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동생 난 책읽기가 좋아
이토우 히로시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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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밥과 마음그릇이 되는 책
 [어린이책 읽는 삶 8] 이토우 히로시, 《원숭이 동생》(비룡소,2003)



- 책이름 : 원숭이 동생
- 글·그림 : 이토우 히로시
- 옮긴이 : 김난주
- 펴낸곳 : 비룡소 (2003.9.4.)
- 책값 : 7500원


 이야기책 《원숭이 동생》(비룡소,2003) 간기를 보면, “캐릭터를 잘 살린 ‘원숭이’ 시리즈는 귀엽고 재치 있는 이야기로 재미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같은 말이 적힙니다. 나는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즐겁게 읽고 싶었으나, 이 글줄 때문에 그만 돌부리에 걸려 픽 넘어집니다. 어린이책에 적바림한 글줄도 글줄이지만, 이 글줄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 읽는 책에 적바림한 ‘캐릭터 잘 살린 시리즈’는 무슨 말이며 ‘철학적 메시지’는 무슨 말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읽는 책인데 그림을 ‘사랑스러우면서 잘’ 그려야 합니다. 아니, 어른들 읽는 책일 때에도 그림을 ‘사랑스러우면서 잘’ 그려야 해요. 그림을 사랑스레 잘 그렸다는 이야기를 붙이는 일은 아주 덧없으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다음으로, 어떠한 이야기가 되더라도 ‘깊은 삶에서 비롯하는 깊은 넋’이 담깁니다. 생각이 담기지 않는 책은 없습니다. 어른책만 생각이 담기고 어린이책에는 생각이 안 담길 턱이 없습니다. 모든 책에는 다 달리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삶에서 샘솟는 넋이 고이 깃들어요. 이 생각들이 아름답다 여길 만한지, 그저 그렇다 느낄 만한지, 따스하다 여길 만한지, 차갑다 느낄 만한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 내가 사는 섬은 아주 아주 조그맣지만 숲이 있어요 ..  (6∼7쪽)


 내가 읽을 내 책을 골라서 즐겁게 펼칠 때이든, 우리 집 아이가 읽을 책을 살펴서 내가 먼저 읽고 아이한테 나중에 읽힐 때이든, 언제나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 스스로 좋은 마음그릇이 되어서 펼치면, 누구보다 나한테 좋은 마음밥이 되는 책입니다.

 거룩한 말씀을 그러모은 책을 읽어야만 내 말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책을 읽어야만 내 삶이 훌륭해지지 않습니다.

 나부터 내 삶을 거룩하게 돌보아야 비로소 거룩한 넋을 깨달아 거룩한 빛을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사랑을 훌륭히 돌볼 때에 바야흐로 훌륭한 얼을 느끼면서 훌륭한 꿈을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나는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다문 한 줄을 읽고서 장만합니다. “내가 사는 섬은 아주 아주 조그맣지만 숲이 있어요.”라 적바림한 한 줄을 읽고서, 이 한 줄이 따사롭다고 여겨 장만합니다.

 흔한 말이고, 가벼운 말입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아이한테 으레 하는 말이고,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노상 느끼는 말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멧자락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숲이 있습니다. 넓지 않으나 밭뙈기가 있고, 갖은 풀벌레가 우리 집 둘레에 깃들며, 수많은 멧새가 끊임없이 우짖어요.


.. 나는 엄마의 배를 가만히 쳐다보았어요. 엄마가 나를 보고 말했어요. “너도 이 안에 있었단다.” ..  (52∼53쪽)


 마음을 담는 그릇을 떠올립니다. 내 마음을 나부터 어떤 그릇에 담는가 되새깁니다. 내 마음그릇에는 무엇이 담겼는지 곱씹습니다. 내 마음그릇은 내 고운 목숨을 살찌울 마음밥을 알뜰히 담을 만한지 가눕니다.

 나는 이런저런 손재주나 잔솜씨가 빼어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썩 손재주가 없고 잔솜씨도 부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손재주뿐 아니라 발재주도 없는데다가, 잔솜씨는커녕 큰솜씨도 없습니다. 참 용하게 목숨을 이었으며, 먹고사는데다가, 이럭저럭 짝꿍을 만나 이렁저렁 아이 둘을 낳아 함께 지냅니다.

 나한테 손재주가 있었으면 오늘처럼 이렇게 살아갔을까 궁금합니다. 내게 잔솜씨가 있다면 풀벌레와 멧새랑 살아가는 시골자락에서 이처럼 지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손재주로 이것저것 꾸미거나 붙이면서 이름값 드날리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잔솜씨로 요것조것 만들거나 뽐내면서 돈벌이 꾀하려고 어거지를 피우지 않았을까요.

 나는 내 어머니가 열 달을 곱게 품어 주셔서 태어난 목숨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열아홉 해를 예쁘게 입히고 먹여 주었기에 살아난 목숨입니다. 나는 내 형이 틈틈이 도와주면서 살림을 꾸립니다. 나는 내 옆지기가 늘 바로잡아 주기에 삶을 사랑합니다. 나는 내 두 아이가 날마다 안아 달라 놀아 달라 먹여 달라 외치기에 웃음과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 내가 잊어버린 어렸을 때의 일을 엄마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어요. 엄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린 내가 아장아장 돌아다니며 노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  (70∼71쪽)


 어린이부터 읽는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쉬 알아듣거나 헤아릴 만한 삶·넋·말로 이루어집니다. 곧, 어린이책은 어린이책이면서 어린이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이기에 어린이책이 될 수 있지만,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으니 어린이책이 되지 않습니다.

 어린이부터 먹을 수 있는 밥은 어린이부터 먹지만, 어른도 함께 먹습니다. 맵거나 짜게 지은 밥거리는 어른만 먹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먹도록 지으려는 밥거리라면 매워서는 안 되고 짜서도 안 됩니다. 간을 알맞게 해야 합니다. 곧, 간을 알맞게 하는 밥거리는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만한 법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삶·넋·말을 알맞게 다스리는 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만한 책입니다.

