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매서 안 더워? - 마음의 국경을 허무는 따뜻한 이야기
박채란 지음, 이상권 그림 / 파란자전거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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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까매서 안 더워?
- 글 : 박채란 / 그림 : 이상권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8.1.)
- 책값 : 8500원


― 이주노동자 아이들도 웃고 싶다
: 《까매서 안 더워?》를 읽으며


 〈1〉 우리 삶을 바꾸지 않고서야



.. 국경 없는 마을.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불린다는 걸 안 건 몇 달 전 일이었다. 아마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아서 생긴 이름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입을 삐죽였다. 마을에 국경이 없으면 뭐 해? 마음에 담을 쌓고 사는데 ..  〈11쪽〉


 우리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우리가 쓰는 수많은 물건을 더는 값싸게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마음이 좀더 값싼 물건으로 쏠린다지만, 우리가 써야 하는 물건은 ‘값만 싼’ 물건이 아니라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값이 싸다고 아무 물건이나 쉬 사들일 수 없는 노릇이고, 값이 비싸다고 하여 꼭 써야 할 물건을 안 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쓸 물건은 우리 손으로 장만해서 쓸 때가 가장 좋습니다. 우리 밥상에 차릴 먹을거리 또한 우리 손으로 우리 땅에 심고 가꾸고 거두어서 손질해서 올려야 가장 좋고요. 지금 우리들은 밥이고 옷이고 집이고 손수 마련하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찾은 다음, 돈으로 모두 풀어내는 삶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물건을 안 사면, 장을 안 보면 옴짝달싹 못하겠지요. 마음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거나 걱정할 수 있겠지만, 몸은 벌써부터 이주노동자가 헐값에 오랜 시간 일하지 않으면 우리 삶을 꾸릴 수 없게 매여 있는 셈입니다.


.. “내가 덥다는데 니가 무슨 참견이야? 넌 까매서 안 더운지 몰라도 난 더워! 그러니까 조용히 해!” 순식간에 동규의 얼굴이 굳었다. 정준이 얼굴도 굳었다. 자기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하지만 주워담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한 시간 같은 일 분여가 지나갔다. 동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난 좀 까매서 더위를 안 타나 보다. 그거 좋은 의견인데. 만물노트에 적어 놔야겠네. 까만 사람은 더위를 안 탄다. 좋았어!” 동규는 특유의 재치로 다시 상황을 수습했다 ..  〈106∼107쪽〉


 ‘국경 없는 마을’이 허울뿐인 ‘국경 없는’ 마을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눈길과 삶 어느 곳에서도 국경이 없는 마을이 되자면, 이주노동자를 마주하는 우리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앞서, 우리들은 우리 이웃을 깔보고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등처먹었습니다. 돈이 없다고, 이름이 없다고, 힘이 없다고.

 못생긴 아이들은 손가락질을 받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늘 꾸지람입니다. 아파트 올려세우는 재개발을 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 삶터를 죄 쓸어내고 밀어내고 쫓아냅니다. 아파트 올려세운 뒤에는, 자기들 집값 올라가는 소리에 입이 찢어지고, 이웃사람들 주머니가 홀쭉해지는 소리에는 귀를 막습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영어 미친바람은 불지언정, 버마와 네팔과 스리랑카와 파키스탄과 몽골과 티벳과 카자흐스탄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문화와 삶을 고이 지키면서 한국땅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아 주는 따순 바람은 불지 못합니다.


.. 몽골의 아름다운 푸른 초원을. 그리고 그 초원 위에 자리잡은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를. 초원 위를 뛰노는 말을.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성완이의 가슴이 조금씩 열렸다. 그림이 다 완성되자 몽골의 너른 초원이 성완이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사실 몽골에 있을 때 성완이가 살던 곳은 울란바토르였다. 그곳은 도시다. 성완이가 그린 푸른 초원은 성완이 자신도 두어 번밖에 가 보지 못한 할아버지 댁 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  〈67쪽〉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 입맛과 생각에 맞추는 길입니다. 한국 아이들 스스로 이주노동자 아이들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 어른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 젖어들어 고개를 숙이는 길입니다. 한국 어른들 스스로 이주노동자인 어른들을 ‘내가 일했을 때와 똑같은 일삯을 받아야 하는 사람(동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코시안’이라는 말을 지어냅니다. ‘코리안 + 아시안’으로(88쪽). 미국말로 적으니 무언가 그럴듯하지만, ‘튀기’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요. 더구나, 한국사람들은 모두 ‘아시아사람’이기도 한데, ‘코리안 + 아시안’이라는 말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우리 겨레는 ‘단일겨레’라고 하지만, 제 나라 말과 글을 업신여기고 미국 말과 글을 높이 우러르는 우리들이 어떻게 단일겨레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말과 글뿐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삶과 문화는 미국이나 유럽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세계화’를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더 많이 가지거나 움켜쥔 이들이 살기 좋은 한국’을 바랄 뿐입니다.


 〈2〉 흔한 이야기로 머물고 마는구나


 《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는 짤막한 이야기 셋을 묶습니다. 경기도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또는 일어났던 이야기 셋입니다. ‘국경 없는 마을’이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이나 네덜란드쯤 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까매서 안 더워?》 같은 책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우리 삶만큼이나 비뚤어져 있는 생각을 건드리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나 누려야 할 사람권리를 짓밟히면서 어릴 적부터 아픔과 생채기만 가득 쌓이는 아이들 삶을 보여주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우리 나라는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나쁜 제도와 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까매서 안 더워?》는 또다른 모습으로 또다른 곳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눈에 뜨이리라 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정규직으로 삼고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삼으며 갈라놓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낮은대접을 누구는 높은대접을 받습니다. 이제 교과서에는 ‘빈부차별과 계급차별이 없다’는 말은 안 실리겠지요? 돈있는 사람, 학식있는 사람, 힘있는 사람이 떵떵거리거나 우쭐거리는 우리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어린이책에서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이들한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일 수 있고, 아이들한테 굳이 아프거나 어두운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삶을 들여다보면, 아픔과 생채기와 어둠과 그늘이 참 짙습니다. 많이 누리는 집안에서는 많이 누리는 집안대로, 누릴 것이 없는 집안에서는 누릴 것 없는 집안대로 아이들은 골병을 앓아요.

 학교에서 싱그러운 배움을 하나하나 받아안으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인가요? 장애아이는 제도권학교조차 ‘취학면제’ 딱지를 받으며 발도 디딜 수 없는 가운데, 참 사람됨을 익히도록 이끌기보다는 갖가지 지식조가리를 아이가 더 많이 머리속에 담는 데에 마음쓰는 우리 형편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대로 괴로운 교육 얼거리입니다. 이런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 딸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게 된 아이들 삶은 어떠할까요. 왜 우리 어린이문학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문학으로 담아내어 펼치지 못할까요.

 《까매서 안 더워?》는 지금 아이들이 속깊이 헤아리며 자기 삶과 생각을 추스를 수 있도록 이끌어 갈 글감을 잘 짚어낸 대목에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세 아이 이름을 ‘한국 아이 이름’으로 바꾸고, 그냥 한국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따돌림이나 괴로움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낼 때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자기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풀어갈 길은 자기 스스로 이를 앙다물고 너스레를 떨며 굽신거리는 길밖에 없을까요.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이 이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한쪽 뺨을 맞은 예수님은 다른 뺨을 내민다고 하지만, 이주노동자 아이들은 하느님과 같은 참을성과 견뎌냄을 키우면서, 이 땅 한국 아이들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이 땅 한국에서 부모와 교사로 있는 사람들은 멀뚱멀뚱 있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술술 풀리게 될까요. 동화책 한 권에서 이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만, 《까매서 안 더워?》에 실린 작품 셋을 마무르는 고빗사위가 같은 얼개로 되어 있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책앞에 ‘이주노동자와 우리 사회’ 문제 이야기를 추천글과 글쓴이 말로 짤막하게 다루는데, 책뒤에 ‘이주노동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코시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 곁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같은 이야기를 한두 쪽에 걸쳐서 실어 주면 어땠을까요.

