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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쪽빛문고 5
다케타쓰 미노루 글.사진, 안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온누리와 사람을 살리는 힘
 다케타쓰 미노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 책이름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 글ㆍ사진 : 다케타쓰 미노루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07.2.20.)
- 책값 : 8500원


 (1) 4대강 사업에 얽힌 두 사람


 지율 스님은 ‘초록의 공명(http://www.chorok.org)’이라는 누리집 한켠에 당신이 거닐고 있는 삶터 한 자락을 글과 사진으로 띄엄띄엄 올려놓고 있습니다. 지율 스님이 띄엄띄엄 올리는 글과 사진을 ‘초록의 공간’이라는 곳으로 띄엄띄엄 찾아가 하나하나 읽고 살피노라면, 지율 스님이 바라보고 있는 낙동강 줄기란 참 수수하고 정갈하구나 싶습니다.

 돈을 바라보는 개발주의에 따라 나무를 자르고 모래를 파내며 땅을 뒤엎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일지라도 지율 스님 사진은 더없이 차분하면서 정갈합니다. 윽박지르는 사진이 아니라 포근히 감싸는 사진입니다. 꾸짖거나 나무라는 사진이 아니라 슬퍼 울고 있는 사진입니다. 아직 돈바라기 개발주의 삽날이 닿지 않은 곳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볼 때에는 그지없이 따스하면서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이구나 싶습니다.

 숱한 글과 사진으로 4대강 사업을 아름다운 개발이라고 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또다른 숱한 글과 사진은 4대강 사업이야말로 끔찍한 막개발이라고 까밝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당신들 스스로 가장 옳고 바르다 여기는 대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서 당신들 생각을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이들 숱한 목소리와 생각을 글과 사진으로 마주할 때마다 참으로 팍팍하고 메마르구나 싶습니다. 옳고 바른 목소리이기에 따사롭고 맑게 생각을 펼친다든지, 맞고 틀림없는 외침이니까 넉넉하고 밝게 마음을 나누려 하는 글과 사진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멍청한 짓이나 바보스러운 짓을 얄궂게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따끔하게 나무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멍청하거나 바보스러운 사람들은 참을 참으로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착한 일을 모르고 고운 삶을 모릅니다. 알면서 못한다 할 수 있지만, 모르기에 못할 뿐더러, 느끼려 하지 않으니 안 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어떠한 따끔한 꾸지람조차 소 귀에 읽는 불경이 되리라 봅니다. 소 귀에 읽는 경인데 꼼꼼하며 올바른 비판이라 할지라도 먹힐 리 없습니다.

 《신갈나무 투쟁기》를 쓰고 《숲의 생활사》와 《숲 생태학 강의》 같은 책을 쓰면서 숲과 자연을 살리는 길을 살펴 왔다는 차윤정 님은 지난 2010년 5월 17일에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이라고 하는 1급 공무원 자리를 꿰찼습니다. 당신은 ‘생명의숲’이라는 모임에서 문화교육위원으로 일하기까지 했는데, ‘생명의숲’이라는 곳은 4대강 사업이 우리 땅에 좋지 않은 막개발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차윤정 님은 당신 스스로 ‘4대강 사업은 옳지 않다’고 밝히는 일을 하고 글을 써 왔으나(한국일보 칼럼), 어떤 까닭에서인지 둘레에서 환경사랑을 이루고자 힘쓰는 사람들을 힘겹게 하면서 내동댕이를 쳤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저런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 집 책꽂이에 꽂힌 차윤정 님 책들을 길바닥에 내팽겨쳐야 할는지, 아니면 헌책방에 갖다 주어야 할는지 망설이다가 그냥 집에 두기로 합니다. 차윤정 님은 어느 신문사하고 만난 자리에서 당신 ‘소신이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자연을 파헤치는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연은 사람이 살아가기 좋도록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신갈나무 투쟁기》이든 《숲 생태학 강의》이든, 나무와 숲과 풀 모두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목숨이 아닌 사람한테 이바지를 할 때에 아름다울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는 소리입니다.

 어느 신문에 실린 길디긴 만나보기 글을 읽으며 뒷통수를 쳤습니다. 차윤정 님은 흔히 말하는 변절을 한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옳고 바른 삶하고는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때에 줄거리만 읽을 노릇이 아니라, 글줄마다 깊디깊이 실린 속내를 헤아릴 노릇이었는데, 저를 비롯하여 숱한 사람들은 책 하나 똑바로 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차윤정 님은 사랑과 믿음으로 글을 쓰거나 숲 해설을 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개발 편의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연 개발’을 하되, 지나치게 편의주의를 내세우거나 개발을 앞세우면 사람한테 도움될 일이 없다는 생각을 당신 책에 알알이 담아 왔던 셈입니다.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삶결에 따라 우리들한테 맑고 밝으며 따스한 손길을 나누려 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4대강 사업을 두 팔 벌려 반기며, 1급 공무원이라는 연봉 높은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나쁜 놈이요, 4대강 사업 참모습을 밝히고자 온몸을 바치는 사람은 좋은 분이라고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자리에 서 있거나 어느 길을 걷든지 부디 사랑을 찾고 믿음을 섬길 수 있기를 비손할 뿐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가 아닌 ‘사랑으로 어루만지자’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뿐입니다. 넉넉하거나 따스한 마음이 아닌 이들을 몽둥이로 두들겨팬다고 넉넉함이나 따스함을 느끼거나 되찾겠습니까. 아름답거나 훌륭한 넋이 아닌 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않고 찬찬히 타이른다고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을 고맙게 맞아들이겠습니까. 사랑을 모르면서 살아왔으니 명예와 돈과 권력에 끄달립니다. 믿음을 섬기지 못하며 지내왔기에 스스로 참되거나 착하거나 곱게 살아갈 매무새가 안 됩니다.

 지율 스님 글과 사진을 꾸준히 되읽고 곰삭이면서 생각합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노동운동을 하든 문화운동을 하든 어찌 되었든 ‘운동’을 하면서, 이 낱말마따나 ‘움직이기’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목소리 내기’에 앞서 내 삶으로 ‘따순 품과 너른 눈’을 북돋아야겠다고 느낍니다. 지율 스님은 4대강 사업을 두 팔 벌려 반기거나 떠벌이는 사람들을 나무라고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낙동강 마실을 하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한테까지 함께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또다른 4대강 사업’을 깨달으면서, 우리 스스로 참된 길을 찾기를 바라면서 글을 씁니다. 다시금 되풀이하지만, 4대강 사업은 반대하면서 입시지옥과 학벌주의를 깨지 않으면 부질없습니다. 4대강 사업은 나쁜 짓이라 꾸짖으면서 영어만능에 세계화에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젖어 있으면 덧없습니다. 4대강 사업은 반대한다면서 더 빠른 자가용하고 더 큰 아파트랑 헤어지지 못한다면 쓸모없습니다. 4대강 사업을 착하게 반대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일은 이 일대로 제대로 나무라거나 꾸짖을 줄 아는 가운데 우리 삶을 착하게 일구어야 합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고운 몸짓으로 우리 삶을 보듬으며 우리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삶이어야 합니다.


 (2) 사진으로 보여주는 들짐승 삶


 사진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어린이들한테 자연사랑과 사람사랑을 일깨우고자 엮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습니다. 훗카이도라고 하는 일본땅 북쪽 끝에 자리한 동물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들짐승과 멧짐승과 날짐승을 마주하면서 고마운 사랑을 나누어 받는 나날인가를 보여줍니다. 한국땅에서는 씨가 마른 여우인데, 훗카이도 동물병원에서는 들여우를 어렵잖이 만나 보살피고 돌보며 자연에 돌아가 머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동물병원 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다친 짐승을 돕는 일꾼’이 되어 여우를 비롯해 토끼와 딱따구리와 오소리와 참새와 솔개하고 다람쥐랑 좋은 놀이동무로 사귑니다.

 마땅한 노릇일 텐데, 동물병원을 꾸리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따로 자연사랑이니 환경사랑이니 동물사랑이니 하는 말을 들려주지 않으리라 봅니다. 따로 자연사랑을 가르칠 일이 없으리라 봅니다. 자연 품에 안겨 자연스레 살아가며 자연을 느끼고 있으니, 무슨무슨 책을 읽힌다거나 어떤어떤 가르침을 베풀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훗카이도 끝에 자리한 동물병원 식구들은 당신들 삶으로 조용히 자연사랑을 맞아들이고 환경사랑을 일구며 동물사랑을 이룹니다.

