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방고의 숲속학교
트래버스 외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40 ― 아이들한테 ‘공해’를 물려주기 싫다
 : 네 아이가 함께 쓴,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 책이름 :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 글 : 트래버스, 앵것, 메이지, 오클리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갈라파고스(2005.1.7.)
- 책값 : 15000원


 (1) 봄과 학교


 서른네 번째 맞이하는 봄입니다. 서른세 번째 겨울을 지났고 서른세 번째 가을도 지났습니다. 앞으로는 서른네 번째가 되는 여름과 가을입니다. 그런데 서른네 번째 여름이 두렵습니다. 지난여름을 가까스로 넘겼는데 올여름은 얼마나 무더울지 두렵습니다. 다가올 가을도 두렵습니다. 더위가 가라앉으며 울긋불긋 높아가는 가을내를 맡고 싶은데 지난가을에도 가을내를 못 맡았습니다. 돌아올 겨울이 두렵습니다. 겨울답지 않게 푸근하다가 내처 한두 달 동안 꽁꽁 얼어붙은 채 풀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리하여 2008년에 태어날 새 목숨붙이한테 봄을 봄대로, 여름을 여름대로, 가을을 가을대로, 겨울을 겨울대로 느끼도 받아들이도록 해 주지 못할까 싶어서, 무엇보다도 두렵습니다.


.. 사자들은 무자비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 자연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단지 야생의 삶은 힘들 뿐이다 … 사자들은 공간과 자유만 주어지면 자기들의 문제를 영리하게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단 한 가지 있다. 총이다 … 누가 우선되어야 할까? 사람 아니면 사자? 지구의 일부를 따로 떼어놓아 야생동물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야생동물에게 삶의 터전을 돌려주어야 할까, 아니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생존조차 힘든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할까? 물론 내 생각은 확고하다 ..  (208∼210쪽)


 초중고등학교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열렸습니다. 벌써부터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되어 3월은 아주 따뜻하다 못해 때로는 살짝 덥습니다. 종알종알 재잘재잘 하면서 집과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서울 나들이를 하며 서울 시내와 골목길을 차 옆으로 아슬아슬 걸어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인천에서 살며 인천 시내와 골목길을 차방귀 맡으며 걸어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아이들 얼굴은 더없이 싱그럽고 살결은 뽀얗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폭신폭신한 운동신이나 딱딱한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된 길만 밟습니다. 흙도 풀도 밟을 일이 없습니다. 때로는 아스팔트길조차 못 밟습니다. 자동차 시트만 밟습니다.


.. 무엇보다도 ‘마운’에서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고 함께 놀고 어른들과도 잘 어울린다 ..  (28쪽)


 골목길 한켠에 자라는 나무에는 참새라도 머뭅니다. 까치나 비둘기는 머물지 못합니다. 그래서 골목길에서 귀기울이고 걷거나 가만히 서거나 앉으면, 새소리를 듣습니다. 도심지에 심긴 나무에는 참새조차 살지 못합니다. 나무는 죽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며 줄기를 올리지만, 이놈 줄기마저도 봄을 앞두고 싹둑싹둑 잘립니다. 나무는 나무다울 수 없습니다. 나무다울 수 없는 나무에는 새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합니다. 새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하는 나무 둘레에는 그늘이 없고 자연이 없으며, 동네 아이와 어른도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말라가는 나무 옆으로 맥도널드 가게가 있고 피자헛 가게가 있습니다. 과일주스와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고 이름난 신발과 옷을 파는 가게가 대낮에도 전기불을 환히 밝혀 놓고 있습니다. 햇볕은 못 들어오게 막아 놓으면서.

 목이 마른 아이들은 곳곳에 있는 자판기를 찾아내어 동전 몇 알 집어넣고 탄산이 톡 쏘는 마실거리 깡통을 쪽쪽 빱니다. 또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에 들러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종이돈 한 장 내밀고는 쭉쭉 빱니다.


.. 숲에서 피터 아저씨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 사자는 그냥 사자였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그놈이 그놈 같았고, 우리가 사자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은 엄마가 사 준 여행 안내서에서 주워모은 지식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자를 너무나 잘 안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잘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자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  (83쪽)


 학교에서는 틀림없이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가르칩니다. 그러면 아이들 집에서는 얼마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가요. 학교에서 ‘환경 문제’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서, 우리네 집에서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는, 또 언니와 누나들은 얼마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고 몸소 보여주는가요.

 아이가 변기에 누고 내리는 똥과 오줌이 정화조를 거쳐서 하수도로 들어가고, 이 하수도로 들어간 물이 돌고 돌아서 수도물로 나오며, 정수기를 거쳐서 우리 물잔에 담기는 줄 배우는지요. 아이를 집과 학교와 학원으로 태워 주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가 하늘로 꾸역꾸역 모여서 산성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온 뒤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아이들이 사마시는 탄산음료 물이 되는 줄 느끼는지요. 아이 방을 채우고 있는 갖가지 장난감을 만드느라 공장에서 써 버리는 쓰레기물(폐수)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서 물고기를 병들게 하고, 우리는 이렇게 병든 물고기를 잡아서 저녁밥상에 올려놓고 있음을 헤아리는지요.





.. 지난 3년 간 우리는 아주 많이 성장했다. 우리는 이제 동물에 대한 이해가 자연을 보존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자를 직접 관찰하고 매일 사자의 일상을 쫓다 보니,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얻은 정보가 실제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읽거나 본 것을 모두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접 고생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  (97쪽)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는, 옛 도심지에 있던 학교들이 일찌감치 ‘새 도심지가 될 곳’에 땅을 사서 학교 건물 새로 지어서 옮겼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마다 체육관이며 실습관이며 시설이며 …… ‘현대식’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들어섭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다니는 ‘새로 지은’ 학교에서 쓸 수 있는 ‘도서관 책 장만하는 돈’은 한 해에 200만 원을 겨우 넘을 뿐입니다. 다른 학교도 엇비슷합니다만, 그나마 이 이백만 원도 ‘책 사는 데에 제대로 쓰이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 돈 이백만 원으로 ‘어떤 책을 사고 있는지’를 알 턱조차 없어요.

 새 학교 짓는 데에 수십 억을 쏟아붓지만, 또 학교도서관을 꾸민다고 수 억이나 수천만 원을 들이지만, 정작 이 도서관에 갖출 책을 장만할 돈은 없습니다. 국공립도서관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출판사에 공문을 띄워서 ‘책 기부를 해 달라’고 할 뿐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부천에 있는, 또 성남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었을 때 찾아갔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당신 일하는 학교에서도 도서관 꾸미는 데에 정부 뒷배로 수천만 원을 받아서 깔끔하고 멋들어지게 꾸며 놓았지만, 정작 책을 사들여서 갖추어 놓는 데에는 ‘국고예산으로 한 해에 떨어지는 이백만 원’에만 기댈 뿐이었습니다.


.. 우리가 상처를 돌보았다면 오히려 살아남을 가능성이 낮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무척 힘들었다. 사자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렸거나 사람 때문에 다쳤다면 도와줘야 하겠지만, 자연 상태에서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에는 스스로 이겨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  (108쪽)


 이제는 학교마다 급식실이 생겨서 도시락 싸들고 갈 일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급식비 내는 새로운 짐이 생깁니다. 또한, 아이마다 몸이 다르고 밥버릇이 다른데, 학교 급식은 얼마나 아이 하나하나에 맞출 수 있을까요. 집에서 도시락을 싸들고 오면 남기거나 버려지는 밥과 반찬이 거의 없을 텐데, 학교 급식실에서는 음식물쓰레기를 어떻게 간수하지요. 몸에 더 낫다고 하는 유기농 곡식을 학교 급식실에서 영양사가 사들여서 지지고 볶고 하기보다는, 학교 텃밭을 마련해서 아이와 교사가 손수 푸성귀를 길러서 먹도록 하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괜한 걱정에 쓸데없는 마음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하나, 동네 아이들을 보면서, 또 우리 집에서 태어나 자라날 아이를 생각하면서, 이런 데에 눈길과 마음길이 쏠립니다. 부모 된 우리 어른들부터 ‘도시락 싸는 마음’을 잃고 ‘돈으로 때우는 마음’을 키우면서, 아이들한테 마음이 아닌 돈을 가르치고 있구나 싶어요. ‘더 많이 배웠으니 더 많이 나누자’ 하는 뜻을 가꾸기보다는, ‘더 많이 배웠으니 더 많은 돈을 나 혼자 벌자’는 뜻만 북돋우고 있구나 싶어요.





 (2) 아이들과 삶아갈 곳


.. 나는 지금 열여섯 살이고 운전을 한 지는 올해로 5년째다. 운전은 엄마한테 배웠다 … 이 사자를 아주 어릴 때부터 죽 봐 와서 이 녀석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녀석을 무척 좋아한다 ..  (16쪽)


 학교 앞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아이 소식을 들으며, 국민학교 적 일을 생각해 냅니다. 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도 한 차례인가 두 차례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워낙 수출입 물동량이 많은 인천이고, 제가 다니는 국민학교 앞으로는 그때나 이제나 그 수출입 물동량 큰 짐차(컨테이너차나 자동차를 두 겹으로 싣고 다니는 짐차 따위)가 뻔질나게 다닙니다. 건널목이 있어도 건널목 푸른불에 제때 멈추는 차보다는 휙 하고 지나가는 차가 더 많습니다. 푸른불에 멈추지 않고 씽씽 달리는 차 때문에 건널목 푸른불이 다 바뀌도록 건너지 못한 적도 잦았습니다. 이럴 때에는 누군가 어른이 건널목에서 기다리다가 건너 주어야 겨우 마음을 놓고 후다닥 뜀박질을 하며 함께 건넜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며 동무한테 ‘잘 가’ 하고 손인사를 하다가 귀옆을 쌔애액 하며 지나가는 큰 짐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몸뚱이가 후들후들 떨리리며 간이 콩알만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 앞길부터 해서 일곱 군데나 되는 초중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또다른 산업도로를 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몹쓸 일을 지켜보던 동네사람들이 ‘생존권을 또 짓밟으려 하느냐’ 하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일을 꾀하는 인천시 공무원들은 우리들 주민한테 한결같은 목소리로, “여기에 이런 찻길이 놓이면 오히려 공해가 줄고 동네가 살기 좋아지는데, 왜 반대를 합니까?” 하고 대꾸를 합니다. 올해에도,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 처음에는 숲을 돌아다녀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몇 차례 가다 보니 눈이 밝아지고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해졌다 … 숲에 다닌 지 여러 달이 되었지만 사자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한테 사자를 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  (52,58쪽)


 동네 주민들이 인천시 도로과 공무원한테 따집니다. “당신들 집 앞에 이런 길을 낸다고 하면 거기서 살겠느냐”고. 도로과 공무원은 대꾸합니다. “나라면 내 집 앞에 이런 길을 내는 것을 찬성하겠다”고.

 허허, 허허. 주민들은 말문이 막힙니다. 속이 울컥하면서, ‘당신 아이가 초등학생이고, 그 아이가 집에서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그렇게 널따란 찻길이 새로 뚫리면서 그 길을 건너다녀야 하는 판이라면 마음놓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지만 묻지 않습니다. 이렇게 물었다가는, ‘부모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럴 때는 자가용에 아이를 태워서 학교를 다니게 하면 되잖습니까?’ 하는 대꾸가 돌아올 테니까. ‘차없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따져 보았자, ‘차 한 대 장만하시면 되지요. 요새 차값이 얼마나 싼데, 그거 하나 못 사요. 그리고 요새 차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하는 대꾸만 돌아올 테고.


