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 산하세계어린이 27
고시미즈 리에코 지음, 이시이 쓰토무 그림, 조영경 옮김 / 산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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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6 ― 우리는 다 함께 아픔 나누며 사는 이웃
 : 고시미즈 리에코,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



- 책이름 :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
- 글 : 고시미즈 리에코
- 그림 : 이시이 쓰토무
- 옮긴이 : 조영경
- 펴낸곳 : 산하(2006.9.22.)
- 책값 : 8500원



 (1) 나와 이웃 이야기


 어제는 옆지기 태어난 날. 그제는 옆지기 동생 태어난 날. 두 사람은 하루 걸러 태어났습니다. 이런 날에는 옆지기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기쁨을 나누어야 좋으니, 먼걸음이지만 전철을 타고 세 시간 거리 나들이를 갑니다.

 제 또래, 또는 제 손아래들은 거의 모두 자동차를 굴립니다. 인천에서 일산까지 전철로 가면 돌고 돌아서 세 시간이지만, 자가용으로 가면 잘 닦인 찻길을 따라 사오십 분이면 넉넉합니다. 차를 몇 번 얻어타면서, ‘차 있는 사람은 참 좋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차를 굴리고 싶지 않습니다. 차 굴릴 돈도 없지만 차를 장만할 돈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같은 사람까지 자동차를 굴리면 우리 삶터 공기는 몹시 끔찍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더욱이 우리 식구가 자동차 타고 움직일 일도 드문데, 하염없이 길 한켠에 멀뚱하게 세워져 있으면 얼마나 걸치적거릴까요.

 돌고 도는 전철길은 멉니다. 전철 걸상은 딱딱한 쇠붙이이거나 비좁습니다. 몇 해 앞서 전철에 불을 낸 사람 때문에 쇠붙이 걸상이 생겼습니다. 먼길을 가야 하는 사람은 두어 시간 동안 쇠붙이 걸상에 앉아야 합니다. 불지름은 전철에서만 할 수 있지 않고 비행기며 기차며 버스에서도 할 수 있는데, 오로지 전철만 걸상이 이 모양입니다. 공무원이나 나라님이 전철로 두어 시간 출퇴근을 한다면 전철 걸상을 이렇게는 안 만들 테지요. 전철역 걸상을 아예 안 놓거나 어쩌다 몇 군데 시늉으로 놓는 일은 없고요. 전철역 뒷간도 구석자리에 한 칸 겨우 마련해서 찾아가기 어렵게 하지 않을 터입니다. 세 시간 거리를 뒷간도 못 가며 꾹 참고 전철에서 버텨야 하는 노릇은 참으로 고단합니다. 가는 길에 몇 군데 역에서는 아직까지도 ‘간첩신고 안내방송’을 2분 가까이 큰소리로 틀어놓습니다.


.. “만져 보렴.” 바구니 안의 꽃잎들을 만져 보았더니 바짝 말라 있었따. “말린 꽃이에요?” “그래. 건조제랑 함게 신문지 사이에 끼워 두면 예쁜 색이 그대로 남게 돼. 하늘도 모르게 내리는 눈을 담아 두면 행복도 여기에 그대로 남게 될지 모르지.” “하늘도 모르게 내리는 눈이 뭐예요?” “흩날리는 벚꽃잎을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단다. 그 사람이 가르쳐 주었어.” 아주머니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더 있어. ‘하늘도 모르는 비’라는 게 뭔지 아니?” 아주머니가 물었다. “뭘까요? 아, 분수?” “틀렸어. 아무도 모르게, 남몰래 살짝 흘리는 눈물을 그렇게 말해. 예쁜 말이지?” ..  (31쪽)


 전철을 타며 책을 읽습니다. 먼저 《마음의 조국, 한국》(범우사,200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외로운 아이로 자랐다가 버림받아 길에서 쓸쓸히 죽을 뻔한 글쓴이는, 어느 날 재일조선인 넝마주이 할아버지가 거두어 주어서 길에서 얼어죽지 않게 되고, 스물이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글(일본글)을 배워 자기 이름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야간중학교에 다니며 ‘무기가 되는 글과 말’을 처음으로 깨닫고는, 자기처럼 배울 기회가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교육 혜택을 누려야 하지 않느냐면서 ‘야간중학교’ 운동을 펼칩니다. 그러면서 자기 목숨을 건져준 넝마주이 할아버지 고향인 한국(조선)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는 이야기를 책 하나에 담습니다.

 용산에서 잠간 내려 뒷간에 들른 뒤, 다시 전철을 타고 종로3가, 그리고 내처 3호선으로 대화역까지. 이제는 두 번째 책을 꺼냅니다. 제국주의 일본시대부터 일제가 저지른 짓을 슬퍼하던 한 사람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쓴 글을 모은 《반달의 노래》(1977)라는 책. 글을 쓴 할머니는 쭈그렁 늙은 나이가 되었어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적어 놓아야 할 이야기가 많다면서 이와 같은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얼마나 많은 모습을 보셨겠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겪고 스치고 만나고 어울리셨겠어요. 좋은 만남이 있었을 테고 슬픈 만남이 있었을 테지요. 오랜 세월 겪어낸 그 이야기를 차곡차곡 풀어놓아 준다면, 지난 세월을 몸으로 겪어 보지 못한 우리들이지만, 이 조그마한 책 하나를 넘기면서 눈물이 핑 돌거나 슬며시 웃음이 묻어날 수 있겠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젊은 넋과 얼한테 당신 모든 땀과 피를 책 하나에 남겨 놓습니다.


.. “결혼식 전날에 큰비가 내려서 여기 도랑이 넘쳤단다. 사진관도 물이 차서 이층에서 사진을 찍었지. 길이 온통 물바다여서, 갈 때 올 때 우리 남편이 배를 저었단다. 그게 가장 재미있었어.” “그런데 쇼고 할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시네요.” “전쟁을 할 때여서 그럴 거야.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남편에게 곧바로 소집영장이 왔단다. 소집영장이라는 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되어 전쟁이 나가라는 명령이야. 막 결혼을 했어도, 아기가 있어도, 병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형편이라도 젊은 남자라면 다른 나라 전쟁터까지 가야 했어. 그땐 그랬단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사실은 모두 부드럽고 착한 사람들이었어.” ..  (44∼45쪽)


 전철 옆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몸을 비빕니다. 조금이라도 당신 앉은 자리가 넓기를 바라면서 옆으로 비빔질을 합니다. ‘뭐여?’ 하는 마음으로 꿈쩍을 않다가, ‘그래, 고 1센티미터가 그리도 그립더냐?’ 하는 마음으로 옆으로 옮겨 앉습니다. 책을 읽으며 웅크리던 몸이 더 웅크리게 됩니다. 덩치는 나보다 작으면서 더 넓게 앉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란, 참.

 자동계단을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계단이 아닌 자동계단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제 앞으로 슥슥 지나갑니다. ‘사람 앞으로 함부로 지나가지 말라’고 배운 적이 없을까? 젊은 사람도, 어린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다른 사람 가는 길을 그렇게 막으면서 가고 싶을까? 몇 초나 더 빨리 간다고.