 그나저나 이토록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를 담은 책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처럼 낯간지러운 이름을 붙이니 머쓱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스스로 이런 낯간지러운 이름을 내세운 적이 없을 텐데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쓴 일본책에는 으레 ‘북쪽나라’라는 말이 보이는데, 동물병원 의사로 꾸리는 삶이라 더 남다르거나 뛰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동물병원 의사일 뿐입니다. 좀더 가까이에서 아픈 짐승을 돌볼 뿐,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답다느니 이 땅에서 가장 거룩하다느니 하는 꾸밈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수수한 벗이고 조촐한 이웃이며 살가운 일꾼입니다.

 무엇보다도 북쪽나라 동물병원 사람들은 돈벌이를 하지 못합니다. 아니, 돈벌이를 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맡는 아픈 짐승이란 ‘어떤 집짐승을 키우는 임자라는 사람’이 돈을 치르며 맡기는 짐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토끼가 돈을 알겠습니까. 노루가 돈을 갖고 있겠습니까. 큰곰한테 은행계좌가 있겠습니까. 고니한테 지갑이 달려 있겠습니까.

 들짐승을 돌보고 건사하고 먹이를 마련하는 동물병원 식구들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책을 써내어 살림돈을 마련하고 들짐승들이 동물병원에서 아픈 곳을 다스리는 동안 먹을 여러 가지를 장만한다고 합니다. 병원장 아저씨는 말 그대로 당신이 동물병원을 꾸리며 만나는 들짐승이랑 당신하고 함께 짐승들을 어루만지는 집식구들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 일이 고스란히 당신들 돈벌이가 됩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동물병원장 아저씨를 비롯해서 동물병원 식구들이 더 많이 벌거나 더 이름이 나거나 하는 데에 마음을 내주었다면, 아마 당신들 삶이 담긴 책은 안 팔렸거나 책으로조차 못 나왔으리라고. 당신들은 무슨 대단한 이름으로 동물사랑이니 자연사랑을 외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훗카이도 들짐승하고 어우러지는 자연 품에 안겨 똑같은 자연붙이 하나로 살아내고 있기에, 이러한 당신들 삶을 담은 책을 사람들이 아끼고 좋아하며 반기고 있다고.

 동물병원 식구들이 꾸리는 삶이란 바로 사랑과 믿음입니다. 이들 동물병원 식구들이 먹고살 뿐 아니라 아픈 짐승들을 돌보는 데에 보탬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보내 주는 손길 또한 사랑과 믿음입니다. 자연을 돌보거나 지키겠다고 한다면 입바른 ‘자연사랑 구호 외치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우리 터전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짐승들을 돌보거나 지키겠다고 한다면 겉치레 ‘동물사랑 선전 활동’을 할 노릇이 아니라, 온몸 그대로 나와 내 이웃과 내 둘레 모든 목숨붙이와 보금자리를 사랑하며 아끼는 숨결을 간직하면 됩니다.

 사진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은 책이름하고는 다르게 ‘온누리에서 가장 어리석은 동물병원’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가장 어리석은 동물병원은 가장 어리석기 때문에 이들 동물병원 식구들한테 늘 웃음꽃이 피고 눈물꽃이 돋는 즐거우며 빛접은 삶을 베풀어 줍니다. 꾸미는 삶이 아니라 즐기는 삶이요, 겉바르는 삶이 아니라 부대끼는 삶입니다. 내세우는 삶이 아니라 내놓는 삶이요, 뽐내는 삶이 아니라 손잡는 삶입니다.

 온누리를 살리는 힘이란 다름아닌 사랑에 있음을 알뜰살뜰 보여줍니다. 온누리를 빛내는 슬기란 다름아닌 믿음에 있음을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3) 살뜰히 되읽는 생각줄기


 글은 적고 사진이 많이 실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입니다. 얼마 안 실린 글이지만 한 줄 두 줄 되읽는 재미가 남다릅니다. 사진 또한 한 번 보고 두 번 보는 기쁨이 꽤 큽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한 장씩 넘기며 글을 읽어 주다가는, 사진에 함께 실린 숱한 짐승들 이름을 부르며 알려주는 즐거움 또한 새삼스럽습니다.

 우리 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거나 자취를 감추기까지 한 짐승들 모습을 참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책 하나인데, 그예 지식덩어리 책이 아닌 사랑하고 눈물과 울음이 고루 섞인 살가운 이야기 하나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3.6.13.해.ㅎㄲㅅㄱ)


[11쪽] 숲속 동물병원은 병원이라기보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활 훈련소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야생동물에게는 주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진료비나 입원비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료진은 모두 급여를 받지 않는 저의 가족이 맡았습니다. 저와 아내와 네 명의 아이들이 이 병원의 의료진들이지요. 보통 병언이라면 환자가 많을수록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게 되는데 이곳은 정반대랍니다.

[16쪽] 어느 날 아침, 우리 집 아이가 콩새를 안고 들어왔어요. 그 콩새는 울고 있었어요. 눈에 하나 가득 눈물을 머금고 말이에요. 인간이 아닌 동물은 울거나 웃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눈앞의 콩새는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열심히 환자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게 되었어요. ‘틀림없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거지요.

[16∼17쪽] 일본 훗카이도는 풍부한 자연에 에워싸여 있고, 사람들도 그 속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 때문에 인간 생활의 변화가 곧바로 자연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싼 것이 좋다고 말하면, 농부는 어쩔 수 없이 화학비료를 자주 사용해 작물을 많이 생산하려고 합니다. 농약도 많이 사용하게 되고요. 그렇게 되면 동물 중에 농약 중독 환자가 늘게 됩니다. 훗카이도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생활이 바빠지자 덩달아 차의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하는 동물도 늘어났고요.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비 생활이 일상화되어, 여기저기 쓰레기더미가 산을 이루고, 또 버려진 물건에 상처를 입는 동물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82쪽] 새끼 사슴은 우유를 하루에 4리터나 마셔요. 덕분에 병원은 더욱 가난해졌지요.

[85쪽] 여우와 너구리, 참새와 까마귀처럼 사람 곁에서 생활하는 동물에게는, 사람 또한 위협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장난을 칠 때면 가끔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몸짓을 보여주고는 해요. 또한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등 기계의 위험성도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이런 것들을 습득하면 드디어 자연 속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102쪽] 퇴원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환자는 자유로워지고, 의료진은 일이 줄어 한숨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고 퇴원이 가까워지면 모두 기쁜 얼굴을 하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기뻐하는 것은 원장인 나뿐, 모두 서운한 표정들이지요. 자기 자식이나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일 거예요. 환자 중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 동물이 있는 것 같아요.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착각에 불과한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125쪽] 생물들의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 숲속 동물병원도 하나 둘씩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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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달래며 살아간다
다이쿠바라 야타로 지음, 박영 옮김 / 북피아(여강) / 1991년 7월
평점 :
절판





 태어나는 책, 살아가는 책, 죽는 책
 [헌책방에서 만난 책 1] 다이쿠바라 야타로, 《티베트 의학의 지혜》



 새로 태어난 목숨은 둘도 없는 기쁨입니다. 어린 나날부터 늙은 나날까지 보내는 삶이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입니다. 더는 몸을 쓸 수 없는 가운데 조용히 거두는 숨결이란 다시 없는 고마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기쁨과 살아가는 즐거움과 죽는 고마움을 누립니다. 어느 한 가지만 맛볼 수 없으며, 어느 한 가지는 맛보지 않겠다며 손사래칠 수 없습니다. 기쁘게 맞이하는 목숨이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요 고맙게 멈추는 숨결입니다.

 흔히들 뭍고기이든 물고기이든 꺼리면서 푸성귀만 먹고살아야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어려운 말로 ‘채식주의’인데, 고기 아닌 풀을 먹는 사람일 때에는 고기 먹는 사람보다 뱃속이 가뜬하다거나 부드럽기 마련입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한테 맛있는 고기란 ‘고기를 먹는 짐승을 잡아 마련한 고기’가 아닌 ‘풀을 먹는 짐승을 잡아 마련한 고기’입니다. 풀 먹은 짐승이 맛이 있지, 고기 먹은 짐승이 맛이 있지 않습니다. 풀 먹는 사람이 튼튼하지, 고기 먹는 짐승이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목숨을 먹는 삶입니다. 풀이라 하여 목숨 아닐 수 없습니다. 풀 또한 고운 목숨입니다. 풀을 뜯거나 데치거나 삶을 때에도 짐승을 잡아서 죽을 때하고 마찬가지로 목숨을 끊는 노릇입니다. 꽃이나 나뭇가지를 꺾을 때에 꽃과 나무 또한 아파하거나 죽는다고 말을 하면서, 푸성귀를 밥거리로 삼아 먹는다고 할 때에는 ‘나한테 바쳐진 목숨’을 느끼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 또한 목숨이고 우리가 들이쉬는 바람 또한 목숨입니다. 우리는 목숨 아닌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목숨을 받아들이며 내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수명은 늘어났으나 순수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은 점점 유실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  (26쪽)


 농사짓는 들판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한테는 무엇보다도 풀과 곡식이 몸에 가장 잘 맞습니다. 고기를 잡는 바다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한테는 무엇보다도 물고기가 몸에 가장 잘 맞습니다. 농사도 짓고 고기잡이도 하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풀이며 곡식이며 물고기이며 골고루 즐길 테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도시에서는? 도시라는 곳은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먹고 버리는 터전인 만큼,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배를 채우도록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릴 때가 내 몸에 가장 알맞을까요?