 이 나라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천천히’ 《원숭이 동생》이라는 책을 읽고, 다시 넘기며, 가만히 아로새길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여, 어린이책이면 어린이책에 걸맞게 번역에 더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남쪽 나라의 섬에 살고 있지요(5쪽).” 같은 글은 “남쪽 나라 섬에서 살아요.”로 바로잡고, “뱀 동생이 태어나면 정말 굉장할 것 같아요(20쪽).” 같은 글은 “뱀 동생이 태어나면 참 대단하겠지요.”로 손질해 봅니다. (4344.9.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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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1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표지그림이 넘 귀엽네요^^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선언 - 장애아 셋을 둔 한 엄마의 좌충우돌 육아 에세이
사사키 시호미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책읽기 삶읽기 76] 사사키 시호미,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한울림스페셜,2008)



 살구나무는 모두 살구나무입니다. 아직 꽃이 안 피는 어린나무여도 살구나무입니다. 우람하게 자라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도 살구나무입니다. 어디가 아파서 꽃을 도무지 피우지 못하더라도 살구나무입니다. 벼락을 맞아 줄기가 두 동강이 나더라도 살구나무예요. 가지를 잘라 장작으로 쓰려 하더라도 살구나무입니다. 베개나 방망이로 쓰려고 베어서 다룰 때에도 한결같이 살구나무입니다.

 잣나무도 언제나 잣나무입니다. 굴참나무도 늘 굴참나무입니다. 벚나무나 느티나무도 노상 벚나무나 느티나무요, 뽕나무나 배나무도 고스란히 뽕나무나 배나무예요.

 새 목숨을 받아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언제나 우리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하고 견줄 까닭이 없습니다. 키를 견주거나 몸무게를 견주거나 얼굴을 견줄 까닭이 없습니다. 지능지수나 시험성적을 견줄 까닭 또한 없습니다. 책을 얼마나 읽었다든지, 나중에 돈을 얼마나 벌 만하다든지 하는 따위를 견줄 까닭이란 없어요. 오직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맑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나한테 목숨을 베푼 내 어버이는 늘 우리 어버이입니다. 우리 어버이가 잘난 분이건 못난 분이건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어버이가 이름난 분이건 이름없는 분이건 따질 까닭 또한 없어요. 우리 어버이한테 돈이 많건 적건 조금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을 맺어 나를 아이로 맞아들인 삶을 돌아보면서 즐길 우리 어버이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나하고 형이랑 차분히 말을 섞으면서 ‘집과 학교와 동네에서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조차 나누지 않은 일을 서운했다고 여깁니다. 내 아버지한테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든지, 내 아버지가 일찍부터 자가용을 몰지 못했다든지, 내 아버지가 뒤늦게 대학원을 마쳤다든지, 내 아버지가 가난한 집안 맏아들이었다든지 하는 대목에서 서운하거나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가 집에서 더 느긋하게 지내지 못했다든지, 내 아버지가 대학교 졸업장에 너무 얽매인다든지, 내 아버지가 넓거나 커다란 집에 너무 이끌린다든지 하는 대목이 서운하거나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괴롭습니다. 살림돈이야 어떠하든 예쁘게 살아가면 즐거워요. 이름값이야 어떠하든 착하게 살아가면 기뻐요. 남들 눈길이야 살피지 말고 우리 살림과 터전과 꿈을 고이 돌보면 웃음꽃이 피어요.


.. 1989년 12월 9일, 우연인지 필연이었는지 ‘장애인의 날’에 큰아들 요헤이가 태어났다. 고교 시절 어떤 강연회에서, “여러분들 가운데 분명 몇 명인가는 장애아의 어머니가 될 겁니다. 반에 한 명은 되겠지요.” 하는 말을 들었다. 학창시절의 기억이라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는 나였지만, 왠지 이 대목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나만 그런가 했더니 다른 친구들도 지금껏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충격이었기 때문일까. “아, 장애아 엄마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 거야. 난 절대 못 키워. 엄마한테 키워 달랠 거야!” 강연회가 있던 날 하교하는 버스 안에서, 친구 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때 친구들 중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던 걸 보면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혼자서 키울 거야.” 나는 약간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  (9∼10쪽)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더 똑똑해지거나 더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더 넉넉해지거나 더 즐거운 나날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더 많이 날려야 더 기뻐지거나 더 예뻐지지 않습니다.

 그림쟁이가 훌륭한 작품을 더 많이 남겨야 하지 않습니다. 글쟁이가 훌륭한 글을 더 많이 써야 하지 않습니다. 노래쟁이가 훌륭한 노래를 더 많이 불러야 하지 않습니다. 춤쟁이가 훌륭한 춤을 더 많이 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제 삶을 사랑하면서 아끼는 나날이면 넉넉합니다. 저마다 제 삶을 믿으면서 고마이 여기는 나날이면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일 뿐이고,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일 뿐입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일 뿐이며, 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일 뿐이에요.

 내 옆지기가 국회의원이나 판·검사가 되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없고, 이렇게 바라는 일은 참 덧없습니다. 내 아이들이 이름난 대학교를 마쳐서 돈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되기를 꿈꿀 수 없으며, 이렇게 꾀한다면 참 바보스럽습니다. 나 또한 내 옆지기한테는 서로 어깨동무할 길동무여야지, 이 몫을 넘어선 무언가는 할 수 없습니다. 더 큰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나, 굳이 더 작게 무언가가 되지 않습니다. 작아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크다고 덜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작든 크든 많은 적든 언제나 같습니다.


