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방석 사계절 아동문고 71
박효미 지음,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할 말’ 없는 어린이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잠깐 읽기 20] 박효미, 《길고양이 방석》



- 책이름 : 길고양이 방석
- 글쓴이 : 박효미
- 그린이 : 오승민
- 펴낸곳 : 사계절 (2008.10.9.)
- 책값 : 8800원



 (1)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삶터와


 목포에 사는 형이 동생인 저한테 새 셈틀 하나와 외장하드 하나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셈틀이 먼저 오고 외장하드가 나중에 왔는데, 외장하드를 가지고 와 주는 택배기사는 ‘그제 배송완료’로 올려놓고는 오늘 낮 느즈막하게 가지고 왔습니다. 뻔뻔하게 ‘배송완료’라 해 놓고는 전화연락조차 되지 않던 그 택배기사는 물건을 건넨 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기요, 바쁘시겠지만 ……” 하고는 말문을 열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바쁘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제 물건을 갖다 주었다고 처리를 해 놓고 아무런 연락이 없이 이틀이나 보낼 수 있습니까?”


.. 엄마가 얼른 고개를 들고 할머니를 쏘아보았다. 할머니가 하던 말을 뚝 멈췄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애 다치면 어떡할 건데? 몸도 안 좋은 애를. 그런 생각은 해 봤니?” “어머니, 다 생각했어요. 지명이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친구들이에요. 놀 수 있는 친구들. 지금 행복하게 놀 친구가 필요하다고요. 지금 행복이 중요하다고요. 잘 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퉁명스레 내뱉은 엄마 말 중 하나가 느닷없이 내 머리를 툭 쳤다. 지금 행복한 게 중요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 “지은아, 들어가 너 할 일 해.” “응, 근데 사회 숙제 있어. 세계 문화 유산 사진 찾아오래.” “알았어. 넌 공부나 해. 엄마가 찾아 줄게. 어서 방으로.” 엄마 재촉에 쫓겨 내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 시계 옆에 학습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모든 게 순서대로다. 맨 위에 올려져 있는 건 영어 동화책. 영어 테이프는 벌써 엄마가 꽂아 놓았을 것이다. 그 밑에는 풀다 만 수학 문제집. 내가 풀어야 할 부분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다 ..  (13∼15쪽)


 택배기사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줄줄 늘어놓습니다. 택배회사 본사로 전화까지 해 보니 몇 번이나 미안하다면서 곧바로 물건을 보낸다고 한 때에서도 이틀이나 지났는데, 정작 택배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얼굴이고 몸짓이었습니다. 늦거나 말거나, 아니면 물건이 사이에 사라지거나 말거나 자기하고는 아랑곳할 일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쓰겁게 웃으면서, “그래요? 그럼 가세요.” 하고는 그만두었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음에도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벙긋하고 꺼낼 줄 모르는 사람한테, 당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닫게 하기란, 굳이 미안하다는 소리 한 마디 들으려고 하기란, 참 어리석다고 느껴졌습니다.


.. 문득 지명이한테는 허용되는데 나한테는 안 되는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이는 친구랑 실컷 놀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러도 되고, 나는 놀기는커녕 친구를 부르는 것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긴, 우리 집에 오겠다는 애도 없다 ..  (34∼35쪽)


 지난달 어느 날, 인천에 있는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제 사진 두 장을 말없이 훔쳐서 쓴 데다가, 저작권표시마저 ‘자기 것’인 듯 고쳐서 쓴 일이 있었습니다. 지역 소식을 알아보려고 인터넷 글을 뒤적이다가 뜻밖에 보게 되었으니, 그날 어떤 기사 하나 찾으려고 부지런히 인터넷 글을 살피지 않았다면, 제 사진이 도둑질된 줄조차 모르고 지나쳤겠구나 싶습니다.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내용증명 한 통을 썼습니다. 내용증명에는, 저작권자 허락 없이 사진을 쓴 일, 저작권자 표기를 지운 일, 사진에 적혀 있던 저작권자 이름을 지우면서 자료사진이라고 적어 넣으면서 소유권을 빼앗은 까닭을 물으면서, 이와 같은 말썽거리를 하루빨리 고치라고 썼습니다.


.. “야! 빨리 가. 나 학원 시간 늦는단 말이야.” “아이고, 성질하고는. 야, 생각해 봤냐? 학예회.” 나는 되도록 태연하게 말했다. “그날 시험 보러 가야 돼. 영재 시험.” “왜? 그런 걸 왜 신청했어?” “외고 가려면 그런 것도 해야 된대.” 이렇게 말해 놓고 나는 흠칫 놀랐다. 엄마처럼 말하고 있다. 내 안의 엄마가 지금 유리한테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대신 시험 신청을 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내 속에 앉아 있다. 진짜 나는 뒷방으로 쫓겨나 버렸다 ..  (72쪽)


 그러나 제 사진을 도둑질한 분은 당신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투였고, 자기 둘레에 아는 시민사회단체 사람한테 뜬소문을 퍼뜨려 ‘사진 도둑질을 받은 제가 외려 잘못한 사람인 듯’ 내몰리는 처지가 되게 했습니다.