 틀림없이 제 고향마을 터전에서 나는 먹을거리만큼 내 몸에 알맞으며 좋은 먹을거리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네 도시를 떠올려 보면 너무 끔찍합니다. 스스로 농사를 짓는 일이란 없이 돈만 벌고 돈만 써서 쓰레기를 잔뜩 내보내는 데다가 쓰레기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며 쓰레기가 어찌 되는가를 헤아리지 않는 도시 삶자락이란 참으로 끔찍합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와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연이 내려준 선물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내 몸이 바로 자연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지없이 끔찍합니다. 도시 아이들은 ‘불량식품’이라는 먹을거리에 군침을 흘리며 손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술과 담배에 찌들며 갖가지 스포츠와 쏟아지는 정보덩어리에 파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 자연이 준 것을 빼앗고 새삼스럽게 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이상하기만 하다 … 아무리 모유의 성분을 분석ㆍ연구하여 외부에서 배합하려 해도 똑같은 효과는 얻을 수 없다. 그 아기에게 맞는 성분 배합은 아기와 직접 연결되어 있던 모체만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  (53, 61쪽)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제 삶을 돌아봅니다. 남 얘기에 앞서 나부터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곱씹습니다. 딸아이를 낳아 스물석 달째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날을 돌이킵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운 목숨으로 살아가는가를 헤아린다면 고개를 떨굴밖에 없습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우리 아이한테 얼마나 고마운 어버이요 좋은 목숨으로 마주하고 있느냐를 살핀다면 고개를 내저을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스스로 먹을거리 입을거리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마련할 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돈으로 먹을거리 입을거리 보금자리를 빌립니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오로지 돈을 생각하거나 따집니다. 사는 사람이든 파는 사람이든 삶이나 죽음을 느끼거나 깨닫지 않습니다. 사는 사람이든 파는 사람이든 무엇보다 돈을 바라봅니다. 알맞춤한 값인지를 살피고 싸거나 비싼 값인가를 돌아봅니다. 돈이 얼마나 드느냐를 따지고,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 얼마나 이바지를 하느냐를 느끼지 않고, 우리 목숨에 얼마나 어울리느냐를 헤아리지 않으며, 우리 죽음에 얼마나 따스한 손길인가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 인도 여성들은 산후 1주일 동안은 외출은 물론 산실 안에서도 계속 누워 있었다. 닷새 정도까지는 변기에도 앉지 않았다 … 인도에서는 산후 3주는 산실을 어둡게 만들어 바깥 빛을 쏘이지 않도록 하는데, 이것은 갓 태어나는 아기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을 보호하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  (71, 75쪽)


 책을 읽으면서 밥을 느끼고 옷을 느끼며 집을 느낍니다. 책이든 밥이든 옷이든 집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한동아리입니다. 나고 살고 죽습니다. 다시 나고 다시 살고 다시 죽습니다.

 제 나이 서른여섯인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나이 열여섯과 스물여섯에도 죽음을 늘 생각했습니다. 여섯 살 적에는 도깨비를 무서워 했으니 이때에도 죽음을 생각한 셈일까요. 저녁에 눈을 감고 잠들 때에는 이대로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벌써 눈을 감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생각했고, 잠결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다가, 새벽에 눈을 뜨면서 이야 오늘 하루도 다시금 눈을 뜰 수 있네 하고는 고맙게 느낍니다.

 문득 돌아보니, 새벽마다 고맙게 눈을 뜨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마움을 땅님이나 하느님한테 비손을 올리지는 못해 왔군요. 그래, 고맙기는 고맙다지만 고마움을 제대로 나타내지 않으며 지내온 삶이라 하겠습니다. 마음으로는 고맙다 하지만 몸으로는 고마운 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고마움을 느끼면서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집식구와 살가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좋은 삶을 즐기지 못하는 꼴이라 하겠습니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좋은 책이 태어났으면 좋은 책이 태어난 셈이고, 좋은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좋은 책이 빛을 본 셈이며, 이 좋은 책이라 하지만 널리 팔리지 못해 새책방이나 도서관 책시렁에서 자취를 감추면 조용히 숨을 거둔 셈입니다. 좋다는 책이라 하여 한결같이 팔리거나 많이 팔리거나 오래도록 팔려야 하지 않습니다. 좋다는 책이라면 외려 알맞춤하게 팔리고 알맞춤하게 사랑받다가 살그머니 잠들어 사라질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스스로 꾸리는 제 삶이 좋은 삶이라 할 때에도 내 목숨을 살뜰히 받아들여 알맞게 즐기는 가운데 땅에 보탬이 되도록 숨을 거두어야 참 아름다움이요 기쁨이며 보람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 조금씩 병을 앓으면서 원상태로 북귀하는 과정에서 그 아이의 고유한 관성이 붙어 가는 것이다. 몸은 그런 과정을 거쳐 자기 나름대로의 힘과 거기에 맞는 리듬을 만들어 생명력을 키워 가게 된다 …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우리 문명사회에서 생활하는 인간보다 눈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  (86, 117쪽)


 살아가며 늘 느끼는데, 튼튼한 몸뚱이라고 해서 더 오래 목숨을 잇지 않습니다. 튼튼한 몸뚱이인 까닭에 주먹다짐을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튼튼한 몸뚱이라서 싸움터에 붙들리는 바람에 난데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며, 튼튼한 몸이라며 마구 굴리다가 일찍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자동차에 치인다든지 어쩐다든지 하며 벼락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린 몸뚱이라지만 반드시 일찍 죽지 않습니다. 가늘고 긴 삶이란 소리가 아닙니다. 아프고 여린 몸뚱이인 분들 모두 그러하지는 않으나, 아프고 여린 몸뚱이일 때에는 더 아프거나 더 힘든 일은 하지 않습니다. 하려 해도 못하기 일쑤이지요. 언제라도 아프거나 여린 몸에 걸맞을 일을 찾고, 내 주제에 알맞게 놀이를 즐기며, 내 밥그릇에 들어맞도록 밥을 먹습니다. 넘치거나 모자라게 살지 않습니다. 꼭 알맞춤하게 살아갑니다. 넘쳐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됩니다. 아프거나 여린 사람은 아프거나 여린 몸을 노상 느끼는 터라, 아프거나 여린 몸으로 부대낄 삶을 더 깊디깊이 맞아들이곤 합니다.

 이러는 동안 아프거나 여린 마음밭은 내 마음밭뿐 아니라 이웃 마음밭을 살핍니다. 튼튼한 이웃사람 마음밭을 살피고 아픈 이웃사람 마음밭을 살핍니다. 내가 아프니 남이 아픈 줄 일찌감치 깨닫습니다. 내가 힘드니 남이 힘든 줄 미리 헤아립니다.

 아픈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싸움을 불러들이지 않습니다. 싸우는 사람이나 싸움을 불러들이는 사람은 모두 튼튼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다투지 않습니다. 다툼을 부를 까닭이 없습니다. 다투는 사람이나 다툼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모두 돈있는 사람입니다.


..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둔감하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둔감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  (122쪽)


 튼튼한 몸이란 하늘이 내린 선물입니다. 여린 몸 또한 하늘이 내린 선물입니다. 넉넉한 돈이란 하늘이 보낸 선물입니다. 가난한 살림 또한 하늘이 보낸 선물입니다. 잘생긴 얼굴과 매끈한 몸매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못생긴 얼굴과 투박한 몸매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어느 것 하나 선물 아닌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고마운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몸이든 저런 삶이든 그런 마음이든 우리한테는 둘도 없고 다시 없으며 거듭 있을 수 없는 하나 있는 목숨이거든요. 우리는 고마운 목숨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지 ‘튼튼한 목숨’이라거나 ‘돈있는 목숨’이라거나 ‘잘난 목숨’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사람이라 더 잘날 까닭이 없습니다. 서울 강남에 비싼 아파트를 갖춘 사람이라 더 뛰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건 고마운 목숨입니다. 어떠한 일을 즐기든 고마운 일꾼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대서 더 기쁜 날씨가 아니요, 네 철 따로 없이 따스하거나 시원한 날씨라서 더 반가운 날씨가 아닙니다.