 책 바깥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에는 차례가 안 붙었습니다. 그냥 죽 읽으면 되기는 하지만, ‘한 권짜리 통 이야기’가 아니라 ‘짧은 작품 셋을 따로 써서 엮은 이야기’라면, 차례를 달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본문 편집을 할 때, ‘좌우 정렬’이 아닌 ‘왼쪽 정렬’만 해서, 본문 오른쪽은 들쑥날쑥입니다. 오른쪽이 들쑥날쑥 되면 책을 읽기에 안 좋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읽을 책임을 헤아려야지요. 다음으로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글씨를 조금 더 키우고 줄간격을 넓힌다든지, 한 쪽에 글자를 조금 더 넣는다든지, 그림을 키워서 한쪽 면이나 두 쪽을 통틀어서 넣든지, 쪽수를 줄이고 책 판을 줄여서 조촐하고 자그마한 판으로 엮든지 했다면 한결 나았을 텐데요. 금세 읽어낼 만큼 길이가 짧은 작품 셋을 모은 책을 억지로 120쪽까지 늘렸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그래서 책값 8500원이 무척 비싸게 느껴집니다. 《까매서 안 더워?》에 담아서 들려주는 줄거리가 우리 땅에서 따돌려지고 뒤로 밀려나는 ‘아픈 사람들 자그마한 이야기’라 한다면, ‘책꼴과 책엮음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며 얌전하게 고개숙이는 작고 수수한 짜임새’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단순 오탈자가 아홉 군데 보입니다(46쪽, 52쪽, 62쪽, 64쪽, 65쪽, 70쪽, 72쪽, 74쪽, 99쪽). 국어연구원 맞춤법이나 교과서 맞춤법으로 더 꼼꼼히 살피자면, 바로잡거나 추슬러야 할 대목이 더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한편, 글쓴이 박채란 님이 더욱 마음써야 할 글쓰기 문제가 있어요. ‘저녁 식사 시간’, ‘기분이 별로야?’, ‘허기가 밀려왔다’, ‘12일로 정해졌어요’, ‘말을 합쳐’, ‘패러디해서’, ‘과묵하게’, ‘친구들을 향해’, ‘멤버’, ‘티나의 잘못된 존대법’, ‘흰 피부의 아이들’ 같은 대목은 깨끗하고 손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몽골말’이라고 했다가 ‘몽골어’로도 나오며 뒤죽박죽인 말씀씀이는 하나로 가다듬어야겠지요.

 좋은 글감을 흔한 이야기에 머물게 한 대목이 아쉽지만, 다음 작품을 기다려 봅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셋을 주겠습니다. (4340.8.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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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피의 다락방
베치 바이어스 지음, 김재영 옮김,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잡지 <북새통>에서 "이달에 나온 좋은 어린이책" 추천을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추천하는 후보도서 다섯 권 가운데 하나를 뽑아서 쓴 소개글입니다. 다섯 권 모두 내키지 않았지만, 그나마 이 책에 별 셋을 주면서 추천을 해 봅니다..............

 

- 책이름 : 앨피의 다락방
- 글쓴이 : 베치 바이어스
- 옮긴이 : 김재영 / 그린이 : 오승민
- 펴낸곳 : 사계절(2007.6.8.)
- 책값 : 7500원


―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다락방에서 내려와야
: 《앨피의 다락방》을 읽으면서



 - 1 -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삶이 즐겁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못하는 것 하나 없고, 꿈꾸는 일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면, 이렇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자기한테 가장 신날까요. 나한테 재미난 삶과, 나 아닌 사람들이 둘레에 어우러져 있는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자기가 하고픈 말, 이루고픈 꿈, 좋아하는 무엇을 자기 식구를 비롯해서 동무나 학교 교사나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지만, 어느 한 번도 이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다락방 아이는, 늘 마음문을 닫아걸게 됩니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자기 둘레 사람들이 자기한테 아무 이야기도 안 들어준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는 자기 둘레 사람들 이야기를 하나도 안 들어주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한, 이 아이한테 어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들도 자기 마음에 드리운 그늘과 생채기를 말하고 싶어하면서도, 바로 자기 곁에 있는 식구들한테 드리운 그늘과 생채기에는 나 몰라라입니다. 다락방 아이 어머니가 읊는 “뭐든 얘기해 보라니까. 텔레비전이랑 할아버지 말고는 친구도 없이 하루 종일 집 안에 앉아 있는 엄마 좀 생각해 줘. 무슨 일 없었니?(39쪽)” 같은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어떤 일로 걱정과 근심이 쌓여 아픔과 외로움으로 커 가는지 모릅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떤 일로 고단함과 힘겨움으로 겨우 목숨만 잇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딸내미한테도 “네 오빠 도와주느라 네 소중한 돈을 눈곱만큼 썼지. 난 오빠를 도와줬다고 틀림없이 네가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오빠를 위해 그 돈을 쓴 걸 아직도 아까워하고 있구나.(95쪽)” 하면서 비아냥거립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들 마음조차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기 아이들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혼자서 집안살림 꾸리느라 돈벌고 밥하고(밥은 딸내미한테 거의 맡기지만)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느라 마음이 메말라 버렸고 뭉쳐 버렸다고 해야겠지요.

 어쩌면, 다락방 아이부터 이 아이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동무들과 교사들은 ‘자기가 보고픈 것만 보고’, ‘자기 둘레 사람들 삶과 생각과 마음’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싶어요. 자기 마음에 깊게 패인 생채기는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지만, 자기 둘레 사람들 마음에 ‘자기 마음에 패인 생채기만큼’, 또는 자기 마음에 패인 생채기보다 더 깊이 난 생채기를 볼 줄 모르고, 처음부터 들여다볼 마음이 없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다락방 아이는 한 가지를 압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135쪽).”는 걸. 그렇지만, 이 다음은 모릅니다. 다락방 아이 누나가 말하는 “앨피는 스스로 내려와야 해요. 꼭 그래야 해요.(111쪽)”를 모릅니다. 하지만, 다락방 아이 누나가 그러했듯이, 이 아이도 아직은 “정말로 상처받은 곳은 손가락으로 건드릴 수도 없을 만큼 아픈 법이다.(154쪽)”라는 참뜻을 헤아릴 날을 맞이하겠지요. 그러니, 다락방을 지켜내려고 꼼짝 않고 버티고 있다가 스스로 마음을 풀고 다락방에서 내려와 말을 했을 테며, 다락방 아이 자기뿐 아니라 자기 둘레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생채기를, 또 이 생채기를 아물게 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보도록 하는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겠지요.

 다락방 아이, 그리고 이 작품을 쓴 사람조차 미처 몰랐을 수 있는 “어쨌거나 너도 날 도와주지 않을 거잖아.(96쪽)”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말은 다락방 아이 어머니가 다락방 아이한테 한 말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도와주지 못할 뿐 아니라 도와줄 마음도 없는’ 가운데 ‘아이가 자기를 도와주기’ 바랍니다. 참으로 철없는 어머니이지만, 이 어머니네 아버지인 다락방 아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락방 아이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다면, 다락방 아이네 누나 한 사람은 다릅니다. 이야기책에서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곁다리로 나타나지만, 다락방 아이에 앞서 ‘다락방 아이가 느낀 그늘과 생채기’를 먼저 느꼈고, 이를 식구들과 동무들과 이웃들 사이에서 슬기롭게 풀어내며 살아갈 길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서 곰삭이고 있거든요. 다락방 아이는 이런 자기 누나를 오래도록 ‘못 보며’ 살다가, 다락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누나라는 사람이 자기 곁에 있음을, 자기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구멍이 난 채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다락방 아이네 누나가 “너하고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 걸 가져 본 적이 없어. 오빠가 싫어했던 거라면 몰라도.(84쪽)” 같은 말을 들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기네 학교 수학교사가, 자기가 그린 만화를 보여주었을 때 “이제는 수업이 끝난 다음에만 만화를 그리도록 해라.(70쪽)” 하는 말에 생채기를 받고,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엘피가 바라는 다락방 인생이었다.(139쪽)”와 같이 살아가려 할 뿐이었습니다.


