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시골에 ‘농업고등학교’가 없을까
 [푸른책과 함께 살기 98] 요시노 겐자부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 책이름 :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 글 : 요시노 겐자부로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12.6.28.)
- 책값 : 12000원

 


  아이 둘을 재웁니다. 뜨거운 여름 한낮 햇살을 쬐며 면 소재지 우체국을 함께 다녀온 다섯 살 첫째 아이는 만화영화를 보고는 그동안 쌓인 졸음을 참지 못해 아버지 자장노래를 들으며 살포시 잠듭니다. 자전거수레에서 넉넉히 잔 둘째 아이는 집에서 마루에 시원스레 응가를 누고는 한손에 부채와 파리채를 갈마들어 쥐며 이래저래 온 집안을 쏘다니며 놀다가 천천히 잠듭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아버지도 한동안 같이 잡니다. 햇살이 저녁으로 넘어가는구나 하고 느끼며 일어납니다. 마당에 넌 옷가지를 걷습니다. 마당에 넌 이불도 걷습니다. 여러모로 집일을 건사합니다. 이러구러 삼십 분 즈음 지나 셈틀을 켜려 하는데 두 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이제 아이들은 자고 싶은 만큼 잤습니다.


  잠자리를 털고 나란히 일어난 두 아이를 일으켜 ‘조금 걷자’고 얘기합니다. 만화영화를 보여 달라 하는 첫째 아이한테 바깥에 다녀와서 보자고 달랩니다. 세 사람은 저녁햇살을 누리며 마을 어귀로 걷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랜 빨래터로 갑니다. 빨래터에서 셋이 물놀이를 합니다.


  마을 빨래터는 두 군데 있습니다. 빨래터에는 멧골에서 흐르는 물이 네 철 끊이지 않고 시원스레 흐릅니다. 집집마다 물꼭지가 달린 요즈음에는 모두 집에서 빨래하고 물을 쓰지만, 마을에서 아이들이 자라던 때에는 모두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까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여름철 물놀이를 즐겼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 앞에는 흥양초등학교가 있는데, 1990년대에 문을 닫았지만, 아마 이곳이 문을 닫을 무렵 집집마다 물꼭지가 들어왔을 테고, 물꼭지가 들어오면서 빨래터는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우라가와가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볼 때는 그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눈빛에서 증오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장난을 친 아이들은 씁쓸해진다. 장난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 “그럼 이번에는 집이 가난하다는 걸 떠나서 우리가와하고 너희들이 다른 점은 뭘까?” … 가난해서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 사람답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증거란다 ..  (37, 114, 117쪽)


  스물아홉 집이 살아가는 마을에 아이가 있는 집은 오직 우리 집입니다. 우리가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오며 ‘마을에 아이들 목소리’가 흐릅니다. 우리 마을에도 옆 마을에도 옆옆 마을에도 어린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면 소재지로 가야 비로소 어린이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면 소재지에서 구경하는 어린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열 해쯤 지나면 거의 모두 사라질는지 몰라요. 아직까지 시골 면 소재지 언저리에 아이들이 있다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한결같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삶’으로 바뀌리라 생각해요.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은 군민 거의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습니다. 관공서는 있으나 여느 회사나 공장이 거의 없어요. 골프장도 기차역도 따로 없으며, 이른바 ‘돈을 번다는 시설’이 없는데, 달리 말하자면 ‘돈을 벌되 공해를 내뿜는 위해시설’이 없습니다. 고흥사람은 거의 모두 땅과 하늘과 바다와 햇볕과 나무와 풀과 바람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고흥이라는 곳은 오롯한 시골이요, 시골사람답게 시골내음이 솔솔 피어나는 터전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골 고흥인 만큼, 고흥에는 ‘농업고등학교’나 ‘농업중학교’가 있을 법합니다만, 막상 농업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인문계 학교 아니면 실업계 학교인데, 실업계 학교는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솜씨를 가르칠 뿐이에요.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흙이나 바다를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이끌지 못해요.


  저희는 잘 모릅니다만, 우리 보금자리 고흥뿐 아니라, 고흥하고 이웃한 보성이나 장흥도 엇비슷하리라 느껴요. 참말 시골이지만, 시골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한테 농업이나 어업을 가르치지 못해요. 시골학교 교사가 학생한테서, 또 학부모한테서 농업이나 어업을 배우면서 아이들이랑 삶을 나누려 하지 못해요.


.. 마지막 열쇠는 코페르, 바로 너 자신이란다. 너 말고는 아무도 없어. 네가 인생을 살고,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체험하면서 생각한 것을 위대한 사람들이 남긴 지혜와 견주어 볼 때 비로소 그 사람들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느 때나 네가 느낀 진심, 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란다 … 네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또는 세상이 인정하는 대로만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자립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 진심으로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야 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도,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때도 그 감정은 언제나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단다 ..  (50, 52쪽)


  한국에서 ‘농업고등학교’ 이름을 건사하는 학교가 아직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농업고등학교치고 아이들이 농사일을 배우는 데는 거의 없습니다.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씩씩하게 흙일꾼으로 살아가는 아이가 매우 적습니다.


  요즈음 한여름을 맞이해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전기 예비율’이 아주 낮다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참말 도시는 전기를 많이 쓰니까 나날이 전기를 걱정할밖에 없어요. 그러나, 전기를 많이 쓰는 도시는 스스로 전기를 빚지 않아요. 적어도 아파트 옥상에 햇볕전지판을 붙이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이든 높은 건물이든 유리창이 햇볕전지판 노릇을 하도록 과학기술을 일구지 않아요. 조금만 생각하고 조금만 과학기술을 슬기롭게 쓴다면, 자동차도 지붕뿐 아니라 앞뒤 유리를 햇볕전지판 노릇을 하도록 만들면서 기름(석유) 아닌 햇볕으로 구르도록 할 수 있어요.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 찻길을 가득 메운 거리등불도 햇볕으로 켜지도록 할 수 있어요. 빗물을 받아서 쓰는 길을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도시사람 똥오줌이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좋은 거름이 되도록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도시사람은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며 보살피는 길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아요.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 같은 도시에는 아예 농업고등학교는 생기지 않아요. 시골에도 농업고등학교가 없지만, 도시에도 농업고등학교는 없어요.


  왜 시골 아이가 몽땅 도시로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노릇을 해야 할까요. 왜 시골 아이가 흙일꾼이나 고기잡이가 되면 안 되고, 모조리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일해야 할까요. 왜 도시 아이 가운데 한둘이라도 시골로 가서 흙일꾼이나 고기잡이가 되도록 이끌지 않을까요. 왜 대학교 농업과학 학과 아이들은 대학교를 마친 다음 시골로 가서 흙일꾼이 될 마음을 품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출판사이든 신문사이든 도시에만 있어요. 시골에는 없어요. 농민이 읽는 신문을 만든다는 사람도 도시에 신문사가 있을 뿐, 스스로 시골에서 일하면서 신문을 만들지는 않아요. 농업이나 어업을 다루는 공무원도 서울이나 커다란 도시에서 건물에서 펜대나 셈틀만 붙잡을 뿐, 정작 흙이나 물을 만지면서 시골사람이랑 어깨동무를 하지 않아요.


