏짚을 기계로 묶어서 내다 팝니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볏짚 묶는 일을 하는 사람이 기계를 부려서 척척 묶습니다. 이렇게 묶은 다발을 ‘소 공장(소를 키우는 곳. 외양간이나 소우리가 아닌, 이제는 닭이나 돼지나 소를 ‘공장’ 같은 곳에서 가두어 키우니 ‘소 공장’, ‘닭 공장’, ‘돼지 공장’이라 해야지 싶습니다)’에 몇 만 원씩 주고 판답니다. 시골일은 어느새 도시를 닮아 돈벌이가 되어야 하다 보니, 볏짚은 돈을 받고 판 다음, 빈 들판에는 온갖 비료와 농약을 줍니다.



.. 두 사람은 전복 무리에서 하나에서 두 마리씩만 캐고 나머지는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남겨두었다. 해초와 바위 틈 사이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튀어나와 남은 전복 살점들을 뜯어먹거나, 그들이 휘저어놓은 침전물들을 집적거렸다 ..  (15쪽)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일꾼이 새끼고기를 싹쓸이를 하면 어떻게 될까 헤아려 봅니다. 지난날에는 새끼고기나 ‘덜 여문 고기’는 바다에 풀어 주었는데, 오늘날에는 이렇게 안 하기 일쑤입니다. 손이 많이 가서 번거롭다고도 하지만, 바다와 뭍과 지구별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그물 뿌리고 걷는 기계를 써서 새끼고기를 ‘죽인 채’ 낚으니, 바다로 새끼고기를 풀어 준다고 해도 ‘죽은 물고기’를 뿌리는 셈이기도 합니다.


  바다에서 하듯이 논밭에서도 ‘흙한테 돌려주는 짚’이 없이 싹 거두면, 이 땅은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 앞날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흙에서 거두기만 하고, 흙을 살찌우지 않을 적에, 이 지구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은 앞으로도 사람을 먹여살릴 곡식이나 열매를 내어줄까요? 화학비료와 농약은 앞으로 언제까지 공장에서 뽑아내어 땅에다 뿌릴 수 있을까요?


  범도 이리도 여우도 늑대도 멧골과 들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기껏해야 멧돼지와 노루와 고라니와 너구리와 멧토끼 몇 마리가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작 몇 마리 살아남은 숲짐승이 푸성귀나 남새를 조금 갉아먹는 몸짓에도 소름이 돋는다고 합니다. 숲짐승이 살 터를 죄다 빼앗아서 숲짐승이 숲에서 먹을 것이 없는데, 이러한 얼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먹이가 없으니 마을로 내려와서 밭을 들쑤십니다. 먹이가 있으면 숲짐승이 왜 마을에 내려올까요? 먹이가 없고 보금자리가 자꾸 파헤쳐지거나 무너지니까 밭자락으로 자꾸 다가오려고 하는 숲짐승입니다.



.. 아벨은 답답했다. 도회지에서는 사람들이 포도송이처럼 한데 몰려 있었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아벨은 결코 혼자가 아닌 것같이 보였다. 사람들 틈에 휩쓸려 학교로 갔고 그들 틈에 뒤섞여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 곳에서든 쾅쾅 문을 여닫는 소리, 탁탁 신발을 걷어차는 소리,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밤에 잠자리에 들 때조차도 숙소는 기침 소리, 고함 소리, 배숙돤을 타고 물 흐르는 소리로 가득 차는 것이었다. 아벨은 사방팔방으로 포위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54쪽)



  팀 윈튼 님이 쓴 《블루 백》(눌와,2000)을 읽습니다. 바다라고 하는 ‘숲’을 사랑하면서 삶을 곱게 가꾸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리고, 바다라고 하는 숲을 숲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바다를 오직 ‘돈’으로 마주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습니다.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될까요? 돈을 밝히려고 하면서 삶을 망가뜨리거나 사랑을 무너뜨리거나 사람을 괴롭혀도 될까요?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못 가르치기 일쑤입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직업훈련을 시키거나 대학입시 공부만 시킵니다. 삶을 보여주는 학교란 없고, 사랑을 담은 교과서란 없으며, 사람됨을 몸소 보여주는 교사조차 매우 드뭅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연봉을 많이 받는 도시내기로 살면 될는지요. 돈만 바라보는 어른으로 자라면 될는지요. 사랑을 모르는 채 오직 돈벌이에만 눈을 밝혀도 될는지요.


  군대가 전쟁무기를 앞세워도 전쟁이지만, 사람들이 꿈과 사랑을 잊거나 잃은 채 돈바라기로 흐르는 모습도 전쟁입니다. 서로 아끼지 않을 때에도 전쟁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을 적에도 전쟁입니다.



.. 그해 여름 아벨은 자연에는 탐욕스러운 인간만큼 잔인하고 야만적인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  (93쪽)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거칠지 않습니다. 그저 들넋이요 숲넋입니다.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먹이를 찾을 뿐, 골목동네를 허물거나 군사기지를 세우지 않습니다.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짝짓기를 할 뿐, 전쟁무기나 핵발전소나 송전탑 따위로 마을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목숨은 오직 ‘돈바라기 사람’입니다. 돈에 얽매인 사람이 끔찍한 짓을 일삼습니다. 돈에 끄달리는 종이 된 사람이 이웃을 괴롭힙니다.