.. 우리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 삶을 이상화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이면 눅눅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거나, 변소가 가득 차면 새로 파야 한다거나, 한밤중에 토했는데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나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  (122쪽)





 자동차 이름 줄줄 외는 아이들, 게임 아이템 달달 외우는 아이들, 연예인 이름뿐 아니라 개인 삶까지 속속들이 꿰는 아이들. 아이들을 둘러싼 삶터가 이러하다면, 아이들한테는 한갓지고 조촐한 골목길이나 놀이터보다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오토바이가 훨씬 반갑고 고마운 선물일 수 있겠어요.

 좀더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와 탁 트인 하늘과 따순 햇살과 싱그러운 무지개와 하이얀 구름과 파란 바다를 물려주고 싶은 제 마음이지만, 좀더 조용하며 이웃끼리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가는 동네 삶터를 이어주고 싶은 제 마음이지만, 이런 제 마음은 한낱 헛꿈이나 개꿈일 수 있겠어요. 아이한테는 사랑보다는 돈을, 믿음보다는 큰 아파트를, 나눔보다는 빠른 차를 물려주어야 하는가 봐요.


.. 아기 때는 모래밭에서 기면서 곤충들을 보았고, 어린아이 때는 나무에 올라가 새를 보았고, 좀더 자라서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가 동물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 차 뒷좌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이다. 숲을 보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연을 이루는 구성원들을 먼저 보아야 한다. 아프리카에 오는 사람들이 그저 ‘다섯 거물(사자, 버펄로, 코끼리, 표범, 코뿔소)’만 보려고 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조그만 생물들의 세계를 완전히 놓치고 마는 것이다. 왜 그런지 사람들은 이런 작은 동물들을 무서워한다. 인체에 무해한 벽거미를 텐트에서 눈에 뜨이는 족족 잡아 죽인다. 이 거미들이 자기들이 가져온 살충제만큼이나 모기를 죽이는 데 유용하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  (170쪽)


 그나마 우리 집에 갖추고 있는 책들로 아이 마음밥을 넉넉히 살찌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집에서 마음밥을 아무리 넉넉히 받아먹는다고 해도, 이 삶터가 온통 자동차 소리와 배기가스로 어지럽고 시끄럽다면 어쩌지요. 아이 몸뚱이가 맑은 바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이 눈이 싱그러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다면, 아이 발이 풋풋한 흙내음을 밟을 수 없다면, 아이 얼굴을 타고 땀방울이 흐를 만큼 뛰어놀 골목이 없다면.


 (3)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다시 한 번 덮으면서


 영국 도심지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아프리카 벌판으로 옮겨가서 어린 나날을 보내게 된 네 아이 삶과 생각이 담긴 책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읽어냅니다. 한 번 읽고 덮은 뒤 한 해쯤 묵히다가 다시 펼쳐서 읽고 덮습니다. 처음에는 부러운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유럽놈들이니까 우리 나라와 같은 걱정이 없어서 이렇게도 살 수 있지 하는 짜증이 살짝 있었습니다. 세계 온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괴롭힌 녀석들인데 하는 짜증.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런 마음은 말끔히 가시지 않습니다.

 다만, 영국이나 유럽이나 미국이 세계 온나라를 식민지로 삼거나 괴롭히는 짓은 이 아이들 탓이 아니지 않느냐고, 또 이 아이네 부모는 그런 제 고향나라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느냐고 하는 생각.


.. 젖 떼는 시기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어미가 얼마나 잘 참아 주느냐, 다른 먹이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8개월이 되면 고기를 주로 먹는다. 우리의 관찰에 따르면 오래 젖을 빤 새끼가 더 건강한 것 같다 ..  (216쪽)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가 일본한테 식민지살이를 겪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는 제3세계 나라에서 찾아오는 사람들, ‘이주노동자’를 모질게 괴롭히고 들볶고 등처먹고 푸대접하고 깔봅니다. 우리 나라는 미국한테 경제 식민지처럼 매여 있으나, 우리 나라가 울궈먹고 못살게 구는 가난한 나라가 퍽 많습니다. 말과 물이 선 나라뿐 아니라, 중국 조선족을 괴롭히고 따돌리는 우리 나라입니다. 일본 조선인을 깎아내리며 콧방귀도 안 뀌는 우리 나라입니다. 러시아 한인은 어떻고요.


.. 숲속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숲에서 사는 생활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환상적이라고 말하면 거짓이겠지만, 많은 부분은 다른 어떤 삶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  (92쪽)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며 사진을 죽 훑고,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대목을 또 한 번 읽습니다. 마음속 깊은 데까지 건드려 준 좋은 이야기를 맛보았으면서 왜 이렇게 심통을 부리나 싶군요. 아무래도 마음그릇이 좁기 때문에, 마음닦기가 덜 되었기 때문에 이러나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마음짐 내려놓고 ‘개발 삽날’ 걱정 없이 해맑은 바람과 시원한 물을 즐기는 가운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함께 살아갈 터전이 그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에 슬퍼서 이러는구나 싶어요.

 시골은 시골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제 모습 제 꿈 제 빛깔을 고이 간직하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더 많은 돈을 뽑아내는 개발이 아니라, 더 즐겁고 밝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 가꾸기로 눈길을 맞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널리 함께하는 슬기로움이면 좋을 텐데. 더 많은 자격증이나 더 높은 졸업장이 아니라 더 따숩고 살가운 배움과 가르침으로 오순도순 어울릴 수 있는 이야기라면 좋을 텐데. 산업도로든 간선도로든 다른 무슨 길이든, 자동차만 다니는 길 닦는 데에만 수천 수만 수억 수조를 쏟아붓지 말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살려 놓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서 들짐승들과 날짐승이 살아갈 길을 지켜 주고. (4341.3.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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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만세발가락 - 마음으로 보는 그림 같은 이야기
리타 페르스휘르 지음, 유혜자 옮김 / 두레아이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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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아빠의 만세발가락
- 글 : 리타 페르스휘르
- 옮긴이 : 유혜자
- 펴낸곳 : 두레아이들(2007.9.21.)
- 책값 : 8300원



 이 책 하나 36 ― ‘골목도시’ 인천과 ‘피카소’ 그림
 : 리타 페르스휘르, 《아빠의 만세발가락》을 읽고


 (1) 골목도시 인천과 그림


 우리 동네에 미술전시터가 한 곳 있습니다. 예전에는 부평에 자리하고 있던 곳인데, 인천 배다리 골목집을 꿰뚫으려는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뜻에다가, 일흔 해 역사가 깃든 양조장 건물에 전시터를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옮겨 온 곳입니다. 동네에 이런 전시터가 들어오니, 어슬렁어슬렁 골목길 마실을 하다가 슬그머니 들를 수 있습니다. 전시터에서는 따로 구경값을 받지 않으니 걱정없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우리 집으로 놀러오는 손님이 있으면 ‘이럴 때 그림 예술도 맛보아야지’ 하면서 팔짱 끼고 찾아가곤 합니다.

 예전에는 인천으로 놀러오는 사람이 있으면,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 잠깐 책을 둘러보았다가 월미도를 간다든지 연안부두를 간다든지, 그냥 인하대 뒷문 쪽으로 가서 술이나 마신다든지 했습니다. 그때는 서울에도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 인천 골목길 마실을 굳이 함께하지 않았습니다만, 딱히 다른 동네 사람들한테 보여줄 만한 모습이 없다고 느꼈어요.

 번듯한(?) 건물이 있나, 바닷가 갯벌을 밟을 수 있나(지금도 갯벌은 밟을 수 없습니다. 군사철책 때문에), 널찍한 공원이나 쉼터라도 있나(이제는 인천대공원이 생겼으나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 아주 어렵습니다).

 ‘인천 맛’이나 ‘인천 멋’을 함께 느끼고 함께 즐기고 함께 부대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을 만한 어떤 꺼리가 없었어요.






.. 리타가 말했다. “너도 대회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소시지를 만들 수 있잖아, 안 그래?” “우리가 가는 정육점 주인은 소시지의 품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거야.” 내가 말했다. “상장 때문에.” ..  (26쪽)


 요즈음이라고 해서 그다지 달라지거나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몇 가지 남다른 대목은 있습니다. 경제개발과는 늘 머나먼 쪽에 있던 인천이기에, 오래된 골목길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이란 거의 없었거든요. 공장만 잔뜩 지어서 서울로 올려보내는 노릇, 또 공장 노동자로 있는 사람들이 값싸게 묵을 달동네 판자집은 숱하게 두는 노릇으로 있던 인천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억지로 항구문을 열면서 지었던 집이 제법 남아 있기도 합니다. 1950∼60년대 자취도 두루두루 찾아볼 수 있어요. 이제는 서울 둘레 새도시 재개발이 거의 꽉 차다시피 하니, 인천까지 손을 뻗습니다만.

 한편에서는 영화를 찍기도 합니다(〈고양이를 부탁해〉, 〈파이란〉). 뮤직비디오를 찍는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아프고 아파도〉). 퍽 넓은 자리에(인천 중구와 동구와 남구에 걸쳐) 마흔 해나 쉰 해는 묵은 골목길과 골목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편, 서른 해 넘긴 예전 간판까지 손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지나온 우리 삶을 되짚는 영상’을 바라는 분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곳입니다. 그러나, 땅장사를 해서 목돈을 움켜쥐고 싶은 이들한테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싶은이들한테는, 유행이 아닌 물질문명 대명사가 되어버린 아파트로 숲을 이루어야 참된 도시라고 느끼는 이들한테는, 이런 옛 골목길과 골목집은 하루빨리 걷어내야 할 ‘낡고 지저분한’ 모습일 뿐입니다.


.. 다 완성된 그림을 뒤집어 공책들이 쌓여 있는 제일 아래 칸 서랍 밑에 넣었다. 그 그림은 엄마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면 무엇이 못생겼다는 둥,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둥,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렸다는 둥 엄마의 따가운 질타를 듣지 않아도 된다 ..  (30쪽)


 문득, 국민학교 다닐 적 사회 시간에 배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서울과 인천 교통그물이 어떠한가를 견주면서 “인천은 거미줄 가운데에서도 아주 촘촘한 거미줄과 같은 곳이야. 진짜 골목이 많거든. 아무리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인천에 와서 차를 몰면 길을 헤매지. 인천 택시기사가 서울에 가서 택시를 몰 수 있어도, 서울 택시기사가 인천에 오면 택시를 못 몰아.”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을 안 해도 우리들은 몸으로 느끼며 알고 있었습니다. 인천에는 마땅히 너른 터가 없고 놀이동산도 없었지만, 그다지 좁지 않으면서 잘 발돋움해 있는 골목길은 우리 모두한테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풀과 나무와 숲은 드물었지만, 바닷가에서 배를 보거나 타고, 기찻길가에서 철길놀이를 하거나 쇠돈 납짝꿍 만들기를 하고, 늦은밤까지 숨바꼭질을 하면서 박쥐들 날갯짓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면서 살았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천이라는 도시는 지금 시장이 외치고 있는 ‘명품도시’가 아닌 ‘골목도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부터 골목도시였고 지금도 골목도시이며, 앞으로도 골목도시로 나아갈 때, 인천이라는 곳이 인천다움을 지키거나 가꾸면서 한껏 키돋움을 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처음부터 골목도시는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개항기에는 ‘한국에서 빼앗은 물자를 일본으로 빼내는 들머리’ 구실을 해야 했고, 해방 뒤에는 ‘일제가 지은 공장과 여러 시설을 바탕으로 서울을 개발하도록 물자를 올려보내는 들머리’ 구실을 해야 했습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싼 일삯으로 묶어 두는 ‘서울 변두리 공장 도시’로 인천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러는 가운데 ‘하꼬방’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게딱집집이 잔뜩 들어서게 되었을 테지요. 그리고 이런 역사가 한두 해도 아니고 열 해나 스무 해도 아닌 서른 해 마흔 해를 거치며, 이제는 자연스러운 인천 문화로 인천 삶으로 자리를 잡았으리라 봅니다. 이리하여 인천 옛 달동네 한켠을 쓸어내고 아파트를 올려세우면서도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라는 곳이 서는구나 싶어요.