.. 느티나무 위로  펼쳐진 밤하늘은 빨려들 것처럼 짙은 쪽빛이었다. 별은 바늘 끝에 색을 묻혀 하늘에 찍어 놓은 것처럼 높은 곳에서 작게 빛나고 있었다 … ‘너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당연히 분자와 분자가 교류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따뜻하게 만나야 한단다’ …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 감정으로 친절을 베풀고,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단다’ ..  (65, 88∼89쪽)


  저녁을 차립니다. 두 아이를 먹입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을 씻깁니다. 아이들을 씻기면서 빨래를 합니다. 빨래기계가 있으나, 나는 손빨래가 한결 익숙합니다. 이불을 빨 때에는 빨래기계를 쓰지만, 여느 때에는 틈틈이 아이들을 씻기거나 내 몸을 씻으며 손빨래를 합니다. 다 씻은 아이들하고 저녁에 뜬 반달을 구경합니다. 반달을 구경하고 세 사람이 둘러앉아 만화영화를 봅니다. 아이들 어머니는 홀가분하게 바깥마실을 나갔습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이틀을 바깥잠을 자기로 하고, 아이들 아버지가 홀로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집에 있어도 모든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았는데, 아이들 어머니가 없이 집일을 하자니 한결 바쁘기도 하면서, 온통 ‘아이바라기’만 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렇지만, 혼자 아이들을 바라보며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하루는 일찍 마무리합니다. 아홉 시가 안 되어 두 아이가 졸립다며 불을 끄고 자자고 부릅니다. 자장노래를 삼십 분 남짓 부르며 밤잠을 재웁니다. 큰아이는 어머니 왜 안 오느냐고 묻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말미를 얻어 마실을 갔다고 여러 차례 얘기하며 부채질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재웁니다.


  무르익는 한여름 밤에는 풀벌레 노랫소리 고즈넉하게 들립니다. 자동차 다니는 소리 없고, 시끄러운 노래 트는 가게 없으며, 술에 절은 사람들 얄궂은 소리 없습니다. 전철 소리도 버스 소리도 없습니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저녁 여덟 시 즈음 마지막으로 지나갑니다. 군내버스가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깜깜한 저녁부터 이듬날 아침에 첫 군내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그야말로 차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밤잠을 자며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밤잠을 자며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한갓집니다. 때때로 개구리도 노래를 하고, 멧새도 노래를 합니다. 바람이 나뭇잎과 풀잎을 건드리며 풀노래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 “얼마나 연습한 거야?” 코페르가 물었다. “연습?” “너무 잘하니까.” “연습 같은 건 안 했어. 엄마를 도와주다 보니 이렇게 됐어. 하나를 잘못 튀기면 3전 손해거든.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 그런데 우리가 머리 숙여 칭찬하고 떠받드는 그 위대한 사람들은 그 타고난 재능으로 어떤 일을 해낸 걸까. 또 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  (98, 162쪽)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시골마을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날마다 새롭게 들여다보는 들판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 옮깁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를 쓰고,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깐 제비들을 바라본 이야기를 씁니다. 뭉게구름 이야기를 쓰고,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워 논둑길을 달리며 느낀 이야기를 씁니다.


  우리 식구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텔레비전을 안 봅니다. 가끔 면내나 읍내에 나갔을 적에 어느 가게에 들를 때면 신문을 들추기도 하지만, 신문을 들춘다 해서 우리들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움이 되거나 귀를 기울일 만한 이야기를 찾지 못합니다.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웃음꽃 피우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는 적이란 거의 없어요.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착하게 살아가며 사랑꽃 피우는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는 적이란 아주 드물어요. 곰곰이 살피면, 도시사람이 도시에서 예쁘거나 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또한 신문이나 방송에는 거의 안 실려요. 정치꾼 이야기, 주식 이야기, 경제발전과 군대 이야기, 미국과 일본 이야기, 자동차나 백화점 이야기, 운동경기나 영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뿐이에요.


  봄이 되어 들판에 흐드러지는 들풀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지 않아요. 봄까지꽃이나 할미꽃에서 비롯하는 한 해 숱한 꽃누리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지 않아요. 벚꽃놀이 이야기나 가끔 다루지만, 사람들이 날마다 먹는 밥이 되어 주는 벼가 이삭을 패는 이야기는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오지 않아요. 어쩌면, ‘이삭이 팬다’는 말조차 모를 수 있겠지요. 개구리밥이 얼마나 작으며 예쁜 풀인지를 모를 수 있겠지요. 얼마나 많은 잠자리와 나비가 자동차한테 치이거나 밟혀서 죽는지 모를 수 있겠지요.


.. 그런데 선배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게 정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판단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네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은 교풍을 어지럽히는 놈들이며 손봐야 할 녀석들이라고 판단했다 … 다른 학교와 운동경기를 할 때 응원하러 오지 않았다고 국민이 아니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는 무서운 선배들이 있는 학교를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 “학교를 위해 폭력을 써야 한다는 건 모두 거짓말이야.” … ‘사람이 사회에서 느끼는 불행과 고통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적으로 만들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어.’ ..  (146∼147, 150, 219∼220쪽)


  나는 시골사람입니다. 한자말로 적자면 ‘촌민(村民)’입니다. 요샛말로 고쳐서 말하자면 ‘촌사람’이나 ‘촌놈’입니다. 오늘날 한국땅에는 도시사람이 99요, 시골사람은 1이라 합니다. 나는 99:1 가운데 ‘하나(1)’라는 자리에 섭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나 읍 소재지에 나들이를 가 볼 때면, 때때로 시외버스를 타고 이웃 순천시에 가 볼 때면, 도시와 시골은 99:1이 아니라 99.99:1쯤 되지 않으랴 싶어요. 부산이나 인천이나 서울을 가 볼 때면, 도시와 시골은 99.999:1쯤 되겠구나 싶기도 해요.


  사람들이 도시에 지나치게 몰린 채 살아가요.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요.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니, 사람들 스스로 숨이 가빠요. 풀이나 나무 자랄 빈틈이 없어요. 자동차 댈 자리조차 없다고 하지만, 자동차에 앞서 사람이 느긋하게 눕거나 앉을 자리마저 없어요. 열 층이건 스무 층이건 겹겹이 포개어도 모자라다고 하는 판이에요. 땅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집을 지어요. 지붕을 뚫고 옥탑까지 집으로 마련해야 해요.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나요. 돈을 언제까지 벌어야 하나요. 돈을 왜 벌어야 하나요.


  돈을 벌어서 밥과 옷과 집을 사나요. 그러면, 돈을 벌지 말고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하면 되지 않을까요. 돈을 벌어서 유기농 곡식조차 아닌 화학약품에 찌든 곡식이나 가공식품을 사먹지 말고, 마음을 벌고 사랑을 벌며 삶을 버는 하루를 누리면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밥을 스스로 일구어 먹으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농업은 경제가 아니에요. 농업은 삶이에요. 어업도 경제가 아니에요. 어업도 삶이에요. 돈을 많이 벌어 도시에서 유기농 곡식을 사먹으면서 아이들을 영어 잘 가르치는 학원과 학교에 넣으면 앞으로 무슨 보람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나(도시 어른)처럼 도시에서 돈 잘 벌어 유기농 곡식 사다 먹을 만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나요.