.. 다른 나라에서 혈액을 수입하면서까지 의료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일본인이 생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인도나 티벳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손상을 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한테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 늙어빠져서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맑을 때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이며 존엄성을 갖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 (죽음을 앞둔 사람) 침대는 보통 큰 나무 밑에 놓아 둔다. 죽음을 밖에서 맞는다는 것은 환자에게도 행복하다. 눈을 들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보이고 새소리도 들려온다. 아침에 하늘이 밝아옴에 따라 자신의 몸도 깨어나고 새들이 날아다니며 여러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고 … 죽음을 지켜보는 경험을 쌓음으로써 자신에게도 닥쳐 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죽음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익한 죽음도 되는 것이다 ..  (204∼209쪽)


 헌책방에서 《티베트 의학의 지혜》라는 묵은 책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이 책을 2008년 6월에 만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앞서 이 책을 알아보았고, 두 달에 걸쳐 바지런히 읽어내며 우리 삶을 다시금 돌아보고 새로 헤아리고자 했습니다.

 새 목숨을 마주하기 앞서 두 달이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날입니다. 애 엄마한테든 애 아빠한테든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짧을 수 있고 길 수 있습니다.

 애 아빠 된 저로서는 길게 껴안지 못하고 짧게 손을 잡았습니다. 더 바투 다가서며 더 가까이 어루만질 수 있었다면 우리 식구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낳아 예방주사를 한 방도 안 맞히면서 튼튼하고 싱그러운 숨결을 우리 아이가 맞아들이도록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애 아빠 된 저 스스로 집식구 먹여살린다는 핑계를 내세워 돈버는 일에 더욱 마음을 쏟는 바람에 고마운 책 하나 뒤늦게 만났으면서 이 고마운 책에 깃든 고마운 앎과 삶과 빛을 제대로 삭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애 아빠 된 사람은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과 앞날까지 고마운 앎과 삶과 빛을 제대로 삭이지 못할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애 엄마 속을 썩일 뿐 아니라, “(아이 낳는 자리에서) 남성을 기피하는 이유는 남성은 고압적이고 거칠어 아기한테 자극이 너무 강하기 때문(35쪽)”이라는 말마따나 애 아빠 스스로 부드럽고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 매무새로는 다가서지 못할는지 모릅니다. 군대에 끌려가기 앞서까지 욕 한 마디 내뱉을 줄 몰랐다지만, 군대에서 아무리 군화발에 짓밟히고 개머리판이나 삽자루로 두들겨맞았다 할지라도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착하고 참되며 곱게 가다듬는 하루하루였다면, 왼뺨을 맞으며 오른뺨을 때려도 좋다고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내 삶이 예수님이나 부처님 삶처럼 될 수는 없다지만, 내 나름대로 착하고 참되며 고운 결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 한결 따스하며 넉넉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집식구하고 어울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들은 부처님의 자비라고 생각하지만 순례생활이라는 것은 아주 적은 양의 야채만을 먹으며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이다. 매일 걸어서 기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체력을 소모한다.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몸이 되어 쓸데없는 일에 쓸 기력도 체력도 남지 않아 암이 증식할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구제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순례생활을 통해 감정이 제어되어 몸에 기운이 붙게 되는 것이다. 더 살려고 한다거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이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순수한 기도를 드리며 순례를 달성하려는 마음가짐이 몸에 리듬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려는 힘에서 저항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암의 세력을 잠재우게 되는 것이다 ..  (197쪽)


 헌책방이란 참 고마운 곳입니다. 더 잘 나거나 더 못난 책이 아닌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책을 있는 그대로 갖추어 주니 고마운 곳입니다.

 헌책방에서 무슨무슨 문화공연을 하거나 이런저런 문화예술을 펼쳐야 남다르거나 기쁘거나 고맙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제 마음을 살찌우며 제 눈을 가다듬는 가운데 제 손을 어루만질 수 있는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 하나 만날 수 있으면 고맙습니다.

 헌책방은 더 밝거나 크게 넓어야 하지 않습니다. 헌책방은 더욱 많은 책을 좀더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헌책방은 여러 일꾼이 더더욱 많은 손품을 들여 책 목록을 셈틀에 집어넣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책을 바로 오늘 만나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바라는 책 하나 찾느라 여러 해를 들여도 좋은 헌책방이고, 바라는 책 하나 끝내 못 찾고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좋은 헌책방입니다.

 헌책방은 책 하나가 있어 좋습니다. 헌책방은 책 하나 만날 겨를이 있어 좋습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이 1950년대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든, 1970년대 자국이 그예 살아 있든, 1990년대 접어들며 여러모로 달라졌다 하든, 2010년대다운 또다른 모습으로 거듭난다 하든, 헌책방은 그저 헌책방입니다. 헌책방은 다원문화공간이 아니고 다원문화공간은 헌책방이 아닙니다. 헌책방은 새책방이 아니고 새책방은 헌책방이 아닙니다. 헌책방에서 새책을 다룰 수 있고, 새책방에서 헌책을 다룰 수 있겠지요. 그러나 헌책방은 헌책방 구실을 하고, 새책방은 새책방 노릇을 해야 합니다. 헌책방은 헌책방으로서 살아내고, 다원문화공간은 다원문화공간대로 살아내면 됩니다.

 헌책방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꼭 한 사람 가슴에 빛이 될 책’이 무엇인지 콕 집어서 알아채거나 잡아챌 수 없는 가운데, 언제 어느 곳에서든 알아보거나 느낄 사람이 있으리라 믿는 책 하나를 갖출 수 있으면 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헌책방 구실을 하며 새책을 다루든 문화공연을 하든 하면 됩니다.

 새책방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그때그때 새로 나오는 수많은 책을 마진율이 아닌 무르익은 알맹이에 따라 골고루 갖추어 옛책을 바탕으로 새책이 태어난다’는 반가움을 알뜰살뜰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새책방 노릇을 하며 헌책을 팔든 말든 하면 됩니다.


.. 나는 병원에서 분만하는 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탄생을 거든다’는 사명감보다는 ‘피 보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출산을 대하기 때문이다 … 지금부터 앞으로 커 갈 아이들한테도 보통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머니가 고통하고 여러 사람이 조용하도록 애써 주는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는 것은 귀중한 인생의 첫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  (42, 45쪽)


 1991년에 우리 나라에 한 번 옮겨진 《티베트 의학의 지혜》라는 책이 다시 새 목숨을 받아서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8년 6월 뒤로 이 책을 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지만 이 책을 아직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이 책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머잖아 아이를 낳을 분들이나 머잖아 시집장가를 갈 분들이나 아이를 키우는 분들한테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이 책 하나만을 찾아내어 선물해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책으로도 얼마든지 서로한테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책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착하고 참되며 곱게 살아간다면 제 삶이 서로한테 빛이 되겠지요. 책 하나로 삶에 빛을 나누어 주어도 좋고, 삶 하나로 책에 빛을 되돌려 보아도 좋습니다. 책을 선물하며 살아가도 좋고, 오순도순 도란도란 어깨동무하며 신나게 살아가도 좋습니다. (4343.6.9.물.ㅎㄲㅅㄱ)


― 티베트 의학의 지혜 (다이쿠바라 야타로 씀,박영 옮김/여강,199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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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루공화국의 비극 -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
뤽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자본주의가 아름다운 나라를 망가뜨렸나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7] 뤽 폴리에,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 나라가 아니요, 공산주의 나라도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입니다.

