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 - 그림 그리는 농부
오치 다이스케 지음, 노인향 옮김 / 자연과생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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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5


흙 만지고 그림 그리며 개구리랑 동무하는
―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
 오치 다이스케/노인향 옮김
 자연과생태, 2018.4.23.


“매일 아스파라거스를 키우니 형도 이제 프로네.” 그 말에 기쁘면서도 쑥스러웠다. 칭찬을 받으면 괜히 쑥스러워진다. 게다가 아스파라거스는 내가 키우는 게 아니라 알아서 자라니까. (12쪽)


  요 며칠 집안에 쑥내음이 물씬 흐릅니다. 그런데 이 쑥내음은 들이나 밭에서 뜯은 쑥내음하고 달라요. 부침개나 버무리를 하는 쑥내음하고도 다릅니다. 바로 차로 끓여서 쑥내음입니다.

  고흥살림 여덟 해가 되는 올봄 우리 집 마당이나 뒤꼍에서 자라는 쑥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차를 으레 사다가 마셨습니다만, 우리 집에 흐드러지는 쑥을 뜯어서 말리고 덖어 ‘우리 집 쑥차’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큰아이하고 바지런히 쑥을 뜯었습니다. 여러 날 처마 밑 그늘에서 말렸어요. 이러고서 스텐웍으로 말린쑥을 덖었지요. 초시계를 앞에 놓고서 90초를 헤아리면서 아홉 벌 덖기를 했습니다.

  커다란 솥이 아닌 28센티미터 스텐웍으로 덖자니 오래 걸렸는데, 덖어서 뜨거운 쑥을 두 아이가 바지런히 뒤집어 주어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드디어 끝. 그리고 이 쑥차를 물을 끓여서 살짝 식힌 뒤 넣으니 온 집안에 새롭게 향긋한 냄새가 퍼집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요령도 없어 일하는 속도는 더뎠지만 친구와 함께했기에 즐거웠고 과정 하나하나에 내 생각을 담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16쪽)

농사를 시작했을 무렵, 서둘러 괭이질하던 나를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농사는 천천히 하는 거야.” (31쪽)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오치 다이스케/노인향 옮김, 자연과생태, 2018)를 읽으면서 우리 집 쑥차를 마십니다. 우리 집 쑥차 내음하고 맛을 누리고 보니, 사월비가 그치면 여린 쑥을 또 신나게 뜯어서 쑥차를 더 덖어야겠다고 느낍니다. 아스파라거스를 키우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본 젊은 흙지기처럼, 우리 살림살이도 흙하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면서 글노래를 길어올리면 더 재미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스파라거스를 가꾸면서 얼마나 자랐는가를 살피고, 알맞게 솎아서 내다 파는 흙지기 손은 늘 아스파라거스 냄새가 나겠지요. 흙내음하고 아스파라거스 냄새가 섞인 손으로 붓을 쥐어 그림을 그리면, 젊은 흙지기이자 그림지기가 붓을 놀려서 태어나는 그림에도 아스파라거스 냄새에 흙냄새가 밸 테고요.


자연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내게도 생기를 준다. 밥처럼 금방 내 배를 부르게 하지는 않지만 코로 들이마신 공기가 폐를 지나 온몸으로 돌 듯 서서히 나를 건강하게 한다. (32쪽)

노미쓰 씨는 자연과 하나되어 채소를 키운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물이 지척에 흐르는 밭에서 맑은 날이든 비 내리는 날이든 하늘과 흙을 느끼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일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다 풍요롭고 편안해졌다. (37쪽)


  젊은 흙지기는 흙을 만지기 앞서까지 흙일을 잘 몰랐다고 합니다. 어깨너머로 이녁 아버지를 바라보며 살던 무렵에는 어렴풋하게 헤아렸겠지요. 손수 흙을 만지고, 괭이를 쥐고, 푸성귀를 건사하면서, 비로소 일손을 깨닫고, 흙내음하고 풀내음을 몸으로 맞아들일 뿐 아니라, 풀살림을 새롭게 배웠으리라 느껴요. 이러면서 그림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까지 새로 북돋았지 싶습니다.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만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손하고, 풀을 함께 좋아하면서 아침에는 풀을 만지고 저녁에는 붓을 쥐는 손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지 싶어요. 비가 오는 날 비를 느끼고, 햇볕이 내리쬐는 날 햇볕을 느끼며, 바람이 부는 날 바람을 느끼는 손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그림으로 자라날 테고요.


할아버지가 되어도 이 에너지나 마음을 간직하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금처럼 두근두근하며 살고 싶다. (88쪽)

농사를 짓느라 그림 그리는 시간이 없어 괴롭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작품을 만들 때는 시간보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100쪽)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청와대에 텃밭이 있어 나랏일을 건사하다가 쉬는 틈에 호미를 쥐는 대통령이 있다면 하고요. 군청에 텃논이 있어 군청일을 다스리다가 쉬는 결에 삽을 들어 물길을 잡는 군수가 있다면 하고요.