.. 코페르는 그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코페르 자신은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내 마음 …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사건들은 모두 한 번뿐이며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층계 사건에서 배웠기 때문에, 내 안에 들어 있는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감정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  (187, 214쪽)


  요시노 겐자부로 님이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내놓은 푸른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를 읽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이웃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을 뿐 아니라, 중국까지 쳐들어가며 슬픈 바보짓을 일삼던 때에, 요시노 겐자부로 님을 비롯해 생각과 마음과 사랑을 활짝 연 사람들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책을 내놓았다고 해요. 1930년대 일본도 2010년대 한국처럼 처세와 자기계발을 일삼자는 책이 판치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어둠고 슬픈 굴레에서도 생각을 빛내고 마음을 일으키며 사랑을 나누자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씩씩하고 꿋꿋하게 있었다고 해요.


.. 내가 사람다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말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예요 ..  (259쪽)


  요시노 겐자부로 님은 중일전쟁이 한창일 뿐 아니라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던 일본제국주의가 어린이와 푸름이를 망가뜨리는 꼴을 지켜보면서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물었어요. 또 둘레 어버이와 어른한테 똑같이 물었어요. ‘여보시오, 당신들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오?’


  이 물음은 2012년 한국에서까지 이어집니다. 아마 2022년 한국에서도, 2032년이나 2112년 한국에서도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참말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 모두 어떠한 생각을 일구고 어떠한 마음을 빛내어 어떠한 사랑을 꽃피울 때에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나요. 무엇을 하며 살고 싶나요. 어떤 꿈을 꾸고 싶나요. 어떤 길을 걷고 싶나요. 어떻게 웃고 싶나요. 내 고운 목숨을 어떻게 빛내고 싶나요. (4345.7.27.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구는 초록 냄새 쪽빛문고 10
구도 나오코 지음, 고향옥 옮김, 초 신타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른 숨결로 빛나는 내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22] 구도 나오코,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

 


- 책이름 : 친구는 초록 냄새
- 글 : 구도 나오코
- 그림 : 초 신타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08.12.15.)
- 책값 : 9800원

 


  깊은 밤입니다. 논배미 앞에 섭니다. 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면 노랫소리를 똑 끊었는데, 여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니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여름날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고 깨어난 개구리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 새 목숨일까요. 온갖 개구리들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줍니다. 이 개구리들은 그리 안 큰 몸뚱이일 텐데, 노랫소리가 참 우렁찹니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기에 하나, 여기에 또 하나, 이쪽에 하나, 저쪽에 하나, 저기에 하나, 하면서 소리를 뽑는 개구리가 어디쯤 있나 헤아립니다. 수십이나 수백 마리가 터뜨리는 노래가 아니라, 예닐곱 마리쯤 터뜨리는 노래인데, 이렇게 예닐곱 마리가 서로 갈마들며 노래를 터뜨리니, 뒤쪽 다른 논에서도 하나둘 노래를 터뜨립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는 그냥 개구리 노랫소리가 아닙니다. 나는 개구리들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개구리 노랫소리’라 뭉뚱그려 말하지만, 개구리마다 목소리가 매우 다릅니다. 같은 목소리인 개구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괙괙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개굴개굴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으며, 배배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배구배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왜구왜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으으미으으미 하고 낮고 길게 뽑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두꺼비일까? 다른 녀석일까? 맹꽁이는 아닌 듯한데?


.. ‘바람 냄새가 좋군.’ 사자는 심호흡을 하고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와 바위 옆에 가면 머리를 문질러 보고 싶고, 보드라운 풀이 있으면 뒹굴어 보고 싶다 … ‘누군가와 함께 산책을 한다는 건, 참 좋은 거구나.’ 사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달팽이를 이마에 태우니 혼자일 때보다 여기저기 볼 수 있어 더 즐겁다. “아, 여기에 꽃이 피어 있어.” 하고 사자가 꽃을 발견하면 달팽이가, “아, 여기에 연못이 있어.” 하고 연못을 발견해 준다 ..  (13, 20쪽)


  사람은 개구리를 바라보며 ‘개구리 노랫소리’라 말합니다. 거꾸로, 내가 개구리라 한다면, 개구리로서 사람을 바라볼 때에 ‘사람 노랫소리’ 또는 ‘사람 말소리’라 할 만할까요.


  한국사람으로서 일본사람이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저 뭉뚱그려 ‘일본사람 말소리’라 할는지 모릅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느 외국사람 노랫소리’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이야기를 엮어 들려주지만, 나로서는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말소리를 ‘다 똑같이 잘 못 알아듣는 노랫소리’처럼 여길 수 있어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개구리들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와 결과 무늬로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개구리가 들려주는 고운 이야기를 내 마음으로 받아들여 내 넋을 다시금 곱고 맑게 다스리자고 생각합니다.


.. 달팽이가 ‘으음, 으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수풀 속 이파리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온몸에 바람이 스며들어 와.” … “오늘은 유난히 목소리가 예뻐.” “틀림없이 좋은 노래가 될 거야.” 달팽이의 발성연습을 들으며 당나귀가 말했다 ..  (26, 65쪽)


  그야말로 사람이 물결을 이루는 곳에 있어도, 내 살붙이 모습은 놓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왁자지껄한 한복판에 서도, 내 살붙이가 읊는 말마디를 한두 마디쯤 알아듣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으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을 때에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에 바라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하리라 봅니다. 곧,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으며, 사랑이 있을 때에 내 몸이 움직이는구나 싶어요.


  나 스스로 좋은 넋이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좋은 얼로 빛나야 합니다. 내가 시나브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나는 내 삶을 아끼는 하루를 누리면서 내 곁에서 나란히 맑게 웃거나 울 예쁜 동무를 사귀거든요.


  동무는 멀리 있지 않아요. 동무는 그저 나이가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동무는 같은 학교를 다닌대서 사귀지 않아요. 동무는 서로서로 믿고 기대며 좋아할 수 있는 어여쁜 삶지기예요.


.. 사자가 종종종 뛰어간다. 저녁노을이 하도 예뻐 언덕에 올라가 해 지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 “오늘은 심심한 땅에 들렀다가 쓸쓸한 땅을 돌아보고, 그리고 기쁨의 땅에서 잠시 쉬어야지.” 달팽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  (67, 93쪽)


  구도 나오코 님 이야기책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를 읽습니다.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참말, 내 좋은 동무는 누구라도 풀내음이 난다고 느낍니다. 그래요, 나는 말합니다. 내 동무는 풀내음, 이라고 말합니다. 나도 풀내음이요 내 동무도 풀내음입니다. 나부터 풀내음이고 내 살붙이도 풀내음입니다. 내가 즐겁게 풀내음이면서 우리 아이들도 풀내음이에요.


  풀내음, 풀빛, 풀꽃, 풀결, 풀삶, 풀맛이라 할 만합니다. 푸르고 푸릅니다. 푸르면서 푸릅니다.


.. 사자는 ‘기쁨에 찬 얼굴’ 그대로 당나귀와 놀기로 했다. 그리고, ‘근심에 찬 얼굴’은 혼자만 있을 때를 위해 아껴 두기로 했다 … “글쎄, 왠지 아주 먼 옛날부터 친구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115, 202쪽)


  얼굴이 푸르고, 마음이 푸릅니다. 눈빛이 푸르고, 생각이 푸릅니다. 손길이 푸르고, 사랑이 푸릅니다.


  손에 책을 쥘 때면, 책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수저를 들 때면, 수저도 밥그릇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호미를 잡으면, 호미도 손도 흙땅도 푸릅니다.