 돈이 없고서는 살아갈 길이 없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여기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국민소득이 꽤 높은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은 아니지만 국민소득이 제법 높은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국민소득은 높을지라도 복지와 문화와 교육은 꽤 뒤처진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번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들여다보면 적잖은 후보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내걸고 있었습니다. ‘무상급식’은 정치 후보자가 공약으로 내세울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만큼은 이런 마땅히 나라가 할 일을 나라가 마땅히 안 하면서 정치 후보자들이 선거철마다 공약으로 되풀이해서 내놓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이면서 공업국이요, 토목국입니다. 공장이 온 나라에 넘치는 한편, 숱한 토목공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너무 우악스러운 이름이라 여겼는지 사라진 ‘경부운하’와 ‘경인운하’ 토목공사는 저마다 ‘4대강 사업’과 ‘아라뱃길’이라는 새 이름으로 갈아타고 끝도 모르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농업국이 아닙니다. 농업을 북돋우지 않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환경을 살리는 유기농을 북돋우지 않습니다. 아니, 유기농을 북돋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온통 도시에 바글바글 모여들어 살아가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유기농’ 곡식으로 먹여살릴 수 없습니다. 흔한 말로 ‘남녘땅에서 쏟아지는 음식물쓰레기 부피’는 ‘북녘땅 사람들을 모두 먹여살리고 아주 많이 남을 만큼 되는 부피’라 할 만큼 남녘땅에서는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버리는 먹을거리가 많습니다. 이런 형편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훌륭한 유기농 곡식을 일군다 하더라도 버려지는 쓰레기가 잔뜩잔뜩 있으니 농사짓는 보람이 없을 뿐 아니라 참된 농사를 지을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치꾼 공약으로 ‘무상급식’은 마땅히 이루어질 수 있으나, ‘친환경’ 무상급식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 19세기에 나우루는 여전히 야자나무로 뒤덮인 땅이었다 … 나우루인들은 대개 해변에서 하는 여러 가지 놀이와 즐겁게 낚시하기를 좋아했다. 저녁이 되면 나우루인들은 함께 음식을 먹고 불가에서 밤을 지새웠다 ..  (26, 33쪽)


 자본주의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쁘다면 어떤 ‘주의’를 섬기든 착하지 않고 참답지 않으며 곱지 않은 사람들이 나쁩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섬기든 사회주의를 섬기든 공산주의를 섬기든 민주주의를 섬기든 독재정권을 섬기든 착하고 참되며 곱게 살아갈 수 있으면 나쁠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우두머리란 사람이 백 살까지 살며 백 해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착하고 참되며 곱게 살아간다면 우두머리가 누구이건 말건 아랑곳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일본 배우 미야자와 리에라는 분이 한창 젊고 사랑받으며 일하던 어느 날, 일본 총리가 마련한 잔치에 초대되어 가 있던 자리에서 “난 일본 총리가 누구인지 몰라요”라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는데, 대통령 이름을 모르든 시장이나 구청장 이름을 모르든 군수나 면장을 이름을 모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뿌리내린 동네에서 아름다이 살아가고 있으면 넉넉합니다. 좋은 정치꾼이 있건 몹쓸 정치꾼이 있건 우리 동네를 우리 힘과 슬기로 알뜰살뜰 가꾸고 있으면 넉넉합니다. 신동엽 님 시 〈산문시〉에 나오듯이 정치하는 사람들은 할 일이 너무 없어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꽂고 시인한테 찾아가 술 한잔 마시자고 굽신거릴 수 있도록 우리들은 ‘정치 생각’이 아닌 ‘삶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언제나 말썽거리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사람이 말썽거리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 한들 이 제도를 다루는 사람이 말썽거리이니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엉망이 되며 교육이 흔들립니다. 아무리 몹쓸 제도로 짓눌려 있다 한들 이 제도에 허덕이거나 휩쓸리지 않으면서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사랑스레 살아가고 있으면 착하고 참된 훌륭한 일꾼이 태어납니다.


.. 인산염은 1907년에 채굴되기 시작했다 … 20세기 초 몇 해 동안 나우루는 노천 광산이나 다름없었고, 모두가 이익을 챙겼다. 영국인들은 채굴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인들은 여전히 섬을 지배하면서 채굴 이익에 대한 배당금을 받았다 … 인광석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농업 발전을 가져오지만, 전시에는 폭발물 제조에도 쓰였다. 태평양 지역은 2차 세계대전의 전략지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1948년, 나우루인들은 인산염 채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그 총수입에서 고작 2퍼센트만을 받았다 ..  (31, 36, 41쪽)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유럽(서구)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평화로운 태평양 섬나라 삶을 보여주는 작은 책입니다. 평화로이 살아가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은 ‘식민지를 넓히려는 꿈’을 키운 유럽사람 때문에 평화에 금이 갑니다. 그 뒤로는 ‘돈을 얻으려는 꿈’을 키우던 또다른 유럽사람과 일본사람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평화에 얼룩이 집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동안 당신들을 해코지하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총칼과 술과 돈 때문에 스스로 평화를 허물고 맙니다.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이라는 책은 온누리 사람들이 나우루공화국에서 콩고물을 빼앗아 먹으면서 나우루공화국 몇 천 사람들을 엉망진창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은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란 얼마나 끔찍한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가여우며, 나눔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슬픈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나우루공화국 사람들은 흰둥이들이 가르쳐 준 대로 당신들 나라를 이룬 ‘인산염’을 캐면서 당신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이렇게 당신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거머쥐었습니다. 고작 1만조차 안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에서 1억이 넘는 사람들 나라보다 커다란 돈을 움켜쥐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 한 번 놀리지 않으며 놀고먹는 삶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 근심걱정 없이 ‘쓰고 버리는’ 삶을 서른 해 동안 넘실넘실 펼치다가 폭삭 주저앉습니다. 돈으로 뜨고 돈으로 내려앉습니다.


.. 자기 땅에서 나는 인산염이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들판에 양분을 제공하는 동안, 나우루는 부서지고 구멍이 난 자국 땅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 나우루 지도자들의 행태는 유명 스타들의 변덕과 비슷했으며, 장관들은 때로 자기네 금고와 국고를 혼동하기도 했다 … 사람들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할 수 없었는데, 어느 가족이건 정부에 한 발씩은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독립 이후 나우루가 이리저리 뒤얽힌 여러 건의 해외 투자와 결실을 맺지 못한 프로젝트 때문에 얼마나 손실을 입었는지 확인할 길은 거의 없다. 사실 돈은 결코 나우루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제대로 그런 손실을 계산해 본 적도 없었다. 일부 오스트레일리아 전문가들은 누적 손실액이 20억 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섬에 사는 거주민이 7000명을 조금 넘는데 말이다 ..  (65, 69, 108쪽)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는 시장이 바뀝니다. 예전 시장님은 지난 여덟 해에 걸쳐 인천땅 모든 곳을 ‘재개발-재정비-도시정화’라는 이름을 붙여 갈아엎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갈아엎으며 2014년에는 아시안게임을 치른다 하고, 갯벌을 메운 땅에 151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있는 한편, 우리 나라에서 동대문운동장보다 역사가 깊던 가장 오래된 야구장(건물 나이는 동대문운동장이 더 많았으나 역사는 동대문운동장보다 깊던)을 손쉽게 허문 데다가, 앞으로는 더 큰 돈을 들여 아파트숲을 일구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새로 시장이 되신 분이 유세를 하면서 우리한테 나누어 준 공약자료집을 들춥니다. 이분은 30조 원을 들여 참된 재개발을 하겠다고 밝힙니다(예전 시장님은 10조 원을 들여 당신이 밀어붙이던 재개발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새 시장님은 예전 시장님이 내세운 ‘뉴타운’은 모두 엉터리라 하면서 당신은 ‘웰타운’을 세우겠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2024년에 인천에서 올림픽을 치르도록 하겠다고 붙입니다.

 예전 시장님은 ‘문학월드컵축구장’ 하나만 갖고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유치를 이끌어 냈습니다. 다른 모든 경기장은 새로 짓는다고 하면서 2014년에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른다고 밝혀 왔습니다. 다가오는 2014년에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를 경기장이 다 만들어지면, 경기를 치른 뒤에는 이 경기장들이 쓰일 데 거의 없이 놀고 있을 테니까, 2024년에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노릇이겠지요. 그러면 2024년 올림픽을 내다보며 인천과 부산이 서로 다툼질을 해야 할까 궁금하군요.


.. 나우루에서는 당뇨가 위험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으며, 이 병의 근원은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돈이다. 인산염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었으며, 집에서 배달 음식만 시켜 먹고 차로만 움직이는 등 신체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다 … 채 30년도 안 돼 나우루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다 …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비디오 한 편 빌리면 그만인데, 굳이 다 같이 모여 전통 축제를 준비하는 데 누가 관심이나 있었겠어요?” ..  (143, 150∼151쪽)


 운동경기장 하나를 짓는 데에는 수천 억원이 듭니다. 운동경기장 몇 개를 짓고 큰 세계경기대회를 치르면 일자리라든지 홍보관광이라든지 무어무어니 하면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바로 자본주의 이야기입니다.

 운동경기장 하나를 지을 돈이면 ‘무상급식’뿐 아니라 ‘무상교육’과 ‘무상복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세계경기대회를 치를 운동장을 짓는 어마어마한 돈이라면 인천이라는 도시 하나뿐 아니라 나라를 통틀어 무상급식과 무상교육과 무상복지를 이루고 남습니다. 급식과 교육과 복지를 나라돈으로 아름다이 뒷배하는 동안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애써 돈을 들이지 않아도 좋은 일을 이루고 좋은 꿈을 이루며 좋은 삶을 이룹니다.