.. 장애가 있든 없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이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거기 있기만 하면 된다 … 친구는 만드는 게 아니라 생기는 거였다. 그리고 돕고 도움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는 그냥 친구였다 ..  (16, 42쪽)


 아들을 셋 낳았는데, 세 아들이 모두 ‘장애아이’였다고 하는 일본 아줌마 사사키 시호미 님이 쓴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한울림스페셜,2008)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쥘 때에도 생각했습니다. ‘왜 한국땅 장애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이만 한 책을 스스로 쓰지 못할까?’ 하고. 우리 나라에서도 5천만에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1/10이 장애를 안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곧, 우리 나라에는 5백만에 이르는 장애 안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5백만 가운데에는 할머니도 있고 갓난쟁이도 있을 테며, 푸름이나 어린이도 있겠지요. 여느 아저씨나 아줌마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 삶을 스스럼없이 적바림하면서 기쁘게 나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어쩌면, 출판사에서 우리 나라 우리 이웃 이야기는 책으로 안 펴내는지 모릅니다. 너무 가까운 이웃이라 누군가는 마음이 다칠까 봐 이웃나라 이야기만 책으로 펴내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 아이한테 장애가 있다거나 내 어버이한테 말썽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서로한테 생채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감추거나 덮거나 숨길 때에 생채기가 남을 뿐 아니라 크게 도집니다.

 돈이 없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슬픔이나 괴로움이 아니듯, 장애 있는 아이가 어버이한테 슬픔이나 괴로움이 아닙니다. 번듯한 집이 없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아픔이나 고단함이 아니듯, 지능지수나 시험성적이 떨어지는 아이가 어버이한테 아픔이나 고단함이 아니에요.


.. 다이는 지능이 높아서 히로시마에서는 치료교육 수첩을 받을 수 없다.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장래 샐러리맨은 꿈도 못 꿀 다이인데 사회로부터 보호마저 받을 수 없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다이가 제일 불안하다 … 깁스를 한 상태였으므로 모처럼의 대형욕실은 포기해야만 했다. 먹는 즐거움도 없다. 그래도 나는 3년 전 수학여행에서 신칸센을 보고 기뻐했던 요헤이를 또 여행 보내고 싶었다. 요헤이는 여행을 즐겼다. 담임선생님과 간호사도 입을 모아 말했다. “표정이 달라졌어요. 안 보냈으면 서운할 뻔했죠.” ..  (81, 126쪽)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을 쓴 일본 아줌마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삶을 아주 보드랍게 풀어놓습니다.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덮거나 가릴 까닭이 없습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 아이를 맞아들이며 보낸 나날을 고마이 돌아보면서 포근히 이야기자락을 펼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립니다. 세 아들 어머님인 사사키 시호미 님이 당신 세 아들을 낳아 기른 이야기나, 당신 어버이나 당신 옆지기 이야기와 삶을 돌아볼 때에, 사사키 시호미 님네 세 아들은 ‘갓 태어나 아기로 지낼 때’에는 장애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두 어버이나 두 어버이네 어버이 가운데 아이들한테 장애 유전자를 물려줄 만한 사람이 안 보입니다. 그야말로 갑작스레 난데없이 세 아이가 똑같이 장애를 떠안는데, 다 다른 장애입니다.

 옆지기가 문득 말합니다. “여보, 이 아주머니네 아이들은 예방주사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거의 틀림없습니다. 세 아들 어머니인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세 아들을 모두 병원에서 낳은 듯하고, 병원 처방을 잘 따릅니다. 더구나 ‘아픈 세 아들’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사사키 시호미 님은 도시에서 지내는 삶에 익숙합니다. 세 아들을 비롯한 집식구하고 어떤 밥을 차려서 먹는가 하는 이야기는 책에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만, 이분 집이 생협에서 먹을거리를 댄다든지 가공식품을 멀리한다든지 하는 이야기 또한 한 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장애아이를 낳아도 혼자서 키우겠어’ 하고 되뇌는 마음가짐은 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아이를 돌보아야 좋은가 하는 대목까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수은을 넣지 않은 예방주사’를 스스로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놓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수은을 안 넣은 예방주사’를 만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며, 모든 예방주사에 수은을 안 넣지 않습니다. 더구나, 수은 한 가지를 안 넣었다뿐, 다른 무시무시한 화학성분은 그대로 있으며, 수은을 갈음한 화학성분은 수은 못지않게 무시무시합니다. 갓난쟁이한테 수은을 몸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는지는 사람들 스스로 옳게 깨달아야 합니다.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비롯한 무시무시하다는 수많은 화학약품을 갓난쟁이 몸에 주사바늘로 집어넣을 때에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이야기는 아이 어버이들이 스스로 참다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사키 시호미 님은 당신 장애아이를 ‘혼자 키우겠다’고 다짐했다지만, 정작 장애가 큰 아이는 시설에 넣습니다. 아이들은 병원 처방을 많이 자주 받습니다. 책에도 나오는데, ‘장애를 낫게 해 주는 약이 있으면 먹이고 싶다’는 대목이 보입니다. 글쓴이는 ‘병·의학 화학약품’에 지나치게 기대며 살아갑니다. 장애아이라 하건 비장애아이라 하건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은 예쁘지만, 장애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아이와 어떻게 어디에서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은 거의 돌아보지 못해요.

 이는 일본 아닌 한국이라고 조금도 낫지 않습니다. 아니, 한국은 더 끔찍합니다.

 애써 대학교까지 마친 똑똑한 ‘애 엄마’한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사랑’ 한길을 걸어가라 하기 참 어렵습니다. 더욱이, 애써 대학교까지 마쳤을 뿐 아니라 가부장 사회에서 집안 기둥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애 아빠’한테 회사일을 접거나 회사를 시골로 옮겨서 아이들하고 더 자주 더 오래 어울리면서 집살림을 함께 건사하자고 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장애도 못 말리는 밝은 엄마가 즐겁다고 외치는” 이야기책을 덮습니다. 글쓴이요 어머니인 사사키 시호미 님이 얼마나 느끼시는가 궁금하지만, ‘장애아이’라 하는 세 아들은 스스로를 슬프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장애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나 이웃사람이 슬프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괜히 해맑거나 밝아야 하지 않습니다. 꼭 씩씩하거나 굳세어야 하지 않아요. 힘들 때에는 쉬면 돼요. 아플 때에는 눈물을 흘리면 돼요. 아이한테 장애가 왜 생겼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해요. 장애가 있고 없고가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장애가 생겼는가를 올바르게 깨달아, 이 아이를 참답고 착하게 사랑하면서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어머니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가 너무 늦게 깨달으면, 아버지는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못 느끼고 말아요. 부디,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장애아이 셋을 잘 사랑하면서 얼싸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듯, 비장애아이라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4344.9.14.물.ㅎㄲㅅㄱ)