  돈을 버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돈도 아름답게 벌어서 사랑스레 쓸 수 있습니다. 돈을 벌되 아름다운 꿈을 건사하면서, 착하고 참다운 손길로 즐겁게 쓰면 됩니다.


  그러니까, 삶을 이루는 바탕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을 때에는 돈을 벌든 밥을 짓든 옷을 깁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안 아름답습니다.



..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놓든 어머니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완강하고 또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지치게 하고 어머니의 시간을 허비하며 어머니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사람들은 그 땅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롱보트 만이 아벨의 어머니에게는 한 생애이자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땅이 어머니에게 남편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  (100쪽)



  관광지는 누구한테 쓸모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골프장은 누구한테 뜻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보금자리가 있고, 일터가 있으며, 이웃과 어우러지는 마을이 아름답다면, 굳이 관광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이라면, 따로 놀이기구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노래하고 웃으면서 일하는 어른한테는 골프장이 부질없습니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이 있어야 야구나 축구를 하지 않습니다. 너른 들이 모두 야구장이면서 축구장이요 테니스장에다가 농구장입니다. 시멘트와 쇠붙이로 뚝딱뚝딱 올려야 경기장이 되지 않습니다. 들이 놀이터요, 숲이 삶터입니다.



.. “어머니는 예나 다름없이 바다를 이해하는 분이시오. 어머니는 그 어디로도 간 적이 없소. 어머니는 채소를 키우고 물고기를 드시고, 그러면서 한 장소를 구한 거요. 나는 명색이 과학자, 제딴은 명사지만, 결코 어느 한 곳도 구하지 못했소. 어머니는 한 자리에 머무르면서 다만 지켜보고 들으면서 터득한 것이오. 모든 것을 느낌으로써 말이오.” ..  (130쪽)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줄 곳은 보금자리입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삶터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나중에 재개발이 될 부동산이나 재산을 물려주지 말고,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오백 해나 즈믄 해에 걸쳐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름다운 숲을 아이한테 물려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회의식을 물려받지 말고, 사랑과 꿈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희망도 절망도 아닌, 숲바람과 같은 꿈을 물려받아야지요. 전쟁도 전쟁무기도 아닌, 튼튼한 손발과 씩씩한 마음을 물려받아야지요.


  아이는 어른한테서 씨앗을 받아야 합니다. 볍씨와 콩씨와 풀씨와 나무씨를 받아야 합니다. 손수 심어서 손수 가꿀 수 있는 알차며 고운 씨앗을 받아야 합니다. 인문 지식이나 철학이 아닌, 삶을 짓는 슬기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는 누구나 철이 들어야 합니다. 철이 들어 삶을 슬기롭게 바라볼 줄 아는 눈길을 길러야 합니다. 어른은 먼저 철이 든 사람으로 우뚝 서서 아이들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라면 이슬떨이가 되어야 하고, 언제나 아이 곁을 지키는 길잡이인 한편 반갑고 살가운 길동무가 되어야 합니다.



.. 아벨과 어머니는 그들 나름대로 고기를 잡고 과일과 야채를 가꿨다. 오리와 닭을 쳐서 고기와 알을 마련했고, 염소 한두 마리를 키우면서 그 젖으로 우유를 대신했다. 롱보트 만으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빗물 말고는 물이라고는 없었으며,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들처럼 사는 것은 때때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벨은 그와 다른 방식의 삶을 전혀 몰랐다. 아벨은 날마다 국립공원 숲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바다에서 헤엄쳤다. 가끔 외롭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  (26∼27쪽)



  즐겁게 노래하는 삶일 때에 사람이 됩니다. 기쁘게 웃는 하루일 때에 사람으로 섭니다. 노래와 웃음이 없으면 사람다운 빛을 잃습니다. 즐거움과 기쁨을 모르면 사람다운 숨결이 사그라듭니다.


  우리한테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습니다. 삶을 손수 짓는 길이 첫째입니다. 돈을 거머쥐면서 전쟁으로 가는 길이 둘째입니다. 어느 길로 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 길로든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걷는 길입니다. 삶을 손수 짓는 사랑스러운 길로 가겠다면 이 길을 씩씩하게 갈 수 있습니다. 돈을 더 거머쥐어 돈으로 물질문명을 누리겠다면 이 길로 가도 됩니다. 좋고 나쁨이란 따로 없습니다. 삶이냐 돈이냐, 이 두 가지로 나뉠 뿐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적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수수하지요. 있는 그대로 곱습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적에는 꾸밉니다. 그럴듯하게 꾸미지요. 있는 그대로 얼마나 고운지 모르는 탓에 얼굴을 덕지덕지 문지르고 이것저것 붙이거나 치레합니다.