 우리 나라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반드시 돈으로만 모든 일을 꾸리려 한다든지, 더 커다란 돈을 쏟아부어 뭔가를 꾀한다든지 해야만 하지 않습니다. 돈에서 홀가분하면서 자본주의를 펼칠 수 있고,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자본주의를 꽃피울 수 있습니다. 돈이 없이 자본주의가 뿌리내리도록 할 수 있으며, 돈벌이 아닌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살찌울 수 있습니다.


.. 두바이는 겉으로 보기에 낙원이나 다름없다. 돈, 호화 관광, 그리고 거대한 규모 … 돈에 압도당한 나우루인들은 결코 자신들의 땅과 문화를 보존할 줄 몰랐다 ..  (172∼173쪽)


 평화로운 섬나라 나우루는 대통령이 없던 지난날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사랑스러운 섬나라 나우루는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없던 지난날 더없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살기 좋은 섬나라 나우루는 공장이고 회사이고 학교이고 없던 지난날 그지없이 살기 좋았습니다. 아름다운 섬나라 나우루는 돈이 없던 지난날 해맑게 아름다웠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며 국회의원이 있으며 공장과 회사와 학교가 수두룩하고 돈 또한 넘치도록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얼마나 평화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살기 좋거나 아름다운 나라일는지 궁금합니다. (4343.6.3.나무.ㅎㄲㅅㄱ)


 ┌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2010)
 ├ 글 : 뤽 폴리에
 ├ 옮긴이 : 안수연
 └ 책값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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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한 삶터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6] 케빈 스미스, 《공기를 팝니다》



 다가오는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를 생각할 때마다 슬프고 괴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몇 달 앞서부터 선거하는 날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 ‘후보자가 내놓는 공약’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에서 듣는 이야기라든지 신문과 방송에 가득 넘치는 이야기라든지 선거운동원이 내미는 이름쪽에 담긴 이야기라든지, 어느 대목을 보더라도 이이는 무엇을 이루고자 하며 저이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무슨 정당 후보가 뽑혀야 한다거나 안 뽑혀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무슨 연합이니 대연합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 다음으로 많습니다. 연합을 한다면 왜 연합을 하고, 연합을 하며 내놓으려는 정책이 무엇이며, 이 정책은 우리들한테 어떻게 도움이 되거나 피와 살이 될는지를 밝힐 노릇입니다. 하다못해 ‘4대강 반대’를 하더라도 ‘그러면, 4대강을 반대한 다음 무얼 하려고?’ 하는 생각조차 듣기 어렵습니다. 4대강 반대를 이룰지라도, ‘4대강 사업과 맞먹는 또다른 큰돈 들일 토목공사 계획’만 춤을 추고 있습니다.

 머나먼 다른 동네보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시장 후보로 네 사람이 나왔는데 5월 28일까지 후보자 공약집이 집으로 오지 않고 있습니다. 동네 골목길 담벼락에 후보자 포스터가 붙은 지 며칠 되지 않습니다. 시장 후보자 운동원이든 구청장 후보자 운동원이든 정당에 따라 수십 사람이 줄을 맞춰 늘어서면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면서 ‘기호 몇 번’만 외치고 있습니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름쪽하고 정책홍보지를 주워서 들여다봅니다. 지난 여덟 해에 걸쳐 시장이 된 분하고 새롭게 시장을 맡겠다고 하는 분하고 정책이 똑같습니다. 다른 대목이라면 예전 시장님은 ‘뉴타운 재개발’을 외치고, 새로 시장이 되고자 하는 분은 ‘웰타운 재정비’를 외칩니다. 두 분 모두 수십 조에 이르는 돈을 어딘가에서 뽑아내어 ‘동네를 온통 아파트로 바꾸는 토목공사’를 벌이려는 꿈이 당신들 공약이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예전 시장님은 인천이 교육성취도가 3위라고 내세우며 당신이 교육을 아주 잘 이끌었다고 밝히고, 새로 시장이 되고자 하는 분은 인천이 교육성취도가 뒤에서 2등이라고 말하며 당신이야말로 인천 교육을 책임질 사람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이런 수치이든 저런 통계이든 두 분 모두 다시금 몇 조를 들여 사교육을 뜯어고치고 교육지원금을 마련하며 ‘학력성취도’를 높이려는 데에만 눈길을 둡니다. 그러니까, ‘전국 일제고사 성적’이 인천이 1등을 거머쥘 수 있도록 모든 뒷배를 아끼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두 분 공약집에 실려 있습니다.


.. 오늘날, 시장에는 탄소 상쇄라는 새로운 면죄부가 등장했다. 현대의 면죄부 판매인인 클라이미트케어, 카본뉴트럴컴퍼니, 카본클리어 같은 탄소 상쇄 기업들이다. 스스로 자신을 ‘생태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이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프로젝트로 ‘착한 기후 보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매로 발생한 배출권은, 다시 말해 상쇄 기업이 만들어낸 ‘착한 행위’는 돈은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책임질 시간과 여유가 없는 오늘날의 죄인들에게 소매가격으로 팔려 나간다 ..  (14∼15쪽)


 요즈음 도시 초등학교는 한 반 아이들 숫자가 서른∼서른다섯쯤이라고 합니다. 아직 아이들 숫자가 더 줄어야 하지만 이만 한 숫자라 하더라도 고작 열 몇 해 앞서를 헤아리면 대단히 발돋움한 셈입니다. 우리는 얼마 앞서까지 한 반에 쉰 예순 일흔 여든을 때려넣고 몽둥이찜질로 아이들을 닦달해 왔습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숙제와 성금걷기와 체벌로 아이들이 아이들답지 못하게 짓눌러 왔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지난날과 견주면 몽둥이찜질과 손찌검에서 홀가분합니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드물었던 갖가지 과외와 학원과 영어와 한자와 방과후수업 따위로 놀 겨를이 없습니다. 그나마 집안일 거들기에 짬을 낼 수조차 없습니다. 초등학교라면 초등교육을 할 노릇이지만, 뒷날 더 나은 일류대학에 들어갈 예비 수험생이 되도록 내몰기만 합니다. 중학교라면 중등교육을 하고 고등학교라면 고등교육을 할 노릇인데, 어김없이 대학교만 바라보는 수험생이 되도록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른바 일류대학교 학생이 되어 졸업장을 움켜쥐도록 등을 미는 까닭이란, 나중에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 연봉 많이 받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착하고 참되고 고운 어른으로 크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1등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뽑든 시장을 뽑든 국회의원을 뽑든, 우리들은 늘 ‘1등만 생각하는’ 틀에 맞추어지고 맙니다. 반드시 1등이 되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듯 생각합니다. 1등이 안 되어 떨어지더라도 ‘생활정치’를 알차게 하면서 ‘정치꾼이 제몫을 하도록 지켜보는 민주주의’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허울좋은 사탕발림처럼 들먹이는 ‘아름다운 꼴찌’입니다. 좋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야 사회가 나아질 줄 알고 있는데, 좋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면 나쁘지는 않으나, 우리가 정작 해야 할 일이란 우두머리보다 바로 우리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거듭나는 일입니다.


.. 영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흡수하려면 해마다 새로운 플랜테이션이 1만 제곱킬로미터나 필요하다 … 북반구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립화’하려고 남반구에 대규모 단일 조림 플랜테이션을 조성하는 것을 두고 ‘탄소 식민주의’라고 꼬집었다. 이것은 마치 북반구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를 유지하려고 남반구를 착취하는 것하고 같다 … 기후변화에서 가장 정의롭지 못한 일은 기후변화 책임이 작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 불평등한 세계 경제 구조 안에서 북반구 기업들은 남반구 프로젝트를 수행해 수출 보조금 같은 더 큰 재정적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 또 값싼 토지와 노동력, 원자재도 이용할 수 있다 … 결국 탄소 상쇄 프로젝트는 덜 ‘개발된’ 남반구를 ‘개선’시킨다고 선전하는 동시에 ‘착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  (53, 58, 64∼65, 66쪽)


 《공기를 팝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자그마한 이 책에는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하고 적혀 있습니다. 한마디로 갈무리하자면,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미친날씨를 막을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었기에 나라가 더 망가지는 듯 보이지만, 이명박 씨 아닌 다른 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4대강이라는 이름이 아닐 뿐 수많은 토목공사 재개발 계획이 공약으로 가득 넘치고 있는 탓’에 이 나라는 언제나 망가지는 길을 걷습니다. 우리 스스로 탐욕을 부리고 있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욕심을 줄이지 않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연봉을 꿈꾸고, 나 홀로 정규직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브래드 피트한테 ‘나무심기 쇼’나 ‘환경사랑 퍼포먼스’ 같은 잔재주를 부리라고 등을 떠밀 노릇이 아니라, 브래드 피트한테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당신 스스로 조용하면서 아름다이 할 만한 참된 ‘나무심기(또는 텃밭 일구기)’를 하거나 ‘자가용 덜 타기나 안 타기’를 하는 데부터 올바르게 살도록 손을 맞잡을 노릇입니다.

