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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창의.다양.여유를 배운다 양철북 청소년 교양 8
이하영 지음 / 양철북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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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86 ― “꿈만 꿔도 괜찮은” 스웨덴 아이
 : 이하영,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책이름 :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글ㆍ사진 : 이하영
- 펴낸곳 : 양철북 (2008.10.27.)
- 책값 : 9800원



 (1) 한국이란 나라에서 학교라는 곳은


 카지노이든 도박장이든 가 본 일이 없습니다만, 사람들 이야기로는 이런 곳에는 시계와 거울과 창문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얼 얼마 동안 하고 있는가’를 잊도록 해야 도박에 흠뻑 빠져들면서 자기 모든 것(돈이든 집이든 집식구이든)을 내버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나라 학교와 군대와 감옥을 헤아려 보면, 시계도 있고 거울도 있고 창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학교나 군대나 감옥, 여기에 회사와 관공서까지 더해 놓고 보면, 그 어느 곳에서도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얼 얼마 동안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끔 홀가분하게 풀어놓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창문은 있어도 바깥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거울이 있어도 제 얼굴이든 몸매이든 제 마음대로 가꾸거나 꾸밀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머리 길이조차 제 마음대로 간수하지 못하지요. 시계가 있으나 시간에 따라서 제 하고픈 일과 놀이를 즐길 수 없습니다. 있기는 있어도 시늉일 뿐이고, 외려 없을 때보다 답답하거나 꽉 막힌 데가 우리네 사회 얼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 비록 한국에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일등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고 나 혼자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면 때로는 교활한 방법을 써서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법도 터득해야 했다 … 내가 일등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은 훨씬 쉽게 풀렸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리고, 스웨덴어 때문에 여의치 않다면 다른 친구를 불러와 통역을 부탁했다 … ‘우리 모두 똑같이 잘하자’는 스웨덴 학교의 교육 방침은 한국 학생이나 부모님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일 것이다 ..  (52∼55쪽)


 텔레비전이 있는 옆지기 부모님 사는 일산집에 와 보면, 이곳 집식구들이 보는 텔레비전을 함께 보곤 합니다. 때때로 저 혼자서 텔레비전을 볼 때도 있습니다. 무슨무슨 케이블이다 해서 백 가지가 조금 못 되는 갖가지 풀그림이 스물네 시간 쉴새없이 흐릅니다. 텔레비전만 들여다보아도 하루 내내 지루하지는 않겠구나 싶으면서도, 1번부터 99번까지 한 칸씩 죽 움직여서 들여다보면, 어느 풀그림이든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연속극도 영화도 우스개도 노래도 다큐도 만화도 게임도 …… 비슷한 눈길과 어슷비슷한 줄거리와 겹치기 배우와 끝없이 다시 보여주는 풀그림입니다. 가짓수는 많지만 많은 가짓수만큼 다르다는 느낌이 없고, 수많은 풀그림을 볼 사람들도 모두 다른 사람들일 텐데 어떻게 모두들 똑같은 눈길로 똑같은 이야기를 즐기며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데에 그예 빠져들 수 있을까 놀랍다는 생각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길들기 때문일까요. 어릴 적부터 모두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한자를 익히고 영어동요를 부르고 영어책을 펼치면서 크다가, 초등학교에 들고부터는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수업에 똑같은 글짓기에 똑같은 시험에 똑같은 책걸상에 똑같은 음악 체육 미술에 똑같은 교과과정으로 똑같은 지식을 집어넣고 있으니, 생각도 마음도 넋도 얼도 매무새도 똑같이 맞춰져 버리고 말까요.

 제 어릴 적 국민학교에 다니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1987년 10월 어느 날, 한가위와 주말이 겹치며 아주 오래도록 쉬는 때가 이어져 있었는데, 그때 우리 담임 되는 분께서는 ‘산수 깜지 50장’이라는 엄청난 숙제를 내어주었습니다. 뭐, 산수 숙제만 이만큼이었고, 다른 과목은 그 과목대로 다른 숙제가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다르지 않지만, 명절이라고 우리가 마음껏 놀 수 있지도 않은데(어느 집에서나 부모님을 거들며 명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앞뒤로 빽빽히 ‘산수 깜지 50장’을 32절지도 16절지도 아닌 8절지에다가 해 오라고 하는 일은 한 마디로 폭력이었습니다. 이 폭력은 산수 깜지를 해 온 아홉 아이를 뺀 쉰한 아이한테는 ‘끝까지 산수 깜지를 다 마칠 때’까지 ‘안 해 온 장수만큼 매질을 받는’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담임 되는 분께서는 지치지도 않는지, 산수 깜지 숙제를 안 해 온 아이들 매질에다가, 일기를 안 쓴 아이들 매질에다가, 다른 숙제를 안 해 온 아이들 매질에다가, 아침에 학교에 늦은 아이들 매질에다가, 학교모자와 이름표를 안 차리고 온 아이들 매질에다가, 반장과 부반장이 적은 ‘떠든 아이 쪽지’에 적힌 아이들 매질에다가, 다달이 치르는 학력고사 점수 떨어진 아이들 ‘떨어진 점수만큼 휘두르는’ 매질에다가 …… 매질 매질 매질을 이어나갔습니다. 매질은 팔뚝이나 종아리에 때리는 회초리가 있지만, 엉덩이와 허벅지에 때리는 야구방망이가 있었고, 옆 반 교사한테 각목을 빌려 오기도 했고, 어느 반 교사한테 당구채를 빌려 오기도 했습니다. 교무실에 가 보면 출석부 있는 자리 옆으로 갖가지 몽둥이가 나란히 줄지워 서 있곤 했습니다.

 몽둥이 크기와 가짓수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가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대학교라는 곳에 잠깐 들어가서 보았을 때에는 몽둥이는 보이지 않았으나 선배 되는 분들께서는 후배 되는 우리들한테 얼차려나 주먹다짐으로 새로운 매질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 한국 학교에서는 예체능 수업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미술실이나 음악실이 따로 없었고, 피아노도 각 학년에 한 대밖에 없었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리코더도 곧잘 연주했지만 하모니카, 멜로디언, 리듬악기처럼 몇 번 쓰고 처박아둘 것들을 계속 사야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 붓 같은 것을 들고 다녀야 하고(스웨덴은 학교에서 모든 학용품과 준비물을 챙겨 준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수수깡이며 지점토, 색종이를 계속 사들여야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미술 수업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내 침대 밑에는 언제나 쓰다 남은 미술 재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툭하면 ‘과학 상상화’를 그리게 했다. 공상을 하거나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몇 년 동안 똑같은 그림을 색깔과 구성만 조금씩 바꿔서 그려 왔다. 그러고도 교내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체육 수업 역시 즐겁지만은 않았다. 땡볕에 운동장에 나가서 하는 달리기는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게다가 체육이 다른 수업 중간에 끼어 있어서 모두가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머지 수업을 듣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학생이라면 이런 불평불만은 쏙 들어갔을 것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예체능 과목이 그리워질 만큼 공부에 시달려야 했을 테니 말이다 ..  (70∼71쪽)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얼마나 넓은 땅이 있어야 하느냐는 말이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 제도권 학교를 다니던 열두 해 세월은, 한 사람이 제도권 학교를 벗어날 때까지 얼마나 매질에 시달려야 하느냐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두드려맞고 욕지꺼리를 듣고 선생들 잔심부름을 해야 하고 선물(또는 돈봉투)을 갖다 바쳐야 하고 방위성금과 공과금과 폐품과 평화의댐성금과 국군위문편지와 학교발전기금과 무어무어를 가지고 학교에 가야 ‘학생 딱지를 떼고 사회인이 될’ 수 있는지 까마득했습니다. 죄수가 아님에도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늘 달고 다니도록 하고, 북녘나라처럼 독재가 아니라고 하지만 학교배지를 언제나 이름표 위에 달고 다니며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다가, 학교가 끝난 뒤 운동장에서 놀면 불량학생 대접을 받아야 하고, 교내 시험을 치러 몇 손가락 등수에 들면 무슨 잘못을 저지르건 가볍게 풀려날 수 있으며, 골마루에서 선생한테 인사를 안 하면 뺨따귀나 주먹이 날아오는 일이 왜 ‘학교’라는 데에서 이루어지는지 알 노릇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느낍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우리들을 묶어 놓고 푸릇푸릇할 때에조차 생각을 가두어 놓아야, 나라나 정치나 지역에서 뭔가 하나를 시키기에 좋을 뿐더러 정치와 행정을 붙잡은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뒷돈을 챙겨도 우리 스스로 아뭇소리 안 하게 되는 사회 틀거리가 만들어지게 되더군요. 나날이 정치를 못미더워 하면서 우리 스스로 투표권을 버리도록 하는 가운데, ‘이 정치인이나 저 정치인이나 다 똑같지 뭐’ 하고 생각하도록 이끌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밭을 살찌울 책을 찾아서 읽는 버릇을 익히지 못하게 했으니, 우리 스스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은 기르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가 겪은 그대로 우리 아이들이 똑같은 길을 걷도록 하고 맙니다.


.. 한국에 있을 때 동네 도서관은 지대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자주 가기 힘들었고, 미국에서는 운전을 하지 않고는 갈 방법이 없어서 자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스웨덴 도서관은 아파트 세탁실 가는 것만큼 편한 위치에 있어서 좋았다 … 혹시나 싶어 아동ㆍ청소년 도서를 담당하는 사서에게 물어 보았다. “한국어 책도 볼 수 있을까요?” 사서는 의외로 시원시원하게 10권에서 15권 정도를 들여놓고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다. 간단히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면 될 것을 스웨덴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우편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해결한다. 한국 책을 가져오겠다고 너무 쉽게 말해서 믿기가 어려웠는데, 얼마 뒤 책을 들여놓았으니 가져가라는 편지를 받았다. 정말 감동이었다. 스웨덴의 도서관 시설과 운영은 스웨덴이 복지국가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을 만큼 훌륭했다 ..  (81∼82쪽)


 우리 나라가 유럽 어느 나라들처럼 복지가 넉넉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꼭 복지가 넉넉한 나라로 거듭나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학교는 학교 구실을, 사회는 사회 구실을 할 수만 있으면 하고 바랍니다. 학교는 한 사람이 차츰차츰 커 나가는 동안 몸과 마음에 익힐 힘과 깜냥과 슬기를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높은학교에 들어갈 시험지식을 외우는 자리가 아닙니다. 햇볕 한 줄기 쬐지 못하도록 좁은 책걸상에 하루 내내 붙잡혀 지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어릴 때나 풋풋할 때나 교과서 몇 가지와 참고서와 문제집 몇 가지로 우리 눈을 가득 채우게 하는 자리 또한 아닙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훌륭한 책이 얼마나 많은데, 왜 우리 아이들이 그 수많은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훌륭한 책이 아닌, 오로지 교과서 하나에만 매여서 자기 꿈과 뜻을 못 펼치게 가로막혀야 합니까.