  푸른 하루입니다. 푸른 나날입니다. 푸른 목소리입니다. 푸른 누리입니다. 푸른 꿈결입니다. 푸른 목숨이요, 푸른 이야기이며, 푸른 살림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천천히 자라면서 푸름이로 멋진 나날을 맞이하고, 푸른 나날 예쁘게 보내는 고운 넋은 이 땅을 푸르게 보살피는 착한 사랑을 푸른 숨결로 북돋웁니다. (4345.7.13.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는가
 [푸른 책과 함께 살기 97] 파비오 제다,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

 


- 책이름 :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 글 : 파비오 제다
- 옮긴이 : 이현경
- 펴낸곳 : 마시멜로 (2012.4.1.)
- 책값 : 12000원

 


  무척 어린 어느 날 일을 떠올립니다. 얼추 서른 해쯤 앞서, 장마비가 장대처럼 푹푹 꽂히듯 쏟아지는 날, 사람들은 집에서 부침개도 부쳐서 먹고, 밥도 해서 먹으며, 수제비도 끊어 먹는다 하지만, 다른 짐승들은 먹이를 어떻게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자그마한 참새와 도시에 많은 비둘기를 비롯해, 까치나 까마귀나 제비나 박쥐나 노루나 사슴이나 멧토끼는 어떻게 먹이를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풀을 먹는 짐승은 빗물에 젖은 잎사귀를 뜯어먹지 않는다 했는데, 그러면 풀짐승은 장마철에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나 궁금했습니다.


  어린 나는 또 다른 대목이 궁금합니다. 이제 꽁꽁 얼어붙는 겨울입니다. 영 도 밑으로 십오 도나 이십 도 떨어지는 오들오들 떨리는 이 겨울에, 참새부터 멧토끼까지, 모두들 어떻게 추위를 견디거나 겨우살이 먹이를 찾을 만한지 궁금했습니다. 시골마을 어른들은 멧짐승을 걱정해서 멧짐승 먹이를 어느 한켠에 마련해 둘는지 궁금했어요. 예부터 몹시 춥고 시린 겨울에는 멧짐승이 먹이를 찾아 사람들 살림집까지 찾아온다 했는데, 먼먼 옛날 먹이를 찾아 여느 살림집에 찾아온 범이나 여우나 사슴이나 멧토끼를 바라보았을 옛사람은 이들 멧짐승이나 들짐승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궁금했어요.


  궁금한 마음은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장마철이나 겨울철에 으레 ‘내가 토끼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토끼 몸이 되어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빕니다. ‘내가제비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제비 몸뚱이로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비며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 만한가 하고 알아봅니다.


..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돼. 누군가 신과 땅, 인간을 모욕하며 네 기억, 네 추억, 네 감정에 상처를 낸다 해도, 권총이나 칼, 돌을 손에 쥐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줘.” … “아프가니스탄인들과 탈레반은 다르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선생님을 죽인 그 사람들의 국적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요? … 자신들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일들이,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  (14, 42∼43쪽)


  개미는 시골에서 살지만 도시에서도 삽니다. 개미는 처음부터 도시에서 살아갈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시골을 밀어 도시로 만드는 바람에 개미는 도시에서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 ‘자, 이곳을 밀어 없앨 테니 너희 스스로 알아서 떠나.’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뿐 아니라, 쥐한테도 ‘너희는 새 보금자리로 떠나렴.’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나 쥐한테뿐 아니라,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도 ‘이제 너희는 얼른 너희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날려 새로운 터에서 자라 보거라.’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삽차로 밉니다. 사람들은 그냥 땅을 깊이 파고는 시멘트와 쇳덩이를 단단히 박습니다. 이 다음에 사람들은 흙땅에 시멘트를 가득 붓습니다. 개미도 쥐도 풀도 꽃도 나무도, 한꺼번에 떼죽음입니다. 죽는 줄조차 못 느끼며 그냥 죽습니다. 두더쥐도 지렁이도 죽습니다. 참새도 까치도 죽습니다. 아직 깨지 않은 알인 채 죽는 멧새와 들새가 있습니다. 거미도 죽고 메뚜기도 죽습니다. 개구리도 죽으며 뱀도 죽어요. 모두 죽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모든 도시는 숱한 목숨들을 한꺼번에 마구 죽인 뒤에 세운 무덤누리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얼거리를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이 얼거리까지 헤아릴 겨를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너무 바쁩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밥벌이로 몹시 지칩니다. 도시에서는 내 식구들 작은 보금자리 얻느라 매우 고단합니다. 개미를 생각하거나 쥐를 헤아리거나 풀·꽃·나무를 살필 만한 틈이 없다 할 만해요.


  새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이 아파트를 짓느라 어떤 논밭이나 시골을 망가뜨렸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에도 ‘이 아파트가 서기까지 얼마나 예쁜 논밭이나 시골이 무너졌을까’ 하고 돌이키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새 고속도로가 날 적에도, 새 고속철도가 뚫릴 적에도, 새 공항이 생길 적에도, 새 놀이공원이 들어설 적에도, 새 공장이나 발전소가 설 적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문화와 문명과 시설과 설비 때문에 소리와 이름과 주검 없이 사라지는 목숨들을 헤아리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해요.


.. 내 고향은 아주 좋았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곳도 아니고 전기도 없는 곳이었다. 불빛이 필요하면 석유램프를 사용하곤 했다. 그렇지만 사과가 있었다. 난 사과가 자라는 것을 보았다. 내 눈앞에서 사과 꽃봉오리가 터지고 그것이 사과로 변해 갔다 … 사실 우린 더 이상 돈이 없었고 그 브로커는 우리를 국경 너머로 데려다줄 발루치족과 이란인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아주 컸다. 그러니까 그 사람 잘못은 아니었다. 우린 그 사람 자식이 아니니까. 우리를 데려다주기 위해 돈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  (35, 87∼88쪽)


  저녁부터 빗소리를 듣습니다. 장마비는 거센 바람하고 찾아옵니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잦아드는 새벽나절, 멧새 몇 마리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 열매를 따먹습니다. 비가 살짝 그은 틈을 타서 고픈 배를 채우고 싶겠지요. 나랑 옆지기는 이 시골집에 후박나무를 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앞서 이 땅에 집을 짓고 아이들 낳아 살아가던 예전 어른들이 후박나무를 심었어요. 후박나무는 우람하게 자라 가지를 죽죽 뻗으며, 사람한테는 예쁜 그늘과 시원한 바람노래를 들려줘요. 후박나무는 새들한테 좋은 쉼터가 되면서 좋은 잔치밥상이 되어 줘요.


  뒤꼍 뽕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자 잔치밥상입니다. 매화나무도 감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면서 잔치밥상입니다. 사람도 매화열매를 먹고 새도 매화열매를 먹습니다. 사람도 감알을 먹고 개미도 감알을 먹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마을 논밭은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일 뿐 아니라 도시마을 사람들을 먹여요. 도시마을에는 논도 밭도 없으니 도시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이지 못해요. 도시마을에서는 시골마을 사람들 먹여살릴 길이 없지만, 이에 앞서 도시마을 스스로 먹여살릴 길이 없어요. 돈을 낳고 돈을 키우지만, 돈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돈은 먹을거리하고 바꿀 수 있는 이음고리이지만, 누군가 먹을거리를 흙에서 거두지 않는다면 아무도 밥을 먹을 수 없어요.