  숲은 꾸미지 않습니다. 풀과 꽃은 꾸미는 일이 없습니다.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는 이녁 몸을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언제나 모두 그대로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어디에 있을는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찾고 마주하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가슴속에 파란 별씨를 품고 푸른 바람을 마시면서 하얀 넋이 될 적에, 비로소 까만 밤하늘에 고운 무지개를 드리우는 착한 사람이 됩니다. 4337.12.7.불/4348.2.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숲책/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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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재발견
조지프 코캐너 지음, 구자옥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62



연필을 손에 쥐고 숲을 읽다

― 잡초의 재발견

 조지프 코캐너 글

 구자옥 옮김

 우물이있는집 펴냄, 2013.4.10.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쥡니다. 연필을 손에 쥐면, 나뭇결을 느낄 수 있고, 돌내음을 맡을 수 있습니다. 연필은 나무와 돌로 빚기 때문입니다. 연필이 되어 준 나무가 어떤 숨결인지 읽는 한편, 나무 사이에 깃들어 길다랗게 잠든 돌이 어떤 넋인지 읽습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놀리면 어느새 글이 태어납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움직이면 어느새 그림이 나타납니다. 나무와 돌은 연필을 빌어 제 숨결과 넋을 들려줍니다. 나무와 돌은 연필을 거쳐 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연필을 쥔 사람은 누구나 ‘작가’이자 ‘화가’입니다. 작가이기에 글을 쓰지 않고, 화가이기에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연필을 손에 쥐기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겠니? 저 뒤쪽의 잡초가 무성한 곳의 옥수수하고 여기 옥수수가 딴판이지. 같은 흙인데 말이야. 무언가가 저 옥수수에 영향을 주었다는 얘기지. 나는 그게 쇠비름인 것 같구나. 다른 조건은 똑같은데 쇠비름이 가장 잘 자라는 곳에서 가장 좋은 옥수수가 열렸어.” … 모든 경우에 잡초는 농작물에게 골칫덩이라기보다는 보호식물로서의 역할을 한다 … “눈보라 치는 날 사슴을 잡으려면 얼마쯤은 떨어져 있는 잡초밭으로 몰아야 해. 잡초밭은 가장 추운 날에도 따뜻하거든. 사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어떠한 화학물질도 토양에서는 자연의 건설적인 섭리를 방해하여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  (16, 24, 29, 84쪽)



  연필을 손에 쥐고 숲을 읽습니다. 연필을 손에 쥐기에 숲을 읽습니다. 연필을 손에 쥐면서 살며시 눈을 감으니 숲을 읽습니다. 연필에 깃든 숲내음은 맑고, 연필에 서린 숲내음은 곱습니다.

  어쩜 이리 맑고 고울까요. 어쩜 이다지도 착하며 참다울까요.


  아이와 함께 연필을 손에 쥡니다. 아이는 연필을 손에 쥐면서 온누리를 손에 쥡니다. 어버이는 아이 곁에서 연필을 손에 쥡니다. 어버이는 연필을 손에 쥐면서 온누리를 지은 손길을 느낍니다.


  연필을 쥐기에 가슴이 뜁니다. 연필을 쥐기에 가슴이 벅찹니다. 연필을 쥐기에 모든 것을 이룹니다. 연필을 쥐면서 빙그레 웃기에 노래가 태어나고, 삶이 춤추며, 사랑이 꽃으로 거듭납니다.



.. 잡초는 토양의 충실한 파수꾼이 된다. 농부가 잡초를 지혜롭게 이용할 때 결과적으로 잡초는 농부의 친구가 된다 … 미국의 식량생산 토지가 나빠진 주요 원인은 지연적인 토양개량 식물인 야생초를 제멋대로 파괴한 데 있다 … 거의 가려 보기가 힘든 작은 것부터 커다란 곤충과 벌레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크기의 토양생물들이 흙속에 살아 있는 것 같았다 … 골짜기의 흙을 두 손에 집었을 때, 나는 흙 자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 수확을 한 후 농부들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잡초들, 즉 돼지풀·고들빼기·엉겅퀴·해바라기·까마중 등은 뿌리 작업을 다음 번 농작물을 위한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에 존재하는 토양 건설자들이 토양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견고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  (30, 38, 39, 55, 62쪽)



  저 너른 들판에서 자라는 모든 풀은 연필로 짓습니다. 저 드넓은 바다에서 사는 모든 목숨은 연필로 짓습니다. 저 가없는 하늘을 가르며 나는 모든 새는 연필로 짓습니다.


  아니, 어떻게 연필로 지을까요? 연필이란, 꿈꾸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연필이란,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연필이란, 씨앗을 심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연필과 숨결이 비슷한 호미를 손에 쥡니다. 호미를 손에 쥐고 땅을 갈아 밭을 가꿉니다. 밭을 가꾸는 내 손길은 투박합니다. 투박한 손길로 호미를 손에 쥐어 밭에 이야기를 짓습니다. 무를 짓고 배추를 지으면서 이야기가 한 타래 두 타래 자랍니다. 오이를 짓고 토마토를 지으면서 이야기가 석 타래 넉 타래 자랍니다.


  때로는 연필과 숨결이 비슷한 도마를 손에 쥡니다. 도마를 부엌 한쪽에 정갈하게 놓고 부엌칼도 손에 쥡낟. 아아, 나는 밥을 짓습니다. 통통통 도마질 소리가 부엌에서 태어나면,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지요. 이야아, 맛난 밥이 태어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군침을 흘립니다. 아이들은 더욱 신나게 뛰놀면서 밥내음을 기다립니다.



.. 그 지점을 조사하던 나는 우물 파는 짓을 중지시켰다. 그때 그 발견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친구들은 금이라도 찾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내가 발견한 것은 그 깊은 곳까지 내려 뻗은 잡초의 뿌리였다. 나의 과학지식은 보잘것없었지만, 친구들에게 그 잡초 뿌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땅이 경작된 뒤를 따라서 그곳에 뿌리를 내린 잡초로 인하여 땅속에는 새로운 경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 잡초들이 그토록 깊이 뿌리를 내리려고 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스스로의 삶터인 망가진 표토를 재생시키기 위해서였다 … 농작물이 자라는 밭이나 생산성 향상이 절실한 농장에서는 우선적으로 잡초를 잘 자라게 하는 방법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  (40, 42, 63쪽)



  조지프 코캐너 님이 쓴 《잡초의 재발견》(우물이있는집,2013)을 읽습니다. 조지프 코캐너 님은 시골사람으로 태어났고, 대학교에서 풀을 살피는 학자로 삽니다. 조지프 코캐너 님은 시골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면서 풀을 동무로 삼았고, 풀과 동무가 되어 놀았기에, 오랫동안 풀을 아끼고 섬기면서 함께 삽니다.