 저는 제가 애써 찍은 사진이건 무엇이건 스스럼없이 거저로도 주고, 따로 제 돈을 더 들여서 종이로 뽑고 사진틀에도 끼워서 선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된 밑바탕이 그릇된 채 도둑질을 한다면, 그리고 도둑질을 해서 쓰는 매체가 돈이 없거나 가난한 매체가 아닌 바에는, 제대로 된 값을 치르고 가져가서 쓰도록 합니다. 정 형편이 안 닿아서 당신들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전화라도 한 통 해서 도와 달라고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연락도 허락도 없이 몰래 쓰고는, 잘못한 줄도 깨닫지 못하니.


.. “뭘?” 수돗물 소리가 다시 뚝 그쳤다. 엄마가 날 보자 어깨가 움찔했다. “그냥 학예회 하고 싶어.” 엄마 표정이 일그러지다가 어색하게 펴졌다. “지은아,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돼.” 엄마가 내 어깨를 잡았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고 눈에서는 덜컥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엄마가 내 등을 토닥토닥 다독거렸다. ‘그런 건 언제 해? 나중에? 미래에? 어른이 돼서?’ 내 마음이 소리쳤다.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며 내 방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내 몸은 순순히 엄마를 따라갔다 ..  (79쪽)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생각합니다. 똥 눈 아기를 씻기면서 생각합니다. 잠깐 눈붙이며 쉴 틈 없이 쌀을 씻고 냄비에 안치면서 생각합니다. 옥상마당에 널어 말린 기저귀를 걷어서 개면서 생각하고, 까르르 웃는 아기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어떤 사람 둘레에서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럭무럭 자랐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대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웠는지를.

 숱한 사회살이와 회사살이를 거치면서 몸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이나 경험이란 무엇인가요. 숱한 사람을 부대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는 슬기나 깜냥이란 무엇인가요.

 우리한테 이웃이란 누구이며 동무란 누구이고 식구란 누구인가요. 우리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우리 둘레 사람들은 어떻게 어깨동무하며 지낼 수 있는가요.

 우리한테 소담스러운 일이란 무엇이고, 우리 스스로 아름다이 여길 대목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꾸리는 삶이 즐거운 삶이고, 어떻게 이루는 꿈이 신나는 꿈이며, 어떻게 쓰는 돈이 넉넉한 돈입니까.


.. 나는 아무 데로나 걸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곳이라곤 학교 앞 커다란 상가 몇 개가 다였다. 상가를 지나 곧장 오르면 집이다. 나는 상가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빵집을 기웃거리고, 상가 뒤쪽 문방구 앞도 얼씬거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조금씩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한테 엄청 맞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펑펑 울지도 모른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것들이 날 괴롭혔다. 나는 결국 학교로 돌아갔다 ..  (140쪽)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으로 사귀는 사람이 아니고, 돈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돈으로 맺어지는 터전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깊은 사랑으로 함께하고, 너른 믿음으로 같이하며, 포근한 나눔으로 하나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많은 돈을 알뜰살뜰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돈 많은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지식과 슬기를 이웃과 스스럼없이 나누는 똑똑이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름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이름값이 나를 높이는 이름값이 아니라 내 이웃한테 따순 눈길을 건넬 수 있는 이름값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2) ‘할 말’ 없으면 문학이 아닐 텐데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을 읽습니다. 책이름부터 남다르게 느껴지는 《길고양이 방석》은,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겪는 아픔을 다루는 한편, 장애 있는 아이와 장애 없는 아이를 다르게 키우는 부모 모습을 다루고, 오로지 돈 많이 버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일류대학교에 들어가자면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고 학습지와 학원 공부 말고는 눈길을 돌릴 까닭이 없다고 여기는 부모 모습을 다룹니다.

 주인공 가운데 한 아이(걷지 못하는 어린 동생)는 자기가 아끼는 방석 무늬를 보고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책이름은 여기에서 따옵니다. 그런데, 책이름으로 쓰이는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지나가는 생각 한 줌으로 책이름을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만, ‘방석’도 아니요 ‘고양이 방석’도 아닌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책이름을 붙이면서, 이와 얽히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줄도 나오지 않으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책이름을 이렇게 붙이는 바람에,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은 엉뚱한 데로만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을까요? 뜻없이 붙인 책이름 때문에 ‘방석’이 말해 주거나 보이는 이야기를 감추어 버리지 않는가요? 방석을 깔지 않으면 다리가 아픈 장애 아이를, 방석 하나가 살가운 동무처럼 되어 있는 장애 아이를 바라보기보다는 ‘길고양이가 어쨌는데?’ 하는 생각을 자꾸자꾸 뻗치게 되지 않습니까? 그냥 꽃이라 하면 되는데 ‘은방울꽃’이나 ‘제비꽃’이라고 부러 예쁜 이름을 붙이면서, 예쁘게만 꾸미려는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궁금함은 책이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길고양이 방석》을 펼쳐 읽는 내내, 글쓴이가 우리한테 참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장 솜씨 괜찮고, 이야기 짜임새도 제법 탄탄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공부에 치이고 밟히는 모습을 낱낱이 잘 그려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알맹이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써서 아이들한테 읽히는 까닭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구태여 종이책으로 찍어서 읽혀야 하는 까닭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줄거리는, 장애 있는 동생이 갑작스레 병이 걸려 죽고 나서 저절로 ‘입시공부에서 살며시 풀려나게 되었다’는 맺음말로 끝납니다.