  그리고 더 생각합니다. 새벽이나 아침으로는 흙을 만지고, 낮이나 저녁에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해가 진 밤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하루를 우리 모두 누릴 수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집집마다 텃밭을 돌볼 만큼 자그마한 마당이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요. 커다란 도시에 있는 커다란 건물에 깃든 회사도 주차장만 곁에 두지 말고 텃밭이나 꽃밭을 함께 곁에 두고서, 하루에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흙을 만지면서 숨을 돌려 보면 어떠할까 하고요.

  아주 작은 푸성귀 한 줌을 손수 기르면서 책상맡에 앉아 일을 할 때에는 누구나 마음이 달라질 만하지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하루에 삼십 분쯤 텃밭이나 꽃밭을 돌보는 틈을 누리면 배움길이 한결 새로울 만할 테고요.

  어쩌면 느긋한 마음을 흙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를 하늘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따뜻하며 고마운 햇볕 한 줌을 새삼스레 배울 수 있어요.


우거진 나무 사이를 걷다가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잎에는 초록색 잎만 있는 게 아니다. 약간 노란빛을 띠는 연두색 잎도 있고, 빛이 닿아 희끄무레한 잎도 있고, 그림자가 드리워 깊어진 갈색 잎도 있다. (108쪽)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종이를 펼치면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이미지로 가득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태어난 이런 스케치는 언젠가 그릴 그림 씨앗이 된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내가 얻는 씨앗은 식물 씨앗만이 아니었다. (117쪽)


  흙일을 끝내고 종이를 펼치는 밤이 되면 여느 때에는, 그러니까 흙일을 하지 않던 지난날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가득 펼쳐진다는 흙지기이자 그림지기입니다. 아스파라거스를 가꾸며 풀씨를 얻기도 하고, 아스파라거스랑 흙이랑 바람이랑 비랑 하늘이랑 해한테서 ‘그림으로 그릴 마음 씨앗’을 함께 얻는다는 흙지기이자 그림지기예요.

  나뭇잎을 새로 가리는 눈을 키웁니다. 나무마다 풀잎 빛깔이 다른 줄 깨닫습니다. 철마다 풀잎 빛깔이 또 다른 줄 알아차립니다. 더구나 아침저녁으로 풀잎 빛깔이 조금씩 다른 줄 느끼기까지 합니다. 해가 어느 만큼 드느냐에 따라 같은 나무나 풀이라도 잎빛이 또 다른 줄 헤아립니다.

  이리하여 그림으로 담는 모든 삶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를 만하구나 하고 찬찬히 배웁니다.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지만 이런 일상이 나쁘지 않다. 개구리나 메뚜기와도 더 친해진 것 같고. (169쪽)


  개구리하고 차츰 가까이 지내면서 개구리 마음을 그림으로 옮겨 봅니다. 메뚜기하고 조금씩 가까이 지내면서 메뚜기 마음을 그림으로 담아 봅니다.

  무당벌레하고 꾸준히 가까이 지내면 무당벌레 마음도 그림으로 빚겠지요. 나비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사마귀나 딱정벌레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거미하고 참새랑 가까이 지내면서, 차근차근 새로운 마음을 그림으로 얹어 볼 만합니다.

  우리 곁에는 누가 있을까요? 우리 둘레에는 어떤 숨결이 흐를까요? 우리는 이웃을 어떠한 눈으로 마주하면서 하루를 지을까요?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는 상냥한 눈길, 상냥한 손길, 상냥한 마음길을 흙한테서 배워 그림으로 옮기는 기쁨을 누리는 젊은이 삶을 부드러이 밝힙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일본 젊은 흙지기+그림지기가 빚은 이 책은 한국에서 먼저 나왔다고 합니다. 아직 일본에서는 이 글·그림꾸러미가 책으로 안 나왔다는군요. 이 대목도 참 재미있습니다. 2018.4.2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숲책)

* 이 글에 붙이는 그림은 책에 실린 그림이고, 자연과생태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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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어요
김혜경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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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4


물맛·바람맛 따라 다른 밥맛을 잊으면
― 밥을 지어요
 김혜경
 김영사, 2018.2.9.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선물할 음식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없이는 좀처럼 하기 힘들다. (174쪽)


  날마다 밥을 지어서 먹는 살림을 누립니다. 우리 집 아이들마냥 어릴 적에는 으레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을 먹는 하루였고, 오늘 우리 집 아이들을 거느리는 어버이로서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차리는 하루입니다.

  아무리 고되거나 바쁘더라도 아이들 끼니를 건너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버이가 다른 일을 하느라 혼자 끼니를 건너뛰기는 하더라도 아이들은 밥때를 챙겨 줍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흐름이 조금씩 바뀝니다. 아이 스스로 밥상을 챙기도록 이끕니다. 쌀을 아이들이 손수 씻어서 불리고는, 스스로 밥물을 맞추어 끓이도록 이릅니다. 아직 아이들이 국이나 찌개를 끓이지는 못하나, 아이들을 불러서 국물간을 보라 하고, 밑반찬이나 김치를 할 적에 으레 옆에 앉히거나 세우니, 조금씩 어깨너머로 익히는 칼놀림이나 도무질도 있겠지요.