.. 베르트는 창문이 나 있는 머리 같은 것은 잘 그리지 못한다. 아니, 잘 그릴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심사위원들은 베르트가 새로운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할 것이다. 피카소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을 내면, 전에 그린 내 그림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  (49∼50쪽)


 먼 옛날에는 조용조용 사는 터전이었다가 비류백제가 뿌리를 내린 곳이었습니다(미추홀). 온조백제한테 무너지면서 흐지부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듯 했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 순사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뒤 숨어지내던 곳이었습니다. 이제는 권리를 되찾은 조봉암 선생이, 일제한테 짓눌렸던 우리 나라를 올곧게 일으키려고 동지를 모으고 후배를 북돋우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류백제가 무너지듯 백범 선생도 조봉암 선생도 역사에서 이슬로 스러집니다.





.. “아니, 유명한 화가의 기법으로 그린 거야.” “그렇다면 그 사람은 칼라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죠.” 내가 말했다. “그 애는 내가 말해 준 대로만 그렸으니까요. 그 사람은 스스로 생각한 것들을 더구나 유명한 화가의 기법으로 직접 그렸잖아요. 그렇게 하려면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 똑같이 멋진 작품을 만들기가 어려웠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그 그림이 진짜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몰려오지 않았나요?” “거장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까 믿었던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 사람의 이름이 써 있었다면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인가요?” “당연히 그렇지.” “사람들은 무엇을 감상했나요? ‘그림’이었나요, 아니면 그림 밑에 써 있는 ‘서명’이었나요?” ..  (84쪽)



 지난 토요일, 옆지기 동생과 옛동무하고 동네 미술전시터(스페이스 빔) 나들이를 갔습니다. 올해 미술대학을 마치는 인천 그림꾼들 ‘신진작가 초대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그림 보는 눈이 없고, 그림 즐길 줄 모르는 저입니다. 이번 그림잔치를 보면서도, ‘음, 음.’만 나올 뿐, 딱히 어떠한 느낌을 받지는 못합니다.

 무엇보다 제 눈높이가 낮고 눈길이 얕아서일 테지요. 어쩌면 새내기 그림꾼들 그림 눈썰미나 깊이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터라, 살짝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저, 오즈음 그림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느낌은 조금 받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저마다 자기가 발딛고 살아가는 곳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삶이 그림이나 사진이나 글로 나타나거든요.


.. 실로 뜬 테이블 보, 피아노 덮개, 양복 등에는 왜 만든 사람의 이름이 없을까?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든 이름을 쓸 자리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  (90쪽)


 지난날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치던 아이들이 그렸던 그림을 떠올려 봅니다. 연필로도 그리고 크레파스로도 그린 1960∼70년대 산골마을 아이들 그림을 떠올려 봅니다. 이 아이들 그림에는 이 아이들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습니다. 또, 저는 이 아이들과 같은 삶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예전 아이들 그림을 보며 눈물이 핑 돌곤 했어요. 동네 미술전시터에 내걸린 새내기 그림꾼들 그림에도 이 그림꾼들 삶과 생각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시에서 살고는 있어도 도시 삶을 그닥 달가워하지 않고 반기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탓에 이분들 그림이 제 마음 깊은 자리까지 못 파고들지 않나 싶습니다.


.. 난 사람들이 기도를 올려 신을 귀찮게 하는 일을 될수록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신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면 신은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그가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를 먼저 도와줄 것이다 ..  (114쪽)


 하긴. 그러겠네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마음이겠네’ 하고 느낍니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왜 그렸을까?’ 하고 묻게 됩니다.





 한 세월 두 세월 겹겹이 쌓인 인천이라는 곳은,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며 골목도시 문화를 이루어 낸 사람들 삶이 진득하게 배어 있습니다. 이런 골목도시 문화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이라면, 인천에 발을 디디면서 ‘이야, 참말 재미난 곳이네. 하늘나라가 따로 없어.’ 하고 웃음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길을 도시문화나 도시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전국에서 공기와 물이 가장 더러운 곳이라더니, 영판 글러먹었군’ 하고 되뇌이지 싶습니다.

 제가 깃든 배다리 골목집 한복판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밀어붙이려고 하는 종합건설본부 공무원 분들은 골목을 모르거나 골목을 느끼려 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2009년 도시엑스포와 2014년 아시안게임으로 이름값을 높여 뒷날 대통령 출마까지도 노리는 ㅇ 시장님은 언제나 자가용으로만 아파트에서 아파트 사이로, 큰 건물에서 다른 큰 건물 사이로만 움직이실 테니, 골목집과 골목길로 가득한 인천 삶터를 있는 그대로 돌보거나 가꾸면서 ‘참다운 명품이란 무엇이며, 인천에만 있는 명품은 무엇이고, 인천에서 돋보이도록 하면서, 사람들이 인천으로 찾아오도록 이끌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에서는 크게 놓칠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2) 그림 그리는 즐거움


 저도 가끔 그림을 그립니다. 그야말로 가끔 그립니다. 저는 스스로 ‘참 못 그린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좋아하니까’ 그립니다. 헌책방을 그려 보고도 싶지만, 지금은 사진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고 느껴서 헌책방 그림은 그리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두 눈으로 더 많이 들여다보고 온몸으로 더 많이 부대끼는 가운데, ‘빈 방에 고요히 앉아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뒷날 언젠가 헌책방 그림을 그려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 피 카 소. 엄마는 전에 그 화가가 훨씬 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림을 많이 그렸었는데, 다른 기법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미친 사람 같아요.” 내가 말했다. …… 어떻게 죽은 새 옆에 있는 소녀의 조각상은 형편없는 졸작이라고 하고, 물고기 모자를 쓴 여자의 그림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은 그런 그림을 미술관에 버젓이 걸어 두고, 할아버지 집을 지나갈 때 혹시 조각상을 살 수 없겠느냐고 묻지도 않은 채 지나칠 수 있을까? ..  (43∼44쪽)






 서너 해 앞서였나, 중국 연길시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아주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석 점. 연길시 골목길을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다니다가 꽤 살갑다고 느껴진 어느 집 한 채를 그리고, 짐자전거를 둘 그렸습니다. 한 시간 남짓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자니, 중국사람 몇몇이 뒤에 서서 멀거니 들여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더군요. 사진을 찍을 때는 싫어하거나 공안이 달려오기도 했는데, 그림을 그릴 때에는 모두들 군말이 없었습니다.


.. 월등한 1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말한다. 특히 ‘월등하다’는 말을 강조한다. 엄마는 그런 식으로 나를 자랑거리로 삼는다. 그렇지만 내가 별 관심이 없는 분야에 대해 엄마가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난 공부를 특별히 잘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 사실 나는 공부로 1등 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최고가 되고 싶다 ..  (60, 62쪽)


 예전에는 헌책방 찾아가는 길그림을 손으로 그려 보기도 했습니다. 요사이는 안 그립니다만. 셈틀 그림풀그림을 다룰 줄 몰라서 손으로 그리기도 했는데, 연필과 볼펜을 써 가며 손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이 한결 좋았어요. 느낌도 나고요. 제가 두 다리로 골목골목을 죄다 헤집고 다니면서 몸으로 느낀 다음, 1:5000 길그림책을 펼쳐 놓고, 어느 길로 어떻게 다녔는가를 떠올립니다. 그러고 나서 길 하나까지 샅샅이 따지면서 그렸습니다.


.. 엄마가 집을 떠난 뒤 난 그 사이 나이를 네 살이나 더 먹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내 정신적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를 자주 보지 못했고, 어쩌다 만나도 난 마음속에 있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강당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내 친엄마가 누구인지 모른다 ..  (123쪽)


 글을 쓸 때는 글맛이 있어 좋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맛이 있어서 신납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맛이 있어 즐거워요. 사랑을 나눌 때에는 사랑맛이, 밥을 먹을 때는 밥맛이, 잠을 잘 때는 잠맛이, 골목길을 거닐 때에는 길맛이 느껴지니 반갑습니다. 일을 할 때에는 땀맛이 싱그럽습니다. 일을 마치고 술 한 잔 걸칠 때에는 술맛이 짜릿합니다. 오랜 너나들이를 만나면 사람맛이 기쁩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맛은 얼마나 속을 시원하게 비워 주는지요.




 (3) 《아빠의 만세발가락》이라는 책


 지난날 《피카소는 미쳤다》는 이름으로 나왔다가 사라져 버렸던 책이 《아빠의 만세발가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책이름 때문에 사랑을 못 받았는지, 우리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책이었는지 모릅니다만, 이 책이 나온 네덜란드에서는 크게 사랑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 아빠는 기진맥진하게 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구두코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빠의 구두코는 하늘을 향해 들려 있다. 아빠의 발가락이 만세를 부르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아빠의 발가락을 ‘만세발가락’이라고 부른다 ..  (8쪽)


 옮긴이께서 마음을 야무지게 먹고 책이름을 고쳐서 새로 냈는데, 글쎄, 어찌 될는지 모릅니다. 책을 두 번 읽고 나서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아 놓은 저로서는, 처음 나왔던 《피카소는 미쳤다》라는 이름이 한결 마음에 드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도 잘 와닿고.


.. 내가 여러 가지 다양한 눈이 있는 얼굴을 그려 놓고 피카소처럼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일이 피카소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좋게 아니면 나쁘게? ..  (85∼86쪽)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한껏 드러내면서 신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야기를 건네는 책이라면, 우리 어른들이 ‘껍데기 이름값’에 파묻힌 채 ‘그림을 그림 그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하는’ 형편을 슬그머니 꼬집기도 하는 책이라면, 아이들 마음자리와 생각자리를 고이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거품과 다를 바 없는 숫자(성적 따위)’에만 매달리는 교육 얼거리를 알게 모르게 나무라는 책이라면, ……. (4341.2.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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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이야기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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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두 친구 이야기
- 글쓴이 : 안케 드브리스
- 옮긴이 : 박정화
- 펴낸곳 : 양철북(2005.11.18.)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25 ― 엄마한테 얻어맞는 아이를 지키는 동무
 : 안케 드브리스, 《두 친구 이야기》


 

 (1) 서울, 전철, 동무, 고향


 서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달픕니다. 가는 길이 멀어서가 아니라, 누구 하나 안 지친 사람이 없는 사람들만 가득한 대중교통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볼일 마치고 전철을 타고 수원이나 안산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고달플 테지요. 전철에 탈 때부터 자리에 앉을 꿈을 꿀 수도 없는 가운데, 적어도 한 시간, 또는 한 시간 반을 서서 가야 하는데, 그렇게 전철로만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또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을 들어가야 하고, 버스에서 내린 뒤 또 걸어서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걸어야 할 테니까요.


