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양철북 청소년 교양 5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 양철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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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8 ― ‘푸르고 여린(청소년)’ 심지에 폭력을 들이대지 마셔요
 : 김진아 외 아홉 사람, 《열정세대》


- 책이름 : 열정세대
- 글 : 김진아 외 아홉 사람
- 펴낸곳 : 양철북 (2009.2.16.)
- 책값 : 9800원



 (1) 아이들을 폭력에 길들게 하는 학교


 엊저녁, 옆지기가 동생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처남(옆지기한테는 막내동생)은 오늘 학교에서 ‘두발검사’를 한다면서, 이때 걸리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했는데 깜빡 잊었다고 합니다.

 열네 살 처남이 학교 다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학교 공부보다는 동무들하고 뛰어놀기를 훨씬 더 좋아하지 않느냐 싶던데, 아마도 학교에서 담임 교사가 ‘두발검사’를 한다고 알려주었어도 곧 잊어버렸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요.

 처남 머리는 그리 짧지 않습니다. 제가 다닌 중학교를 떠올리면, 더구나 제 고향이며 일터인 인천에서 중학생인 요즈음 아이들 머리길이를 살피면, 경기도 일산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처남 머리길이는 ‘인천에서는 고등학생 머리길이’라 할 만합니다.


.. 우선 가출이라는 용어는 항상 청소년에게만 사용되고 있어. 그렇지? 너 ‘가출 어른’이라는 말 들어 봤냐? 없지? … 어른들에게는 가출 대신 다른 멋들어진 단어가 사용되지. 독립. 음, 이 얼마나 장대한 말이냐 … 사실 학교 폭력은 학교의 폭력적인 구조와 문화 때문에 가능하거든. 일종의 폭력적 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거야. 그런데도 청소년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희석해 버리지. 그래서 폭력 청소년을 학교 바깥으로 쫓아내면 모두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야 … 가출하고 나서 나는 진짜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어. 전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미래가 조금씩 명확하게 보익 시작했다 … 하지만 이 따스한 공간(집)이 가장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부모님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해서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16∼19, 22쪽)


 옆지기가 처남 머리를 잘라 주는 동안, 때가 어느 때인데 학교에서 ‘머리길이 살피기’를 하는가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아이들 머리길이를 살피는 일을 ‘교육’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지시사항을 내리는 교육부도 놀랍고, 이런 지시사항이 없었다면 학교장 스스로 이런 지시사항을 마련했을 테니 이 학교 교장 또한 더없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학교장이 이런 지시사항을 내렸다 하여도 담임을 맡은 교사 스스로 ‘터무니없을 뿐더러 해서는 안 되는 짓’을 곧이곧대로 따르며 아이들을 억누르는 셈이기 때문에 한 번 더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교사 되는 사람들은 ‘아이들 머리카락 길이를 짧게 맞추어야, 아이들이 바르고 착하고 얌전하고 슬기롭게 크리라’ 생각하고 있을까요? 이런 짓에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도 경제적 가치 앞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서글플 뿐입니다. 감동을 주지 못하고,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회와 삶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  (55쪽)


 제가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간 때는 1988년입니다. 이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인천에서) 중학생은 머리길이가 3센티미터가 넘어가면 안 되었습니다. 그나마 앞머리는 눈썹에 안 닿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예 빡빡이 머리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말이 3센티미터이지 빡빡 밀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머리통이 허옇게 드러나는 아이들이 우글우글 모여 학교에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모습은 조금도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런 모습이야말로 ‘참교육’이 이루어진다며 좋아한 분들이 있었겠지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단발령’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깜짝 놀라던 일이 떠오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머리카락이란 몸뚱아리와 마찬가지였기에,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하여 목숨을 끊은 사람이 나왔다고 했는데, 지난날 우리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중학교에서 우리들 머리카락을 이토록 밀어대는 일은 ‘우리가 스님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습니다. 스스로 밀고 싶으면 밀며, 깎고 싶으면 깎도록 해야 할 뿐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우리한테 이름을 빼앗고 말을 빼앗고 땅을 빼앗고 문화와 몸 모두를 빼앗은 아픔과 생채기를 목소리 높여 가르치던 교사들인데, 정작 이런 교사들이 가위를 들고 교실과 학교 구석구석 누비며 어디 숨은 ‘놈’이 없는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두발검사’ 하는 날이면 교사들은 하나같이 새벽밥 지어먹고 학교 곳곳에서 눈알을 부라리며 지켜서곤 했고, 이렇게 지켜선 다음에도 운동장으로 죄다 불러내어 하나하나 자로 머리길이를 재면서 다시금 가위질을 해대었고, 조리로 돌을 솎아내듯 하루 동안 교실과 골마루와 뒷간에서 서너 차례 가위질을 해댄 다음에야 비로소 살얼음판 같은 가위질이 끝나곤 했습니다.


.. 문득, 어른들은 ‘십대 동성애자’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십대는 미성숙하고 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잖아 ..  (64쪽)


 가위질은 고등학교에 갔어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등학교에서는 3센티미터는 아니었습니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지 말고, 옆머리가 귀를 덮지 않으며, 뒷머리가 옷깃에 닿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인천이라는 데에서는 ‘학교옷’을 안 입어도 누가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인지를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고, 신분증이 없어도 신분증처럼 알아보았습니다. 극장에 들어갈 때이든 전철을 탈 때이든 버스표를 살 때이든 머리길이만으로 우리 ‘신분’이 드러났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사를 비롯한 모든 어른은 우리 ‘푸름이(청소년)’를 ‘한꺼번에 다스릴(일제단속)’ 수 있었습니다.

 시험점수에 따라 줄세우기 하는 짓만으로도 모자라, 아니, 줄세우기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못하니까 심심했는지(?) ‘두발검사’에다가 ‘복장검사’에다가 ‘소지품검사’를 수도 없이 해댔고, 굵직한 몽둥이를 어깨에 얹고 다니는 교사들 가운데에는 중고등학생한테까지 ‘손톱검사’를 하면서 골마루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매질을 일삼는 사람이 어김없이 학년마다 한둘씩 있었습니다.


.. 처음에는 집으로 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차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 몇 푼 더 벌지 모르지만, 촛불집회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유는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  (99쪽)


 어린 처남이 “아이! 내일 두발검사 하는데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하기에 옆지기는 머리를 손수 잘라 주었습니다만, 제 마음은 “얌마, 머리 그냥 그대로 두고 학교에 가. 가서 청소년 인권을 말하면서 따져!” 하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에 따르는 어떤 앙갚음을 교사들이 해댄다 할지라도, 아이들한테 ‘인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교칙만 있다’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교사들한테,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과 똑같은 사람이다’고 당차게 외쳐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2) 학교에서 폭력에 길들지 않고자


 그러나 처남한테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반항이 아닌 저항은 앞으로 언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머리가 잘리지 않으면서 지내며 폭력에 조금이라도 물들지 않아야 하지만, 처남 스스로 이런 대목까지 살피는 눈길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인권’을 말하는 일은 샛길로 샌다든지 잘못 받아들일 걱정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다루어야 하며, 혼자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길이를 살핀다고 하는 날 갑작스레 홀로 외치는 말이 아니라, 오래도록 차근차근 생각하고 돌아보고 동무들하고 이야기를 나눈 끝에 함께 움직여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처남 스스로 학급회의 같은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감을 꺼내어 교사가 함께하는 가운데 ‘인권이란 무엇이며, 학교란 어떤 곳이고, 교사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교칙은 터무니없습니다만, 깊은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말 또한 교사한테도 학교한테도 동무들한테도 살갗 깊숙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나 몸짓으로 스며들기란 어렵다고 느낍니다.


.. 청소년 시절에는 입시 위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 전국의 청소년들을 성적순으로 등수를 매기고(일제고사), 아름다운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영어 몰입 교육),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는(0교시 수업, 야간 자율학습) 걸까? ..  (29쪽)


 그러면서 제가 중고등학교 때 해 본 저항을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반항이었지만, 한낱 맞대꾸하는 일(반항)만으로는 제 뜻을 교사와 학교한테 알릴 수 없을 뿐더러, 동무들한테도 제대로 나눌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가벼운 맞대꾸나 철없는 맞대꾸를 딛고 서서, 차분한 맞섬이나 올바른 거스르기를 해야 교사도 생각을 고치고 학교도 다른 매무새로 나오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1988년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아직 세상을 제대로 모르던 때였기에, 전두환이 얼마나 나쁜 놈인 줄 몰랐고, 그때까지 학교에서 한 주에 한 번씩 거두던 ‘평화의 댐 성금’이라든지 다달이 거두던 ‘방위성금’이 어디로 들어가는 돈이었는지를 비롯해 ‘독재’라는 말도 몰랐습니다. ‘쿠테타’를 알 턱이 없었을 뿐더러, 어느 교사도 우리한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마을운동 체험 독후감’을 쓰는 숙제를 ‘더 얻어맞지 않으려고 쓸’ 뿐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국민학교 6년을 마칠 때까지 쓰던 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늘 ‘새마을일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레 머리를 빡빡이로 밀어야 하는 일은 제 마음에 깊이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왜 깎아야 하는데? 안 깎으면 깡패가 되나? 안 깎으면 공부를 안 하나? 깎으면 모두 천재라도 되나?

 더구나 한 달에 한 번씩 가야 하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거칠게 휘젓는 가위질과 마구 문지르는 머리감기는 고달플 뿐이었고, 머리 깎는 돈이 몹시 아까웠습니다. 늘 그렇지는 않았으나 국민학생 때에는 집에서 어머니가 머리를 깎아 주시곤 했는데, 중학생이 되건 고등학생이 되건, 머리를 깎아야 한다면 집에서 스스로 깎도록 하면 될 노릇이고, 저마다 제 머리와 몸과 마음에 따라서 간수할 노릇이 아닌가 싶었기에, 이 마음을 곰곰이 다스려서 토요일 학급회의를 할 때에 늘 안건으로 올렸습니다. 받아 주든 안 받아 주든 ‘안건으로 올려야 할 까닭’을 예닐곱 가지나 열 몇 가지씩 쪽지에 적어 놓고는 읽었고, 우리 학교는 우리 인권을 너무 짓밟고 있으니 이러한 일들을 고쳐야 한다고 거듭 외쳤습니다.