아파트로 이사한 뒤로 엄마는 김장 때마다 뭔가 못마땅해하셨다. 동치미 맛이 제대로 안 난다며 물 탓을 하셨다. 전에는 약수를 길어다가 김장을 했는데 그 물을 쓰지 않으니 맛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22쪽)

물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약수에 따라 밥맛은 물론 밥의 색도 다르다. (35쪽)


  《밥을 지어요》(김혜경, 김영사, 2018)를 읽습니다. 이 책은 밥책일 수 있습니다. 밥짓기를 어떻게 즐거이 해 볼 만한가를 단출하게 알려주어요. 사진하고 길잡이글을 알맞게 넣습니다. 그리고 밥차림 이야기 사이사이에 ‘밥을 지어서 먹는 하루’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넣습니다.

  우리는 밥만 먹는 사람이 아니기에, 밥책이라 하더라도 밥짓기 길잡이만 다루기보다는 ‘밥을 짓는 마음’이나 ‘밥을 나누는 마음’이나 ‘밥을 지어온 길’ 같은 곁이야기를 나란히 다루면 한결 재미있구나 싶어요. 밥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쓴이 삶자락을 돌아보면서 오늘 내가 가꾸는 밥살림을 돌아볼 만해요.


혼밥을 차리기 위해 일부러 장을 볼 필요까지는 없다. 사실 장을 보고 나면 너무 피곤해져서 밥상을 차릴 기력도 없다. 집에 있는 자료와 늘 쟁여두는 밑반찬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한 나만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 (84쪽)

밥상 차리기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먼저 계절, 날씨, 가족의 건강 상태와 취향, 근래의 식단, 냉장고 속의 재고 상태까지 고려한 뒤 치밀한 전략하에 통찰력을 갖고 오늘의 식단을 구상한다. (92쪽)


  《밥을 지어요》를 쓴 분은 물맛을 제대로 느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합니다. 물맛이 좋지 않으면 간장이며 동치미를 담글 수 없고, 물맛이 안 좋으면 밥맛도 좋기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저도 물맛을 느낀 지 고작 열 몇 해입니다. 수돗물하고 샘물하고 냇물이 저마다 맛이 다른 줄은 알았으나 도시에서 살 적에 그냥 수돗물로 밥을 지어 먹었을 뿐이에요. 곁님을 만나고서 ‘수돗물로 지은 밥은 너무 맛이 없고 냄새가 난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야 코를 킁킁이면서 돌아보았어요. 도시살림으로서는 스스로 무디어 버리는 셈 아닌가 하고. 아니 도시살림이든 시골살림이든 물맛 밥맛 풀맛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밥살림을 한다는 말을 못 꺼내겠구나 하고요.

  예부터 장맛은 물맛뿐 아니라 ‘바람맛’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바람이 드나드는 결에 말리고 삭히는가에 따라 장맛이 달라진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장맛뿐 아니라 벼맛도 이와 같을 테지요. 고장마다 물이며 바람이 다를 테니 벼가 자라면서 품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물이나 열매도 이와 같아요.

  고속도로가 가로지르는 곁에서 자라는 벼하고, 자동차 지날 길 없는 두멧자락 논에서 자라는 벼는 바람맛이며 물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농약을 머금은 벼하고, 아이들 노랫소리를 머금은 벼도 맛이 다를 테고요.


“올해는 꼭 사먹어야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으레 다짐한다. 목이 아프니까, 이제 허리도 아프고, 손목은 또 어떤가? 식구도 얼마 없는데 남편까지 점점 바빠지질 않나? 작년에도 남았으니, 겨우 요만큼 할 거면 차라리 사먹는 게 싸지. 김장하지 않을 이유는 이렇게 해마다 늘어가지만 나는 또 어느새 배추와 고춧가루를 주문하고 있다. (198쪽)


  《밥을 지어요》라는 책 하나는 흔하거나 수수한 이야기에다가 흔하거나 수수한 밥차림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흔하거나 수수한 밥살림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늘 잊거나 잃어버리는 무척 커다란 이야기일 수 있어요.

  날마다 밥을 먹는 우리는 물하고 바람을 함께 먹는 삶이에요. 풀하고 흙도 함께 먹지요. 나비 날갯짓하고 제비 날갯짓이며 개구리 노랫소리도 함께 먹을 테고요. 우리는 밥 한 술이나 국 한 술에서 얼마나 너른 물이며 바람이며 흙이며 풀에 서린 맛을 느낄까요? 끼니마다 밥은 먹지만, 마음으로 먹으며 삶을 살찌우는 즐거움을 잊는다면, 밥을 짓는 사람 손길뿐 아니라, 밥이 되어 준 이 땅 뭇목숨에 담긴 사랑도 잊는 셈일 수 있습니다. 2018.4.1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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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궁금해?
이영보 지음 / 자연과생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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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8



거미가 이토록 야문 벗님인 줄 몰랐네

― 거미가 궁금해?

 이영보 글·사진

 자연과생태, 2018.1.29.