.. 그러나 벤 아저씨도 나중엔 유디트의 아빠처럼 떠나버렸다. 어느 목요일 밤, 아무 말도 없이. 아저씨와 엄마는 싸우지도 않았다. 처음에 엄마는 무척 초조해 하더니 나중엔 화를 냈다. 그 후 며칠 동안 유디트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덕분에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어느 날 밤 엄마는 유디트를 후려갈겼고, 유디트는 쓰러지면서 옷장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  (18쪽)


 옆지기 고등학교 적 동무를 서울 회기동에서 만나고 헤어진 때는 저녁 열 시 반. 전철을 타니 열 시 사십육 분. 터덜터덜 달리는 전철이 동인천역에 닿으니 열두 시를 훌쩍 넘겼고, 역부터 집까지 걸어오니 거의 새벽 한 시.

 서울사람들은 대중교통도 늦게까지 있으니, 저녁 열 시 조금 넘었을 무렵부터 집으로 돌아갈 걱정을 하는, ‘서울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서울에서 사는 회사사람들은 일곱 시나 여덟 시쯤 끝나 가볍게 술을 한잔 마신다고 하여도 겨우 한 시간 남짓 앉아 있다가 금세 자리를 떠야 하는 아쉬움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갔어도 자기 집에 닿으면 열두 시는 우습지 않고 한 시께에 이르니, 몸이 축날 테지요. 더욱이 이튿날 새벽 다섯 시 반쯤부터 짐 챙기고 부랴부랴 새벽버스 타고 전철역에 가서 서울 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오징어처럼 짓눌리며 선 채로 꾸벅꾸벅 졸며 회사에 닿아도 여덟 시가 넘어가니, 날이면 날마다 몸은 고단하고, 어서 빨리 주말이 찾아와 모자란 잠 좀 자자고 재촉하게 됩니다.


.. “왜 못했니?” “저…… 또 두통이 도져서요.” 유디트는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우선 해 놓은 것만 보자꾸나.” 유디트는 초조하게 책가방을 뒤졌다. 베크만 선생님은 기다리면서 유디트의 수그린 머리를 보았다. 곧은 금발이 얼굴을 덮었다. 베크만 선생님은 문득 저런 스웨터를 입으면 질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디트가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힐끗 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잔뜩 겁먹은 눈이었다. 왠지 이 아이는 너무 연약해 보여. 도저히 화를 낼 수 없는 아이야 ..  (31쪽)


 서울 회기동에서 인천 끝자락까지 달리는 전철에 타고 있는 고단함에 찌들고 쩐 사람들 얼굴을 봅니다. 갓 스물을 넘긴 아가씨들은 얼굴에 화장을 짙게 발랐지만, 그 화장 뒤에 감춰진 얼굴이 얼마나 힘겨워할까가 마음에 그려집니다. 젊은 사내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리가 없어 서 있기는 하지만, 가만히 서 있는 일이 얼마나 고단할까요. 그렇다고 자리에 앉아서 가는 사람도 아늑하지만은 않습니다. 좁아터전 전철 걸상에 옹크린 채, 더구나 겨울이라 다들 옷이 두툼하니 더욱 낀 채로 꼼짝을 못하고 한 시간 넘게, 또는 두 시간 가까이 앉아 있는 일은 고문이에요.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자율학습에 목이 매어 얼굴이 파리해졌던 중고등학교 수험생 때에도 오십 분에 십 분씩 틈을 주고 걸상에 짓물러진 엉덩이를 쉴 수 있게 했습니다.

 모두들 무엇 때문에 이리도 먼 길을, 날마다 네 시간 남짓 전철과 버스에서 보내며 살아야 할까요. 날마다 네 시간씩 전철과 버스에서 보내면서 만나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이렇게 만나는 사람과 몇 시간쯤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가요.

 얼마나 깊은 만남과 사귐이 되는지요. 우리들 ‘서울 아닌 곳 사람’은 왜 ‘서울 아닌 우리 고향이나 터전’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가요. 왜 인천에서, 왜 수원에서, 왜 안산에서, 왜 부천에서, 왜 강화에서, 왜 일산에서, 왜 용인에서, 왜 구리에서, 왜 문산에서, 왜 광명에서, 왜 안양에서, 왜 군포에서, 왜 이천에서, 왜 의정부에서, 왜 동두천에서, …… 서울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찾아가고 돌아가고 해야 하나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을, 우리와 어릴 적부터 같은 골목길과 놀이터와 집과 학교와 마을에서 뒹굴고 뛰놀던 동무들하고 복닥이고 부대끼면서 오붓하게 살아가지는 못하는가요.


.. 미하엘이 말을 더듬거려도 아빠는 결코 재촉하거나 신경질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돌 같은 침묵 때문에 미하엘은 더욱 긴장했다. 미하엘은 아프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등과 배의 발진과 갑작스럽게 높아지는 열에 시달렸다.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조차 아빠는 읽을 책과 공부할 거리를 주었다. 당연히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다 ..  (50쪽)


 광명에서 태어나고 일산에서 자란 옆지기네 동무들한테 뿌리는 무엇일까요. 옆지기가 태어났던 들판 판자집은 모두 아파트로 바뀌어, 이제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뛰놀았는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파트숲과 쇼핑센터로 바뀌어 가는 일산에는 새 학교를 자꾸자꾸 짓습니다. 분당도 그렇고 성남도 그렇고 용인도 그렇습니다. 인천에서도 논밭을 메우고 산을 깎아서 만든 연수동에 새 학교를 뚝딱뚝딱 지었고 예전 도심지에 있던 학교를 그리로 옮겼습니다. 서울 강북 종로에 있던 학교를 강남으로 옮겼듯이. 그러면서 요즈음은 송도 새도시에 새 학교를 짓는다고 법석입니다.

 우리들한테는 새로 짓는 집이 바로 고향이고 일터이며 동네가 되고 있습니다. 고향이라는 이름은 주민등록증에만 남을 뿐, 인천사람이고 서울사람이고 부산사람이고 다른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닷가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산속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골목길 달동네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들판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멘트 병원에서 태어나고 시멘트 학교에서 배우며 시멘트 아파트에서 삽니다. 쇳덩이 자가용에 아버지 어머니가 태워서 움직이게 하며 두 다리는 흙 한 뼘 밟을 일이 없지만 십만 원도 넘는 아주 좋은 운동신을 신고 발바닥은 보송보송 말랑말랑입니다.


.. 유디트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동생을 데리러 오는구나.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러면 네 시간이 없지 않니?” 소피가 다시 콜라를 따르며 말했다. “이, 있어요.” 거짓말이었다. 나를 위한 시간이라……. 데니스를 데리고 집에 가면 할 일이 언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 있기 때문이다 ..  (64쪽)


 늦은밤 인천으로 달리는 전철은 알맞게 이야기가 있고 알맞게 조용합니다만, 사람들 말소리는 시끄러운 전철 소리에 묻힙니다. 창밖으로는 높직한 울타리가 가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땅위를 달리고 있어도 땅위를 달리는지 어쩐지 알 수 없습니다. 창문을 내다보아도 어느 역에 서는 줄 모릅니다. 전철 안에 마련된 자막방송을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아야 겨우 알 수 있습니다.

 졸고 있는 사람, 자고 있는 사람, 주정하는 사람, 수작 거는 사람, 손전화 문자 보내는 사람, 들고다니는 텔레비전 보는 사람이 있으나 책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긴요, 책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이 뻘쭘한 때에, 이 지친 때에. 그래도 더러더러 책 하나 손에 쥐는 사람이 보입니다. 흔한 싸구려 사랑타령 소설이든, 한 달 만에 일억을 벌었다는 재테크 놀음이든, 윗사람한테 잘 보이고 빨리 진급하는 재주를 일러주는 처세학이든, 책 하나 쥘 수 있는 매무새가 반갑습니다.

 아침에 서울로 들어가는 전철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양복쟁이 아저씨가 으레 두 사람, 옷 말끔히 차려입고 예수 사랑 외치는 아주머니가 으레 한두 사람 있습니다. 밤깎이 칼을 팔고, 석유 냄새 코를 찌르는 실장갑을 팔며, 주머니에 넣는 손전등을 파는 한편, 몇 장에 만 원짜리 음반을 팔고, 양말도 팔고, 허리띠도 팔고, 우산도 팔고, 선풍기덮개도 팔고, 싸구려 볼펜도 팔며, 덤 얹어 주는 반창고를 파는 한편, 하모니카 장애인 아저씨가 지나가고, 서로 꼭 붙잡은 채 걷는 장님 늙은 부부가 지나가고, 휠체어에 몸을 실은 말없는 아저씨가 둘쯤 지나가고, 한 다리를 절며 동냥을 하는 아저씨, 예수찬양 테이프를 틀어놓고 눈감은 채 동냥하는 아지매, 껌을 들이밀며 파는 할머니, 쇠돈 담긴 종이잔을 흔들며 돈 좀 넣으라는 할머니, 말없이 복사종이를 돌리며 천 원을 바라는 젊은이, …… 들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인천으로 돌아가는 밤전철에는 아무런 장사꾼이 없고 아무런 설교자가 없으며 아무런 동냥꾼이 없습니다.


.. 엄마는 유디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생크림 케이크까지 사 왔다. 하지만 그 케이크 때문에 배가 아팠다니 묘한 일이었다. 생크림은 너무 기름지고 달았다. 유디트는 위장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랜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제 몫으로 준 큰 조각 하나를 억지로 입에 쑤셔넣었다. 때맞춰 화장실에 가서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다행히 엄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  (98쪽)


 인천에서 서울 이문동으로 전철을 타고 학교를 다니던 1994년 한 해 동안, 날마다 줄잡아서 일곱∼열쯤 되는 장사꾼과 동냥꾼과 설교자를 만났습니다. 한 해쯤 다니면서 거의 날마다 보는 사람이 있어서 나중에는 얼굴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굵직한 목소리로 “조금∼만, 도와, 주쎄요!” 하고 외치던 절름발이 아저씨가 어느 날 말끔하게 머리를 깎고 옷도 깔끔하게 입은 채 그 “조금∼만, 도와, 주쎄요!” 하고 외치며 지나가는데, 제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아이구, 오늘은 머리 깔끔하게 깎고 왔네!” 하며 웃습니다. 동냥꾼 아저씨는 살짝 곁눈으로 바라보다가 지나가는데, 목소리에 살며시 더 힘이 실리며 한결 굵어집니다.


.. 유디트는 미하엘을 집에 들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그렇게 멍이 들었냐고 물어 볼 것이 뻔하고, 그러면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너무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위해 일부러 찾아온 친구를 모른 척하다니. 이 학교에서는 유디트를 찾아온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  (105쪽)


 어릴 적 한동네에서 치고박고 싸우기도 하고, 골목길 술래잡기도 하고, 숭의동야구장 빈터에서 야구놀이도 하던 어릴 적 동무들 가운데 고향 동네에 그대로 눌러앉아서 살아가는 녀석들이 몇몇 있는 한편, 서울로 기나긴 전철길을 따라서 졸음과 고단함에 쩔디쩐 채로 살다가 슬그머니 서울로 집을 옮기며 떠나간 녀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혼인한다고 전화하면서 예식장을 알려줄 때면 으레 자기들 고향 동네가 아닌 서울 예식장이기 일쑤고, 새살림 얻는 집도 인천이 아닌 서울이기 마련이며, 한동안 돈이 없어 집값 싼 인천에 머물다가 어느새 서울로 훌쩍 날아가곤 합니다.

