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무 카르페디엠 16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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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3 ― “돈이야 벌 수 있지만, 네 마음은 늘 ……”
 : 카롤린 필립스, 《눈물나무》


- 책이름 : 눈물나무
- 글 : 카롤린 필립스
- 옮긴이 : 전은경
- 펴낸곳 : 양철북(2008.5.26.)
- 책값 : 9000원


 (1) 무엇을 먹으면서 살고 있나


 석유값이 오르기 무섭게 나라안 기름값이 오릅니다. 한 번 올라갔던 기름값은 두 번 다시 내려가지 않습니다. 이와 맞물려 온갖 물건값이 오릅니다. 공공요금도 오르고 책값도 오릅니다. 찻삯이 오르며 전기삯 물삯 집삯 모두 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곡식값은 좀처럼 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곡식자급율’을 생각해 본다면, 모자라고도 한참 모자라서 하늘로 치솟을 법도 합니다만, 놀랍게도 곡식값은 오를 생각을 않습니다.

 농약과 비료에 찌들지 않은 깨끗한 곡식을 바라는 사람들 손길이 늘어나는 흐름을 살핀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손가락이나 쪽쪽 빨아야 하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곡식값은 오르기는커녕, 저잣거리와 할인매장에서는 떨이로 다루기도 하며 아주 싼 값으로 팔고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이면 삽니다. 굵은 무 하나도 비싸야 이천 원이지, 천 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얼갈이 한 아름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입니다. 애호박 하나에 천 원 하는 일은 드물고 둘에 천 원을 하더니, 곳에 따라서는 서넛에 천 원만 받는 가게도 있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자기 땅에서 거둔 곡식과 푸성귀를 얼마에 팔고 있으신지. 아니, 얼마나 받고 당신들 피땀을 넘겨주고 있으신지.


.. 여기 티후아나에서 눈에 띄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은 구름만 빼고는. 구름은 국경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높은 곳에서 미국 영토로 날아갈 수 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 미겔의 아이들이 담장 건너편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후안, 공 이리로 던져 보렴!” 공이 담장 위로 높이 날아서 루카의 발 앞에 떨어졌다. 루카는 공을 건너편으로 차서 돌려보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이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 모습을 국경경찰이 지켜보았다. ‘사람이 공이라면 좋겠다.’ 루카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구름이거나 비둘기라서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170, 182쪽)


 오이를 먹고 열무를 먹고 가지를 먹고 호박을 먹고 버섯을 먹고 순무를 먹고 양파를 먹고 감자를 먹습니다만, 제 손으로 기르지는 못하고 저잣거리에서 사서 먹습니다. 우리 식구 형편으로는 천 원에 오이 넷도 만만치 않은 씀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농사꾼들은 이렇게 팔아서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굶어야지요. 무너지거나.

 그러니까, 시골에서 닭을 치고 돼지를 치고 소를 치는 분들은 사료값을 한푼이라도 줄이려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잔뜩 먹입니다. 하루라도 사료를 덜 먹여야 벌이를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밥상에는 철을 잊은 푸성귀와 열매가 오르고 있는데, 우리들은 철없는 푸성귀와 열매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사서 먹으면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지, 언제까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언제까지 시골살림이 버티어 줄는지, 언제까지 우리 땅을 더럽히면서 깨끗하게 돌려놓지 않아도 되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제철을 잊은 곡식과 열매를 먹으면서, 제철 곡식과 열매 맛을 잊습니다. 이제는 곡식맛과 열매맛이 아니라 ‘곡식 이름과 열매 이름’만 배속에 넣고 머리로는 ‘무얼 먹었다’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땅과 햇볕과 물과 바람 기운을 머금은 곡식과 열매가 아닌, ‘얼마얼마짜리 곡식과 열매’를 먹었다고 받아들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수박을 먹으면서도, 아직 수박이 날 철이 아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않습니다. 수박철도 아닌데 수박을 먹을 수 있어서 ‘세상 좋아진’ 줄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수박철이 언제인지도 까맣게 잊습니다. 두 손과 온몸으로 땅에 발디디지 않고 살게 되면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땅을 잊으니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하늘을 잊으니 물이 어떻게 아파하는지, 바람이 어떻게 끙끙거리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 루카가 (멕시코에서 살던) 마을 학교에서 2학년에 다니던 일곱 살 때의 어느 날이었다. 고국 멕시코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가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부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막 배우던 그 무럽,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농장에서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  (46쪽)


 꽤 예전에 한치라는 물고기를 거의 모두 일본으로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요즈음도 일본으로 내다 팔 만큼 될는지 모릅니다만, 앞으로는 부피가 차츰 줄어서 나라안에서 먹기에도 벅차리라 봅니다. 아직까지 울릉도 앞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는다지만, 언제까지 바다가 깨끗하게 남아 있을까요.

 꽃게 값이, 참게 값이 엄청나게 비싸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바지락칼국수나 조개구이를 돈 얼마 치르면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다지만, 조개가 자랄 갯벌은 이 땅에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논밭을 만든다며 메웠다가는 공장과 아파트로 돌리고, 수 만 마리 철새가 날아드는 아름다운 갯벌이었음에도 마구 메꾸면서 공항을 짓더니, 이제는 그 갯벌터에 수십만 채에 이르는 아파트를 올려세우고 대학교까지 옮겨심고 있습니다. 소래포구도 옛말이지, 이제는 소래아파트단지입니다.

 저는 보리술을 즐겨마시고 있습니다만, 한국땅에서 자라는 보리가 얼마 없을 텐데, 또 있다 한들 한국사람이 마시는 보리술을 댈 만큼 보리가 있지도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열 해쯤 앞서, 저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건너온 쭈꾸미’를 보았습니다. 훨씬 앞서부터 베트남에서 들여왔을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한국땅에서 잡아들일 쭈꾸미로는 한국사람들 배를 채울 수 없었을 터이며, 하루가 다르게 더러워지는 한국 땅과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쭈꾸미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전거나라였던 베트남이 오토바이나라로 바뀌고 있는 이즈음, 값싼 품삯을 노리고 온갖 공장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날, 베트남도 앞으로는 쭈꾸미 내다 팔기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미국으로 건너온) 루카가 수업 시간에 뭔가 알아듣지 못하면 친구들이 사방에서 에스파냐어로 설명해 주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루카는 이 학교에 불법 체류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  (102∼103쪽)


 식품회사가 넘쳐나고, 온갖 과일주스가 새로 나옵니다. 오렌지, 포도, 토마토, 당근, 사과, 배, 키위, 망고, 파인애플, 알로에, 석류, 매실 ……. 그런데 우리 나라 땅에서 거두어들여서 만드는 과일주스는 몇 가지가 되지요. 있기나 한가요. 있을 수 있습니까.

 밀 한 알 제대로 나지 않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밀을 심어서 거둔다고 한들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시골 면내에도 빵집이 한두 군데씩 있을 만큼, 전국 곳곳에 빵집이 참 많습니다.


.. “시내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호세가 말했다. “우리가 자기들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할까 봐 두려워해. 그러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안 보는 게 좋아. 그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수확한 토마토는 맛있게 먹고, 또 값이 싸다고 좋아하지.” 페드로가 말했다. “미국사람들이 토마토를 수확한다면 부자들만 먹을 수 있을 거야. 미국사람들이 이런 저임금으로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  (64쪽)


 날마다 놀라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땅이 꺼지지 않고 하늘이 내려앉지 않아서 놀라면서 삽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좔좔좔 솟아나는데(미터기는 빙글빙글 돌 테지만), 우리 나라가 물이 넉넉한 나라가 아닐 텐데, 이렇게 물을 걱정없이 써도 괜찮은가 싶어서 놀랍니다. 돈 좀 있는 회사마다 시골에 땅을 사들여 땅속 물줄기를 뽑아들여서 돈 받고 물을 팔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한국땅에서는 지진 한 번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놀랍습니다.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고 하는 물길을 놓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사람한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는 소리가 때때로 먹혀들어가기도 하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발전소 전기를 돌려서 수도물을 끌어들이는 청계천과 같은 물길을 낸다며,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수천 억에 이르는 돈을 쓴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놀랍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도 시와 군 우두머리가 밀어붙입니다. 공무원들은 우두머리 지시와 명령을 받고 착착착 기획서를 올리고 예산안을 짭니다.

 지난달, 우리 동네 큰길가 거님길 돌이 쫙 뜯겼다가 다시 깔렸습니다. 하수도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무슨 사고가 났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자체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 예산을 써 없애려고 돌바꾸기를 했을 뿐입니다. 이런 바보짓은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퍽 예전부터 나왔으나, 비판이 있든 없든 잘못은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예 되풀이되면서 사람을 쉬지 않고 놀래킵니다.


.. “파업이 얼마나 계속될 예정이냐?” 나이가 많은 흑인 직원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2주일 동안 시위를 지속한다면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은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어쨌든 난 원칙적으로는 너희들 편이야. 30년 전에 우리도 똑같은 행동을 했지. 사람은 가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해. 특히 피부가 희지 않을 때는 말이다.” ..  (159쪽)


 저녁나절, 옆지기 다리를 주무르면서 배에 대고 이야기를 합니다. 두 달쯤 뒤면 세상에 나올 아이한테 말을 겁니다. “꽁꽁이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 무서워서 살기가 팍팍한데, 너도 참 힘들겠구나. 그러니 너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튼튼해야 하고 억세어야 한단다. 굶기지 않도록 애쓸 테지만, 너는 네 힘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한단다.”




 (2) 이 땅은 누구네 땅인가


 두어 달 앞서였나, 서울 회기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주한미군부대 병사들이 만들어서 기념으로 나누던 ‘군부대 사진첩’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 군부대 사진첩은 “미국 제2 야전포병연대 7대대” 사람들 것이었는데, 이들은 1812년부터 싸움을 치러 왔다고 부대 역사를 적어 놓습니다. 1812년에는 캐나다에서 싸웠습니다. 그 뒤 자기들이 맡은 곳에 살던 북미 토박이(인디언)를 싹 쓸어버렸다고 합니다.‘seminoles’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세미놀레스’가 미국땅 이름인지 북미 토박이 겨레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1840년대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서 이겼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 “당연하지. 멕시코사람들의 꿈은 오직 하나니까. 모두 여기로 오고 싶어 하잖아.” “틀렸어! 멕시코사람들이 미국을 똑바로 가리킬 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그 사람들 땅이기 때문이야! 이 나라에 맨 처음 살았던 주민들은 에스파냐와 멕시코사람들 그리고 인디언들이었어. 영어를 하는 백인들은 전혀 없었다고!” “우리가 1846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걸 너희는 도대체 언제 인정할래?” 조지가 고함을 질렀다. “우린 너희를 이겼어! 그게 그렇게도 알아듣기 힘들어? 국경은 전쟁을 통해 달라지는 거야. 10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불평을 하면 안 돼!” “그건 전쟁이 아니었어. 잔인한 습격이었지.” ..  (111쪽)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듯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였습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며 한국말을 찾았지만,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났어도 멕시코말이 아닌 스페인말을 쓰고 맙니다. 그나마 멕시코 문화라도 고유하게 지킬 수 없던 가운데, 백인들이 땅따먹기 싸움을 하면서 저희끼리 부딪치고 다투는 동안 멕시코 삶터는 더 무너져내렸고, 멕시코 문화는 더 찢기었으며, 멕시코 살림은 더 주저앉았습니다.


.. “…… 우린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취급받으며 살지 않을 거야. 로스앤젤레스에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는 거지. 우린 벌써 투표권을 행사하여 라티노 시장도 뽑지 않았니? 멕시코사람들, 특히 불법 체류자가 없으면 미국 경제는 무너질 거다. 누가 밭에서 토마토와 레몬을 수확하지? 캘리포니아 농장 일군의 95퍼센트는 불법 체류자들이야. 레스토랑에서 누가 음식을 나르지? 부유한 사람들의 집은 누가 청소하고, 누가 아이들을 돌보며, 누가 잔디를 깎지? 우리의 시위가 끝나면 미국사람들은 라티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한 명도 남김없이 알게 될 거야. ……” ..  (137∼138쪽)


 나라도 겨레도 문화도 살림도 차근차근 지키거나 가꾸기 어려운 멕시코에서 멕시코사람들은 ‘고향나라에서 굶어죽기’보다는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달러 벌며 살아남기’로 가닥을 잡습니다. 마침, 미국도 미국 사회에 걸맞게 노동자 일삯을 주면, 부자들이 부자놀음을 이어갈 수 없었던 터라, 허드렛일을 헐값으로 시키고 부릴 생각으로, ‘불법 이민자’를 자꾸자꾸 받아들입니다. 한손으로는 불법이니 붙잡아서 내쫓고, 한손으로는 싼값으로 일을 부려먹으려고 끌어당기고.