전 세계 거미목록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한 거미는 모두 45,313종입니다 … 우리나라에 사는 거미는 모두 46과 726종이며 꼬마거미과가 80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왕거미과와 깡충거미과가 각 73종으로 이 3과가 약 31%를 차지합니다. (14쪽)


‘거미’라는 말은 ‘검다’에서 왔습니다. 15세기에 ‘검다’라는 형용사 어근 ‘검’에 명사형 접미사 ‘-의’를 붙여 ‘거믜’라고 부르다가 거미가 되었습니다. (18쪽)



  봄이 되면 들에 숲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지요. 겨우내 잠든 뭇목숨이 깨어납니다. 꿀하고 꽃가루를 찾는 벌이 날고, 벌써 깨어난 나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화나무랑 동백나무는 꽤 멀리까지 향긋한 냄새를 퍼뜨립니다.


  그런데 이 봄에 꽤 일찍 깨어난 목숨붙이가 있어요. 바로 거미입니다. 거미는 풀밭에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깨어나요.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거미가 몇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깡충거미가 있어요. 예전에는 이 거미가 무슨 거미인지 몰랐으나 거미 도감을 곁에 둔 뒤로 비로소 이름을 알았고, 이름 그대로 깡총깡총 껑충껑충 날듯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재미있어 바닥에 엎드려 깡총짓을 지켜보곤 합니다.



모든 거미가 허물을 벗기 전에 먹이를 끊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눈에 띄게 동작이 느려지고 몸 색깔이 흐려집니다. 허물을 벗을 때는 먼저 다리를 길게 뻗습니다. 머리가슴 쪽의 키틴판에 금이 가면서 서서히 허물이 벗겨지고, 머리가슴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으로 배가 벗겨지며, 더듬이다리가 나온 뒤 마지막으로 긴 다리 8개가 서서히 빠져나옵니다. (30쪽)


무당거미 암컷이 날개띠좀잠자리 1마리를 예비소화하고 빨아먹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어 보니 2시간 2분 26초가 걸렸습니다. (44쪽)



  《거미가 궁금해?》(이영보, 자연과생태, 2018)는 거미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무척 쉽게 풀이해서 알려주는 길동무책입니다. 전문가나 학자만 알 수 있는 어려운 말이 아닌,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거미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지구에 거미가 몇 가지 있는지, 이 가운데 한국에는 몇 가지 있는지, 거미는 어떤 먹이를 좋아하고, 거미는 누구한테 잡아먹히는지, 거미줄은 얼마나 단단한지, 거미가 이 땅에서 맡는 몫이란 무엇인지, 거미는 물 없이 얼마나 버티는지, 거미는 암수가 왜 크기가 다른지, 거미가 줄을 어떻게 뽑고, 비가 오는 날은 어떻게 하며, 거미는 왜 줄에 달라붙지 않는가를 쉽고 부드러이 풀어내어 들려줍니다.



가 새끼에게 먹이는 먹이에서 거미가 차지하는 비율은 12%이며, 새가 먹이로 삼는 거미는 17과 85종입니다. 새끼 먹이로 거미를 가장 많이 사냥하는 새는 곤줄박이로 전체 먹이에서 27.7%가 거미였다고 합니다. (53쪽)


동박새, 오목눈이, 쇠솔딱새, 쇠개개비 등 여러 새가 둥지를 만들 때 거미줄을 접착제로 씁니다. (122쪽)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거미에 물려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거미 독은 주요 먹이인 곤충을 마비시킬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137쪽)



  숲에 사는 여러 새가 거미를 먹이로 삼을 뿐 아니라, 거미줄을 풀로 삼아서 둥지를 짓는다는 말에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숲에 사는 새가 무척 똑똑하다고 깨닫습니다. 참말로 그렇거든요. 거미줄이 날벌레가 들러붙도록 하는 먹이그물이기에, 이 끈끈한 거미줄이라면, 새가 나뭇가지나 깃털을 모아 둥지를 엮을 적에 풀로 삼을 만합니다.


  어느 숲사람은 거미줄을 그러모아 옷을 짓기도 한대요. 거미줄로 실을 꼬아 옷을 지으려면 거미줄을 엄청나게 모아야 한다지만,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누에가 뿜은 줄을 그러모아 실로 삼아서 옷을 짓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헤아려 봅니다. 거미줄은 매우 단단하다고 해요. 부드러우면서 단단하다지요. 우리가 거미줄 밑바탕을 꼼꼼히 살펴서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가 입는 옷도 ‘거미줄 섬유’로 지을 수 있고, 자동차라든지 비행기 같은 데에도 ‘거미줄 탄성섬유’를 써 볼 만해요.



흰색이 아닌 거미그물을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관찰한 바로는 황금색 거미그물을 치는 무당거미와 형광빛 도는 파란 거미그물을 치는 부채거미가 있었습니다. (104쪽)


거미 한 마리가 한 번에 뽑아낼 수 있는 거미줄 길이는 보통 200∼300m입니다. 가장 길게 뽑는 경우는 700m에 이릅니다 … 굵기가 같은 섬유일 때 인장강도가 알루미늄은 4kg/㎟, 티타늄은 90kg/㎟, 신소재 유리섬유는 100kg/㎟, 강철은 40kg/㎟이고, 거미줄은 170kg/㎟였습니다. (110∼111쪽)



  흰 거미줄이 아닌 노란 거미줄을 본 적 있어요. 그때에 문득 생각했어요. 왜 거미줄이 하얗지 않고 노랄까 하고. 그러나 이내 잊었습니다. 《거미가 궁금해?》를 읽고 보니, 거미줄은 거의 다 하얗고, 더러 다른 빛깔로 줄을 치기도 한다는데, 왜 이와 같은 여러 빛깔 줄을 치는가는 낱낱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요.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거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면 풀수록 재미난 이야기도 많으며, 우리 삶이나 살림에 새롭게 도움이 될 만한 길을 엿볼 수 있는 거미라고도 할 만해요.