 집을 서울로 옮기면서, 동무 녀석들은 전철을 버립니다. 버스에서 떠납니다. 한결같이 자가용을 굴립니다. 그 옛날, 똥배 하나 없고 허벅지 단단하여 공차기를 하든 농구나 배구놀이를 하든 지치지 않고 몇 시간이고 뛰어놀던 동무들이, 이제는 오 분 달리기를 해도, 아니 일 분만 달리기를 해도 헉헉대지를 않나, 백 미터를 못 걸어가서 택시를 타자고 하지 않나, 애엄마도 아닌데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술을 마시고 밥을 사먹고 해마다 새로 나오는 손전화 기계를 장만하며 또닥또닥 누르면서 지냅니다.


 (2) 주먹질


 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돈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책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그이를 아끼는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그이가 나누려는 뜻과 마음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 “게다가 싸구려도 아니지. 진열장에서 그 옷을 보자마자 생각했지. 내 딸한테 사 줘야겠다고.” 엄마는 이렇게 말하면서 유디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엄마는 찻주전자한테 말하고 있었다 ..  (122쪽)


 1994년 봄날, 대학교 선배가 된 형들이 우리들 새내기를 부르며 주먹질을 하고 머리박기를 시킵니다. 다른 동무들은 선배들 말이 무서워 따르지만, 저는 선배들 주먹질을 손으로 막고 머리박기를 하지 않습니다. “니가 뭔데? 이러는 게 선배냐? 이 따위 짓거리가 대학생이라는 선배자식들이 하는 거냐? 부끄럽지 않아?” “뭐야? 이 자식이!”

 1995년 11월 어느 날, 논산 훈련소에서 조교한테 발차기를 맞고 머리박기며 얼차려며 갖가지 쓰라림을 겪습니다. 1996년 1월,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디엠지 안쪽에 있는 소총중대로 배속을 받아 들어간 첫날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 다섯 시께. ‘비상’이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니, 싸리비 한 자루씩 나누어 주며 병장 한 사람이 이끄는 대로 어디 산속을 깊디깊이 들어갑니다. 한 시간 남짓 걷기만 해서 들어간 산속에서 길이 하나 나옵니다. 헉헉거리면서도 병장 그이 엉덩이만 보며 일 미터 거리를 지킨 채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니, 분대원이며 내 전입동기며 낙오를 했습니다. 병장은 나를 빼놓고 다른 분대원과 전입동기한테 머리박기를 시키고 군화발로 갈비뼈와 옆구리를 걷어찹니다. 갖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죽어야 하는구나. 그냥 죽어야 하는구나. 그냥 있어도 죽고, 뒹굴어도 죽고. 또 죽어야 하는구나.


.. 유디트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해. 미하엘은 생각했다. 유디트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애를 알아야만 해. 유디트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으므로 미하엘은 종종 몸짓이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보고 생각이나 감정을 짐작해야만 했다. 가끔은 상처받은 것 같은,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받은 표정이라…….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걸까? ..  (130쪽)


 상병 계급장을 달고 6호봉이 지난 1997년 사월 어느 날, 1소대 내무반으로 들어가 김 아무개 일병 이름을 부릅니다. 침상에 앉아 고개를 살짝 들고 ‘네’ 하는 그녀석. 군화 신은 채로 침상에 올라가 그대로 김 아무개 일병 얼굴을 걷어찹니다. 잇달아 어깨며 배며 가슴이며 다리며 걷어차고 밟습니다. 그러고 나서 1소대 왕고참 병장한테 거수경례를 붙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나옵니다.

 때리면 맞고 굴리면 구르고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만 내며 살다가, 살다가, 그만 나도 때리는 사람 굴리는 사람 죽으라고 외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김 아무개 일병이라고만 말해 오다가 ‘야이 찢어죽을 종간나 아무개 새끼야’를 아무렇지도 않게 읊어대는 내 고참과 똑같은 군인이 되어 버립니다. 삽을 들었으면 삽날이고 삽자루고 몽둥이가 되고, 총을 들었으면 총부리고 개머리판이고 몽둥이가 됩니다. 빈손이면 주먹이, 군화를 신었으면 군화발이 몽둥이입니다.


.. 이모가 있는 한 주는 후닥닥 지나갔다. 유디트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그 안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다. 리아 이모가 있는 집안엔 구석구석 봄기운이 감돌았다. 엄마도 달라 보였다. 엄마가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이었다 ..  (215쪽)


 뺨을 맞으면 뺨이 얼얼하면서도 뒷간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제가 뺨을 후려갈기면 뺨맞은 그 녀석이 뒷간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저는 1997년 12월 강원도 양구 눈덮인 도솔산을 군짐차에 실려 만기전역을 하며 떠났지만, 얻어맞은 뺨에 흐르는 눈물은 1998년에도 1999년에도 2000년에도 2008년인 오늘에도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군대라는 곳이 있는 동안. 사람을 사람이 아닌 계급으로 나누고, 사람이 사람을 따스하게 껴안지 않으며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빨리 총알 적게 쓰며 죽여 없앨 수 있는가를 머리속에 집어넣고 몸에 익히도록 하는 그런 군대라는 곳이 우리 사회에 또아리를 틀며 버티고 있는 동안.


.. “그래, 뭐라던?” 할머니는 뭔가를 캐내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매맞는 것 말이다.” “트루더!” “얘기 좀 하게 입 다물어요!” 할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미하엘에게 몸을 돌렸다. “그 애가 늘 맞고 지낸다는 건 알고 있었니?” “한 번 맞았던 건 알아요. 그 후로 학교가 끝나고 바래다주었죠. 때린 남자애들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남자애? 남자애라니?” “유디트를 마구 때린 애들요.” “남자애들!” 다시 한 번 할머니는 조롱하는 듯이 웃었다. “남자애들이 자기를 때렸다고 하던? 그건 엄마 짓이었어!” 미하엘은 놀란 눈으로 할머리를 바라보았다. 머리로 피가 쏠렸다. 비좁고 후덥지근한 방 안에 있으려니 점점 어지러워졌다. “엄마가?” “놀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낮에 별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자식을 팼다. 그 애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가끔 여기까지 들렸지.” ..  (256∼257쪽)


 주먹질과 욕설과 얼차려와 괴롭힘과 따돌림 들로 ‘저마다 소중한 목숨붙이’였던 사람을, ‘누구보다도 끔찍하고 몸서리쳐지는 살인병기’로 뒤바꾸어 놓는 군대계급 소굴은, 군대를 벗어난 뒤 다니는 대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집안에서도, 동네에서도 어쩌는 수 없이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아가씨를 만나도 제멋대로가 되어 쉽게 손찌검을 하고, 자기 아이한테도 이웃 아이한테도 쉬 짜증을 부리며 손이 먼저 올라가는 남정네가 되게 합니다. 스스로 못된 손목아지를 잘라버려야겠다고 다짐하며 고치고 추스르고 깎아내고 도려내는 동안에도.


.. “장볼 돈으로 인형을 샀지!” 섬뜩한 목소리로 으르렁대는 엄마의 손에 빵칼이 들려 있었다. 유디트는 숨이 멎었다. “안 돼, 엄마……. 안 돼! 인형은 안 돼!” 유디트는 비명을 질렀다. 엄마는 코알라 인형에 칼을 쑤셔넣었다. 네 번, 다섯 번 칼질을 반복하는 사이에 인형은 넝마조각이 되었다. 엄마는 칼을 다시 치켜올리고 유디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유디트는 얼어붙은 채, 칼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았다 ..  (282쪽)


 농약을 뿌려서 거두는 곡식에 농약이 배이고 쌓입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넘치는 도심지에 뿌연 먼지띠가 겹겹이 쳐지고 늘어납니다. 돈 많이 벌자고 하는 곳에 돈이야 많이 들어오겠지요. 바라는 것은 돈뿐이니까요.


 (3) 《두 친구 이야기》라는 책


 2005년 12월, 《두 친구 이야기》를 눈깜짝할 사이에 읽어냈습니다. 2008년 1월, 《두 친구 이야기》를 다시 집어들고 열흘에 걸쳐서 자근자근 씹어먹듯이 천천히 읽습니다. 할머니가 자기 어머니한테 모질게 했던 끔찍한 주먹질과 따돌림과 괴롭힘을, 이 어머니가 자기 딸한테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퍼붓고 있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감돕니다.

 여리고 작은 아이 ‘유디트’는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한테 얻어맞습니다. 이웃집 할머니한테까지 들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이한테 잘못이 있어서 휘두르는 주먹질이 아니고, 아이가 미워서 휘두르는 주먹질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어머니한테 그랬듯이, 어머니가 딸한테 하는 주먹질과 괴롭힘과 따돌림은 아무런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 까닭 없이, 그냥 미워서, 그러면서도 제 자식이니 때린 다음에 눈물을 흘리고.


.. “유디트를 도와야 해. 유디트의 엄마도 마찬가지고. 더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그런데 어떻게 주소를 찾아내지?” ..  (263쪽)


 작지는 않지만 여린 아이 ‘미하엘’이 있습니다. 미하엘은 자기를 때리지는 않지만 모질게 괴롭히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홀로 외로우며 아버지한테 시달리다가 병까지 앓는 미하엘한테, 이웃에 살던 ‘스테피’라는 계집아이는 마음을 열어 주면서 ‘함께 나누어서 좋으니까 친구지’ 하는 깨달음을 나누어 줍니다. 이 아이 스테피는 뒷날 미하엘이 당차게 ‘아버지하고 안 살겠다’고 하면서 네덜란드에 있는 이모하고 살겠다고 자기 권리를 말하는 뒷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미하엘은 고향나라 네덜란드에서 만난 유디트를 보면서, 미국에서 지내며 아버지한테 시달리는 동안 만났던 스테피 모습을 그림자처럼 느낍니다. ‘새로운 두 친구’가 무엇을 서로 나누어야 하는가를 느낍니다.


.. 유디트는 천천히 돌아누웠다. 여전히 숨쉴 때마다 힘들었다. 엄마가 조리대에 처박을 때 갈비뼈를 다친 게 틀림없었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나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야. 내 코알라처럼 말이야. 다시 한 번, 유디트는 미하엘의 목소리를 들었다. “뭔가 해야만 해…….” ..  (284쪽)


 스테피는 미하엘한테 “텔레비전을 혼자 보면 엄마하고 같이 볼 때보다 훨씬 재미없어. 같이 있으면서 엄마가 웃으면 나도 더 많이 웃게 돼.”(52쪽) 하고 말했습니다. 미하엘은 유디트한테 “유디트, 너한테 엄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어. 너희 집에 갔을 때 …… 넌 남자애들이 때렸다고 말했지?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거야? 난 친구잖아, 안 그래? 왜 그냥 맞고만 있어? 누군가한테 말을 해야 해. 엄마가 자기 자식을 때리는 건 정상이 아니야.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네가 기다리기만 하면 엄마는 널 계속 때릴 거야. 뭔가 해야만 해. 계속 비밀로 할 수 없어. 우리가 도와줄게. 약속해.”(273∼279쪽) 하고 말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아끼는 동무이기 때문에, 몸과 몸으로도 아끼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싶은 동무이기 때문에, 내 즐거움은 네 즐거움이 되고 네 아픔은 내 아픔이 되는 동무이기 때문에, 나 혼자 걷는 두 걸음이 아닌 너와 함께 한 걸음씩 걷고 싶은 동무이기 때문에. 그런데, 유디트를 괴롭히며 때리는 어머니는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동무를 만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동무를 찾으려고 할까요? (4341.1.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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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안녕하려면 - 하이타니 겐지로 단편집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츠보야 레이코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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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우리와 안녕하려면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그림 : 츠보야 레이코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양철북(2007.12.14.)
- 책값 : 9800원


 이 책 하나 32 ― 아파하는 이웃과 외로운 아이들이 있습니다
 : 하이타니 겐지로, 《우리와 안녕하려면》



 (1)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


 지난주 토요일, 도서관에 놀러온 동네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한창 하다가 저희끼리 속닥속닥 하더니 책상서랍을 몰래 뒤지며 키득키득 합니다. 살며시 웃음을 띠면서 “이것 주웠어요. 땅에 떨어져 있었어요.” 하고 말하며 ‘타먹는 커피봉지’를 흔듭니다. 그러고는 그 커피를 타서 마시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르리라 생각했을까요. “그게 왜 땅에 떨어져 있는데?” 하고 묻지만, 아이들은 능구렁이처럼 모르쇠로 밀어붙입니다.