.. 한국은 수업이 끝난 뒤에 그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면 선생님이 들어오지만, 여기서는 10분 동안 발에 땀이 나게 ‘교실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마치 대학처럼 자신이 들어야 하는 과목의 교실을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다 … 스웨덴에서는 교과서를 학교에서 무료로 지급한다. 매년 새 교과서를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선배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는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종이의 질이나 인쇄 상태가 상당히 좋기 때문이다(백과사전 같은 미국의 교과서보다 좋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쓰는 수학 교과서는 320쪽짜리 올 컬러인데, 종이가 매끌매끌하고 질이 좋은 편이다. 이런 책을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자원 낭비이기 때문에 공책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  (182∼183쪽)
 





 (2) 우리 스스로 만드는 학교


 지난밤, 아기도 잠들고 옆지기네 식구들도 모두 잠든 때, 옆지기하고 나란히 앉아서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봅니다. 잘 만든 영화라는 소리는 익히 들었지만 영화로 보기는 처음입니다. 보려고 본 영화는 아닌데, 용케 처음 흐를 때부터 보게 되어 내처 끝까지 봅니다.

 영화를 보며 줄거리를 헤아리는 동안, 이 영화는 그저 영화로만 담기는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다른 생각이 있어서라기보다 ‘요트’를 사고 싶어서 아이들을 꾀어 죽이고 돈을 뜯어냈다는 영어학원 강사 모습은, 오늘날 우리 나라 수많은 욕심쟁이 꾀쟁이 떼쟁이 심술쟁이 모습하고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영어학원 강사 혼자서 잘못되거나 비뚤어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생각해 보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네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영어학원 강사’ 마음이 되도록 길들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무엇엔가 억눌리고 찌들리고 꽉 막혀서 고리타분하면서 바보짓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도록 하는.


.. 이제는 8시 30분에 등교해서 1시 30분에 하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국처럼 학교가 끝난 뒤에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달리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요즘에는 너무 바쁘게 사는 것보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쾌적한 도서관이나 햇볕이 좋은 공원 잔디밭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한국 친구들도 잠시 공부와 컴퓨터 게임을 잊고 경험해 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  (112쪽)


 영화에서 아이를 잃은 어버이들을 보면, 떵떵거리듯 잘살든 찢어지게 못살든, 당신들한테 소담스러운 한 가지는 당신들이 낳아서 기르던 아이들 ‘해맑게 웃던 싱그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당신 아이들이 지니고 있던 작은 물건 하나를 늘 간직하면서 떠나고 없는 아이를 떠올리고, 당신 아이를 죽인 영어학원 강사를 찢고 쑤시고 죽이기까지 했어도 아픔이 풀리지 않습니다. 풀릴 수 없었을 테지요. 누구라도 풀릴 수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당신 아이들이 당신 품을 떠나기 앞서까지는, 당신들은, 아니 우리들은 깨닫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믿고 아끼면서 돌보는 길은 ‘영어학원 따위에나, 또는 수많은 학원 따위에나, 또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잘난 대학교 따위에나 보내는 일’이 아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떠나고 없으니 비로소 ‘대학교에 못 가도 좋’고 ‘영어를 못해도 좋’으며 ‘돈 잘 버는 사람이 아니 되어’도 좋은 한편 ‘이름 날리는 사람이 안 되어’도 좋습니다. 그저 곁에만 있으면 좋은 아이입니다. 마냥 우리 둘레에 함께할 수 있으면 좋은 집식구입니다.


.. 이번 현장학습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글만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스톡홀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한국의 친구들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역사와 지리를 배우는 기회를 자주 가지면 좋을 것 같다(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서울 테마’ 같은 것이 없었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배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다 ..  (138쪽)


 곰곰이 따지고 보면, 존 테일러 개토 님이나 이오덕 님처럼 깨인 분들이 말하듯, 나라나 정부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서 다스리기 좋도록 하고자 제도권 학교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나라나 정부만 ‘바보 만들기’를 하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나라와 정부가 ‘바보 만들기’를 하도록 돕습니다. 우리 스스로 나라와 정부가 ‘바보 만들기’를 해도 그저 따라가면서 낮은자리 사람을 밟고 올라서서 더 많은 돈과 힘과 이름을 누리고자 합니다.

 법과 제도가 뒤틀려 있기도 합니다만, 뒤틀려 있는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는 사람은 다름아닌 우리들이에요. 교육악법이 태어나고 방송악법이 태어나도록 한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해서 태어나려는 나쁜법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가 못난이라서 국가보안법을 안 없앨 뿐 아니라 더 끔찍한 법을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길들고 있으니, 우리 스스로 이 뒤틀린 틀거리에서 잇속을 챙기면서 제 밥그릇만 튼튼하면 된다고 여기고 있으니, 더 나빠집니다. 참된 길을 걷고자 애쓰지 않으면서 사회와 나라와 문화와 경제와 교육이 참되게 나아가기를 꿈꿀 수 없어요. 






.. 나는 스웨덴에 온 이후로 또래 친구들보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학생이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확실하다 … 스웨덴의 시험 문제나 교과서의 문제 중 특이한 점 하나는 하나같이 서술형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수학마저도 그렇다. ‘왜?’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나는 여태까지 본 시험에서 객관식을 본 적이 없다). 교과 과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생각하고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 숙제나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숙제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정해진 시간 동안 억지로 끝내야 하는 지긋지긋한 골칫거리가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154∼159쪽)


 아직까지 우리 나라 구석구석 ‘새마을운동 깃발’이 펄럭입니다. 지난달이었나, 인천에서는 ‘전국 새마을운동 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독재자 박씨는 새마을운동으로 온나라를 휘어감으면서 ‘잘살아 보세’ 하는 노래를 퍼뜨렸지만, ‘잘살기’가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으면서 사람들 전통문화를 깡그리 짓밟고 없앴습니다. 새로 가르쳐야 한다면서 새마을연수원을 짓고 사람들한테 새마을교육을 시켰지만, 새로 배운 사람이 늘어날수록 ‘서로돕기’와 ‘어깨동무’는 나날이 자취를 감추고 ‘혼자하기’와 ‘홀로놀기’만 자꾸자꾸 퍼져나갔습니다. 영어를 더 많이 가르치고 영어마을을 큰돈 들여 짓고 모든 회사 모든 시험에 영어 지식을 따지며 가게와 관공서 간판과 서류에 영어가 함께 적히고 있으나, 이렇게 한다고 ‘세계화’가 이루어질까 궁금합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숱한 장사가 판치고 있을 뿐임을 느끼면서 자기부터, 또 자기 아이들한테 껍데기 가르침이 아닌 알맹이 가르침을 베푸는 분이 몹시 드뭅니다. 한국에서 살아남자면 어쩔 수 없다지만, 어쩔 수 없다기보다 우리 삶터를 더 나은 길로 고쳐 나가고픈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 억지로 스웨덴의 교육 방식을 찬미할 생각은 없다. 또한 한국의 현실적인 교육 환경을 모조리 부정하며, 스웨덴의 교육 현실과 대입하여 우격다짐으로 트집 잡을 생각도 없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스웨덴의 교육 방식이 보다 인간적이고,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이기에 오랫동안 건강한 복지국가가 유지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 꿈이 무엇이든 나의 꿈을 존중할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떵떵거릴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고 침 튀겨 가며 말리지도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날 도와주고, 친구들은 날 응원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2년 뒤 내 적성과 능력, 그리고 소질에 맞는 진로를 정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  (191쪽)


 한손에 평화를 든다면, 다른 한손에 전쟁을 들 수 없습니다. 한손에 군대를 두면서 다른 한손에 사랑이나 믿음을 둘 수 없습니다. 군대와 사랑은 다른 세상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전쟁무기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손에 제도권입시만 떠받치는 한국 교육이니, 다른 한손에는 매질과 끝없는 학원 교육이 올려집니다. 한손에 돈을 들면 다른 한손에는 이웃사랑이 아닌 이기주의가 올려집니다. 한손에 권력을 들면 다른 한손에는 이웃나눔이 아닌 소비물질만능이 올려집니다.
 





 (3)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읽으며


 아버지 일 때문에 스웨덴에 옮겨 살면서 학교를 다니는 열다섯 하영이가 쓴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읽습니다. 하영이는 스스로 바라면서 미국 학교도 다녀 보고 스웨덴 학교도 다녀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일터 때문에 ‘한 학교를 오래 못 다니고 여러 학교로 옮겨 다니는’ 이 땅 많은 아이들처럼, ‘한 나라 학교를 내처 다니지 못하고 여러 나라 학교를 옮겨 다니’게 되었어요.

 이렇게 세 나라 학교를 다니면서, 지식이 아닌 몸으로 저마다 다른 모습을 느낍니다. 꼭 어느 한쪽이 좋거나 훌륭하다기보다, 학교에서 무엇인가 배우며 무럭무럭 자라는 자기 삶을 돌아볼 때, 자기는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면 좋은가를 저절로 깨닫습니다.