 대화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가 멎을 때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루루 달려듭니다. 이웃사람한테 자리를 내어주고 살며시 기다리는 사람을 못 봅니다. 아주 드물에, 타는문 앞에서 법석이면서 먼저 타려고 하는 사람들 뒤에 떨어져서 맨 나중에 타는 사람을 봅니다. 백에 하나쯤? 또는 이백에 하나쯤? 모두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공질서를 배우지 않았는가.

 버스는 잘 달립니다. 참 빠르게 잘 달립니다. 굽은길을 돌 때에도 빠르기를 줄이지 않고, 정류장에 닿을 때는 확 멈춥니다. 퍽 드문드문 느긋한 버스를 만납니다. 그렇지만, 버스를 타고내리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빨리빨리 제 갈 길을 가고 싶어할 터이니, 버스 모는 분들이라고 얌전하거나 다소곳하게 차를 몰지는 못하겠구나 싶습니다.


.. “엄마는 고치에 다녀와야 해. 이모부가 강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대. 그 아들이, 그러니까 사요코한테는 이모 아들이니까 이종사촌이네. 그 아이가 충격 때문에 병이 난 거 같아.”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 결국 외톨이가 되고 말았어. 그래서 엄마는 시골에 가야 해. 알았지?” 엄마는 그 아이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다케시 오빠야?” 이렇게 묻자 엄마는 순간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  (74쪽)


 옆지기네 식구들과 저녁을 함께 먹은 다음,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오는 사람들이 얼굴에 화장품을 떡바르는 이야기, 예뻐 보이지만 알고 보니 뜯어고친 얼굴이구나 하는 이야기, 최진실 씨 나이가 얼마쯤 되었을까 하는 이야기, 연예인들이 혼인하고 헤어지는 이야기, 신은경 씨가 얼굴살이 쪽 빠진 이야기 …… 옆지기 어머님이 연속극을 봐야 한다며 세 군데 것을 착착착 돌리며 함께 봅니다. 세 방송사 연속극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모두들 이야기 짜임새가 같습니다. 으리으리한 비싼 집이 있는 부자집에 사는 젊은 아이 하나와 서울 변두리에서 가난하게 사는 집 아이 하나가 서로 사랑하지만, 두 집안이 기싸움이라도 하는 듯 으르렁거리면서 비꼬는 이야기. 그런데 ‘가난한’ 집이라고 해서 나오는 사람들 집크기나 살림살이나 여러 가지를 보면, 조금도 ‘가난해 보이지 않’습니다. 집에서 된장국을 먹고 홍어찜에 막걸리를 마신다고 ‘가난한 살림’이 아닐 텐데.

 태어날 때부터 외제차만 타고다녔다고 하는 부잣집 여주인공이 ‘차면 다 똑같은 차이지, 외제차는 싫고 무슨 차만 탄다는 게 어디 있어?’ 하고 꺼내는 말은 철없는 소리를 넘어서,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말이지만, 이런 모습은 연속극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기 집 둘레만 알고, 이웃사람 삶은 모르며, 우리 삶터를 차지하는 훨씬 많은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에는 도무지 눈길을 두지 않고 혼자만 배부르고 넉넉하면 그만인 사람들한테 무슨 웃음 묻어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는지. 부잣집이라고 하며 나오는 사람들 집안살림은 죄다 ‘옛날 유럽 냄새’가 나는 모습이며, 스스로를 ‘공주나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여깁니다. 유럽 냄새 나는 물건을 쓰고 발레를 배우고 서양 차린옷을 입으면 잘나가는 사람이 될까요.


.. “엄마, 도요토미 히데요시 알아? 그 사람이 조선을 침략해서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를 베어 오게 했다던데, 정말이야?”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아버지가 조금 화가 난 듯이 물었다. “미키네 엄마가.” “그랬구나. 흠, 조선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요!” 엄마가 아버지를 흘겨보고는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건 사실이야. 일본에서 천하를 얻은 히데요시가 바다 건너 중국까지 자기 밑에 두려고 조선을 침략했단다 ……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것이 침략전쟁이라고 말하지 않지. 어느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이나 왕도 모두 거짓말을 하면서 전쟁을 한단다 …… 중요한 것은 자신만 옳다며 싸우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야 한다는 거야. 정의로운 전쟁 따위는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 엄마가 힘을 주어 말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121∼123쪽)


 엊저녁, 옆지기가 동생과 저를 이끌고 동네 이웃 몇 곳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읽고 퍽 좋았다고 느낀 책을 선물해 주자고 해서 다섯 권을 들고 왔고, 한 집 한 집 찾아가면서 나누어 주기로 합니다. 한 집은 길에서 만나서 건네고, 두 집은 아이들만 집에 있습니다. 두 집은 비어서 못 건넵니다. 아이들만 있는 집 부모님은 어디에 가셨을는지. 아이들은 집안에 박혀서 무엇을 하며 놀는지. 아파트는 썩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제법 집이 많은데, 놀이터에 나와서 노는 아이는 없습니다. 놀이터 한켠에 마련된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녁 이맘때는 시내에 나가서 흥청망청 즐기며 노는 때인지, 또는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때인지, 또는 집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끼고 노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지.

 모래밭도 있는 놀이터에서 잠깐 몸풀이를 합니다. 거님길 돌 사이사이 살아가는 개미귀신을 내려다봅니다. 새잎이 돋아나려고 하는 은행나무를 봅니다. 아직도 흐드러진 노란 꽃을 늘어뜨린 개나리를 봅니다. 개미귀신 집 옆 조그마한 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올린 민들레와 작은 들꽃을 봅니다.

 옷가게가 가득가득 모여 있는 이곳으로 자가용을 몰고 와서 옷 장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길가에 심긴 벚꽃 구경을 합니다. 벚꽃잎이 소리없는 눈으로, 따뜻한 눈발처럼 날립니다. 발밑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벚꽃에 넋이 빠져서 들꽃을 그예 밟아버리겠습니다.


.. “이영동이 시노부 누나 남편의 이름인가?” 미키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아저씨의 부모님도 여기에서 일하셨나? 그래서 아저씨가 이런 노래를 만든 걸까?” 미키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로 미키 할아버지도, 시노부 언니 남편의 부모님도 모두 강제로 끌려와 여기서 일했을까? 왜 그런 힘든 일을 해야만 했을까? ..  (167쪽)


 아이와 함께 옷 사러 나온 젊은 부부가 벚꽃을 보다가 “사쿠라가 많이 폈네?” 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며 우리 옆을 지나갑니다. 이 집 아이한테는 벚꽃이 아닌 사쿠라가 보이겠네요. 멀찍이 지나가는 젊은 아이 아버지가 “저기 고무신 신은 사람 있네?”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립니다. 슬쩍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왜 이렇게 똥배 나온 사람들이 많어?” 하고 내뱉고 싶었으나 참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 배가 꽤 뽈록뽈록입니다.