파브르는 새끼들을 업은 암컷 두 마리를 밀폐된 통에 넣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암컷은 격렬하게 싸웠고, 결국 한 마리는 다른 한 마리에게 잡아먹혔습니다. 파브르는 싸움에서 이긴 암컷이 다른 암컷의 새끼들까지 잡아먹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남은 암컷이 상대의 새끼들을 잡아먹지 않고 등 위에 올려 자기 새끼들과 함께 돌봐 주었습니다. (84쪽)


벼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볍씨를 심고 수확할 때까지 보통 3∼6개월 걸리니 벼가 자라는 동안 거미 한 마리가 해충을 90∼180마리 잡아먹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활약을 하니 수많은 논거미가 벼농사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합니다. (139쪽)



  새는 거미를 무척 많이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거미는 또 풀벌레를 무척 많이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흔히들 농약이 없으면 논짓기나 밭짓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지만, 농약이 없던 지난날에 시골사람이 시골 논밭을 건사할 수 있던 힘 가운데 하나는, 거미나 새 같은 우리 곁에 있는 온목숨을 고이 살피고 아끼던 손길이었지 싶습니다. 콩 석 알이 있으면, 사람하고 벌레하고 새가 같이 나눈다는 마음처럼, 기꺼이 서로 나누고, 즐거이 함께 살며, 넉넉히 어우러지는 마을이요 보금자리였다고 느껴요.


  예부터 어른들은 거미를 집에서 보면 안 죽이고 살살 달래어 바깥으로 내보냈어요. 거미가 하는 일을 잘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도 우리를 둘러싼 뭇목숨이 이 땅에서 어떤 숨결인가를 눈여겨보면서 제대로 알 수 있다면,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게 하루를 지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이쁜 벗님인 거미 이야기를 책 하나로 상냥하게 마주합니다. 2018.3.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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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소본능 - 환경부 2018 우수과학도서 선정, 국립중앙도서관 2018년 휴가철에 읽기 좋은 도서 선정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0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집으로 돌아간다
― 귀소 본능
 베른트 하인리히/이경아 옮김
 더숲, 2017.11.13.


어린 시절 나는 잎이 무성한 나무 밑처럼 자연으로 에워싸인 공간에 있는 걸 좋아했다. 거기서 바라볼 만한 전망이 있다면 더더욱 좋았다. (432쪽)


  우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힘들거나 괴로워도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도 어떻게든 집 쪽을 바라보며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끝내 힘이 다 빠져서 쓰러지더라도 집 쪽을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집이라고 해 보았자 몇 평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달삯방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집을 길을 안 잃고 잘 찾아갑니다. 사람으로서 집찾기를 돌아본다면 참 대단하지 싶어요. 술을 많이 마셔서 해롱거리는 사람도 참말로 용하게 집으로 잘 돌아가요. 이리하여 작은 새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지난봄에 깃들던 둥지로 돌아오는 몸짓을 얼마쯤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곤 합니다. 이른바 ‘귀소 본능’이라고 하는 ‘집 찾는 몸’이란 모든 목숨붙이한테 다 다르면서 다 같이 있다고 느껴요.


거위나 백조와 마찬가지로 어린 두루미 역시 겨울나기를 하는 곳에서 번식지까지 날아가는 길을 부모에게서 배운다고 알려져 있다. (29쪽)

암수 한 쌍이 내는 금속성의 시끄러운 소리는 멀리서 날아오는 다른 두루미를 유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소리를 통해 ‘출입 금지’ 신호를 보내는 것이 맞을 듯했다. (37쪽)


  베른트 하인리히 님이 쓴 《귀소 본능》(더숲, 2017)을 읽습니다. 이 책은 새를 비롯한 뭇목숨이 어떻게 ‘옛 보금자리’를 그토록 잘 찾아내는가를 살핀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은이가 어릴 적부터 찬찬히 지켜본 아름답고 놀라운 숲살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은이는 어릴 적부터 나무 밑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탁 트인 곳을 좋아했다고 하며, 드넓은 도시가 아닌 드넓은 숲이나 멧줄기를 바라보기를 좋아했다고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귀소 본능》을 쓴 분부터 스스로 ‘옛 품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어릴 적에 늘 즐기거나 누리던 터전인 숲에서 살아가면서 일하는 길을 걷거든요. 도시 한복판에 있는 대학 연구실이 아닌, 숲에 마련한 오두막집을 연구실이자 일터이자 보금자리로 삼아서 지낸다고 하거든요.