..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서 불도 붙이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일은 좋은 체험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위험하다고 손도 대지 못하게 할 불과 칼을 직접 다루게 하는 것은 학생들이 다쳐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신뢰감을 보여줌으로써 자립심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도 마찬가지다. 도심에 이런 숲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 같았으면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는 이런 숲 따위는 싹 밀어버리고 높은 건물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받을 때 상쾌한 곳에 와서 뒹굴다 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  (35쪽)


 숲 하나 없이 아파트만 가득한 우리 나라입니다. 서울도 부산도 제주도 춘천도 대전도 익산도 매한가지입니다. 손바닥 만한 나무그늘 있는 쉼터란 없고, 길을 거닐다가 다리쉼을 할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기로는 어디를 가든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자연을 다루는 책은 많아 책을 펼치면 자연이 넘실넘실 한다지만,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마땅한 청소년책이 없어서 더는 자연을 느끼지도 문학을 느끼지도 따스한 사람품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중고등학생 때를 거치고 대학교를 다녀 회사원이 된다면, 먼 뒷날 제 어버이와 같이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는 어찌 될까요. 제 어버이가 했듯 책으로만 자연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되 초등학교 마치면 ‘이제부터는 대학입시만 바라봐!’ 하며 윽박지를는지요. ‘대학, 이 가운데 일류대학만 가면 그만이야!’ 하고 가르칠는지요. 세상 수많은 일거리와 놀이감을 아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즐기며 누릴 수 있게 하지 못하면서, 재미없고 따분한 사람이 되도록 할는지요.


.. [하영] 한국 경찰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지요?
[스웨덴 경찰 카레] 솔직히 말하면 잘 모릅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길거리에서 언제든지 경찰들을 볼 수 있다면, 그런 멋진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기는 합니다. 각 국가의 정책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그 나라의 범죄율이나 기타 많은 기준들이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경찰이 쉽게 눈에 띄는 것을 꼭 좋다고만 말하기는 어렵군요. 스웨덴 사람이 한국에 가면 자칫 범죄가 많은 국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스웨덴의 방식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게씨만, 원칙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으나, 경찰이 눈에 뜨이지 않아서 느끼는 불안감보다 내 주변에 항상 경찰들이 보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영] 만약 한국 경찰에서 초청하면 한국 경찰을 보고 싶은지요?
[스웨덴 경찰 카레] 당연히 그렇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정말 경찰에 전화를 걸면 어김없이 3분 이내에 도착하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웃음) 내가 가 보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한국 경찰을 스웨덴으로 초청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군요. 한국 경찰들이 볼 때 스웨덴 경찰들은 전부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비칠 수 있으니까요. (웃음) ..  (241쪽)



 어쩌면 하영이는 어버이를 잘 만나서, 한국땅 얄궂은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면서 아름답고 멋진 스웨덴 교육을 받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스웨덴 교육이 훌륭하고 아이들 삶을 널리 헤아려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교육을 받아먹는 아이 마음이 넉넉하면서 살가워야 고이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빈가슴한테는 제도권 교육이나 스웨덴 교육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열린가슴한테는 고단한 제도권 교육에서도 빛줄기를 찾으면서 살 길을 열고 이웃과 동무를 찾을 테지만, 닫힌가슴한테는 스웨덴 학교에서도 혼자살기만 하면서 엇나가기 마련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우리 제도권 교육이 어떤 모습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 모양 이 꼴로 우리 아이들을 억누르거나 괴롭혀야 하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언제까지 ‘대학바라기’만 하면서 아이들을 들볶으려 하는지 되새겨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지 생각해야 하고,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기를 바라는지 곱씹어야 하며, 아이들이 어떤 보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되뇌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쑥쑥 크는 이 땅 모든 아이들을 생각하며, 우리 아이를 비롯해 이웃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랄 수 있는 배움터 삶터 쉼터 나눔터가 되도록 우리 터전을 가꾸어야 합니다.

 하영이가 스웨덴살이를 글로 적어 띄워 놓는 블로그 이름은 “꿈만 꿔도 괜찮아(http://blog.hani.co.kr/leehayoung)”입니다. 이 나라와 이웃나라 아이들 모두 “꿈만 꿔도 괜찮”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1.12.31.물.ㅎㄲㅅㄱ)

http://blog.hani.co.kr/leehayoung (이하영 블로그 : 꿈만 꿔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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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한 봉지 낮은산 너른들 8
강무지 지음, 이승민 그림 / 낮은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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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둘레 ‘낮은자리’ 돌아보는 고운 눈길을
 [잠깐 읽기 21] 강무지, 《다슬기 한 봉지》



- 책이름 : 다슬기 한 봉지
- 글쓴이 : 강무지
- 그린이 : 이승민
- 펴낸곳 : 낮은산 (2008.11.20.)
- 책값 : 8800원



 (1) 입벙긋 삶과 꾀꼬리 삶


.. 한국사람들이 집 없는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또뚜야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집 없는 동물에게 먹을 것을 좀 나눠 주면 도둑질을 안 할 텐데, 이름까지 아예 ‘도둑’이라고 붙여 버리면 어떡하나. 진짜 도둑밖에 더 될까. 또뚜야와 쪼쪼는 이 도둑고양이들에게 ‘바람’과 ‘별’이라는 뜻을 가진 미얀마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가끔 놀러 오는 고양이들에게 멸치나 밥을 조금 나눠 주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고양이들이 또뚜야네 부엌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  (150쪽)


 우리 세 식구가 옆지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산까지 가자면 몇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자전거 뒤에 짐수레를 달고 달려가기. 둘째, 자가용을 몰고 고속도로와 외곽도로 타고 가기. 셋째, 택시 타고 가기. 넷째, 전철 타고 종로3가까지 간 다음 3호선으로 갈아타고 간 다음 버스를 타고 들어가기. 다섯째, 전철로 부평역까지 가서 시외버스 타고 들어가기.

 아직 아기가 어려서 첫째는 할 수 없고, 둘째부터 다섯째까지 있는데, 우리는 자가용을 몰 생각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셋째와 넷째와 다섯째가 남는데, 셋째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웬만하면 할 수 없습니다. 거의 넷째만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섯째, 시외버스 타기를 해 봅니다.

 부평역까지는 널널합니다. 인천 맨 왼쪽에서 타는 전철이니 사람도 적고 조용하고 한갓집니다. 그러나 부평역에서 내려 시외버스 타는 데까지 지하상가를 빠져나가는 길은 몹시 어수선합니다. 나가는 문구멍이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을 뿐더러, 숫자가 잘못 적혀 있기도 해서, 여러 번 왔음에도 그만 길을 잃고 헤맵니다. 가게마다 번들번들 내거는 광고판이며 간판에 가려서, 또 옆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에 가려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짚기 어렵습니다. 그저 어림으로 느낍니다. 땅밑길을 걷는 우리들이 땅위로 치면 어디쯤일까를 헤아려 볼 뿐입니다.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를 바리바리 챙겨든데다가 일산 부모님한테 드릴 왕만두가 가득한 무거운 가방을 지고 들고 아기 안고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린 끝에 소방서 앞으로 나오는 문구멍을 겨우 찾습니다. 밖으로 나와도 어수선함은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길섶에 차를 대놓아도 자리가 모자라서 사람 걷는 길로 차를 끌고 올라와서 세우는 사람들은 우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걱정없이 걷지 못하게 막고, 가게마다 길에 내놓은 물건이며 온통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수선함은 부평역에만 있지 않아요. 인천 어디를 가고 서울 어디를 가며 전국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습니다.

 시외버스를 코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40분 가까이 힘겹게 서서 기다립니다. 버스가 오기까지 서 있는 동안 담배 냄새와 화장품 냄새와 지난밤 술 체한 이들 게워낸 메스꺼운 냄새에 어질어질합니다. 버스가 들어오니 서로 먼저 타려고 밀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아기가 다치지 않게 안기 힘겹습니다. 젊거나 늙거나 아기 머리께를 밀치면서 먼저 타려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이 사람들 누구한테나 아기였을 때가 있었을 텐데, 모두들 까맣게 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오빠야, 나는 커서도 우리 마을을 지킬 거다. 아나?” “아아……. 그 말이가……. 근데…… 삼촌 숙모도 아시나, 니 꿈을?” “아, 답답하네. 내 꿈을 내가 꾸는데 우리 엄마 아빠가 무슨 상관이고?” “…….” 기윤이는 판사, 대학교수, 외교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들어왔던 터라, 솔직히 은정이의 소박한 꿈이 걱정이 되어 물었거든요. “미안, 은정아.” “뭐? 뭐가 미안하다고?” “아아니, 그냥 …….” “고속철도가 우리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가면 어떻게 된다는 거를 어른들이 진작 몰랐나 말이다. 잘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어야지. 보상금만 먼저 받으면 어떡하노. 뚝방 철도가 마을을 와넌히 망친다는 걸 알고 진작에 반대를 했어야지, 바보같이 이기 뭐꼬!” ..  (30∼32쪽)


 기차에서는 잘 자던 아기인데, 버스에서는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뿌루퉁해 있습니다. 뭔가 속이 안 좋다는 얼굴입니다. 덜컹덜컹 흔들흔들 하기 때문인지, 버스라는 탈거리가 영 안 맞다는 뜻인지. 하긴. 버스는 우리처럼 갓난쟁이를 안고 타려는 사람한테는 너무 좁습니다. 가방 둘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서, 다리를 제대로 못 뻗고 짐을 한손으로 누르는 가운데 아기를 안고 있어야 하고, 기저귀 갈아 줄 때에도 진땀을 흘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창밖에 볼 만한 모습이 없습니다. 어디나 똑같고 언제나 한결같은 가게와 아파트와 자동차 물결만 눈에 들어옵니다. 때때로 공장이 나오고 드문드문 고가도로와 지하도로가 나와서 새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인천부터 일산까지 잿빛 시멘트 건물만 줄줄줄 이어져 있습니다. 높낮이가 조금 다르고, 바깥에 바른 페인트 빛이 살짝 다르며, 간판 모양과 글씨가 얼추 다를 뿐입니다.