 - 2 -

 동화책 《앨피의 다락방》을 덮으면서, 오늘날 아이들이 마음으로 앓고 있는 아픔이 누구한테나 참 클 수밖에 없음을, 그렇지만 그 아픔이 자기한테만 있는 줄 알고 자기 둘레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안 보려고 하면 ‘세상과 담을 쌓’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함을 살며시 느꼈습니다. 《앨피의 다락방》에 나오는 다락방 아이 엘피는, 앨피 자기처럼 세상을 더 살고 싶지 않고 사람도 더 만나고 싶지 않은 아픔을 이겨내고 제 나름대로 꿋꿋이 살아가는 누이가 있은 덕분에, 다락방을 지켜내고 다락방에서 스스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다락방 아이 엘피는 자기 누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자기 누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한 가지씩 생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자기네 학교 수학교사와 오랜 짝꿍 ‘트리’라는 아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자기를 놀려대는 이웃집 쌍둥이 아이들이 자기네 집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까요? 자기한테 끔찍이 싫은 부버 형과 새언니가 어떻게 세상과 부대끼고 있는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작품 바깥으로 나와서 이 책을 살피면, 무엇보다도 번역이 무척 깔끔하고 훌륭합니다. 군더더기나 쓸데없는 말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할 만큼 빈틈이 없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어렵거나 딱딱하게 굳은 말, 일본 말투나 어설픈 서양 말투에 젖은 잘못된 말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이사이 스며든 그림 또한 ‘스며든다’는 말마따나 참 좋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린 그림은 너무 틀에 박혀서,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며 다락방 아이와 어우러지는지, 또 다락방 아이네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합니다. 다락방 아이 모습은 잘 담아냈지만. 다락방 아이가 ‘자기 둘레 사람들, 식구부터 동무와 이웃 모두를 제대로 살피고 있지 못한 것처럼, 이 동화책에 실린 사잇그림도 다락방 아이를 빼놓고 다른 사람들 마음과 생김과 삶을 못 헤아리며 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이렇게 그렸는지 모르지요. 다락방 아이가 세상을 보는 그 눈길만큼만.

 그리고, 책이름을 누름글씨로 새겨넣었던데, 이 책 꾸밈새를 살펴보았을 때, 누름글씨를 해서 제작단가를 높이게 하는 그런 일을 굳이 했어야 하나 싶더군요. ‘앨피의 다락방’ 여섯 글자와 그림 하나를 누름글씨로 안 했어도 느낌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누름글씨를 안 했으면, 책값이 7500원이 아니라 7000원이 될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높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좋도록 편집을 잘하기는 했지만, 겉그림 누름글씨는 ‘치명타’라고 할 수 있는 아쉬움입니다. 다락방 아이 앨피가 세상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던 것처럼,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겨낸 출판사에서 우리네 아이들을 좀더 굽어살피지 못한 아쉬움이 묻어난다고 할까요. 깔끔한 번역글과 짜임새를 가려 버리는 이런 아쉬움을, 다음번 책에서는 떨쳐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별 셋을 주겠습니다. (4340.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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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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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나무소녀
- 글쓴이 : 벤 마이켈슨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양철북(2006.6.7.)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15 : 나무소녀
 -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가요

 
 - 1 -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3.5톤 짐차 석 대에 가득 실리는 책짐과 책꽂이를 옮겼습니다. 책을 묶는 데에 보름이 넘는 시간을 썼습니다. 책을 풀 때에는 하나하나 닦아서 꽂아야 하는 만큼 더 긴 시간이 들어갈 듯합니다. 3.5톤 짐차에는 책 만 권쯤 실린다는데, 얼추 3만 권이 조금 못 되는 책짐입니다. 책을 가까이한 때는 고등학교 1학년인 1991년. 이때부터 모은 책, 사이사이 헌책방에 내다 팔고 이웃들한테 주고 하면서도 남은 책이 이만큼. 얼핏 보기에는 많을 수 있지만, 가만히 살피면 많지 않을 수 있는 책. 3만 권이라고 해도, 여태까지 보고 살피고 만져 본 책이 이만큼이라는 뜻. 이제부터 새로 읽을 책, 새로 만날 책, 새로 제 곁에 자리할 책은 하나둘 늘어서 새로운 숫자를 이루겠지요. 저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살아갈 사람이며, 날마다 새롭게 살고픈 사람이니까요.


.. 나무소녀는 높이 올라가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지. 그렇지만 올라가면 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아주 강하기 때문에 삶에서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나쁜 일을 겪어야 할지라도 그걸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어. 희망을 찾기 위해 어떤 고통에도 굳세게 맞서지.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기 위해 추한 것들을 만날 위험도 무릅쓰고. 나무소녀는 다른 사람들은 무서워서 감히 덤비지 못할 때에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 ..  〈197쪽〉


 인천으로 오면서 보금자리를 튼 곳은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골목. 이곳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꾸릴 생각입니다. 일본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에는 백쉰 군데가 넘는 헌책방에 새책방도 대여섯 곳쯤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렇지, 조그마한 박물관과 도서관이 곳곳에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흐름이나 책문화라면, 새로 빚어내는 책이 머무는 새책방, 이 책 가운데 골라서 갖추는 도서관, 두 곳을 거쳐 세월 흐름을 고여 내는 헌책방, 이렇게 어우러지지 싶어요.

 인천에도 도서관이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배다리에는 없습니다. 또한 입시생이나 고시생이 학과공부하는 독서실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난 도서관을 찾기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책 하나로 이룰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책 하나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될까도 모릅니다. 다만 이곳에서 씨앗을 뿌리고 싶어요. 땅에 뿌리내린 씨앗 가운데에는 싹이 안 트고 죽고 마는 녀석이 있을 테니, 저도 그 씨앗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운이 닿는다면 잘 살아남아 한 해 한 해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씨앗이 어린나무로 자라는 데에 다섯 해쯤 걸리고, 어린나무에서 자라 여느 어른 키 높이쯤 되려면 열 해쯤 있어야 합니다. 제 사진책 도서관도 이런 빠르기와 흐름으로 알맞게 살찌우면 좋으리라 믿습니다.


.. 네 미래는 올바른 질문을 찾아내고 용기 내어 그 질문을 던지면서 찾아나가는 거다.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보다 훨씬 중요한 거야. 그렇지만 질문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가브리엘라, 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겠지. 하지만 왜 사는지도 알겠니? ..  〈46쪽〉


 사진책 도서관을 여는 까닭은 한 가지입니다. 제가 사진책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한 가지 주제로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동안 고개숙여 배우고자 하나하나 사들인 사진책이 어느덧 제법 숫자가 불어서 오천 권쯤 되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새 사진책을 사서 볼 생각이니까, 차츰차츰 늘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사진책은 ‘무던히 안 팔리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값이 퍽 비싸기도 하지만, 사진쟁이들치고 사진책 부지런히 사서 보면서 ‘동료 사진작가 작품’을 헤아리며 자기 작품을 돌아보는 분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가르치는 교수님들도,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도, 사진으로 먹고사는 사진작가나 사진기자도 ‘바쁘다는 자기 틈을 쪼개어 다른 이 작품을 살피는 일’이 꽤 드뭅니다. 그래서라고 느끼는데, 날이 갈수록 사진 찍는 분은 늘어가지만, 마음을 울리는 사진 작품 만나기는 어려워집니다. 멋들어진 사진은 늘어나지만, 맛깔스러운 사진은 줄어듭니다. 사진이란 어느 한때를 찰칵 담아내는 발자취만이 아닐 텐데, 사진에 어떤 삶을 담고, 누구 눈길을 깃들이며, 어떻게 나눌 마음과 넋을 어우러내느냐까지 살피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이런 몸짓과 눈길이라면, 사진을 찍을 때뿐 아니라, 우리 둘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때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 사진에 담는 사람들 모습이 겉핥기이거나 겉치레인데, 내 이웃한테 일어나는 일을 속깊이 살피거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 사진에 담기는 삶터가 겉모습뿐인데, 내 둘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밑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읽어낼 수 있을까요.