.. 이제 중ㆍ고등학교에서 풍물 동아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한가하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도 부모들이 반대해 동아리실이 폐쇄되기도 한다. 학생은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다 … “우리 학교가 생긴 지 1백 년이래요. 선생님들도 우리 학교 출신이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선생님들이 자신들이 배운 교육 방식 그대로 우리를 가르친다는 점이에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예전 방식 그대로예요. 정말 심해요. 앞뒤가 꽉 막힌 선생님들이 많아서 친구들도 무척 힘들어 해요 … 제가 학교를 떠난 이유는 학교 안에만 있으면 많은 걸 놓칠 것 같아서였어요. 생각과 상상력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라는 거대한 배가 흘러가는 방향대로 같이 흐르니까요 … 학교 안에서 상상하지 못하던 아이는 밖에 나와도 상상할 수 없어요. 그러면 그 아이는 아예 상상할 수 없게 되어 불행해지는 거예요 ..  (138, 144∼145쪽)


 나중에, 중고등학생 가운데 생각있는 학생이 모여 ‘대학생처럼 하는 학생운동 모임’이 있음을 알았는데, 이 모임에 있던 이들 가운데 우리 인권을 따진 동무들은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모임이 있다 했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책도 읽는다 했는데, 물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반장을 뽑을 때 ‘전교 몇 등에 드는 테두리’에서 후보자를 고를 수 있던 일이라든지, 교사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질이 없어져야 한다는 외침 따위에는, 반 동무들이 뜻을 같이했어도 담임 교사는 언제나 ‘오늘 이 이야기는 이 교실에서만 있었던 걸로 한다’며 끝맺고는, 교감이나 교장한테 한 번도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학급회의 주제는 대충 아무것이나 바꾸어 적고 토론한 줄거리도 대충 채워 넣었습니다. 이를테면, ‘학교를 깨끗이 하자’라는 주제로, 청소를 잘하자라느니 쓰레기를 줍자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고 적습니다. ‘공부를 잘하자’라는 주제로, 다가오는 시험에서는 더 부지런히 공부하자라느니, 예습과 복습을 잘하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느니 하면서.


.. “청소년 운동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나라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현재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공무원도 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어요. 또 원하기만 하면 군대도 갈 수 있고요. 그런데 유독 참정권만 없어요. 이건 좀 말이 안 돼요.” ..  (180쪽)


 중학교 세 해에 걸쳐 끝없이 싸우고 싸웠습니다. 맞으면서도 우리가 왜 맞아야 하느냐고 따졌고, 교사들이 잘못하면 우리가 교사를 때리면 되느냐고 따졌습니다. 소지품검사를 거스르고자 했으나 언제나 거스르지 못하게 되었고, 교과서 아닌 책을 빼앗아 갈 때면, 그 책이 무슨 불량불온도서라도 되는데 빼앗느냐고 따졌습니다. 자율학습이라면 자율로 하고픈 사람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보충수업은 보충해야 하는 아이들만 해야 하지 않느냐며 따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가지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한 가지도 나아지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딱 한 번, ‘청소년 인권선언문’을 전지에 옮겨적어 한 주 동안 학교 문간에 세워 놓도록은 했는데, 한 주가 지난 다음에는 쓰레기통에 처박혔습니다.

 교사들은 버젓이 동무들 뺨따귀를 올려붙이거나 코피가 터져도 주먹질을 그치지 않는 일을 교실에서도 해댔습니다. 이런 학교를 다녔다는 일은 ‘내 창피’라고 여겨, 중학교 졸업사진책은 안 사기로 했습니다. 졸업장도 안 받으려고 했으나 어머니 얼굴을 생각해서 받기로 했습니다. 기껏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까요. 전교에 너 혼자만 졸업사진책을 안 산다니 말이 되느냐고 담임이 몇 번이나 달래고,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이 도장을 찍어 주십시오 하고 했어도 끝내 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어처구니 학교를 다닌 일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게 비싸게 팔아치우는 졸업사진책도 마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연합고사를 마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입니다. 중학생 때에도 1학년 때부터 아침 여덟 시 이십 분부터 0교시를 해서 밤 열 시까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이어졌는데, 연합고사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0교시와 자율ㆍ보충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런 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지 않았고, 수업 때에는 비디오를 틀어 주었고, 때로는 운동장에서 나가 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끼리 웃고 떠들고 찧고 노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수학 교사 한 사람이 “왜 이렇게 떠들어!” 하면서 우리보고 책상을 들고 벌을 서라 했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저도 얼결에 책상을 함께 들고 벌을 받았지만(저는 동무들하고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맨 뒷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늘), 수학 교사가 비꼬듯 되뇌는 설교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네가 그동안 우리한테 한 짓이 있는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읊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십 분쯤 팔이 덜덜 떨리도록 책상을 들고 있다가, 이 수학 교사가 우리한테 한 시간 내내 책상을 들고 있으라고 하는 소리에 불뚝 성이 나서, 교단으로 책상을 냅다 집어던졌습니다. 동무들만 떠들었어도 나 또한 한 반 동무로 벌을 받기도 해야 할 테지만, 십 분 넘게는 벌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어차피 이 학교는 한두 달 뒤면 나하고도 인연이 끝인데, 너 같은 사람한테 입발린 설교는 듣기 싫으니 입을 다물라는 뜻으로.

 수학 교사 얼굴에 대고 책상을 던졌는데, 안타깝게도 수학 교사 얼굴은 살짝 스치고 칠판에 꽝 하고 박았습니다. 갑자기 날아온 책상에 놀란 수학 교사는 더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책상을 던진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쳐다보고 무어라 한 마디를 더 했으면, 이번에는 걸상을 들고 뛰쳐나가 휘둘렀을는지 모르니까요.

 수학 교사가 아무런 대꾸도 없고 시늉도 없기에 걸상에 털썩 주저앉아,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팔짱을 끼고 앉았습니다. 동무들보고 “야, 니들도 앉아. 저런 놈이 시키는 대로 할 게 뭐야?” 하고 말했는데, 다들 끽소리 없이 책상을 들고 있기만 할 뿐입니다.


.. “후문 개방 사건 이후로 생각이 많았어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어른들도 학생들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 어른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을 아무 생각이 없는 존재로 치부해 버려요. 고등학생도 그렇게 생각하니 중학생은 더하죠.” ..  (219, 224∼226쪽)


 마침종이 울리고 모두들 책상을 내리고 팔 빠져 죽는 줄 알았다느니 투덜투덜댑니다. 수학 교사는 교무실로 돌아갑니다.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학 교사가 학생과로 부르면 한판 몸싸움이라도 벌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이 일을 쉬쉬하고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뒤로 우리들 ‘연합고사 끝나고 나서 졸업 때까지 이루어진 수업’은 더 개판이 되었고, 교사들도 더는 몽둥이질을 해대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중학생 때 일을 돌아보면, 조금도 잘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 철이 없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철이 없었기 때문에 당돌한 짓을 저질렀고, 저 또한 폭력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에 찌들고 길드는 바람에 ‘폭력에 맞서는 폭력’밖에는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폭력은 폭력으로는 어떻게든 이길 수 없음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이음고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로 읽으라 내준 책 가운데 이러한 이음고리를 보여준 책은 하나도 없었고, 이무렵 국민학교 교감 자리에 오른 아버지 또한 아들인 저한테 ‘사람됨 이끄는 가르침’이라든지 ‘사람다움을 보여주는 책’을 하나도 일러 주지 못했습니다.

 동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폭력에 맞선 폭력을 ‘짱’이라느니 ‘멋있다’라느니 하는 말로밖에 바라볼 줄 몰랐고, ‘네가 잘못했어’ 하고 말해 준 녀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폭력은 폭력으로 이기려 해서도 안 되지만, 폭력을 굳이 이겨야 한다고 해서도 안 됨을 알 길이 없기도 했습니다. 제도권 학교 틀거리와 교과서로는 우리가 ‘틀에 잘 짜여진 톱니바퀴’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먹이는 대로 잘 먹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고 ‘민주시민’이 된다고 앵무새 말을 거듭 할 뿐이었습니다.


 (3) 푸름이 목소리를 푸름이 입으로


 이야기책 《열정세대》를 꼼꼼히 읽고 난 지 여러 달 지났습니다. 푸름이들 나이와 자리를 헤아리면서, 제가 그 나이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책을 찾고 어떤 공부를 하는 가운데 무슨 꿈을 키웠는가 곱씹습니다.

 우리를 낳아 기른 어른들은 우리를 보며 ‘너희는 전쟁도 겪지 않고 평화로운 세대야’라느니 ‘너희는 보릿고개도 부대끼지 않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배부른 세대야’라느니 하는 말을 일삼았는데, 어찌 보면, 어른들은 우리 푸름이를 ‘배부른 돼지’로 기른 셈 아니었으랴 싶습니다.

 틀림없이 당신들처럼 배를 곯거나 헐벗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당신들처럼 학교도 못 가고, 학교에서도 더 끔찍한 콩나물시루에서 더 모진 몽둥이질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한테도 당신들처럼 고단함이 있었고, 허구헌날 운동장 돌 줍기를 해야 했으며, 날이면 날마다 매타작에 엉덩이와 허벅지와 뺨따귀가 성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고작 한 학년 위인 선배들은 건들거리면서 종아리를 걷어차거나 침을 찍찍 뱉었고 돈을 빼앗기는 동무가 많았습니다. 후미진 골목에서는 너구리 소굴 같은 하얀 연기가 피어났으며, 자유공원과 화도진공원 같은 데는 동네 양아치들이 학교옷을 구겨입고 술판을 벌여 이 옆으로 지나가기도 무서웠습니다.


.. 청소년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권리를 인정한다면 법으로 명시된 최정임금을 준수하는 건 기본이 아닐까? 그게 진짜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 아니겠냐고 ..  (24쪽)


 《열정세대》를 읽는 동안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눈을 뜬’ 아이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이 아이들한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어른이 한둘쯤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보았자 턱없이 모자란 손길입니다만,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는 날까지 따뜻한 손길이라곤 ‘학교 둘레’에서 한 번도 못 받았던 제 삶을 생각해 보니,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잘되었다며 한숨이 나오기도 하며, 이렇게 살가운 어른이 있어도 좀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어른들 모습이 보인다는 느낌에 아쉽기도 합니다.


.. “조중동의 문제는 자신들의 시선이 옳고, 전부이고, 객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이 일부이고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만 옳고 다른 신문들은 틀리다’는 식이잖아요. 그게 가장 잘못된 점이죠 … 주위 친구들을 보면 지금 당장 자기와 상관이 없어 보인다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뭐든지 세상과 연결되지 않은 건 없잖아요. 쇠고기 수입 문제, 쌀 수입 개방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들이 커다란 고리에서 보면 결국 자신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160, 165쪽)


 무엇인가 허전하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들춰봅니다. 이 아이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 어슷비슷하게 생채기를 입어 보았던 어른이었기에 기꺼이 이 아이들한테 손길을 내밀 수 있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예전에 겪은 생채기하고 아이들이 오늘 겪는 생채기하고는 같지 않습니다.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하나도 같지 않습니다. 사회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경제가 다릅니다. 학교 시설이 다르고 교육제도가 다르며 입시지옥이 다릅니다. 지난날 같은 군사독재자가 나라를 어두움에 내몰지 않습니다만, 군인이 아닌 사람이라 하여도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교육밭이나 문화밭에 평화와 자유와 민주를 심지 않았습니다. 너나없이 돈벌이를 외치지만, 돈벌이를 왜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못합니다. 자립형사립고니 교육평준화니 외칠 줄은 알아도, 이런 교육이 푸름이인 오늘 아이들한테 어떤 눈높이에서 다가가는 일인지를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가슴팍에 뜨거운 심지 하나를 붙안고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손길 내민 어른들 또한 어른들대로 가슴자리에 따뜻한 촛불 하나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와 촛불이 제대로 만날 수 있다면, 심지와 촛불이 오래도록 어깨동무를 하면서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여린 심지가 무럭무럭 자라나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 새롭게 커 나갈 더 작은 심지한테 촛불이 되어 다가설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 하나로 빈틈없는 끝마무리를 바라서는 안 될 노릇이요, 이 책 《열정시대》에서는, 심지와 촛불이 만나는 이야기를 읽어내면 넉넉하며, 이 심지와 촛불이 다음 심지와 촛불로, 또 다음 심지와 촛불로 꾸준히 이어나가면서 우리 손으로 차츰차츰 새롭게 일구는 우리 터전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하는 이야기를 새겨낼 수 있으면 즐겁다고 느낍니다. 그래, 한 걸음씩 아닌가?