―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 (사사키 시호미 글,김은진 옮김,한울림스페셜 펴냄,2008.5.16./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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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야 놀자 - 만화로 배우는 생리 이야기
다카하시 유이코 글.그림, 김숙 옮김, 안명옥 감수 / 북뱅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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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한테 ‘무상급식’만 하면 다 되나
 [어린이책 읽는 삶 7] 다카하시 유이코, 《생리야 놀자》(BB아이들,2002)


- 책이름 : 생리야 놀자
- 글·그림 : 다카하시 유이코
- 옮긴이 : 김숙
- 펴낸곳 : BB아이들 (2002.8.30.)
- 책값 : 8000원


 (1)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에서는 ‘무상급식’을 놓고 주민투표까지 벌였습니다. 서울시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무상급식을 하자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니까 이런 주민투표를 할 만하다 싶지만, 주민투표를 하는 데에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서울이나 큰도시 아닌 작은 시골로 이루어진 군에서는 일찍부터 무상급식을 하거나 꾸준히 무상급식으로 나아갑니다. 작은 시골로 이루어진 군에서는 아이들이 죄 도시로 빠져나가니까 아이들을 붙잡기도 해야 할 테고, 아이들 숫자가 적어 얼마든지 무상급식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교를 다니며 교재비나 다른 돈을 들이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서울이나 다른 큰도시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부터 지나치게 몰린 서울이요 큰도시입니다. 이런 데에서 무상급식을 하자 할 때에는 이곳저곳에서 투덜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뜻은 좋으나 아직 이 나라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육’이 아닌 ‘교육복지’를 옳게 펼치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 나라처럼 국방 예산으로 훨씬 어마어마하다 싶은 돈을 쏟아붓지 않습니다. 더욱이, 쇠삽날로 파헤치기만 하는 토목사업에 더욱 어마어마하다 싶은 돈을 들이붓지 않아요. 이 나라는 국방과 토목사업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함부로 쓰기 때문에 교육이든 교육복지이든 옳게 꾸릴 수 없습니다.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지 않으면서 무상급식은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지 않으면서 무상급식을 해 본대야 아름다운 뜻이 펼치지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무상급식을 누리도록 한다는 ‘평등’이란 평화로이 살아가는 평등이거든요. 평화로이 살아갈 수 없이 물질 평등만 이룬대서 참다이 평등이 되지 않아요.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서울시이든 다른 큰도시이든 무상급식을 굳이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에 앞서 ‘급식비 내기 어려운 집’에 기초생활보장을 하는 복지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애써 급식시설을 마련하고 뭘 하고 하기보다는 도시락을 싸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이니 급식시설이니 하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삶길을 받아들여 즐거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과 문화와 터전’에 돈을 쓰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 “어째서 남자애들은 그런 일로 놀리는 거죠? 어째서 남자애들은 생리를 하지 않는 거죠?” “맞아. 생리는 여자만 하는 거야. 남자애들은 생리가 뭔지 잘 몰라.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거라고나 할까. 여자애들을 놀리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창피해 하니까 더 재미있어 하는 거지.” ..  (35쪽)


 일본사람 다카하시 유이코 님이 글을 쓰고 그림을 넣은 《생리야 놀자》(BB아이들,2002)를 읽고 나서 더 굳게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생리야 놀자》처럼 멋지고 알차며 놀라운 이야기책 하나 태어나지 못합니다. 상업출판사에서도 이만 한 책을 꾀하지 못하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이런 책을 마련할 꿈조차 꾸지 않으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쯤 되는 알찬 책을 내도록 뒷배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을 한다며 해마다 들어갈 수천 억 가운데 3억쯤만 들이면, 아니 2억이나 1억쯤만 들이면, 《생리야 놀자》 같은 이야기책 하나 한 해에 걸쳐 야무지게 빚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분한테 열 달 동안 힘껏 이야기를 길어올리도록 일돈을 주고, 출판사에서 예쁘게 엮도록 두 달을 내주면(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열 달 동안 출판사에서 밑짜기를 해 두면 두 달만에 책을 엮을 수 있어요) 한국 어린이 삶을 헤아리는 좋은 이야기책이 태어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해마다 100가지 이야기쯤을 100억을 들여 마련해서 100가지 아름다운 책이 태어나도록 도울 수 있는 ‘서울시 교육 예산’입니다. 고작 100억이면 돼요. 여기에 100억을 영화 만드는 돈으로 뒷배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즐길 작은영화를 찍도록 10억씩 뒷배해서 열 가지 영화를 해마다 빚을 수 있습니다. 꼭 대단하다 싶은 영화를 찍어야 하지 않거든요. 자그마하면서 아름다이 영화를 빚을 수 있어요. 한꺼번에 100억을 들여 더 멋들어지는구나 싶은 영화를 빚을 수 있을 테지만, 삼십 분이나 오십 분쯤 살가이 돌아볼 조그마한 영화를 꾸준히 빚는 일도 아름답습니다. 덧붙여 사랑스러운 어린이 노래나 푸름이 노래를 일구는 데에도 돈을 뒷배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연극이나 푸름이 연극을 올리도록 돈을 뒷배할 수 있어요. 어린이와 푸름이가 즐길 그림책을 그리도록 돈을 뒷배할 때에도 아름답습니다.


.. “빨아 쓸 수 있는 천 생리대는 반복해서 3년 정도 쓸 수 있어요. 경제적이기도 하고 쓰레기도 나오지 않지요. 100% 면이라 피부에도 좋고 화학약품이나 합성섬유도 쓰지 않으니까 안전하지요. 하지만 빠는 것이 번거롭고 샐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나 생리가 시작될 때와 끝나갈 때 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일회용 생리대는 무척 편리하지만 매달 사용하는 양을 생각하면 쓰레기 문제가 걱정이지요.” ..  (59쪽)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가운데 가난한 아이들은 꼭 있기 마련이니, 이 아이들이 밥 걱정을 안 하도록 하는 일에 깊이 마음써야 합니다. 그러나, 밥 걱정은 안 해도 좋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왜 배워서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배움 이야기’가 텅 비거나 어줍잖다면 어쩌지요.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덜어 밥 한 그릇을 마련한다고 하듯,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서 한 숟가락씩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살림이 괜찮은 집에서 지내는 아이가 도시락을 둘 쌀 수 있습니다. 밥은 어떻게 해서든 나누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 학교를 돌아보면, 예나 이제나 ‘배울거리’가 마땅하지 않습니다. 참다이 배우고 착하게 배워 아름다이 살아갈 배움빛이 너무 모자라요.