.. “공부할 수 있는 놈한테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지만, 슬픈 일이 하도 많아서 공부 따위가 손에 잡히지 않는 놈한테는 슬픈 일을 같이 걱정해 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잖아. 우리 학교에 그런 선생님이 있나?” ‘돼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선생님은 하나도 없었다 ..  (14쪽)




 이튿날, 동네 아이들이 컵라면을 들고 옵니다. 도서관에 놀러오면서 책 읽을 생각은 조금도 안 하는 아이들. 컵라면에 물을 받더니 책으로 뚜껑을 받칩니다. “책은 종이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책이 다치잖아요.” 하고 말해도 못 들은 척. 그러면서 나보고 “나무젓가락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내가 나무젓가락을 왜 줘야 하는데? 그리고 나무젓가락을 왜 써야 하는데?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나무젓가락을 왜 써야 하는데?” 하고 말하지만, “더럽잖아요!” 하고 말하기만 합니다.

 얼마 뒤, 바깥 나들이를 다녀온 옆지기가 아이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따끔하게 나무랍니다. “여러분은 친구네 집에 가서도 이렇게 해요? 친구네 집에 가서도 냉장고를 뒤져서 마음대로 먹을 것을 다 꺼내먹고 서랍을 뒤져서 자기 것으로 가지고 해요? 도서관이 뭐하는 곳이에요? 책도 안 읽으면서 그렇게 놀러만 오는 곳이에요? 지난번에 어질러 놓은 것도 하나도 안 치우고 가고. 그렇게 하려면 앞으로 도서관에 오지 마세요!”


..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하면 할 수 있어. 일본인을 이기는 조선인이 나타났지. 더러는 좋은 일본인도 있었지만, 못된 일본인이 더 많았어. 일본인을 이겼다고 몹시 구박을 하더군. 나는 고집이 셌기 때문에 아무리 구박해도 꿋꿋이 연습해서 시합에 나갔지. 그리고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지.” 다들 남자의 억센 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독일 선수가 왔을 때 최초로 국제 시합에 나갔지. 기뻤지. 열심히 해서 결승전에서 3등으로 들어왔어. 일본, 독일, 조선의 순서였지. 일본 국기가 올라갔고, 그리고 …… 그러고 나서 올라간 것은 역시 일본 국기였어. 나는 울었어. 관중들은 기뻐서 우는 줄 알았겠지만, 나는 분해서 울었다. 그 뒤 난 수영을 그만뒀어.” 내 목이 꿀꺽 울렸다. “내가 다시 수영을 하게 된 것은 소순이가 수영을 하면서부터야. 오랫동안 나는 저항해 왔지. 오랜 저항이었어.” ..  (36∼37쪽)




 아이들은 도서관 전화로 장난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장난전화 하려면 전화 쓰지 마세요.”라 말해도 “뭐 어때요?” 하면서 스스럼이 없는 아이. 왁왁 소리를 지르고 손찌검을 하거나 회초리를 들어야만 말을 들을까요. 부드러이 타이르는 말은 귀에 꽂히기는커녕 한귀로 빠져나가거나 아예 귀로 들어가지도 못할까요.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들은 다른 동무한테 전화하면서, “○○야, 너, 왕따 시키고 싶은 애 있으면, ○○로 데리고 나와.”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이 말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그저 장난으로 또는 재미로 다른 동무를 따돌리면서 재미있어 하는지.


.. 얼마 후, 선생님이 벌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국기게양 때 언제나 등을 돌리고 있는 것도 벌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도요. 우리가 교장실에 몰려가려 하자 선생님께선 말리셨죠. 그리고 조금 쑥스러운 듯이 말씀하셨어요. “만일 나를 위해 뭔가 해 줄 생각이 있으면 오키나와에 대해 공부해 다오. 그걸로 충분하다.” ..  (56∼58쪽)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나서 심심하면, 그예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어른들 흉내’를 냅니다. 어디서 얻었는지 화장품으로 얼굴을 허옇게 바르고 눈썹을 세웁니다. 저 나이에 벌써 화장놀이, 아니 어른 흉내라니. 그것도 좋은(?) 어른 흉내가 아니라 껍데기만 들씌우는 어른 흉내를. “예쁘면 좋잖아요!” 하는 아이들 눈에는 어떤 모습이 예쁜 얼굴일까요.

 곰곰이 떠올리면, 우리들 어릴 적에도 텔레비전 가수나 연예인들을 따라하면서 놀았으니, 이 아이들이 ‘텔미’ 춤을 추면서 노는 일도 자연스러운(?) 문화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텔레비전 연예인 따라하기가 참말 문화가 맞을까요.

.. 하지만 선생님, 스스로 맞서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다들 너무나 순순히 규칙을 따르고 너무나 욕망에 약해요. 사친은 그것도 인간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은 결코 우리를 억누르지 않으세요. 그건 선생님께서 이제까지 사람들한테 억눌려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죄송해요, 선생님, 주제넘게 ..  (66쪽)




 어질러 놓기만 하고 조금도 치우지 않는 동네 아이들. 골목길 마실을 하며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을 스치고 지나갈 때 얼핏설핏 흘려듣는 아이들 말이며 몸짓이며 볼 때면, 하나같이 안쓰럽고 걱정스럽고 슬픕니다. 이 아이들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요. 이 아이들 부모는 집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하며 지내고 있을까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던져 주고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교사가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설까요. 도서관에 오는 동네 아이들한테 책을 주면서 “너희 담임 선생님한테 드리렴.” 했더니, “우리 선생님은 책 안 봐요.”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집에서 부모님들은 책을 얼마나 볼까요. 아니, 책을 본다는 생각을 해 볼까요.


 (2) 이웃집 아이


 옆지기가 동네 아이들을 따끔하게 나무라며 내쫓은 뒤, 성당 반 모임이 있어서 이웃집으로 찾아갑니다. 반 모임에 나오는 분들은 거의 모두 아주머니와 할머니. 오늘은 할아버지 한 분이 있습니다. 1943년에 창영동에서 태어난 뒤 이 동네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입니다. “그 집에 불난 적 있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뒤로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할아버지네 집은, 배다리 골목집들 한복판을 꿰뚫으려는 산업도로 예정터 바로 옆에 있습니다. 당신은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 다니기도 모두 이 동네에서 했지만, 부모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한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당신 딸아들이 늘  ‘이제 그 낡은 집은 보상 받고 팔아서 우리들(딸아들) 사는 아파트로 오시라’고 말을 해도.


.. “그럼 할머니 혼자 지내세요?” 할머니께선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아드님은 …….” “둘 다 천황 폐하께 바쳤지.” 선생님, 저는 그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천황 폐하께서 아직 감사의 말씀을 안 해 주셨어. 이웃 오야마 씨네도 외아들 미네요시를 천황 폐하께 바쳤지. 역시 아직 감사의 말씀이 없으셨지.” ..  (71∼72쪽)




 반 모임을 하는 집에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있습니다. 옆지기가 이 아이한테 묻습니다. 우리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을 아느냐고. 서로 안답니다. 그런데 이 집 아이와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 매무새가 아주 크게 다릅니다.

 이 집 아이는 동네 어른들한테 꼬박꼬박 인사도 잘하지만, 차 대접을 한다며 어머니가 쟁반에 찻잔을 올려놓으면 자기가 손수 들어서 나르고 할머니한테는 커피를 타 드리기도 합니다. 반 모임을 하는 동안 옆에 같이 앉아서 지켜보고 이웃 아주머니와 이야기도 나눕니다. 똘망똘망하면서 참 맑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은 눈이 크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입니다. 그 눈이 어둠 속에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날아다닙니다. 나는 한동안 입을 열지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몇 번밖에 다니지 않는 기차를 한밤중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어쩌다 도착한 열차에 벌떼처럼 모여든 거죠. 하지만 몇 명의 아이가 얼마만한 돈을 손에 넣을까요?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쫓아옵니다. 나는 아이들의 눈을 똑똑히 주시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뚫어지게 보았죠 ..  (88쪽)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 부모는 저녁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네 부모는 두 쪽 모두 장사를 하는데 저녁 아홉 시가 넘어야 비로소 들어온답니다. 아침에도 일찍 나갈 터이니, 그 집 부모와 아이들이 만나는 때는 아주 짧습니다. 이와 달리 반 모임을 하던 집 아이는 아버지 일터가 바로 집이기도 해 언제나 아이와 함께 있기도 하고 어머니도 집에서 늘 아이와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성당에 함께 다니고, 아이는 성당에서 피아노 치기도 하고 있어서(일요일 새벽미사 때 피아노 치기도 했다는군요)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훨씬 깁니다. 또,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마음과 뜻을 나누는 일거리와 만남자리가 있고요.


..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은 ‘눈이 참 예쁘구나’ 하고 나는 같은 생각을 몇 번이나 다시 했습니다. 눈이 살아 있구나 생각하고 나서 문득 일본 어린이들을 떠올렸죠 ..  (100쪽)




 월요일 아침, 옆지기 동생이 인천으로 찾아옵니다. 세 사람이 차를 타고 일산으로 갑니다. 옆지기가 닭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여 낮밥을 먹으러 어느 칼국수집으로 갑니다. 낮밥 때가 조금 지났는데도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우리 앞에 서 있는 아이 둘이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뭐여? 이것들은?’ 저도 아이들을 빤히 바라봅니다. 5초 남짓 그렇게 서로를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은 왜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볼까요.

 자리가 납니다. 세 사람이 둘러앉습니다. 옆자리에도 아이들이 있습니다. 방학 때가 되어서인지, 어머니가 아이들을 이끌고 나온 집이 많아 보입니다. 옆자리 아이도 저를 빤히 봅니다. 저도 마주봅니다. 수염 안 깎고 머리도 안 깎고 그대로 두는 남자가 드물어서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되는지. 하긴, 길을 가다가 저를 보는 아이들이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저한테까지도 들리는 목소리로’ “남자가 왜 머리를 길러?” “여자야, 남자야?” 하고 묻곤 하더군요.


.. ‘마사코는 자벌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127쪽)




 2008년에 새로 나올 교과서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2007년에 나온 교과서 그림을 가만히 보면, 아직까지도 ‘집안일 = 어머니 몫 = 앞치마 두르고 밥하기’에다가, ‘집에 있는 남자 = 신문 보며 담배 태우기 = 방에 앉아서 밥상 받기’입니다.