.. 저는 우리 말, 키체어로 된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우리 이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사실은 우리가 좋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겠죠.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그 사람의 종교, 관습, 이름을 바꾸도록 만들 수는 없을 거예요. 군인들이 우릴 존중하지 않는 건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인가요? ..  〈47쪽〉


 - 2 -


 디지털사진이 두루 퍼지면서, 한 가지 좋아졌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진을 스스럼없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나빠졌습니다. 1회용 플라스틱 같은 사진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과 세상을 사는 마음은 한 동아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즐기는 마음과 세상을 부대끼는 마음은 한 줄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다루는 마음과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마음 또한 한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잘 찍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사진을 그럴싸하게 찍으려는 사람이 우리 삶터를 어떻게 굽어살필까요. 사진으로 이름값-돈-힘을 얻으려는 사람이 제 식구와 벗과 이웃을 어떤 자리에서 함께하려 할까요.


.. 하늘이 어둑어둑하고 굵은 비가 내리던 12월 어느 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군인들이 우리 마을로 행군했다. 마을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군인들이 마을에 쫙 퍼져 집집마다 소총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 집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군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이 네 소유라는 권리증을 제시하라.”
 아빠는 젊디젊은 군인에게 사정했다.
 “그런 증명 같은 것은 없어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처럼 왔다 가는 방문객일 뿐입니다. 짧은 일생 동안 이 땅을 빌려 사용하는 방문객인 거예요. 이 땅은 누구 소유도 아닙니다. 조상님들이 아무런 권리증 없이 물려주었고, 또 우리도 아무런 문서 없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땅입니다.”
 “당신들은 법률을 위반했다. 30일 이내로 이 지역에서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 쫓아낼 것이다.”
 군인이 위협했다 ..  〈58쪽〉


 요즘도 모두 가시지는 않았으나, 지난날 독재정권 때에는 사진 한 장을 놓고 장난질을 참 많이 쳤습니다. 독재정권을 우상으로 섬기고, 이 나라 백성들은 폭도인 듯 거꾸로 뒤집어 꾸며댔습니다. 사진은 찍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찍는 눈길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사진기자는 ‘피맺히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백성’ 모습에는 슬그머니 눈을 감고 사진을 안 담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는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백성’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찍어서 이이가 미친놈이거나 깡패처럼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는 힘있고 돈있고 이름있는 사람들한테만 우루루 몰려다니며 이 사람들 이야기만이 세상에 알려지는 기삿거리가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사진 장난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사진에 찍혔으니 참이구나’ 하면서 그대로 믿어 버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 “네놈들 중 한 명이라도 오늘 있었떤 일을 내뱉으면 잡아죽일 테다. 알겠나?”
 우리는 모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지휘관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달렸다. 우리는 한 덩이가 되어 울퉁불퉁 자갈이 깔린 강가를 달려 백여 미터 떨어진 숲으로 뛰었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기 전에 총소리가 울렸다. 내 옆에서 달리던 파블로가 쓰러졌고, 바위 위에 붉은 피가 흘렀다. 돌아보니 빅토리아도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숨을 헐떡였고 연달아 루벤이 쓰러지자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루벤이 땅에 고꾸라지며 머리를 바위에 부딪혀 ‘쿵’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어린 리사가 우리 뒤에서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걸음이 느려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속도를 늦춰 리사의 손을 잡았지만, 손을 잡는 순간 총소리가 울리고 리사도 엎어졌다 ..  〈78쪽〉


 ‘기록되는 역사’와 ‘기록되지 않는 역사’가 있어요. 지난날 조선-고려-신라-발해-고구려-백제-가야-…… 임금들 이름은 역사에 잘 남아 있습니다. 신하들 이름도 잘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삶터를 지키고 있던 보통사람들, 백성들 이름은 한 줄도 안 남아 있습니다. ‘궁중 음식 요리법’은 역사책에 남아도, ‘보통사람들 상차림’은 어디에도 안 남습니다. ‘궁중 문화와 전통과 옷차림과 살림살이’는 역사책에 남고 문화재가 되어도 ‘보통사람들 문화와 전통과 옷차림과 살림살이’는 구지레한 쓰레기 대접만 받습니다.

 ‘기록되는 사진’과 ‘기록되지 않는 사진’을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 틀거리는, 삶터 얼거리는, ‘기록되는 사진’만 보도록, 이런 사진만 배우도록, 이런 사진만 느끼도록 흘러가고 있지 않나요. ‘기록되지 않는 사진’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거나 없는 듯 여겨지지 않나요.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도 이런 데에는 눈길을 안 두지 않나요.


.. 나는 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불붙은 집 앞에 시체가 하나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다른 시체, 또다른 시체가 보였다. 잿더미가 된 우리 마을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마을에서 군인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들판에 쓰러져 있었다. 소총이나 헬리콥터에서 쏘아대는 기관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늦은 오후 황혼 속에,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모들, 삼촌들, 할아버지들, 그리고 이웃들이었다 ..  〈85쪽〉


 저는 헌책방 한 가지를 찍습니다. 헌책방은 제 마음이 쉴 자리이며 제 몸을 추스르는 자리인데다가 제 뜻을 펼치고 제 꿈을 다독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넘나드는 책이 있고, 나라와 문화를 넘어서는 온갖 책이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잘난 책이 없으며 못난 책이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책입니다. 앞서가는 책이나 뒤처지는 책이 따로 없습니다. 100해를 묵었건 한 달밖에 안 되었건, 그때그때 우리 형편과 터전에 걸맞는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찾아내고 밝혀내고 담아낼 때 빛이 되어 주는 책이 있는 자리입니다.

 이 헌책방을 찬찬히 다녀 보지 않은 분들은 ‘헌책방은 지저분한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싸구려 책이 있는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어둡고 어수선한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책방 임자가 바가지를 씌우는 곳이다’라든지 ‘헌책방 임자는 책도 모르는 바보다’ 따위 생각을 품습니다. 이리하여 이곳을 사진에 담을 때 이런 치우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자기가 바라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무슨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이런 사진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마음을 짠하게 움직이는 사진을 남길 수 있을는지요.


.. 곧바로 다른 여자 하나가 끌려나왔고 강간이 계속되었다. 군인들은 서로 먼저 하겠다고 다투었다. 몇 시간 동안 나는 마치치나무에 매달려 시체가 불에 던져지는 걸 봤다. 군인들은 칼로 시체에서 금니를 도려낸 다음 굶주린 불길에 던져 넣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들키거나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 대신 두 귀를 틀어막았지만, 절박한 비명과 고통의 신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여러 가지의 다른 마야어가 비명과 울부짖음과 함께 울려퍼졌다. 군인들이 지껄이는 소리와 농담은 오직 한 가지 언어, 에스파냐어뿐이었다 ..  〈120쪽〉


 - 3 -


 헌책방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배다리 한미서점, 부개 책사랑방, 용산 뿌리서점, 노량진 책방 진호, 진주 동훈서점, 제주 책밭서점, 보수동 우리글방, 원동 육일서점, 목동 수현헌책방, 원당 집현전, 신촌 공씨책방, 연대 정은서점, 연신내 문화당, 수원 오복서점, 중앙동 보문서점, ……. 이름이 있다 함은 모두 고유한 자기 삶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한테는 ‘최종규’라는 이름이, 제가 쓴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한테는 그분들마다 자기 이름이 고유하게 있습니다. 고유한 이름 하나는 그 사람 모두를 가리킵니다. 우주와도 똑같은 그이 한 사람, 너나없이 소중한 목숨붙이 하나. 이 고유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눈이 반짝 빛난다고 느낍니다.