 겨우 마음을 놓으면서 책을 덮고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우리 처남이 이 책을 알아보면서 스스로 집어들어 읽을 날을 기다립니다. (4342.5.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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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배우는 자의 권리를 찾아서
츠지모토 마사시 지음, 이기원 옮김 / 지와사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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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01 - 학교를 다니며 자유와 창조를 빼앗긴다
 : 츠지모토 마사시,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책이름 :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글 : 츠지모토 마사시
- 옮긴이 : 이기원
- 펴낸곳 : 知와사랑 (2009.3.30.)
- 책값 : 13000원


 (1) 자전거 타는 어린이는 자전거 타는 어른이 된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부터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무나 형이나 누나나 동생을 본 일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탄다 하면 집 둘레 골목길이나 아파트 주차장 같은 데에서나 탈 뿐이었습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과 학교를 자전거로 오간 동무나 선후배를 본 일은 없습니다. 딱 한 번, 새벽에 신문배달 하는 동무가 자전거 타고 신문 돌리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 뿐입니다. 1994년에 잠깐 대학교에 들어가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둘 때까지 대학생 동무나 선후배 가운데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자가용 끌고 학교 오는 사람을 본 적은 있습니다.


.. 지금의 우리는 교육이라면 언제나 학교교육을 생각한다. 학교가 널리 보급되어 있고 서양의 근대 학문을 전제로 성립한 학교가 가장 보편적인 교육 수단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일본에서도 겨우 1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근대사적 산물이다 … 모든 아이가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는 근대 공교육 제도의 사상은 오랜 역사의 눈으로 볼 때 최근에 나타난 상당히 편협한 사상이다. 그렇기에 공교육 제도를 자명하다거나 최상의 교육 형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후에도 변함없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  (8, 196쪽)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일터를 오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학생이나 회사원이 생각이 밝거나 훌륭하다고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집과 학교 사이, 집과 일터 사이가 십 킬로미터가 되지 않는다면 걸어서도 오갈 수 있는 한편 자전거를 타고 오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와 같은 길은 자가용이든 버스든 전철이든 타고 오가기보다는 오로지 우리 두 다리를 믿고 오간다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고.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학교길이나 자전거를 타고 삼십 분 남짓 들이는 회사길은 조금도 시간을 ‘길에 내버리는’ 일은 아닐 터이라고.


.. 데나라이쥬크에 다닌다는 것은 어느 데나라이 선생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데나라이쥬크라는 교육 기관에 입학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학문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어느 선생의 제자로 들어갈지는 배우는 쪽의 의지로 결정하였다. 선생의 인격, 서도의 유파, 글솜씨, 사람들의 평판 등을 여러모로 고려했을 것이다 … 가이바라 에키켄은 데나라이 선생을 올바로 선택하는 것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에키켄은 선생에 대한 신뢰감이야말로 교육과 학습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본 것이다 … 교사와 아이의 관계는 결코 제도적인 관계가 아니라 신뢰와 존경으로 맺어진 인격적이며 개인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 쥬크는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어떤 규제도 없이 자유로웠다 … 아침 몇 시에 등교하는지 그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각자 가정의 생활시간 안에서 아침식사를 마치는 대로 등교한다 … 언제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배우는 이의 의사에 달렸으며 존중되었다. 교사는 학습하는 주체의 주문에 맞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30∼31, 33, 34∼35쪽)


 국민학교 적 동무, 중고등학교 적 동무, 대학교 적 동무, 그리고 군대와 회사에서 만난 동무 가운데 새롭게 ‘자전거를 타겠다’며 나선 사람은 다섯손가락으로 꼽지 못합니다. 모두 꼽으면 두엇쯤?

 곰곰이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때때로 자전거모임에 들어가면서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자전거모임에라도 나가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자전거모임에 나간다 하여도 자전거 사랑을 키우는 사람보다는 쉬는날에 가끔 자전거 굴리며 놀러다니는 테두리에 머무는 사람이 거의 모두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자전거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올바르고 살가운 말’에 익숙하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올바르고 살가운 말을 나누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곤 합니다. 어릴 적부터 바른 말은커녕 알맞거나 마땅한 말을 듣거나 읽거나 말할 겨를이 없었다면, 나이가 들어 국어학자가 되고 교수나 강사가 된다 하여도 말씀씀이며 말매무새고 아름다운 쪽으로 거듭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 데나라이쥬크에서 아이들이 이혼장 쓰기까지 배웠던 것이다. 아이니까 아직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발상은 애당초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배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 개별적인 자기학습 시스템이 일반적이었던 데나라이쥬크에서는 원칙적으로 경쟁 원리는 없었다. 모두들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배우면 되었다. 어느 정도의 학습이 필요한가는 아이들의 능력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 부모의 생각 등에 따라 각기 달랐기 때문에 학습자는 스스로가 혹은 그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배우면 되었다 ..  (45, 48쪽)


 아이들이 어릴 적에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제대로 배우기 어려울 뿐더러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에 어릴 적에 가르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면, 영어만 어릴 적에 가르쳐야 좋을까요. 영어 아닌 다른 이야기는 어릴 적에 가르칠 만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영어 한 가지만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다른 모든 이야기는 안 가르쳐도 괜찮을까요.

 착한 마음씨랄지, 따순 마음결이랄지, 넉넉한 마음밭이랄지, 푸진 마음그릇이랄지, 깊은 마음씀씀이랄지를 어릴 적부터 온몸에 고이 배어들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꿰뚫어보도록 어릴 적부터 슬기롭게 이끌고, 사람을 사람 그대로 껴안을 수 있게끔 어릴 때부터 꾸밈없이 어루만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들 어른이 아이 앞에서 ‘교육’이라는 말을 꺼내고 싶다면 말입지요. 우리들 어른이 아이를 ‘학교’에 넣으려 한다면 말입지요. 이 나라에 ‘교육부’가 있고, 교육부장관이며 교육감이며 교장ㆍ교감ㆍ교사가 있다면 말입지요.


.. 내제자가 식사 시중을 드는 중에 스승의 마음을 읽는 것이 샤미센을 연주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물론 직접적으로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러나 스승을 섬기면서 샤미센을 연주하는 스승의 리듬이나 숨소리, 그리고 마음의 움직임까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높은 경지의 예술에 오를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제자가 스승으로부터 깨달아 알아차리는 능력은 일상생활의 시중이든 예술의 수련이든 간에 차이가 없다. 예술을 수련할 때만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을 떠난 일상의 장에서도 끊임없이 스승의 숨소리까지 느끼려는 노력이야말로 내제자가 되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 스승은 실제로 해 보일 뿐이다. 그러고 난 후에는 제자가 직접 스승이 했던 것과 똑같이 해 보고, 생각하고 연구하며 노력을 거듭해 가는 수밖에 없다 … 스승이 가르쳐 주는 것을 제자가 기다렸다가 그것을 배운다는 수동적인 방법은 아니다 ..  (184∼186쪽)


 자전거 타는 어린이는 자전거 타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린이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동무들을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어린이는 세상사람과 이웃 모두를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줄 어른으로 커 단다고 느낍니다. 어린 나날부터 거짓말이 아닌 참말로 생각을 나누고 키운 사람일 때라야, 뒷날 정치꾼이 되든 공무원이 되든 지식인이 되든 무엇이 되든, 거짓말 아닌 참말로 사랑과 믿음을 고이 베풀 줄 알게 된다고 느낍니다.


 (2) 맞고 자란 어린이는 때리는 어른이 된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교사한테 흠씬 두들겨맞았다고 떠올립니다. 더 어릴 적에도 어머니한테 얻어맞지 않았으랴 싶으나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초등학교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릅니다만, 제가 떠올리는 1980년대 인천 국민학교는 1학년이고 6학년이고 가리지 않고 머리박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나무막대기나 밀걸레막대가 부러지도록 두들겨팼습니다. 손바닥이나 종아리는 아주 가벼운 매질이었고,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놓고도 ‘평등’이라 할 분이 있을까 궁금한데, 매질 앞에서는 늘 평등이기는 했습니다. 다만, 공부 좀더 잘하는 아이와 학교 임원인 아이와 뭔가 있는 아이를 빼놓고는.


.. 근대가 되면서 아이와 부모는 학교 시간에 맞춰 자신들의 생활시간을 결정해야 했다 … 지금의 학교 수업은 일제수업 시스템으로 등교 시간이 제각각이면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다 … 일제수업은 가르치는 쪽이 정한 커리큘럼을 따른다. 그것은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반면, 아이의 학습을 아이 자신이 아니라 가르치는 쪽이 정하게 된다 ..  (33∼35쪽)


 중고등학교 때에 ‘체벌 아닌 매질’을 놓고 학급토론 비슷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 교사는 우리한테 역사를 가르치며 ‘일본사람은 조선사람을 두들겨패야 말을 잘 듣는다고 말했다’며, 이런 말이 얼마나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는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우리한테 휘두르는 매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라는 데에 한동안 몸담을 때에 선배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얼차려를 시켰고, 군대에서는 계급에 따라 아주 마땅하다는 투로 주먹다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회로 돌아와 회사에 다닐 때에는 얼차려나 주먹다짐은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푸대접이 있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욕설과 인신공격이 있었습니다.

 모습을 조금씩 달리할 뿐, 어린 나날부터 이날까지 제 둘레에는 온통 폭력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주먹질이 될 수 있고, 국가보안법이 될 수 있으며, 어처구니없는 집임자 폭리일 수 있으며, 난데없는 재개발과 철거일 수 있는데다가, 날벼락 같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될 수 있습니다.


..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익숙해진 습관으로 몸에 배인 것은 선이든 악이든 자각적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 소유한 천성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에키켄은 행동은 선천적인 천성이라기보다는 습관, 즉 생후 교육에 의해 몸에 배는 것이 많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는 분명한 자각 없이 이루어지는 모방과 숙달의 과정이야말로 인간 형성의 가장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했다 … 아이에게 부모는 최초이자 최대의 환경이지만,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 인적 환경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본다면 부모가 자각하여 스스로의 행동양식을 규제하면서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150, 156쪽)


 크고작은 폭력에 길들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폭력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들은 우리를 억누르는 힘에 눌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보다 여린 이웃을 억누릅니다. 우리보다 고단한 이웃을 들볶습니다. 우리보다 낮아 보이는 이웃을 등처먹거나 울궈먹습니다. 우리보다 못 배운 이웃을 깔보고 업신여깁니다.