 더욱이, 여자는 혼인하면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까지 함께하면서 사회살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아니,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기르는 몫은 오로지 여자한테 넘겨집니다. 아이한테는 어머니가 가르칠 몫과 아버지가 가르칠 몫이 함께 있는데, 두 사람이 함께 가르치고 함께 어울리며 함께 살아간다는 데까지 생각을 이어가는 남자가, 남자들 집안이 드뭅니다. 대학교를 나오고 나라밖 유학을 다녀왔어도 이런 매무새와 생각 틀거리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3) 겨울 안개


 낮밥을 먹고 얼음과자집에 들른 뒤 옆지기와 저는 서울 나들이를 합니다. 연세대 앞에 있는 헌책방에 잠깐 들렀다가, 신촌에 있는 술집 ㅅ에 들러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술집 ㅅ 사장님을 알고 지낸 지 어느덧 아홉 해. 세상 부대끼는 이야기, 사진기 이야기, 사장님 후배가 신림동에 연 문화쉼터 이야기 들을 나눈 뒤 일산 옆지기 부모님 집으로 갑니다. 버스를 탈 때는 그다지 안개가 끼어 있지 않았는데, 수색을 지나고 고양에 접어들 무렵부터 안개가 짙어집니다. 탄현동에서 내리니 십 미터 앞쯤은 뿌얘서 거의 안 보일 만큼입니다.


..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보다는 차라리 10분, 20분이라도 더 아이들과 함께하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  (128쪽)




 겨울인데. 겨울에 어인 안개이지? 겨울이면 추워야지 춥지도 않고 웬 안개야? 대한이가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소한을 지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올겨울은 ‘안 춥다 안 춥다’ 말이 많은데, 안 추워도 참으로 안 춥네. 기름값이 치솟아 겨울 난방값 걱정이 크다고들 하는데, 이만한 겨울이라면 땔감 걱정은 그럭저럭 안 해도 되지 않나.


.. 쳇. 이런 공부를 해서 뭐가 될까. 요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면 입시 경쟁에서 낙오된다고 꽤나 살벌한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선생님이 있다 …… 입시 공부도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간다는 목적이 없으면 이 고문과 똑같으리라고 본다 ..  (152∼153쪽)




 이제 1월을 넘겼으니 2월도 있고 3월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눈이 몇 차례 더 내릴 수 있을까요. 눈이 내릴 만한 날씨가 될까요. 겨울에 눈 아닌 비만 주룩주룩 내리지 않을까요.

 눈 없는 겨울로, 게다가 안개 짙은 겨울로, 날씨가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미쳐가는 우리 땅으로 치닫습니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으로는, 사람이 제정신을 잃어버리니 날씨도 제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사람이 미쳐가니 날씨도 미쳐갑니다.

 날씨가 엉망이 되기 앞서 우리들이 마실 물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그지없이 사랑하는 자동차 덕분에, 끝없이 새로 닦으며 늘리는 찻길(고속도로 중심) 덕분에, 쉼없이 쓰고 버리는 온갖 물건들 덕분에, 우리들은 미국사람 부럽지 않게 갖가지 물질문명을 즐기면서 우리 땅을 병들게 하고 우리 날씨를 미치게 하며 우리 몸을 더럽히고 우리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 가령 우리 엄마는, “아파트란 사람 살 곳이 못 돼. 우리야 5층이라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만, 12층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안 됐어.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느낌은 정신을 불안정하게 하거든.”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한다. 그럼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자란 나나 남동생은 어떻게 되나? 그런 얘기는 무책임하다고 본다 ..  (156∼157쪽)



 하루가 지납니다. 안개는 걷히지 않습니다. 창문 밖으로 뿌연 자국만 보이고 집이며 길이며 사람이며 잘 안 보입니다. 오늘 낮까지도 안개가 이어질까요. 저녁까지도 안개는 걷히지 않을까요. 이 안개는 그냥 안개이기만 할까요. 우리들이 타고다니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와 날마다 먹고 마시며 버리는 모든 쓰레기에서 나오는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지는 않을까요.


.. 만들어진 걸 즐기는 것은 조금도 나쁜 게 아니다. 만들어진 것 가운데에도 진실한 것이 많이 있는걸. 하지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유행만 좇아다니는 아이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사물을 정확히 꿰뚫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교나 선생님이 정한 일을 단순히 지키기만 하는 아이들이 주로 인기가수 뒤꽁무니나 쫓아다닌다 ..  (173∼174쪽)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답답하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어디로 떠난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없습니다. 어디로 떠난다 한들, 우리 발길 닿는 곳이 포크레인 삽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복부인 지갑에서 홀가분할 수 있는 곳이 우리 땅 어디에 남아 있을까요.


.. 내 뜻대로 고생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억지로 주어진 고통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 지금 학교생활이 지긋지긋할 수밖에 없는 건 우리 스스로 변하는 것을 학교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명령이나 강제로 우리를 변하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일 주일에 한 번 복장검사라는 게 있다 ..  (184쪽)




 옆지기 동생이 모는 차를 타면서 2005년도 판 길그림책을 살피니, 남녘땅에 새로 닦고 있는 고속도로가 자그마치 열일곱 군데나 되었습니다. 서울-춘천, 평택-음성, 당진-대전, 청주-상주, 서천-공주, 순천-완주, 익산-장수, 고창-담양, 구미-달성, 부산-울산, 기계-신항만, 구미-화산, 대구-부산(2), 목포-순천, 무안-광주, 통영-대전, 서울 외곽.

 왜 고속도로로 새 길을 내야 할까요. 새 길을 내야 한다고 해도 여느 국도로 내도 괜찮지 않은가요. 자전거도 함께 다닐 수 있는 길로,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길로 닦아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기름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다고,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길을 이렇게도 자꾸자꾸 새로 내고 있나요. 환경을 걱정하는 자동차도 아닌 기름만 먹어대는 자동차인데, 논밭을 갈아엎고 산을 깎거나 굴을 내면서까지 새 찻길을 늘려서 우리 삶터와 우리 몸뚱아리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새 길을 자꾸자꾸 닦아야 나라살림이 커지고 우리 살림도 나아지는가요.


 (4) 하이타니 겐지로 님 책 《우리와 안녕하려면》


 하이타니 겐지로 님 책 《우리와 안녕하려면》을 다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살며시 다시 펼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 살핍니다. 읽으면서 가슴에 콕콕 박혔던 대목을 소리내어 다시 읽어 봅니다.


.. 학교는 가르치는 일이 지나치게 중시되어, 어린이나 학생들의 목소리가 교사에게 닿지 않는 세계였습니다. 나는 이런 현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교육의 왜곡은 거기에서 비롯되는데……라는 생각에 슬픔이 더해졌지요. …… 생각해 보면, 나는 강한 것이나 너무 풍요로운 것에서는 무엇 하나 배운 것이 없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약한 것, 가난한 것에서 생명의 빛을 발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  (머리말)



 아파하는 사람들을 곁에서 보아 왔기에, 아니 겐지로 님 스스로 아파하면서 살았기에, 아니 겐지로 님 스스로 아파하는 만큼 이웃사람들 아픔을 구경하지 않고 어깨동무하면서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았기에 《우리와 안녕하려면》이라는 책을 조촐하게 묶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배부른 사람은 배부른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있는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배곯는 사람은 배곯는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다만, 그저 알 뿐이라면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떠올리지 못하듯 쉬 잊어버리거나 놓아버리겠지요. 머리와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간 다음, 몸을 움직여서 부둥켜안거나 부대껴야 비로소 ‘안다는 일이란 이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함께 살 수 있겠지요.

 자동차 배기가스를 듬뿍 들이마시면서도 찻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안 이 나라 교통정책과 자동차꾼 마음씀을 느낍니다. 두 다리로 터벅터벅 걸으면서 온삶을 두 다리로 버티며 살아온 여느 사람들 발자취를 깨닫습니다. 팔이 다치고 다리가 다치면서 또 몸살이 나고 고뿔에 걸리면서 고단한 곁사람들 삶은 어떠할까 돌아봅니다. (43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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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카이투스의 모험
야누스 코르착 지음, 송순재 옮김 / 내일을여는책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
- 글 : 야누쉬 코르착
- 옮긴이 : 송순재ㆍ손성현
- 펴낸곳 : 내일을여는책(2000.3.15.)
- 책값 : 6000원


 

 이 책 하나 20 ― 아이들아, 교과서는 책이 아니야
 :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을 읽으며


 2000년 봄에 사둔 책을 2007년 여름이 되어서야 읽었습니다. 처음 손을 대기는 2006년 여름. 그러니까 책 하나 사둔 채 일곱 해나 그냥 보내다가 겨우 손에 댄 뒤에도 한 해에 걸쳐서 읽은 셈. 마지막은 깊은 밤에 읽었습니다. 마무리에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잠을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잠이 절로 달아났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날짜를 적어 넣은 뒤 덮습니다. 불을 끄고 눕습니다. 첫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머리속에서 빙빙 돕니다.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불은 켜지 않고 책 앞자리에 몇 마디 끄적입니다. ‘이 훌륭한 책을 펴낸 이는, 이 책을 제대로 알아보고 즐기는 사람이 없어서 그예 판이 끊겨 버릴 판에다가 아예 사라져 버릴 판인 이 책을 놓고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아플까. 아니, 판이 끊어지게 되더라도 누군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가 이 책을 끄집어내어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이고 슬기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되지 하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홀가분했을까.’


.. 선생님, 비록 아이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잘해 주셔요. 우리 어린이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정말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몰라요 ..  〈182∼183쪽〉


 1979년, 한국에서는 ‘세계 아동의 해’ 기념우표가 나옵니다. 하지만 ‘세계 아동의 해’를 유네스코가 외쳤어도 가난한 나라 아이들 노동착취는 여태까지 이어져 옵니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부자나라로 물건을 팔아야만 되도록 다국적기업이 벌써부터 주리를 틀고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물건 씀씀이가 보통 헤프지 않은 남녘땅 사람들 살림살이도 가난한 나라 아이들 노동착취가 끊이지 않게 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입니다.

 해마다 5월 5일이 어린이날입니다만, 어린이날에서조차 아이들을 꼭둑각시나 어른들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행사만 보일 뿐입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해도 이날을 누가 왜 기리는지 돌아보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1979년이 ‘세계 아동의 해’였으나 기념우표를 만들어 팔 줄만 알지, ‘왜 세계 아동의 해를 기리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남녘땅 사람은 없습니다.


 ○   ○


 지난주 낮입니다. 은행에 볼일이 있어 길을 가다가 도원야구장(인천 숭의동) 쪽에서 무슨 큰소리가 들리기에 기웃기웃 살펴봅니다. 학교옷 입은 아이들 무리가 제법 보입니다. 깃발이 펄럭이고 경기장 둘레에 적잖은 사람들이 웅성댑니다. 뭘까? 이곳에서 무슨 경기라도 하는가?

 얼핏 넘겨다보이는 전광판을 보니 8회를 치르는 경기. 오호, 경기가 참말 있네. 옆지기와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갑니다. 문이 열린 지정석으로 들어가니 3루 응원자리는 빈틈없이 꽉 찼고 지정석도 거의 빈자리가 없습니다.

 무슨 야구 경기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만히 둘러보고 바닥에 흩어진 유인물을 찬찬히 살피니 ‘미추홀 야구대회’ 마지막날 경기입니다. 인천고등학교와 화순고등학교가 펼치는 경기. 3루 응원자리는 인천고등학교 학생으로 꽉. 1루 응원자리는 썰렁. 나중에 알았지만 화순고등학교는 전라도 학교였고, 거리가 멀어 응원을 한 사람도 못 왔구나 싶더군요.