..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들 앞으로 가서 ‘하나만 사 주세요. 제발 하나만 사 주세요.’라고 말하며 파리처럼 귀찮게 달라붙어야 했다.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나를 함부로 대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게 싫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산다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난 학대받는 데애 지쳐 버렸다. 근본주의자들과 경찰이 지긋지긋했다 … 나는 사람들이 신분증이나 종교적 신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  (74, 81, 82쪽)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지 못해요. 돈이 밥을 만들지 못하듯, 사람이 돈을 먹지 못하듯,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거나 부르지 못해요. 총이나 칼은 오직 전쟁을 이루거나 부를 뿐이에요. 총이나 칼은 전쟁을 비롯해 미움과 눈물과 슬픔과 아픔을 이루거나 부릅니다. 총이나 칼을 손에 쥔 사람은 고운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한테 총이나 칼을 손에 쥐도록 이끄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착한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평화를 지킬 뜻’으로 구축함도 만들고 전투기도 만들며 잠수함도 만든다 외치지만, 정작 구축함이나 전투기나 잠수함을 만든 다음에는 전쟁을 꾀합니다.


  한국이랑 이웃한 일본이 ‘자위대’라 하는 군대를 만든 일은 평화를 지킬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고 싶은 뜻이기 때문에 자위대라는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군대나, 아니 남녘땅에 있는 군대나 북녘땅에 있는 군대도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남녘이나 북녘 모두 전쟁을 꾀하려고 군대를 둡니다.


  전쟁은 옆나라를 치는 전쟁이 있고, 제 나라 여느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전쟁이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로 쿠테타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또는 경찰 또는 전투경찰)를 앞장세워 독재에 맞서려는 사람들을 총과 칼로 찍어 누르곤 합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경찰이 하는 일 또한 군대와 똑같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지키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뒤에서 지켜보는’ 일이 경찰들 몫입니다. 정치 지도자와 사회 지도자가 경찰들 힘을 빌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억누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마을에서 경찰이 할 일은 없습니다. 참말 평화롭다 하는 시골마을에서 경찰은 제구실을 못합니다. 도둑이 많은 도시에서 경찰이 바쁘다 하는데, 도시에는 도둑이 많을밖에 없습니다. 도시라는 삶터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웃과 동무가 되어 밥을 나누는 얼거리가 아니거든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가진 이가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면서 등치도록 하는 얼거리예요.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아무튼 성공을 해야 살아남는 도시예요. 경쟁을 붙이고 싸움을 붙이는 도시예요. 착하거나 여린 사람은 뒤로 밀리다가 굶습니다. 밥을 먹는 일이 전쟁이나 싸움처럼 되고 말아, 도시에서는 도둑이 끊어질 수 없어요. 돈이 더 있으면 떵떵거리며 놀음놀이를 누릴 수 있다는 바보스러운 꿈이 연속극으로든 영화로든 책으로든 자꾸 쏟아지니까,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 도둑이 되고 말아요. 밥도 사랑도 삶도 나누지 못하는 얼거리인 도시에서 마음이 다친 이들이 도둑이 되고 말아요.


.. “지금 하자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저 말 한 마디 때문에, 혹은 의미 없는 어떤 규정 때문에 거리에서 개처럼 죽을 수 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벗어나게 해 준 네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 …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보지 못한 것,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곳 쿰에서, 공장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너무 위험하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난 완벽하게 (떠날) 준비가 됐어.” ..   (141, 151쪽)


  파비오 제다 님이 쓴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를 읽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사내아이가 고향마을을 떠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프며 슬픈 삶자국을 찬찬히 돌아보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린 사내아이를 낳아 사랑스레 돌보던 어머니는 이 아이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아, 이 아이를 이웃나라로 데리고 가서는 ‘그곳에 가만히 놓’고 고향마을로 돌아갑니다. 이 아이는 제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질는지 안 사라질는지 모릅니다. 아직 온누리를 스스로 널리 겪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조금씩 느낍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눌리며 괴로운 여느 사람들이 삶을 붙잡으며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너무 가늘고 작은 탓에, 이 아이는 이 가늘고 작은 삶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려고 온힘을 쏟아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이에서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항상 그것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분명히 말하지만 50유로였다. 할머니는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주 이상하고도 친절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  (191, 217쪽)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를 읽는 사람 가운데 이 아이가 겪어야 한 일을 ‘눈앞에서 그리듯 떠올리’거나 ‘코앞에서 지켜보듯 믿을’ 만한 이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서 먹는 오늘날 푸름이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돈 몇 푼 치르면 어디에서든 맛난 밥을 사다 먹을 수 있는 오늘날 공무원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낱낱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나는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나요. 내 동무는 누구일까요. 나는 내 동무를 얼마나 아끼며 살아가나요.


  내가 입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나는 몸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이루려고 어떤 일을 하는가요. 전쟁 아닌 평화가 지구별에 깃들 수 있도록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땅에서 전쟁 아닌 평화가 싹터 자랄 수 있도록 내가 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왜 스무 살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는 군대에 들어가야 할까 궁금합니다.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총칼을 손에 쥐며 배우는 ‘사람 죽이는 솜씨’는 이웃과 동무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이 될까 궁금합니다.


.. “이탈리아 학원을 6개월 다닌 뒤에 사설학원 학생 자격으로 중학교 3학년 시험을 봤어요.” “그럼 그 전에는?” “아무것도요. 아프가니스탄 고향마을에서 잠깐 학교를 다녔지만 그 이외는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어요.” 나는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탈레반에 끌려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그 이전에도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지만 체류허가증을 받고 나서야, 생존에 필요한 안정을 찾고 나서야, 나는 다시 어머니와 남동생과 누나를 떠올린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을 지워 버렸었다. 내가 사악하거나 몰인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신경을 쓰기 전에 우선 내 자신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 삶을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어떤 사랑을 줄 수 있겠는가 ..  (264, 271쪽)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아직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이제껏 아이들한테 평화 아닌 전쟁을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과 ‘입시지옥’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을 치르는 병사’와 ‘입시지옥을 가로지르는 전사’를 말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책상 앞에 달라붙어 문제집과 시험지를 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책상 앞에서 군인이 됩니다. 아이들이 손에 쥔 연필은 총이나 칼입니다.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이 아닌 적군을 마주하며 교실에서 부대낍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무나 이웃을 사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는 솜씨를 익힙니다.


  고등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대학교에서 새삼스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대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회사에서 다시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그래도,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에 나오는 씩씩한 아이는 스스로 죽음길을 가로질러 삶길로 나아갔어요. 미움과 시샘과 따돌림과 우쭐거림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과 꿈과 빛을 찾아 먼길을 나섰어요.


  슬픈 한국땅에도 미움 아닌 사랑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단한 한국땅에도 시샘 아닌 믿음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온통 전쟁투성이 한국땅에도 따돌림 아닌 꿈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디를 가나 도시로 바뀐 한국땅에도 우쭐거림 아닌 빛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4345.7.11.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대와 통하는 미디어 - 손석춘 선생님이 들려주는 나를 찾는 미디어 여행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7
손석춘 지음, 김용민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방송·책은 왜 있어야 하나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0] 손석춘, 《10대와 통하는 미디어》

 


- 책이름 : 10대와 통하는 미디어
- 글 : 손석춘
- 그림 : 김용민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7.12.)
- 책값 : 12000원

 


  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집에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면서도 집에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습니다. 굳이 텔레비전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라디오도 딱히 모시지 않습니다.