이런저런 연구를 통해 우리는 바다거북이나 바닷새처럼 바다를 항해하거나 횡단하는 동물들이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헤매다 자신들이 태어난 작고 외진 지역의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10쪽)

이로써 연어가 냄새를 기억한다는 결론이 분명해졌다. 녀석들은 자기가 자랄 때 경험한 냄새에 이끌렸던 것이다. (156쪽)


  지구라는 별에서 한국은 매우 작은 땅덩이입니다. 이 한국에서도 도시나 시골 한 곳은 매우 작습니다. 이런 도시나 시골에 깃든 열 평짜리 집도 대단히 작지만, 백 평이나 천 평쯤 되는 집이라 하더라도 아주 조그마한 점 하나예요. 이런 점 하나를 느긋이 깃들일 터전으로 삼아서 하루를 짓는 목숨 가운데 하나가 우리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헤아려 보니, 시골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은 매우 작아 보입니다. 어미 제비 두 마리가 깃들면 꽉 차는 제비집인데요, 이 작구나 싶은 둥지에 알을 낳아 너덧 마리 새끼 제비가 자라요. 이 자그마한 둥지에 밤이면 새끼 제비랑 어미 제비가 서로 웅크려서 잠을 자지요.

  새벽이 되면 깨어나는 제비를 비롯한 새는 저마다 멀리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서울에서 대전쯤 다니는 길이만큼 제비 한 마리가 날마다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다고도 할 만해요. 이러면서도 둥지를 잘 찾아서 돌아와요.


단순한 둥지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따라서 땅바닥에 살짝 파인 자국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둥지는 우리의 상상력을 시험하는 건축기술이 포함된다. 새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건축기술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는 공중에 매달린 둥지다. (204쪽)


  《귀소 본능》을 읽으면 지은이가 조그마한 뭇목숨을 얼마나 찬찬히 바라보거나 마주하면서 학문 연구라는 길을 걷고, 이 길에 즐거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벌레가 짓는 집을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새가 짓는 집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사람처럼 기계를 부리지 않는 벌레나 짐승이나 새인데, 대단히 놀랄 만한 집을 짓는다고 해요.

  문득 거꾸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거미나 개미나 벌이나 새도 ‘사람이 지은 집’을 바라보면서 놀랄까요? 거미나 개미나 벌이나 새는 사람이 지은 집은 그들이 보기에 너무 커서 알아볼 수는 없을까요?

  또는 이렇게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거미나 개미나 벌이나 새라면, 사람이 지어서 살아가는 집을 어떻게 여길까요? 재미있다고 여길 만한지, 흙으로 고이 돌아갈 만하지 않은 바보스러운 집짓기를 한다고 여길 만한지 궁금합니다. 사람 눈으로 보아도 어리석은 4대강사업 같은 일이 있었는데, 거미나 개미나 벌이나 새 눈높이로 이런 막삽질을 바라본다면 더더욱 어처구니없는 짓이라고 여길 만하지 싶어요.


녀석은 어째서 밤을 숨기려고 그렇게 멀리까지 날아간 걸까? 그렇게 하면 특정한 장소에 대한 기억력을 높일 수 있을까? 먹이를 멀리 숨겨두고 오가는 것이 가까이에 소량으로 먹이를 여기저기 숨겨두는 것보다 장소를 기억해내기 편한 걸까? (317쪽)

개간된 땅에 곰이 떨어뜨린 씨앗에서 오래된 사과나무가 시작된 것이라면 1830년대 아래쪽 계곡에 정착민들이 들어와 아사 애덤스를 비롯한 몇몇이 황소를 끌고 산비탈로 올라왔을 때 어느 정도 자란 사과나무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 (339쪽)


  가까이에 먹이를 묻는 다람쥐나 새가 있고, 멀리 날아가서 먹이를 묻는 짐승이나 새가 있습니다. ‘가까이’라고 하면 보금자리에서 가깝다는 뜻이요, ‘멀리’라고 하면 보금자리에서 멀다는 뜻이에요. 사람으로 본다면, 살림돈을 은행에 맡길 수 있고 맞돈으로 집에 건사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더라도 여러 곳에 맡길 수 있을 테고, 값진 물건이나 금으로 바꾸어 건사할 수 있겠지요.

  더 따지고 들면, 땅을 파서 독을 묻어서 먹을거리를 건사하기도 하며, 냉장고라는 기계를 쓰기도 하고, 그늘이 지고 바람이 잘 드는 광을 마련해서 말린남새로 건사하기도 합니다. 사람 살림살이처럼 숲을 이루는 모든 목숨은 저마다 다르게 제살림을 가꿉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열매는 사람도 먹고 새나 벌레나 숲짐승도 먹습니다. 사람·새·벌레, 이렇게 셋이 한 알씩 나누어 먹는다는 콩 석 알 이야기처럼 우리는 예부터 지구라는 별에서 다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런 틀에서 본다면 집을 찾는 길이란, 귀소 본능이란, 우리가 어떤 보금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살림인가를 헤아리려는 몸짓이지 싶어요. 이웃 목숨을 살피면서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는 학문이란, 우리가 사람으로서 얼마나 슬기롭고 아름다우면서 너그럽게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줄 아는 살림으로 나아갈 만한가를 생각하자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전남 고흥에서는 2월 26일부터 뭍바람이 바닷바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철바람이 불어요. 곧 제비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이 나라를 찾아올 테고, 우리 집 처마 밑에도 그리운 제비가 깃들리라 손꼽아 기다립니다. 어서 돌아오렴, 제비야. 2018.2.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이 글에 붙인 본문그림 석 점은 더숲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받았습니다 *
(그림 저작권 : Bernd Heinrich,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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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서은혜 옮김 / 녹색평론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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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책 읽기 136


새끼 여우가 나비랑 놀던 미나마타 바닷가
― 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서은혜 옮김
 녹색평론사, 2015.9.1.