..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매주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라티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집회에 많이 참가할 것을 권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도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미국의 조상으로 간주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대륙에 있는 모든 백인들도 예전에는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백인들의 아메리카는 4천만 라티노와 함께할 때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 ..  (154쪽)


 한국땅으로 들어오는 나라밖 노동자들도,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멕시코사람하고 똑같은 형편입니다. 빚을 지며 통행삯을 치러 목숨 걸고 국경을 넘은 다음, 여러 해 죽을힘을 다해 돈을 모아 빚을 갚고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적어도 아이들한테 자기들과 같은 가난과 못 배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한국땅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 또한, 고향나라에 남은 아이들을 먹여살릴 뿐 아니라 더 높은 학교까지 가르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조선족이 남녘땅에 들어와 밥어미나 청소부나 밥집 아줌마 노릇을 해서 달마다 다문 백만 원이라도 벌어서 보내면(한 달에 딱 하루 쉬며 일하는 동안), 이 돈으로 자식들을 북경으로 보내어 대학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댑니다.


.. “…… 그리고 다른 그링고들도 믿으면 안 돼. 네가 여기에 불법 체류 중이라는 걸 잊지 마.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불법 외계인’이라고 불러. 마치 지구 바깥에서 왔다는 듯이. 또 사실 우리를 그렇게 취급하지. 행운을 빈다. 잡히지 마!” ..  (75쪽)


 똑같은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살갗이 하얀 사람은 쏼라쏼라 하면서 영어학원 강사 노릇을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 노릇마저 합니다. 영어 솜씨가 훨씬 뛰어나다고 해도 필리핀사람이 원어민 교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스리랑카사람이나 라오스사람 또한 영어학원 강사를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강사나 교사 노릇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싫어하겠지요. 우리들 한국사람은 스스로를 ‘아시아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티벳과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나고 네팔과 몽골에 가서 드넓은 자연에 입을 쩍쩍 벌리는 한국사람들이지만, 티벳 이주노동자와 네팔 이주노동자와 인도 이주노동자와 몽골 이주노동자를 볼 때면, 꾀죄죄하거나 더럽다거나 못났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사람들입니다.


.. 카를로스는 화를 냈다. “이건 멍청한 짓이에요! 내가 오늘 아침에 토르티야를 먹는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요?” “모든 사람이 너처럼 생각한다면 정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모부가 카를로스의 손에서 시리얼 봉지를 빼앗았다 ..  (155쪽)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요. 한국사람이 ‘세계 소식’이라면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보고 듣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미국 이야기에 쏠려 있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유럽 이야기에 모두어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언제 티벳이나 네팔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겨레붙이 문화와 사회 이야기를 들어 봅니까. 방글라데시 문화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렇게들 많이 찾아가는 인도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역사는 어떠한지, 베트남과 버마 살림살이가 어떠한지를 곰곰이 헤아릴 일이 있는지요. 인도네시아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말레이지아사람이 무엇을 즐기며 살아가는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 곁에 있는 이웃나라를 살갗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부자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한테 자기 재산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으며, 스스로 가난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은 하늘나라에 못 가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국사람이 이주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도, 한국사람 스스로 자기 뿌리를 느끼지 못하고, 자기 이웃이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며, 자기 삶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못 깨닫거나 안 깨닫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3) 《눈물나무》라는 책


 이야기책 《눈물나무》는 독일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씁니다. 멕시코사람이 왜 가난할 수밖에 없으며, 어찌하여 미국 국경을 넘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다룹니다.


.. “비바 메히코!” 헤어질 때 호세가 모자를 흔들며 소리쳤다. “잊지 마라, 네 집은 여기야! 국경 건너편에서 돈이야 벌 수 있지만, 네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어야 해. 한 번 멕시코사람이면 영원히 멕시코사람으로 남는 거다. 비바 메히코!” ..  (54쪽)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학교 교수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또는 가까운 데에 있는 중국조선족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겨레 이야기는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한국땅에서 아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 눈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나로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 “국경을 건너가면 그렇게 끔찍하다면서, 그럼 아저씨들은 왜 여기에 있지 않고 넘어가려는 거예요?” 잠깐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멕시코에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페드로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27쪽)


 우리네 긴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땅을 넓힌 적도 있으나, 이웃나라가 쳐들어와서 땅을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쳐들어갔건 쳐들어왔건, 권력 쥔 사람이 아닌 여느 사람들, 바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야 했습니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노예로 붙잡히거나 고향에서 죽어라 농사지어서 나라님한테 바치고 군량미를 대면서.

 신분 푸대접에 따라서 아주 많은 우리 어버이가 고달프게 살았고, 일본제국주의한테 짓눌리기도 했으며, 네나라 때(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마찬가지로 한겨레끼리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기도 했습니다. 독재는 겨우 걷혔지만, 속속들이 걷어내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게 남아 있습니다. 미친 소고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숨통은 온갖 나쁜법과 유전자조작 먹을거리 따위로 아슬아슬합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인 사람이 많은 만큼, 정규직인 사람도 많아서 내 이웃 아픔을 내 아픔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는 우리 나라요 우리 겨레입니다. 멕시코사람들 아픔을 잘 곰삭이고 새긴 독일 교사 한 사람은 《눈물나무》를 써냈고, 우리 스스로 안고 있는 아픔을 잘 곱씹고 되새길 누군가가 앞으로 ‘눈물꽃’을 써낼는지 모릅니다. ‘눈물꽃’은 시인 고정희 님이 써냈으니 ‘눈물풀’을 누군가 써내려나요. 아니면, 우리 스스로 붙안고 있는 아픔을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눈물도 느끼지 못하고, 한 방울 눈물도 흘리지 않으면서, 오로지 돈벌이에만 눈을 밝히면서 살아갈는지요. (4341.6.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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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편해문 지음 / 소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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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2 ― 골목 삶터 무너지면 아이들 놀이터는 끝장
 : 편해문,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 책이름 :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 글ㆍ사진 : 편해문
- 펴낸곳 : 소나무(2007.6.25.)
- 책값 : 12500원



 (1) 지키고 싶은 골목길


 인천 동구 금곡동 밤골목을 걷습니다. 동네 골목집이 모여 있는 한복판을 가로질러 놓으려고 하는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동네사람들 월요일 모임을 마친 뒤, 옆지기와 손을 잡고 거닙니다. 저녁 아홉 시가 넘은 늦은 골목길에는 오가는 차가 드뭅니다. 아침과 낮을 헤아려 보아도, 이 길을 오가는 차는 매우 적습니다. 시내버스 한 대가 편도로 다니기는 하는데, 시내버스 지나가는 무렵 여느 차 서너 대 지나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저녁에는 자동차가 더 적습니다. 차 없고 호젓한 밤골목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을 여럿 봅니다. 지난해 봄부터 줄곧 보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혼자생각이지만, 이 아저씨는 회사일을 마치고 이 골목길을 달려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골목길을 거닐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이웃사람도 만납니다. 서로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여기에서 밤에 자전거 타는 모임을 만들어도 되겠다.” 옆지기가 말합니다. “그러게. 그래도 되겠네.” 마땅한 공원도 쉼터도 없는 우리 동네이지만, 차가 뜸한 이 길을 공원으로 삼아서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골목 안쪽에서는 거리등 불빛에 기대어 배드민턴을 하고요.

 막걸리집 아저씨도 배드민턴채 둘을 늘 가게에 놓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옆집 분들도, 또 건넛집 분들도 저녁 아홉 시나 열 시쯤이면 슬슬 골목으로 나와서 배드민턴채를 휘두릅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끼리, 아이들끼리, 아이하고 어른끼리.


.. 먹고살기 위해 남의 빨래를 해 주는 어른들 곁에서 빨랫줄 거는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아이들은 일상에서, 어른들의 일 가까이에서 풍부한 놀이거리를 얻어 그들만의 놀이로 바꾸어 놀고 있었다 ..  (23쪽)


 여러 달 동안 닫아 놓고 있던 동네 닭집 ㅈ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동네에서 아저씨들 맞이하는 닭집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마음 가벼이, 홀가분하게 찾아갈 수 있기도 했고, 가게 불빛도 밝으며, 둘이 마주앉아 이야기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시끄러운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아무 노래도 안 틀어 놓으니). 길가에 차도 거의 안 다녀 조용합니다. 아주머니가 마련해 주는 닭날개는, 둘레 다른 어느 닭집에서도 구경할 수 없을 만큼 맛났습니다.

 그 닭집이 다시 열었나 궁금해서 찾아갑니다. 닭집 임자가 바뀌었습니다. “요새 닭병이다 뭐다 해서 닭은 안 팔려요. 그래서 다 버렸지 뭐.” 그러면 무슨 먹을거리가 되느냐고 여쭙니다. “도토리묵도 있고, 갑오징어도 있고.” “갑오징어로 주셔요.” “맥주 드실 거여, 소주 드실 거여?” “맥주 주셔요.” “지금 맥주가 4홉들이밖에 없네.”

 ㅈ집 새로운 아주머니는 밑안주로 오이를 썰어 줍니다. 이내 갑오징어데침이 한 접시 나옵니다. 뚝딱뚝딱 금세 마련해 주시는구나. 무척 쫄깃쫄깃합니다. 여태껏 먹어 본 오징어데침 가운데 가장 훌륭합니다.

 한 접시를 다 비울 즈음, 아주머니한테 여쭙니다. “갑오징어는 한 접시에 얼마 하나요?” “그거, 사천 원에 사 오는데, 육천 원만 줘.” “네? 그러면 손해잖아요.” “만 원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받기도 그렇고, 팔천 원씩 받고 있어. 어떤 사람은 세 접시를 먹고 가더라고. 음, 그러면 두 접시 해서 만사천 원만 줘.”


.. 인도에는 놀이터가 따로 없다. 왜냐하면 온 동네가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다. 하루 가운데 노는 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46∼47쪽)


 갑오징어데침 두 접시에 맥주 두 병. 저녁참 값으로 이만 원. ‘오늘 하루 벌이를 넘겼군.’ 속으로 생각하며 걷는데, 옆지기는 이 집에서 마련해 주는 먹을거리가 괜찮다며 좋아합니다. 좋아하는구나. 하긴, 나도 좋았지. 다음에 또 가자고 합니다. 아무렴, 또 가야지. 그런데 그 ㅈ집에 찾아가는 동네사람들은 얼마나 되려나.

 동네에 이와 같은 술집이 있는 줄 얼마나 알고 있으려나. 값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집도 좋은 한편, 값을 조금 치르더라도 입맛이 돌게 해 주는 집도 좋음을 얼마나 느껴 주시려나.





.. 오늘날 아이들이 이 정돈된 세상에서, 이 반듯하게 잘라진 시간과 공간에서 무슨 놀이를 할 수 있는지 …… 무릎이 까지고 넘어지고 구르지 않고 어떻게 놀이와 만날 수 있단 말인가 …… 나는 이 동네를 가난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도대체 가난이라는 게 무엇일까? 가난은 스쳐지나가는 타인의 편협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웃이 있었고, 이웃과 함께 해야 할 일을 했고, 아이들은 너무나 많은 놀이를 풍족하게 누리고 있었다 ..  (90, 94쪽)


 그끄제 낮, 서울 공덕동에 사는 후배가 도서관에 찾아왔습니다. 쉽지 않은 걸음을 해 준 후배는, 자기 옆짝하고 신포시장을 돌고 답동성당도 둘러보는 둥 골목길 마실을 했답니다. 저녁을 함께 먹는 자리에서, 공덕동 갈매기살 고기집이 늘어선 자리에 있던 〈굴다리 헌책방〉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건넵니다. 〈굴다리 헌책방〉 아주머니가 꾸리는 고기집은 그대로 있다고 하니, 헌책방 깃든 건물을 재개발 한다면서 헐어버린 듯합니다. 〈굴다리〉 아저씨는 책방 지키는 일로 보람을 느끼고 즐거움을 찾으셨는데. 그예 그 건물이 헐렸네. 고기집 늘어선 헌책방 있는 코앞까지 아파트를 짓는다며 한창 부수고 뜯고 새로 짓고 법석이었는데. 끝내 그곳 헌책방까지 재개발 손길이 뻗쳤구나.

 후배는 ‘골목이 모두 허물리는 모습을 마스크 쓰고 지켜보다가는 모두 아파트로 바뀌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후배는 자기 고향을 잃었으니까요. 자기 어릴 적 놀이터를 잃었으니까요.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떠돌아야 하는 삶을 보내야 하니까요.

 집이 아닌 부동산인 아파트 삶입니다. 고향이 아닌 돈굴리기를 하는 아파트 굴레입니다. 1억이 오르고 2억이 오른다고 좋아질 아파트 삶터이겠습니까. 그렇게 올라서 앉은자리에서 얻은 돈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서 그 돈을 쓰면서 자기 삶을 아름다이 가꾸겠습니까.