 백 군데는 훨씬 넘는 옷가게들이 장사가 될까 싶었지만, 새 옷가게는 더 늘어납니다. 앞으로 더욱더욱 늘어날까요. 연속극을 보면, 부잣집이든 가난하다는 사람들 집이든, 마루나 방 어디에도 책을 차곡차곡 마련해 둔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옷가지는 셀 수 없이 많고 장식품과 그림붙이는 촘촘히 걸려 있고 집은 집대로 널찍합니다. 마음은 가꾸지 않고 몸치레만 해야 돈 많이 벌고 이름값이 높아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마음 가꾸기란 우리가 눈길을 쏟을 데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책 하나 읽기 빠듯하도록 바쁘기 때문인가요. 책 하나 읽기 빠듯하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놀이를 즐기느라 그렇게 버거운가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몸은 얼마나 추스르는 우리들인가요.


.. 하지만 범인이 잡혔어도 사카모토 할아버지의 집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유키코 아주머니네 벚나무도 살아나지 않았다 ..  (204쪽)


 책이란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책은 이웃을 살피는 눈길입니다. 여태 몰랐던 일을 느끼게 해 주고, 이제껏 돌아보지 못한 세상을 가만히 돌아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멀디먼 남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얼핏설핏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삶터를 차분하게 되새기도록 도와줍니다. 집식구뿐 아니라 살가운 동무한테 일어나는 일을 팔짱낀 채 고개 돌리지 말라며 넌지시 알려줍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 있으나 모두들 한 마을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 우리 세상은 책하고 담을 쌓습니다. 책에 담긴 이웃사람 피땀하고 담을 쌓습니다. 책에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들 눈물과 웃음하고 담을 쌓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책으로 엮어내지 않고, 나라밖 이야기를 옮겨내기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는 가운데, 우리 삶이 녹아든 책은 가뭇없이 자취를 감춥니다.


 (2) 어른이 되어 가는 동안


 지금은 책을 가까이하면서 살아가지만, 어릴 적에는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많지는 않아도 집에는 책이 늘 있었고, 학교에도 모자라나마 학급문고가 언제나 있었습니다.


.. 나도 미키 옆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창문 반대편에 큰 도로가 있는데도 차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나도 꼭 먼지를 뒤집어쓴 궤짝이나 나무상자가 된 것 같았다. 미키가 왜 여기에 있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  (47쪽)


 반공독후감과 과학독후감 따위를 한 해에 두 차례씩은 써야 해서 반공동화와 과학동화를 자주 읽어야 했습니다. 반공동화를 읽을 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빨갱이는 나쁜 놈이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나아가고부터 억지스러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으로 저녁 열 시까지 매이고, 머리는 아주 짧게 깎아야 하고, 교사들은 당구채와 각목과 밀대자루와 야구방망이를 당차게 들고 다니며 휘두르는 한편, 남학교뿐이었던 인천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툭하면 싸움질에 동무들 괴롭히기를 보면서, 북녘을 깎아내리고 못난 나라라고 헐뜯는 일이 우습게 느껴졌습니다.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묶어 놓으니, 따분하게 문제모음 풀이에만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신문을 읽게 되고 교과서 아닌 책을 읽게 됩니다. 추천권장도서 목록으로 뽑은 100권도 찾아서 읽지만, 이 목록에 들어가지 않은 책을 하나하나 손수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찾아서 읽습니다.


.. 문득 시노부 언니와 손을 잡고 야시장에 오던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시노부 언니는 늘 미키도 데리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다 엄마들이 밤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노는 일이 많았다 ..  (111쪽)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책하고 가까이 지내지 않았어도 또래 동무와 손위 손아래 형 누나 동생하고 어울리는 가운데, 또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한테 귀여움을 받는 가운데, 또 이웃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듣는 가운데(개구쟁이 짓을 많이 해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쁨과 부끄러움을 배웠습니다. 중학교부터는 또래 동무 만나기도 힘들어지고, 한 반에서도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워집니다. 다른 아이들은 당구장에 나가고 몰래 술집에도 가고 사랑놀이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했지만, 저는 이런 놀음놀이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몸을 내돌리기 싫었고 마음을 망가뜨리기 싫었습니다.


.. “선물은 준비하지 못했어. 하지만 이거…….” 미키 엄마는 붉은 봉숭아꽃 몇 송이를 뜯더니 꽃잎을 짓이겼다. 그러고는 시노부 언니의 손톱 하나하나에다 꽃잎을 정성스럽게 문질렀다. 시노부 언니의 손톱은 발그레한 불빛이 켜진 듯 예쁜 붉은색이 되었다. “고마워요, 아주머니.” “봉숭아는 생명력이 강한 꽃이야. 그래서 시들어도 금방 씨앗에서 싹이 나와 한여름에 두 번씩 꽃을 피우지. 우리 고향에서는 여름이 되면 어느 집에서나 봉숭아가 가득 핀단다. 불 타듯 아름다워서 …….” ..  (127쪽)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어머니가 하는 여러 가지 부업을 형하고 거듭니다. 국민학교 때에도 거들었지만, 이때에는 신문돌리기를 거들고, 아랫집 아주머니 우유돌리기를 거듭니다. 그리고 중3 때에는 윗집 아이 과외를 해 주며 적으나마 제가 쓸 돈을 법니다.


.. 나는 꾸러미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자전거 열쇠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다케시 오빠가 빌려 왔다는 자전거에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다. ‘사요코에게. 중고이지만, 첫 월급 탄 돈으로 어제 샀어. 다케시가.’ 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오빠……!’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오빠! 오빠! 오빠!’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나를 두고 가지 마! 오빠, 날 두고 가지 마!’ ..  (209쪽)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나마 방학 때 하던 신문돌리기를 못합니다. 여느 날에는 중학교 적보다 오랫동안 학교에 붙잡히니 어머니 부업 거들기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한 주에 두 차례씩, 학원 가는 길에 한 시간쯤 짬을 내어 책방 나들이를 하고, 주말에 인천 시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때에도 서너 시간씩 옛 신문 읽기와 묵은 잡지 읽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헌책방 책맛을 알게 되어, 고2 때부터는 주말과 명절에는 헌책방에 파묻혀 책이 이끌어 주는 길로 몸을 맡기면서, 학교와 집이라는 울타리에서는 도무지 만날 길이 없는 사람들을 책을 거쳐서 만납니다.