.. “원하는 걸 내가 다 했다고? 뭘? 공부? 학습지? 학원?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널 위해서잖아. 지은이 널 위해서.” “그건…… 엄마가 원하는 거잖아.” ..  (146쪽)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문학이 ‘가르침(교훈)’이어야 할 까닭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가르침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르침만 지나치면 지루하고 가르침이 하나도 없으면 허전합니다. 가르침이란 교장 선생님 훈시 같은 말씀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저절로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못 배웠다고 하는 분들이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자락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크게 배우는 일이 퍽 많은데, 크게 배우게 되는 까닭은 못 배웠다는 분들이 훌륭한 말씀을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 손바닥을 보고 얼굴을 보고 매무새를 보기 때문에 배웁니다. 환경사랑과 재활용을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추운 겨울날에 실장갑 하나만 낀 채, 또는 맨손으로 헌 상자나 신문지 들을 그러모아서 다문 몇 백 원 벌이를 하는 삶은, 수십 수백 권짜리 환경책과 견줄 수 없이 아름다운 환경 이야기이곤 합니다. 헌책방 일꾼이 버려진 책을 캐내고 손질하여 새롭게 빛나도록 애쓰는 일 또한, 그 어느 출판평론가가 책을 사랑한다고 길게 논문을 쓰는 일하고 견줄 수 없이 거룩한 책사랑이곤 합니다.

 그나저나,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듭 읽어도 느낌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줄거리는 있으나, 줄거리를 있게 하는 생각 한 줄기가 없습니다. 이야기 짜임새는 있으나, 이런 이야기를 짜넣어서 들려주는 느낌 한 가지가 없습니다. 솜씨 좋은 글매무새는 있으나, 솜씨 좋은 글매무새에 담겨 있는 넋과 얼을 찾기 어렵습니다.


.. 둘레에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얘들아, 왜 그러니?” “아줌마, 얘 못 걷지요? 몇 살이에요?” 순간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머리속에 열기가 가득 찼다. 선생님이 대답하기도 전에 딴 아이가 또 물었다. “왜 안고 다녀요? 두 살이에요?” “에계, 다리가 뭐 저래.” 내 키만 한 아이가 불쑥 나서서 소리쳤다. “야 야, 손도 그렇잖아. 얘 장애인이야.” 지명이가 움찔 움츠러들었다 ..  (121쪽)


 어쩌면 《길고양이 방석》을 쓰신 동화작가는 아직 습작을 쓰는 눈높이가 아니랴 싶습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습작에 습작을 거듭하면서 차츰 나아질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 말은 없지만 쓸 글은 있는 지금 모습을 씻어내고, 할 말이 있도록 자기 삶을 붙잡고, 할 말이 알알이 여미어지도록 글 하나를 갈고닦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동무들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으로 크면 좋은가 하는 깨우침이 모자란 가운데, 글쓴이 스스로 바로 지금 어떻게 자기 삶을 다스리면서 가꾸어 나가야 즐겁고 아름다운가를 제대로 못 깨우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군데군데 톡톡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놓인 끔찍한 형편’ 이야기는 코앞에 벌어지는 일처럼 살뜰히 그려내지만, 이런 ‘상황 보여주기’를 왜 하는지, ‘아이들이 이렇게 입시공부에 갇힌 까닭’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을 입시공부에 밀어넣는 부모’들은 어찌하여 이런 부모가 되고 말았는지를 못 헤아렸구나 싶어요.

 주말연속극도 문화이자 재미난 이야기일 수 있기에, 《길고양이 방석》 같은 어린이책도 문학이요 재미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쓴이나 출판사나, 또 어린이문학 평론을 하는 분들 스스로 《길고양이 방석》과 같은 작품을 ‘문학’이라고, 더욱이 ‘어린이문학’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준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너무도 부끄러운 짓을 하는 셈 아니랴 싶습니다. 쭉정이는 쭉정이이고 깜부기는 깜부기입니다. 쭉정이는 벼이삭일 수 없고 깜부기는 보리이삭일 수 없습니다.