 문득 몹시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이 아픕니다. 시외버스를 처음으로 타는 우리 아기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헤아리게 될는지, 어떤 모습이 두 눈을 거쳐 가슴에 아로새기게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걱정스럽습니다. 오로지 돈을 치르고 사서 써야 하는 물건만 늘어서 있는 도심지 거리를 지나야 하는 아기한테는, 돈하고는 아랑곳하지 않고도 싱싱하고 푸른 느낌을 선물받을 수 있는 시골길을 달릴 때하고 사뭇 다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방앗간 할머니는 이제 물에서 나와 집으로 걸음을 옮겼어. 산에서는 소쩍새가 소쩍소쩍 먼 데서 우는 것도 같고 가까이서 우는 것도 같애. “모 심으라고 소쩍새 운다.” 아무리 먼 산에서 험한 소리가 나도 소쩍새 소리는 분명하게 가려들을 수 있지. 평생을 들어왔던 소리인데 그렇고말고 … 다이너마이트 소리. 멀쩡한 산속으로 자동차가 들락날락할 정도로 큰 구멍을 뚫어야 하니 얼마나 많이 폭파를 시켜야겠어. 사람 사는 집도 통째 흔들리는 판에 말 못하는 짐승이 얼마나 놀랐겠냐고. 에미가 진저리를 치는데 배속에 있는 새끼는 말해 무얼 해 …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작고 조용한 마을은 일 년 열두 달 공사에 시달리고 있어 ..  (78, 94, 96쪽)


 그러고 보니, 전철이며 버스며 길이며 부대끼는 사람들 매무새가 ‘둘레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으로 만나고 어우러지는 도시 삶터가 아니라, 오로지 돈과 돈으로만 얼키고설킨 도시 삶터입니다. 마음을 고즈넉하게 쉴 자리는 없고, 바쁘게 돌아치기만 합니다. 노약자보호석이란, 우리들이 스스로 우러나와 나이든 이와 힘여린 이를 지켜 주지 못하니 마련된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지 않더라도 우리 둘레 어렵고 고달픈 사람을 돕거나 힘을 나누려는 마음을 우리 스스로 품지 않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막나가고 맙니다.

 아니, 노약자석, 이제는 이름이 ‘노약자 장애인 영유아동반자 보호석’이라는 기나긴 이름이 붙은 자리를 따로 만들었으나, 이렇게 따로 만들어 놓아도 ‘노약자와 장애인과 영유아와 영유아 보호자’를 살가이 헤아리지 않습니다. 사회평등과 남녀평등과 노동평등이라는 말은 외칠 줄 알지만, 우리 스스로 참다이 평등으로 걸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이웃보다 더 많이 벌려 하고, 이웃보다 더 빠른 차를 가지려 하며, 이웃보다 더 큰 집에서 살려고 합니다.


.. 외할머니는 왜 엄마가 새아빠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생각은 못하고 새아빠가 가난한 것만 생각할까 … 따지고 보면 오늘 일도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새아빠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어른들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봐야 하지? 왜 내가 지금 친구들을 못 만나고 있지? 억울하다. 정말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왜? 왜 나는 친구들 앞에서 행복해지면 안 되나? … “할머니, 저는요, 화가가 꿈이에요. 꼭 되고 말 거예요.” 힘이라고는 하나 없어 보이는 할머니께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  (118, 124, 128쪽)


 초중고등학교 모두 도덕을 가르치지만 우리들 마음에는 도덕이 자라지 못합니다. 초중고등학교 어디에서도 ‘환경을 더럽히라’가 아닌 ‘환경을 사랑하고 지키라’고 가르치지만 우리들 마음자리에는 환경사랑이 깃들지 않습니다. ‘책에는 길이 있다’는 뻔한 말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자는 움직임이 드높지만, 정작 어른이고 아이고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전쟁이 끔찍하다고는 생각하여도 아이들한테 전쟁무기인 총과 칼을 사 줄 뿐더러, 소비 문명을 멈추지 않습니다. 대학입시가 말썽이라 하면서 제 아이들을 대학교육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거나 스스로 졸업장을 찢어버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입벙긋’ 노래꾼마냥, 우리들 삶도 ‘입벙긋’입니다. ‘입벙긋’ 노래꾼은 노래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우리 스스로 ‘입벙긋’이 아닌 삶으로 바꾸려고 하는 매무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꾀꼬리 노래꾼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꾀꼬리’ 삶으로 바꿀 수 있어야지요. 입벙긋 노래꾼이 우스꽝스럽고 꾀꼬리 노래꾼이 사랑스럽다면, 우리 삶이 입벙긋에 머물지 않도록 다그치면서 꾀꼬리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갈고닦아야지요. 우리 나름대로 자그마한 곳부터 새로워지는 매무새가 있어야 하고, 우리 깜냥껏 가까운 자리부터 북돋우는 손길이 있어야지요. 모든 사회비판은 자기뉘우침과 자기거듭남이 함께하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 아빠는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가졌는데도 회사 사장님들은 아빠를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길수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직장을 구하다 구하다 못해 반찬 배달통을 든다는 것을요 … 사람들은 길수 가족이 잊어버릴 만하면 꼭 인도니 인도사람이니 들먹이곤 했습니다. 길수 친구도 그중에 하나였던 거죠. 하지만 아빠에게 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백 번 잘한 일 같습니다 ..  (139쪽)


 (2) 남달라 돋보이지만, 아쉬운 습작에 머문 《다슬기 한 봉지》


 어린이책 《다슬기 한 봉지》를 읽습니다. 웬만한 어린이문학이 도시, 이 가운데 서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머물고 있음을 돌아보면, 《다슬기 한 봉지》처럼 변두리 도시 또는 시골마을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은 퍽 돋보입니다. 글감만 잘 고른다고 하여 훌륭한 문학이 되지 않지만, 글감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겉치레 문학이 많음을 헤아린다면, 《다슬기 한 봉지》는 아이들한테 즐겁게 읽힐 만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좋은 글감과 푸근하게 펼치는 이야기 사이사이, 좀더 무르익지 못한 글매무새는 아쉽습니다. 우리 세상에서 뒤나 옆으로 밀려나 있는 사람들을 좀더 찬찬히 들여다보는 눈매는 반갑지만, ‘뒤로 밀린 사람들 삶’을 살피는 눈매 못지않게, ‘뒤로 밀렸건 앞에 나와 있건’ 이 사람들 삶을 좀더 속깊이 파고드는 눈썰미로 거듭나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 사실 기윤이는 공사도 싫지만 어른들의 시위도 싫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시끄러운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싫은 겁니다 ..  (17쪽)


 모든 어린이 마음을 담아낼 수 없고, 모든 어린이 마음을 구태여 담아내야 하지는 않을 테지만, 어떤 어린이 마음을 담아내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한테 이야기 한 줌을 나누려고 하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가벼운 수다가 문학이 될 수 없고, 섣부른 눈길이 어린이문학이란 이름을 걸칠 수 없습니다. 어린이문학이란 어린이만 읽거나 즐기는 문학이 아니라, 어른이 빚어내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즐기는 문학입니다. 어른문학은 어른 스스로 조용히 읽기만 하고 그치기 일쑤이지만, 어린이문학은 어린이 스스로 또는 어른이 나서서 입으로 읽어서 들려주기도 하는 문학입니다. 입으로 읊는다고 할 때에 어떤 느낌일지, 입으로 읊으면서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이야기란 어떤 짜임새일지를 한 번 더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슬기 한 봉지》를 낸 글쓴이는, 처음 내놓았던 작품을 손질해서 새로 묶었다고 하는데, 모든 글이란 나중에 손질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만, 앞으로 언제가 되더라도 손질할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여미어 내는 이야기가 되도록 한 번 더 추스를 수 있어야 합니다.


 ┌ 이것만 끝냈는데도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오 분 전이었다
 │→ 이 일만 끝냈는데도 시계를 보니 네 시 오십오 분이었다
 ├ 어쨌든 나는 자동적으로 외할머니의 젖가슴을 찾아 덥석 안겼다
 │→ 어쨌든 나는 저절로 외할머니 젖가슴을 찾아 덥석 안겼다
 ├ 테스가 십사 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 일 년 열두 달
 │→ 테스가 열네 해 앞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 한 해 열두 달
 ├ 나의 자랑이었고, 나의 희망이었습니다
 │→ 내 자랑이었고, 내 꿈이었습니다
 ├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 마을버스도 학원차도 왜 오지 않는 걸까요
 │→ 마을버스도 학원차도 왜 오지 않을까요
 ├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혹시 ……
 │→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틀림없다. 그렇다면 설마 ……
 ├ 최악의 경우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고집을 꺾고 자시고 할
 └→ 너무 끔찍했다. 그렇지만 할머니 고집을 꺾고 자시고 할



 작품에서 글월 여덟 군데를 손질해 봅니다. 군더더기나 엉클어짐이 거의 보이지 않는 《다슬기 한 봉지》이지만,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또 아이들 앞에서 글로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여미지 못한 대목이 곧잘 눈에 뜨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아이들이 받아먹는 마음밥임을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글 한 줄 낱말 하나까지도 꼼꼼히 살피고 빈틈없이 다독여야 합니다. 재미있고 아름답고 신나고 따뜻하고 멋들어지고 웃음과 눈물을 함께 쏟아낼 수 있기도 해야 하면서, 뿌듯함과 새로움을 함께 선사해야 합니다.


.. 필리핀에서는 친절하게 연인을 도와주었던 남편이 결혼 뒤에는 설거지, 빨래 같은 집안일을 나 몰라라 했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부엌일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테스는 남편의 사랑이 결혼 뒤 식은 것만 같아 혼자 울기도 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 하루아침에 두려움으로 변해 버렸던 겁니다 ..  (183쪽)


 한 가지 아쉬움을 더 이야기해 본다면, 책에 들어간 그림입니다. 그린이가 넣은 그림은 꼭 ‘사진을 보고 그렸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글이란 자기가 나타내려고 하는 이야기를 눈을 감고도 눈앞에 보고 있는 듯 써낼 수 있어야 하지만, 그림 또한 자기가 보여주고픈 모습을 눈을 감고도 코앞에 두고 있는 듯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 한석봉 어머님이 자기 아이한테 불을 끈 채 글씨를 쓰도록 하면서 당신은 어두운 곳에서 떡을 가지런히 썰었다는 옛이야기는(참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 그만큼 모든 일이 손에 익고 몸에 배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린이책 《다슬기 한 봉지》에서 글이며 그림이며 참 훌륭하게 선보이려고 애는 많이 썼는데, 퍽 서툴면서 아쉬운 대목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 글다운 글로, 그림다운 그림으로 어린이책 하나를 마무리짓지 못했을까요. 왜 우리 둘레 살가운 이야기들에서 이야기감을 얻어냈으면서도 살가움을 푸근히 빚어내지 못했을까요.

 사진을 보고 그린 듯한 그림으로 그리자면 그냥 사진을 넣을 때가 낫습니다. 아니면 정밀그림을 그리든지요. 사진 냄새가 나는 그림이나, 그림 냄새가 나는 사진이나, 둘 모두 그림도 아니요 사진도 아닙니다.