 제가 겪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제가 보지 못한 일을 본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들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3)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라는 이야기책


 꼭 세 해에 걸쳐서 읽은 이야기책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를 덮습니다. 덮고 나서 한참 동안 숨을 길게 내쉬고 하늘을 봅니다. 옥상마당에 올라 햇볕을 쬐면서 바람을 맞아 봅니다. 넓게 펼쳐져 보이는 동네 골목집들 지붕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지금은 아직 그대로 있기에 지붕이 두루 보이는 동네 골목집들입니다. 그러나 머잖아 이곳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또 ‘도시환경정비’라는 이름으로, 또 ‘주거환경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싹 사라져 버리면, 우리 집 옥상마당에서 수봉공원 있는 데에까지 바라보던 모습은 끝입니다. 예전에는 이 옥상마당에서 자유공원이나 인천 앞바다까지 내다보았을 터이지만, 이제는 새로 솟은 엄청난 아파트와 갖가지 건물 때문에 막혀서 보이지 않습니다. 머잖아 태어날 우리 집 아이는, 이 집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는지. 나는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무엇을 보도록 하고 무엇을 느끼도록 하고 무엇을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을는지.


.. ‘내가 꾼 것은 그냥 꿈이 아니야. 언젠가 어딘가에서 정말로 보고 들은 것이 보고 싶은 얼굴이 되어 나타난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꿈의 조각들이 모여들면서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눈이 빨갛게 되도록 울던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요코, 이리 오렴, 안아 줄게.”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  (98쪽)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에 나오는 사요코는 곧 중학생이 되는 초등학교 어린아이입니다. 훨씬 어려서는 미처 모르고 있었으나, 식구들 가운데 자기한테만 갓난아기 적 사진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며 곧잘 어머니한테 자기 어린 날을 여쭙곤 하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합니다. 가끔 꾸는 꿈에 낯설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낯설지 않은 아저씨와 오빠를 만나고, 오빠 이름을 듣습니다. 어렴풋하던 꿈속 모습은, 차츰차츰 환해지면서, 지금 자기를 길러 주고 있는 부모는 친부모가 아님을 시나브로 느낍니다.

 이러는 가운데 자기가 살아가는 조금 가난한 골목집에서 이웃사람들, 그러니까 이웃 어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배웁니다. ‘나이에 걸맞는 슬기’를 이웃 어른들한테 익힙니다.

 그리고, 자기 친오빠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찾아와서 말없이 주고 간 선물(자전거)을 받고는, 여태껏 흐릿하게 어려 있던 자기 그림자를 또렷하게 깨닫습니다.


.. 이 작품은 내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 거리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만났고, 아픔을 겪었습니다. 나는 그 거리에서 삶과 죽음을 보았고,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배웠습니다. 나는 그 거리만이 지니고 있던 슬픔의 깊이와 삶의 소중한 기쁨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1960년대가 이야기의 배경이지만, 잊어서는 안 될 그 시절의 가치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  (214쪽 / 글쓴이 말)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를 쓴 분은 두 부모를 두었습니다. 낳은 부모와 기른 부모. 또한, 낮은자리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동네에서 이웃사람과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이 작품,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에는 글쓴이 고시미즈 리에코 님이 ‘자기 스스로 고를 수 없이 주어졌던’ 운명대로, 그 삶대로, 리에코 님이 찬찬히 받아들인 발자취가 담깁니다. 리에코 님이 눈물로 살았다면 이 작품에 눈물이 담길 터이고, 리에코 님이 웃음으로 살았다면 이 작품에 웃음이 담깁니다. 리에코 님이 재일조선인 역사를 어릴 적부터 하나둘 들으면서 컸다면, 이 작품에도 재일조선인 발자국이 살포시 배입니다. 이리하여, 리에코 님이 ‘서울과 부산을 물길로 이으려는 정책이 거침없이 밀어붙여지는 한국땅’에서 태어났다면, 이러한 형편을 몸속 깊이 삭이는 가운데 당신 삶을 이야기책 하나로 남겼겠지요. (4341.4.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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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데기 죽데기 (컬러판) - 작은 등불 1
권정생 지음 / 바오로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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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5 ― 내 몸이 아파서 내 이웃한테 사랑을
 : 권정생, 《밥데기 죽데기》를 읽고



- 책이름 : 밥데기 죽데기
- 글쓴이 : 권정생
- 펴낸곳 : 바오로딸(1999.8.10.)
- 책값 : 5500원



 (1) 사람 삶이란


 이웃에 사는 양조장 할머님이 당신 삶을 조곤조곤 풀어냅니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 있을 때에도 당신을 괴롭히더니, 병이 들어서 욕창까지 다 씻어 주고 닦아 주고 하는 짓을 열다섯 해나 해야 되느냐고. 참으로 괴롭고 못살겠다고 마음앓이를 하며 지내는데, 어느 날 문득, 욕창을 닦아 주는 당신보다도 아무 소리 못하고 몸에 욕창이 나며 드러누워 있는 저이가 더없이 불쌍한 사람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당신이야 몸에 욕창이 날 일 없고, 힘겨우나마 당신 삶을 이끌어가지만, 병자리에 누운 사람은 그저 아기처럼 받아먹고 씻김받으면서 지내야 하는데, 정작 불쌍하고 괴로운 사람은 누구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 “이 약초는 아주 깊은 산에서 캔 것이니 딴 데 것보다 갑절은 받아야 하오.” 할머니는 아주 당당하게 값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약초 값이 지난 장날보다 떨어졌습니다.” 장사꾼도 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그렇게 말했습니다. “얼마 줄 건가요?” “삼만 원 드리지요.” “싫소. 오만 원은 받아야 하오.” “삼만 원도 비싼데 오만 원을 달라면 이 물건 팔기는 글렀어요.” “오만 원도 싼데 삼만 원이라니 당신 이것 사기는 글렀소.” 할머니도 지지 않고 맞받았습니다 ..  (9쪽)


 그제, 도서관에 ㅈ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님이 찾아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해묵은 사진첩을 함께 넘겨봅니다. 박정희 독재정권 때 왼팔 노릇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 집안에서 나온 사진첩입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리던 권력을 누리던 ㅈ씨 집안에서 사진첩이 세 상자 나왔고, 저는 이 가운데 셋째 상자를 헌책방에서 장만했습니다. 앞 두 상자에는 어떤 사진이 깃들어 있는지 모르지만, 셋째 상자를 열어 보았을 때, ㅈ씨가 어떤 모습과 매무새로 권력 단맛을 실컷 누렸는지 남김없이 드러납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스무 권이 넘는 사진첩 가운데에는, 1960년대 국가대표 테니스 여자선수를 시골로 불러서 시범경기를 치르고 저녁에는 술잔치를 한 다음, 이튿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 사진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사진 옆에는 ㅈ씨 비서가 빼곡한 글씨로 권력 앞잡이를 우러르는 말을 달아 놓습니다.

 그러나 ㅈ씨는 이제 죽어서 이 땅에 없습니다. ㅈ씨 딸아들은 이 땅에 있을까요. 이 땅 어디메쯤에서 아버지 권력을 물려받아서 한 자리 큼직하게 차지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당신 아버지 발자취가 물씬물씬 담긴 이 사진첩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 나라를 떴을까요.