 부모 스스로 고향을 버리면서, 아이들한테 고향을 잊게 합니다. 고향을 잊게 된 아이들이 자라서 사랑하는 짝을 만나 사랑하는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될 때가 되면, 당신 손주들은 ‘내 고향은 어디야?’ 하며 묻기도 할 텐데, 이 물음에 무어라 말을 해 줄는지요. 어쩌면, 당신 손주들은 고향이 어디인지 안 묻고, 고향이 있는가 없는가는 아예 생각도 않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한 도시내기로 태어날는지요.


.. 아빠가 물건을 고치거나,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큼 좋은 놀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부모들은 집안에서의 자연스런 노동과 멀어져 있다. 이런 좋은 놀이를 놔두고 우리는 돈과 시간을 따로 들여 아이들을 놀이방으로 보내고 복잡한 놀잇감을 아이들 품에 안긴다 ..  (106쪽)


 후배를 데리고 송현동 중앙시장 길을 걸어서 지나갈 때, 저잣거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 너덧이 공놀이를 했습니다. 한 아이가 배구공을 던지려고 하니 세 아이가 뒤에서 받으려고 하고, 던질까 말까 움찔움찔거리니, 던지려는 아이도 받으려던 아이도 까르르 웃으면서 자빠집니다. 이 옆을 지나가는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들 굳어 있는 얼굴로 제 갈 길이 바쁩니다. 아이들은 어둑어둑한 저잣거리 한켠에서 저희끼리 공놀이를 했습니다.


.. 학교란 무엇인가? 건물인가? 시설인가? 교사인가? 무엇인가? …… 아이들은 진짜 물건을 만지고 싶고, 사람이 말하고 노래하는 것을 듣고 싶고, 제 몸으로 춤추고 싶지만 이 모든 것을 그림으로 음반으로 프로그램으로 사진으로 만나게 해 주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교육은 아이들을 어디까지 데려갈까 ..  (153∼154쪽)


 우리 집 아이도 이렇게 놀 수 있으려나. 우리 집에 아이가 태어날 무렵, 이웃 가운데 우리 아이 또래가 있으려나. 또래가 없어도 언니오빠하고 함께 뛰어놀 수 있으려나. 학원 안 다니는 동무를 사귈 수 있으려나. 텔레비전에 빠지지 않을 만큼 한갓진, 학교 숙제와 문제집 풀이에 매달리지 않을 만큼 홀가분한,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가 벗겨지더라도 울지 않고 씩씩한 동무를 사귈 수 있으려나.

 망까기를 배우고 고무줄을 배우고 고누를 배우며 술래잡기를 배우고 숨바꼭질을 배울 언니오빠를 사귈 수 있으려나. 둘째가 나오기 앞서까지는 혼자 심심하지 않으려나.





 (2) 그림 할머니를 생각하며


 옆지기는 이달로 두 달째, 동구 화평동에서 ‘평안 수채화의 집’을 꾸려 나가는 ‘그림 할머니’ 박정희 님한테 그림그리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제 아침, ‘그림 할머니’가 전화를 하신 뒤, 댁부터 우리 도서관까지 지팡이를 짚고 그림 연장 바구니를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아기를 밴 옆지기를 당신 수채그림으로 담고 싶다는 할머님은, 여느 어른들은 십 분쯤이면 걸을 길을, 걷다가 쉬고, 또 걷다가 쉬고 하면서 삼십 분도 넘게 걸어서 찾아오셨어요.


.. 돈으로 아이들을 놀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아이들과 내가 함께 놀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부모들이 그립다. 놀이는 평등해야 하고, 평화를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공짜여야 하지 않겠는가 …… 심심해야 이제 한번 놀아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심심해 할 틈도 없이 온갖 장난감을 사서 안기기에 바쁘다 ..  (160∼162쪽)


 햇빛 잘 들어오는 자리에 그림 그릴 터를 마련합니다. 그림 연장을 하나하나 풀어놓습니다. 먼저 연필로 테두리를 잡습니다. 그런 뒤 자바라에 물을 받고 물감을 풀면서 조금씩 빛깔을 입힙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손은 붓을 놀리고 입은 당신과 긴긴 삶을 함께 보낸 할아버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아버지하고 있던 일,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나중에 옆지기가 말합니다. 할머님이 할아버님 생각이 많이 나는가 보더라고. 따지고 보면 지금 할머님한테는 할아버님하고 예순 해 남짓 함께 사셨으니 당신 부모님보다 훨씬 오래 함께 지냈을 테고, 어쩌면 부모보다 그리울 사람이지 않겠느냐고.


.. 요즘 아이들과 놀이를 해 보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지는 것을 못 견디는 아이들 모습이다 ..  (197쪽)


 그런가. 그러했을까. 할머님이 날마다 온힘을 쏟으며 부지런히 그려내고 있는 이 수채그림마다 당신 온삶지기였던 할아버님한테 보여드리면서 ‘여보, 내가 오늘은 이런 그림을 그렸다우, 한번 봐주시오.’ 하고 이야기를 건네셨을까. 당신 스스로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지만, 이 좋은 느낌을 혼자서만 간직하지 않고 온삶지기한테, 또 딸아들한테, 또 이웃들한테 함께 나누어 주고픈 마음이셨을까.


.. 오랫동안 거리의 아이들을 보아오고 그들의 현실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묻고 대안을 만들고 따듯한 시선을 길러온 사람만이 아이들 모습을 온전히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사진을 찍는 내내 했다. 찍을수록 세상에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것이 거꾸로 더욱더 많아진다는 것을 알아갈 뿐이었다 ..  (226쪽)


 이리하여 그림 할머니는 스물이 넘는 큰식구가 열 평 조금 넘을까 싶은 작은 집에서 북적북적 살아야 했던 가난한 살림을 조금도 가난으로 느끼지 않으면서 즐겁게 꾸려나갈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 집을 당신 아버님이 해 온 일을 갈무리하는 쉼터로, 또 당신이 고이 여미어 놓은 당신 발자취를 젊은이들한테 ‘우리들(할머니, 할아버지)은 예전에 이렇게 살았다우’ 하고 당신들 삶을 고스란히 남겨 주면서 보여주고픈 뜻이었을까.


..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웃음’이라고 본다. 한 마디로 웃으려고 논다는 말이다. 놀이를 하는데, 그것이 전래놀이든지 민속놀이든지 요즘 놀이든지 관계없이 웃음이 없다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다 ..  (250쪽)





 (3)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는 책


 놀이를 좋아하는 어른 편해문 님은 “놀이를 가르치려 들면 재미는 그만 달아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한때는 나 또한 그랬다(278쪽)”고 이야기합니다. 놀이라 한다면 스스로 좋아해서 즐겨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생각해 보면, 놀이뿐 아니라 일도, 우리 스스로 좋아해서 즐겨야 합니다. 동무를 사귈 때에도, 자기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가움이 있어야 사귑니다. 마음속부터 기쁨이 느껴지는 사람이어야 만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우리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꿈이 몽글몽글 솟아나야 비로소 익힐 수 있습니다. 걷기나 달리기나 자전거타기가 아무리 우리 몸에 좋다고 하더라도, 저마다 스스로 나서서 해야지, 누가 시켜서 할 수 없습니다.

 지구자원을 아끼자는 목소리야 누구나 낼 수 있습니다만, 스스로 자가용을 버리고 대중교통을 타는 데까지는, 나아가 대중교통조차 버리고 두 다리나 자전거에 기대기까지는, 스스로 즐기고 좋아할 때라야만 합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뜻은 훌륭해도 몸이 따르지 않습니다. 뜻이 거룩하여도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지칩니다.


.. 작은 골목을 없애 큰 도로를 만들고, 빈틈없이 건물이 밀고 들어와 골목도, 마당도, 조무래기 아이들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골목과 마당에서 떠밀려난 아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골목과 마당에서 사라진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인도의 마당과 골목에서 마음껏 내닫고 뛰고 팽이 돌리고 사방치기 하고 구슬치기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이 아이들이 이렇듯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것은 마당과 골목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  (32, 36쪽)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는 책은 ‘어떻게 놀아야 하나?’ 하는 이야기를 한 마디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무슨 놀이를 해야 하나?’ 하는 이야기 또한 마디도 건네지 않습니다. ‘어떤 놀이가 우리한테 아름답거나 고유한가?’ 하는 이야기에는 털끝만큼도 다가서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거나 좋은 놀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에는 아예 손을 내젓습니다.

 놀이에 앞서 삶이라고 말합니다. 놀이터에 앞서 삶터라고 말합니다. 도시에서는 골목길이고 시골에서는 고샅길입니다. 자동차 씽씽 내달리는 넓은 길이 아니라,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좁은 골목입니다. 경운기며 트랙터가 오갈 수 있는 한길이 아니라, 지게 이고 아이 손을 잡으며 걸어갈 수 있는 좁다란 고샅입니다.

 아파트라고 놀이를 못할 곳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아파트에서도 아파트 나름대로 놀이를 북돋울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서도 아이들 꿈을 키우고 어른들 삶을 보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와 마주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울리고 있는지요. 아파트 층층대에서 얼마나 아이하고 눈을 마주치고 있는가요. 내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 이름을 어느 만큼 알고 있습니까. 아이들이 받아오는 성적표 점수나 상장 갈래 말고, 학원 이름이나 영어책꾸러미가 아닌, 아이가 온몸이 땀으로 젖도록 뛰놀고 싶어하는 놀이감이 무엇인 줄을 한 번이나마 헤아려 보셨나이까.


.. 놀이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서로 오래도록 하다 보면 생기고 쌓이고 오고가는 따뜻한 사랑과 이해와 우정이다 …… 또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음을 깨우친다 ..  (280쪽)


 설거지는 짐이 아닙니다. 짐이 아니기에 기계에 맡길 수 없습니다. 빨래도 짐덩이가 아닙니다. 짐덩이이 아니기에 기계한테 도맡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밥하기는 짐꾸러미가 아닙니다. 짐꾸러미가 아니기에 기계 단추만 눌러 놓을 수 없습니다. 모두 몸소 합니다. 모두 품과 시간을 들여서 손수 합니다.

 설거지도 빨래도 밥하기도 일이기에 제 몸을 움직여서 합니다. 설거지도 빨래도 밥하기도 일이면서 놀이가 되기에, 저와 옆지기는 함께 즐깁니다. 설거지와 빨래와 밥하기, 여기에 집치우기와 씻고 닦기와 쓸고 가지런히 하기 또한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앞으로 아이가 커 가는 동안, 서로서로 알맞춤하도록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와 집안 치우기를 할 생각입니다. 아니, 아이가 우리와 살아가는 한식구이니 저절로 함께하게 될 테지요.

 억지로 사귀는 이웃이 아니라, 오순도순 사귀는 이웃입니다. 잇속을 챙길 수 있기에 만나는 이웃이 아니라, 주고받는 사랑이 있기에 만나는 이웃입니다. 옆에 있으니 그냥저냥 어울리는 이웃이 아니라, 옆에 있으니 이 동네를 작은 힘 보태어 함께 지키거나 가꾸고 싶어서 어울리는 이웃입니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는 책이름처럼, 아이들은 놀려고 세상에 왔습니다. 놀려고 온 아이들은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며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는 동안 자기 놀이가 일이 되고, 자기 놀이터가 일터가 됩니다. 자기 놀이동무는 자기 일동무가 되고, 자기 놀이감은 자기 일감이 됩니다. 놀이를 하는 마음이 일하는 마음으로 되고, 놀이를 하던 매무새가 그대로 일하는 매무새가 됩니다. 언니오빠한테서 배운 놀이를 동생한테 물려주듯, 앞사람한테서 배운 일을 뒷사람한테 물려줍니다. 언니오빠한테서 사랑과 믿음을 받았으면, 동생한테 사랑과 믿음을 이어줍니다. 앞사람한테서 땀과 눈물과 웃음을 받았으면, 뒷사람한테 땀과 눈물과 웃음을 건네줍니다. 언니오빠한테서 주먹다짐과 욕질을 배웠으면, 동생한테도 주먹다짐과 욕질이 돌아갑니다. 앞사람한테서 돈굴리기와 대학졸업장 따위를 익혔으면, 뒷사람한테도 돈욕심과 졸업장열병만 가르쳐 줍니다. (4341.6.12.나무.ㅎㄲㅅㄱ)

 



[편해문]


 1969년에 서울 사당동 산동네에서 태어났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에 들어가 옛 아이들 놀이와 노래와 옛이야기를 공부하며 놀이에 신이 들린다. 산동네 골목을 누비며 신나게 놀았던 어린 나날이 오늘을 살아가는 힘임을 깨닫고, ‘어린이 놀이노래이야기 연구실 〈씨동무〉’를 꾸려, 아이들 놀이와 노래와 옛이야기에 목마른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아이들과 교사와 부모님과 놀면서 살고 있다.