 설익은 풋능금은 풋능금대로 맛있고, 푸른포도도 푸른포도대로 맛있습니다. 맛이 다릅니다. 다른 맛은 틀리거나 나쁜 맛이 아니라 ‘남다른’ 맛입니다. 그러나, 남다르다고 할 만한 맛이 모두 ‘좋은’ 맛이거나 ‘훌륭한’ 맛이 될 수 없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남다름을 찾는 일은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힘들지만 무척 보람이 있기 때문에 애써 나설 만합니다. 그러나, 남다름에서만 머무는 남다름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남다름이 되도록 더욱더 자기 이야기를 되돌아보고 우리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내 삶터에 단단히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섣불리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습작 글을 내놓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기 앞서, 글쓰는 사람 스스로 얼굴을 부끄럽게 하는 셈입니다. (4341.12.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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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방석 사계절 아동문고 71
박효미 지음,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할 말’ 없는 어린이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잠깐 읽기 20] 박효미, 《길고양이 방석》



- 책이름 : 길고양이 방석
- 글쓴이 : 박효미
- 그린이 : 오승민
- 펴낸곳 : 사계절 (2008.10.9.)
- 책값 : 8800원



 (1)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삶터와


 목포에 사는 형이 동생인 저한테 새 셈틀 하나와 외장하드 하나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셈틀이 먼저 오고 외장하드가 나중에 왔는데, 외장하드를 가지고 와 주는 택배기사는 ‘그제 배송완료’로 올려놓고는 오늘 낮 느즈막하게 가지고 왔습니다. 뻔뻔하게 ‘배송완료’라 해 놓고는 전화연락조차 되지 않던 그 택배기사는 물건을 건넨 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기요, 바쁘시겠지만 ……” 하고는 말문을 열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바쁘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제 물건을 갖다 주었다고 처리를 해 놓고 아무런 연락이 없이 이틀이나 보낼 수 있습니까?”


.. 엄마가 얼른 고개를 들고 할머니를 쏘아보았다. 할머니가 하던 말을 뚝 멈췄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애 다치면 어떡할 건데? 몸도 안 좋은 애를. 그런 생각은 해 봤니?” “어머니, 다 생각했어요. 지명이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친구들이에요. 놀 수 있는 친구들. 지금 행복하게 놀 친구가 필요하다고요. 지금 행복이 중요하다고요. 잘 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퉁명스레 내뱉은 엄마 말 중 하나가 느닷없이 내 머리를 툭 쳤다. 지금 행복한 게 중요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 “지은아, 들어가 너 할 일 해.” “응, 근데 사회 숙제 있어. 세계 문화 유산 사진 찾아오래.” “알았어. 넌 공부나 해. 엄마가 찾아 줄게. 어서 방으로.” 엄마 재촉에 쫓겨 내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 시계 옆에 학습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모든 게 순서대로다. 맨 위에 올려져 있는 건 영어 동화책. 영어 테이프는 벌써 엄마가 꽂아 놓았을 것이다. 그 밑에는 풀다 만 수학 문제집. 내가 풀어야 할 부분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다 ..  (13∼15쪽)


 택배기사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줄줄 늘어놓습니다. 택배회사 본사로 전화까지 해 보니 몇 번이나 미안하다면서 곧바로 물건을 보낸다고 한 때에서도 이틀이나 지났는데, 정작 택배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얼굴이고 몸짓이었습니다. 늦거나 말거나, 아니면 물건이 사이에 사라지거나 말거나 자기하고는 아랑곳할 일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쓰겁게 웃으면서, “그래요? 그럼 가세요.” 하고는 그만두었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음에도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벙긋하고 꺼낼 줄 모르는 사람한테, 당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닫게 하기란, 굳이 미안하다는 소리 한 마디 들으려고 하기란, 참 어리석다고 느껴졌습니다.


.. 문득 지명이한테는 허용되는데 나한테는 안 되는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이는 친구랑 실컷 놀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러도 되고, 나는 놀기는커녕 친구를 부르는 것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긴, 우리 집에 오겠다는 애도 없다 ..  (34∼35쪽)


 지난달 어느 날, 인천에 있는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제 사진 두 장을 말없이 훔쳐서 쓴 데다가, 저작권표시마저 ‘자기 것’인 듯 고쳐서 쓴 일이 있었습니다. 지역 소식을 알아보려고 인터넷 글을 뒤적이다가 뜻밖에 보게 되었으니, 그날 어떤 기사 하나 찾으려고 부지런히 인터넷 글을 살피지 않았다면, 제 사진이 도둑질된 줄조차 모르고 지나쳤겠구나 싶습니다.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내용증명 한 통을 썼습니다. 내용증명에는, 저작권자 허락 없이 사진을 쓴 일, 저작권자 표기를 지운 일, 사진에 적혀 있던 저작권자 이름을 지우면서 자료사진이라고 적어 넣으면서 소유권을 빼앗은 까닭을 물으면서, 이와 같은 말썽거리를 하루빨리 고치라고 썼습니다.


.. “야! 빨리 가. 나 학원 시간 늦는단 말이야.” “아이고, 성질하고는. 야, 생각해 봤냐? 학예회.” 나는 되도록 태연하게 말했다. “그날 시험 보러 가야 돼. 영재 시험.” “왜? 그런 걸 왜 신청했어?” “외고 가려면 그런 것도 해야 된대.” 이렇게 말해 놓고 나는 흠칫 놀랐다. 엄마처럼 말하고 있다. 내 안의 엄마가 지금 유리한테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대신 시험 신청을 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내 속에 앉아 있다. 진짜 나는 뒷방으로 쫓겨나 버렸다 ..  (72쪽)


 그러나 제 사진을 도둑질한 분은 당신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투였고, 자기 둘레에 아는 시민사회단체 사람한테 뜬소문을 퍼뜨려 ‘사진 도둑질을 받은 제가 외려 잘못한 사람인 듯’ 내몰리는 처지가 되게 했습니다.

 저는 제가 애써 찍은 사진이건 무엇이건 스스럼없이 거저로도 주고, 따로 제 돈을 더 들여서 종이로 뽑고 사진틀에도 끼워서 선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된 밑바탕이 그릇된 채 도둑질을 한다면, 그리고 도둑질을 해서 쓰는 매체가 돈이 없거나 가난한 매체가 아닌 바에는, 제대로 된 값을 치르고 가져가서 쓰도록 합니다. 정 형편이 안 닿아서 당신들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전화라도 한 통 해서 도와 달라고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연락도 허락도 없이 몰래 쓰고는, 잘못한 줄도 깨닫지 못하니.


.. “뭘?” 수돗물 소리가 다시 뚝 그쳤다. 엄마가 날 보자 어깨가 움찔했다. “그냥 학예회 하고 싶어.” 엄마 표정이 일그러지다가 어색하게 펴졌다. “지은아,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돼.” 엄마가 내 어깨를 잡았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고 눈에서는 덜컥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엄마가 내 등을 토닥토닥 다독거렸다. ‘그런 건 언제 해? 나중에? 미래에? 어른이 돼서?’ 내 마음이 소리쳤다.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며 내 방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내 몸은 순순히 엄마를 따라갔다 ..  (79쪽)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생각합니다. 똥 눈 아기를 씻기면서 생각합니다. 잠깐 눈붙이며 쉴 틈 없이 쌀을 씻고 냄비에 안치면서 생각합니다. 옥상마당에 널어 말린 기저귀를 걷어서 개면서 생각하고, 까르르 웃는 아기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어떤 사람 둘레에서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럭무럭 자랐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대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웠는지를.

 숱한 사회살이와 회사살이를 거치면서 몸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이나 경험이란 무엇인가요. 숱한 사람을 부대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는 슬기나 깜냥이란 무엇인가요.

 우리한테 이웃이란 누구이며 동무란 누구이고 식구란 누구인가요. 우리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우리 둘레 사람들은 어떻게 어깨동무하며 지낼 수 있는가요.

 우리한테 소담스러운 일이란 무엇이고, 우리 스스로 아름다이 여길 대목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꾸리는 삶이 즐거운 삶이고, 어떻게 이루는 꿈이 신나는 꿈이며, 어떻게 쓰는 돈이 넉넉한 돈입니까.


.. 나는 아무 데로나 걸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곳이라곤 학교 앞 커다란 상가 몇 개가 다였다. 상가를 지나 곧장 오르면 집이다. 나는 상가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빵집을 기웃거리고, 상가 뒤쪽 문방구 앞도 얼씬거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조금씩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한테 엄청 맞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펑펑 울지도 모른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것들이 날 괴롭혔다. 나는 결국 학교로 돌아갔다 ..  (140쪽)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으로 사귀는 사람이 아니고, 돈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돈으로 맺어지는 터전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깊은 사랑으로 함께하고, 너른 믿음으로 같이하며, 포근한 나눔으로 하나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많은 돈을 알뜰살뜰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돈 많은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지식과 슬기를 이웃과 스스럼없이 나누는 똑똑이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름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이름값이 나를 높이는 이름값이 아니라 내 이웃한테 따순 눈길을 건넬 수 있는 이름값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2) ‘할 말’ 없으면 문학이 아닐 텐데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을 읽습니다. 책이름부터 남다르게 느껴지는 《길고양이 방석》은,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겪는 아픔을 다루는 한편, 장애 있는 아이와 장애 없는 아이를 다르게 키우는 부모 모습을 다루고, 오로지 돈 많이 버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일류대학교에 들어가자면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고 학습지와 학원 공부 말고는 눈길을 돌릴 까닭이 없다고 여기는 부모 모습을 다룹니다.

 주인공 가운데 한 아이(걷지 못하는 어린 동생)는 자기가 아끼는 방석 무늬를 보고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책이름은 여기에서 따옵니다. 그런데, 책이름으로 쓰이는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지나가는 생각 한 줌으로 책이름을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만, ‘방석’도 아니요 ‘고양이 방석’도 아닌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책이름을 붙이면서, 이와 얽히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줄도 나오지 않으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책이름을 이렇게 붙이는 바람에,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은 엉뚱한 데로만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을까요? 뜻없이 붙인 책이름 때문에 ‘방석’이 말해 주거나 보이는 이야기를 감추어 버리지 않는가요? 방석을 깔지 않으면 다리가 아픈 장애 아이를, 방석 하나가 살가운 동무처럼 되어 있는 장애 아이를 바라보기보다는 ‘길고양이가 어쨌는데?’ 하는 생각을 자꾸자꾸 뻗치게 되지 않습니까? 그냥 꽃이라 하면 되는데 ‘은방울꽃’이나 ‘제비꽃’이라고 부러 예쁜 이름을 붙이면서, 예쁘게만 꾸미려는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궁금함은 책이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길고양이 방석》을 펼쳐 읽는 내내, 글쓴이가 우리한테 참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장 솜씨 괜찮고, 이야기 짜임새도 제법 탄탄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공부에 치이고 밟히는 모습을 낱낱이 잘 그려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알맹이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써서 아이들한테 읽히는 까닭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구태여 종이책으로 찍어서 읽혀야 하는 까닭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줄거리는, 장애 있는 동생이 갑작스레 병이 걸려 죽고 나서 저절로 ‘입시공부에서 살며시 풀려나게 되었다’는 맺음말로 끝납니다.