.. “똥통에서 한 달 만에 건져내어 이번에는 깨끗한 개울물에 한 달 동안 담가 뒀지. 아무리 원수를 갚아야 할 달걀귀신이지만 물처럼 깨끗하고 정직해야 하니까. 너희는 그러니까 저 흉측한 인간들처럼 비겁하거나 더러워서는 안 된다. 원수를 갚아도 정당하게 갚고 깨끗하게 행동해야 한다, 알았지?” “예!” “예!” 밥데기 죽데기는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16쪽)


 포근한 사월 날씨를 느끼는 하루하루입니다. 삼월 들어 확 풀렸던 날씨가 이레 남짓 다시 쌀쌀해졌으나, 사월을 넘기면서는 내내 포근합니다. 비를 뿌린 뒤에도 따사롭고 먹구름이 끼었다가 걷히는 날에도 따뜻합니다. 동네 골목길 꽃그릇에 늦철쭉이 피어 있고, 벚꽃도 흐드러지려고 합니다. 손바닥 만한 텃밭은 골골이 잘 갈려서 나물씨가 심기고, 벌써 새싹이 오른 텃밭도 보입니다.

 이제는 옥상마당에 책걸상을 올려놓아도 되겠구나 싶어서, 아침나절에 책상 하나 걸상 둘 올려놓습니다. 저는 도서관을 지키고 옆지기는 옥상마당에서 햇볕을 쬐면서 글을 씁니다.

 한참 일을 보다가 어깨가 뻑적지근해서 살림집으로 올라갑니다. 찬물로 머리를 감고 이불 빨래를 하나 담가 놓은 뒤 웃도리 빨래 하나를 해치웁니다. 탁탁 털어서 옥상마당 한쪽에 걸어놓습니다. 햇볕이 좋아 금세 마르겠습니다.


.. 할머니는 화가 나서 주먹으로 순경 아저씨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오십 년 전에 죽은 걸 지금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러세요?” “오십 년 전에 죽은 건 아무 소용 없다는 거요?” “아무리 흉측한 살인범도 삼십 년만 지나면 시효가 끝나 버립니다.” “시효가 뭐요?” ..  (44∼45쪽)


 덮고 자는 이불 한 채를 방에서 꺼내어 담벼락에 널어놓습니다. 담벼락 한쪽에 비둘기똥이 굳어 있습니다. 깨진 벽돌을 주워서 북북 벗겨냅니다. 마지막으로는 손바닥으로 쓱 닦습니다. 이불을 얹고 벽돌 둘을 올려놓습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전철이 건너편으로 지나갑니다. 나도 듣고 옆지기도 듣고 배속 아이도 듣는 전철 소리입니다.

 그제는, 옆지기 배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발차기를 해서 밤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어제는 아직 발차기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직 배속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어미가 따순 햇볕을 받으면서 느긋하게 봄날씨를 즐기고 있는 동안에는, 작은 목숨붙이도 따순 햇볕과 봄날씨를 느긋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 사는 동네에 공장이 많아서 공장 매연을 우리들이 쐬어야 한다면, 우리 어린 목숨도 이 공장 매연을 쐬어야 합니다. 우리 사는 마을에 자동차가 많이 드나들어서 자동차 빵빵 소리와 배기가스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우리 어린 목숨도 이 빵빵 소리와 배기가스를 남김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버섯과 시금치를 볶고 무쳐서 먹은 아침밥은 우리한테 피와 살이 되는 한편, 새로 자라나는 아이한테도 피와 살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디디고 살아가는 이 터전에서 맑은 바람을 쐬고 밝은 햇볕을 쬘 수 있다면 어린 목숨한테도 맑은 바람과 밝은 햇볕이 스며들 테고, 지금 우리가 디디고 지내는 이 땅에서 매캐한 바람과 찌뿌둥한 햇볕만 쬘 수 있다면 어린 목숨한테도 매캐함과 찌뿌둥함이 고이 파고들 테지요.


.. 늑대 할머니는 울고 있는 할머니 손을 꼭 잡았습니다. 늑대 할머니가 이렇게 사람 손을 따뜻하게 잡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할머니들이 이런 일을 숨기고 있다가 몇 해 전부터 세상에 알렸지요. 못된 짓을 한 일본 군인들을 고발하고 원수를 갚고 싶었지요. 하지만 지나간 일이 그리 쉽게 되나요. 거리에서 할머니들이 깃발을 들고 일본이 저지른 못된 짓을 사과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들은 척도 않고 있어요.” “맞아요, 원수 갚는다는 건 쉽지 않아요.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하면 당한 사람만 가슴에 한을 품고 살 수밖에 없어요. 아아, 이제 알았어요!” ..  (122쪽)


 아침을 먹다가 생각했습니다. 어제 송현시장에 가서, 버섯 한 근 이천 원에 시금치 천 원어치를 장만했는데, 어제 저녁밥과 오늘 아침밥으로 버섯은 다 먹고, 시금치는 반쯤 남았으니 두 사람 먹는 한 끼에 천 원쯤 치였나. 가스와 물과 쌀을 빼고, 나중에 숟가락 하나 더 놓아야 한다면 한 끼니에 얼마쯤 치이게 될까.

 봄부터 가을까지는 여러 가지 나물을 실컷 즐기면 되고, 올겨울에는 어떤 푸성귀로 밥거리를 삼으면 좋으려나. 천기저귀 얼마쯤은 이웃집 할머니가 선물해 준다고 했지만,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중앙시장에서 기저귀천을 떼어와야겠고, 앞으로는 빨래가 세 사람 몫일 테니 비누도 많이 들겠지. 겨울에는 보일러를 돌려야 할 텐데 올겨울 기름값은 더 올라갈 텐데, 지금이라도 일찌감치 기름을 받아놓아야 할까.

 오늘 날아온 전기값 고지서를 보니 3층 도서관은 51kw 3630원, 4층 살림집은 50kw 3610원. 겨울에는 냉장고를 안 돌려도 되었지만 이제 슬슬 돌려야 할까. 아니, 올해에는 여름에도 아예 냉장고 없이 나 볼까. 그런데 냉장고를 돌리지 않으면 된장은 어찌하지. 된장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지금은 옆지기가 밥을 하면 나는 빨래를 하면 되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밥과 빨래를 혼자 맡아야 할 텐데, 기저귀 빨래를 밀리지 않고 해낼 수 있을까.