  더 생각하고 자꾸 생각하면, 인터넷도 그리 모실 만하지 않습니다. 내가 쓰는 글을 올리는 인터넷방이 있기는 하지만, 꼭 내 글을 인터넷방에 올려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남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이라고도 하나, 내가 쓰는 모든 내 글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 되읽는 글이요, 내가 살아온 나날을 돌이키면서 내 넋을 북돋우는 글입니다. 남이 읽어 남이 새 넋을 일구거나 새 꿈을 키울 수 있겠으나, 남에 앞서 내 넋을 스스로 새롭게 일구고 내 꿈을 어여쁘며 맑게 북돋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글을 쓰는 뜻이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가다듬고, 내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내 삶을 가다듬습니다. 내 삶을 가다듬으면서 내 사랑을 가다듬고, 내 사랑을 가다듬으면서 내 손길과 눈길을 나란히 가다듬어요.


  텔레비전이 있는 곳에서 때때로 함께 텔레비전을 들여다보기도 하는데, 텔레비전을 볼 때면, 이런 텔레비전이 왜 있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문이 있는 곳에서 때때로 신문을 죽죽 들추곤 하는데, 신문을 들출 때면, 이런 신문이 왜 있어야 하는지 영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마을 이야기가 방송이나 신문에 실리는 일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내 마을 이야기가 방송이나 신문에 실리더라도 겉훑기조차 못합니다. 찬찬히 다가와서 사랑스레 보듬는 이야기를 다루지 못해요. 살가이 어깨동무하면서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는 10대들을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나무라기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중독 현상이 크게 늘어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전문가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반복된 생활, 게다가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고 분석합니다 … 자, 그렇다면 사회적 조건이 그러하니 이제 게임에 중독되어도 좋은 걸까요? 내 탓이 아니라 사회 탓이라고 주장하며 즐기기만 해도 될까요 ..  (13, 14쪽)


  교과서가 아이들이 배울 만한 책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합니다. 아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교과서를 손에 쥐어 어떤 이야기를 배우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오늘날 한국땅에서 교과서는 어떤 구실을 할까요. 오늘날 한국땅 아이들은 교과서만 죽 읽으면 ‘한 사람으로 오롯이 우뚝 서서 씩씩하고 튼튼하며 해맑게 살림을 일구어 살아가는 길’을 익힐 수 있습니까. 갖추어야 할 지식이 아닌 나누어야 할 사랑을 교과서로 익힐 수 있습니까. 그런데, 갖추어야 한다는 지식조차 한쪽으로 쏠린 지식이기 일쑤요, 대학입학 시험공부에 얽매인 지식조각일 뿐 아닙니까.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배운다는 국어 교과서가 참으로 한국말을 한국사람이 알맞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겁게 쓰도록 이끄는지 알 길이 없어요. 역사 교과서가, 수학 교과서가, 과학 교과서가, 사회 교과서가, 얼마나 아이들 삶길과 눈길과 넋길을 헤아리거나 살피는가 모르겠어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교과서로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바보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이 될수록,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이 될수록, 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생이 될수록, 대학생을 지나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될수록, 이 나라 사람들은 더더욱 바보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삶도 사랑도 사람도 배우지 않는 학교인데다가, 삶도 사랑도 사람도 아끼도록 이끌지 않는 일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돈을 더 잘 벌 만한 직업(장래희망)만 붙잡도록 하는 학교요, 돈을 더 잘 벌 만한 일만 하도록 이끄는 일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 잘 알겠지만 인터넷 게임에는 칼이나, 총, 흉기로 게임 속 다른 캐릭터를 때리고 찌르거나 죽이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많이 죽일수록 좋지요. 조금만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를 … 잘 생각해 보세요. 아빠와 엄마가 직장에 나가며 일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아빠와 엄마가 해고된다면 어떻겠어요? 그뿐이 아니지요. 한국 사회에서 커 가는 10대 청소년들 또한 20대에 들어선 어느 순간에는 취업을 해야지요. 취업을 해서 일터로 나가는데 그곳에서 사장이 마음대로 해고하거나 직원인 노동자를 멋대로 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24∼25, 72쪽)


  인천에서 살며, 충북 음성에서 살며, 이제 전남 고흥에서 살며, 때때로 마을신문을 읽습니다. 인천에서는 인천 신문을, 음성에서는 음성 신문을, 고흥에서는 고흥 신문을 때때로 읽는데요, 인천에서 나오는 인천 신문에는 가끔 ‘운동 기사’가 실리기는 하지만, 음성이나 고흥에서 나오는 마을신문에는 운동 기사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축구이니 야구이니 골프이니 하는 운동 기사가 없어요. 그런데, 세 곳에서 나오는 신문에는 주식시세표가 안 실려요. 음성과 고흥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신문에는 방송편성표가 안 실려요. 음성과 고흥에서는 날마다 나오는 신문이 없는 만큼 날씨 소식도 안 실려요.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은 날마다 나옵니다. 날마다 나오는 신문에는 온갖 운동 기사가 실리고, 주식시세표가 큼지막하게 실리며, 부동산 정보가 실리는 한편, 방송편성표나 날씨 소식이 실립니다. 이밖에 날마다 다루는 온갖 지식과 정보가 있어요. 아마 이런저런 것들을 날마다 들여다보라는 뜻일 수 있을 텐데, 서울에서 살아가며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일하지 않고서야, 굳이 이런저런 대목에 눈길을 두거나 마음을 기울일 일이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니,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집에 텔레비전을 모신다 하더라도 신문 방송편성표까지 뒤적이며 챙겨서 볼 겨를이 없어요. 아니, 굳이 이렇게 저렇게 챙겨서 볼 만한 방송을 찾기는 어려워요. 아니, 애써 텔레비전을 켜서 이것저것 하염없이 볼 만하지 않아요.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니까 텔레비전을 보고야 맙니다. 커다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으려 하니까 신문을 읽고야 맙니다.


  누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 한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정치 이야기, 외교 이야기, 경제 이야기, 문화 이야기, 교육 이야기, 사회 이야기, 운동 이야기, …… 어느 하나 서울이나 커다란 도시에서만 대수롭습니다. 작은 마을이나 시골에서는 삶을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일구며 스스로 누립니다. 작은 마을이나 시골에서는 신문이나 방송에 기대어 삶을 읽지 않습니다. 스스로 짓는 삶은 스스로 읽습니다. 스스로 일구는 사람은 스스로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거나 노래로 부릅니다. 스스로 누리는 삶은 스스로 이야기하고 스스로 즐깁니다.


.. 신문이 처음 태어날 때 왕과 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탄생을 축하해 주지 않았지요. 그들 쪽에 서서 잠시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닙니다. 중세 시대 내내 누구의 감시도 없이 정치를 해 왔는데 신문이 자신들의 언행을 일일이 보도하기 시작하니까 불편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신문 발행을 허가하거나 불허하는 권한을 자신들이 갖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신문에 실리는 내용까지 엄격하게 검열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언론통제를 모든 사람이 고분고분 받아들이리라고 판단했다면 착각이었지요 … 관훈클럽의 진단에 따르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중산층에 속하기 때문에 중산층을 자연스럽게 대변함으로써 빈곤층이나 소수 계층의 의견과 이익은 배제됩니다. 사실 지상파 방송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단순히 중산층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미 고소득층이거나 그에 가깝습니다. 빈곤층의 이야기를 담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지요 ..  (50∼51, 112쪽)


  시골마을 아이라 하더라도 도시에 있는 더 큰 학교로 가자면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보아야 합니다. 시골사람 넋으로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요. 도시에서 배우자면 도시사람 넋하고 어깨동무해야 할 테니까요. 대통령이나 시장 이름을 모른다 하더라도 흙을 알고 나무를 알면 넉넉해요. 정치를 모르고 경제를 모르더라도 바람을 알고 구름을 알면 넉넉해요. 인터넷을 모르고 새책 소식을 모르더라도 멧새를 알고 들풀을 알면 넉넉해요.