사람이 죽을 때 깔아 주는 깔짚이라는 것은 농민들이 고생혀서 기른 짚이니, 솜이불보담도 더,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 있지. 시원허믄서두 따뜻허니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 임시 잠자리로는 딱 좋은겨. (10쪽)

이 아이들의 생활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가정생활이 아니고, 병원생활도 아니며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메틸수은화합물에 의한 중추신경계 중독성질환 인간으로서의 생활뿐이었다. (23쪽)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책 가운데 두 가지가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2007년에 《슬픈 미나마타》(달팽이)이고, 다른 하나는 2015년에 《신들의 마을》(녹색평론사)입니다. 두 가지 책은 일본 미나마타병을 다룹니다. 그런데 미나마타병만 다루지 않습니다.

  두 가지 책은 미나마타라는 바닷마을을 먼저 다룹니다. 바다에 수은을 몰래 버린 공장 때문에 바닷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고 힘들었으며 죽어 나갔고 아이들이 아파서 몸부림치다가 죽는 모습을 눈물로 지켜보아야 한 이야기를 나란히 다룹니다. 수은을 버린 공장이 아무런 대책이 없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팔짱을 낀 대목을 다룹니다. 미나마타 시골사람을 얕보는 도쿄 도시사람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고, 미나마타 시골사람하고 이웃이 되려는 작은 사람들 모습을 함께 비춥니다.


‘앞으로 단 5년이나마 더 살 수 있을까 생각은 했어. 그래도 그렇지, 어째서 엄마가 안아 주지도 못하는데 넌 말도 없이 할머니가 졸고 계실 때 죽은 거니.’ 아들의 넋이, 더없이 초라한 열세 살의 육체, 아직 따스할 유체로부터 빠져나가버리기 전에 도착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허리도 다리도 맥없이 힘이 빠져 풀길 위에 주저앉는다. 아아, 아름다운 하늘이네, 그녀는 생각한다. 하늘이 핑그르르 돈다. 단풍 든 옻나무 잎이 춤을 춘다. (59쪽)

“내는 암것두 몰러. 내가 미나마타병이라는 것밖에는 몰러.” (81쪽)


  일본 정부와 병원과 대학교와 지식인은 ‘수은 피해로 다치거나 죽는 보기 모으기’에만 마음을 쏟았다고 합니다. 수은 피해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을 ‘저마다 살림을 지어 살아온 낱낱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았대요. ‘환자 1호, 환자 2호’처럼 ‘생체 실험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었다고 합니다.

  《슬픈 미나마타》가 나온 지 여덟 해 만에 새로 나온 《신들의 마을》을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이 흐릅니다. 조용하고 정갈한 바닷마을에서 수수하게 바닷살림을 짓던 이들이 갑작스레 마주해야 했던 죽음바다란,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서 우수수 죽어 나가는 모습을 치러야 했던 죽음마을이란, 가녀린 아이들이 어버이보다 먼저 삶을 내려놓는 나날을 으레 맞닥뜨려야 했던 죽음집이란, 참말로 얼마나 힘들면서 가슴이 찢어졌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간호사들은 미나마타병 환자는 바보거나 미쳤거나 그냥 세 살짜리 아이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허구 있는 디다가, 다들 툭허믄 울어들대니 갓난애를 달래듯이 어르는 것처럼 말을 허는 거야 … 결국 어떤 검사도, 어떤 약도 도움이 되진 않았지.” (101쪽)

“도쿄에 가믄 나라가 있을 줄 알었더니, 도쿄엔 나라가 읎드라구. 그것이 나라라믄 나라라는 것은 끔찍혀. 미나마타 사람들(공무원·공장 관계자)이나 ‘거기서 거기’드구만. 아니지, 또 쪼금 달러서 더 심허더구먼. 끔찍헌 일이지. 그냥 죽으란 소린지두 몰러. 소름 끼치는 디여. 나라라구 허는 것은. 어디루 가믄 우덜의 나라가 있는 것일까?“ (138∼139쪽)


  미나마타 바닷마을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디로 가면 우리 나라가 있을까?” 하고요. 참말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나라란, 우리 마을이란, 우리 집이란, 우리 바다란, 우리 하늘이란, 우리 삶터란, 우리 이웃이란, 참말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한두 공장만 수은을 버렸을까요. 곳곳에서 숱한 공장이 알게 모르게 수은을 바다에도 땅에도 슬그머니 버리지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숱한 공장은 꽤 오랫동안 정화시설을 제대로 안 갖추었습니다. 정화시설을 갖추었어도 공장 굴뚝에서는 언제나 매캐한 연기가 솟구칩니다. 화력발전소 곁에서 사는 이들은 다른 고장보다 훨씬 자주 크게 몸이 아픕니다.