.. “헤어지기 싫으면 우리하고 같이 솔뫼골로 가서 살자꾸나.” 늑대 할머니가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솔뫼골엔 가고 싶지 않아요.” “왜 싫으냐? 이 시끄러운 서울보다는 훨씬 좋지. 거기는 자동차도 없으니 차에 치으는 일도 없고, 땅을 갈고 열심히 농사지으면 먹을 걱정 안 해도 되고, 공장 같은 데서 쫓겨나지 않아서 좋고.” 늑대 할머니가 이렇게 점잖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어머니는 아직 서울에서 할 일이 있어요.” ..  (137쪽)


 이웃집 할머니들 이야기를 곰삭이고, 옆집 아주머니들 젊었을 적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우리 어머니 젊었을 적을 떠올려 봅니다. 세탁기가 있다고 해서 집일을 덜지 않습니다. 세탁기가 옷을 더 깨끗이 빨아 주지 않으면서 물과 전기는 물과 전기대로 많이 먹습니다. 우리 두 식구, 앞으로 세 식구는 먹을거리를 쟁여 놓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장 나들이를 하면서 바구니 반쯤 채울 만큼만 푸성귀를 사다가 먹으니, 잘하면 도시에서도 냉장고 없이 거뜬히 보낼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기 옷이 걱정이지만, 송림동에 있는 재봉틀집에 가서 발디딤 재봉틀이 얼마쯤 하는지 여쭈어 보고, 형편이 되면 들여놓을 생각입니다. 우리가 입던 옷을 치수 줄여서 아이한테 입히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기를 키워낸 동무한테 얻어도 되고. 무엇보다도 겨울에 몹시 추운 집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일이 근심인데, 옷상에 작은 툇마루 같은 칸막이를 하나 만들어 볼 수 있을까. 벽에 스티로폼을 두 겹으로 대어 볼까. 바닥에도 스티포롬을 깔고 깔개나 담요를 얹어 볼까. 창문을 모두 틀어막고 지내야 할까.


 (2) 사람과 사람 아닌 목숨


 새끼 길고양이를 거두어서 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다가, 어느 만큼 자라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다고 느껴지는 때에 길에 풀어놓았습니다. 산업도로 예정터라며 파헤쳐 놓은 땅에 수풀이 우거져 있고, 동네사람들 마음씀이 너그러워서 길고양이들마다 살이 토실토실합니다. 동네 밥집에서는 남은 밥을 따로 그릇에 담아서 길고양이한테 주기도 합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마주오는 길고양이를 으레 만납니다. 깜짝 놀라며 자동차 밑으로 기어드는 녀석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길가 여느 집 대문 밑으로 들어가는 녀석이 있습니다. 총총총 발걸음을 옮기며 샛골목으로 접어드는 녀석이 있고, 껑충 지붕으로 뛰어올라간 뒤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녀석이 있습니다.

 길개는 드물고 길고양이가 많습니다. 우리가 풀어놓은 길고양이를 다시 만나기도 하는데, 길고양이답게 흙먼지를 온몸 가득 뒤집어쓴 채로 돌아다닙니다. 길고양이 주검은 아직 구경하지 못했는데, 길고양이는 어디에서 깃을 들이고 어디에서 숨을 거두고 있을는지.


 .. “이 세상 인간들이 우리 짐승들을 어떻게 했는지 아니? 활로 쏘아 죽이고 총으로 쏘아 죽이고, 덫을 놓고 독약을 놓고 산 채로 잡아다 우리 안에 가둬 놓고 잡아먹고 부려먹고 온갖 나쁜 짓을 다하고 있단다.” “……” “너희는 아직 몰라서 그렇지, 내일이라도 나하고 현장에 가면 그걸 알 수 있을게다.” ..  (20쪽)


 틈을 내어 서울 나들이를 할 때에도 길개나 길고양이를 보곤 합니다. 서울도 동네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어쩐지 서울에서 살아가는 길개나 길고양이는 가엾어 보입니다. 인천에서 갈매기와 함께 하늘을 누비는 비둘기와 달리, 서울에서 땅걸음만 디디는 비둘기를 보노라면, 얘야, 너도 우리 동네로 와서 살지 않으련? 하고 부르고 싶습니다. 틀림없이 먹을거리는 서울이 넘칠 테고, 버려지는 밥찌꺼기도 많을 텐데, 그냥 쓰레기차가 주욱 실어가기만 하나요.

 밥그릇을 나누는 일이 평화이고, 밥그릇을 혼자 차지하는 일이 전쟁이라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밥그릇 나눔이란, 다 먹지 못해서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밥그릇 독차지는 홀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면서도 이웃과 나누지 않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남녘사람은 남녘사람대로 홀로 다 먹지 못하고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면서 북녘사람하고 밥그릇을 나누지 않습니다. 남녘사람끼리도 밥그릇을 나누지 않고, 한뎃잠을 자는 떨꺼둥이한테도 밥그릇을 나누지 않습니다. 한뎃잠은 아니지만 달셋방에서 쪽잠을 자는 가난이한테도 밥그릇을 나누는 일이란 드뭅니다.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많은 돈을 두 손에 움켜쥐고 돌아간다고. 이웃들한테 기꺼이 나누어 주는 자기 재산은 세금공제도 된다고 하는데, 그냥 세금 더 내면 내지 이웃나눔은 달갑지 않은 일인지.


.. “그래요. 그렇게 많은 짐승들이 죄없이 죽었으니 슬픈 일이죠.” “그런데 어째서 그 사마귀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란 거죠?” “그 할아버지가 좋은 분이라는 건, 그렇게 나쁜 짓을 했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 아파하고 계시니까요.” “?” “세상엔 그보다 더 끔찍한 죄를 짓고도 뉘우치기는커녕 도리어 큰소리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뭐, 아무리 뉘우친들 죽은 짐승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  (81쪽)


 지난해 우리 집 옥상마당 담벼락에 까마중이 자라서, 우리 집에 놀러온 사람한테 입가심거리가 되기도 하고,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참새나 비둘기한테 먹이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옥상 담벼락만이 아니라 창턱에도 까마중이 자라던데, 올해에도 씨를 뿌려서 옆자리에 새로운 풀줄기를 올릴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귤이나 양파 따위를 벗기며 나오는 껍데기를 모아서 옥상 한켠에 쌓아놓습니다. 나중에 거름으로 만들려고. 동네 비둘기들은 요 껍데기더미로 찾아와 자기한테 먹이가 될 만한 것이 있는가 콕콕 집곤 합니다. 저 비둘기들을 생각해서 껍데기더미 옆에 헌 그릇 하나 놓고 쌀 한 줌씩 올려놓을까 싶습니다.


.. “에고 답답해라. 그래, 그런 길고 복잡한 역사 같은 건 그만두고, 그래, 남한 군인하고 북한 군인하고 누가 못된 짓을 했냐?” “그게 말이에요, 누가 잘못한 걸 설명 못 해요. 사람들은 누가 잘못하고 누가 잘했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누가 더 힘이 센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 알았다!” ..  (129쪽)


 인천시에서 산업도로를 닦는다며 밀어놓은 땅 한켠에 동네 분 누군가가 울타리를 치고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지난주에 요 텃밭을 보았습니다. 줄맞추어 곱게 갈아 놓은 텃밭을 보면서, 이 골에는 무엇을 심고 저 골에는 무엇을 심었을까 궁금합니다. 파헤쳐진 한쪽 귀퉁이에 또 어느 분이 다른 텃밭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로도 가 보고 그분은 무엇을 심었는가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두어 평쯤만 땅을 일구어 콩이라도 심어 볼까 생각해 봅니다. 자동차 있는 동네 분들은 이 너른 터를 주차장처럼 쓰고 있는데, 주차장으로 쓰기보다는 동네사람 너도나도 찾아들면서 텃밭으로 일구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이따가 시장 나들이를 할 때 자리를 한번 봐야겠습니다.