  《잡초의 재발견》은 어떤 책일까요? 풀을 사랑하는 넋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풀을 먹고 사는 우리가 어떤 숨결이 되는가를 밝히는 책입니다. 풀 한 포기에 어떤 숨결이 깃드는지 들려주고, 풀에 깃든 숨결을 먹는 사람은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 하층에서 표층으로 퍼 올리는 풍부한 영양물질들이 토양을 강하게 할 뿐 아니라 토양을 개선시켜 경종작물의 양분 흡수지층까지도 확장시키는 야생식물의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잡초 뿌리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수분 약탈자가 아니라는 걸 농부들이나 정원사들에게 인식시키기는 쉬운 노릇이 아니다 … 잡초밭에서 자라는 농작물은 잡초가 희박하거나 전혀 없는 땅에서 자란 농작물보다 훨씬 수분 부족을 덜 겪을 것이다 … 한 종의 식물이 어느 지역을 독차지하는 곳에서는 그 식물 역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 여러 나무가 혼재하는 숲은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반면에 다른 숲들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여러 나무가 혼재하는 숲은 구조적으로 함께 더불어 작용할 수 있었던 다양한 뿌리 체계 때문에 생존이 가능했을 것이다 ..  (74, 78, 80, 81쪽)



  그나저나, 《잡초의 재발견》이라는 책은, 책이름이 왜 ‘잡초의 재발견’일까요? 이 책은 ‘잡초’가 아닌 ‘풀’을 다룹니다. 그리고, 풀을 ‘재발견’하지 않고, ‘언제나 풀을 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니, ‘풀을 보다’를 외친 책이 《잡초의 재발견》입니다. 글쓴이 조지프 코캐너 님은 ‘잡초’를 말하지 않고 ‘풀’을 말해요. 풀을 바라보면서 ‘풀바라기’가 되고, 풀바라기를 하면서 삶을 푸르게 가꾸도록 이끄는 숨결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풀 한 포기에서 태어난 바람이 불어, 이 바람은 온누리를 푸르게 적습니다. 풀 한 포기에서 깨어난 씨앗이 바람을 타고, 이 씨앗은 온누리를 푸르게 돌봅니다.


  풀내음이 맑습니다. 풀빛이 밝습니다. 풀을 이야기하고, 풀을 사랑하며, 풀을 노래하는 책은 더없이 따사롭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풀씨 하나에서 태어난 몸이니까요. 우리 마음은 가없는 사랑에서 태어났고, 우리 몸은 끝없으면서 아주 작은 풀씨 한 톨에서 태어났습니다.



.. 그는 모든 야생 식물을 진심으로 존중했다. 왜냐하면 야생 생물은 모두 유익하고 인디언의 생활과 행복을 위하여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 “인디언은 잡초들을 먹기 때문에 밭에서 잡초들이 자라도록 그냥 둡니다.” … “인디언들은 옥수수 호박을 먹는 것처럼, 싱싱한 야생초들을 많이 먹습니다.” … 멕시코 인디언은 농작물과 함께 잡초를 기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잡초들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양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게 했던 것이었다 … 잡초가 없다면 많은 영양물질은 토양계로부터 씻겨 내려가거나 떨어져나가서 어찌 됐든 없어질 것이다 … 내가 어릴 때 아주 존경할 만한 남자가 이웃에 이사 왔던 적이 있다. 그는 아주 황폐한 농장을 사서 야생동물의 안식처로 바꿈으로써 농장을 개선시켰던 사람이다 ..  (92, 93, 94, 96, 101, 172쪽)



  연필을 손에 쥐고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을 손에 쥐기에 글을 씁니다. 연필을 쥔 사람은 마음이 착합니다. 연필을 손에 잡은 사람은 마음이 넓습니다.


  무엇이든 짓기에 마음이 넉넉하지요. 무엇이든 이루기에 마음이 너그럽지요. 무엇이든 다 하면서 다 되기에 마음이 널따랗지요.



.. 잡초를 심어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잡초는 대체로 필요한 곳에서 스스로 자라고, 그것은 잡초가 건설적인 역할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현대의 파괴적인 경작관행으로부터 잡초가 토양을 보호하고 유지시키는 것과 같이, 작은 키 목초식물이 자랐던 평원에서 잡초들은 모래 강풍을 극복하면서 토양을 보호하고 있다 … 자연은 지구의 녹색 융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잡초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던 것이다 … 채소 재배 농부라면 가로수에서 떨어진 잎들을 모아 태우면 안 된다. 낙엽은 퇴비 원료로 가장 좋은 것이다 … 새들이 업다면 살충제나 벌레 퇴치제를 써도 곤충들이 창궐하여 지구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  (121, 130, 133, 146, 169쪽)



  자, 여기에 풀이 한 포기 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셔요. 바람이 풀잎을 어떻게 간질이는지 가만히 지켜보셔요. 바람이 풀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가만히 지켜보셔요. 바람이 풀을 어떻게 깨우는지 살뜰히 지켜보셔요. 풀은 바람과 함께 삽니다. 풀은 바람을 마시면서 바람이 되고, 풀은 바람과 벗이 되면서 바람을 부릅니다.