.. 때로는 낯선 사람들이 피난민들에게 다가와 방향을 일러 주고 군인들이 어디에 주둔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군대를 위해 함정을 놓는 게 아닌가 경계했다. 그 사람들 말을 믿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끝없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고 서로 아무도 믿지 않았다 ..  〈132∼133쪽〉


 이름을 알지 못할 때, 아니 이름을 생각하지 못할 때, 아니 이름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무슨 사진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요. 나와 남이 아닌 ‘최종규’와 ‘아무개’가 아니라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가 아닌 구경꾼이나 떠돌이라면 사진에 담기는 모습은 어떠할까요.


.. 내가 밀어 쓰러뜨린 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잡으러 다시 트럭 쪽으로 몰려갔다. 나는 넓은 곳으로 나와 방수막을 위필 안에 감췄다. 파란 방수막은 대충 텐트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큼직했다. 드디어 집이 생긴 것이다. 방수막을 살펴보며 흡족해하다가, 고개를 들어 내가 밀어낸 할머니 둘을 흘깃 보았다. 할머니들은 무리에서 돌아서서 가는 길이었다. 한 할머니는 심하게 다리를 절었고 다른 할머니가 부축했다. 둘 다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수치심이 몰려왔다. 저 할머니들은 나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방수막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저 할머니들은 오늘밤 추운 데서 자야 하는 걸까? 내일이면 해를 가릴 곳 하나 없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시체로 발견되는 건 아닐까? 모두 나 때문이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버린 걸까? 나의 기품이란 건 내 몸의 때만큼이나 얄팍했던 것일까? 고작 방수막 하나에 자존심을 버리고 말다니. 이렇게 살려면 살아남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엄마 아빠가 지금 내 모습을 봤으면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  〈146쪽〉


 저는 돈이 없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사진기를 쓰지 못합니다. 쓰고픈 사진기를 장만하지 못합니다. 몇 차례 여러 해에 걸쳐 적금을 부은 뒤 렌즈 하나, 몸통 하나 장만하기는 했는데, 두 번 도둑을 맞았고, 지금은 가까스로 새 사진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돈을 모을 길이 없어서 장비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더 나은 장비가 없다고 사진을 못 찍을 일이란 없습니다. 더 나은 필름을 못 쓴다고 해서 더 훌륭한 사진을 못 찍을 일 또한 없습니다. 값비싸고 대단한 필름을 쓴다고 해도, 사진기로 바라보는 세상이 좁다면, 사진기 눈구멍으로 겉모습밖에 읽어낼 수 없다면, 쓰레기하고 다를 바 없는 사진밖에 안 나오잖아요. 그저 1회용품 사진만 나오잖아요.


.. “미국에서 카이빌을 무장하고 훈련시켰어요.”
 “미국사람들은 나쁘지 않아요. 미국인들이 수용소에 있는 우릴 도와주잖아요. 구호품 대부분은 미국에서 온 거예요.”
 내가 말했다.
 “미국 시민들이 그러는 거지. 미국 정부는 달라. 미국인들은 대부분 자기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라. 알고 싶어하질 않는 거지.”
 젊은 남자가 덧붙여 말했다 ..  〈156쪽〉


 ‘로모’라고 하는 사진기를 사서 쓰는 분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이분들 가운데 ‘여러 해에 걸쳐 꾸준하게’ 로모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남들이 사서 쓰니까, 재미있으니까, 몇 번 쓰다가 다시 중고로 내다 팔곤 합니다. 디지털사진기도 비슷합니다. 화소수가 더 높은 게 나오니까, 더 쓰기 좋다고 하는 게 나오니까 자꾸자꾸 바꿉니다. 어쩌면 새로운 사진기로 바꾸어 새 기능을 익히는 데에 온 시간을 빼앗기고, 정작 자기가 바라거나 좋아하는 모습을 찍는 데에는 시간을 못 쓰는지 몰라요. 사진에 담을 대상을 찾고 느끼고 생각하고 함께하는 데에 시간을 못 보내고, 기계 다루는 데에 시간을 다 쏟으니, 정작 사진에 담기는 모습이라곤 알맹이가 없겠지요. 아무 모습이나 마구마구 찍다가는, 나중에 정리할 때 다 지워 버리겠지요.

 자기가 찍은 사진을 한 번이라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지, 자기가 찍어 놓고도 다시는 볼 일이 없어서 셈틀 용량만 꽉꽉 채워서 짐덩이로만 만드는지 돌아볼 일이라고 느낍니다.


.. 누더기공이 너덜너덜 자꾸 풀어져서, 나는 얼굴을 익힌 구호요원한테 다가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부탁했다.
 “공 한 개 구해 주실 수 있어요?”
 미국인 구호요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가 놀이터니? 여긴 난민 수용소잖아.”
 “아이들은 다시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해요.”
 구호요원이 화를 내지 않을까 겁이 났지만 나는 계속 매달렸다.
 “행복해지려면 놀이가 필요해요. 놀기 위해서 제대로 된 공이 필요하고요.”
 “수용소에 필요한 건 의약품과 식량이야.”
 “공이 약이에요. 아이들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약이요.” ..  〈169∼170쪽〉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는 오늘 하루군요. 이제 저도 사진기를 둘러메고 요 앞 헌책방 한 곳에 찾아가서 책 구경을 해야겠습니다. 슬슬 책을 둘러보면서 사진 몇 장 찍어야겠어요.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헌책방을, 제가 좋아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헌책방에서 제 마음에 빛이 되는 책 하나를 찾고, 제 마음 깊숙한 데에서 느껴지는 모습을 차분히 담아야겠어요.


 - 4 -


 이야기책 《나무소녀》는 과테말라 내전을 줄거리로 담습니다. 하지만 ‘내전’이라는 말을 붙이기 멋쩍습니다. 미국 뒷배를 받는 독재정권이 과테말라 보통사람들을, 또 산골과 시골에 사는 토박이들을 괴롭힐 뿐 아니라 끔찍하게 죽이고 마을을 없애서 난민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얼치기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놓고 ‘내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볼 줄 모르고, 사람 삶터를 사람 삶터 그대로 아낄 줄 모르고, 어떤 눈먼 잇속을 챙기려는 움직임 때문에 고달파하며 목숨까지 잃어야 하는 아픔을 한 마디 ‘과테말라 내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학살에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수많은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이들 과테말라 토박이는 역사에 이름 한 번 남은 적이 없고, 이들 삶터는 지도책에 그림 한 번 그려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자 마을’이 ‘기록되지 않은 학살’에 송두리째 날라가 버렸다고 할까요.

 우리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할 수 있고, ‘에이, 꾸며낸 이야기겠지?’ 하며 스쳐 지나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테말라 토박이들한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며, 잊혀지지 않는 생채기입니다. (4340.4.24.불.ㅎㄲㅅㄱ)


.. 내가 학살에서 살아남은 건 내가 겁쟁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강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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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록되지 않은 사진, 저도 이 책을 읽었었지만 님의 글은 정말 인상 깊은 리뷰네요.
카불의 책장수, 리뷰를 따라 왔다가 이렇게 두루 읽고 갑니다. 그냥 가기 미안해서
인사드리구요^^ 반갑습니다.

숲노래 2007-09-13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긴 글이었는데, 애써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청소녀 백과사전 낮은산 너른들 2
김옥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낮은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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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청소녀 백과사전
- 글 : 김옥 / 그림 : 나오미양
- 펴낸곳 : 낮은산(2006.10.30.)
- 책값 : 8800원


이 책 하나 12 ― 청소녀 백과사전
: 내 백과사전에는 무슨 이야기가 적힐까

 
 시골집에 있을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지냅니다. 이웃집이 없고(지난 섣달그믐날 그만 불이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찾아오는 사람 없는 한편, 작은 방에서 홀로 책하고 씨름하며 살고 있거든요. 저라고 무슨 할 말이 없겠습니까만, 그저 새하고 별하고 해하고 바람하고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뿐입니다. 때때로 천장에서 뛰어다니는 새앙쥐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한테는 제 속에 담은 말, 이를테면 ‘내 백과사전’에 담기는 말은 털어놓지 못합니다.