 오래도록 폭력에 길들다 보니, 주먹질 폭력과 입질 폭력과 따돌림질 폭력 따위가 수없이 판치고, 이러한 폭력을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차곡차곡 물려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엄마 말 안 듣는다’느니 ‘아빠 말 안 듣는다’느니 하면서 아이 스스로 싱그러이 피어나는 꽃망울을 밟거나 찢거나 꺾고야 맙니다.

 왜 아이들은 ‘엄마 아빠 말을 고스란히 들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엄마 말이든 아빠 말이든 ‘옳은 말이면 옳게 받아들이고 그른 말이면 그릇되었기에 바로잡거나 고쳐서 곰삭일’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가요. 왜 아이들은 어느 누구 말이라 하든 ‘아름다운 말과 살가운 말을 찾아나서거나 알아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가요.


.. 커다란 책가방과 다 들어가지 못한 교재를 몇 개의 손가방에 나누어 담고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들을 밑으로 축 늘어뜨린 채 등하교하는 조그마한 일본의 초등학생들을 보라 ..  (201쪽)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몰아놓고 가르치자니 교과서를 쓰게 됩니다.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쓰자니 시험점수에 목매달게 됩니다. 시험점수에 목매달게 하자니 교칙을 세우고 교복을 입히고 도덕을 가르치면서 국민의례를 시킵니다. 이러는 동안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한 가지 틀에 얽매이게 됩니다. 홀가분한 삶터를 못 보게 됩니다. 정답이라는 올가미에 갇힙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과 슬기를 모두어 어깨동무하는 물줄기를 못 보고야 맙니다.

 그런데 그토록 아이들을 다잡아 놓는 교과서는 고등학교를 마치기만 하면 쓰레기로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하느님처럼 떠받들리던 교과서이건만, 입시를 치르고 나면 헌신짝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옳고 바르며 알맞다는 이야기를 담아 아이들 누구한테나 가르쳐야 하는 책이 교과서라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성경 하나를 온삶 바쳐 거듭 읽듯, 교과서 또한 내 아이한테까지 물려주면서 가르칠 만한 앎이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결국 대학 관계자는 물론 국민 대다수는 내심 지금의 대학 입시와 그것을 위한 공부를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 현행 입시는 학습 능력이 높은 학생을 선택하는 시스템으로서 매우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 수험 세계는 경쟁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서 습득하려는 실력이란 수험 실력 외에는 없다. 그 실력의 배후에 사상적인 의미 부여 같은 것은 없다. 일류 대학에 합격할 정도의 공리적인 목표가 설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일본의 학교 교사는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아이들 측에서 보면 교과서를 배우는 일이 목적이므로 교사는 그를 위한 가이드에 지나지 않는다 … 사실 교사도 ‘교과서를 가르치는’ 편이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 그러나 결국 그것이 교사를 나타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  (205, 222, 229∼232쪽)


 맞고 자란 어린이는 때리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옳게 배우며 자란 어린이는 옳게 가르치며 나누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이 배우며 큰 어린이는 아름다움에 사랑과 믿음을 담뿍 싣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제길과 제자리를 어릴 때부터 스스로 찾도록 배운 어린이는, 어른이 된 다음 맑은 윗물이 되어 아랫물 또한 맑게 흐르도록 뒷배하는 착한 이가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건 안 보내건, 우리들 어른 된 사람한테 주어진 몫이라면, 우리 어른 스스로 올바른 어른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아이들 스스로 올바른 어린이로 살아가도록 손을 맞잡는 데에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른을 보고 배우는 어린이일 테니까요. 어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흉내내는 어린이요, 어른들이 나누는 사랑을 고스란히 따르는 어린이이며, 어른들이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사랑하면 아이들 또한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크고자 하는 어린이일 테니까요.


 (3)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책


 일본에서 나올 때 붙은 책이름은 “배우는 자의 권리를 찾아서”였다고 하는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가 굳이 일본사람이 예부터 공부해 온 길을 알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우리 길을 찾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는 “배우는 사람이 누릴 권리를 찾는” 일은 틀림없이 값이 있다고 느끼면서 집어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교육이 뒤틀렸다고 느낍니다만, 일본 또한 일본 스스로 일본 교육이 뒤틀렸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 책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는 우리한테 우리 앞길을 살며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습니다.


.. 서점의 앞쪽에는 언제나 수험 참고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험 참고서는 전부 자습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시험 공부에서 강조되는 것은 오직 텍스트를 반복하는 학습이다 ..  (203쪽)


 저는 일본에 꼭 한 번 가 보았습니다. 저한테 돈이 있다면 몇 번 더 가 보고 싶은 일본인데, 둘레에서 일본을 다녀온 분들 말씀을 듣거나 제가 보았던 일본을 떠올리면, ‘일본 책방에서 수험 참고서는 그리 안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를 쓴 분은 “서점의 앞쪽에는 언제나 수험 참고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기는, 이렇게 말할 까닭이 있습니다. 일본 교과서를 보신 분이 있는가 궁금한데, 일본은 교과서를 아주 빼어나게 잘 만듭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가장 재미없고 따분하게 만든 책이 일본 교과서’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교과서는 어떠하느냐? 일본 교과서 발가락 때만큼도 좇지 못합니다. 일본사람이 한국이라는 나라 교과서를 들여다보아야 ‘일본 교과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터이나, 일본사람들은 제 나라 일본이라는 ‘앞선 책나라’를 헤아린다면 ‘교과서를 너무 못 만든다’고 늘 뉘우치면서 고쳐 나가려 합니다. 이와 달리 우리 나라 한국에서는 ‘교과서를 제대로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조차 헤아리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가 또한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엉터리 줄거리를 담는다 하여도 한결 슬기롭고 알차고 싱그럽게 엮어내는 손길마저 없어요.


.. 모두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일본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신체상의 구제를 사소한 부분까지 정해 놓고, 교칙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복을 정하고, 일정한 두발 형태를 강요하고, 혹은 여학생의 치마 길이나 주름의 숫자, 남학생의 바지 형태나 길이, 신발이나 양말의 형태, 색깔 등을 규제하고 있다 … 의복이나 머리 모양 등은 본래 아주 기본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대한 통제가 교칙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성 존중 교육을 추구하면서 이와 정반대로, 학교생활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용인되고, 그것을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 단체수업의 방법으로 아이들 수십 명의 개성을 어떻게 육성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그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서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도로 규정된 우연적인 관계이다 ..  (242∼243, 256쪽)


 아이들한테 사입혀야 하는 학교옷이 수십만 원이라면서, 학부모 된 분들은 한결같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러면,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안 입히면 됩니다. 학교옷을 왜 입혀야 하느냐고 따져야 하며, 꼭 학교옷을 입혀야 하면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옷을 나눠 주고 입도록 하라고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어버이도 아이들한테서 학교옷을 벗기지 않습니다. 먹혀들지 않을 소리로 생각하기도 할 테지만, 미운털 박히기 싫을 뿐더러 아이들 스스로 ‘예쁘고 멋지고 다리 길어 보이는 이름난 회사’ 학교옷을 입고 싶어합니다.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입히고, 머리길이를 따지며, 신발이 어쩌고저쩌고 배지와 이름표가 이러쿵저러쿵하는 나라에서는 자유란 없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일찌감치 그 푸른 나날을 학교에서 지내는 사이 ‘빼앗기는 자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유뿐 아니라 민주와 평화와 평등과 창조와 통일을 빼앗기고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더욱이, 아이 부모 된 분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이토록 한 나라 사람들 모두를 바보로 삼으려고 하는 ‘겉보기 자유민주주의’ 나라는 일본하고 한국 두 나라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아이들 옷을 ‘틀에 가두어’ 놓겠습니까. 세계 어느 겨레에서 아이들 몸을 ‘틀에 매어’ 놓겠습니까.


.. 물론 번교에 따라 작은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영민함과 둔함의 차가 있었고 진도도 다르고, 사용하는 텍스트나 학습 부분도 다르기 때문에 일제수업은 불가능했으며 단시간의 개별 지도와 혼자 행하는 비교적 장시간의 자습 활동이 기본이었다. 이 점은 어떠한 번교라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학교처럼 연령, 학년에 따라 정해진 일정한 커리큘럼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람마다 이해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각자의 속도로 학습하며, 차이에 따라 개별의 학습과 지도가 부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75쪽)


 앞으로 누군가 쓸는지 모르는데, “한국사람은 어떻게 배웠을까?” 같은 책이 나올 날을 기다려 봅니다. 그리고,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에 걸쳐, 우리들 한국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도록 길들여지는가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 줏대를 찾거나 키우면서 바르고 곱고 맑은 사람이 되자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다룰 만한 우리 이야기책을 기다려 봅니다. ‘의무 교육’이 아닌 ‘자유 교육’으로 우리한테 ‘의무’가 아닌 ‘자유’를 심는 배움길에서 우리 손으로 새 세상을 힘차게 가꾸고 일으킬 빛줄기가 우리들 누구한테나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4342.5.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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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카르페디엠 12
토마스 야이어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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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을 전쟁 미치광이로 만든다
 [잠깐 읽기 32] 토마스 야이어,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책이름 :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글 : 토마스 야이어
- 옮긴이 : 신홍민
- 펴낸곳 : 양철북 (2009.3.25.)
- 책값 : 9800원



 (1) 제도권학교와 정치


 4월 29일 국회의원 재보선을 마치면서, 인천 부평을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뽑히고, 울산 북구에서는 진보신당 후보가 뽑혔습니다. 인천에서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시민들한테 지난 1월 편지를 띄우며 ‘새 차를 살 때 대우 자동차를 사면서 지역경제를 살려 주십시오’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자동차 공장 한 곳이 지역살림을 크게 움직이는 셈이라 할 테지만, 이 편지를 받아 읽는 마음은 가볍지 못했습니다. 왜 자동차 공장을 살려야 지역살림이 산다고 하는가 싶어서. 기름을 먹는 자동차는 석유값이 끝없이 오를 뿐 아니라 오래잖아 석유가 마르면 그예 깡통이 되어 버릴 텐데, 더구나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동안에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공기를 더럽히는데, 지역살림 살리기를 오로지 ‘대우 자동차 한 대 더 사며 살리기’로만 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 “우리 아버지 머리속에는 미식축구밖에 없어. 우리 아버지에게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세상의 중심이야.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남편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따라. 어떤 때는 우리 어머니가 앨라배마의 촌구석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아버지하고 결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  (15쪽)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뽑힌 조승수 님은 진보신당으로서는 첫 번째 의원입니다. 꼭 어느 정당 첫 번째 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정치밭에 진보정당 사람이 발을 디딛기 어려운 모습을 돌아본다면 좀더 뜻있게 이와 같은 소식을 다루어 줄 법하지만, 옆지기 식구네 집에서 모처럼 텔레비전으로 이런 소식 저런 소식 찾아 들어 보아도 딱히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인터넷이나 종이신문 소식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온통 ‘여당-야당’이라는 두 갈래길만 있고, 두 갈래길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학입시를 앞두고 ‘대학교 가는 아이들’만 신나게 다룰 뿐, ‘대학교 안 가는 아이들’은 거의 한 번조차 다루지 않는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잡지 들은 ‘수험생 아이를 둔 독자님’을 생각한다며 ‘수능 문제’를 따로 찍어서 나누어 주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꽤 넓은 자리를 내주며 입시 이야기를 실어 놓습니다. 그러나 입시가 아닌 ‘초중고등학교 삶’을 다루는 일이란 없으며, ‘대학교 안 가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딜 청소년한테 도움이 될 삶’을 다루는 일 또한 없습니다.