  오늘날 한국사람은 무엇을 아는 사람일까요. 오늘날 한겨레는 스스로 무엇을 알려고 애쓸까요.
  신문·방송·책은 왜 있어야 하나 궁금합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은 사랑이나 삶이나 사람(이웃과 동무와 살붙이)을 읽을 마음일까 궁금합니다. 방송을 보는 사람은, 또 책을 읽는 사람은 사랑이나 삶이나 사람을 느끼거나 헤아릴 마음일까 궁금합니다.


  내 곁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내가 숨을 거두어 내 몸뚱이가 흙으로 돌아갈 때에 내가 들고 갈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어린이로 살거나 푸름이로 살거나 젊은이로 살거나 늙은이로 살 때에 무엇을 손에 쥐면서 누려야 즐겁거나 기쁘거나 아름답거나 신날까요.


  내가 바라볼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즐거운 삶을 누릴까요.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내 마음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찾아들어야 기쁠까요. 내 생각은 어떤 이야기로 가꾸면서 어떤 꿈을 꾸어야 곱게 빛날까요. 지구별 푸름이들은 무엇을 알아야 하고, 한국땅 푸름이들은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알아야 하며 무엇을 느껴야 서로서로 좋을까요.


..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연예인 숭배나 외모 지상주의 세태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왜 방송사들은 문제가 많은 성적 장면들을 무분별하게 내보낼까? 그것이 시청률 경쟁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시청률을 그렇게 중시할까 … 광고를 내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시청자들이 많은 프로그램에 광고하고 싶겠지요. 바로 그렇기에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으로 성적 노출 장면을 내보내거나 폭력 장면들을 방송합니다 …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아름다움을 외적인 것으로만 판단하는 외모 지상주의가 곳곳의 광고들을 통해 한층 강화됩니다. 내적은 아름다움은 가치 없는 것으로 넘깁니다 ..  (95, 98, 99, 141쪽)


  손석춘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미디어》(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오늘날처럼 신문이고 방송이고 인터넷이고 눈부시게 펼쳐진 적이 없는데, 막상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이 어떠한 매체인가 하고 들려주는 책이 참 없구나 싶습니다. 중앙일간지나 지역일간지가 참 많은데, 신문뿐 아니라 잡지도 많고, 방송사도 많은데, 이 많은 매체 일꾼들 스스로 ‘내 이웃과 나눌 매체 이야기’를 차근차근 써서 차근차근 나누려 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신문사 일꾼은 왜 신문 이야기를 속속들이 밝히면서 나누려 하지 않을까요. 방송사 일꾼은 왜 방송 이야기를 낱낱히 파헤치면서 나누려 하지 않을까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인터넷으로 ‘초·중·고등학교 학습’을 시키자고는 하면서, 정작 신문 속내와 방송 속살과 책 알맹이와 인터넷 속셈을 깊이 살피거나 두루 돌아보는 이야기는 왜 밝히지 않을까요.


  지구별 푸름이들이 아무쪼록 ‘삶을 밝히는 글’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한국땅 푸름이들이 부디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살필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아이들 낳아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삶을 꽃피우는 꿈’을 깨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5.7.9.달.ㅎㄲㅅㄱ)

 


95쪽 아래1 : 확인할 수 있은 것은 =>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조경선 교육산문집 살림터 참교육문예 4
조경선 지음 / 살림터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사나요
 [사랑하는 배움책 5] 조경선,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

 


- 책이름 :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글 : 조경선
- 펴낸곳 : 살림터 (2012.6.10.)
- 책값 : 12000원

 


  학교에서는 ‘내가 어른이 되어 좋은 짝꿍을 보았’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만난 좋은 짝꿍과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아이를 어떻게 낳느냐’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낳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 큰딸이어서 더 많이 기대했다는 엄마는 끝까지 눈물을 많이 보이셨고, 고흥이라는 낯설고 먼 곳으로 가서 산다는 일방적인 결정에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의 살림솜씨와 지원 덕분에 고생 한 번 없이 공부만 했었던 큰딸이었는데 농촌으로 시집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한 것이 큰 상실감을 주었다고 한다 … 우리 지역(전남 고흥)에서는 일 년에 몇 억 원씩 주고, 서울의 한 사교육업체 강사를 주말에 초빙해 성적이 우수한 200여 명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국·영·수 논술강의를 해 주고 있다 … 대학 진학을 위해 성적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막대한 예산을 붓고 있지만,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배려는 왜 없는지 몹시 안타깝다 ..  (19, 64쪽)


  학교에서 푸름이한테 ‘성교육’을 시키곤 합니다. 학교 성교육 수업에서는 아이들한테 콘돔을 보여주거나 아예 주기도 한다지만, 막상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이를 낳기 앞서 몸속에 열 달 돌보는 동안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를 빚기 앞서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될 사람이 어떤 삶을 일구며 몸과 마음을 건사해야 좋은가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렇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두 어버이가 아이를 낳고서 이 아이를 알뜰히 아끼고 따스히 사랑하며 예쁘게 보살피는 길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고작 한다는 이야기라면 ‘육아휴직’쯤 될까요. 그런데, 육아휴직은 며칠쯤 얻어야 할까요. 육아휴직은 누가 받아야 할까요. 육아휴직이란 무엇이고, 보육시설은 무엇일까요. 아이를 튼튼하고 씩씩하며 아름답게 보살피는 몫은 육아휴직과 보육시설로 다 풀거나 맺을 만할까요.


  그렇지만 나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던 때에 이런 대목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무렵에는 나 또한 입시문제와 입시공부에 갇혔습니다. 고단한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슬픈 짐과 무게를 어떻게 건사해야 할까 알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그저 똑같이 말할 뿐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내 삶에서 지우라고, 여섯 해를 지우고 나면 앞으로는 ‘밝은 앞날’이 있으리라고. 여섯 해 동안 시키는 대로 하고, 오로지 시험문제만 풀면, 비로소 그 다음부터는 ‘너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 전문계 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생과는 다른 소질과 특징이 있는데,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너무 획일적이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 전자과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삼성에 취업하고, 그러면 학교 정문 앞에 현수막을 단다. ‘축 삼성 취업’이라며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하얀 가운과 마스크 등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담임교사나 학부모라도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발암물질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었다 … 한글날의 위기는 나의 내부로부터 나온다. ‘영어 식민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자녀의 영어교육을 걱정하는 이중적인 대한민국 엄마인 나를 고백하며 반성하고자 한다 ..  (22, 43, 78쪽)


  나는 어른들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른들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내 삶에서 여섯 해를 지울 수 있을까요. 내가 백 살을 살는지 이백 살을 살는지 모르나, 나는 고작 열 해를 살거나 스무 해만 살는지 몰라요. 어쩌면 열여섯이 끝일 수 있어요. 한 해이고 두 해이고 나한테는 더없이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루이고 이틀이고 나한테는 가없이 고마운 날입니다. 한 해는커녕 하루도 지울 수 없는데, 어떻게 여섯 해 내 삶을 지우면서 시험공부만 해야 하나요.