.. “원하는 걸 내가 다 했다고? 뭘? 공부? 학습지? 학원?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널 위해서잖아. 지은이 널 위해서.” “그건…… 엄마가 원하는 거잖아.” ..  (146쪽)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문학이 ‘가르침(교훈)’이어야 할 까닭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가르침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르침만 지나치면 지루하고 가르침이 하나도 없으면 허전합니다. 가르침이란 교장 선생님 훈시 같은 말씀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저절로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못 배웠다고 하는 분들이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자락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크게 배우는 일이 퍽 많은데, 크게 배우게 되는 까닭은 못 배웠다는 분들이 훌륭한 말씀을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 손바닥을 보고 얼굴을 보고 매무새를 보기 때문에 배웁니다. 환경사랑과 재활용을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추운 겨울날에 실장갑 하나만 낀 채, 또는 맨손으로 헌 상자나 신문지 들을 그러모아서 다문 몇 백 원 벌이를 하는 삶은, 수십 수백 권짜리 환경책과 견줄 수 없이 아름다운 환경 이야기이곤 합니다. 헌책방 일꾼이 버려진 책을 캐내고 손질하여 새롭게 빛나도록 애쓰는 일 또한, 그 어느 출판평론가가 책을 사랑한다고 길게 논문을 쓰는 일하고 견줄 수 없이 거룩한 책사랑이곤 합니다.

 그나저나,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듭 읽어도 느낌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줄거리는 있으나, 줄거리를 있게 하는 생각 한 줄기가 없습니다. 이야기 짜임새는 있으나, 이런 이야기를 짜넣어서 들려주는 느낌 한 가지가 없습니다. 솜씨 좋은 글매무새는 있으나, 솜씨 좋은 글매무새에 담겨 있는 넋과 얼을 찾기 어렵습니다.


.. 둘레에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얘들아, 왜 그러니?” “아줌마, 얘 못 걷지요? 몇 살이에요?” 순간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머리속에 열기가 가득 찼다. 선생님이 대답하기도 전에 딴 아이가 또 물었다. “왜 안고 다녀요? 두 살이에요?” “에계, 다리가 뭐 저래.” 내 키만 한 아이가 불쑥 나서서 소리쳤다. “야 야, 손도 그렇잖아. 얘 장애인이야.” 지명이가 움찔 움츠러들었다 ..  (121쪽)


 어쩌면 《길고양이 방석》을 쓰신 동화작가는 아직 습작을 쓰는 눈높이가 아니랴 싶습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습작에 습작을 거듭하면서 차츰 나아질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 말은 없지만 쓸 글은 있는 지금 모습을 씻어내고, 할 말이 있도록 자기 삶을 붙잡고, 할 말이 알알이 여미어지도록 글 하나를 갈고닦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동무들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으로 크면 좋은가 하는 깨우침이 모자란 가운데, 글쓴이 스스로 바로 지금 어떻게 자기 삶을 다스리면서 가꾸어 나가야 즐겁고 아름다운가를 제대로 못 깨우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군데군데 톡톡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놓인 끔찍한 형편’ 이야기는 코앞에 벌어지는 일처럼 살뜰히 그려내지만, 이런 ‘상황 보여주기’를 왜 하는지, ‘아이들이 이렇게 입시공부에 갇힌 까닭’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을 입시공부에 밀어넣는 부모’들은 어찌하여 이런 부모가 되고 말았는지를 못 헤아렸구나 싶어요.

 주말연속극도 문화이자 재미난 이야기일 수 있기에, 《길고양이 방석》 같은 어린이책도 문학이요 재미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쓴이나 출판사나, 또 어린이문학 평론을 하는 분들 스스로 《길고양이 방석》과 같은 작품을 ‘문학’이라고, 더욱이 ‘어린이문학’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준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너무도 부끄러운 짓을 하는 셈 아니랴 싶습니다. 쭉정이는 쭉정이이고 깜부기는 깜부기입니다. 쭉정이는 벼이삭일 수 없고 깜부기는 보리이삭일 수 없습니다.

 세부묘사와 줄거리 짜기와 문장수련은 훌륭히 하지만, 무엇을 보여주려는 세부묘사인지가 없고 무엇을 들려주려는 줄거리 짜기인지가 없으며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은 문장수련인지 없는 아쉬움을 털어내는 문학을, 어린이문학을 기다려 봅니다. (4341.12.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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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 아들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5
노경실 글, 김중석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왜 ‘학교’에 보내야 하는가
 [잠깐 읽기 17] 노경실, 《엄마 친구 아들》



- 책이름 : 엄마 친구 아들
- 글쓴이 : 노경실
- 그림 : 김중석
- 펴낸곳 : 어린이작가정신 (2008.10.14.)
- 책값 : 8400원



 (1) 우리한테 학교는 어떤 곳인가


 저녁 아홉 시 무렵, 옆지기는 아기를 등에 업고 두 사람이 골목마실을 합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기를 돌보면서 지치고 힘든 우리 둘이는, 아기를 안거나 업고 밖으로 나오면 아기가 고이 잠들어 한숨을 놓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땅도 좀 밟고 살자면서 숨이라도 돌리고 싶어서 바깥바람을 쐬러 나옵니다.

 슬슬 거닐며 낯익은 골목도 지나고, 아직 디디지 못한 골목도 지납니다. 어둑해진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이 보이고,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입니다. 동산고등학교 옆을 지나고 박문여자고등학교 옆을 지나며 재능대학교 옆을 지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건물은 가장 높은 층 유리창에 불빛이 환합니다. 지난날을 거슬러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나, 3학년 교실은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궁금했는데, 가만히 보면, 가장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려고 1∼2학년 아이들하고 떨어뜨리려고 위층에 올려놓았는지 모릅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열 시하고도 반. 인천은 서울과 달라 시내버스도 일찍 끊기는데, 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버스라도 넉넉히 있으려나. 보아 하니 열한 시는 되어야 학교에서 풀려날 듯하고, 거의 열두 시 가까워서야 버스를 탈지 모르는데, 학교 선생들은 도무지 무슨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저렇게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닦달을 하고 있는지. 원.


.. “현호야, 엄마 친구 아들은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등해서 해외 연수 가는 장학금을 받는대.” “누구요?” 나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누군지는 알아서 뭐 하게? 엄마 친구 아들이 한둘이야?” “그럼 엄마 친구 아들들은 다 똑똑해요?” ..  (25쪽)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이들 스스로 저 굴레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도 이러한 굴레에서 아이들을 홀가분하게 풀어놓지 않습니다.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라갑니다. ‘너희들한테는 다른 볼 것 없어. 오로지 대학교뿐이야.’ 하는 윽박지름에 고분고분 따릅니다.

 늦은밤, 햇볕 한 줌도 못 쬐었을 법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 몇몇은 길바닥에 침을 찍찍 뱉습니다. 건널목이 빨간불임에도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꾹 찔러넣은 채 여 보라는 듯이 건넙니다. 이튿날 저녁, 다른 동네 다른 고등학교 앞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사내든 계집이든, 아이들은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는 이죽거리는 얼굴로 길바닥에 침을 직직 뱉습니다.

 문득 내 고등학교 적을 되돌아보니, 그무렵에도 이와 같은 얼굴로 이와 같은 몸짓으로 이와 같이 침을 내뱉는 동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나도 멋있지 않고, 하나도 ‘불량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딱할 뿐입니다. 그저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햇볕이 아닌 형광등 불빛에 하루 열 몇 시간씩 시달리는 아이들이 되다 보니까, 닭우리에 갇혀서 잠도 못 자면서 알만 낳다가 고기닭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암탉들처럼, 이 아이들도 햇볕 아닌 형광등 불빛에 시들고 길들고 찌들면서, 마음밭이 자꾸자꾸 거칠어지고 메말라 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렇게 신기한 점이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데, 왜 엄마는 나를 보면 활짝 웃는 때보다 툴툴거릴 때가 더 많을까? 내가 알아낸 답을 말해 줄게. 첫 번째 이유, 내가 일등을 못 해서다. 두 번째 이유, 누나와 자꾸 싸워서다. 딱 두 가지 이유로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그러나 ‘일등’이라는 이유는 조금 억울해. 내가 위인전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학교 공부 일등해서 훌륭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거든. 오히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고 걱정시킨 위인들이 많아. 그러고 보면 나는 착하고 훌륭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야. 너도 위인전을 꺼내 놓고 하나하나 조사해 봐 ..  (16쪽)


 올해에는 아직 옛날 고등학교 적 선생님들 뵈러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옛날 동무들이 모여서 예전 선생님을 뵈러 찾아가곤 합니다. 꼭 스승날에 맞추지는 않고, 예전 선생님 시간에 맞추어 찾아뵌 뒤 소주 한잔을 걸칩니다. 학교에서 뵙기도 하고, 선생님 사는 집 둘레 소주집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학교에 갈 때면 으레 예전 교실도 둘러보지만, 예전 교사나 요즘 교사나 똑같이 한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도 살펴봅니다. 남자교사 책상 한쪽에 올려져 있거나 옆에 서 있는 ‘몽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세상은 틀림없이 ‘민주화’가 뿌리내렸다고 말하고, 우리 나라는 어김없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아직도 제 고향땅 인천에 있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매타작 소리가 학교를 쩌렁쩌렁 울립니다. 더욱이, 매타작 소리를 듣는 어린 후배들은 이러한 매타작을 ‘잘못을 했으면 마땅히 받아야 할 벌’로 여기고 있어서 아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되묻습니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하지? 그때에는 너희들이 몽둥이를 들고 선생님을 두들겨패면 되니?’