.. “나, 린다 코르먼은 모든 적군에 맞서 미합중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린다는 의식에 맞추어 진지하게 대령의 말을 복창했다. 심지어 장교가 금빛 소위 계급장을 건네주며, “이 세상 끝까지 행운을 빈다.”고 했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린다는 멋진 외출복 차림을 한 자기를 보고 몹시 자랑스러워 할 아버지를 생각했다 ..  (54쪽)


 열네 살 처남은 다섯 해 뒤면 선거권을 받습니다. 어쩌면, 처남한테는 어느 날 갑자기 선거권이랍시고 뚝 떨어지는 셈일 텐데, 그때까지 학교나 집에서나 ‘정치란 무엇이고 선거란 어떤 일인지’를 제대로 배울까 궁금하곤 합니다. 아니, 가르칠 일이란 없을 테지요. 학교 공부 시키는 데에도 바쁠 테니까요. 처남한테는 학교 공부보다도 놀기에 바쁘기도 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문이든 잡지든 다른 어느 매체이든, 아이들한테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이야기만 들먹일 뿐입니다. 적어도 ‘대학교에 들어갈 아이들이 정치 바라보기’를 어찌 해야 하는가를 들먹이지도 못합니다. 대학생이 되면 대학 공부를 비롯해 동아리라든지 학생운동도 있기 마련이지만, 토익-토플, 학과공부, 사랑, 놀이를 빼고 이 아이들한테 세상과 사회와 나 스스로를 읽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조금도 들먹이지 못합니다.

 하기는. 언론 탓을 하기 앞서 어버이 탓을 해야 할 노릇이요, 학교 교사 탓을 해야 할 노릇입니다만. 제도권교육 틀거리를 탓할 노릇이요, 교과서를 탓할 노릇이지만.


.. 데비는 지미가 어떤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오래전부터 데비는 종종 학교를 더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한껏 차려입고 하루 종일 ‘미식축구팀의 화끈한 남자아이들’과 외모와 옷에 대해서 수다를 늘어놓는 치어리더들을 만날 때는 더 그랬다 ..  (153쪽)


 지금은 어떠한 과목으로 이름이 바뀌었을는지, 또는 그대로 과목이 남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정치ㆍ경제’라는 과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과목 이름은 이러하여도 ‘고등학생인 제가 겪는 이 나라 정치와 경제’를 곧바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고등학생인 우리한테 선거권이 있다 할 때에 선거 후보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공약을 내놓는지를 알 수 없었고, 안다 할지라도 이런 발자취와 다짐을 어떻게 지켜보아야 할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상은 우리들(고등학교를 마칠 사람)을 교과서 지식으로만 머리가 가득 차도록 하고 나서 사회로 내보낸다고 해야 할까요. 기껏 아는 재주라 해 보았자 시험풀이 하는 재주요, 몇 가지 자질구레한 지식쪼가리뿐입니다. 실업계학교는 인문계학교하고는 달라 바로바로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우리들이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할 수 있는 일이라 한다면 찻집에서 물잔 나른다거나 공사판에서 잔심부름 하기쯤? 이를테면 삽질 호미질 낫질조차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아니, 학교에서 이러한 일매무새를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세상 보는 눈을 슬기롭게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거들지 못하고,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을 우리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일솜씨를 하나하나 가다듬도록 북돋우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우리들을 ‘책상물림 지식인’으로만 키우는 공장하고 같다고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 밤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물었다. “베트남은 어땠니?” “더웠어요.” 린다가 대답했다 ..  (307쪽)


 대통령을 뽑는 1992년 선거를 지켜보던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들한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정주영 백기완 이러한 분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해 줄 만한 교사는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저마다 어찌 다른 공약을 내놓았는지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란 고작 ‘선거에서는 가장 나쁜 사람을 하나씩 덜어내어 마지막 사람을 뽑아야 한다’에 머물 뿐이었고, 그렇게 덜어낼 ‘나쁜 사람’이 누구이냐고 물으면 ‘모두 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비판적 지지’라지만,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비판’은 없이 ‘지지’만 있는 채로 ‘1번 찍기’와 ‘2번 찍기’에 그치도록 하는 우리네 학교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르는 일이긴 하나, 아이들을 낳은 어른이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키우는 어른 모두 ‘슬기롭게 비판하는 정치눈’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아이들 앞에서도 옳고 바른 눈썰미를 기르도록 못 가르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맞고 자라던 교사가 오늘날 학교에서 때리며 가르치는 쳇바퀴가 이어지듯, 어릴 때부터 정치눈을 기르지 않으며 얕은 생각에 허우적거리던 어른이 오늘날 아이들을 당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들이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2) 전쟁 미치광이 미국을 이야기하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거짓되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키면서 허울좋은 평화로 사람들 눈을 속이는가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꾼과 군인이 말하는 평화란 ‘돈많은 미국 시민권자 평화’일 뿐, ‘미국사람 모두가 누릴 평화’조차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1등으로 세계경찰 노릇을 해야 할 미국이 지구에서 지켜 주는 평화’이지, ‘1등이나 꼴등에 매이지 않으며 스스로 조촐하게 살림을 꾸리는 크고작은 뭇나라마다 애틋하게 어깨동무하는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싸움터에서 총에 맞아 죽는 군인한테 훈장을 주는 미국입니다. ‘평화를 지키려 했’기 때문에 상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평화를 지키려다가 다치거나 죽었으니 ‘동료 군인을 비롯한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적을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숱한 주검과 핏물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싸움이 벌어졌고, 이 싸움은 누구를 지켜 주는 일인가’는 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원수! 돌격!’ 두 가지만 생각하게 됩니다.


.. “당신은 악마예요.” 린다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잔인한 악마! 당신들이 우리 병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 눈으로 봤어요.” 린다는 자기가 수술한 수많은 부상자들과, 희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분류해 옆으로 제쳐 놓았던 병사들을 생각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우리 마을을 파괴하고, 우리 식구들을 살해했는지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그 사람(베트콩)이 비난하듯 물었다. “미군 장군들은 딴소리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가 아니에요.” ,,  (225쪽)


 공산주의가 퍼지지 않도록 막는다고 했지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를 사람들한테 옳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이기는 하나, 사회주의란 참말로 어떠한 틀거리인가를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라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있을 뿐 아닐, 집회ㆍ시위ㆍ결사 같은 자유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한테 재갈을 물리고, 제 생각과 뜻을 펼칠 자유란 민주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녀는 평등해야 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평등해야 하며, 학력에 따라 일삯을 달리 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언제나 말에서 그칩니다. 우리 나라에는 자유도 없고 민주도 없고 평화도 없으며 평등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길들어 버립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되고 회사 정규직이 되면, 그만 제 이웃과 동무를 싹 잊습니다. 금을 그어 놓습니다. 울타리를 쌓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미국은 총칼을 들고 힘여린 나라에 군화발로 쳐들어갔지만, 우리들은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하는 짓에 손뼉을 치고 나팔수가 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총칼만 안 든 전쟁 미치광이 짓’을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 미 공군이 작전을 도맡아 이 지역에 있는 베트콩의 보급로에 샅샅이 고엽제를 뿌렸다.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벌건 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231쪽)


 그런데, 이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이 나라 청소년 가운데 얼마나 속속들이 알아보거나 느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어떠한 나라인지 하나하나 배우지 못할 청소년들 아닙니까. 한국 사회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는 눈길조차 안 둘 뿐더러 슬기롭고 바르게 가르치는 어른이 없는 우리 청소년들 아닙니까. 청소년들한테 보여지는 이야기란 〈꽃을 든 남자〉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이 이야기에 똑같이 얼이 빠져 버리지 않습니까. 〈꽃을 든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꽃을 든 남자〉에만 묻히며 우리 눈에 흐리멍덩해지고 우리가 걸을 길과 우리 이웃이 걷는 길을 모두 놓쳐 버리면 우리 삶이 어찌 되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 군은 부상병들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았다. 여섯 달이 지난 뒤에도 건강이 회복되지 못한 사람은 퇴원 조치되어 친척과 친구들 손에 맡겨졌다. 그 사람들은 팔다리가 없고, 목 아랫 부분이 마비되고, 급히 임시방편으로 꿰맨 탓에 얼굴과 상처 부위가 기형이 되고, 자기 이름조차도 모르는 정신 장애인이 된 절망스런 남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베트남에서 청춘을 잃고, 무기력한 불구자가 된 20대 남자들이었다 … 그 남자들은 따뜻한 정을 절실하게 바랐지만 받지 못했다. 아들이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마치 무슨 치욕이라도 되는 듯, 부모들이 거의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들과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그 남자들 곁을 떠났다 ..  (338∼339쪽)


 《그리운 매화향기》(2001)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우리 삶터를 어떻게 옥죄었는가를 깊이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2008)이라는 어린이문학이 하나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를 잊고 지내던 우리들이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보가 되어 무너졌는가를 너른 눈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2003)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에는 가해자 나라와 피해자 나라가 나뉘지 않고, 힘센 이가 힘여린 모두를 찍어누를 뿐임을 환하게 밝히는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배경 지식’이 좀 모자라거나 없더라도 작품으로 말하는 이야기에 어렵잖이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우리네 아이들한테는 좀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경 지식’도 있어야 할 테지만, 문화와 삶자락이 아주 다른 서양 청소년 눈길에 따라 그려지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흐르는 빛줄기는 틀림없이 ‘전쟁이 싫고 평화가 좋다’입니다만, 그리고 이 빛줄기가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우리 청소년과 어른 들한테도 고운 목소리로 다가오겠지만, “미국은 말 그대로 전쟁 미치광이 나라이지. 자, 그러니 그 미치광이 짓이 무언지 차근차근 살펴볼까?” 하면서 우리 목소리와 눈높이와 마음결에 알맞게 맞춘 작품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어 주는 어른들이 있으면 얼마나 더 기뻤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번역 백 권이 나오는 동안 좋은 창작이 한 권이라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2.4.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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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가방 일공일삼 8
리지아 보중가 누니스 글, 에스페란자 발레주 그림, 하윤신 옮김 / 비룡소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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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1 ― 가난한 사람만이 책을 읽고 사랑한다
 : 리지아 누네스, 《노랑가방》



- 책이름 : 노랑가방
- 글 : 리지아 누네스
- 그림 : 하윤신
- 옮긴이 : 길우경
- 펴낸곳 : 민음사 (1991.3.20.)