 우리 삶은 ‘쇼’도 아니고 ‘퍼포먼스’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은 하루하루 더없이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언제나 고마움과 기쁨을 듬뿍 느끼면서 내 둘레 터전을 곱게 가다듬을 일입니다.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탄소 상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골머리 앓지 말고, 내 삶에서 ‘쓸데없는 탄소 만들기’를 안 하자면 내 삶을 어떻게 바꾸고 내 이웃과 동무 삶을 어떻게 껴안아야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 탄소 상쇄처럼 가짜 해결책에 스타가 동원되면서, 효과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사회 변화가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인식하는 의식의 전환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탄소 상쇄에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해 버리는 것이다 … 탄소 상쇄 프로그램이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정부와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아주 쉽게 희석시키면서 시종일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 기업이나 개인이 스스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의심스러운 ‘숫자 놀음’과 ‘상쇄’를 통한 그린워시가 아니라 에너지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활동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훨씬 낫다 ..  (104, 107, 125쪽)


 열 해쯤 지난 일인데, 지난날 ㅁ방송국에서 ‘책을 읽자’는 교양홍보 방송을 하면서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도서관’은 방송국이 시청율을 높이고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거두어들여서 세울 시설이 아닙니다. 지자체마다 엉뚱하게 ‘보도블록 갈아엎기’를 하지 않아도 이 돈만으로 넉넉히 도서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 보도블록 갈아엎을 돈이면 해마다 온 나라에 도서관 수천 곳을 세울 수 있어요. 자전거길은 마땅히 내야 하지만 인천시처럼 잘못된 계획을 얄궂게 밀어붙이며 수백 억을 길바닥 갈아엎기에 쏟아부으면 안 됩니다. 수백 억이란 돈(500억이 조금 넘는 줄 압니다)은 도서관뿐 아니라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어느 만큼 이룰 수 있는 몹시 큰돈입니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토목공사를 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환경 무너뜨릴 탄소’는 얼마나 많았을까요. 환경사랑을 외치며 밀어붙인 ‘자전거길 토목공사’는 외려 환경을 무너뜨립니다. 4대강 사업이 큰 말썽거리라면, 겉으로는 환경사랑이요 일자리 만들기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구석 환경사랑이 아닐 뿐더러 올바르지 못한 일자리 만들기인 데다가 일자리란 고작 ‘삽 들고 땅 파헤치는’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살리지 못하고 사람을 살리지 못하며 사랑을 살리지 못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붓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아주 몹쓸 짓거리입니다.

 《공기를 팝니다》라는 작은 책은 바로 이 대목을 짚는 살뜰한 읽을거리입니다. ‘탄소 배출권’이라는 새로운 장사거리만 만드는 자본주의 얼거리에서는 우리 삶과 삶터와 사람이 하나도 아름다워질 수 없음을 까밝히는 읽을거리입니다.

 다만, 아쉬우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공기를 팝니다》라는 책은 ‘탄소 배출권’ 장사를 하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 장난질을 찬찬히 파헤치며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회 지식을 얻은 우리들은 우리 삶을 어떻게 돌보거나 가꾸면서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가를 일깨우지 못합니다. 거짓스러운 ‘환경사랑 장사꾼’ 검은 속셈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기 때문에, 이 읽을거리 하나에 매여서는 안 되고, 이 읽을거리를 덮고 나서 내 터전을 헤아리고 내 동네를 살피며 내 나라를 돌아보도록 눈길을 틔워야 합니다. 나 스스로 ‘1등주의 경쟁’에 파묻히지 않도록 내 삶을 다스리면서, 다가오는 선거에서라도 한 표 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표 권리를 쓴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여느 때 여느 자리에서 올바른 민주주의 길을 걸어가도록 내 삶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깨끗한 삶터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은 돈으로 베풀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돈으로 키울 수 없습니다. 착한 책은 돈으로 엮을 수 없습니다. 몸에 알맞을 밥 한 그릇은 돈으로 장만할 수 없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돈으로 심거나 가꿀 수 없습니다. 맑은 물과 바람은 돈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4343.5.28.쇠.ㅎㄲㅅㄱ)


 ┌ 《공기를 팝니다》(이매진,2010)
 ├ 글 : 케빈 스미스
 ├ 옮긴이 : 이유진, 최수산
 └ 책값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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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 (양장) - 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없을까?
이지훈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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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골프장이 있는 까닭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3] 이지훈,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제주 삼다수’ 먹는샘물 회사는 한 해에 31만 톤쯤 땅속물을 길어서 쓴다고 합니다. 제주섬에 있는 골프장들은 한 해에 1812만 톤쯤 땅속물을 퍼내어 쓴다고 하고요. 제주 삼다수 먹는샘물 회사에서 쓰는 물보다 제주섬 골프장 한 곳이 쓰는 땅속물이 훨씬 많다는군요. 그렇지만 이런 물씀씀이를 제대로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매우 드뭅니다.

 어제 낮에 헌책방마실을 하려고 동인천역에서 빠른전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식구 옆에 나란히 앉은 젊은 두 사람이 ‘지구온난화’와 ‘물 부족 국가’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더군요. 칭얼대는 아이를 보느라 바쁘면서도 용케 옆자리 젊은이들 목소리가 귀에 하나하나 들렸습니다. 젊은이들은 물이 그렇게 모자라다는데 제주 삼다수는 그렇게 물을 퍼올리면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 다음으로 골프장에 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젊은 당신들이 가는 골프장에서 물을 어느 만큼 쓰는지, 또 농약이나 풀약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를 하나도 모를까요. 아마 하나도 모르니 이런 이야기를 조곤조곤 주고받지 않느냐 싶습니다.

 물 이야기를 좀더 살피고 싶다면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그물코,2009)이라는 훌륭한 책이 하나 있고, 《주식회사 물》(달팽이,2007) 같은 속깊은 책이 하나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살짝살짝 나오는 겉핥기 이야기로는 우리를 둘러싼 물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구가 차츰 뜨거워지는 까닭이 어디에 있고, 우리 나라에 물이 모자라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옳게 살피고 바르게 읽으며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국립공원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애써 설치해 놓은 공원의 자동차 도로를 뜯어내고 숲속에 그림처럼 지어 놓은 숙박시설을 공원 밖으로 이전했다 … 국립공원의 존재 의미가 ‘국민이용 편의’에서 ‘자연보전 중심’으로 분명하게 옮겨간 것이다 … 국립공원청의 책무가 “손상되지 않은 자연/문화자원의 ‘보존’”이기에 그들은 이를 훼손하는 어떠한 인공시설물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중 보존해야 할 대상에는 생태계도 있지만 ‘경관’도 있다. 그렇기에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  (14, 19쪽)


 우리 집 아이는 고기를 안 먹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아주 잘게 씹어서 주면 때때로 받아먹기는 하지만, 아이는 김치를 가장 좋아합니다. 애 엄마와 애 아빠가 따로 고기를 즐겨먹지 않을 뿐더러 고기를 마련하여 밥을 차리는 일이 없기도 하지만, 어쩌다 바깥에서 고기를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조차 아이는 고기는 아예 쳐다보지 않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아이가 튼튼히 자라려면 고기도 먹어야 할 뿐 아니라 많이 먹어야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고기다운 고기가 있는지를 살피는 어른은 없습니다. 뭍고기들이 얼마나 많은 항생제를 먹으면서 좁아터지고 지저분한 시멘트 우리에서 끔찍하게 길러지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생제 중독》(시금치,2005)이나 《우리 안에 돼지》(숲속여우비,2010) 같은 책들을 찾아서 읽으면 좋으련만, 이런 책을 읽은 분들이라 할지라도 우리 입맛을 달짝지근하게 꼬드기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몹쓸 먹을거리인지를 느끼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엠에스지’를 안 넣는다고 다들 크게 써붙이고 있으나, 이런 딱지를 써붙이기 앞서는 모두들 엠에스지를 써 왔으며 갖가지 첨가물과 화학색소를 잔뜩 집어넣고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인 먹을거리란 가게에 없고, 자연 그대로를 받아먹을 터전이란 도시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자연스러울 수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어떻게 따지느냐면서 항생제이든 농약이든 사료이든 첨가물이든 화학색소이든 무어든 혀끝에 따라 낼름낼름 사먹거나 사먹이는 우리들 살림살이입니다. 옳게 마련하여 내다 파는 생협 물건이 비싸다고 하지만 이제는 여느 공산품 물건하고 거의 같은 값일 뿐더러 우리 스스로 옳게 마련하여 내다 파는 생협 물건을 사랑하고 아낄 때에 비로소 여느 공산품 물건 또한 허투루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음을 살피지 않는 우리들 생각밭이요 매무새입니다.