 두 아이 어버이인 나는 우리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할 일이 아주 걱정스럽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참다이 가르치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더 이름나거나 더 좋다는 대학교’로 보내는 징검돌 노릇만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바르며 고운 말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죽은 영어를 지식으로만 집어넣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살아숨쉬는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지 않고, 임금님 연표나 권력자 뒷이야기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제 옷을 뜨개하거나 기우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입니다.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스스로 밥하고 빨래하며 청소하는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다지만, 막상 나중에 열아홉 살을 넘어 좋은 짝궁을 사귀어 아이를 낳을 때에 아이를 어떻게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배울 수 없습니다. 사내가 가시내를 사귀는 길이나 가시내가 사내를 만나는 길을 예쁘게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사내와 가시내가 다른 구실을 참답게 밝히지 않고,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보람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가시내가 열두엇 앞뒤로 맞아들여 다달이 치르는 달거리가 어떠한 뜻이요 얼마나 아름다운 목숨빛이 드러나는 일인가를 이야기 나누지 못합니다. 《생리야 놀자》는 달거리(월경)가 아이한테 어떠한 뜻이요 앞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목숨빛을 잇도록 새길을 여는 일인가를 차분하면서 따사롭게 들려줍니다.


.. “은비는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지?” “지금까지 우리 반 아이들이 나한테 아직도 생리 안 하냐고 물을 때마다 나만 뒤떨어진 것 같았어요. 이제 하게 돼서 다행이다 싶긴 한데.”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하고 비교할 필요는 없는 거야.” ..  (15쪽)


 (2)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헤아려 봅니다. 시설 좋고 이름 높은 학교에 아이들을 넣으면 좋을까요. 급식 잘 되고 학교버스로 집과 학교 사이를 태워 주는 데에 아이들을 보내면 좋을까요. 시험성적 잘 나오도록 이끌거나 특성화교육이나 외국어교육을 잘 한다는 데에 아이들을 다니도록 하면 좋을까요.


.. “철분은 여자아이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고 몸이 점점 커 가는 성장기에는 남자아이들에게도 많이 필요한 거야.” “그렇다면 날마다 시금치나 간을 많이 먹으면 되는 거예요?” “단백질도 필요해.” “단백질요?” “단백질이 부족하면 어렵사리 보충한 철분을 잘 살릴 수 없거든. 결국, 균형 잡힌 식품을 거르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거지. 식사를 거른다거나,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만 너무 좋아한다거나, 무리한 다이어트 같은 건 좋지 않다는 거지. 그러면 곧바로 철분이 많은 식품을 써서 요리를 만들어 볼까?” ..  (95쪽)


 이야기책 《생리야 놀자》는 달거리 지식을 아이들이 외도록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 때에 처음 겪으면서 마흔 해 즈음 이어갈 아름다운 목숨빛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깨닫도록 돕습니다. 누구보다 가시내한테 도움이 되면서 길동무가 되고 마음밭을 다스리는 말벗이 됩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치고, 달거리 이야기를 이 책에 담은 만큼 들려줄 수 있는 분은 퍽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내 아이한테 달거리 이야기를 얼마나 들려줄 수 있을까요. 내 아이들한테 ‘목숨이 태어나는 아름다운 빛과 꿈’을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얼거리와 흐름을, 사람이 늘 먹어야 하는 목숨과 사람을 둘러싼 풀과 나무와 짐승과 물과 해와 바람을 어떠한 결로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내가 만약 생리 때문에 아무 문제도 겪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도 생기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때까지 겪은 고통과 괴로움들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책을 쓰는 동안 생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리 작용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몸을 더욱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  (115쪽/글쓴이 말)


 아이는 어머니만 낳습니다. 아이는 어머니만 몸속에 깃들이며 열 달을 살아냅니다. 아이는 어머니만 젖을 물립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도록 이끄는 어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둘입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사랑하고 돌볼 몫은 어머니와 아버지 둘한테 있습니다. 아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아이가 먹을 옷을 빨며 아이와 살아갈 집을 치우고 살림하는 몫은 어머니 한 사람이 아닌,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이 맡을 몫입니다.

 《생리야 놀자》는 내 몸을 아이들 스스로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여는 첫 실마리라 할 만합니다. 이 실마리부터 찬찬히 살펴서 내 몸과 동무들 몸과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몸을 사랑하도록 첫걸음 내디디는 실마리입니다.

 나부터 스스로 내 몸을 사랑할 때에 비로소 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얻습니다. 하늘에서 똑 떨어지는 선물로 얻지 않고, 내 마음밭에서 고이 잠자던 씨앗을 깨우는 틀처럼 얻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사랑을 가르칩니다. 아이들한테서는 사랑을 배웁니다. 학교는, 집은, 마을은, 또 지구별은 이 아이들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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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때문에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7
이원수 지음, 이태수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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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면서 살아갈 아이와 어버이
 [어린이책 읽는 삶 6] 이원수, 《나비 때문에》(우리교육,2003)



- 책이름 : 나비 때문에
- 글 : 이원수
- 그림 : 이태수
- 펴낸곳 : 우리교육 (2003.8.20.)
- 책값 : 7000원



 (1) 사랑하며 살아갈 고운 목숨


 둘째 아이 백날째를 맞이해서 음성 할머니랑 할아버지하고 일산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함께 만납니다. 음성 할아버지가 호젓한 물가 밥집에 자리를 맡았다고 해서 밥집 일꾼이 커다란 자동차를 이끌고 모두를 태우러 옵니다. 어른 여섯과 아이 둘이 탑니다. 네 살 첫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안기며 앞자리에 앉습니다. 커다란 자동차는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바깥은 후덥지근한 날씨이지만, 자동차 안쪽은 썰렁한 찬바람입니다.