 한편, 공부에 시달리며 집에 학교와 학원으로 맴돌이하는 아이들한테는 놀 틈도 놀 터도 없음을 아프게 느끼게 된다. 틈과 터가 막힌 답답한 현실이 인도라는 땅으로 가도록 이끌었고, 다섯 해에 걸쳐 네 차례 인도를 드나들었다. 이러는 동안 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마다 넘치는 생명력과 창조력을 보여주었고, 무엇이 우리 아이들한테서 이 생명력을 앗아갔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과 더 잘 놀고자 하는 꿈으로, 지금은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과정을 다닌다. 앞으로는 ‘세계 어린이 놀잇감 도서관’을 만들 꿈을 꾸고 있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생태유아공동체’, ‘어린이도서연구회’에 힘을 보태면서 ‘선재학교’ 운영위원으로 일한다.


 그동안 《동무 동무 씨동무》(1998), 《가자 가자 감나무》(1998), 《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2002), 《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2005), 《산나물아 어딨노?》(2006), 《문경의 어른과 아이들 노래를 찾아서》(2008), 《깨롱깨롱 놀이 노래》(2008) 같은 책을 써냈다.

 인터넷방은 http://cafe.caum.net/for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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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는 아이 티스투 길벗어린이 문학
모리스 드뤼옹 지음, 자끌린 뒤엠 그림, 나선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49 ― 사랑을 심는 어린이, 전쟁을 사고파는 어른
 : 모리스 드뤼옹,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



- 책이름 :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
- 글 : 모리스 드뤼옹(모리스 드리용)
- 그림 : 최윤경
- 옮긴이 : 배성옥
- 펴낸곳 : 민음사(1991.3.10.)


* ‘민음사’에서 펴낸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는 판이 끊어졌고, 2005년 7월 15일에, 나선희 님이 새로 옮긴 판으로 ‘길벗어린이’에서 《꽃 피우는 아이 티스투》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와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는 길벗어린이 판보다 민음사 판 번역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민음사 판 책으로 읽으며 느낌글을 씁니다. 프랑스에서 1957년에 나온 이 동화는 “Tistou Les Pouces Verts”였고, 우리 말로 옮기면 “풀빛 엄지손가락 티쭈(티스투)”입니다.


 (1) 어른들이란, 참!


 제가 일하는 ‘동네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어린이, 다음으로 어른. 도서관을 찾아오는 어린이는 조용히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잡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느긋하게 책을 볼 만한 자리를 찾아서 철푸덕 하고 앉습니다. 소리를 낮춘 노래를 틀어 놓습니다. 너무 조용하기보다는 알맞춤한 가락이 흐르는 편이 나으니까요. 시골이라면 아무 노래를 틀어놓지 않아도 바람소리가 있고 새소리가 있고 물소리가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결에 따라서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도 있습니다. 나뭇잎이 부딪힐 때는 반짝반짝 빛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도시에서는 자동차 소리와 빵빵질 소리와 공장 돌아가는 소리, 갖가지 기계 움직이는 소리와 전화기 소리만 그득합니다.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는 노래를 틀어야 합니다.


.. 이건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시청이나 교회에는 아나톨이니, 쉬잔느니, 아녜스니, 장클로드라고 신고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톨라, 제트, 푸스 혹은 미스투플레라고 불리우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오죽 많은가요! 이것은, 그저 어른들이란 진짜 우리 어린이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증거이지요. 게다가 어른들 자기네들이야 다 안다고들 말하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들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모든 일에 관하여 틀에 박힌 생각만을 갖고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말해 버립니다. 그런데 틀에 박힌 생각이란 대개가 잘못된 생각이지요. 그런 생각들은 아주 오래 전에 이루어졌으며,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모르고, 또 매우 낡아빠진 생각들이랍니다 ..  (13∼14쪽)


 아이들은 참으로 다소곳하게 책을 읽습니다. 보던 책을 제자리에 꽂아 놓고 새로운 책을 뽑아들기도 하지만, 앉던 자리에 그대로 놓기도 하는데, 아직 버릇이 덜 들었거나 깜빡 잊었기 때문입니다. “얘야, 보던 책은 꽂아 놓아야지.” 하고 이르면, “네” 하면서, 깜빡 잊었다는 얼굴이 되어 뾰로롱 달려가서 책을 집어 얌전하게 꽂아 놓습니다.

 어른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선뜻 찾아내지 못합니다. 아이들과 달리 출판사 이름을 보고 지은이 이름을 보고 책이름을 봅니다. 출판사며 지은이며 책이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가 안 드는가, 자기 마음밥을 채워 주는가 못 채워 주는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책,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책, 널리 알려진 책, 교수님이 읽어 보라고 한 책, 언론에서 큼직한 기사로 소개한 책에 손길이 뻗칩니다.


.. 아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학교는 티쭈에게 예상할 수 없었던 나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칠판에 알파벳 글자들의 느린 행렬이 시작되기만 하면, 또한 삼 곱하기 삼, 사 곱하기 사 같은 기다란 사슬이 펼쳐지려고만 하면, 티쭈는 왼쪽 눈이 따끔거림을 느끼고는 이내 깊이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티쭈는 바보도 아니었고 게으르지도,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부하겠다는 의지에 넘쳐 있었습니다 ..  (31쪽)


 지난주에 도서관을 찾아온 어느 어른은, 퍼질러 앉아서 느긋하게 책을 읽으라고 깔아 놓은 깔개를 신발로 밟고 다니면서 책을 고릅디다. 그러면서 “이 책 얼마예요?” 하고 묻더군요. 틀림없이 우리 도서관 1층 문간에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큰 글씨로 적어 놓았고, 지난 금요일에는 건물 바깥벽에 커다란 간판도 달아 놓았건만, 더구나 도서관 안쪽에 ‘도서관 소식지’를 잘 보이는 자리에 늘어놓기도 했는데, 이런 데에는 한 번도 눈길을 안 두는가 봐요. 나즈막한 소리로 대답해 드립니다. “여기는 도서관입니다.” “아, 그런가요? 어쩐지 좋아 보이는 책이 많이 있던데.” “네, 도서관이니까 좋은 책을 갖추어 놓지요.”

 책방이라고 좋아 보이는 책이 없겠느냐만, 더 많은 사람한테 더 두루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어 놓은 도서관이니, 마땅한 소리입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은 털푸덕 앉아 있기도 하던 깔개를 신발로 꾹꾹 밟던 그분은, 책을 제자리에 꽂아 놓고 밖으로 나갑니다만, 책을 꽂아 놓을 때에도 깔개를 또 밟습니다. 에휴, 한숨을 쉬고는 걸래로 발자국을 지웁니다.


.. “도시란 보다시피 거리와 건물과 집,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네 생각에, 무엇이 도시에서 제일 중요할 것 같으냐?” 티쭈가 대답했습니다. “식물원요.” “아니야, 도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질서야. 그래서 지금 우리는 질서를 관리하는 건물로 가 보려 한다. 질서가 없이는 도시도, 나라도, 사회도, 모두 바람처럼 도무지 유지가 안 된다. 질서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무질서를 벌주어야 해!” 티쭈는 생각했습니다. ‘므슈 트루나디스의 말이 분명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왜 저렇게 고함을 치실까? 트럼펫 같은 목소릴 가진 어른이 바로 이분이시구나. 질서 때문에 저토록 소리를 질러야 할까? ..  (58쪽)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바닥에 깔아 놓고 펼쳐서 읽거나 무릎에 올려놓고 펼쳐서 읽습니다. 잘 보이도록 하려고 펼칩니다. 그래서 좀 묵은 만화책이나 그림책은 쩍쩍 갈라지거나 튿어지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달리 힘이 있어서 한손으로 책을 끄집어 내어 한손으로 팔랑거리며 책을 넘기기도 합니다. 이때는 제아무리 묶임새가 야무졌던 책이라 해도 실이 풀리고 풀이 떨어집니다. 보다 못해서 ‘안내 쪽글’을 부랴부랴 적어서 도서관 책손한테 한 장씩 돌립니다. 안내 쪽글에는 “이곳은 책방이 아니라 도서관이니 책을 팔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인 만큼 다른 사람들도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깨끗하게 간수해 주소서” 같은 글도 적어 놓습니다.

 쪽글을 돌리니, 어린이들은 모두 그대로 앉아서 책을 보지만, 어른들 2/3는 밖으로 나갑니다. ‘뭐야? 책도 안 팔잖아?’ 하는 얼굴입니다. 남아 있는 어른 1/3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하십니다. 이분들도 이곳이 어떤 곳인 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는가?


.. 식물학자들이 모이게 되면 커다란 회의가 열립니다. 미르포왈에는 그리하여 대대적인 식물학회가 열렸습니다. 꽃의 종류는 한없이 많지만, 식물학자들은 뛰어난 식물학자와 유명한 식물학자, 그리고 탁월한 식물학자, 이렇게 세 종류뿐이랍니다. 그들은 ‘선생님……, 교수님……, 명예로운 동료 학자님……’이라고 부르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 정원사 할아버지는 대답했지요. “저 식물학자들이란 꽃다발 하나도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이란다.” …… 식물학자들도 그래서 보고서를 꾸몄지요. 아무도 알아먹지 못하는 과학용어들로 꽉 채워서 쓴 보고서였는데 ..  (75∼76쪽)


 하루일을 마치고 도서관 문을 닫습니다. 어질러진 책을 가지런히 맞추고 쓸고 닦고 빈 그릇과 물잔을 씻아서 말려 놓습니다.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렇게 큰 간판까지 밖에 내걸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여기에 와서 책 안 파느냐고 물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서관하고 분위기가 달라서 그렇지요’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동네사람들도 제가 도서관을 꾸리는 줄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으시지만, 동네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서관은 ‘독서실’입니다. ‘도서관 = 독서실’이고, 이러한 독서실은, 중고등학교 수험생이나 고시 공부 하는 사람들이 와서 칸막이책상에서 문제집 푸는 곳입니다.

 “바쁘실 테지만, 가끔 책도 보면서 마음도 쉬어 보셔요.” 하고 동네 아저씨며 아주머니며 붙잡아 보지만,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한가할 때 올게요.” 하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 “저 동물들은 어디서 왔어요?” 티쭈가 경비원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먼 데서 왔다. 아프리카, 아시아 ……, 나도 모르는 그런 데서 실어 왔다.” “이리로 데려오기 전에 데려와도 되느냐고 동물들한테 물어 보았어요?” 경비원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자기를 놀린다고 투덜거리면서 멀리 사라졌습니다. 티쭈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우선 저 경비원 아저씨는 자기가 맡은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니 지금의 직업을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  (108쪽)


 우리 나라에 ‘어린이 도서관’은 몇 군데 없습니다. 뜻있는 단체에서 애써서 열어 놓은 곳(인표어린이도서관)이 남달리 있고, 텔레비전 영향으로 군데군데 생기기도 하지만(기적의 도서관), 정부에서 세우는 어린이 도서관이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새로 한 곳을 세우기는 했습니다만). 지역자치단체에서 세운 어린이 도서관이 따로 있습니까. 시청과 구청에서 다스리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습니까(그래도 요즘은 구청이나 동사무소 한쪽 자리를 터서 어린이책 몇 천 권 꽂아 놓은 도서관을 꾸며 놓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어린이 도서관도 없는 이 나라에는, 푸름이(청소년) 도서관도 없습니다. 푸름이 도서관도 없는 이 나라이지만, 여느 일꾼이 찾아갈 만한 도서관조차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새벽바람으로 일터에 가서 저녁 늦게 일마치고 집으로 오는 일꾼이 찾아갈 수 있는 도서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밤늦게 문을 열어 주거나 새벽 일찍 여는 도서관이 있습니까. 쉬는 날도 따로 없이 꾸려 나가는 도서관은 어디에 자리잡을까요. 또한, 도서관에서 갖추는 책은 어떤 갈래 책들입니까. 어떤 신문을 갖추어 주고, 어떤 잡지를 받아들여 주고, 어떤 이야기로 우리들 마음밥을 선사해 주고 있습니까.


 (2) 또다른 어른과 우리 세상


 아침에 잠깐 성당 나들이를 갑니다. 이제 예비자교리를 마치고 다다음주에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하여 저한테 어떤 믿음이 깊다거나, 새로워지는 믿음이 생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또한 여느 믿음이들 길을 걸어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해 예순아홉인 동네 할아버지가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난주까지는 수녀님한테 배웠고, 마지막 배움은 믿음이 무척 깊은 할아버지가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며 살아가기’를 이야기해 주십니다.