  자, 여기에 풀씨가 한 톨 있습니다. 예쁘게 지켜보셔요. 바람이 풀씨를 어떻게 땅에 떨구어 뿌리가 내리도록 돕는지 예쁘게 지켜보셔요. 나 스스로 풀씨가 되어 바람을 느껴 보셔요. 내가 바로 풀씨가 되어 이 땅에 뿌리를 내려 보셔요. 내가 언제나 풀씨로 살면서 온누리에 푸른 숨결을 뿌려 보셔요.


  바람은 내 동무가 되어 함께 삽니다. 바람은 내 이웃이 되어 함께 웃습니다. 바람은 내 님이 되어 함께 노래합니다.



.. 청년 시절 인디언 지방에 있었을 때, 인디언들은 백인보다 훨씬 오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잡초들이 장수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 어미새들이 어디서 그런 벌레들을 충당했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지만, 두 마리 굴뚝새가 그 여름 정원에서 질 좋은 양배추가 자랄 수 있도록 벌레를 잡아 도와준 점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 세상을 사랑하려면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소년소녀은 들판과 산림 그리고 잡초덤불에 나가서 야생생물의 생활에 대해 배워야 한다 … 경사지에 도달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적은 양의 물만이 잡초덤불을 통하여 시내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잡초들은 이미 빗물을 저장하기에 충분한 스펀지 구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  (162, 180, 192쪽)



  조지프 코캐너 님은 “자연은 풍부한 지식을 담고 있는 한 권의 완전한 책이었다(41쪽).” 하고 말합니다. 네, 숲은 너그러운 책입니다. 숲은 넉넉한 책입니다. 숲은 넓은 책입니다.


  숲이라는 책에는 온갖 이야기가 깃듭니다. 숲이라는 책에는 모든 노래가 살아서 숨쉽니다. 숲이라는 책에는 우리가 사랑하고 꿈꾸는 하루가 고스란히 깃듭니다.


  숲을 읽는 사람이 삶을 읽습니다. 숲을 읽어서 삶을 짓는 길을 헤아리는 사람이 삶을 노래합니다. 숲을 읽어서 삶을 사랑하는 하루를 꿈꾸는 사람이 삶에 웃음꽃을 피웁니다.



.. 옛날에 비옥했던 많은 농지들은 너무 황폐해져서 잡초조차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 농업생산의 기계화는 좋은 일이지만, 자연과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기계라면 곤란을 겪을 것이다 … 동물계가 병들게 되는 것은 토양계의 상생 법칙이 깨지기 때문이다 … 잡초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나와 같이 그 버려진 들판을 걸어 본다면 야비한 잡초에게라도 약간의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212, 220, 221, 225쪽)



  《잡초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덮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책을 덮습니다. 책을 덮고 ‘번역’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야비한 잡초’ 같은 말마디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풀은 그저 풀인데, 풀한테 무엇이 ‘야비’할까요?


  찬찬히 헤아리면, 아무래도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시골에서 손수 흙을 가꾸면서 숲을 이루는 삶을 누리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시골에 살아도 풀과 이웃이 되지 못한 채 번역을 했고, 도시에 살아도 풀을 동무로 삼아 언제나 함께 노래하는 삶이 못 된 채 번역을 했구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번역이 ‘옥구슬에 묻은 티’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책을 장만해서 읽을 많은 사람들도 풀을 모르고 숲을 모를 테니까요. 풀과 숲을 모르는 채 책만 읽을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숲을 읽으면 ‘종이책’은 안 읽어도 됩니다. 숲을 읽을 줄 아는 눈이라면 ‘종이책’뿐 아니라 ‘전자책’도 딱히 안 읽어도 됩니다. 숲을 읽기에 ‘종이책’이 어떠한 숨결인지 환하게 읽습니다. 《잡초의 재발견》을 한국말로 옮긴 멋진 분을 비롯해서, 이 책을 즐겁게 장만해서 읽을 모든 분들이 두 발로 땅을 씩씩하게 밟기를 빕니다. 우리 모두 두 손으로 땅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8.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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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아파요 - 우리가 모르는 31가지 신음하는 바다 이야기 두레아이들 교양서 8
얀 리고 지음, 이충호 옮김 / 두레아이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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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9



바다를 살리는 길을 생각한다

― 바다가 아파요

 얀 리고 글

 비오스포토 사진

 이충호 옮김

 두레아이들 펴냄, 2015.1.15.



  손수 지어서 먹는 사람은 지나치게 먹는 일이 없습니다. 손수 짓지 않는 사람 가운데 알맞게 먹는 사람이 퍽 많지만, 손수 짓지 않을 적에는 으레 지나치게 먹는 일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손수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수 지어서 먹지 않는 사람은, 알맞게 차려서 먹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바깥에서 돈을 내고 사다가 먹는 밥은 내 몸에 알맞게 먹기가 어렵습니다. 집에서 손수 지어서 밥을 차릴 적에는 내가 먹을 만큼 거두어서 내가 먹을 만큼 차리지만, 밥집에서는 ‘1인분 얼마’ 하는 투로 모두 똑같이 차리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밥쓰레기(음식물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까닭은, 그만큼 식당과 급식실이 많기 때문입니다. 손수 거두어서 밥을 짓는 삶이 아니라, 돈을 치러서 남이 차린 밥을 사다가 먹는 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밥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 밥쓰레기는 흙을 살리는 거름이 될까요. 아니면 그저 쓰레기가 되어 이 땅을 더럽히거나 어지럽힐까요.