 (1) 나는 빈민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빈민(貧民)’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가난한 백성”이라고 나옵니다. ‘영세민(零細民)’이라는 낱말도 찾아봅니다. 이 낱말은 “수입이 적어 몹시 가난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사람들이 빈민과 영세민을 말할 때에는 조금 다른데, 빈민보다는 영세민을 조금 낫게 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느냐 싶고, 빈민이라 하면 꼭 구질구질하거나 꾀죄죄하거나 변두리로 내몰려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빈민이든 영세민이든 자기도 모르게 세금을 냅니다. 세무서에 대놓고 내는 세금은 거의 없다고 할 터이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크고작은 간접세를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땅속에 묻힐 때까지 끊임없이 내게 됩니다.

 예부터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습니다만, 가난한 사람들 누구나 “나라를 먹여살린다”면서 세금을 내고 있는데, 세금을 받아먹은 나라가 세금을 내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어딘가 잘못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그치지 않습니다. 가난이야말로 나라가 먹여살리거나 보듬어야 할 대목이고, 나라살림 북돋우기란 바로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어루만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그렇담 왜 여자 친구가 아니라 남자 친구를 생각해 냈지?” “왜냐면 여자보다는 남자인 게 훨씬 더 좋기 때문이에요.” 오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니?” “그래요, 정말이에요. 오빠 같은 남자들은 나 같은 여자들이 할 수 없는 것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보세요. 학교에서 어떤 놀이를 할 때도 대장을 뽑으면 늘 남자애들이에요. 집안의 가장도 남자고요.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사람들은 나보고 남자애들 운동이래요. 내가 연을 날리고 싶어해도 마찬가지고요. 나 같은 여자애들은 바보가 될 때까지 어리석게 굴 수밖에 없어요. 모두들 늘 오빠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고 책임을 짊어지게 될 사람이라고 하고― 간단히 말해서 오빠가 모든 걸 갖게 될 거예요. 모든 걸. 결혼하는 것까지도. 식구들은 오빠가 스스로 결정하기를 기다리죠. 식구들은 늘 오빠가 우리 대신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를 바래요. 한 가지 알려 드릴까요? 난 소녀라는 게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  (20∼21쪽)


 엊저녁,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빈민’으로 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뇝니다. 저 스스로 도시에서 빈민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민인 주제(?)에 글도 쓰고 사진도 찍습니다. 그러나 빈민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부자인 사람은 글을 쓸 일도 사진을 찍을 일도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배가 부르니 배 두들기며 놀게 된다고 느끼며, 배가 고프니 책을 펼치게 된다고 느낍니다.

 가난하게 배우는 학생이 책을 펼치고, 넉넉하게 배우는 학생이 술잔을 붙듭니다. 가난하게 사는 어른이 좁은 방구석에서 아이와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며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고, 넉넉하게 사는 어른이 아이 손을 잡고 고기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가용 타고 아파트로 돌아옵니다. 가난하게 태어나 젊음을 보내는 동무가 세상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넉넉하게 태어나 젊음을 누리는 동무가 사랑놀이를 신나게 하고 또 합니다. 가난한 마음이기에 절집에 가고 예배당에 갑니다. 가난한 생각이기에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고운 말씀을 차근차근 받아먹습니다. 가난한 넋이기에 누구 앞에서라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서 말을 낮춥니다. 가난한 몸이기에 두 발을 땅에 디디고 두 손으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칩니다.


.. 난 집으로 돌아와서, 노랑가방 속에 물건들을 정리해 넣었다. 나의 이름 주머니를 정리해서 아코디언 주머니 속에 넣었고, 긴 주머니는 그 안에 숨겨 둘 날씬한 것을 찾을 때까지 비워 두기로 했다. 애기 주머니 속에는 내가 길가에서 주운 옷핀을 넣었고, 단추 있는 주머니 속에는 집 정원을 그린 그림과 다른 그림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넣었다. 지퍼 달린 주머니 속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집어넣고 잘 잠그었다. 또 하나의 지퍼 달린 주머니 속에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더 깊숙히 넣어 두고 잘 잠그었다. 마지막 남은 단추 달린 주머니 속에는 소년이 되고 싶은 욕망을 넣었다(그 욕망은 너무 커서 단추 닫는 데 애를 먹었다) ..  (39쪽)


 옆지기와 함께 밥을 먹고 아기한테 옷과 밥과 집을 내어주면서 우리 살림살이로 이 동네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돌아보면 늘 아찔합니다. 그러나 용케 살아갑니다. 동네 도서관도 용케 열어 놓고 있으며, 없는 살림에도 새롭게 사들이는 책은 꾸준합니다. 없는 살림에도 몇 군데 시민모임에 뒷배하는 돈을 내고, 없는 살림에도 이웃한테 책 선물을 하며, 없는 살림에도 생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합니다.

 그러나, 없는 살림이었기 때문에 더 알아보게 됩니다. 없는 살림이기 때문에 가림 없이 먹어대지 못합니다. 없는 살림이라서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은 돈 한푼 함부로 못 씁니다. 이 한푼을 어디에서 써야 할는지, 이 한푼으로 무엇을 해야 할는지, 이 한푼을 손에 쥐기까지 어떤 땀을 흘려야 했는지를 곱씹게 됩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틀림없이 책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반드시 자전거를 타지 않았습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꼭 고등학교만 마칠 생각이 아니었을 터입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굳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뿌리내리며 살 까닭이 없습니다.

 없었기에 책방을 찾고, 없었기에 더 바지런히 책을 넘겼으며, 없었기에 더욱 두 다리와 자전거에 기댄데다가, 없었기에 대학교육이 내 삶에 도움될 일이 없다고 느껴 선선히 멀리할 수 있었습니다.


.. “내가 이기는 걸 너에게 보여주려고. 그것도 쉽게 이기는 걸.” “그럼 우리가 벌써 한 판 대결해서 네가 이긴 걸로 하자.” 그는 맹렬이의 날갯죽지를 쳐들고 소리쳤다.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맹렬이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넌 져도 괜찮아?” “물론이지.”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지?” … “맹렬이는 싸움밖엔 생각하는 게 없어. 정말로 사람들이 맹렬이의 다른 생각들을 꿰매 버린 걸까?” ..  (72, 76쪽)


 “최종규 씨는 영세민이 아니에요. (철거민도 아니고) 빈민이에요.”

 이 말을 듣고 제 삶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제가 사는 골목동네는 ‘재개발’이 아닌, 그리고 ‘재생사업’조차 아닌 ‘도시정화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헐리게 됩니다. 아마도. 2013년까지.

 2009년까지 우리 골목동네를 허물고 싶던 인천시 공무원과 개발업자였으나, ‘2009 세계도시축전’을 치를 돈이 모자라 어영부영 ‘도시정화사업’이 늦춰지게 되었습니다만, 2014년 아시아경기를 치를 때까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를 비롯한 이웃 빈민을 싹쓸이하듯 인천에서 내쫓고 싶다고, ‘도시재생국장’이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또박또박 힘주어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저나 이웃 빈민은 얌전히 있지 않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면서 따집니다. 도시재생국장은 조용히 우리들 빈민 외침을 듣다가, 도시정화사업이 끝나면 처음 이곳에 살던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 살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영세한 주민이 재정착을 할 수 있게 돈을 쓸 생각이 없다고 다시금 또박또박 힘있게 말합니다.

 그 거침없는 또박또박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구나, 저 도시재생국장이라는, 이름도 참 그럴싸하게 잘 지은 ‘도시재생국’이라는 관공서 부서 우두머리인 저분은, 책을 안 읽는 분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면서, 책을 안 읽는 사람하고는 아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잇따라 듭니다.

 너무 배부르게 살고 있기에, 너무 넉넉하게 살고 있기에, 너무 모자람이나 아쉬움 하나 없이 살고 있기에, 너무 넘치게 살고 있기에, 너무 많이 벌고 너무 많이 쓰며 살고 있기에, 자기가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달삯을 받고 있는 줄을, 그리고 우리 골목동네 허무는 돈을 바로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하는 일임을,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깨닫습니다. 톨스토이 님이 왜 소설쓰기를 하다 말고 《국가는 폭력이다》와 같이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인 책을 썼는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새삼 깨닫습니다.


.. “넌 전에는 뭘 했니?” 그는 핀 끝으로 헝겊 위에 금을 그으며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었어.” “그래?” “난 공장에서 나올 때 포장이 잘못되었어. 그래서 남들과 같이 있으려고 온힘을 다해 끝을 붙잡고 있었지만 결국은 길가에 떨어졌어.” “그런데 넌 다시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몸을 일으켜세울 때마다 사람들이 내 위를 밟고 지나갔어.” “아무도 널 보지 못했단 말야?” “사람들이 날 알아보았을 땐, 난 이미 온통 녹슬어 있었어. 그래서 아무도 날 가지려고 하지 않았어.” ..  (56쪽)


 믿음이 없으니 절집을 크게 짓고 탑을 높이 세웠음을 바야흐로 깨닫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예배당을 크게 짓고 십자가를 높이 올림을 바야흐로 깨닫습니다.

 성철 스님 법어집을 읽다가, 성경책을 읽다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라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는데, 믿음이 여리니 우찌무라 간조라는 이가 무교회주의를 말하고,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이가 빈민굴에서 어깨동무하는 삶을 진보 지식인한테 말할 때, 제대로 알아들은 이가 없었다고 깨닫습니다.

 지난날 절집은 오늘날 문화재가 되는데, 오늘날 예배당은 앞으로 백 해쯤 뒤에는 멋들어진 우리네 문화재가 되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벌써부터 수많은 성당은 ‘백 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지역문화재가 되어 가고 있어요.


.. “아주머니는 알베르토가 하는 건 뭐든지 재미있다고 생각하시죠? 그애가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런 짓을 해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시겠죠.” 언니가 눈을 찌푸렸다. “아주머니께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아라.” “아주머니는 알베르토가 내게 무슨 짓을 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왜 아주머니께 신경을 써 드려야 해요?” “라켈!” “언니는 왜 늘 아주머니께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라켈!”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왜 아주머니에게 늘 아첨을 떨지?” “라켈, 그만두라고 말했잖아!”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부자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그만두지 못하겠니.”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늘 선물을 주니까 그런 거지, 그치?” “그∼만!!!” ..  (95쪽)


 둘레에서 저보고 ‘돈 좀 많이 벌어야 아기도 나중에 커서 아빠 미워하지 않지.’ 하고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싱긋 웃으면서 아무 말을 않곤 하지만, 때때로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고 안 벌어도 돼요. 지난번에 춘천에 나들이 다녀올 때 그곳에서 뵌 분이 우리보고 당신은 당신 아이가 어릴 적에 많이 안아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우리는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기쁨이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보람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꾸하곤 합니다.