.. “책만 보면 졸음이 오니까 책을 아예 없애 버리자구. 우리 아들이 다른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니까, 새로운 교육제도로 키워 봅시다. 사물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배우도록 하겠소. 조약돌이 무엇인지, 정원이 무엇인지, 들과 밭이 무엇인지, 일일이 보여주도록 합시다. 그밖에 티쭈가 어른이 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설명해 주도록 합시다. 결국 우리들의 생활 자체가 가장 훌륭한 학교인 거요. 결과는 두고봅시다” ..  (40쪽)


 할아버지는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다가, 당신이 얼마 앞서 신협(신용협동조합) 부이사장 선거에서 떨어졌다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중에 신부님하고 이야기를 하니, 신부님은 할아버지가 부이사장 선거에서 떨어지기를 바라셨답니다. 할아버지로서는 부이사장이 되면 연봉 3600만 원을 받고, 동네 성당 할아버지들한테 짜장면도 사 주면서 어깨도 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다는데, 이러한 우쭐거림이 자칫 교만으로 흐를 수도 있었으리라고, 그래서 정작 당신이 당신 딸아들과 친구들한테 미안하다고 할 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들 자기를 달래 주려고 애쓰더라고, 그럽니다.

 저는 빙그레 웃으면서, “잘 떨어지셨네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일흔을 앞둔 할아버지로서는, 신협 부이사장이 되어 한 달에 삼백만 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적지 않은 돈으로 이래저래 베풂도 하고 선물도 하고 그럴 수 있지만, 그만한 돈을 받는 만큼 그곳에서 당신한테 고달픈 데까지 시간과 마음을 쏟으면서 바쳐야 합니다.

 동네 이웃인 할아버지와 당신 딸아들과 손주한테 들이면 좋은 것은 ‘돈으로 나누어 주는 베풂’이 아니라, 당신 마음과 몸으로 아껴 주는 사랑이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뜻에서 할아버지가 그 선거에서 떨어진 일은 잘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 티쭈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에 무스타슈 할아버지는 천천히 정원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비로소 티쭈는 왜 정원사 할아버지가 평소에 그렇게도 말을 적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할아버지는 꽃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 무스타슈 할아버지는 그렇게 꽃송이 하나하나의 건강을 살피면서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  (48∼49쪽)


 할아버지는 신학교 시험에 다섯 번 떨어지고 수도원에도 들어가 지내기도 했지만, 몸이 아파서 끝내 신부가 되는 길을 접어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광주 살레지오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때 여름철 모기를 몰아낸다며 디디티를 기숙사 방에 잔뜩 뿌려서, 여느 때에도 썩 좋지 못하던 허파가 더 나빠져서 폐렴으로 번졌고, 결핵까지 앓아서, 광주에서 연평도까지(50년대까지 연평도에서 사셨다고 하네요)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내내 울며 손수건을 적셨다고 합니다.

 신부가 되지 못하면서 곧바로 혼인을 하게 되었고, 딸아들을 다섯 두었는데, 이 가운데 둘째 딸은 수녀로, 셋째 아들은 신부로 컸다고 합니다. ‘당신은 신부가 될 그릇이 못 되어 하느님이 물리치고, 당신 아들이 당신보다 신부가 될 그릇으로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받아들여 주지 않았느냐’는 말씀을 붙이시는데, 이 말씀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 얼굴이 퍽 맑다고 느낍니다.


.. 하늘색 꽃들로 된 둥근 천장이 보기 흉한 판자집을 가려 주었습니다. 잔디가 난 길 주변은 온통 제라늄으로 울타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너무나 흉해서 지금껏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이 비참한 빈민가는 이제 미르포왈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가 되었습니다. 미술관을 구경 오듯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  (87쪽)


 늘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은, ‘그래, 최종규라는 사람은 부지런히 책을 사고 읽어야 해’라는 말로 들립니다. 또한, ‘글 한 줄을 쓰든 두 줄을 쓰든, 좀더 깊이 곰삭이며 되뇌이는 가운데 알뜰하게 담아내야 해’라는 말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서둘러서 읽는 책은 속알맹이를 제대로 못 새기기 마련이고, 바쁘다며 부랴부랴 쓰는 글은 나중에 크게 고쳐서 다시 써야 하니 애먼 시간만 버리는 셈’이라는 말로 파고듭니다.


.. “자, 티쭈, 오늘 무얼 배지? 의학에 대해 뭘 알게 됐니?” “저는요, 슬픈 마음을 치료하는 데에 의학은 별웠로 힘을 못 쓴다는 걸 배웠어요. 병을 낫게 하려면 살고 싶은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의사 선생님, 희망을 주는 알약은 없나요?” 모디베르 박사는 저런 꼬마한테서 그처럼 슬기로운 말을 듣게 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사가 맨 처음으로 알아야 할 것을 넌 혼자서 터득했구나.” “그럼 두 번째로는 무얼 알아야 하나요, 선생님?” “환자들을 잘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많이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거야.” 의사 선생님은 티쭈에게 사탕을 한 주먹 집어 주시고는 공책에 좋은 점수를 써 주셨습니다 ..  (96쪽)


 할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를 마칩니다. 할아버지는 성당 뒷문에서 왼편으로 걸어갑니다. 저는 오른편으로 걸어갑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집니다. 해가 나올 듯 말 듯합니다. 천천히 내디디는 걸음을 멈추며 사진을 한 장 두 장 담습니다. ‘경축, 송림초등학교 주변 정비사업 지정’을 알리는 걸개천, ‘정비사업 설명회’를 알리는 걸개천이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학교 둘레 산비탈 골목집을 뜯어내어 아파트를 짓겠다는 일인데, 이 일은 ‘도시정비’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사람이 살기 나빠서 하는 ‘정비’가 아니라, 높은자리 분들이 보기에 나빠서 한다는 ‘정비’입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집을 ‘정비’한다는 일은 왜 모두 ‘30∼40층짜리 아파트 짓기’로 이어질까요. 그나저나, 30층이 넘는 아파트를 초등학교 울타리와 마주한 자리에 짓는다고 한다면,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시끄러워서 어떻게 공부하지요? 더구나, 학교 둘레 골목집에 사는 아이들이 바로 이 송림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이 아이들은 자기 집이 재개발이 되면 어디로 옮겨가서 살아야 하는가요. 아이들은 나중에 ‘도시 정비사업’이 끝나면 자기 고향 동네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 짐나스티크가 말했습니다. “울어야 한다. 어른들은 우는 걸 참지만, 그럼 안 돼. 눈물이 마음속에서 얼어붙어 버리거든. 그러니까 어른들은 마음이 돌처럼 딱딱하지.” ..  (162∼163쪽)


 사진기를 거두어들이고 걷습니다. 길에 쭈그려앉아서 시멘트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내민 민들레를 봅니다. 어느새 어른 손목 만한 굵기로 자란 꽃나무를 봅니다. 이 조그마한 풀과 나무는 하루아침에 삽날에 잘려나가며 아무 자취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한 번 파헤친 우리 삶터를 돌이킬 수 없듯, 한 번 줄기가 꺾이고 뿌리가 파헤쳐진 들풀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다가,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앞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3) 싸움, 죽임


 집으로 돌아와 버섯감자끼개를 끓입니다. 어제 송현시장에 갔더니 버섯 담은 작은 상자 둘에 천 원에 팔기에 샀습니다. 엊저녁에 한 통 절반을 넣은 버섯국을 끓여서 먹고 오늘 낮에도 절반을 넣은 버섯국을 감자 두 알과 양파 한 알을 송송 썰어서, 된장 하나만 풀어서 끓여먹습니다.

 밥을 먹으며 생각합니다. 요즈음, 소고기 하나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벌어집니다. 고기소가 되는 소한테 몸에 나쁜 병이 깃들인다면, 소 아닌 다른 유전자조작 먹을거리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키운 소뿐 아니라 한국에서 키우는 소는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소라고 하여 여물을 먹으면서 크고 있을는지요. 소 아닌 돼지는 어떠하지요. 사료가 아닌 메뚜기나 애벌레를 먹으면서 크는 닭이 있는가요.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푸성귀는 얼마나 될까요. 쌀과 보리와 수수와 조와 율무와 콩은 얼마나 비료와 농약에서 홀가분한지요. 지금 우리 밥상에 올려지는 먹을거리 가운데 ‘유기농까지 바라지 않아도’ 깨끗하다고 할 만한 먹을거리로 무엇을 손꼽을 수 있을까요.


..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나이 이후로 티쭈는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티쭈야, 우리 집 장사는 재미가 좋은 장사란다. 대포는 우산이나 밀짚모자 같지가 않거든. 우산이란 날씨가 좋으면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고, 밀짚모자란 비오는 날이면 진열장 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데, 대포는 날씨가 어떻든 간에 팔리는 물건이란다.” ..  (26쪽)


 마시는 물은 얼마나 깨끗하며, 숨쉬는 바람은 얼마나 싱싱한지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새로운 손전화 기계가 멋들어져 보인다고 느끼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새로 나오는 옷이 예뻐 보인다고 느끼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싱싱한 바람을 들이쉴 수 없습니다.

 한 차례 비바람이 지나간 하늘은 살짝 맑아졌습니다.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 사이사이로 해가 비칠 때마다 올려다보면 파란빛이 보입니다. 그러나 구름이 모두 걷힌 뒤 하루만 지나도 파란빛은 잿빛으로 덮입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여 날마다 타고 있을 자가용과 버스에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하늘을 다시 덮을 테니까요.


.. 무스타슈 할아버지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전쟁에 대해선 할 얘기가 아직 더 있다. 요리하는 아줌마 아멜리는 말이다, 전쟁으로 자기 아들을 잃어버렸단다. 팔을 잃은 사람, 다리를 잃은 사람, 정신을 잃은 사람도 있지. 전쟁이 나면 모두들 뭔가를 잃어버리게 돼.” ..  (117쪽)


 미국은 더 많은 석유를 얻으려고 전쟁을 서슴지 않고 일으켰습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이 싸움판을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미국은 더 많은 석유뿐 아니라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유전자조작 먹을거리를 세계 곳곳에 내다 팝니다. 한국땅은, 미국이 달러를 벌어들이도록 하는 저잣바닥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을 머리속에 새기고 있으면서도, 더욱이 촛불집회에 나가 정권을 꾸짖으면서도, ‘한국전쟁 때 우리를 지켜 준 고마운 나라’라는 생각을 이어나가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참말로 미국은 남녘나라 사람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총칼과 탱크와 전투기와 군함을 몰고 이 땅에 찾아왔습니까.


.. “왼나라도 우리 물건을 사 주는 손님이거든.” 미르포왈의 대포들은 그리하여 이쪽저쪽으로 편이 갈라져서 서로 맞대고 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쪽 정원과 저쪽 정원이 함께 부서져 버릴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장사라는 거야.” 므슈 트루나디스가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 장사란 것 아주 나쁜 짓이네요!” “뭐라고?” 쇠망치 소리 때문에 티쭈의 말이 들리지가 않았으므로 므슈 트루나디스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면서 물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장사는 아주 나쁜 짓이라구요. 왜냐하면 …….” 그 순간 처얼썩! 하고 따귀가 날아들었습니다. 오른나라와 왼나라의 싸움이 갑자기 티쭈의 뺨에까지 퍼졌던 것이었지요 ..  (127쪽)


 (4)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라는 이야기책


 모리스 드뤼옹(모리스 드리용) 님은 1957년에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라는 이야기책을 써내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나쁜가를 아이들한테 일깨워 주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러니까 1950년대에만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엄청난 싸움판 아픔이 채 아물기 앞서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 가슴에 대못이 박히고 눈물과 생채기가 얼룩진 때입니다. 이때 우리 나라는 어떠했을까 떠올려봅니다. 1950년대를 살지 않았으나, 신문으로, 또 책으로, 또 그때를 살았던 어르신들 말씀으로 짚어 보건대, 우리들은 큰 싸움판 갈무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나, 서로가 서로를 더욱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하면서 ‘때려잡자’는 외침이 온나라를 휩쓸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때려잡자’는 외침이 살아남아서 큰힘을 내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도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통일보다는 합병을, 평화보다는 전쟁을 더 사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 만약에 우리가 커서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틀에 박힌 생각들은 자라나는 우리 머리속에 아주 쉽게 들어앉아 버립니다 ..  (14쪽)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평화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동네나 마을에서는 아이들한테 믿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한테 나눔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쟁을 가르칩니다. 오직 점수를 가르칩니다. 다만 돈을 가르칩니다. 그예 이익을 가르칩니다.