 세부묘사와 줄거리 짜기와 문장수련은 훌륭히 하지만, 무엇을 보여주려는 세부묘사인지가 없고 무엇을 들려주려는 줄거리 짜기인지가 없으며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은 문장수련인지 없는 아쉬움을 털어내는 문학을, 어린이문학을 기다려 봅니다. (4341.12.13.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친구 아들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5
노경실 글, 김중석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왜 ‘학교’에 보내야 하는가
 [잠깐 읽기 17] 노경실, 《엄마 친구 아들》



- 책이름 : 엄마 친구 아들
- 글쓴이 : 노경실
- 그림 : 김중석
- 펴낸곳 : 어린이작가정신 (2008.10.14.)
- 책값 : 8400원



 (1) 우리한테 학교는 어떤 곳인가


 저녁 아홉 시 무렵, 옆지기는 아기를 등에 업고 두 사람이 골목마실을 합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기를 돌보면서 지치고 힘든 우리 둘이는, 아기를 안거나 업고 밖으로 나오면 아기가 고이 잠들어 한숨을 놓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땅도 좀 밟고 살자면서 숨이라도 돌리고 싶어서 바깥바람을 쐬러 나옵니다.

 슬슬 거닐며 낯익은 골목도 지나고, 아직 디디지 못한 골목도 지납니다. 어둑해진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이 보이고,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입니다. 동산고등학교 옆을 지나고 박문여자고등학교 옆을 지나며 재능대학교 옆을 지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건물은 가장 높은 층 유리창에 불빛이 환합니다. 지난날을 거슬러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나, 3학년 교실은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궁금했는데, 가만히 보면, 가장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려고 1∼2학년 아이들하고 떨어뜨리려고 위층에 올려놓았는지 모릅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열 시하고도 반. 인천은 서울과 달라 시내버스도 일찍 끊기는데, 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버스라도 넉넉히 있으려나. 보아 하니 열한 시는 되어야 학교에서 풀려날 듯하고, 거의 열두 시 가까워서야 버스를 탈지 모르는데, 학교 선생들은 도무지 무슨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저렇게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닦달을 하고 있는지. 원.


.. “현호야, 엄마 친구 아들은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등해서 해외 연수 가는 장학금을 받는대.” “누구요?” 나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누군지는 알아서 뭐 하게? 엄마 친구 아들이 한둘이야?” “그럼 엄마 친구 아들들은 다 똑똑해요?” ..  (25쪽)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이들 스스로 저 굴레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도 이러한 굴레에서 아이들을 홀가분하게 풀어놓지 않습니다.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라갑니다. ‘너희들한테는 다른 볼 것 없어. 오로지 대학교뿐이야.’ 하는 윽박지름에 고분고분 따릅니다.

 늦은밤, 햇볕 한 줌도 못 쬐었을 법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 몇몇은 길바닥에 침을 찍찍 뱉습니다. 건널목이 빨간불임에도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꾹 찔러넣은 채 여 보라는 듯이 건넙니다. 이튿날 저녁, 다른 동네 다른 고등학교 앞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사내든 계집이든, 아이들은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는 이죽거리는 얼굴로 길바닥에 침을 직직 뱉습니다.

 문득 내 고등학교 적을 되돌아보니, 그무렵에도 이와 같은 얼굴로 이와 같은 몸짓으로 이와 같이 침을 내뱉는 동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나도 멋있지 않고, 하나도 ‘불량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딱할 뿐입니다. 그저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햇볕이 아닌 형광등 불빛에 하루 열 몇 시간씩 시달리는 아이들이 되다 보니까, 닭우리에 갇혀서 잠도 못 자면서 알만 낳다가 고기닭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암탉들처럼, 이 아이들도 햇볕 아닌 형광등 불빛에 시들고 길들고 찌들면서, 마음밭이 자꾸자꾸 거칠어지고 메말라 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렇게 신기한 점이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데, 왜 엄마는 나를 보면 활짝 웃는 때보다 툴툴거릴 때가 더 많을까? 내가 알아낸 답을 말해 줄게. 첫 번째 이유, 내가 일등을 못 해서다. 두 번째 이유, 누나와 자꾸 싸워서다. 딱 두 가지 이유로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그러나 ‘일등’이라는 이유는 조금 억울해. 내가 위인전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학교 공부 일등해서 훌륭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거든. 오히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고 걱정시킨 위인들이 많아. 그러고 보면 나는 착하고 훌륭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야. 너도 위인전을 꺼내 놓고 하나하나 조사해 봐 ..  (16쪽)


 올해에는 아직 옛날 고등학교 적 선생님들 뵈러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옛날 동무들이 모여서 예전 선생님을 뵈러 찾아가곤 합니다. 꼭 스승날에 맞추지는 않고, 예전 선생님 시간에 맞추어 찾아뵌 뒤 소주 한잔을 걸칩니다. 학교에서 뵙기도 하고, 선생님 사는 집 둘레 소주집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학교에 갈 때면 으레 예전 교실도 둘러보지만, 예전 교사나 요즘 교사나 똑같이 한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도 살펴봅니다. 남자교사 책상 한쪽에 올려져 있거나 옆에 서 있는 ‘몽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세상은 틀림없이 ‘민주화’가 뿌리내렸다고 말하고, 우리 나라는 어김없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아직도 제 고향땅 인천에 있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매타작 소리가 학교를 쩌렁쩌렁 울립니다. 더욱이, 매타작 소리를 듣는 어린 후배들은 이러한 매타작을 ‘잘못을 했으면 마땅히 받아야 할 벌’로 여기고 있어서 아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되묻습니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하지? 그때에는 너희들이 몽둥이를 들고 선생님을 두들겨패면 되니?’