 저로서는 좋은 하늘나라에 갈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지금 저지르는 잘못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죽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태어날 때에는 첫째로 짐가방으로 되고, 둘째로 자전거로 되고, 셋째로 고무신이 되고, 넷째로 빨래비누가 되고, 다섯째로 연필이 되고, 여섯째로 수첩이 되고, 일곱째로 사진기가 되고 …… 지금 무척이나 애먹이는 님들한테 갚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간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저로서는 마음도 생각도 말도 살림도 집도 책도 그 무엇도 넉넉해지고픈, 그러니까 부자가 되고프지 않은데, 그예 가난을 둘도 없는 벗이나 님이자 옆지기자 이웃이자 어버이자 아이자 제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살아왔고 살아갈 뿐이고 살고픈데, 가난하지 않은 삶을 꿈꾸지 않는데, 가난한 헌책방 나들이를 좋아하고 가난한 골목길 나들이를 즐기며 가난한 동무와 이웃하고 사귀면서 재미가 쏠쏠한데, 하늘나라 문은 가난한 이한테만 열려 있다고 하니, 어느 모로나 근심입니다.
 





 (2) 어린이문학 《노랑가방》이 들려주는 세상


 어린이문학 《노랑가방》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이 판이 끊어졌을까 궁금했으나, 틀림없이 어느 출판사에선가 다시 냈을 테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하니, 제 생각대로 다시 나왔으며 무척 사랑받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민음사에서 1991년에 처음 냈다가 1995년에 문예공간에서 다시 냈고, 1996년에 비룡소에서 고침판으로 해서 새 그림을 담아 거듭 펴냈습니다. 새판을 내놓으면서 글쓴이 이름을 ‘리지아 누네스’에서 ‘리지아 보중가 누니스’로 고쳐 적습니다.


.. “왜 너의 아빠가 요리를 하고, 엄마가 냄비를 고치는 일을 하는 거니?” “왜냐면 오늘 엄마는 벌써 요리를 많이 했구, 아빠는 꽤 많은 것들을 수선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난 벌써 공부를 많이 했고, 할아버지는 냄비 때우는 일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시간이 됐으니까 이제는 일을 서로 바꾸는 거야.” “왜?” “누구도 한 가지 일을 너무 오래 하지 않기 위해서지. 아무도 자기가 하는 일이 남이 하는 일보다 더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할아버지는 그럼 공부를 한단 말야?” “응.” “그렇게 나이가 드셨는데도?” …… “할아버지는 겉모습만 늙으셨어. 할아버지 마음은 늘 젊고 새로운걸.” “어떻게?” “늘 공부하시기 때문이지. 아빠나 엄마보다도 더 많이.” “부모님도 공부하시니?” “우리 집에선 누구나 공부를 해.” “언제나?” “응, 언제나 배울 게 있거든.” “각자 어떤 공부를 하라고 누가 결정하니?” “무슨 말이야?” “누가 그런 것들을 결정하니? 누가 대장이니?” “대장?” “응, 집의 대장, 가장 말이야. 그게 누구지? 아빠니, 할아버지니?” “왜 가장이 있어야 하는데?” ..  (140∼141쪽)


 《노랑가방》에 나오는 주인공 ‘라켈’은 가난한 집에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계집아이입니다. 왜 천덕꾸러기이느냐 하면 ‘사내아이가 아닌 계집아이’이기 때문이고, 형제나 식구들과는 다르게 ‘돈에 크게 욕심이 없고, 겉멋과 겉치레에는 마음을 안 쏟기’ 때문입니다. 꾸밈없는 삶을 좋아하고, 푸대접받는 작고 하찮다 싶은 물건을 아끼며, 다치거나 아픈 목숨붙이를 고이 껴안습니다. 집에서는 어느 누구하고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에 홀로 생각에 잠기다가 스스로 소설을 쓰기로 다짐을 하고, 참말 소설을 씁니다. 어쩌면 이 《노랑가방》은 동화에 나오는 라켈이 쓴 이야기가 아닐까 싶고, 글쓴이 어릴 적 삶이 꼭 라켈이라는 아이가 보낸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죄다 꽉 막힌 사람뿐인데다가 빛줄기란 하나도 없어 외로움을 느끼는 삶.

 그런데 그 괴롭고 고달프던 삶에서 조그마한 틈을 하나 찾았고, 이 틈에서 아주 조용하고 낮게 살아가는 ‘참멋’을 나누는 이웃을 봅니다. 이제까지는 오로지 슬픔과 어둠뿐이었는데, 이제부터는 한결같은 기쁨과 밝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 라켈은 어린이에서 푸름이(청소년)로 거듭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마음에 박혀 있던 선입관과 편견을 하나씩 느끼면서,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배웁니다.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배우면서, 이 즐거움을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도록 자기 매무새를 추스르게 됩니다.


.. 기쁨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로렐라이의 엄마는 정말로 여자인 것에 기뻐했다. 그리고 로렐라이는 작은 소녀인 것에 기뻐했다. 그 아이는 소녀인 것이 소년인 것만큼이나 좋다고 생각했다. 어쩜 이게 사실일까? ..  (146쪽)


 다 읽은 책을 옆지기한테 건넵니다. 옆지기가 읽고 나서는 도서관 책시렁 아주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난 다음 신나게 읽을 책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우리 살림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가난하다면 아이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읽을 책이 또 하나. (4342.2.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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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작가의 상수리 나무집 사람들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공선옥 지음, 이형진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81 ― 아픔을 먹고 사랑으로 나눈 ‘정신대’ 할머니
 : 공선옥, 《상수리나무집 사람들》



- 책이름 : 상수리나무집 사람들
- 글 : 공선옥
- 그림 : 이형진
- 펴낸곳 : 어린이중앙 (2005.5.31.)
- 책값 : 8500원



 (1) 아픔을 먹고 살아가는 할머님들


 한국땅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으로 살았던, 그러나 한국 여자였기에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국 정부에 등록한 ‘성노예 피해자’는 이백서른네 분이라 하고, 이 가운데 백 사람이 채 못 되게 살아 있다고 합니다. 성노예 피해자는 공식 집계로 잡히지 않았고, 또 나라에서 소매 걷고 찾아나서거나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는 강제징용자와 강제징병자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원폭피해자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습니다. 토지조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빼앗긴 사람들 아픔을 고이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농사꾼들 쌀을 빼앗아갈 때 굶어죽거나 굶주린 사람들 슬픔을 두루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일본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또 그 만주와 일본에서 다른 데로 보내진 사람들을 하나도 어루만지지 않았습니다.

 참을 숨기고 거짓을 드러낸다는 새 교과서가 나오는 까닭은 먼 데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바로 가까이에서 우리가 몸소 겪은 아픔과 슬픔을 아픔과 슬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껴안지 못했는데, 어찌 참다운 교과서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예 거짓스런 교과서가 나오고 아이들한테는 거짓된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가르치게 되며, 아이들 스스로 참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알아보고자 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해 보았자, 참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일러 줄 마땅한 책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도서관 가운데 책을 알뜰히 갖춘 곳이 드물 뿐더러, 이런 도서관까지 갈 겨를조차 없이 입시에 매이고 돈벌이 회사일에 얽히는 우리들입니다. 학교를 다니건 학교를 안 다니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발자국과 참모습을 알고 느끼고 새기면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 옥주가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을 때, 길거리로 젊은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관계를 끊고 살았던 일본하고 다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협정을 맺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 일본에서 돈을 받았다고 했다. 소문에는 그 돈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많은 조선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서 일을 시키고,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해서 주는 돈이라고도 했다. 일본에서 받은 돈 중에 얼마를 일본군에 끌려가 전쟁을 치르다가 죽었거나 다친 사람들을 조사하여 위로비로 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도 정신대에 끌려갔던 여자들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옥주는 동사무소에 가서 물었다. “혹시 정신대에 끌려갔다가 온 사람들에게도 나라에서 돈을 주나요?” 동사무소 사람은 옥주를 찬찬히 뜯어보다가 말했다. “아줌마가 정신대 갔다 왔소?” “…….” 옥주는 대답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동사무소 사람이 마치 나무라듯이 물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조사를 한다 해도 정신대 갔다 왔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소? 정신대는 솔직히 일본 군인의 노리개가 아니었소. 누가 알까 부끄럽지도 않소?” 옥주는 그만 동사무소 사람을 때려 주고 싶었다. 옥주가 뭘 잘못했다고 부끄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옥주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일본 군인한테 속아서 따라간 것뿐이다 … 동사무소 사람은 제 어머니나, 누나나, 여동생이나, 딸이 정신대로 끌려갔어도 노리개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  (42∼45쪽)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1982∼1993년 사이에, 우리한테 역사를 가르쳐 준 분들 가운데 ‘정신대’든 ‘종군위안부’든 ‘성노예’든 한두 마디라도 올바르게 일러 주면서 깨닫도록 했던 목소리가 얼마나 있었는지.

 글쎄, 저로서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고 떠올립니다. 스쳐 지나가는 말마디로는 들은 적 있으나 ‘시험문제에 안 나오는 이야기’라서 그랬는지, 또 우리가 그리 재미있어 하지 않을(?) 듯하다고 그랬는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운 적은 없습니다. 학교 바깥에서, 그러니까 도서관에서도 못 찾고 인천에서 크고 책 많다고 내로라하는 새책방 어디에서도 정신대 할머니를 다룬 책은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비로소 정신대 할머니들 다룬 책이 흘러나왔을 때 알아보고 깜짝 놀랐고, 그 뒤로 하나하나 살펴보고 알아가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부터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는 소설에 이르기까지, 또 《정신대실록》부터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까지, 또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부터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까지, 또 《일본군 군대위안부》부터 《위안부 리포트》까지, 샅샅이 찾고 보면 고작 열 권 남짓밖에 되지 않는 ‘성노예 피해 여성’ 이야기를 다룬 책들입니다. 제 깜냥껏 찾고 살피며 읽고 간직하고 있는 책으로, 이밖에 《증언, 여자 정신대 8만 명의 고찰》(센다 가꼬오), 《위안부》(조지 힉스), 《실록 여자정신대 그 진상》(한백흥), 《자료집, 종군위안부》(吉見義明), 《강제징병자와 종군위안부의 증언》(강용권), 《봉선화에 부치는 고백》(히노 순조, 쯔즈끼 쯔토무), 《종군위안부》(千田夏光), 《나, 내일 데모 간데이》(혜진), 《할머니 군위안부가 뭐예요?》(한국정신대연구소), 《종군위안부》(이토 다카시), 《종군위안부》(노라 옥자 켈러) 들이 있습니다.