.. 바다는 아주 너그러워요. 우리는 바다에서 식량과 에너지, 원자재뿐만 아니라 즐거움까지 얻어요. 해마다 바다에서 직접 잡는 해산물은 9500만 톤이나 되고, 양식을 통해 얻는 해산물도 4500만 톤이나 됩니다 … 개발 방법 자체가 자원과 생태계를 망치거나 파괴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가정과 공장, 도시 지역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폐기물도 바다를 크게 오염시키고 있어요 ..  (13, 14쪽)



  풀잎이 시들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풀잎이 아무리 우거졌다 하더라도 겨울을 지나면서 이 풀잎은 모조리 사라집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가랑잎이 아무리 많이 떨어져도 이 많은 가랑잎은 이듬해에 모두 사라집니다. 참말 몽땅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흙에서 얻은 기운으로 살다가 흙한테 모두 돌려주는 풀과 나무입니다. 풀벌레도 숲짐승도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지구별에서 아주 많은 풀벌레와 숲짐승이 나고 자라며 죽었어도 풀벌레 주검이나 숲짐승 주검 때문에 고약한 냄새가 난다든지 땅이 비좁다든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풀벌레와 숲짐승은 기쁘게 태어나서 기쁘게 살다가 기쁘게 돌아가면서 지구별이 아름답도록 이끕니다.


  사람은 지구별에서 무엇을 하는지 돌아봅니다. 사람은 지구별에서 기쁘게 태어나는가요? 사람은 지구별에서 기쁘게 사는가요? 사람은 지구별에서 기쁘게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가서, 이 지구별을 다시 기쁘게 북돋울까요?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오롯이 기쁨일 텐데, 이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지 못한 채 학원에 갇히고 학교에 얽매입니다. 기쁨으로 자라야 할 아이들이지만, 대학입시와 학원수업과 과외 따위로 몸과 마음이 메마릅니다. 씨앗을 심을 줄 모르고, 씨앗을 심을 땅도 없습니다. 손전화와 컴퓨터와 게임과 인터넷 따위는 있지만, 땅 한 뼘조차 없고 ‘내 나무’마저 없어요.




.. 동물 플랑크톤은 식물 플랑크톤이 만든 영양 물질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동물 플랑크톤은 다시 물고기와 고래의 먹이가 됩니다. 생태계의 균형을 깨는 일이 일어나 이런 연결 고리 중 어느 하나에라도 영향을 미치면, 이 짧은 먹이사슬은 금방 끊어질 수 있어요 … 강물에는 영양 물질이 많이 실려 오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식물이 아주 많이 그리고 빨리 자랍니다. 울창하게 자란 식물은 새들에게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데, 특히 지나가다 잠시 들른 철새에게도 매우 소중한 보금자리를 제공하죠 ..  (21, 35쪽)



  얀 리고 님이 글을 쓰고, 비오스포토 사진으로 엮은 《바다가 아파요》(두레아이들,2015)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바다가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어린이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내어 바다살이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어른도 ‘환경책’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더러 읽습니다. 어른도 탄소배출이라든지 이산화탄소라든지 온난화라든지 해수면상승이라든지 이것저것 지식을 머리에 담습니다. 어른이라면 그린이니 녹색이니 초록이니 하는 말을 어느 만큼 압니다. 다만, 이러한 여러 가지를 지식으로 머리에 담기는 하지만, 막상 몸으로는 잘 안 움직입니다.




.. 맹그로브 숲이 무성하게 자란 곳은 해안 침식을 막아 주고 폭풍 피해도 줄여 줍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해안 지역을 개발하면서 맹그로브 숲이 신음하고 있어요. 무분별하게 세워지는 주택과 관광지, 그리고 염전, 양식, 오염이 그 주범이에요 …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야생 동물은 열대 관상어예요. 프랑스만 해도 개인 수족관에 들어 있는 바닷물고기는 약 100만 마리나 된다고 해요 ..  (40, 55쪽)