.. “감옥이 저렇게 보기 싫게 생기지 않았으면, 아마 도망 가고 싶은 생각이 덜 날 텐데요.” 이제 므슈 트루나디스의 볼도 귀만큼이나 빨개졌습니다. 그는 ‘이상한 아이로군. 교육을 죄 다시 시켜야겠어’라고 생각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감옥의 죄수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돼.” “그럼 나쁜 점을 고치려고 저런 곳에 두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고 저런 감옥에 둔다.” “감옥이 저렇게 보기 싫게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쁜 점은 훨씬 빨리 고쳐졌을 거예요.” ..  (61쪽)


 우리들 살고 있는 이 한국땅에 천사가 내려와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우리들 살고 있는 이 한국땅에야말로 천사는 벌써부터 내려와서 우리 이웃으로, 또는 우리 아이로, 또는 우리 할머니로, 또는 우리 동무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둘레에 고운 천사들이 그득그득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우리들은 눈이 멀어서 천사를 못 알아보고 귀가 먹어서 천사들 외침을 못 듣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티쭈가 풀빛 엄지손가락을 꾹 누르며 풀이 자라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나무가 크도록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느끼지 못하면서, 더 많은 돈과 더 큰 이름과 더 센 힘을 바라면서 우리 목숨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심지만, 어른들은 전쟁을 사고파는 나라, 이러한 나라는 미국만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도 사랑을 나누지 않고 전쟁을 사고팔며 이익이 된다고 하하호호 웃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한민국 어른입니다. (4341.5.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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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 세계 명작 속에 숨은 보물찾기 1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정회성 옮김, 원유성 그림 / 서강books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아이한테 자기 삶을 사랑하는 길 일러주기
 ― 러드야드 키플링,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



 (이달에 추천하는 어린이책)


 책이야기를 하는 잡지 《북새통》에서 다달이 ‘이달에 추천하는 책’을 뽑고 있습니다. 추천책 후보는 모두 다섯 가지이고, 저는 후보에 오른 다섯 가지 책을 하나하나 살피며 이 가운데 한 작품만 뽑아서 알리는 심사위원 노릇을 맡고 있습니다. 지지난해부터 했지 싶습니다. 후보에 오른 다섯 권을 하나씩 살피면서, 제 나름대로 책마다 어떤 대목에서 반갑고 얄궂었는지, 또 좋았고 아쉬웠는가를 밝혀 보는 가운데, 마지막 한 작품을 추려 봅니다.


후보 1 : 치킨 마스크 (우쓰기 미호/장지현 옮김/책읽는곰/2008.3.3.)
후보 2 : 변기엔 누가 앉을까? (안드레아 웨인 폰 쾨닉스뢰브/고우리 옮김/키득키득/2008.2.29.)
후보 3 : 꼴찌가 받은 상 (김용인/영림카디널/2008.3.31.)
후보 4 : 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 (윤구병 글,김미혜 글,이형진 그림/보리/2008.3.5.)
후보 5 :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원유성 그림,정회성 옮김/서강출판사/2008.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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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가지 책만 보면서 추천할 만한 작품을 고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아이한테 선물해 준다고, 또는 읽어 준다고 했을 때, 또는 함께 본다고 할 때 어느 책이 제 마음에 가장 와닿는가 하고 헤아려 보니, 후보 1∼3은 덜어내게 됩니다. 후보 1∼3이 줄거리가 모자라거나 형편없는 책이기 때문에 덜어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세 가지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수많은 책에서 너무 뻔하게 되풀이되고 있어서, 굳이 어슷비슷한 이야기책을 또 하나 만들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후보 3인 《꼴찌가 받은 상》을 살피면서, 우리 나라에서 동화를 쓰는 분들 글감은 어이하여 하나같이 똑같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나라 교육 문제는 1950년대와 2008년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1950년대에는 국민학교 들어가는 일부터 시험을 치러야 할 만큼 빡빡했습니다. 이제는 초등학교 시험은 없어요. 그런데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인 대목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자유로이 뛰어놀기도 하고 부모나 이웃사람 일을 거들면서 사회를 배우고 자기를 알아가는 흐름이 조금도 없습니다. 아니, 아예 막혔습니다. 어른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아이들한테 마음길을 터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막혀 있는 길을 뚫어 달라고 바라기는 하지만 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어른들 귀에는 들리지 않을 뿐더러, 어른들 손찌검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무서워서 말을 못하기도 합니다. 꼴찌한테 좀더 따스한 눈길 보내는 일은 틀림없이 값어치가 있습니다만, 꼴찌만이 아닌 19등도 29등도 39등도 따스한 눈길을 받아야 하는 한편, 한 걸음 나아가 아무런 등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적 하나만을 놓고 매기는 등수란 사라져야 합니다.

 후보 2 《변기엔 누가 앉을까?》는 남다른 생각힘으로 잘 엮어낸 그림책으로 여겨지고 책꾸밈도 남다릅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시고 시골이고 죄다 아파트 판이며,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부엌이나 집안에 갖추는 살림은 서양 문명대로 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과 반찬은 ‘유기농 곡식’이기를 바라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사료와 항생제가 아닌 풀과 좋은 먹이를 먹던 고기이기를 바라는 우리들이면서도, 정작 우리가 누는 똥과 오줌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콧털만큼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똥누기 연습’을 시키는 일도 중요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러면, 똥누기와 함께 이어져야 할 다른 삶은, 다름 앎은, 다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책 하나에서 한 가지를 넘어서는 수만 가지 이야기를 속속들이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놓치는 대목은 없는 가운데, 책 하나에 담으려는 한 가지 이야기를 잘 잡아채야 한다고 느낍니다. 서양 물질문명 그대로 살아가는 우리 형편으로는 《변기엔 누가 앉을까?》는 재미있게 볼 만한 그림책이라고 느껴지지만, 재미있게 보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하는 생각을 이어 본다면, 글쎄요. 이만한 이야기는 책으로 안 만들어도 되지 싶은데. 그냥 말로 이야기해도 넉넉하지 싶은데. 또한, 똥닦이 휴지 씀씀이도 생각할 문제입니다.

 후보 1 《치킨 마스크》는 아이 스스로 자기 모습을 찾아나가는 마음앓이를 잘 담아내는 이야기책으로 보입니다. 우리 나라 못지않게 일본은 돌림뱅이와 괴롭힘이 끊이지 않습니다. 절름발이라고 해서 좀 어리숙하다고 해서 좀 굼뜬다고 해서 좀 못생겼다고 해서 푸대접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머리숱이 좀 적다 한들, 우리 아이가 좀 키가 작은 편이라 한들, 우리 아이가 좀 토실토실하다 한들, 아무 거리낌이란 없습니다. 저마다 소중한 마음씨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네 아이들이 의무로 다녀야 하는 학교교육 틀거리에서는 아이마다 간직하고 있는 마음씨를 살리거나 북돋우기 어렵습니다. 학교교육은 ‘어찌 되었든 한 해 동안 여러 과목 교과서 진도를 마쳐야’ 하거든요. 교과서 진도는 못 마칠 수도 있고, 조금 일찍 마칠 수도 있고 늦게 마칠 수도 있는데, 꼭 그만큼만 마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교과서 아닌 책은 못 보게 합니다. 한 가지 책만 모두한테 똑같은 시간에 걸쳐서 가르치고, 똑같은 책걸상에 앉아서 하염없이 교사 입만 바라보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학교에 보내는 우리 어버이들은 아이가 받을 고단함을 깊이 헤아리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동무들을 만나서 사귄다고 할 때에도, 어떤 동무를 사귀느냐를 찬찬히 헤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아이와 이웃 아이가 ‘오로지 대학교에 붙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서로서로 동무가 되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재미있을 만한 놀거리, 공부거리, 일거리를 스스로 찾기 어려운 학교 틀거리인데, 집에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야기책 《치킨 마스크》는 이런 여러 가지 사회 짜임새와 교육 틀거리 때문에 시달리는 아이를 그려냅니다. 그렇지만 좀더 안쪽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이 또한 너무 겉핥기로 그쳐 버린다고 할까요. 자기 모습을 찾아나가는 길찾기는 틀림없이 소중한 일입니다만, 자기 혼자서만 바뀐다고 해서 나와 이웃 모두가 함께 나아질 수는 없는 터. 곁가지이지만, ‘치킨’ 탈(마스크)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튀김닭이 ‘치킨’입니다.

 후보 4 《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은 우리네 아이들한테 ‘놀이’만이 아닌 ‘일’도 보여주고, 서양 문화만이 아닌 우리 문화도 일러 주는 이야기그림책입니다. 책이름에 사전이라고 했듯이, 《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은 ‘일 사전’과 ‘놀이 사전’, 그리고 ‘사물 이름 사전’ 노릇을 합니다. 모듬으로 그려진 큰 그림은 달에 따라서 한 장씩 들어가는데, 싱싱함과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싱싱함이 ‘사물 이름 보여주기’에서 제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모듬그림 다음에는 ‘죽어 있는 박제’ 그림이 뒤따르고 맙니다. 나무 그림을 죽 늘어놓는다고, 물고기 그림을 죽 늘어놓는다고, 아이들이 이 나무와 물고리를 얼마나 잘 헤아릴 수 있을는지요. 놀이와 명절과 문화 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 입말을 살렸다고 하지만, ‘-요’만 붙인다고 하여 입말이 될 수 없고, 아이한테 살짝 반말 느낌이 나는 말투가 입말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고 봅니다. 가락에 맞추어서 넣은 글은 어느 한편으로는 ‘말놀이’인 셈이, 또는 ‘말장난’인 셈이 아니냐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이와 같은 모듬그림을 보여주거나 나눈다고 할 때에는 ‘교육 효과(EQ)’를 노리는 대목도 어김없이 있을 터이나, 이보다는 이와 같은 모듬그림이 우리 ‘삶’이요,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느끼던 ‘발자취(역사)’이며,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자기 꿈(앞날)을 키워 나가는 길잡이가 되면 한결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냐 생각합니다. ‘사전’이라는 말을 붙이자면 속살을 좀더 알뜰히 채워 넣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만한 책은 그냥 ‘이야기그림’일 뿐입니다. 이야기그림 얼거리도 퍽 엉성궂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넣으려고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모으기보다는 알맞춤한 정보를 엮어내고, 책끝에 실은 풀이말은 좀더 꼼꼼히, 좀더 넉넉히 실어서 ‘사전 노릇’을 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후보 5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을 펼치는 동안, 그림을 그린 분이 무척 땀흘려서 그렸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사람 몸 어울림’이 깨진 대목이 있고, 우리 나라 역사연속극에서 보듯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옷차림과 몸차림’으로만 나와 낯설게 느껴지는 ‘옛사람(원시인)’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키플링 님이 엮어낸 상상동화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은 당신이 당신 딸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 엮었구나 싶어서 흐뭇합니다. 다만, 이만한 이야기라면 우리 나라 수많은 부모 가운데 한두 사람쯤은 자기 딸아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로 지어낼 수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가 4000해를 넘는다고 말들은 많으나, 이 긴 역사에 걸맞는 ‘옛사람 슬기를 이어받아 펼쳐 나가는 이야기책’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 글자인 한글은 세계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훌륭하다고 입에 침이 바르도록 칭찬들 하지만, 정작 ‘한글을 빚어낸 바탕을 아이들도 재미나게 익히도록 새롭게 엮어낸’ 이야기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먼 옛날 낙동강가에서 생긴 일”이나 “먼 옛날 두만강가에서 생긴 일”은 살가운 그림책 하나로 태어날 수 없을까 궁금합니다.


 - 2 -

 다섯 가지 책을 펼치고 살피고 덮으면서, 이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책을 뽑으면 좋을까 하는 망설임은 풀어내지 못합니다. 적잖이 답답합니다. 흔히 평점을 매기곤 하는데, 평점을 매긴다고 해도 어떻게 점수를 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점수를 주는 일은 달갑지 않기도 하지만, 구태여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 권을 뽑아야 하는 판. 다시금 책을 하나씩 넘겨 봅니다. 후보 1와 후보 2과 후보 3은 집 앞에 있는 헌책방에 들고 가서 선물로 드립니다. 후보 4과 후보 5이 남습니다. 후보 4은 책꽂이 아래쪽 안쪽에 집어넣습니다. 후보 5은 다시 한 번 읽습니다. 후보 4과 후보 5 모두 그림을 그리신 분 땀방울이 고이 배어 있음을 또렷이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땀방울을 많이 흘렸다고 하여도, 살 속 깊이 파고들도록 흘려야 한다고 느끼고, 이야기 얼거리와 책 짜임새에서,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와 어떤 삶을 들려줄 수 있는가 하는 대목에서는 후보 5이 조금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라도 후보 4인 《꼬물꼬물 일과 그림 사전》이 고침판을 펴내어, 첫판에 깃든 아쉬움을 털어내고 새롭게 태어나 준다면, 후보 4 손을 들어 주겠습니다.