.. 대신 지섭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말을 했지요. “그게 어때서? 우리 엄마는 공부만 일등하면 다른 건 하나도 못해도 나를 왕자처럼 모실 거야.” ..  (44∼45쪽)


 되물음에 대답을 해 준 후배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회 후배들(지금 고2)은, 아니면 30회 후배들은, 아니면 40회 후배쯤 되어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저는 4회 졸업생입니다).

 옆지기와 아기와 함께 밤마실을 하다가 밤늦도록 불이 켜진 고등학교 옆을 지나가면서, 밤나절 술 한 병 사러 동네 구멍가게를 다녀오는 길에 이웃한 고등학교 아이들 몸짓을 보면서, 마음이 늘 어둡습니다. 우리가 어버이 된 몸으로서, 이러한 일을 모두 치러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진 대목이 없음을 알고 있는 마음으로서, 우리 아이가 제도권 학교에 다니도록 해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아이가 제도권 학교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입을 때 어찌해야 할는지 근심입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아이가 학교에 다닌들 무엇을 배울는지 끌탕압니다.


 (2) 좋은 이야기감이나 섣부른 끝맺음


 어린이책 《엄마 친구 아들》을 읽습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를 써도 늘 아이들 눈높이에서 헤아리고 살피면서 아이들 마음결을 보듬어 주는 노경실 님 새 작품입니다. 아들(남자)만 높이 섬기는 한국땅에서, 이웃집 아들과 자기 집 아들을 견주느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지 못하는 온갖 문제를 맛깔스러우면서도 앙증맞게 잘 여미어 놓은 작품입니다. 진작에 이러한 글감으로 우리 교육 문제와 집살림 문제를 짚어냄직도 했건만 여태껏 이러한 ‘우리 삶 자잘한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은 어린이책이 드물었습니다(어른책도 드뭅니다). 《상계동 아이들》과 《복실이네 가족 사진》부터 《어린이 동장 만세》와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와 《네가 있어 엄마는 행복해》에 이르는 수많은 창작을 일구어 낸 노경실 님을 생각한다면, 이쯤 해서 이분이 이만한 작품을 선보일 만하구나 싶습니다.


.. 나는 그냥 보통 어린이야. 바둑은 아마 5급이고, 태권도는 까만 띠야.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정도는 피아노로 대충 연주할 수 있어 ..  (10쪽)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서, 또 마무리를 보면서, 어쩐지 팥소가 빠진 찐빵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군대 계급장 같아(12쪽)” 하고 생각하는 《엄마 친구 아들》 주인공인데, ‘엄마 친구 아들’로서 겪는 아픔이나 생채기가 잠깐 스치듯 보여질 뿐인데다가, 아이가 엄마한테 뿔이 나서 ‘집을 나가는(가출)’ 마지막 대목에서 참으로 싱겁게 ‘해피 앤딩’이 됩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누나하고는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는 주인공(현호)이 딱 하나 잘하는 일이라면,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 꼬박꼬박 하기라고 하는데, 주인공이 어느 날 불현듯 ‘나한테도 자랑할 만한 일이 있다’고 느끼며 어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는 아이 마음을 조금도 읽지 못하는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잔뜩 뿔이 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 안 해요!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엄마 아들 안 할래요. 그러니까 다른 아줌마네 아들을 엄마 아들로 삼아요! 나는 다른 아줌마네 아들 할게요.(57쪽)” 하고 외치고는 집을 박차고 나옵니다. 그런데 13층 집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이, 주인공네 어머니는 그사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이한테 미안해 하며 툇마루 창문을 열고 “아들! 아들! 빨리 들어와!” 하고 두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도 있지만,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책을 죽 읽는 동안, 주인공네 어머니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아니 갑작스럽게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자기 아이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마음그릇이 아닌 분입니다. 더구나 주인공네 어머니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왜 내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대면서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우리 아이(아들)한테 사랑스러운 구석은 무엇일까?’ 들을 찬찬히 짚거나 살피는 이야기나 실마리는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모든 문제가 풀려 버리고 말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 엄마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하면서 시큰둥해 하리라 봅니다.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틀림없이 마땅하고 알맞으며 좋은 이야기감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감이라고 하여 늘 쓸 만한 책으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좀더 곰삭여야 하고, 좀더 둘레를 살펴야 합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읽으라 할 책이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도 읽으라 할 책일 텐데, 뼈가 없는 말만 가득하다면, 아니 뼈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재미나마 담지 못한 말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톡톡 튀는 사잇그림이 듬뿍 담긴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어린이책은 될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이나 또 아버지들이나 가슴에는 한 가지 고이 남아서 자기 삶을 돌아보며, 왜 ‘엄마 친구 아들’ 따위 허튼 말을 함부로 쓰면서 서로한테 생채기나 입히는 삶으로 서로서로 고달프게 하는가를 한 가지도 건드리지 못하고 맙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섣불리 마무리를 짓지 말고, 2부를 새로 써서, 집을 박차고 나온 아이 마음을 좀더 차근차근 살피는 이야기를 더 쓰거나, 아이가 집을 박차고 나간 까닭을 헤아리거나 짚어나가는 어머니 이야기를 더 쓰거나 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4341.11.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박남정 글, 이형진 그림 / 소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6 ― 자전거 못 타게 하는 나라에서 우리 권리란
 : 박남정,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책이름 :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글 : 박남정
- 그림 : 이형진
- 펴낸곳 : 소나무 (2008.10.27.)
- 책값 : 8500원