.. 내 나이 올해로 열세 살, 먹을 만큼 먹었다 ..  〈106쪽〉


 쉬가 마려워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가 풀밭에 볼일을 봅니다. 둘레가 퍽 밝다고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이 밝게 빛납니다. 아직 반쪽짜리 달이지만, 온 마을과 들판과 산을 하얗게 덮고 있는 눈 때문에 저리 밝게 보이네요. 얼어붙은 밤하늘이라는 말을 곧잘 들었는데, 오늘 밤하늘이 꼭 그 모습입니다. 달빛이 비쳐 하늘로 올라가는지 달 말고 다른 별은 잘 안 보입니다. 구름도 없는 이 밤, 멧새들은 일찌감치 서로 몸을 바싹 붙이며 잠들었지 싶습니다. 새벽만 되어도 창밖에서 부지런히 지저귀며 하루를 여는데.

 조용하군요. 지나가는 차가 없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참 조용하군요. 해 떨어지고 밤이 되니 더 조용합니다. 어제그제 눈이 내려 읍내 마실을 못했으니 집구석에서 입을 열 일도 없습니다. 자리에 드러누워 밝은 노래를 틀어 놓고 흥얼흥얼 따라할 때, 밥을 먹을 때 잠깐잠깐 입을 엽니다.


.. “엄마도 화장하고 파마도 하잖아.” “나하고 너하고 같아? 나는 어른이고 너는 학생이잖아.” “그럼 엄마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딸 밥도 잘 안 챙겨 주는 거는 엄마 노릇 잘하는 거야?”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누군 구누야 엄마가 좋아서 엄마 인생을 사는 거지. 나는 바보처럼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 거야. 그리고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  〈22∼23쪽〉


 1995년 4월, 부모님 집을 떠나 서울 이문동으로 살림을 옮기던 때가 떠오릅니다.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에는 너무 멀고 찻삯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 즈음 저는 집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집에서 크게 울려퍼지는 텔레비전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새로 살림을 꾸리는 곳에는 텔레비전이 없어 좋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린 뒤, 신문사지국 형들과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 다음, 학교도서관과 구내서점에서 시간제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학교 앞 헌책방에 들른 뒤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여섯 달을 보낸 뒤 11월에 군대로 끌려갔습니다(우리 나라 군대는 강제징집제니까).


.. 의욕에 넘친 나는 사인펜을 들고 1면을 향해 돌진하다 말고 멈칫 했다. 가족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  〈52쪽〉


 군대 가기 보름쯤 앞서 부모님 집으로 잠깐 돌아옵니다. 하지만 잠깐도 못 있고 이날 곧바로 집을 다시 나갑니다. 아버지하고 크게 싸웠거든요. 싸움 빌미는 제가 벗어 놓은 옷(신문배달을 하며 입던 땀에 전 옷)을 아버지가 “이런 걸레를 아무 데나 두면 어떡해?” 하면서 제 속을 긁었기 때문. “걸레를 걸치는 사람도 걸레겠죠.” 하고 대꾸를 했고, 아버지는 “뭐야?” 하면서 주먹을 휘두릅니다. 저는 아버지 주먹을 막으며 밀칩니다. 아버지는 힘없이 나가떨어지고, 옆방에 있던 형이 나와 “야, 아버지한테 뭐 하는 거야?” 하며 제 따귀를 올려붙입니다. “그래, 내가 나가면 다 되겠네.” 하고 그 길로 부모님 집을 나왔습니다.


.. 수학여행 가서 지킬 일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기나긴 당부 말씀이 끝나고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철이랑 나는 ‘맨 뒷자리에서 만나.’ 하는 눈빛을 서로 나누었다. 하지만 차에 먼저 타 있던 선생님은 통로에 버티고 서서 말했다.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 키 순서대로 앉고 맨 뒷자리는 비워 둬라.”  좋다가 말았다. 키가 작은 나는 앞자리고 키가 큰 철이는 뒤쪽에 앉게 되어 우리는 견우 직녀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  〈138쪽〉


 입대를 하루 앞두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옵니다. 군대에 간다는 말은 안 했거든요. 아버지한테 “저를 보기 싫으면 안 보셔도 되지만, 앞으로 두 해 동안 볼 일이 없으실 테니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하고는 큰절을 한 뒤 집을 나섭니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아파트 툇마루에 서서 저를 배웅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계신가? 고개를 돌리고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그대로 계십니다.


.. 평범하고 조용한 그 아이. 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애가 진짜 내 영웅이다. 나는 얼른 단짝인 애리 손을 꼭 잡았다. 지금이 바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때 아닐까? ..  〈131쪽〉


 혼자 기차역에 가서 혼자 기차를 타고 훈련소에 닿습니다. 표를 두 장 끊었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습니다. 수원쯤이었나, 어느 할머니가 힘겹게 올라타기에 “제 옆자리는 비었으니까 앉으셔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훈련소 둘레에는 부모며 애인이며 동무들이며 온갖 사람들하고 함께 온 사람들로 득시글득시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뭔 저런 꼴값을 떠나 하고 생각. 훈련소에 들어가 한 달 남짓 얻어맞고 구르고 흙과 땀에다가 갖은 욕을 먹습니다. 잘하면 욕, 못하면 욕에다가 주먹다짐. 문득문득 ‘이렇게 구르느니 바로 하사관 지원해서 나중에 이 훈련소 조교들한테 똑같이 앙갚음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을 할 틈조차 거의 없이 뺑뺑이로 한 달은 훌쩍 지나갑니다. 그리고 자대배치를 받아야 하는 날.


.. 비밀 정원이 우리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은 손바닥만한 뜰조차도 없는 작은 아파트이다 ..  〈163쪽〉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운이 지지리 없다고 해야 할지, 저를 비롯한 얼마 안 되는 훈련소 동기들만 논산에 다시 남아 두 주 동안 새로운 훈련을 받게 됩니다. 새로 받는 훈련은 ‘주특기훈련’. 제가 서 있던 줄은 무반동총(106) 주특기훈련을 받습니다.

 운이 좋다고 한다면, 훈련병으로 한 달이 지났으니 어깨에 빨간 계급장 한 줄(요즘은 까만 계급장으로 바뀌었습니다)을 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중에 들어온 훈련생들 앞에서 우쭐댈 수 있습니다(참 웃긴 일이지만). 운이 지지리 없다고 한다면, 두 주 동안 주특기훈련을 더 받는 우리들은 거의 모두(퍼센트로 따지면 99%) 최전방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 제 운명은 최전방으로 떨어졌는데, 그 최전방에서도 가장 앞에 있는 곳으로 가고야 맙니다.


.. “치, 그런 게 어디 잇어. 순 거짓말이잖아.” 엉터리 말에 나는 웃어 버렸다. 아빠는 늘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지만, 나는 솔직히 부자인 별이네 아빠가 더 부럽다. 가난한 우리 아빠는 늘 보이지 않는 것, 만질 수 없는 것만 주니까 말이다. “우리 영자 사랑해.” 하며 내게 그려 보이곤 하는 사랑 모양도 두 팔을 내려 버리면 그뿐이고, 작년까지도 늘 잠들 무렵이면 해 주던 ‘사랑하는 따님에게 바치는 잘 자라 뽀뽀’도 아빠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별이네 아빠는 정말로 보이는 것들,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줄줄 풀리는 화장지처럼 끝도 없이 사 준다 ..  〈164쪽〉


 주특기훈련 두 주를 끝마칠 즈음입니다. 실기시험(사격 연습)을 치르는데, 저는 운이 좋게 ‘어깨쏴’와 ‘엎드려쏴’ 두 가지 쏘기에서 잇달아 10점 만점을 쏩니다. 사실, 이 실기시험에서 1점이라도 깎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기나긴 얼차려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죽든지 살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쏘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운은 저 말고 다른 동기들은 아무도 20점 만점을 못 쏜 덕분에 훈련을 마치고 부모님을 불러 드디어 면회를 하게 되는 날, 연대장 표창하고 휴가증 하나를 받습니다.