 시장 나들이를 하는 김에 송림초등학교 옆길로 가면서, 그곳 골목집 앞에서 기르는 해바라기밭에 올해도 해바라기를 심으셨나 살펴봐야지요.


 .. “아니에요, 저는 사람보다 늑대가 더 좋아요. 훨씬 착하게 살고 있잖아요.” “자꾸 그런다고 내가 속을 줄 아니?” “정말이에요. 늑대도 그렇고 너구리도 오소리도, 산에 사는 짐승들은 사람들처럼 총도 안 만들고 폭탄도 안 만들고 전쟁도 하지 않잖아요. 자동차도 안 만들고 학교도 없고 교회당도 절간도 안 만들어도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잖아요.” “……” “쓰레기도 안 버리고 농약도 안 치고, 모두 깨끗하게 살고 있어요.” ..  (141쪽)


 (3) 《밥데기 죽데기》라는 이야기책


 지난해 봄 5월 17일에, 경상북도 안동땅에 살던 권정생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찾아간 하늘나라는, 할아버지 어머님이 먼저 가 계신 하늘나라이고, 할아버지 형제들이 먼저 찾아간 하늘나라입니다. 할아버지 살던 마을에 함께 살던 이웃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일찌감치 찾아갔던 하늘나라이며, 할아버지네 집 앞 마당에 자라던 푸성귀가 할아버지 밥거리가 되면서 찾아간 하늘나라이기도 합니다.

 풀을 먹어야 살 수 있는 토끼가 하느님처럼 이슬과 바람만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 뒤 찾아간 하늘나라입니다. 한 핏줄 한 겨레를 넘어서 한 식구요 한 이웃이며 한 동무였던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미워하고 손가락질하면서 다 함께 찾아간 하늘나라입니다. 할아버지가 찾아간 하늘나라는 우리들이 아직 발을 붙이고 있는 땅나라처럼 싸움이 없을까요. 다툼질이 없을까요. 빼앗음과 괴롭힘은 없을까요.


.. “안 되겠어요. 119에 알려야겠어요.” 할머니는 도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산동네 이웃들이 또 바빠졌습니다. 모두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한꺼번에 바빠지는 것입니다 ..  (85∼86쪽)


 권정생 할아버지는 몸은 몸대로 힘겹고 마음은 마음대로 무거워서, 여느 사람들처럼 연필을 손에 쥐지 못하면서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댁에 찾아온 손님하고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면 그예 힘이 다 빠져서 그 뒤로 하루 내내 죽은 듯 쓰러져서 쉬어야 겨우 일어날 힘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늙고 아픈 이한테 한 말씀 올리는 이보다 한 말씀 얻으려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때까지도 고달프게 보냈습니다.

 원고지 한 장 채우는 데에 꼬박 하루를 들여도 힘들다고 하셨는데, 할아버지한테 힘이 넘쳐서 날마다 원고지 열 장씩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우리들이 웃음과 눈물로 가슴으로 담아내고 받아들이는 이야기책에 몇 권이나 나왔을까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힘이 넘치고 아프지도 않은 권정생 할아버지한테는 아무런 이야기책이 못 나오지는 않았을까요.

 내 몸이 아프면서 내 이웃 아픔을 느끼는 삶이었기에, 내 몸이 무너지면서 내 이웃 무너짐을 깨닫는 삶이었기에, 힘들고 벅찬 마지막때까지 피를 뱉으면서 원고지 한 칸 두 칸을 채워 나갈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밤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울긋불긋 반짝이는 불빛이 눈이 부시게 예뻤습니다. “서울의 불빛이 참 예쁘지?” “정말 예뻐요.” “먼 곳에서 보니까 그런 거야. 저렇게 아름다운 불빛 속에서 지금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잖니?” “……” “지금도 어둡고 추운 지하철 시멘트 바닥에서 떨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  (160∼161쪽)


 더 많은 글도 좋고 더 많은 책도 좋습니다. 더 많은 돈도 좋으며 더 많은 이름값도 좋습니다. 더 많은 물질문명과 더 많은 전기제품도 좋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누리는 우리들은 서로서로 얼마나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가요. 달콤하게 와닿는 좋은 것을 혼자서만 많이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는가요. 나한테 달콤하다면 내 이웃한테도 달콤할 텐데, 이웃과 함께 달콤함을 맛보기보다는 홀로 달콤함에 푹 젖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달콤함에 깊이 빠져든 나머지, 씁쓸함과 서운함과 안쓰러움과 고달픔이란 무엇인지 잃어버리거나 놓치는 가운데, 나 스스로 못 느끼는 씁쓸함과 서운함 들을 내 이웃이 온통 떠안고 있지는 않은지요. (4341.4.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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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 보림문학선 5
채인선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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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해 2월, 어느 잡지사에서 책추천 글을 부탁해 와서 거의 억지처럼 써서 보낸 글... 씁쓸한 마음은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라서 걸쳐놓는다.)

 

네 가지 책 모두 그다지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기가 참 고달팠습니다. 그래도, 이 책들 모두 출판사에서는 정성을 들여 엮었을 텐데, 이 책을 손에 쥘 아이들이 어떻게 읽을지까지는 좀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땀방울을 헛되이 써 버렸다고 할까요. 이 가운데 하나 가까스로 골라서 추천하는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확 눈에 뜨이는 책이 있다면, 선정기도 마감에 늦지 않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오늘날 삶으로 녹여내지 못한 아쉬움


 설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올해에는 쉬는날이 짧아서 길이 많이 막힐까 걱정들을 했다지만, 정작 명절 동안 길은 거의 안 막혔다고 느낍니다. 저는 서울부터 자전거를 타고 음성에 계신 부모님 댁으로 갔는데, 여느 때보다 조금 늘었을 뿐, 딱히 명절 느낌이 나지 않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은 명절이라고 해서 길이 더 막힐 만하지 않을 만큼 전국 구석구석에 넓은 길이 많이 뚫렸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고속도로가 많이 늘었고 고속국도도 많이 늘었으며 일반국도도 참 많이 늘었습니다.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노라면 웬만한 시골길(지방도로)은 차가 아주 뜸합니다. 일반국도와 고속국도도 차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새길을 놓는 공사는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굳이 고속철도를 놓지 않아도 서울과 부산 사이를 빠르게 오갈 수 있는 좁은 땅인데, 고속철도까지 놓았습니다. 이런 판이니 명절이라고 길이 막힐 일이 없어요. 한편, 이렇게 길막힘 없이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 둘레에 자연 삶터가 그만큼 무너지거나 사라졌다는 소리요, 우리 둘레 자연 삶터가 이토록 무너지고 사라졌다는 소리는, ‘으레 떠올리는 시골집 모습과 산골짜기 경치’는 국립공원에서조차 자취를 감춘다는 뜻입니다.