.. 그 중에서도 카이투스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굽 높은 여자 뾰족구두, 나일론 스타킹, 레이스 달린 옷을 입은 경찰관들이 계속 넘어지면서 허둥지둥 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경찰관들은 외국인 백만장자들을 이 끔찍한 긴급사태에서 보호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 공원의 멋과 자랑이었던 고목들이 덜덜 몸을 떨더니 땅 위로 뽑혀져 나왔다 …… 카이투스는 완전한 무질서를 원했고, 그것을 이루어냈다. 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했다.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55쪽〉


 쭈뼛쭈뼛 둘러보며 빈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앞으로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 야구장 옆에 있는 중학교 아이들로 보입니다. 옆지기가 한 마디 합니다. “쟤네들 너무 귀엽지 않아요?” 중학교 아이들은 앞머리가 3센티미터도 안 되어 보일 만큼 짧은 머리, 아니 까까머리입니다. 옆지기는 이런 까까머리가 귀엽다고 합니다.

 아직도 중학교 아이들은, 인천 쪽 중학교 아이들은 까까머리여야 하나? 고등학교 아이들은 조금은 길지만, 학교에서 머리 길이 검사하는 틀에 얽매여 있음이 훤히 보입니다. ‘학생다운 머리 길이’란 있나? ‘단정한 머리 길이’란 있는가? 아이들을 모두 저렇게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로 만들어 놓으며 무슨 개성을 키우고 창의성을 기른다고. 아니, 이 나라 교육 얼거리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몸피에 매무새에 지식에다가 생각틀마저 판박이처럼 짓눌러 버리도록 맞추고 있지. 대학교에 가서도 피말리는 겨루기를 하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세상과 담을 쌓고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매달리도록 몰아붙이고 있지.


.. 카이투스는 자기가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실험했다 ..  〈16쪽〉


 인천고를 응원하는 학부모들을 봅니다. 1,2,3학년 모두가 응원하는 소리보다 조금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몸짓이나 소리나 장난이 아닙니다. 저 학부모들은 왜 저렇게까지 응원을 해야 하는지.


.. “이 유리병들과 뼈다귀는 또 뭐 하는 데 필요한 거냐?” 할머니가 물어 보셨다. “안 그래도 네 방은 쓰레기 천지 아니냐?” “그냥, 필요한 거예요.” 카이투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른들은 자기하고 관련된 말이 아니면 다 허튼 소리라고 하고,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없는 것은 전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  〈37쪽〉


 경기는 인천고가 이기면서 대회우승까지 거머쥡니다. 화순고 선수들 솜씨가 떨어진다고까지 느끼지 않았으나, 응원 하나 받지 못한 채 주눅이 들어서 어이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으니 뭐. 안방경기(?)라지만, 대회우승을 거머쥐어야 나중에 프로지명 받기에도 좋다고 하지만.


.. “그게 아줌마하고 무슨 상관 있어요.” 카이투스가 투덜댔다. “얘야, 버릇없에 말투가 그게 뭐니?” 아저씨가 말했다. “왜 남의 일에 끼어들고 그러세요! 귀찮단 말이에요!” 어른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 특히 어린이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게 참견하고, 큰소리를 치고, 쓸데없는 질문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62쪽〉


 아이들은 왜 학교옷을 입어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입히는 교사들은 무슨 교육 효과를 바라는가요. 학교옷을 입어야 하는 아이들은 이 옷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아이들은 왜 머리가 짧아야 하나요. 남자는 까까머리, 여자는 짧은머리, 이런 잣대는 누가 만들었나요. 초등학교 다니며 곱게 길렀던 머리를 눈물을 흘리며 자르고 마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는 교사나 교육 공무원은 없는가요. 남자는 모두 머리 길이가 짧아야만 ‘품행이 방정한 모범생’이 된다고 어느 누가 논문으로 증면해 보였는가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아주 오랜만에, 아니 학교 안까지 들어가 보기는 1994년 2월에 졸업식을 하고 나서 거의 처음이 아니었느냐 싶을 만큼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난 유월에. 저는 그 학교 4회 졸업생인데, 어느덧 20회 졸업생이 될 아이들이 다니고 있군요. 그런가? 세월이란 참 무섭구나 생각을 하며 예전 선생님들을 한 분 두 분 뵈었습니다.


.. 조슈아의 엄마는 다 큰 사람과 얘기하는 것처럼 조슈아하고 의논하셨다. 아이들을 믿고 존중하는 어른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카이투스는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  〈94쪽〉


 학교 다닐 때 ‘우리보다 몇 살 많지 않은 형’으로 느끼던 젊은 교사들입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때나 이때나 마찬가지로 동네 형’으로만 느껴집니다. 달라져 보이지 않네요. 새로 학교 교사가 된 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런데 이들 동네 형이나 동생으로 보이는 교사들 손에는 크고작은 몽둥이가 들려 있습니다. 설마 지금도 그러려고.


.. “나도 몰라. 난 어렸을 때 참 행복한 아이였어.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에겐 좋은 부모님과 환하고 편안한 집, 따뜻한 옷과 많은 책들, 놀이기구가 있는데 왜 다른 애들에겐 먹을것도 없고 자꾸 나쁜 일이 생길까 하고. 시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거든.” “도시에도 마찬가지야.” 카이투스가 한마디 했다 ..  〈161∼162쪽〉


 옛 국어 선생님이 마음을 써 주어서, 20회 졸업생이 될 1학년 아이들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얻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녁 10시까지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1학년 가운데 공부를 잘한다 싶은 아이들을 모아서 ‘글쓰기(논술) 보충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글쓰기 보충수업을 받는 아이들 앞에 섰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선가 ‘퍽 …… 퍽 …… 퍽 ……’ 하는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창가에 다가가 어디짬에서 나는 소리인가 헤아려 봅니다. 투박하지만 굵고 힘찬 소리. 밀걸레 자루인가? 야구방망이는 아닐 테고. 골프채는 아니겠지. 골프채는 소리가 안 나니까. 각목인가?


.. “……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니? 내 수업시간은 너무 시끄럽고 진도도 너무 느리다는 거야. 선생님이 무섭게 하고 벌을 많이 주면 학생들은 그 선생님 말을 잘 듣지.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고 싶었어. 그리고 학생들이 그걸 이용하지 않기를 바랐던 거야.” ..  〈177쪽〉


 “선생님, 남녀공학 학교로 하겠다는 (설립자) 약속은 안 지켜지나요?” “남녀공학? 아, 요새는 남녀공학 하겠다고 하면 아이들이 반대할 거야. 여학생하고 한 반이 되어 수업을 하면 자기들(남학생)이 내신이 딸리거든.”

 거의 모든 학교(중고등학교)가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뉘어진 인천.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뉘어진 채 받는 중고등학교 수업은 서로서로 무엇을 남길까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어 줄까요.


.. 서커스 단장은 전보를 쳐서 카이투스를 위해 엄청나게 큰 정원이 딸린 멋있는 집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것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원에서 놀아도 안 되고, 다른 친구들을 불러들여도 안 되고, 축제를 벌여도 안 되고, 집안을 뛰어다녀도 안 되고 ..  〈122쪽〉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학교에 붙들어매인다면, 집을 나서는 시간과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따질 때, 자기 자신을 차분하게 돌아보거나 다스릴 짬이란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새벽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도록 집을 나서야 하는 아이들이 집구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 양말이나 속옷을 손수 빨아서 입을 겨를이 있을까요. 아니, 빨래할 힘이나마 남아 있을지.

 저녁 열 시에나 끝나는 학교인데,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를 만한 쉼터가 있을까요. 인천에 있는 어느 책방이 저녁 열한 시나 열두 시까지 할 테며(서울에도 없지만), 어느 문화시설이 그 늦은 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따습게 안아 줄까요.


.. 우린 부자는 아니지만, 너에게 항상 좋은 충고와 친절한 마음을 줄 수 있을 거야 ..  〈95쪽〉


 아이들 마음밭을 뿌리깊이 다지는 풋풋한 나이 열셋∼열여덟입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이 ‘이팔청춘’이 무엇인지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쏟아지는 소낙비를 몸으로 느껴 볼 수 있을까요. 눈부신 햇살이 어떤 느낌인지 발끝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침저녁으로 어머님이 차려 주는(아버님들이 함께 밥상을 차려 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도 꿈같은 소리로만 느껴집니다) 밥상에 오르는 곡식이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자기들이 내딛는 땅에서, 자기들이 바라보는 ‘집과 학교 둘레’ 골목집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톺아볼 수 있을까요.


.. 손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인간들은 짐작도 못할 거야 ..  〈169쪽〉


 열여섯 어린 후배들을 한 사람씩 일으켜세우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자리에서 일어나기도 멋쩍어하는 가운데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고 싶은 대학교라도 말해 보라고 하나, 가고 싶은 대학교나 학과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이 교실에 갇혀서 무엇을 자기들 머리속에 집어넣고 있지요. 점수에 맞추어 아무 대학교에나 가면 그만인지.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이 고등학교 교사들한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대학교까지 마치게 하고 시집장가를 보내고 나면, 이 아이들을 낳은 어버이한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 그렇게 사람들은 티격태격 싸웠다. 걱정거리가 많은 인간들이란 늘 그런 모양이다. 서로서로 도와주기보다는 모두 자기 일에만 바쁘다 ..  〈69쪽〉


 인천에서 썩 공부를 잘하는 학교 축에 못 들어가는 곳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 한 곳에 들어갔으나 더 배울 거리가 없다고 느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둔 뒤 여태껏 그렁저렁 살아온 열여섯 살 많은 선배를 보는 이 아이들 마음속에는 무슨 느낌과 생각이 오갔을까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가야 할 곳은 대학교만이 아니다’는 제 말을 이 아이들은 무슨 느낌으로 헤아릴까요.


.. 늘 나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주 씩씩하고 끈질기게 말야 ..  〈5쪽〉


 아이들한테 한 가지 이야기를 굵직하게 했습니다. 대학교 등록금으로 들어갈 엄청난 돈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너희들은 머리 좋은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찬찬히 생각해 보라고, 그 많은 돈을 너희들한테 대고 있는데, 너희들이 대학교까지 마치자면, 요즘 돈으로는 2억 원에 가까운 돈이 들 텐데,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그러면 너희 부모님들은 그 어마어마한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해야겠느냐고, 또 너희들한테 그 많은 돈을 들이며 대학교까지 보내게 하는 뜻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부모님한테는 버거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대학교를 간다 만다 생각하지 말고,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에 이르는 돈을 빌려 달라고 해 보라고, 그 돈으로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해서 꼭 한 해 동안 전국여행이든 세계여행이든 해 보라고. 나라안 여행이든 나라밖 여행이든 알뜰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밥값과 잠값으로 2만 원 안팎밖에 쓰지 않으니(더 아낄 수도 있고) 한 해 동안 퍽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온몸으로 세상을 부대낄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더 나아지려고 사는 사람이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내는 완벽꾼이 되려고 경쟁판이나 싸움판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너희들 이런 자리에서도 쭈뼛쭈뼛 말을 못하는데 여자친구 한 사람 사굴 수 있겠느냐고. 너희들한테 한 번 주어진 삶이기에 너희들 스스로 길을 골라서 가야겠지만,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다부지게 거부하고 너희들 하고픈 일이나 이루고픈 꿈을 찾아서 훨씬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 학교 선생들이 몽둥이 들고 뚜들겨팰 때면 그 몽둥이를 한 손으로 붙잡고 더는 못 때리게 끊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법이란 사람들이 살기 좋도록 하고자 만들지, 사람을 옭아매거나 짓누르려고 만들었으면 그때부터는 법이 아니라고. 너희들이 보고 있는 그 교과서나 참고서는 책이 아니라고. (4340.9.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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