 넉 주 훈련소살이에 두 주 훈련소살이를 더하니 집에서는 소식이 뚝 끊어져 애가 무척 타셨던 듯.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부모와 자식 사이였을까요. 다른 집 자식들은 넉 주 뒤에 면회 오라고 연락이 왔다는데 왜 너만 연락이 없었느냐고(두 주 동안은 편지도 쓸 수 없었으니),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아셨답니다. 어쨌든 면회 오시는 날, 주어진 시간은 무척 짧으니 단출하게 도시락쯤만 준비해 주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으나, 어머님은 무슨 잔치상 비슷하게 차려 오십니다. 그 무거운 걸 어찌 들고 오셨을꼬. 그런데 다른 동기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고작 한 시간 면회에 그 많은 걸 어떻게 먹을까요. 하지만 여섯 주 동안 밥다운 밥 한 번 못 먹은 우리들은 게걸스럽게 잔치상을 입에 처넣습니다. 말할 틈 없이 바쁘게 우겨넣습니다. 물 마실 틈 없이 바삐 쑤셔넣습니다.

 짧은 면회는 끝. 이제 내무반으로. 조교들은 ‘그사이 잘 먹었느냐?’면서 히죽히죽. 꼬투리를 이것저것. 뭐가 문제라느니 뭐가 잘못이라느니. 데굴데굴. ‘한 시간 동안 잘 먹었으니 이제 되지 않느냐’고 한 마디. 괴로운 얼차려를 못 참고 게워내는 동기들 여럿.


.. 그럴 때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이 아파 왔다. 마치 소중한 나만의 것을 빼앗긴 듯한 이 이상한 기분. 만약에 별이가 뽑히고 내가 떨어졌어도 선생님은 내게 낮은 음을 맡겨 주셨을까? 절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  〈180쪽〉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양구 보며 살아야지.”라는 짤막한 노래가 있습니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노래입니다. 고달픈 군대살이를 하며 누군가 읊다가 입에서 입으로 이어온 노래이지 싶은데, 줄을 잘 섰거나 뒤가 든든한 녀석들은 대전이며 서울이며 춘천이며 살기 좋은(군인한테만) 곳에 자기 보금자리를 틀고, 줄을 못 섰거나 뒤가 하나도 없는 저를 비롯한 열여섯 사람은 열서너 시간 동안 눈이 가려진 채 기차를 타다가 춘천에서 내린 뒤, 군대짐차를 두 번 갈아타고, 배를 한 번 타고, 다시 군대짐차를 타고, 두 번 더 군대짐차를 옮겨탄 뒤 비로소 양구에 떨어집니다. 마지막 가장 밑바닥 중대까지 온 훈련소 동기는 모두 다섯. 자대에 떨어진 밤에도 눈은 펑펑 내렸고, 신병임에도 빗자루 하나 얼결에 받아들고 부지런히 눈쓸기를 합니다. 이튿날 새벽에도 일찌감치 깨워 빗자루 들리고 한 시간 넘게 산을 타라고 하더니 길을 쓸라고 합니다. 이 눈쓸기는 1995년 12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참 징하게 했습니다. 넉가래로 눈 예술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 그동안 나는 학교에서 조금 삐딱한 아이였다. 눈부시게 흰 실내화를 신은 아이들 사이에 오직 나만 군청색 슬리퍼를 직직 끌고 다녔다. 앞뒤가 꽉 막힌 실내화는 답답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노랗게 염색한 단발머리를 늘어뜨려 한쪽 얼굴을 온통 가려 버렸다. 그러고는 아이들 몇과 화장실 구석으로만 몰려다니다가 선생님들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냥 어른들이 싫었고 늘 어디론가 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은 모두에게 구제 불능의 삐딱이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우리 집 앞 커다란 교회의 지하실로 향하는 돌계단에서 몇 시간이고 조용히 책 속에 빠져드는 아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일요일이면 언덕 너머에 내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어두워지도록 들판을 헤매고 다니는 싸돌이라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  〈90쪽〉


 1997년 12월 31일, 현역군인한테는 마지막 특명이 떨어져 엿새 일찍 전역을 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뽑히며 군대조직이 꽤나 많이 바뀌었더군요. 제가 전역하는 이듬해부터 예비군제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렇게 바뀌는 제도에 끼워맞추려고 제 또래 동기들이 특명을 받았던 것.

 하지만 이 특명을 고맙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부처님오신날까지 눈이 내리는 양구 깊은 산골짜기를 떠나게 되어 홀가분했던 마음은, 버스 두 번 타고 서울에 내려 참으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는 동안 어두워집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지는 한강이 내다보이는 그때, 제가 앉은 맞은편에는 생활정보지를 무릎에 얹어 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머리가 하얗게 센 양복쟁이 아저씨가 있었으니. 흔들흔들 하던 아저씨 머리는 콩 하고 문가 손잡이에 부딪히고, 그 결에 무릎에 얹어 놓은 생활정보지는 바닥으로 우수수. 퍼뜩 놀라 잠에서 깬 아저씨는 바닥에 흩어진 생활정보지를 엉거주춤 줍고.

 인천에 있는 부모님 집에 들어오지만 반기는 사람 없이 텔레비전 소리만 윙윙윙. ‘내가 지금 전역한 것 맞나?’ 윙윙윙거리는 아홉 시 새소식에는 ‘아이엠에프가 어쩌고 저쩌고’. ‘아이엠에프가 뭐지? 제기랄, 뭔지 몰라도 한 두어 달쯤 아무 생각 없이 좀 쉬어 보자. 너무 긴 이태였어.’


.. 오히려 엄마는 다른 애들 다 뚫는 귀를 나만 못 뚫은 채 있으면 더 걱정할 것이다. 행여나 내 자식이 귀 하나도 못 뚫는 용기 없는 바보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문제적인 아이들을 보면 근심스레 내 얼굴부터 살피는 분이 바로 우리 엄마다. 행여나 내 자식도 안 보이는 데서 저런 짓이나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빠는 아무 눈치를 못 챘다. 저녁 밥상에서도 엊그제 본 내 학원시험 점수가 언제 나오는지, 얼마나 오를지만 궁금해할 뿐이다 ..  〈115쪽〉


 1998년을 맞이하고 닷새 뒤, 또다시 집을 나섭니다. 군대 가기 앞서 일했던 신문사지국에 전화를 걸었더니 ‘언제든 와.’ 하는 한 마디.

 눈칫밥 먹는 부모님 집에서는 하루도 더 있기 힘든 형편. 군대에 있는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을 수 없었기에 두어 달쯤 질리도록 책 좀 볼까 싶었지만, 나라살림도 힘든 판에 집에 밥벌레 하나가 얹혀졌다고 느끼셨는지.

 아무 미련 없이 짐을 꾸립니다. 집에 남아 있는 제 책과 짐은 얼마 뒤 짐차 한 대 불러서 모두 가지고 서울로 뜹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 “엄마도 화장하고 파마도 하잖아.” “나하고 너하고 같아? 나는 어른이고 너는 학생이잖아.” “그럼 엄마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딸 밥도 잘 안 챙겨 주는 거는 엄마 노릇 잘하는 거야?”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누군 누구야 엄마가 좋아서 엄마 인생 사는 거지. 나는 바보처럼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 거야. 그리고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  〈22∼23쪽〉


 그리고 2007년. 멋대로 살아가는 둘째아들은 다른 친척들 앞에 내보이기 부끄럽다며, 사촌동생 장가가는 날에 ‘오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곧 설 명절. 설 명절에는 집에 ‘오라’고 하실는지. 또 ‘오지 말라’고 하실는지. 전화를 걸어 한 번 여쭈어 보면 될는지. 어찌하면 좋을까요.