 (1) 학교와 자전거


 숱한 뺑소니 사고(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다가 차가 자전거를 친 뺑소니 사고)를 겪고 난 뒤탈로 마음껏 자전거 나들이를 즐기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둘레에서는 으레 ‘작은 차라도 하나 사서 타고 다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가볍지 않은 사진장비에다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들이는 책도 많은데, 아기까지 있는 몸으로 어찌 다 짊어지고 다니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운전면허조차 일부러 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차를 사라고 한들 소 귀에 읽는 불경일 뿐입니다. 저한테는 운전면허도 없지만 운전면허를 딸 생각도 없고, 앞으로 환경파괴가 하나도 없는 자동차가 나온다면 모르지만, 그때를 맞이하더라도 운전면허를 따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비록 사고 난 자리(어깨, 팔꿈치, 손목, 무릎)가 결리고 쑤시고 아프지만, 틈틈이 짧은 거리나마 자전거로 움직입니다. 장보기를 하면서, 볼일을 보면서, 골목마실을 하면서 자전거를 탑니다.


.. 그때였다. 교실 앞쪽 벽에 달린 스피커가 칙칙거리더니 교감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알립니다. 당산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특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잘 들으세요. 학교 주변 빌라와 아파트 주민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세워 두는 바람에 불편하다며 항의를 하셨습니다. 에…… 또……, 학교 주변 도로도 사정이 좋지 않아 사고가 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자전거 통학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절대로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뭐야, 무슨 소리야?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  (16쪽)


 1987년 2월,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앞으로 우리가 갈 중학교를 알려주는 담임선생은 저를 따로 불러서 “종규 넌 좋겠다. 앞으로 학교에 자전거 타고 다니겠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갈 중학교는 우리 국민학교를 통틀어 꼭 열여섯만 가게 되었는데, 집에서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야 했습니다(사십 분 남짓). 다른 동무들이 많이 가는 ‘집하고 가까운 중학교’에는 뽑히지 않고(뺑뺑이였으니), 몇몇 아이들하고 멀디먼 데까지 가야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동무들하고는 죄다 떨어질 뿐 아니라, ‘자전거 통학은 무슨 얼어죽을 자전거 통학. 누가 자전거를 공짜로 사 주기나 하나?’ 하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제가 갈 고등학교는 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학교로 떨어집니다. 뺑뺑이질은 어김없이 괴로운 가시밭길만 선사합니다. 중학교 다니던 그 길은 왼편으로는 목재처리장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폐수처리장이 있으며, 학교 뒤로는 화학공장이 있고, 그 옆으로는 돌산이 있었습니다(건물에 쓰는 돌을 캐는 산). 중학교 세 해 동안 이 모진 터전을 겨우 견디었다 싶더니, 고등학교 세 해도 이 모진 터전에서 숨막혀야 하는가 싶으니, 울고 싶더군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긴 해, 대학교 앞 신문사 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자전거를 몹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동무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린 다음 학교에 오곤 했는데, 그무렵 그렇게 집안살림을 거들며 공부하는 녀석이 몹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새벽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어머님이 해 주신 아침을 먹고는 새벽 여섯 시 반 즈음 해서 학교에 닿아 아침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앞서까지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면서 마음닦이를 한다고 깝죽을 떨었지만, 정작 책삶에만 기울고 이렇게 새벽나절을 땀흘리 일하는 데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을 느꼈어요. 이리하여 ‘나도 언제쯤 동무녀석처럼 새벽에 신문 돌려서 살림을 보태고 낮에는 공부하고’ 하는 삶을 붙잡을 수 있을까를 헤아렸고, 이 헤아림은 네 해 만에 이룬 셈입니다.