 후보 5인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을 한 번 읽는 동안, 번역글에 꽤 말썽거리가 많음을 봅니다. ‘것’을 지나치게 많이 붙이는 대목, 주인공 타피네 어머니를 가리켜 ‘그녀’라고 쓰는 대목, ‘가끔씩’으로 잘못 적은 대목, ‘본격적-미소-수선-너의-광경-공손-현명-표정-실수’ 같은 낱말은 살포시 걸러낼 수 있었다는 대목, 이를테면 ‘잘못’과 ‘실수’라는 낱말을 겹치기로 쓰고, ‘웃음’과 ‘미소’가 어떻게 다른가 헤아리지 못하고, ‘수선’과 ‘고치기’도 겹으로 쓰이는 대목들은, 옮긴이와 출판사 편집부가 ‘어린이책에 담아낼 낱말 씀씀이’를 차근차근 돌아보지 못했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 말은 ‘네’이지 ‘너의’가 아니나, 이런 대목은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어린이책 편집지와 번역자 눈썰미가 얕았습니다. 또한, 타피네 부족 아주머니와 언니 들을 가리켜 ‘숙녀’라고 적은 대목도 아쉽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머니고, 언니는 언니입니다.

 《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은, 출판사에서 책겉에 적은 대로 “탁월한 언어 감각을 지닌 천재적인 이야기꾼, 영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정글북》의 작가 ‘러드야드 키플링’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어린아이한테 자기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땅에서 누리거나 느낄 문화와 삶이란 무엇일까, 어린아이 스스로 부대끼는 삶 하나하나가 작은 듯해도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속깊은가를 스스로 살피거나 찾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런 이야기책은 상상힘이 조금 떨어져도 나쁘지 않습니다. 작품에 담는 애틋한 마음과 사랑스러운 믿음이 얼마나 야무지고 아름다우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4341.4.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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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 산하세계어린이 27
고시미즈 리에코 지음, 이시이 쓰토무 그림, 조영경 옮김 / 산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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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6 ― 우리는 다 함께 아픔 나누며 사는 이웃
 : 고시미즈 리에코,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



- 책이름 :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
- 글 : 고시미즈 리에코
- 그림 : 이시이 쓰토무
- 옮긴이 : 조영경
- 펴낸곳 : 산하(2006.9.22.)
- 책값 : 8500원



 (1) 나와 이웃 이야기


 어제는 옆지기 태어난 날. 그제는 옆지기 동생 태어난 날. 두 사람은 하루 걸러 태어났습니다. 이런 날에는 옆지기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기쁨을 나누어야 좋으니, 먼걸음이지만 전철을 타고 세 시간 거리 나들이를 갑니다.

 제 또래, 또는 제 손아래들은 거의 모두 자동차를 굴립니다. 인천에서 일산까지 전철로 가면 돌고 돌아서 세 시간이지만, 자가용으로 가면 잘 닦인 찻길을 따라 사오십 분이면 넉넉합니다. 차를 몇 번 얻어타면서, ‘차 있는 사람은 참 좋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차를 굴리고 싶지 않습니다. 차 굴릴 돈도 없지만 차를 장만할 돈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같은 사람까지 자동차를 굴리면 우리 삶터 공기는 몹시 끔찍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더욱이 우리 식구가 자동차 타고 움직일 일도 드문데, 하염없이 길 한켠에 멀뚱하게 세워져 있으면 얼마나 걸치적거릴까요.

 돌고 도는 전철길은 멉니다. 전철 걸상은 딱딱한 쇠붙이이거나 비좁습니다. 몇 해 앞서 전철에 불을 낸 사람 때문에 쇠붙이 걸상이 생겼습니다. 먼길을 가야 하는 사람은 두어 시간 동안 쇠붙이 걸상에 앉아야 합니다. 불지름은 전철에서만 할 수 있지 않고 비행기며 기차며 버스에서도 할 수 있는데, 오로지 전철만 걸상이 이 모양입니다. 공무원이나 나라님이 전철로 두어 시간 출퇴근을 한다면 전철 걸상을 이렇게는 안 만들 테지요. 전철역 걸상을 아예 안 놓거나 어쩌다 몇 군데 시늉으로 놓는 일은 없고요. 전철역 뒷간도 구석자리에 한 칸 겨우 마련해서 찾아가기 어렵게 하지 않을 터입니다. 세 시간 거리를 뒷간도 못 가며 꾹 참고 전철에서 버텨야 하는 노릇은 참으로 고단합니다. 가는 길에 몇 군데 역에서는 아직까지도 ‘간첩신고 안내방송’을 2분 가까이 큰소리로 틀어놓습니다.


.. “만져 보렴.” 바구니 안의 꽃잎들을 만져 보았더니 바짝 말라 있었따. “말린 꽃이에요?” “그래. 건조제랑 함게 신문지 사이에 끼워 두면 예쁜 색이 그대로 남게 돼. 하늘도 모르게 내리는 눈을 담아 두면 행복도 여기에 그대로 남게 될지 모르지.” “하늘도 모르게 내리는 눈이 뭐예요?” “흩날리는 벚꽃잎을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단다. 그 사람이 가르쳐 주었어.” 아주머니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더 있어. ‘하늘도 모르는 비’라는 게 뭔지 아니?” 아주머니가 물었다. “뭘까요? 아, 분수?” “틀렸어. 아무도 모르게, 남몰래 살짝 흘리는 눈물을 그렇게 말해. 예쁜 말이지?” ..  (31쪽)


 전철을 타며 책을 읽습니다. 먼저 《마음의 조국, 한국》(범우사,200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외로운 아이로 자랐다가 버림받아 길에서 쓸쓸히 죽을 뻔한 글쓴이는, 어느 날 재일조선인 넝마주이 할아버지가 거두어 주어서 길에서 얼어죽지 않게 되고, 스물이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글(일본글)을 배워 자기 이름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야간중학교에 다니며 ‘무기가 되는 글과 말’을 처음으로 깨닫고는, 자기처럼 배울 기회가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교육 혜택을 누려야 하지 않느냐면서 ‘야간중학교’ 운동을 펼칩니다. 그러면서 자기 목숨을 건져준 넝마주이 할아버지 고향인 한국(조선)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는 이야기를 책 하나에 담습니다.

 용산에서 잠간 내려 뒷간에 들른 뒤, 다시 전철을 타고 종로3가, 그리고 내처 3호선으로 대화역까지. 이제는 두 번째 책을 꺼냅니다. 제국주의 일본시대부터 일제가 저지른 짓을 슬퍼하던 한 사람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쓴 글을 모은 《반달의 노래》(1977)라는 책. 글을 쓴 할머니는 쭈그렁 늙은 나이가 되었어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적어 놓아야 할 이야기가 많다면서 이와 같은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얼마나 많은 모습을 보셨겠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겪고 스치고 만나고 어울리셨겠어요. 좋은 만남이 있었을 테고 슬픈 만남이 있었을 테지요. 오랜 세월 겪어낸 그 이야기를 차곡차곡 풀어놓아 준다면, 지난 세월을 몸으로 겪어 보지 못한 우리들이지만, 이 조그마한 책 하나를 넘기면서 눈물이 핑 돌거나 슬며시 웃음이 묻어날 수 있겠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젊은 넋과 얼한테 당신 모든 땀과 피를 책 하나에 남겨 놓습니다.


.. “결혼식 전날에 큰비가 내려서 여기 도랑이 넘쳤단다. 사진관도 물이 차서 이층에서 사진을 찍었지. 길이 온통 물바다여서, 갈 때 올 때 우리 남편이 배를 저었단다. 그게 가장 재미있었어.” “그런데 쇼고 할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시네요.” “전쟁을 할 때여서 그럴 거야.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남편에게 곧바로 소집영장이 왔단다. 소집영장이라는 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되어 전쟁이 나가라는 명령이야. 막 결혼을 했어도, 아기가 있어도, 병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형편이라도 젊은 남자라면 다른 나라 전쟁터까지 가야 했어. 그땐 그랬단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사실은 모두 부드럽고 착한 사람들이었어.” ..  (44∼45쪽)


 전철 옆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몸을 비빕니다. 조금이라도 당신 앉은 자리가 넓기를 바라면서 옆으로 비빔질을 합니다. ‘뭐여?’ 하는 마음으로 꿈쩍을 않다가, ‘그래, 고 1센티미터가 그리도 그립더냐?’ 하는 마음으로 옆으로 옮겨 앉습니다. 책을 읽으며 웅크리던 몸이 더 웅크리게 됩니다. 덩치는 나보다 작으면서 더 넓게 앉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란, 참.

 자동계단을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계단이 아닌 자동계단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제 앞으로 슥슥 지나갑니다. ‘사람 앞으로 함부로 지나가지 말라’고 배운 적이 없을까? 젊은 사람도, 어린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다른 사람 가는 길을 그렇게 막으면서 가고 싶을까? 몇 초나 더 빨리 간다고.

 대화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가 멎을 때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루루 달려듭니다. 이웃사람한테 자리를 내어주고 살며시 기다리는 사람을 못 봅니다. 아주 드물에, 타는문 앞에서 법석이면서 먼저 타려고 하는 사람들 뒤에 떨어져서 맨 나중에 타는 사람을 봅니다. 백에 하나쯤? 또는 이백에 하나쯤? 모두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공질서를 배우지 않았는가.

 버스는 잘 달립니다. 참 빠르게 잘 달립니다. 굽은길을 돌 때에도 빠르기를 줄이지 않고, 정류장에 닿을 때는 확 멈춥니다. 퍽 드문드문 느긋한 버스를 만납니다. 그렇지만, 버스를 타고내리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빨리빨리 제 갈 길을 가고 싶어할 터이니, 버스 모는 분들이라고 얌전하거나 다소곳하게 차를 몰지는 못하겠구나 싶습니다.


.. “엄마는 고치에 다녀와야 해. 이모부가 강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대. 그 아들이, 그러니까 사요코한테는 이모 아들이니까 이종사촌이네. 그 아이가 충격 때문에 병이 난 거 같아.”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 결국 외톨이가 되고 말았어. 그래서 엄마는 시골에 가야 해. 알았지?” 엄마는 그 아이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다케시 오빠야?” 이렇게 묻자 엄마는 순간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  (74쪽)


 옆지기네 식구들과 저녁을 함께 먹은 다음,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오는 사람들이 얼굴에 화장품을 떡바르는 이야기, 예뻐 보이지만 알고 보니 뜯어고친 얼굴이구나 하는 이야기, 최진실 씨 나이가 얼마쯤 되었을까 하는 이야기, 연예인들이 혼인하고 헤어지는 이야기, 신은경 씨가 얼굴살이 쪽 빠진 이야기 …… 옆지기 어머님이 연속극을 봐야 한다며 세 군데 것을 착착착 돌리며 함께 봅니다. 세 방송사 연속극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모두들 이야기 짜임새가 같습니다. 으리으리한 비싼 집이 있는 부자집에 사는 젊은 아이 하나와 서울 변두리에서 가난하게 사는 집 아이 하나가 서로 사랑하지만, 두 집안이 기싸움이라도 하는 듯 으르렁거리면서 비꼬는 이야기. 그런데 ‘가난한’ 집이라고 해서 나오는 사람들 집크기나 살림살이나 여러 가지를 보면, 조금도 ‘가난해 보이지 않’습니다. 집에서 된장국을 먹고 홍어찜에 막걸리를 마신다고 ‘가난한 살림’이 아닐 텐데.

 태어날 때부터 외제차만 타고다녔다고 하는 부잣집 여주인공이 ‘차면 다 똑같은 차이지, 외제차는 싫고 무슨 차만 탄다는 게 어디 있어?’ 하고 꺼내는 말은 철없는 소리를 넘어서,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말이지만, 이런 모습은 연속극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기 집 둘레만 알고, 이웃사람 삶은 모르며, 우리 삶터를 차지하는 훨씬 많은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에는 도무지 눈길을 두지 않고 혼자만 배부르고 넉넉하면 그만인 사람들한테 무슨 웃음 묻어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는지. 부잣집이라고 하며 나오는 사람들 집안살림은 죄다 ‘옛날 유럽 냄새’가 나는 모습이며, 스스로를 ‘공주나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여깁니다. 유럽 냄새 나는 물건을 쓰고 발레를 배우고 서양 차린옷을 입으면 잘나가는 사람이 될까요.