  한국말에 ‘쓰레기’가 있기는 하지만, 막상 한국 사회에는 쓰레기가 없었습니다. 쓰레기라는 것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아마 한국 사회에 쓰레기가 생긴 때를 돌아보자면, 새마을운동이 불거진 무렵이지 싶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쓰레기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비닐봉지를 함부로 쓰는 사람이 없었고, 플라스틱 쪼가리를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국 사회에 휘몰아치면서 끔찍한 바람이 불기 앞서까지, 사람들은 ‘재활용’이라는 말을 몰랐어도 스스로 아끼고 가꾸면서 살리는 하루를 누렸습니다. 종이 한 장을 알뜰히 건사했고, 밥을 손수 지었습니다.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간장이든 손수 담가서 먹었습니다. 손수 담근 된장을 항아리에 담아서 쓰면 플라스틱 통을 쓸 일이 없고, 쓰레기가 나와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절구를 찧어 겨를 벗기면, 쌀겨는 소한테 주든 흙한테 주든 닭우리에 깔든, 쓸 곳이 많습니다. 능금이나 배를 오래 건사하려고 나무로 짠 궤짝에 겨를 담아서 능금알이나 배알을 묻기도 합니다. 벼알을 훑고 남은 볏짚은 새끼를 꼬거나 신을 삼습니다. 짚신을 신으며 살다가 신이 낡으면 두엄자리에 두면 됩니다. 그냥 밭고랑에 두어도 돼요. 예부터 한겨레 옷은 흙에서 자란 모시와 삼한테서 얻은 섬유질을 고르고 다듬어서 물레를 자아 실을 얻어서 베틀을 밟고 천을 짠 뒤에 바느질로 기웠으니, 옷을 오래 입어 아주 낡아서 못 쓸 만하면 걸레로 삼다가, 걸레로도 못 쓸 만하면 두엄자리에 두었지요. 흙에서 온 옷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 해마다 바다로 들어가는 기름이 약 600만 톤이나 되기 때문에, 기름 오염은 가장 중요한 해양 오염이에요 … 고의로 기름을 바다에 버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실제로 유조선의 기름 탱크를 청소하는 비용을 아끼려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바닷물로 기름 탱크를 씻는 일도 종종 있어요. 또 어떤 배는 엔진에서 나온 기름 찌꺼기를 바다에 그냥 버리기도 하죠 ..  (87, 88쪽)



  쓰레기가 없던 한국 사회에 새마을운동과 함께 쓰레기가 태어납니다. 짚으로 얹은 지붕이 슬레트지붕(석면지붕)으로 바뀌면서, 슬레트(석면)는 끔찍한 쓰레기가 됩니다. 흙바닥이던 고샅길은 천 해 만 해 고이 잇던 길이지만, 이 길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깔면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나면 파이고 까져서 다시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깔아야 하는데, 예전 부스러기는 모두 쓰레기입니다. 하수도를 고치느니 전깃줄을 파묻느니 이것저것 하면서 도시에서는 길바닥을 으레 까부숩니다. 아파트가 낡아서 새로 짓는다면서 어마어마한 시멘트 쓰레기가 나옵니다. 이 엄청난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오늘날에도 이 엄청난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 핵발전소를 돌리면서 나오는 핵쓰레기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야기책 《바다가 아파요》는 바다가 아픈 모습을 여러 갈래로 살피면서 알려줍니다. 지구사람 스스로 망가뜨리는 바다가 어떻게 아픈지 낱낱이 보여줍니다.


  아픈 바다는 누가 아프게 했을까요. 미국이 아프게 했을까요, 프랑스가 아프게 했을까요. 일본이 아프게 했을까요, 중국이 아프게 했을까요. 한국에서는 이 나라 바다를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요.


  도시에서는 공장 폐수와 매연뿐 아니라 자동차 배기가스로 땅과 물을 모두 망가뜨립니다.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로 땅과 물을 모두 무너뜨립니다. 현대 사회는 관광지와 골프장과 경기장을 뽐내면서 땅과 물을 모두 뒤흔듭니다. 멋진 영화를 찍고, 영어마을을 만들며, 이런 고속도로와 저런 기찻길을 닦는데다가, 호텔이나 공항이나 공장을 더 늘려야 하니 땅과 물을 모두 갈아엎습니다.



.. 전 세계의 어부들 중 98%는 전통적 방식의 어업을 하고 있어요. 이들은 적은 양의 물고기만 잡아 가족과 먹고, 남은 것을 현지 시장에 내다 팔아요. 이것은 지속 가능한 어업이죠 … 바다 양식에서는 주로 포식 물고기를 길러요. 그래서 다른 야생 물고기를 많이 잡아 먹이로 공급해야 하는데, 이것은 남획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요. 게다가 양식장에서 새어 나온 배설물과 병균, 화학물질, 항생제 등이 주변 바다로 흘러들죠..  (109, 130쪽)



  바다를 살리는 길은 쉽습니다. 땅을 살리면 바다가 함께 삽니다. 땅을 살리는 길은 쉽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내 삶을 살리면 땅이 함께 삽니다. 우리가 저마다 내 삶을 살리는 길은 쉽습니다. 하루를 손수 짓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일과 놀이를 누리면 됩니다.


  삶을 손수 짓기 않기에 돈에 기대고, 돈에 기대면서 쓰레기가 불거지며, 쓰레기가 불거지니 땅과 물을 모두 어지럽힙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하는 도시 문명 사회가 되기에, 뭍에서는 숲을 망가뜨리고 들을 어지럽힙니다. 비가 내리고 냇물이 흐를 적에 숲에서 기름진 흙과 모래가 조금씩 바다로 흘러들면서 바다가 새롭게 숨을 쉬면서 아름다울 수 있는데, 뭍은 뭍대로 망가지고 바다는 바다대로 온갖 새로운 쓰레기와 기름덩어리 때문에 망가집니다.


  농약 한 방울은 뭍을 거쳐 냇물을 타고 바다로 스며듭니다. 전쟁무기와 군부대는 이 땅에서 평화를 밀어낼 뿐 아니라 조용하고 아름다운 들과 숲을 망가뜨려서 바다고 망가뜨립니다. 사람들이 따순 사랑으로 땅을 아낄 적에 이 손길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바다가 살아납니다. 사람들이 넉넉한 사랑으로 땅을 가꿀 적에 이 손길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바다가 깨끗합니다. 바다가 아파서 앓는 소리뿐 아니라 땅이 아파서 앓는 소리를 너와 내가 함께 들을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4348.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숲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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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1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어렸을 때 생각하니 그러하네요.
요즘 쓰레기 버리려고 보면 정말 많이 나와요.