  여기에 고속도로가 있어요. 자동차에서도 늘 매연이 나와요. 자동차가 들끓는 곳에서는 하늘이 매캐해요. 자동차가 끝없이 싱싱 달리며 매연을 내뿜는 고속도로는 시골 논밭을 가로지르기 일쑤예요.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수은을 몰래 잔뜩 버린 화학공장도 말썽이요, 우리를 둘러싼 온갖 위해·위험·공해 시설도 말썽이라고 느낍니다.


(진보운동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하고 있는 걸 보자면 나는 간이 오그라들었다. ‘정보선전반’도 아마 못 알아들을 거다. ‘오르그’를 알 리가 없지. ‘다방면’도 분명히 알쏭달쏭할 것이다. 그런 용어는 어부들의 생활어와는 거의 인연이 없었다. (164쪽)

어패류의 맛과 수은 맛의 합성에 의한 변화구조를 해명한 연구논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183쪽)

“아무래두 말여, 회사 간부들허구 이야그를 할 때, 우덜은 말두 떠듬떠듬, 뱃사람 말밖에 헐 줄 모르구 말여, 저쪽은 다들 도쿄대학 출신들이구 말두 근대적이구, 주눅이 든다구나 헐까, 뱃사람 차림 그대루로는 뭐랄까, 지저분한 놈들이 쳐들어가는 것 맹키로 그러니께 지대로 만나주지두 않구유.” (299쪽)


  《신들의 마을》은 다른 대목을 더 짚습니다. 애써 미나마타로 와서 바닷마을 사람을 돕겠다고 나선 진보운동가가 쓰는 말이 대단히 어려웠대요. 공무원이나 공장 관계자나 병원 의사·간호사도 미나마타 시골사람이 못 알아들을 말만 썼다는데, 진보운동가는 다른 테두리로 어려운 말을 써서 시골사람이 못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수은중독이 일어난 지 스무 해가 지나도 이를 둘러싼 논문은 보이지 않았다 하며, 바닷사람 사투리는 언제나 주눅이 든 채 입을 벙긋하기도 어려운 나날이었다고 해요.

  어쩌면 한국에서도 이와 같으리라 느껴요. 대추리나 밀양에서 터져나오는 낮고 작은 목소리는 정부한테 얼마나 가 닿았을까요. 나라 곳곳에서 낮고 작은 이들이 털어놓는 낮고 작은 목소리는 중앙정부나 지역정부 문턱을 얼마나 넘을 수 있을까요.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은, 집안의 대들보였던 아버지가 폐인이 되면서, 대다수 환자 가정과 마찬가지로 전업 어가였던 이 가정이 단숨에 궁핍해졌다는 점이다. 발병은 1955년 11월이었다. (226쪽)

‘짓소’가 작성한 미나마타병 환자 일람표에 기재된, ‘자택에서 빈둥빈둥, 보행 약간 곤란’은, 다가미 카츠요시와 그의 발병으로 비롯된 이 집안의 고난에 대해,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227쪽)


  공해병이란 대단히 무섭습니다. 그러나 공해병만 무섭지 않습니다. 공해병을 일으킨 사람도, 공해병을 일으키고서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는 사람도, 공해병하고 멀리 떨어졌으니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공해병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무섭습니다.

  수은으로 더러워진 바다는 이제 깨끗할까요.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바다는 이제 어떠할까요. 그리고 한국 바다는 얼마나 깨끗할까요. 핵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를 낀 바다는 얼마나 깨끗할까요. 공장이 가득 들어찬 한국 바다는, 제철소랑 화학공장이 숱하게 늘어선 한국 바다는, 참말로 얼마나 깨끗할까요.


“미나마타(공해 회사)에 보내는 간부는 멍청한 인간인지도 몰라. 그렇게도 도리를 모르는 걸 보믄.” (289쪽)

“우리 바다, 우리들 논밭에 수은을 갖다 부어놓구, 성의를 다한다는 말만으로 될 거라구 생각허는 거여? 말만으루?” (294쪽)

“누에콩밭에 꽃이 필 무렵이면 새끼 여우들이 부모와 함께 해변까지 내려와서는, 밀물 드는 해변에 나비가 팔랑팔랑하는 것을 고양이 새끼들처럼 손을 뻗어 쫓아다니니까, 부모가 조마조마하며 말리는 것도 보였답니다. 얼마나 보기 좋던지.” (317쪽)


  《신들의 마을》은 미나마타 사람들이 치러야 한 슬프며 아픈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으면서 새끼 여우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공해병으로 바다가 더러워지기 앞서 으레 마주했던 모습을 바닷마을 사람 목소리로 차분히 그려냅니다.

  새끼 여우가 어미 여우하고 바닷가로 나와 나비를 잡는다며 뛰어놀았대요. 바닷마을 사람들은 봄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대요. 저 여우 식구란 하느님이 아닐까 하고. 이 바다란 하느님이 살포시 찾아와서 살아가는 터전이 아닐까 하고.

  작은 바닷마을이 하느님 마을입니다. 작은 숲마을도 하느님 마을입니다. 작은 냇마을도, 도시에 있는 골목마을도 모두 하느님 마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은 하느님 마을입니다. 다만 잊혀진 하느님 마을이거나 잃어버린 하느님 마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8.2.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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