  더구나, 여섯 해를 지우고 살더라도, 나중에 나한테 ‘밝은 앞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손꼽는 대학교에는 위에서 몇 퍼센트만 들어갈 수 있는데다가, 모든 푸름이가 대학생이 될 수 있지 않아요. 대학생이 될 수 있는 푸름이는 40퍼센트입니다. 요새는 숫자가 늘어 60퍼센트까지 될는지 모르지만, 고등학교를 마친 두 아이 가운데 하나는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일자리’를 찾아야 해요. 그런데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지우라니요.


  대학교에 안 들어갈 아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어떻게 보내라고요. 고등학교만 마치고 살아갈 아이들한테 머나먼 앞날은 어떻게 꿈꾸거나 꾀하라고요.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살아갈 길은 어떻게 찾거나 일구라고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합니다. 한국땅에서 ‘고등학교 마친 모든 푸름이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면 모르되, 하나는 가도 하나는 못 간다 하는데, 서로 피가 튀기도록 시험공부만 시키면서 하나는 대학교에 보내고 하나는 대학교에 안 보낸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대학교에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고, 대학교에 안 가거나 못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즐기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헤아려야 할까요.


..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가정방문도 언제나 인상적이다. 잠시나마 학교를 벗어나 수평선 따라 소풍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섬에 학교가 사라지고,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 공사를 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왜 동생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집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지, 어떻게 유치원 교사의 꿈을 꾸었는지 가만히 엿보게 된다. 매화 꽃망울이 터진 등암의 골목길을 지나 들어간 마당 한쪽에 아직도 깨끗한 우물이 있다. 그 물로 손빨래를 하는 집 마루에 앉아 이 두 형제들이 어떻게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을 가진 분들인지 바라보게 한다 … 업무가 산더미 같았다. 그렇게 여유가 없이 아이들을 만나니, 아이들도 내 말에 상처를 받았다 ..  (90, 244쪽)


  예나 이제나 나는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는 ‘입시학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정규수업만 해야 올바르고, 정규수업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마친 아이들이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씩씩하고 슬기로우며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쁘고 즐겁게 삶을 일구는 길을 보여주거나 이끌거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가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를 쓸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온몸으로 삶을 배우고 온마음으로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교사 자리에 선 사람은 아이들에 앞서 사회와 삶을 조금 더 누린 만큼,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겪은 삶을 아이들이 앞으로 맞아들일 때에 어떠한 빛과 눈길과 넋으로 따사로이 껴안도록 하면 좋을까 하고 어깨동무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넣으면 안 된다고 느낍니다.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면,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입시학원에 넣으면 됩니다. 아이들한테 시험문제만 가르치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열두어 살부터 대입시험을 치르도록 하면 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면 검정고시를 치르면 되지요. 굳이 여섯 해나 학교에서 아이들 푸른 삶을 썩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다 하면, 학교가 어떤 배움터가 되도록 어버이 또한 슬기와 힘을 갈무리해야 좋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싶어요. 학교가 학교다울 수 있도록 어버이는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농촌의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곳은 오히려 경쟁에서 낙오되면 절망이 가득한 소비적인 곳이다. 다시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 우리는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도시의 학교로, 학교 기숙사로 멀리 떠나보낸다. 진로와 공부에 대한 요구로 갈등을 일으키고, 노동에 대한 체험과 가족에 대한 이해 없이 점점 멀어져 가게 한다 … 짧은 시간 안에 빨리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정성껏 시를 음미하지 못한 채 작품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작품의 특징을 알려고 한다 ..  (107, 136, 193쪽)


  아이들은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비싼 밥이 아닌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밥을 차려서 내놓는 어버이나 어른’들 따사로운 사랑이 깃든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비싼 옷이 아닌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가게에서 비싼값 치르며 장만한 옷이 아니라, 어버이나 어른이 사랑을 들여 빚은 좋은 옷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서 입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높은 지식이나 빠른 정보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도록 돕는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손재주를 가르칠 학교가 아니에요. 자격증을 가르칠 학교 또한 아니에요. 학교는 교사와 학생 모두 사랑을 누리면서 사랑을 빛내는 배움터예요.


.. 그 이후로 백일장의 입상 결과보다는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아이에게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우리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삶은 모두 문학 재료가 된다 … 교사도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 … 무한경쟁보다는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학급이 되면 좋겠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무려 9시간을 한 교실에서 보낸다. 그래서, 따뜻하고 즐거운 학급이 되었으면 한다 … 오늘은 전국학력평가를 보는 날이다. 낮은 등급이 나오는 학생들에게는 벌을 줘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있었다 ..  (23, 36, 83, 101, 125쪽)


  나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대목을 배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내 삶을 이끌 이야기를 배우려고 애쓸 수 있었구나 싶어요. 책을 찾아 읽으며 내가 배우고픈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좋은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내가 알고픈 이야기가 무엇이었나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내가 그동안 못 배운 대목이 무엇이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못 배운 만큼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치거나 느끼도록 이끌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삶을 배우자면 어버이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부터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자면, 어버이인 나는 하루하루 어떤 넋과 얼로 누려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피아노학원에 다녀야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사진강좌를 들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글쓰기학원을 다녀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집일’과 ‘아이키우기’를 학원으로나 학교에서나 따로 배울 수 없습니다.


  오직 삶이 있습니다. 오직 싱그러운 삶이 있어요. 오직 사랑스럽고 싱그러워 빛나는 삶이 있어요.
  삶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할 길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며 나와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모두 즐겁게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합니다.


.. 하지만 다른 반 담임선생님들 중에는 독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영어와 수학 문제 풀이만이 공부라고 말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 객관식 문제 푸는 공부 기계가 되어 1등급이 된다고 한들, 앞으로 이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까 … 교사와 학생들은 왜 이렇게 뼈빠지게 학교에 남아 서로를 통제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늦게까지 학교에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  (128, 146, 149쪽)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마친 다음, 전라남도 고흥으로 시집을 오며 고흥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조경선 님이 쓴 교사일기를 그러모은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를 읽습니다. 조경선 님 교사일기에 드러나는 고흥 시골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거의 모두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고 합니다. 대학교에 가든 일자리를 찾아 공장으로 가든, 으레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대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다닌 시골마을 고흥에는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같은 젊고 푸른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할 테지요. 왜냐하면, 오늘날 고등학교 가운데 시골 아이들한테 농사짓기나 고기잡이를 가르치는 데는 아주 적어요. 논밭과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 고흥에서조차 아이들이 ‘슬기로운 흙일꾼’이 되거나 ‘아름다운 고기잡이’가 되는 길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 없이 흙과 사람과 지구별을 골고루 살리는 흙일꾼 참길을 들려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어린 새끼는 바다로 돌려보내고,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바다 둘레에 발전소 따위 안 지으며 깨끗하게 건사하는 넋을 북돋우는 고기잡이 사랑길을 보여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요.


  조경선 님은 국어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문학을 노래하는 사랑을 아주 조그맣게 나눕니다. 조경선 님 둘레에 있는 다른 분들은 어떤 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또 중학교 아이들이랑, 또 초등학교 아이들이랑, 어떤 꿈과 사랑을 날마다 어떤 빛깔과 무늬로 예쁘게 지으며 하루를 빛낼까요. 시골마을 시골학교에서 시골아이 사랑하는 시골교사는 어떤 웃음과 어떤 삶으로 어떤 시골얘기를 엮을 수 있을까요. (4345.6.12.불.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6-12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6-12 12:17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헐레벌떡 바로잡았습니다.
고마워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