.. 대신 지섭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말을 했지요. “그게 어때서? 우리 엄마는 공부만 일등하면 다른 건 하나도 못해도 나를 왕자처럼 모실 거야.” ..  (44∼45쪽)


 되물음에 대답을 해 준 후배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회 후배들(지금 고2)은, 아니면 30회 후배들은, 아니면 40회 후배쯤 되어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저는 4회 졸업생입니다).

 옆지기와 아기와 함께 밤마실을 하다가 밤늦도록 불이 켜진 고등학교 옆을 지나가면서, 밤나절 술 한 병 사러 동네 구멍가게를 다녀오는 길에 이웃한 고등학교 아이들 몸짓을 보면서, 마음이 늘 어둡습니다. 우리가 어버이 된 몸으로서, 이러한 일을 모두 치러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진 대목이 없음을 알고 있는 마음으로서, 우리 아이가 제도권 학교에 다니도록 해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아이가 제도권 학교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입을 때 어찌해야 할는지 근심입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아이가 학교에 다닌들 무엇을 배울는지 끌탕압니다.


 (2) 좋은 이야기감이나 섣부른 끝맺음


 어린이책 《엄마 친구 아들》을 읽습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를 써도 늘 아이들 눈높이에서 헤아리고 살피면서 아이들 마음결을 보듬어 주는 노경실 님 새 작품입니다. 아들(남자)만 높이 섬기는 한국땅에서, 이웃집 아들과 자기 집 아들을 견주느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지 못하는 온갖 문제를 맛깔스러우면서도 앙증맞게 잘 여미어 놓은 작품입니다. 진작에 이러한 글감으로 우리 교육 문제와 집살림 문제를 짚어냄직도 했건만 여태껏 이러한 ‘우리 삶 자잘한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은 어린이책이 드물었습니다(어른책도 드뭅니다). 《상계동 아이들》과 《복실이네 가족 사진》부터 《어린이 동장 만세》와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와 《네가 있어 엄마는 행복해》에 이르는 수많은 창작을 일구어 낸 노경실 님을 생각한다면, 이쯤 해서 이분이 이만한 작품을 선보일 만하구나 싶습니다.


.. 나는 그냥 보통 어린이야. 바둑은 아마 5급이고, 태권도는 까만 띠야.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정도는 피아노로 대충 연주할 수 있어 ..  (10쪽)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서, 또 마무리를 보면서, 어쩐지 팥소가 빠진 찐빵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군대 계급장 같아(12쪽)” 하고 생각하는 《엄마 친구 아들》 주인공인데, ‘엄마 친구 아들’로서 겪는 아픔이나 생채기가 잠깐 스치듯 보여질 뿐인데다가, 아이가 엄마한테 뿔이 나서 ‘집을 나가는(가출)’ 마지막 대목에서 참으로 싱겁게 ‘해피 앤딩’이 됩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누나하고는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는 주인공(현호)이 딱 하나 잘하는 일이라면,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 꼬박꼬박 하기라고 하는데, 주인공이 어느 날 불현듯 ‘나한테도 자랑할 만한 일이 있다’고 느끼며 어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는 아이 마음을 조금도 읽지 못하는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잔뜩 뿔이 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 안 해요!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엄마 아들 안 할래요. 그러니까 다른 아줌마네 아들을 엄마 아들로 삼아요! 나는 다른 아줌마네 아들 할게요.(57쪽)” 하고 외치고는 집을 박차고 나옵니다. 그런데 13층 집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이, 주인공네 어머니는 그사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이한테 미안해 하며 툇마루 창문을 열고 “아들! 아들! 빨리 들어와!” 하고 두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도 있지만,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책을 죽 읽는 동안, 주인공네 어머니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아니 갑작스럽게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자기 아이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마음그릇이 아닌 분입니다. 더구나 주인공네 어머니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왜 내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대면서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우리 아이(아들)한테 사랑스러운 구석은 무엇일까?’ 들을 찬찬히 짚거나 살피는 이야기나 실마리는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모든 문제가 풀려 버리고 말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 엄마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하면서 시큰둥해 하리라 봅니다.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틀림없이 마땅하고 알맞으며 좋은 이야기감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감이라고 하여 늘 쓸 만한 책으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좀더 곰삭여야 하고, 좀더 둘레를 살펴야 합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읽으라 할 책이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도 읽으라 할 책일 텐데, 뼈가 없는 말만 가득하다면, 아니 뼈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재미나마 담지 못한 말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톡톡 튀는 사잇그림이 듬뿍 담긴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어린이책은 될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이나 또 아버지들이나 가슴에는 한 가지 고이 남아서 자기 삶을 돌아보며, 왜 ‘엄마 친구 아들’ 따위 허튼 말을 함부로 쓰면서 서로한테 생채기나 입히는 삶으로 서로서로 고달프게 하는가를 한 가지도 건드리지 못하고 맙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섣불리 마무리를 짓지 말고, 2부를 새로 써서, 집을 박차고 나온 아이 마음을 좀더 차근차근 살피는 이야기를 더 쓰거나, 아이가 집을 박차고 나간 까닭을 헤아리거나 짚어나가는 어머니 이야기를 더 쓰거나 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4341.1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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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박남정 글, 이형진 그림 / 소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6 ― 자전거 못 타게 하는 나라에서 우리 권리란
 : 박남정,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책이름 :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글 : 박남정
- 그림 : 이형진
- 펴낸곳 : 소나무 (2008.10.27.)
- 책값 : 8500원


 (1) 학교와 자전거


 숱한 뺑소니 사고(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다가 차가 자전거를 친 뺑소니 사고)를 겪고 난 뒤탈로 마음껏 자전거 나들이를 즐기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둘레에서는 으레 ‘작은 차라도 하나 사서 타고 다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가볍지 않은 사진장비에다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들이는 책도 많은데, 아기까지 있는 몸으로 어찌 다 짊어지고 다니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운전면허조차 일부러 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차를 사라고 한들 소 귀에 읽는 불경일 뿐입니다. 저한테는 운전면허도 없지만 운전면허를 딸 생각도 없고, 앞으로 환경파괴가 하나도 없는 자동차가 나온다면 모르지만, 그때를 맞이하더라도 운전면허를 따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비록 사고 난 자리(어깨, 팔꿈치, 손목, 무릎)가 결리고 쑤시고 아프지만, 틈틈이 짧은 거리나마 자전거로 움직입니다. 장보기를 하면서, 볼일을 보면서, 골목마실을 하면서 자전거를 탑니다.


.. 그때였다. 교실 앞쪽 벽에 달린 스피커가 칙칙거리더니 교감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알립니다. 당산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특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잘 들으세요. 학교 주변 빌라와 아파트 주민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세워 두는 바람에 불편하다며 항의를 하셨습니다. 에…… 또……, 학교 주변 도로도 사정이 좋지 않아 사고가 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자전거 통학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절대로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뭐야, 무슨 소리야?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  (16쪽)


 1987년 2월,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앞으로 우리가 갈 중학교를 알려주는 담임선생은 저를 따로 불러서 “종규 넌 좋겠다. 앞으로 학교에 자전거 타고 다니겠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갈 중학교는 우리 국민학교를 통틀어 꼭 열여섯만 가게 되었는데, 집에서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야 했습니다(사십 분 남짓). 다른 동무들이 많이 가는 ‘집하고 가까운 중학교’에는 뽑히지 않고(뺑뺑이였으니), 몇몇 아이들하고 멀디먼 데까지 가야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동무들하고는 죄다 떨어질 뿐 아니라, ‘자전거 통학은 무슨 얼어죽을 자전거 통학. 누가 자전거를 공짜로 사 주기나 하나?’ 하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제가 갈 고등학교는 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학교로 떨어집니다. 뺑뺑이질은 어김없이 괴로운 가시밭길만 선사합니다. 중학교 다니던 그 길은 왼편으로는 목재처리장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폐수처리장이 있으며, 학교 뒤로는 화학공장이 있고, 그 옆으로는 돌산이 있었습니다(건물에 쓰는 돌을 캐는 산). 중학교 세 해 동안 이 모진 터전을 겨우 견디었다 싶더니, 고등학교 세 해도 이 모진 터전에서 숨막혀야 하는가 싶으니, 울고 싶더군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긴 해, 대학교 앞 신문사 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자전거를 몹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동무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린 다음 학교에 오곤 했는데, 그무렵 그렇게 집안살림을 거들며 공부하는 녀석이 몹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새벽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어머님이 해 주신 아침을 먹고는 새벽 여섯 시 반 즈음 해서 학교에 닿아 아침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앞서까지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면서 마음닦이를 한다고 깝죽을 떨었지만, 정작 책삶에만 기울고 이렇게 새벽나절을 땀흘리 일하는 데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을 느꼈어요. 이리하여 ‘나도 언제쯤 동무녀석처럼 새벽에 신문 돌려서 살림을 보태고 낮에는 공부하고’ 하는 삶을 붙잡을 수 있을까를 헤아렸고, 이 헤아림은 네 해 만에 이룬 셈입니다.