 동화책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글쓴이한테는 어머니이고, 글쓴이 아이한테는 할머니가 될 분한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요즘 아이들한테 우리 삶과 문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도깨비’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도시고 시골이고 도깨비를 볼 만한 깊은 산골이 없기 때문에, 또 무시무시한 귀신 타령도 아이들한테는 씨나락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옛날이야기가 얼마나 살가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도깨비란 먼 하늘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에 늘 있던 님이고, 우리 삶을 차분히 다스리도록 이끄는 벗이기도 한 만큼, 도시문명 사회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도깨비 이야기를 빚어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억지스레 도깨비를 꾸며 보이지 않습니다. 도깨비를 그린 그림도 아이들한테는 앙증맞거나 깜찍하다고 느껴지겠구나 싶습니다. 서양 아이들한테는 요정일 테지만, 동양, 더욱이 한국 아이들한테는 도깨비입니다. 이런 도깨비 문화와 느낌을 살뜰히 받아들이도록 하면서, 어린 날 상상력과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싶어요.

 한편,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옛이야기도 아니고, 또 오늘날에 맞추어 새로 꾸민 이야기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에이, 다 지어낸 이야기잖아.’ 하면서 피식 웃을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요? 그저 할머니한테 듣는 꿈 같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참말로 자기가 사는 도시 아파트에서도 ‘옷장에 도깨비가 있지 않을까?’, ‘책상 밑에서 도깨비가 올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창문 밖에서 몰래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느끼도록 해 줄 장치나 이음고리 몇 가지쯤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도깨비 일곱 동무 이름을 성격에 맞게 재미나게, 그러면서도 퍽 알뜰히 붙인 대목이 반갑고, 도깨비들이 자기 이름에 걸맞게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놀랍기도 하면서 어울리는 모습은 아이들한테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이 서로서로 소중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겠지요. 다만, 말놀이를 느끼게 해 주려고 쓴 꾸밈말이나 시늉말은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걸맞지 않거나 얄궂은 말투나 낱말, 어렵게 쓴 낱말은 덜어내거나 다듬으면 좋겠어요. 말놀이란, 한낱 재미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거든요. 알맞는 말만 쓴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올바른 말을 쓰는 바탕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별 다섯 만점에서 별 둘을 주겠습니다. 다른 책 세 가지는 너무 볼품없어서 말할 값어치를 못 느낍니다. (4340.2.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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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숲노래 2008-07-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1
노경실 외 지음, 윤종태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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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고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 또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150km 남짓 되는 거리라 조금 멀다고도 할 수 있지만, 거리가 먼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멀면 시간이 좀더 걸릴 뿐이니까요. 이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자동차들이 너무 위험하게 내달릴 뿐 아니라, 좁은 지방도로와 네찻길 국도에서 규정속도를 훨씬 벗어난 빠르기로 씽씽 달리면서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로 접어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택시, 버스, 짐차, 자가용, 오토바이 할 것 없이 자전거를 깔보고 밀어내고 덮칠 듯이 으르렁거립니다.

 한미FTA라든지,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라든지,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할 만큼, 이런 이야기들이 신문-방송-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힘없고 짓눌리는 편’에서 나아지거나 고쳐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장애인을 따돌리는 일, 여성이 괴롭힘받는 일은 예전에 견주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봉건계급 시대와 요즘 형편을 견줄 수는 없는 노릇. 더욱이 어른들이 아이들을 힘겹게 하고 못살게 구는 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학원이며 시험공부며 숙제며 영어며 한자며, 아이들은 어마어마하게 짓눌리고 있고, 책읽기도 거의 짐처럼 주어지는 일덩이입니다.

 어른들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 평화로이 어울리며 평등하게 부대끼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것이란 차별-따돌림-괴롭힘-푸대접 따위입니다. 어린아이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서양 공주님 같은 옷을 입히며 피자와 콜라를 즐겨 사먹이는 가운데 아이들 가치관과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자리잡을까요. ‘아름다움을 보는 눈’, ‘여성과 남성은 어떠한 사람인가’, ‘사회 차별’을 얼마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는지요.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는 서양과 우리 이야기를 세 꼭지씩 골라서 ‘따돌림받고 괴롭힘받는 사람(거의 여성 눈높이에서)들 삶을 요즘 모습에 맞게 고쳐서 다시 쓴 역설 동화입니다. 군데군데 잘못 쓰거나 어렵게 쓴 말(검은 머리칼을 지닌/미소를 지었다/흑설공주에게로/점점 마음이 동하더니/하여/심해)이 보이고, 굳이 안 써도 좋을 말(가시랭이/가살맞은/고바우/관차/벼룻길/성현/묘책/만세복록)을 쓴 뒤 아래에 각주를 붙인 대목은 아쉽습니다. 이야기에 군살이 많이 붙었고, 마무리로 나아가는 단계에서 억지스러움이 엿보이지만, 속없이 그저 웃기려고만 하는 동화가 너무 판치며 오히려 아이들한테 비뚤어지거나 치우친 생각을 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반가운 작품입니다. 앞으로는 ‘역설 동화’를 넘어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이웃을 차별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얄궂은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창작동화로도 나아간다면 더 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4339.8.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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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돌보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5
재클린 윌슨 지음, 지혜연 옮김, 닉 샤랫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 돌보기》(시공주니어)를 읽는 아이들은 자기들을 돌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지금 어떠한 형편인지, 몸은 어떻고 마음은 어떠한지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이를 거의 하나만 낳아서 어린 나이부터 일찍일찍 여러 가지를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 하나를 금이야 옥이야 기르기 마련이고, 지나치게 보호한다면서 아이가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가 되어 버리게 한달까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부모와 자식 사이인데도, 서로를 깊이 살피지 못하고 겉스침으로만, 그저 바라기만 하는 대상으로만 느낀달까요.

 글쓴이 재클린 윌슨 님은 이런 현실을 잘 잡아채었고, 누구보다 아이들한테, 또 아버지와 어머니 들한테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살아가면 즐거울까, 더 나을까, 재미와 보람이 있을까를 생각하도록 이끄는구나 싶습니다. 여기에다가 결혼만큼 쉽게 이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가운데 한쪽이 없이 지내는 아이들 마음도 더 찬찬히 살피도록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책을 읽으며 좀 거리끼는 대목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좋지만, 이런 줄거리에 나오는 여러 상황이라든지, 집안살림 모습이라든지, 어른들 일 세계나 둘레 마을 모습은 우리 사회하고 많이 다르지 않느냐는 것. 요즘 우리 사회는 서양 문화나 문물이 많이 들어와서 이런 이야기도 그다지 거리낄 만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아파트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는 자연스러운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쩐지 거리끼게 됩니다. 너무 도시 중심으로, 서양 이야기 판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냐 싶어서. 그리고, 이만한 줄거리라면 굳이 번역을 해서 내기보다는, 우리 나라 동화작가들이 얼마든지 창작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출판사에서 우리 나라 동화작가들한테 창작의욕을 불태워 주거나 창작동화를 부탁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려는 마음을 차근차근 북돋우고 일구어 간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4339.11.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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