.. 옥주는 완전히 정신을 놓아 버렸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몸을 닥치는 대로 두들겼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옥주는 안다. 그것은 분노 때문이라는 것을. 어린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나쁘다.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쁘다. 옥주는 그런 사람을 보면 분노가 일었다 ..  (92쪽)


 우리 스스로 돌아보자니 너무 괴로워 묻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되새기자니 참으로 부끄러워 덮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알아보자니 자료가 턱없이 모자라 두 손 드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가르치자니 성교육조차 제대로 안 되는 가운데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를 알지 못하는 탓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태일을 추모하고 떠올리듯, 백범을 떠올리고 되새기듯, 우리들은 우리 땅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한 가슴을 읽고 슬퍼한 마음을 헤아리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않을 수 있어야 우리 세상과 삶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잊으면서 잘못되거나 뒤틀린 쪽으로 마음이 끌리게 되고, 되새길 일을 되새기지 않으면서 엉뚱하거나 비뚤어진 샛길로 눈길이 쏠리게 되지 않느냐 싶어요.


.. “히로시마랍니다. 원자탄이 떨어졌지요. 차라리 그때 다른 사람처럼 죽어 버렸다면…….” 옥주는 혹시 아낙의 입에서 정신대라는 말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원자탄이 떨어진 히로시마라고 했다. 정신대 갔다 온 사람이건 원자탄을 맞은 사람이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정신대 갔다 온 옥주와 아낙이 다른 건, 그래도 이 아낙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비록 건강하지 못한 아이라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본 아낙이 옥주는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123쪽)


 정신대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군대위안부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때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노예란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날 이 나라 우리들과 이웃들 이야기입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내 이웃과 동무가 겪은 일이고, 내 이웃과 동무가 아니라면 내 식구와 살붙이가 겪은 일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일어나고 우리 옆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가지 못하던 때 어이없이 짓밟히면서 겪어야 한 일입니다.


.. “팔자도 내림이라, 듣자 하니 떡장수 할멈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하더니 그 딸은 또 미군 위안부라. 모녀가 팔자도 기구하네.” 그러면서 사람들은 또다시 왁자하게 웃어댔다. 시장 사람들은 영희가 미군 부대 여자라서 더럽다고 한다. 한국사람과 다른 새까만 아이를 낳아서 영희는 사람들에게 더 손가락질을 받는다. 옥주도 안다. 영희가 말 안 해도 옥주는 이미 영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을 다 안다. 영희가 미군 부대 여자였다는 것을 옥주도 알고 용화도 알고 길수도 안다. 알아도 모른 척했다. 아니, 아니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영희가 왜 더러운가. 영희는 절대로 남한테 못살게 굴거나, 남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남을 욕하거나, 남을 속여먹거나 하지 않았다. 영희는 비록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송희를 낳았고, 송이를 키우려고 노력하고, 송이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  (139∼140쪽)


 한미자유무역협정은 하루아침에 터져나오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나 4대 강 정비라는 토목일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한다는 역사왜곡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저지르는 역사왜곡은 몇몇 사람 손으로 일으켜지지 않았습니다. 이어지지 않은 일이란 없으며, 얽히지 않은 일이란 없습니다.

 성노예 피해자를 지켜 주지 않는 나라에서는 원폭피해자 1세뿐 아니라 피해 2세와 3세도 끌어안지 못합니다. 원폭피해자를 끌어안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재일조선인과 재러조선인과 재중조선인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재외국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는 이 나라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를 돌보지 못하며, 이주노동자를 돌보지 못하는 나라는 노동자를 보살피지 못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 보금자리를 흔들리게 합니다.

 나라를 일구는 노동자(와 농사꾼 모두)를 땀흘리는 보람으로 갚음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지지 않기 마련이고,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지지 않는 마당에 정치가 정치답거나 경제가 경제다울 리 없습니다. 정치가 정치답지 않은데 신문이 신문다울 턱 없으며, 방송이 방송다울 턱 없습니다. 신문방송이 옳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가운데 사람 삶터에다가 자연 삶터는 제다움을 잃고 무너지게 되고, 사람과 자연이 사람 그대로 자연 그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판에 책이 책다울 바탕은 서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성노예 피해 여성 이야기를 살피지 못하는 뿌리는, 또 이와 같은 이야기책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바탕은, 또한 이런 책이 가까스로 한두 권 나와도 거의 알려지지 못할 뿐더러 읽히지도 못하는 흐름은, 오늘날 우리 나라를 아주 단단히 휘어감고 있습니다. 정신대 할머님들이 850번째 수요집회를 넘기고 900번째 수요집회를 넘기며 1000번째 수요집회에 이르도록 목숨을 다부지게 이어나가면서 목소리를 낸다 하여도, 우리 사회 틀거리는 이분들과 우리들 모든 밑바닥 사람들 목소리를 귀담아듣거나 받아들일 만한 매무새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이런 매무새를 갖추고자 애쓰지 않습니다.


 (2) 어린이책으로 읽는 ‘정신대 할머니’ 이야기


 소설쓰는 공선옥 님이 《상수리나무집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책 하나 써냈습니다. 써낸 지 벌써 네 해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는 아픔이란 아픔은 빠짐없이 온몸으로 겪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는 상수리나무집 이야기입니다.

 상수리나무집 임자는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된 점쟁이 할머니입니다. 점쟁이 할머니는 참으로 오랫동안 혼자 차려 먹는 밥상이 외로워, 자기마냥 외로운 정신대 할머니인 옥주 할머니를 받아들입니다. 점쟁이 할머니와 정신대 할머니 두 분은, 아프고 힘든 나날을 함께 겪어내다가 자기들과는 사뭇 다른 아픔을 안고 살던 장님 아버지와 어린아이를 받아들이고, 또 떠돌이 개를 받아들인 다음, 양공주 노릇을 했던 아줌마와 살갗 까만 어린아이를 마지막으로 받아들입니다.


.. 아이 엄마는 마음이 많이 다쳐서 이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다친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다친 사람 스스로 열기 전에는, 다친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여는 데 다른 사람은 그저 도와줄 수 있을 뿐 ..  (67쪽)


 있이 살아도 모자란 판에 없이 살면서 밥숟가락 하나 더 얹으며 꾸리는 상수리나무집 살림살이입니다. 없이 사니 맨손으로 세상과 부딪히면서 저마다 다 다른 밥벌이를 제 깜냥껏 하는 가운데 서로서로 돕습니다. 이웃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고 손가락질이지만, 이런 손가락질은 ‘더는 흐르지 않는 눈물’로 삭이면서, 당신들보다 마음이 더 다친 또다른 이웃을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옆에 가까이 있으면 이웃이라 할 수는 있을 테지만, 눈물나는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없다면 이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상수리나무집’ 이웃이라는 사람들은 이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사람들입니다.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 속여먹는 사람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고, 달삯을 너무 높게 올려받으려는 집임자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휙휙 던져 버리는 사람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고, 아는 체 모르는 체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이웃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이웃을 사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옆집 사람한테 이웃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단단한 쇳덩어리로 되고 빈틈없는 열쇠로 잠긴 문을 빠꼼히 열고 승강기로 씽하고 내려가 자동차에 열쇠를 꽂고 부릉 하고 내달리면서 집과 일터, 또는 놀 곳으로 움직이는 거의 모든 우리들입니다. 승강기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까딱이기는 하겠지만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이름은 어찌 되며 나이는 얼마인지 식구는 누가 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서로서로 가슴에 품은 기쁨과 슬픔을 하나도 함께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서로 모르는 채 따로 떨어져 지내니 서로를 더 모르게 되고, 서로를 더 모르게 되니, 이웃사람 삶에도 눈길을 안 두고, 우리 둘레 사람 모두한테 눈길을 못 둡니다. 나라에서 무슨 짓을 하건 말건, 정치꾼이 무슨 공약을 내놓다가 무슨 일을 하건 눈길을 안 보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시험문제가 어떤 지식을 다루고 있거나 말거나 마음을 안 씁니다. 그예 아이들이 시험점수 잘 받으면 그만이고, 그저 내 은행계좌에 일삯이 많이 들어오면 장땡입니다.


.. 일어나서 미음을 한 숟갈 떠먹으려는데, 눈에서 뭔가 핑글 돌면서 죽그릇 위에 투둑, 하고 떨어졌다. 눈물이다. 지금껏 마음껏 흘리고 싶어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지금, 영희가 끓여 준 죽그릇에 투둑, 보석처럼 떨어지고 있다. 사실 옥주도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만들어 준 음식을 너무도 오랜만에 먹어 보는 것이다 … 어느새 영희는 울음을 멈추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옥주의 말에 수줍게 웃는 영희는 지난봄 처음 봤던 그 영희가 아니다. 옥주는 서서히 변하는 영희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갑자기 용기가 생긴다. 슬픈 사람에게는 오히려 슬픔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옥주는 생각했다. ‘내 얘기를 하면 영희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예전에 내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랬던 것처럼.’ ..  (107, 110쪽)


 우리 모양새를 돌아볼라치면, 《상수리나무집 사람들》은 퍽 지루하달지, 뭔 소리인지 모른달지, 구태여 이런 책까지 왜 읽어야 하느냘지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 이웃뿐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한테 생채기를 입히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개나리는 개나리이고, 별이는 별이입니다. 잘한 일은 잘한 일이고 옳지 않은 일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옳지 않은 일이나, 돈을 많이 벌게 해 주면 할 만한 일이 되겠습니까. 옳지 않은 짓을 하는 사람이나, 얼굴이 잘생겼다든지 이름값이 높다든지 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 “별이야, 지금만 울고 나중에는 울지 마라. 별이가 울면 송이도 운단다.” “할머니, 내가 왜 우냐면요,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분해서 울어요.” “별이가 강해지면 분하지도 않단다. 별이는 강해져야 한다. 몸과 마음이 다 강해지면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괜찮단다. 저기 예쁜 개나리꽃이 피었구나. 개나리꽃이 예쁜 건 추운 겨울을 이겨내서 그렇단다. 강해지면 꽃처럼 예뻐진단다. 예쁜 것들은 모두 강하단다. 예쁜 사람을 보고 누가 뭐라고 하겠니. 개나리를 보고 아무리 개나리가 아니라고 해도 개나리는 개나리란다. 별이는 별이가 되어라.” “알았어요, 할머니.” ..  (173쪽)


 그런데 한 가지, 이야기책 《상수리나무집 사람들》을 읽으면서 아쉬움 한 가지가 걸립니다. 이야기 끝에, 상수리나무집이 헐리며 아파트가 새로 지어지는데, 상수리나무집에 살던 정신대 할머니와 ‘장님 아저씨와 양공주 아주머니네’가 따로따로 임대아파트를 얻어 이웃집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가 돼요. 그렇지만 참말 오늘날 우리네 임대아파트란 집이 이렇게 쉽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한테 군말없이 주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이제까지 고되고 고달프게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서 비로소 빛을 구경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면서도, 어쩐지 우리 세상살이하고는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초등학교 높은학년이나 중학생 나이임을 헤아린다면, 이렇게 살며시 웃음을 띠면서 끝을 맺는 일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자꾸자꾸 이야기 마무리가 아쉽고 허전하고 어딘가 바람이 피식 빠져 버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4342.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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