.. 솔직히 혜진이는 자전거 통학이 금지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집이 학교와 가까워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올 일도 없거니와 평소에도 자전거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19쪽)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괜히 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했다가 들키면’ 각목이나 당구채로 몽둥이찜질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국민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만, 제아무리 선생님들이 뺨따귀를 올려붙이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도 ‘옳지 않다’고 느낀 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일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들은 체벌과 주먹질로만 다스리려고 할 뿐, 사람과 사람으로, 또 말과 말로 문제를 푸는 민주주의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지난 아홉 해와 다름없이 ‘하지 말라’는 당신들 말씀을 하느님 말씀처럼 섬기라고 우리들한테 한 주에 두 차례씩 아침모임을 하면서 우리 머리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옳지 않다고 느껴지는 일을 옳다며 따를 수 없는 노릇. 이때에도 중학교 때와 다름없이 선생님들은 발길질과 체벌과 얼차려와 점수깎이로 우리 머리를 깔아뭉개려고 했습니다. 초중고 열두 해라는 세월은 민주주의와 조금도 가까이 사귈 수 없는 나날이었으며, 우리 나라는 조금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가 아님을 깨닫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이 열두 해를 더듬어 보면,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무는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교사도 없었습니다. 걸어서 오는 동무나 교사도 아주 드물었습니다. 적어도 시내버스를 탑니다. 다음으로 자가용을 탑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버스를 탑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럴밖에 없구나 싶은데, 처음부터 ‘자전거 타고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전거로는 위험하니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지 말도록!’ 하고 다그치는 교장 교감 교무주임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2) 사회와 자전거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는 동안, 신문배달 자전거를 타고 ‘그리 넓지 않은 강의실 건물’을 오갔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학교임에도 걸어서 움직이면 ‘쉬는 시간 10분은 금세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잠깐 오줌 누러 뒷간에 가기도 벅차고요. 초중고등학교 때처럼 한 교실에서 배우고 교사가 왔다갔다 하는 틀이 아니니, 강의 하나가 조금이라도 늦게 끝나기라도 하면, 다음 강의를 맡는 강사는 ‘지각생은 안 받겠다며 문을 잠그는’ 일이 생기기도 해서, 자전거로 달리면서 오가는 일은 퍽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에도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 강의를 들으러 오는 선후배나 동무는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제가 타는 짐자전거 바구니에 담배꽁초를 휙휙 버리는 사람은 늘 있었고, 신문배달 자전거 바구니 바닥에 책이 긁히지 않게 깔아 놓은 신문지 한 장을 몰래 훔쳐가는 사람 또한 언제나 있었습니다. 신문배달 자전거이고 신문사 지국 이름이 굵게 적혀 있던 만큼 자물쇠를 안 채우고 살았는데, 세 해 동안 이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를 오가는 사이 딱 한 번 도둑을 맞았습니다.


.. 신호가 바뀌자 민우가 먼저 출발했다. 새 자전거를 탔으니 사이클 선수처럼 폼 나게 쌩쌩 달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 사랑마트 앞길에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불록불록 솟은 보도블록 때문에 바퀴가 튕겨 오른 것이다. 롯데상가 앞에서는 숫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다.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차들이며 가게에서 내놓은 짐이 아침부터 길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로 차도로 오르락내리락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달려 학교 앞에 도착한 민우와 성태는 늘 하듯이 교문 앞 아세아 빌라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웠다. 민우는 이미 세워져 있는 서너 대의 자전거를 밀쳐가며 기둥 옆에 자전거를 바짝 세웠다. 그리고는 앞바퀴에 하나, 뒷바퀴에 하나, 열쇠를 두 개나 채웠다. “이 정도 해 두면 아무도 안 가져가겠지?” 열쇠가 잘 채워졌는지 끈을 흔들어 보기까지 하고도 민우는 자전거 옆을 떠날 줄을 모른다. “그렇게 걱정되는데 새 자전거는 왜 타고 왔냐?” “학교 올 때 아니면 탈 시간이 없잖냐. 학원 마치고 집에 가면 캄캄한 밤이고. 학교 안에 자전거 보관소가 있으면 좋을 텐데…….” ..  (10쪽)


 신문사 지국을 나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동안, 책 나르는 일을 하자면 자동차 없이는 안 됨을 느낍니다. 그러나, 늘 길이 꽉꽉 막히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전철로 움직이거나 자전거로 움직이면 한결 빠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한 대 굴리자면 달마다 일꾼 한 사람 쓰는 돈이 들기 마련일 뿐더러 차값이나 보험값 들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로 움직인다고 더 빠르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면허가 없으니 늘 얻어타고 움직이는데, 큰짐을 나를 때에는 짐차를 불러서 나르고, 여느 때에는 자전거로 움직이는 일이, 나무한테 고맙게 종이를 얻어서 책을 만들어 먹고사는 우리들로서는 마땅히 할 노릇이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업을 하면서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모두들 코웃음을 칩니다. 서울 시내만 해도 자전거로 다니면 훨씬 빠를 듯하다고 이야기하면 술이나 마시라며 말허리를 뚝 끊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있는 일을 하는 어느 누구라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기 두 다리를 써서 자전거를 굴리면서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자기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가르친 사람이 없으니 배울 사람이 없습니다. 가르치는 책이 없으니 스스로 익힌다 하여도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더 많은 책은 읽고 더 많은 스승한테 훌륭히 가르침을 물려받았다고는 하지만, 삶으로 곰삭여서 엮어내는 마음밭을 가꾸는 ‘깨우친이’는 드물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환경운동가가 몇 안 되고, 자전거를 타는 진보운동가가 얼마 안 됩니다. 자전거를 타는 생협운동과 여성운동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는 교육운동이나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박정희 독재경제가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로 이루어졌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를 어떻게 씻어내면 좋을지를 헤아리거나 아는 사람은 씨가 말랐다고 할까요.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엿들을 지식인은 둘레에 많이 보였지만,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몸으로 옮기는 지식인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만나는 자리에서도, 만나고 돌아선 뒤에도, 그분이 쓴 책을 읽으면서도.


.. “솔직히 처음에는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학교 다니기 편하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한 건데, 하면서 보니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배들,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창하게 말하면 지구 환경도 지킬 수 있는 일이고요. 그래서 어제 제가 집에 가서 시장님께 편지를 써 봤습니다.” ..  (73∼74쪽)


 어쩌면,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우리 형편에서는, 자전거란 한낱 ‘추억’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을 ‘추억’을 넘어 ‘우리 삶(현실)’으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을 줄 아는 지식인이 드물듯, 자전거를 추억이 아닌 우리 삶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땀흘리며 부대끼려고 하는 지식인이 드물더군요. 자기 몸을 써서 땀을 내는 일은 한결같이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면, 우리 몫으로 다른 이들이 땀을 흘려 주어야만 할까요. 우리가 먹는 밥과 입는 옷과 자는 집은, 내 손이 아닌 다른 이들 값싼 품삯으로 얻어야만 하나요.

 밥하기, 빨래하기, 치우기, 아기보기를 비롯한 온갖 집안일을 제 두 손으로 치러내는 지식인이, 아니 ‘배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자기 짐을 자기 가방에 넣어서 자기 어깨힘으로 나르는 사람, 또 자기 움직일 곳을 자기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가는 사람, 밖에서 밥을 사먹지 않고 손수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 무엇보다도 이웃사람 목숨을 아끼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일거리를 찾아서 즐기는 사람은, 아니 ‘배운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늘 궁금합니다.





 (3)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하는 나라


 베네수엘라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은 자기한테 내려진 권리를 짓밟는 어른(공무원)한테 맞서서 다부지게 자기들 권리를 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림책에 담겨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한테 기쁨과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서울 당산초등학교 아이들은 자기한테 주어진 권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려는 어른(교장 교감과 빌라촌 주민)한테 맞서서 당차게 자기들 권리를 찾아냈고, 이 이야기는 이야기책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에 소록소록 담깁니다.


.. “사실 학교에서 자전거 통학 금지를 했지만, 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편하고 재미도 있어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선생님한테 들킬까 봐, 친구들이 보고 학교에다 이야기할까 봐 걱정하면서 몰래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참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자전거 타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그래.” 환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전, 자전거를 안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벌어진 것도 같지만, 죄 지은 사람처럼 눈치 보며 자전거를 타고 싶지는 않았어요. ……” ..  (37∼38쪽)


 그런데 우리 나라 당산초등학교 아이들 앞길은 무척 거칠었습니다. 어른들(교장 교감을 비롯한 다른 교사들)은 ‘말 한 마디로 손쉽게 자전거 금지령’을 내렸고, 아이들은 ‘말 한 마디 대꾸도 못하는 채 그저 따르기만 해야’ 했습니다. 따르지 않고 몰래 자전거를 탔어도 마음 한켠이 켕기면서 답답했다고 합니다. ‘자전거 금지령’을 내려야 했다고 해도, 학교 다른 교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든지, 아이들 생각을 들었다든지 하지 않고, 그저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만들어서 내려보내기만 할 뿐입니다. 더욱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일터를 오갈 권리가 있음에도, 이러한 권리를 지키지 않고, 외려 권리를 막거나 밟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학교 둘레 길 형편이 자전거 타기에 알맞지 않아서 자전거를 못 타게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학교 둘레가 자전거 타기에 알맞는 길 형편이 되도록 마음을 쏟고 정책을 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로 오가기에 알맞지 않은 길은 걸어서 오가기에도 알맞지 않을 뿐 아니라, 차로 오가기에도 나쁩니다. 우리들은 차를 교실 안까지 타고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더욱이 모든 학생과 교사가 자가용으로 다니게 된다면, 이리하여 서울이든 다른 도시이든 모든 사람이 자기 차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우리 나라 길은 어떻게 될까요. 모든 사람이 걸어서만 움직일 때, 또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아무런 말썽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타면 말썽이 크게 생기고, 나라는 아주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 1886년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뜨겁던 자전거의 인기는 한순간 차갑게 식어 버렸어요. 그러다 20세기 후반부터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다시 치솟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많이 탈수록 선진국이라 불릴 정도지요. 이번에도 이유는 자동차.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동차가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대도시 사람들이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더 자전거를 이용해도 공기오염이 줄고, 기름 사용이 줄고, 도로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이 줄고, 병원비나 약값이 줄어들어 3조 원 정도는 절약될 것이라고 합니다 ..  (97, 101쪽)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2.4%라고 하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둘레를 돌아볼 때 ‘2%라는 숫자도 믿기 어렵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우리 나라는 1%도 아닌 영점 몇 퍼센트밖에 안 되지 않을까 모를 일입니다.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어서 2.4%라고 해도, 두 곱이 늘어 5%가 조금 못 되어 나라살림이 3조가 줄어든다면, 네 곱이 늘어 10%가 되면 나라살림은 십 조원 넘게 아낄 수 있을 테지요. 이렇게 되면 미국 무역에 기대어 달러값이 솟느니 주식값이 떨어지느니 하며 걱정할 일도 많이 걷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할 일을 안 하면서 투정만 부리는, 아니,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으면서 우리 삶터가 지저분하거나 엉망이거나 좋지 않다며 투덜거리고만 있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자전거길은 새로 만들지 않고, 찻길 50센티미터쯤만 페인트를 그어서 자전거한테 내주어도 넉넉합니다. 자전거 세울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면 건물 한쪽 빈자리에 마련하면 되기도 하지만, 자기 책걸상 옆에 접어서 놓아도 됩니다. 바퀴 큰 26인치짜리만 자전거가 아니라, 10인치와 16인치와 20인치짜리도 자전거입니다. (4341.1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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