.. 솔직히 혜진이는 자전거 통학이 금지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집이 학교와 가까워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올 일도 없거니와 평소에도 자전거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19쪽)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괜히 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했다가 들키면’ 각목이나 당구채로 몽둥이찜질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국민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만, 제아무리 선생님들이 뺨따귀를 올려붙이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도 ‘옳지 않다’고 느낀 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일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들은 체벌과 주먹질로만 다스리려고 할 뿐, 사람과 사람으로, 또 말과 말로 문제를 푸는 민주주의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지난 아홉 해와 다름없이 ‘하지 말라’는 당신들 말씀을 하느님 말씀처럼 섬기라고 우리들한테 한 주에 두 차례씩 아침모임을 하면서 우리 머리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옳지 않다고 느껴지는 일을 옳다며 따를 수 없는 노릇. 이때에도 중학교 때와 다름없이 선생님들은 발길질과 체벌과 얼차려와 점수깎이로 우리 머리를 깔아뭉개려고 했습니다. 초중고 열두 해라는 세월은 민주주의와 조금도 가까이 사귈 수 없는 나날이었으며, 우리 나라는 조금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가 아님을 깨닫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이 열두 해를 더듬어 보면,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무는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교사도 없었습니다. 걸어서 오는 동무나 교사도 아주 드물었습니다. 적어도 시내버스를 탑니다. 다음으로 자가용을 탑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버스를 탑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럴밖에 없구나 싶은데, 처음부터 ‘자전거 타고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전거로는 위험하니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지 말도록!’ 하고 다그치는 교장 교감 교무주임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2) 사회와 자전거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는 동안, 신문배달 자전거를 타고 ‘그리 넓지 않은 강의실 건물’을 오갔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학교임에도 걸어서 움직이면 ‘쉬는 시간 10분은 금세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잠깐 오줌 누러 뒷간에 가기도 벅차고요. 초중고등학교 때처럼 한 교실에서 배우고 교사가 왔다갔다 하는 틀이 아니니, 강의 하나가 조금이라도 늦게 끝나기라도 하면, 다음 강의를 맡는 강사는 ‘지각생은 안 받겠다며 문을 잠그는’ 일이 생기기도 해서, 자전거로 달리면서 오가는 일은 퍽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에도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 강의를 들으러 오는 선후배나 동무는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제가 타는 짐자전거 바구니에 담배꽁초를 휙휙 버리는 사람은 늘 있었고, 신문배달 자전거 바구니 바닥에 책이 긁히지 않게 깔아 놓은 신문지 한 장을 몰래 훔쳐가는 사람 또한 언제나 있었습니다. 신문배달 자전거이고 신문사 지국 이름이 굵게 적혀 있던 만큼 자물쇠를 안 채우고 살았는데, 세 해 동안 이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를 오가는 사이 딱 한 번 도둑을 맞았습니다.


.. 신호가 바뀌자 민우가 먼저 출발했다. 새 자전거를 탔으니 사이클 선수처럼 폼 나게 쌩쌩 달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 사랑마트 앞길에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불록불록 솟은 보도블록 때문에 바퀴가 튕겨 오른 것이다. 롯데상가 앞에서는 숫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다.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차들이며 가게에서 내놓은 짐이 아침부터 길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로 차도로 오르락내리락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달려 학교 앞에 도착한 민우와 성태는 늘 하듯이 교문 앞 아세아 빌라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웠다. 민우는 이미 세워져 있는 서너 대의 자전거를 밀쳐가며 기둥 옆에 자전거를 바짝 세웠다. 그리고는 앞바퀴에 하나, 뒷바퀴에 하나, 열쇠를 두 개나 채웠다. “이 정도 해 두면 아무도 안 가져가겠지?” 열쇠가 잘 채워졌는지 끈을 흔들어 보기까지 하고도 민우는 자전거 옆을 떠날 줄을 모른다. “그렇게 걱정되는데 새 자전거는 왜 타고 왔냐?” “학교 올 때 아니면 탈 시간이 없잖냐. 학원 마치고 집에 가면 캄캄한 밤이고. 학교 안에 자전거 보관소가 있으면 좋을 텐데…….” ..  (10쪽)


 신문사 지국을 나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동안, 책 나르는 일을 하자면 자동차 없이는 안 됨을 느낍니다. 그러나, 늘 길이 꽉꽉 막히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전철로 움직이거나 자전거로 움직이면 한결 빠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한 대 굴리자면 달마다 일꾼 한 사람 쓰는 돈이 들기 마련일 뿐더러 차값이나 보험값 들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로 움직인다고 더 빠르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면허가 없으니 늘 얻어타고 움직이는데, 큰짐을 나를 때에는 짐차를 불러서 나르고, 여느 때에는 자전거로 움직이는 일이, 나무한테 고맙게 종이를 얻어서 책을 만들어 먹고사는 우리들로서는 마땅히 할 노릇이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업을 하면서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모두들 코웃음을 칩니다. 서울 시내만 해도 자전거로 다니면 훨씬 빠를 듯하다고 이야기하면 술이나 마시라며 말허리를 뚝 끊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있는 일을 하는 어느 누구라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기 두 다리를 써서 자전거를 굴리면서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자기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가르친 사람이 없으니 배울 사람이 없습니다. 가르치는 책이 없으니 스스로 익힌다 하여도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더 많은 책은 읽고 더 많은 스승한테 훌륭히 가르침을 물려받았다고는 하지만, 삶으로 곰삭여서 엮어내는 마음밭을 가꾸는 ‘깨우친이’는 드물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환경운동가가 몇 안 되고, 자전거를 타는 진보운동가가 얼마 안 됩니다. 자전거를 타는 생협운동과 여성운동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는 교육운동이나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박정희 독재경제가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로 이루어졌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를 어떻게 씻어내면 좋을지를 헤아리거나 아는 사람은 씨가 말랐다고 할까요.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엿들을 지식인은 둘레에 많이 보였지만,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몸으로 옮기는 지식인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만나는 자리에서도, 만나고 돌아선 뒤에도, 그분이 쓴 책을 읽으면서도.