.. (우리 나라는) 1986년 12월 ‘자연공원법’이 개정되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설립 근거가 마련됐으나 관리공단은 ‘건설부’ 산하에 마련됐다.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주무부서가 ‘건설부’라니. 1991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주무부서가 ‘건설부’에서 ‘내무부’로 바뀌었다가 1998년 들어서야 비로소 ‘환경부’로 이관됐다 ..  (28쪽)


 ‘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없을까?’라는 작은이름을 달고 나온 책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를 읽습니다. 글쓴이 이지훈 님은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방문연구원으로 한 해 다녀온 나날을 밑거름 삼아 미국땅 국립공원을 요모조모 살펴보았고, 그동안 한국땅 국립공원을 돌아본 나날을 견주면서 우리네 국립공원이 나아갈 올바른 길을 밝히고자 애씁니다.

 책에 붙인 큰이름과 작은이름을 읽는다면 이 책 고갱이는 한 줄로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첫째, 한국 국립공원은 미국 국립공원을 보며 배워야 합니다. 둘째, 한국이 우러러 마지않는 미국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하나도 없으나 우리 나라에는 많이 있고 많이 새로 놓으려고 아둥바둥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미국과 한국은 이토록 다를까요. 미국을 섬기고 받든다고 하는 한국사람들은 왜 미국이 훌륭히 잘하는 모습만큼은 터럭만큼이나 배울 생각을 안 할까요. 왜 한국사람들은 한국에 도움이 되는 미국사람 정책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한국에 도움이 안 되는 미국사람 정책만을 두 손 받들어 모시려고 할까요.

 정치하는 사람과 공무원이라는 사람들 탓인지요? 배운 사람들 탓인지요? 기자들과 광고지 같은 몇몇 신문들 탓인지요? 썩어문드러진 기득권과 수구 무리들 탓인지요?

 케이블카를 놓을지라도 아무도 안 탄다면, 한국땅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건설부나 ‘있던 케이블카도 없앱’니다. 그런데, 한국땅에서 생각있는 사람이나 생각없는 사람이나 케이블카가 ‘짠!’ 하고 놓이면 ‘입으로는 나무라지만 몸으로는 케이블카를 탑’니다. 여느 사람이든 지식인이든 운동가이든 활동가이든, 입과 몸이 따로 놉니다.

 정치를 배우든 경제를 배우든 문화나 예술을 배우든 미국으로 비행기 타고 날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국립공원을 배우고자 미국으로 날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애써 배운 좋은 이야기들을 우리 땅 우리 이웃하고 알뜰살뜰 나누고자 힘쓰는 분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라야 할 미국이라면 옳게 나무라고 배워야 할 미국이라면 옳게 배울 일입니다.


.. 현재 이 골프장은 공인된 ‘오듀본 협력 조수 보호구역 프로그램’에 가입되어 있으며, 미국의 몇 안 되는(1% 미만의) ‘유기농 골프 코스’ 중 한 곳이다. 여기서는 재활용 물만을 사용하며 어떤 종류의 비료와 농약,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는다. 잡초는 순전히 제초기와 맨손만을 사용하여 제거한다. 업자가 18홀로 확대시키려 했으나 공원 당국은 허가해 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어떠한 생태적 위험도 없는 골프장인 셈이다. 이러한 역사를 모른 채 국립공원에 골프장이 있는 모습만 보고 이것이 보존과 이용의 조화라는 실용주의적 보존정책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한다면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로서는 여간 황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  (48쪽)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를 쓴 이지훈 님은 2008년 3월에 교육방송에서 보여준 ‘세계의 자연 : 미국의 국립공원’이라는 ‘특집 다큐프라임’을 보았다고 합니다. 국립공원 공부를 할 뿐 아니라 미국에 찾아가서 미국 국립공원을 배우고 있던 글쓴이로서는 아주 반기면서 기쁜 마음으로 이 ‘특집 다큐프라임’을 보았다는데, 참으로 대단한 품과 돈과 사람을 들인 놀라운 작품인 이 방송이 외려 사람들한테 엉뚱한 생각을 불러일으킬까 걱정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교육방송 풀그림은 ‘이용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를 들먹이면서 그릇된 정보와 어설픈 취재로 뚱딴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골프장은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이 되기 앞서부터 있던 골프장이요, 더욱이 우리 나라 골프장들처럼 갖가지 농약과 풀약을 잔뜩 치는 골프장이 아닌 ‘유기농 골프장’임을 헤아리지 않았거든요.

 우리 지식사회를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텐데, 올바르고 알맞게 좋은 길을 함께하자고 나서는 자리에서조차 좀더 속깊이 파고들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다큐멘터리이든 다큐프라임이든 그럴싸한 그림으로 그럴싸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 눈길을 둘 노릇이 아니라, 올바른 그림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 눈길을 둘 노릇입니다. 시청자가 10만이 되어야 보람이 있는 방송이 아닙니다. 시청자가 9만이어도 되고 5만이나 1만이어도 됩니다. 아니 1천이나 1백이어도 괜찮습니다. 시청자가 100만일지라도 100만 가운데 내 삶을 바꾸며 거듭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부질없습니다. 시청자가 1천 사람일지라도 이 가운데 열 사람이나 백 사람이 스스로 내 삶을 바꾸며 거듭나려 했다면 더없이 보람있습니다.

 많이 팔리거나 잘 팔리는 책이 뜻있는 책이 아니라 제대로 읽히거나 잘 읽히는 책이 뜻있습니다. 이름난 사람이 좋은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좋은 삶입니다. 크고 많은 돈이 즐거운 삶이 아니라 살갑고 넉넉하며 따뜻하여 사랑스러울 때에 즐거운 삶입니다.

 국립공원이란 ‘여기만 지키자’는 다짐이 아닙니다. 국립공원이란 ‘여기부터 건사하자’는 다짐입니다. 국립공원부터 올바로 건사하여 우리 둘레 모든 삶터를 슬기롭고 아름다이 건사하자는 첫머리 다짐입니다.


.. 특정 지역이나 공간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그곳이 마치 ‘자신의 소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주인 의식을 갖고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책임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됐으리라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칠 경우’ 문제가 된다. 국립공원만 하더라도 국민들의 공적 자산인데, 그곳을 관리하는 기관의 직원들이 스스로가 마치 회사 주인이자 주주인 양 행세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러다 보니 국립공원의 ‘주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사무소(직원)가 되고, 탐방객은 ‘객’으로 취급되어 버린다. 이 ‘주인’은 객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지, 소중한 자연환경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데 주력한다 ..  (149∼150쪽)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를 한 번 읽고 나서 차근차근 한 번 더 되새겨 봅니다. 처음 읽을 때에 밑줄을 그은 대목을 살피니 몇 군데 없습니다. 밑줄을 그은 대목을 찬찬히 거듭 되읽으니 책 한 권을 통틀어 똑같은 이야기를 두어 차례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글 첫머리부터 맺음말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구나 싶습니다. 좀더 많은 자료와 정보를 보여주고자 애쓴 땀이 엿보이지만, 국립공원 이야기는 더 많은 자료와 정보가 없이도 얼마든지 알차고 훌륭히 선보일 수 있을 텐데, 글쓴이는 이 대목을 놓치고 있습니다.

 글쓴이 이지훈 님이 미국땅 모든 국립공원을 좀더 오래 두루 돌아다녔다고 해서 책이 더 알찰 수 있지는 않습니다. 딱 한 군데 국립공원만 찾아보았다 할지라도 이 한 곳에서 당신 가슴을 싸하게 적신 모습을 적바림할 수 있으면, 당신 마음밭을 넉넉히 북돋운 모습을 조곤조곤 들려줄 수 있으면, 국립공원이 있기에 당신 넋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음을 지식조각이 아닌 삶으로 보여줄 수 있으면 됩니다.

 꼭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만 지켜야 할 아름다운 터전이 아닙니다. 반드시 국립공원만 알뜰히 지켜야 할 자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터전 어디나 아름다이 건사해야 합니다. 우리 삶터 어디나 알차게 가꾸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름다운 목숨빛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푸나무 모두, 자연 터전 어디나, 제 결을 고이 보듬을 때에 살기 좋은 이 나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3.5.6.나무.ㅎㄲㅅㄱ)


 ┌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한울,2010)
 ├ 글 : 이지훈
 └ 책값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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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5-0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책 2권이 보관함에 추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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