 커다란 자동차에 타고 문을 탕 닫자마자 아버지 무릎에 앉은 아이가 말합니다. “아, 냄새!” 아이는 코를 싸쥡니다. 자동차가 달립니다. 아이는 자꾸자꾸 “아, 냄새!” 하고 되풀이합니다. 아버지도 ‘에어컨 바람 냄새’가 싫습니다. 싫고 괴롭지만 ‘어른인 탓’에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합니다. 아이가 너덧 차례 되풀이 말할 무렵, “에어컨 바람 냄새가 힘들구나.” 하고 가늘게 말하면서 슬쩍 창문을 엽니다. 창문을 타고 바깥 논밭을 흐르는 바람이 들어옵니다. 아, 이 바람이 얼마나 좋은가. 시골자락 논밭을 흐르던 바람을 쐬면서 자동차를 타면 얼마나 시원한가.

 아이는 비로소 손을 내립니다. 냄새가 난다는 말은 이제 더는 하지 않습니다. 바람맞이 놀이를 하지만 눈을 뜨기 어렵습니다. 자전거로 내리막을 달릴 때에도 이만 한 빠르기에서도 눈을 뜨기 어려운데, 훨씬 빠른 자동차에서는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면 눈을 뜨기 더 어렵지요.

 그런데, 이렇게 창문을 연대서 ‘자동차 냄새’가 가시지는 않습니다. 아스팔트길을 달리는걸요. 이 아스팔트길에는 자동차가 달리며 닳는 고무바퀴 까만 먼지가 곱게(?) 내려앉다가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휭휭 날립니다. 자동차 뒤꽁지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먼지가 둥둥 떠다니며 창문을 타고 들어옵니다. 창문을 닫을 때에는 자동차 엔진이 있는 맨앞에서 기름이 타는 냄새와 엔진이 도는 냄새가 조용히 스며듭니다.

 자동차를 몰기에 더 빨리 더 아늑하게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품과 말미를 아낍니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게 여깁니다. 이렇게까지 더 빨리 가야만 하나요. 이렇게 가는 길이 더 아늑할까요.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더 빨리 어디론가 움직이는 일이 우리 삶에서 가장 대수로운가요.


.. 우리(개와 고양이)는 이렇게 매일 장난을 했습니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고양이도 나를 정말 아프게 물거나 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장난이지요. 장난인 줄 잘 알면서도, 내가 화가 나서 그놈을 잡으려 뜀박질을 하는 건 쬐꼬만 게 버릇없이 굴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건 내 걸음이 고양이를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작은 놈에게 내가 지는 게 싫어서 약이 오르는 것입니다 … “이 자식아! 왜 꽃밭은 마구 짓밟고 지랄이야?” “오빠, 나비는 암만 뛰어다녀도 꽃나무 하나 부러뜨리지 않지? 참 용해.” 꽃나무를 다치는 건 나(개)고, 나비는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속상합니다 ..  (22, 25쪽)


 달리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은 ‘앞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를 읊으면서 서로 어떤 느낌이거나 생각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내가 눈이 먼 사람이라 하더라도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하고 등을 진 채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소리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은 대단히 큽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결이 나와 마주한 사랑스러운 님 얼굴로 가 닿는 느낌은 아주 애틋합니다. 나와 마주한 사랑스러운 님 입에서 나오는 소리무늬가 내 얼굴을 타고 흐르면서 내 귀로 스며드는 느낌은 몹시 고맙습니다.

 즐겁게 살아가자는 나날입니다. 기쁘게 누리자는 삶입니다. 예쁘게 어우러지자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나라도 겨레도 학교도 돈도 이름도 뛰어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제도는 우두머리와 세금과 군대가 있습니다. 한 핏줄끼리만 사랑할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나 돈이나 이름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사랑이 꽃피울 수 없습니다.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손길이 사랑입니다. 예쁘게 소꿉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이 사랑입니다. 신나게 고무줄을 튕기고 깨끔발을 하는 몸짓이 사랑입니다.


.. “왜들 싸우는 거냐? 너 때렸구나.” 선생님은 은준이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녀요. 먼저 날 할퀴었어요.” 은준이는 손목을 내밀어 보였습니다. “학교서 싸움하면 못쓴다고 하지 않았니? 동무끼리 싸우는 것 아니야. 알겠니? 또 싸우면 벌선다.” 은준이는 선생님이 저를 나무라는 것이 싫었습니다. 동무 아이가 구슬을 뺏아 가려고 한 건 모르고 저만 나무랍니다. 손목을 할퀸 걸 보여 드렸는데도 우는 아이보다 저를 더 나무랍니다 ..  (58쪽)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늘 생각합니다. 이 자동차에 짐을 싣거나 사람을 실으며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차를 몰밖에 없습니다. 자동차가 있을 때랑 없을 때는 참 크게 다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몰자면 자동차를 장만해야 하고 기름값을 치러야 하며 보험삯을 물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돈을 들이자면 돈을 더 벌어야 하고, 돈을 더 버는 만큼 돈벌이를 더 지키자니 자동차를 더 빨리 몰아 돈벌이를 더 후딱후딱 해치워야 합니다.

 자동차가 없으면 돈벌이는 더 줄겠지요. 돈벌이가 더 주는 만큼 자동차로 빨리빨리 느긋하게 다니며 더 누리던 삶은 이제 더 없겠지요. 그러나, 돈벌이가 더 주는 만큼 무언가 더 생기기 마련입니다. 돈벌이가 더 느는 만큼 내 마음대로 내 삶을 아낄 겨를은 더 줄어듭니다.