숲노래 2015-01-10 21:13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가
우리한테 `쓰레기를 사들이고 자꾸 버리도록` 길들이는 얼거리가 되어서
꼼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매는구나 하고 느껴요.
이 사슬에서 풀려나기란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이 사슬을 풀어내야지요...
 
암탉, 엄마가 되다 - 개성 강한 닭들의 좌충우돌 생태 다큐멘터리
김혜형 지음, 김소희 그림 / 낮은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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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63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 암탉 엄마가 되다

 김혜형 글·사진

 김소희 그림

 낮은산 펴냄, 2012.4.26.



  우리는 모두 어머니입니다.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는 어머니도 있고, 이웃과 동무를 아끼고 포근하게 감싸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낳는 어머니와 함께, 기르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낳는 사랑과 함께, 기르는 사랑이 있어요.


  우리는 모두 아버지입니다. 몸에 씨앗을 품고 삶을 짓는 아버지도 있고, 이웃과 동무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씩한 아버지도 있습니다. 낳는 아버지와 함께, 기르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돌보는 사랑과 함께, 새로 짓는 사랑이 있어요.



.. 세상의 수많은 닭들이 흙을 밟으며 살고 있지는 못해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비좁은 철망 안에 빽빽하게 갇혀서 갖가지 약품으로 범벅이 된 사료를 먹고 … 닭들도 사람처럼 성격이 제각각이라는 걸 닭을 키우면서 알았어요. 닭을 오로지 달걀 낳는 기계, 또는 닭고기로만 바라보는 시선으로는 절대 알아볼 수 없겠지만요 ..  (32, 37쪽)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신나게 뛰놉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고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삶을 누리려고 자랍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려고 뛰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 삶을 새롭게 짓고 싶은 길을 가면서 신나게 뛰놉니다.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는 지식을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철이 들어야 합니다. 아이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사랑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꿈을 키워야 합니다.


  아이가 손에 쥐는 것은 모두 책입니다. 돌멩이도 책이고 흙과 모래도 책입니다. 들꽃 한 송이도 책이요 나무 한 그루도 책입니다. 개미 한 마리와 모기 한 마리도 책입니다. 새 한 마리와 개구리 한 마리도 책입니다. 아이는 이 지구별에 깃든 모든 것을 손으로 만지면서 삶을 읽습니다. 아이는 이 지구별에 있는 모든 이웃과 사귀면서 사랑을 읽습니다. 아이는 이 지구별을 푸르게 가꾸는 숲을 바라보면서 꿈을 읽습니다.



.. 생명의 탄생은 정말 경이로워요. 용케 꽃순이 품에 들어간 알들은 이렇게 귀여운 병아리가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알들은 그냥 ‘달걀’일 뿐이잖아요 … 어린 병아리는 스스로 체온을 유지할 능력이 없대요. 그래서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엄마의 체온을 충분히 나눠 줘야 해요 ..  (53, 70쪽)



  김혜형 님이 빚은 《암탉 엄마가 되다》(낮은산,2012)를 읽습니다. 김혜형 님은 즐겁게 시골살이를 하면서 재미나게 닭을 돌봅니다. 가게에서 돈을 치러 사다가 먹는 닭고기가 아니라, 알을 낳고 알을 품으며 알에서 깨어나는 닭을 곁에 두고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보살피기도 하면서 하루를 짓습니다. 닭과 함께 누리는 시골살이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엮습니다.



.. 어린 병아리를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무거운 고깃덩이로 바꿔 놓는 그 이상한 약들은 정말 사람 몸에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요 … 육계라고 불리던 꽁지. 닭전에서 고기용으로 팔리는 흔하디흔한 닭. 유전자조작으로 태어난 탓에 제 몸으로 알을 품을 줄조차 모르는 닭. 그 꽁지가 어쩌다 우리 닭장에 와서 짝짓기도 하고 달걀도 낳고 평화로운 한때를 누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엄마’까지 되었습니다 ..  (99, 157쪽)



  사마귀를 지켜보는 아이는 사마귀 한 마리한테서 온누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별을 바라보는 아이는 별빛 한 줄기에서 온누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달개비 한 송이를 쓰다듬는 아이는 달개비 한 송이한테서 온누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아이와 함께 무엇을 지켜보거나 바라보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학교라는 곳을 어떻게 세워서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 되짚을 노릇입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한 목숨이 다른 목숨을 아끼는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사랑으로 짓는 삶에서 태어나는 고운 숨결을 가르쳐야 합니다. 《암탉 엄마가 되다》를 쓴 김혜형 님이 시골에서 오래오래 기쁘며 어여쁜 삶을 일굴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어른과 아이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손수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가슴에 꿈을 품고 맑게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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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5-01-0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 정말 흥미롭게 읽은 책이에요!^^

숲노래 2015-01-08 23:17   좋아요 0 | URL
닭을 손수 돌보며 아끼는 모습을 잘 담는데,
시골에서 누리는 삶을 조금 더 수수하게, 조금 더 투박하게,
조금 더 시골스럽게 썼다면 한결 재미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손수 닭을 돌보고 키우면서
달걀과 고기를 얻는 삶을 그려서 보여주니 뜻있구나 하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