.. “엄마, 도요토미 히데요시 알아? 그 사람이 조선을 침략해서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를 베어 오게 했다던데, 정말이야?”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아버지가 조금 화가 난 듯이 물었다. “미키네 엄마가.” “그랬구나. 흠, 조선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요!” 엄마가 아버지를 흘겨보고는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건 사실이야. 일본에서 천하를 얻은 히데요시가 바다 건너 중국까지 자기 밑에 두려고 조선을 침략했단다 ……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것이 침략전쟁이라고 말하지 않지. 어느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이나 왕도 모두 거짓말을 하면서 전쟁을 한단다 …… 중요한 것은 자신만 옳다며 싸우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야 한다는 거야. 정의로운 전쟁 따위는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 엄마가 힘을 주어 말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121∼123쪽)


 엊저녁, 옆지기가 동생과 저를 이끌고 동네 이웃 몇 곳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읽고 퍽 좋았다고 느낀 책을 선물해 주자고 해서 다섯 권을 들고 왔고, 한 집 한 집 찾아가면서 나누어 주기로 합니다. 한 집은 길에서 만나서 건네고, 두 집은 아이들만 집에 있습니다. 두 집은 비어서 못 건넵니다. 아이들만 있는 집 부모님은 어디에 가셨을는지. 아이들은 집안에 박혀서 무엇을 하며 놀는지. 아파트는 썩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제법 집이 많은데, 놀이터에 나와서 노는 아이는 없습니다. 놀이터 한켠에 마련된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녁 이맘때는 시내에 나가서 흥청망청 즐기며 노는 때인지, 또는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때인지, 또는 집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끼고 노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지.

 모래밭도 있는 놀이터에서 잠깐 몸풀이를 합니다. 거님길 돌 사이사이 살아가는 개미귀신을 내려다봅니다. 새잎이 돋아나려고 하는 은행나무를 봅니다. 아직도 흐드러진 노란 꽃을 늘어뜨린 개나리를 봅니다. 개미귀신 집 옆 조그마한 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올린 민들레와 작은 들꽃을 봅니다.

 옷가게가 가득가득 모여 있는 이곳으로 자가용을 몰고 와서 옷 장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길가에 심긴 벚꽃 구경을 합니다. 벚꽃잎이 소리없는 눈으로, 따뜻한 눈발처럼 날립니다. 발밑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벚꽃에 넋이 빠져서 들꽃을 그예 밟아버리겠습니다.


.. “이영동이 시노부 누나 남편의 이름인가?” 미키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아저씨의 부모님도 여기에서 일하셨나? 그래서 아저씨가 이런 노래를 만든 걸까?” 미키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로 미키 할아버지도, 시노부 언니 남편의 부모님도 모두 강제로 끌려와 여기서 일했을까? 왜 그런 힘든 일을 해야만 했을까? ..  (167쪽)


 아이와 함께 옷 사러 나온 젊은 부부가 벚꽃을 보다가 “사쿠라가 많이 폈네?” 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며 우리 옆을 지나갑니다. 이 집 아이한테는 벚꽃이 아닌 사쿠라가 보이겠네요. 멀찍이 지나가는 젊은 아이 아버지가 “저기 고무신 신은 사람 있네?”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립니다. 슬쩍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왜 이렇게 똥배 나온 사람들이 많어?” 하고 내뱉고 싶었으나 참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 배가 꽤 뽈록뽈록입니다.

 백 군데는 훨씬 넘는 옷가게들이 장사가 될까 싶었지만, 새 옷가게는 더 늘어납니다. 앞으로 더욱더욱 늘어날까요. 연속극을 보면, 부잣집이든 가난하다는 사람들 집이든, 마루나 방 어디에도 책을 차곡차곡 마련해 둔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옷가지는 셀 수 없이 많고 장식품과 그림붙이는 촘촘히 걸려 있고 집은 집대로 널찍합니다. 마음은 가꾸지 않고 몸치레만 해야 돈 많이 벌고 이름값이 높아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마음 가꾸기란 우리가 눈길을 쏟을 데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책 하나 읽기 빠듯하도록 바쁘기 때문인가요. 책 하나 읽기 빠듯하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놀이를 즐기느라 그렇게 버거운가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몸은 얼마나 추스르는 우리들인가요.


.. 하지만 범인이 잡혔어도 사카모토 할아버지의 집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유키코 아주머니네 벚나무도 살아나지 않았다 ..  (204쪽)


 책이란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책은 이웃을 살피는 눈길입니다. 여태 몰랐던 일을 느끼게 해 주고, 이제껏 돌아보지 못한 세상을 가만히 돌아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멀디먼 남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얼핏설핏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삶터를 차분하게 되새기도록 도와줍니다. 집식구뿐 아니라 살가운 동무한테 일어나는 일을 팔짱낀 채 고개 돌리지 말라며 넌지시 알려줍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 있으나 모두들 한 마을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 우리 세상은 책하고 담을 쌓습니다. 책에 담긴 이웃사람 피땀하고 담을 쌓습니다. 책에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들 눈물과 웃음하고 담을 쌓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책으로 엮어내지 않고, 나라밖 이야기를 옮겨내기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는 가운데, 우리 삶이 녹아든 책은 가뭇없이 자취를 감춥니다.


 (2) 어른이 되어 가는 동안


 지금은 책을 가까이하면서 살아가지만, 어릴 적에는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많지는 않아도 집에는 책이 늘 있었고, 학교에도 모자라나마 학급문고가 언제나 있었습니다.


.. 나도 미키 옆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창문 반대편에 큰 도로가 있는데도 차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나도 꼭 먼지를 뒤집어쓴 궤짝이나 나무상자가 된 것 같았다. 미키가 왜 여기에 있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  (47쪽)


 반공독후감과 과학독후감 따위를 한 해에 두 차례씩은 써야 해서 반공동화와 과학동화를 자주 읽어야 했습니다. 반공동화를 읽을 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빨갱이는 나쁜 놈이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나아가고부터 억지스러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으로 저녁 열 시까지 매이고, 머리는 아주 짧게 깎아야 하고, 교사들은 당구채와 각목과 밀대자루와 야구방망이를 당차게 들고 다니며 휘두르는 한편, 남학교뿐이었던 인천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툭하면 싸움질에 동무들 괴롭히기를 보면서, 북녘을 깎아내리고 못난 나라라고 헐뜯는 일이 우습게 느껴졌습니다.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묶어 놓으니, 따분하게 문제모음 풀이에만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신문을 읽게 되고 교과서 아닌 책을 읽게 됩니다. 추천권장도서 목록으로 뽑은 100권도 찾아서 읽지만, 이 목록에 들어가지 않은 책을 하나하나 손수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찾아서 읽습니다.


.. 문득 시노부 언니와 손을 잡고 야시장에 오던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시노부 언니는 늘 미키도 데리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다 엄마들이 밤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노는 일이 많았다 ..  (111쪽)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책하고 가까이 지내지 않았어도 또래 동무와 손위 손아래 형 누나 동생하고 어울리는 가운데, 또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한테 귀여움을 받는 가운데, 또 이웃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듣는 가운데(개구쟁이 짓을 많이 해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쁨과 부끄러움을 배웠습니다. 중학교부터는 또래 동무 만나기도 힘들어지고, 한 반에서도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워집니다. 다른 아이들은 당구장에 나가고 몰래 술집에도 가고 사랑놀이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했지만, 저는 이런 놀음놀이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몸을 내돌리기 싫었고 마음을 망가뜨리기 싫었습니다.


.. “선물은 준비하지 못했어. 하지만 이거…….” 미키 엄마는 붉은 봉숭아꽃 몇 송이를 뜯더니 꽃잎을 짓이겼다. 그러고는 시노부 언니의 손톱 하나하나에다 꽃잎을 정성스럽게 문질렀다. 시노부 언니의 손톱은 발그레한 불빛이 켜진 듯 예쁜 붉은색이 되었다. “고마워요, 아주머니.” “봉숭아는 생명력이 강한 꽃이야. 그래서 시들어도 금방 씨앗에서 싹이 나와 한여름에 두 번씩 꽃을 피우지. 우리 고향에서는 여름이 되면 어느 집에서나 봉숭아가 가득 핀단다. 불 타듯 아름다워서 …….” ..  (127쪽)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어머니가 하는 여러 가지 부업을 형하고 거듭니다. 국민학교 때에도 거들었지만, 이때에는 신문돌리기를 거들고, 아랫집 아주머니 우유돌리기를 거듭니다. 그리고 중3 때에는 윗집 아이 과외를 해 주며 적으나마 제가 쓸 돈을 법니다.


.. 나는 꾸러미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자전거 열쇠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다케시 오빠가 빌려 왔다는 자전거에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다. ‘사요코에게. 중고이지만, 첫 월급 탄 돈으로 어제 샀어. 다케시가.’ 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오빠……!’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오빠! 오빠! 오빠!’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나를 두고 가지 마! 오빠, 날 두고 가지 마!’ ..  (209쪽)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나마 방학 때 하던 신문돌리기를 못합니다. 여느 날에는 중학교 적보다 오랫동안 학교에 붙잡히니 어머니 부업 거들기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한 주에 두 차례씩, 학원 가는 길에 한 시간쯤 짬을 내어 책방 나들이를 하고, 주말에 인천 시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때에도 서너 시간씩 옛 신문 읽기와 묵은 잡지 읽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헌책방 책맛을 알게 되어, 고2 때부터는 주말과 명절에는 헌책방에 파묻혀 책이 이끌어 주는 길로 몸을 맡기면서, 학교와 집이라는 울타리에서는 도무지 만날 길이 없는 사람들을 책을 거쳐서 만납니다.

 제가 겪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제가 보지 못한 일을 본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들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3)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라는 이야기책


 꼭 세 해에 걸쳐서 읽은 이야기책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를 덮습니다. 덮고 나서 한참 동안 숨을 길게 내쉬고 하늘을 봅니다. 옥상마당에 올라 햇볕을 쬐면서 바람을 맞아 봅니다. 넓게 펼쳐져 보이는 동네 골목집들 지붕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지금은 아직 그대로 있기에 지붕이 두루 보이는 동네 골목집들입니다. 그러나 머잖아 이곳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또 ‘도시환경정비’라는 이름으로, 또 ‘주거환경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싹 사라져 버리면, 우리 집 옥상마당에서 수봉공원 있는 데에까지 바라보던 모습은 끝입니다. 예전에는 이 옥상마당에서 자유공원이나 인천 앞바다까지 내다보았을 터이지만, 이제는 새로 솟은 엄청난 아파트와 갖가지 건물 때문에 막혀서 보이지 않습니다. 머잖아 태어날 우리 집 아이는, 이 집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는지. 나는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무엇을 보도록 하고 무엇을 느끼도록 하고 무엇을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을는지.


.. ‘내가 꾼 것은 그냥 꿈이 아니야. 언젠가 어딘가에서 정말로 보고 들은 것이 보고 싶은 얼굴이 되어 나타난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꿈의 조각들이 모여들면서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눈이 빨갛게 되도록 울던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요코, 이리 오렴, 안아 줄게.”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  (98쪽)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에 나오는 사요코는 곧 중학생이 되는 초등학교 어린아이입니다. 훨씬 어려서는 미처 모르고 있었으나, 식구들 가운데 자기한테만 갓난아기 적 사진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며 곧잘 어머니한테 자기 어린 날을 여쭙곤 하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합니다. 가끔 꾸는 꿈에 낯설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낯설지 않은 아저씨와 오빠를 만나고, 오빠 이름을 듣습니다. 어렴풋하던 꿈속 모습은, 차츰차츰 환해지면서, 지금 자기를 길러 주고 있는 부모는 친부모가 아님을 시나브로 느낍니다.

 이러는 가운데 자기가 살아가는 조금 가난한 골목집에서 이웃사람들, 그러니까 이웃 어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배웁니다. ‘나이에 걸맞는 슬기’를 이웃 어른들한테 익힙니다.

 그리고, 자기 친오빠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찾아와서 말없이 주고 간 선물(자전거)을 받고는, 여태껏 흐릿하게 어려 있던 자기 그림자를 또렷하게 깨닫습니다.


.. 이 작품은 내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 거리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만났고, 아픔을 겪었습니다. 나는 그 거리에서 삶과 죽음을 보았고,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배웠습니다. 나는 그 거리만이 지니고 있던 슬픔의 깊이와 삶의 소중한 기쁨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1960년대가 이야기의 배경이지만, 잊어서는 안 될 그 시절의 가치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  (214쪽 / 글쓴이 말)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를 쓴 분은 두 부모를 두었습니다. 낳은 부모와 기른 부모. 또한, 낮은자리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동네에서 이웃사람과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이 작품,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에는 글쓴이 고시미즈 리에코 님이 ‘자기 스스로 고를 수 없이 주어졌던’ 운명대로, 그 삶대로, 리에코 님이 찬찬히 받아들인 발자취가 담깁니다. 리에코 님이 눈물로 살았다면 이 작품에 눈물이 담길 터이고, 리에코 님이 웃음으로 살았다면 이 작품에 웃음이 담깁니다. 리에코 님이 재일조선인 역사를 어릴 적부터 하나둘 들으면서 컸다면, 이 작품에도 재일조선인 발자국이 살포시 배입니다. 이리하여, 리에코 님이 ‘서울과 부산을 물길로 이으려는 정책이 거침없이 밀어붙여지는 한국땅’에서 태어났다면, 이러한 형편을 몸속 깊이 삭이는 가운데 당신 삶을 이야기책 하나로 남겼겠지요. (4341.4.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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