 무엇을 누릴 삶인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랑을 아끼려는 나날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구하고 이웃이나 동무를 맺고 내 살붙이하고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고픈 꿈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찬찬히 깨닫고 나서 자동차를 장만하든 장만하지 않든 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도 깨닫지 않은 채 서둘러 자동차를 장만한다면, 애써 자동차를 장만했더라도 즐겁게 쓰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자동차가 있어야 하느냐 없어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이 아닙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얼마나 사랑하고, 나와 함께 살아갈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떤 사랑을 꽃피우려 하는가 하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갈 내 고운 목숨이니까요. 툭탁거리며 싸우거나 눈알을 부라리며 다툴 슬픈 목숨은 아니니까요. 서로 아끼면서 어우러질 예쁜 보금자리이니까요. 미움과 시샘이 가득한 고달프며 아픈 보금자리는 아니니까요.


 (2) 나비 때문에 살아간다


 ‘나비 때문에’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담은 짤막한 동화를 그러모은 어린이책 《나비 때문에》(우리교육,2003)를 읽습니다.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동화에 찬찬한 이태수 님 그림이 깃든 고운 이야기책입니다. 찬찬한 글에 걸맞게 찬찬한 그림이 붙습니다. 고운 글에 알맞게 고운 그림이 어우러집니다.

 나비 때문이든 동무 때문이든 뭐 누구 때문이든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가만히 살피면, 누구 때문에 엉망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 때문에 더 나빠진다거나 더 좋아진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내 마음이 어느 자리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입니다.


.. “임마 알아. 난 다 알아.” “어떻게 알아?” “나도 잘못했고 너도 잘못한 거야. 인제 싸우지 말잔 말이야.” “응, 그래.” 은준이는 인제 푸른 등나무 그늘에 가서 혼자 놀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여러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된 것입니다 ..  (74쪽)


 내 마음이 사랑이라면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 마음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내 넋이 믿음이라면 내 이웃이 되든 동무가 되든 살붙이가 되든 서로서로 늘 믿음입니다.

 더 밉거나 더 좋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길벗입니다. 더 반갑거나 더 못마땅하지 않아요. 하나같이 벗바리예요.

 나부터 마음을 살며시 기울일 때에 착한 삶입니다. 나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들일 때에 참다운 삶입니다. 내 손길과 내 눈길로 가만히 얼싸안을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 “아가, 아가들아, 인제 때가 되었구나. 은빛으로 부푼 너희들이 내게서 떠나갈 때가…….” “엄마,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이제 바람이 불어 오면 너희들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추며 멀리 사라져 가게 될 게다. 어느 들판일까? 산발치일까 그건 모르지만…….” “여기서 살고 싶은데요?” “아가, 엄마 말을 들어 봐라. 나는 일생을 사람들 발에 짓밟히면서도 꿋꿋이 살아왔다. 그러면서 너희들을 기른 것은 지금의 이 경사스런 이별을 하기 위해서였단다. 이별은 슬프지만 그 슬픔을 씹어 삼키고 나면, 작디작은 너희들도 나처럼 어엿한 민들레가 된단다.” ..  (104∼105쪽)


 귀뚜라미 소리가 우렁찹니다. 귀뚜라미 소리에 섞이는 다른 풀벌레 소리가 어여쁩니다. 이들 풀벌레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쉬지 않고 갖은 노래로 채웁니다. 나는 빨래를 할 때이든 밥을 할 때이든 비질을 할 때이든 우는 아이를 안을 때이든 첫째 아이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이든, 언제나 이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한결 또렷이 들리고,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내 귀와 온몸으로 젖어듭니다. 때때로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이들 모든 풀벌레 소리가 한꺼번에 잦아듭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아름답던 노래 실타래가 그만 톡 끊어집니다. 그러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다 지나가고 나면 풀벌레는 다시금 기운차게 노래하면서 맑은 소리를 곱게 나누어 줍니다.

 시골자락뿐 아니라 도시자락에도 풀벌레는 있습니다. 풀섶이 거의 없다시피 한 도시라 할 테니 풀벌레 깃들 보금자리는 거의 없겠지요. 아파트 꽃밭에 풀벌레가 깃들 만하지만 꽃밭을 볼 만하게 꾸미자며 풀약을 자꾸 치면 이곳에서조차 풀벌레는 삶을 일구지 못할 테지요.

 온통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기계 소리밖에 들릴 길이 없는 도시자락이라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메마르지 않게끔 풀벌레는 한 마리 두 마리 목숨줄을 잇습니다. 그나마 참새와 비둘기가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날갯짓 소리를 들려주고 힘겨이 살아내는 새들 울음소리를 나누어 줍니다.

 이 소리 저 소리가 내 마음으로 스며들며 내 몸을 움직입니다. 소리에 묻은 결과 무늬가 내 삶을 한결 고운 결과 무늬로 거듭나도록 돕습니다. 누구나 하루 스물네 시간을 풀벌레 소리에 폭 싸인 채 보낸다면, 온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과 사랑이 감도는 따사롭고 넉넉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너와 우리는 다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입니다.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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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처럼 아이처럼 - 자녀교육, 예수처럼 사랑하고 아이처럼 생각하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지음, 전병욱 옮김 / 달팽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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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 앞서 어른부터 착해야지요
 [책읽기 삶읽기 75]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예수처럼 아이처럼》(달팽이,2011)


 “아파 보지 않아서 모른다” 같은 말을 듣거나 “아프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같은 말을 들을 때처럼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 드는 때는 드뭅니다. 다른 어느 말보다 ‘아픔’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마음이 열리거나 닿거나 기울지 않는 모습을 깨달을 때처럼 슬픈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몸이 몹시 아프거나 무너져서 꼼짝을 할 수 없을 때, 아픈 나는 아픈 누군가처럼 아픈 눈길과 아픈 눈높이로 살아갑니다. 아픈 눈길과 아픈 눈높이로 다문 하루를 살더라도, 아픈 눈길로 무엇을 볼 수 있고 아픈 눈높이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를 깊디깊이 받아들입니다.

 아픈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때라야 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픈 눈높이로 살아내려 할 때라야 푸른 눈높이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에도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맑거나 밝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몸이 아프지 않을 때에도 어린 눈길을 느끼면서 따스히 어루만지리라 생각합니다. 곧, 나 스스로 제대로 맑거나 밝은 마음이 되어 살아가지 못하기에, 나부터 내 몸이 몹시 아파서 괴롭거나 힘들 때를 닥쳐야, 비로소 어린 눈길을 헤아리고 푸른 눈높이를 톺아보는구나 싶어요.