.. 문제아인 애들도 진짜 속까지 문제아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애들도 그게 편하니까 그런 척할 뿐이다. 어른들만 속고 있지 애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  〈14쪽〉


 제 ‘백과사전’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몇 줄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제 아버지 백과사전에는, 또 어머니 백과사전에는, 형 백과사전에는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을까요.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온 우리 식구들은 무슨 이야기를 당신들 백과사전에 적으셨을까요. 앞으로 그 백과사전에 적힌 이야기를 들여다볼 날이 있을까요. 부모님이나 형은 제 백과사전에 적힌 이야기를 들여다볼 날이 있을까요. 글쎄, 글쎄요. (434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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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왔어요 답장도 썼어요
모리야마 미야코 지음, 히로세 겐 그림, 양선하 옮김 / 현암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 수수한 즐거움이지만, 책을 덮으니 아쉬운


책이름 : 편지가 왔어요, 답장도 썼어요
글 : 모리야마 미야코 / 그림 : 히로세 겐
옮긴이 : 양선하
펴낸곳 : 현암사(2006.11.15.)
책값 : 7800원


 지난 한 주, 자전거를 타고 충주부터 부산까지 달렸습니다. 부산으로 가는 길에 틈틈이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한두 장 산 다음, 아는 분들한테 먼 곳 소식을 띄웠습니다. 상주에서 한 통, 대구에서 두 통, 부산에서 한 통 띄웠습니다. 피시방에 들러 인터넷에 들어가 또각또각 자판을 두드리면 몇 초 만에 편지가 가기는 하지만, 지역 우체국 도장이 쿵 찍힌 엽서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곳에 발을 내디뎠다는 자취를 남기고도 싶고, 제가 다니면서 부대낀 여러 가지를 엽서 한 장에 담아 함께 나누고도 싶었거든요. 편지쓰기는 소식을 알리는 구실을 하는 한편, 저마다 다른 삶터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담습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한달까요.

 사람 사는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이 세상에서 사람 냄새를 느끼기 참 어렵습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나, 자기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물결을 사람으로 느끼는 이는 아주 드문 듯합니다. 피붙이나 고향동무를 애틋하게 그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일터식구들한테 마음쓰는 분은 또 얼마나 되지요? 입으로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뇌까리지만, 정작 우리들 움직이는 몸놀림을 보면, 이웃사람한테는 조금도 마음을 안 쓰고 자기만 잘되고 잘살기를 바라지 싶어요.

 이야기책 《편지가 왔어요, 답장도 썼어요》는 이제 막 익힌 ‘글’을 어떻게 몸에 익히면 좋을지를, 또 내 둘레에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가를 가만히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글을 배우고 셈을 배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왜 책을 읽어야 하고 학교에서 동무들과 어울려야 하며 여러 가지 과목을 배워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한자며 영어며 마구마구 가르치려 하는 사람은 많아도 ‘아이들 스스로 왜 배워야 하나’를 느끼도록 먼저 길잡이 노릇을 하는 부모나 교사는 거의 안 보입니다. 또한, 부모나 교사 스스로도 ‘아이들한테 무언가를 가르치는 까닭과 보람’을 못 느끼지 싶어요.

 《편지가 왔어요, 답장도 썼어요》에 나오는 아기곰 뿌뿌는 어느 날 길에서 가방 하나를 주웠고, 이 가방 임자를 찾아 주면서 토끼 할머니를 알게 됩니다. 아직 자기 집 둘레 작은 삶터만 아는 아기곰이었는데, 퍽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사는 할머니를 알게 되고 편지를 받으면서 세상 보는 눈을 넓히고, 맞춤법도 엉망이었던 자기 글도 차츰 가다듬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할머니한테 보내는 편지에 담을 이야기를 둘레에서 얻습니다. 그동안 대충 스치고 지나쳤을 법한 일들, 동무들과 어울리는 삶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돌아봅니다. 이리하여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 아끼는 생각, 사랑하는 마음결도 하루하루 자라납니다. 겉치레가 아닌 속가꿈으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마음을 열고 나눈 편지 한 통이 아기곰한테 우리 세상이 살기 좋은 곳임을 깨닫게 한달까요. 아기곰은 아직 깊이 느끼지는 못할 테지만.

 글쓰기든 편지쓰기든 일기쓰기든, 너무 억지로 시키는 부모와 교사가 많은 우리 형편에서, 《편지가 왔어요, 답장도 썼어요》는 아이들한테 참말 있어야 하는 것, 아이들이 세상을 즐기면서 부대끼는 길을 어떻게 추스르면 좋은가를 나긋나긋 들려줍니다. 조용히 보여줍니다.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꾸밈없이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서로 어우러지는 재미난 세상을 깨닫도록 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책에는 여러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먼저, 남자와 여자 성구실을 틀에 박히게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부엌데기로, 아버지는 바깥에서 회사 다니며 돈 벌고 궂은 일을 도맡는(이야기 끝에는 수해복구 지원에 나서기도 합니다)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에서 이 동화를 언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 짜임새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성구실을 잘못 받아들이도록 할 걱정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이들이 맞춤법을 엉망으로 쓰다가 올바르게 맞추게 된 다음에 쓴 편지에서 ‘틀린 맞춤법’으로 나오는 대목(34쪽, 56쪽을 보면,‘-예요’로 써야 하는데 ‘-에요’로 잘못 씀. 63쪽에서는 바르게 나옴)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볼 아이들(예닐곱 살∼초등학교 1ㆍ2학년) 눈높이를 헤아렸을 때 어울리지 않는 얄궂은 말과 말투가 많이 보입니다. 몇 가지를 들어 봅니다.


- 감사(→고마움), 다행이구나(→잘 되었구나), 점점(→차츰), 간신히(→가까스로,겨우), 비하면(→견주면, 대면), 생각 중이었단다(→생각하고 있었단다), 당근 쿠키(→당근 과자), 그로부터(→그 뒤로), 할머니로부터(→할머니한테) 한 달만의 소식(→한 달 만에 온 소식), 할머니의 편지를(→할머니한테 편지를), 방망이질하기 시작했습니다(→방망이질을 합니다), 무사하단다(→괜찮단다,걱정없단다), 급히(→바삐,서둘러), 순순히(→얌전히,곱게), 식사(→밥), 정중하게(→다소곳하게), 계속(→꾸준히), 직접(→손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아쉽습니다. 이만한 줄거리를 담은 이야기책이라면, 굳이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기기보다는 나라안에서 창작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나라안에서 힘쓰는 어린이책 작가한테 이런 괜찮은 이야기책이 나라밖에 있음을 이야기한 다음, 우리 형편에 맞고 우리들 이야기에 어울리는 한편 이 나라 아이들이 좀더 재미나고 살갑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새로 지어내는 거지요. 그렇게 창작 동화가한테 기운을 북돋우고 좋은 이야깃감을 알려준 뒤, 더 즐겁게 우리 아이들이 즐길 작품을 빚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본 아이들만 즐길 만한 작품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즐겨도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으로 번역을 해서 펴낸 책입니다. 그렇지만 책을 덮는 마음은 홀가분하지 못합니다. 이 나라 창작 동화가들 눈높이와 글솜씨로는 이만한 책조차 스스로 빚어내지 못하는가 싶어서요. 그리고, 책을 펼치기 매우 안 좋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보면서 책이 다치지 않도록 양장으로 묶었다고 하겠지만, 어른이 보아도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한편, 종이결이 날카로와 손이 긁히기도 하며, 가운데가 잘 접히지 않고, 가운데를 접으려고 누르면 책이 북 하고 부서집니다. 펼쳐서 넘기기 힘들도록 되어 있는 제본 말썽을 아직도 풀지 못하는가요? 좀더 부드러운 종이로, 또한 가벼운 책으로, 그리고 ‘아이들이 보다가 책이 좀 망가지더라’도 단출한 꾸밈새로 묶어낼 수 있으면 좋겠군요.

 작품성으로는 별 넷을, 책 완성도로는 별 하나 반을 주겠습니다(별 다섯이 만점이라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고, 소개하고 싶지도 않지만, 잡지 《북새통》에서 다달이 ‘이달의 좋은 책 후보 다섯 권’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소개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내키지는 않는 책이지만, 저로서는 내키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는 좋은 대목과 아쉬운 대목을 남김없이 들려주면서 이 나라 어린이책 문화를 가만히 돌아보고 싶습니다. (4340.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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