.. 어린 아이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데도 잘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의 요구를 내려놓는 것이 마땅합니다 … 아이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들의 기질을 강요받게 되면 아이 양육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 아이들은 배우처럼 어른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할 줄 모르며, 어떤 진지한 것을 가지고 공허하지만 즐거움을 만들어 낼 줄도 모른다 … 수많은 아이들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의 방법이 아니라 부모들의 세속적이고 인간중심의 방식으로 양육받고 있다 … 부모인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그저 성경과 종교 의식 속에서만 만나고 여러분 마음에 모시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그리스도께 이끌 수 없다 ..  (28, 36, 45, 72∼73쪽)


 돈이 넉넉한 삶, 이른바 가멸차거나 가면 삶일 때에는 나처럼 돈이 넉넉한 사람들이 누리는 삶을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느낍니다. 돈이 없는 삶, 그러니까 가난하거나 찢어지는 삶일 때에는 나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삶을 돌아보거나 생각하거나 알아챕니다.

 자동차를 몰 때에는 자동차를 모는 다른 사람들 마음을 헤아립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를 타는 다른 사람들 느낌을 함께 나눕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두 다리로 걷는 다른 사람들 꿈을 맞아들입니다. 바퀴걸상에 앉는다든지 한 자리에 꼼짝을 할 수 없다면 이제서야 걸을 수 없는 사람들 삶을 가슴으로 아로새깁니다.

 살아갈 때에 비로소 바라보면서 느끼고 껴안습니다. 지식을 쌓으며 안다 할 때에는 조금도 바라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며 껴안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이 될 때에 ‘참다이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이 아닌 지식일 때에는 ‘껍데기를 훑는다’고 말할 뿐,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지식이 늘지, 삶이 되지 않습니다. 한 줄을 읽더라도 온몸으로 부둥켜안도록 살아내야 비로소 안다 할 만해요. 한 줄조차 못 읽더라도 온몸으로 부둥켜안는 삶이 아름다워야 비로소 안다 할 만합니다. 백 권이나 천 권을 읽는다지만, 정작 내 삶을 하나도 고치거나 바꾸지 않는다면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합니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삶을 사랑하려면, 내 삶을 꾸준히 손질하면서 날마다 거듭나는 매무새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날마다 읽는 책이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


.. 아이는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생각한다 … 아이는 방해받지 않고 행복함을 느낄 때 가장 고분고분해진다. 또한 마음이 안정감을 갖고 차분해진다 …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지 말고 설사 많은 말썽을 일으키더라도 사랑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버릇없는 행동까지도 품어야 한다 …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  (34, 38, 49, 74쪽)


 누구한테든 날마다 새로 찾아오는 하루가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든 날마다 맞이하는 새날이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즐거운 일이 가득하다면 즐거운 일이 가득한 대로 반갑습니다. 고단한 일이 넘친다면 고단한 일이 넘치는 대로 고맙습니다.

 돈 500원이 없어 쩔쩔매는 살림은 돈 500원이 없어 쩔쩔매면서 반갑습니다. 돈 100만 원이 없어 괴로운 살림은 돈 100만 원이 없어 괴로우면서 고맙습니다. 보일러에 기름이 가득해 걱정없이 방바닥을 덥힐 수 있는 살림은 걱정없이 겨울나기를 하는 대로 반갑습니다. 애틋한 옆지기하고 입맞추는 사람은 애틋한 옆지기하고 입맞추는 대로 고맙습니다.

 못 누리거나 덜 누리는 사람 때문에 내가 누리는 삶을 부끄러이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더 누리거나 많이 누리는 사람 때문에 내가 못 누리는 삶을 남우세스러이 돌아볼 까닭이 없습니다.

 못 누릴 때에는 못 누리는 대로 좋습니다. 더 누릴 때에는 더 누리는 대로 좋아요. 모든 삶은 늘 돌아갑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듯, 좋은 일이 있으니 궂은 일이 있어요. 좋은 일만 잇달지 않고, 궂은 일만 이어지지 않아요. 삶만 끝없을 수 없으며, 죽음만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내 삶입니다. 늘 빛나는 내 삶터입니다. 노상 싱그러운 내 삶자락이에요.


.. 그저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고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것 말고 더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 아이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자녀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교육의 목표는 언제나 지배계급을 만드는 것이었다 … 아이가 아이로 살 때 아이는 행복하다 ..  (51, 65, 76, 110쪽)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한테 ‘배움 길잡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수처럼 아이처럼》(달팽이,2011)을 읽습니다. 133쪽에 이르는 조그마한 책에 깃든 조그마하면서 단출한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하고 나눌 ‘배움 길잡이’는 얼마 안 됩니다. 아니, 얼마 안 된다기보다 꼭 한 줄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돼요.

 아이가 나중에 돈벌이를 잘 하기를 바라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너덧 살에 한글을 떼기를 꿈꾸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느 한 가지 운동경기를 뻬어나게 잘 하기를 꾀하는 일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란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가면서 아이다움을 예쁘게 누리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마음으로 듣고, 아이가 보여주는 몸짓을 몸으로 들으며, 아이가 바라보는 눈길을 내 넋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어야 사랑입니다.

 《예수처럼 아이처럼》은 ‘예수처럼 사랑하고 아이처럼 생각하라’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이런 지식 저런 사례를 알거나 따진대서 아이를 사랑할 수 없으며, 지구별과 온누리를 빚은 하늘님과 땅님 넋을 껴안을 길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밝힙니다. 참다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들려줍니다.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꿈을 보여줍니다. 아이를 낳은 어른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아이만 착하기를 바라지 말고, 어른부터 착하면 됩니다. 아이만 예쁘기를 빌지 말고, 어른부터 예쁘게 살아내면 돼요.


― 예수처럼 아이처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글,전병욱 옮김,달팽이 펴냄,2011.7.1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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