.. “솔직히 처음에는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학교 다니기 편하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한 건데, 하면서 보니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배들,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창하게 말하면 지구 환경도 지킬 수 있는 일이고요. 그래서 어제 제가 집에 가서 시장님께 편지를 써 봤습니다.” ..  (73∼74쪽)


 어쩌면,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우리 형편에서는, 자전거란 한낱 ‘추억’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을 ‘추억’을 넘어 ‘우리 삶(현실)’으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을 줄 아는 지식인이 드물듯, 자전거를 추억이 아닌 우리 삶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땀흘리며 부대끼려고 하는 지식인이 드물더군요. 자기 몸을 써서 땀을 내는 일은 한결같이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면, 우리 몫으로 다른 이들이 땀을 흘려 주어야만 할까요. 우리가 먹는 밥과 입는 옷과 자는 집은, 내 손이 아닌 다른 이들 값싼 품삯으로 얻어야만 하나요.

 밥하기, 빨래하기, 치우기, 아기보기를 비롯한 온갖 집안일을 제 두 손으로 치러내는 지식인이, 아니 ‘배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자기 짐을 자기 가방에 넣어서 자기 어깨힘으로 나르는 사람, 또 자기 움직일 곳을 자기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가는 사람, 밖에서 밥을 사먹지 않고 손수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 무엇보다도 이웃사람 목숨을 아끼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일거리를 찾아서 즐기는 사람은, 아니 ‘배운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늘 궁금합니다.





 (3)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하는 나라


 베네수엘라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은 자기한테 내려진 권리를 짓밟는 어른(공무원)한테 맞서서 다부지게 자기들 권리를 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림책에 담겨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한테 기쁨과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서울 당산초등학교 아이들은 자기한테 주어진 권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려는 어른(교장 교감과 빌라촌 주민)한테 맞서서 당차게 자기들 권리를 찾아냈고, 이 이야기는 이야기책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에 소록소록 담깁니다.


.. “사실 학교에서 자전거 통학 금지를 했지만, 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편하고 재미도 있어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선생님한테 들킬까 봐, 친구들이 보고 학교에다 이야기할까 봐 걱정하면서 몰래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참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자전거 타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그래.” 환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전, 자전거를 안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벌어진 것도 같지만, 죄 지은 사람처럼 눈치 보며 자전거를 타고 싶지는 않았어요. ……” ..  (37∼38쪽)


 그런데 우리 나라 당산초등학교 아이들 앞길은 무척 거칠었습니다. 어른들(교장 교감을 비롯한 다른 교사들)은 ‘말 한 마디로 손쉽게 자전거 금지령’을 내렸고, 아이들은 ‘말 한 마디 대꾸도 못하는 채 그저 따르기만 해야’ 했습니다. 따르지 않고 몰래 자전거를 탔어도 마음 한켠이 켕기면서 답답했다고 합니다. ‘자전거 금지령’을 내려야 했다고 해도, 학교 다른 교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든지, 아이들 생각을 들었다든지 하지 않고, 그저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만들어서 내려보내기만 할 뿐입니다. 더욱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일터를 오갈 권리가 있음에도, 이러한 권리를 지키지 않고, 외려 권리를 막거나 밟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학교 둘레 길 형편이 자전거 타기에 알맞지 않아서 자전거를 못 타게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학교 둘레가 자전거 타기에 알맞는 길 형편이 되도록 마음을 쏟고 정책을 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로 오가기에 알맞지 않은 길은 걸어서 오가기에도 알맞지 않을 뿐 아니라, 차로 오가기에도 나쁩니다. 우리들은 차를 교실 안까지 타고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더욱이 모든 학생과 교사가 자가용으로 다니게 된다면, 이리하여 서울이든 다른 도시이든 모든 사람이 자기 차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우리 나라 길은 어떻게 될까요. 모든 사람이 걸어서만 움직일 때, 또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아무런 말썽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타면 말썽이 크게 생기고, 나라는 아주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 1886년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뜨겁던 자전거의 인기는 한순간 차갑게 식어 버렸어요. 그러다 20세기 후반부터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다시 치솟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많이 탈수록 선진국이라 불릴 정도지요. 이번에도 이유는 자동차.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동차가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대도시 사람들이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더 자전거를 이용해도 공기오염이 줄고, 기름 사용이 줄고, 도로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이 줄고, 병원비나 약값이 줄어들어 3조 원 정도는 절약될 것이라고 합니다 ..  (97, 101쪽)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2.4%라고 하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둘레를 돌아볼 때 ‘2%라는 숫자도 믿기 어렵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우리 나라는 1%도 아닌 영점 몇 퍼센트밖에 안 되지 않을까 모를 일입니다.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어서 2.4%라고 해도, 두 곱이 늘어 5%가 조금 못 되어 나라살림이 3조가 줄어든다면, 네 곱이 늘어 10%가 되면 나라살림은 십 조원 넘게 아낄 수 있을 테지요. 이렇게 되면 미국 무역에 기대어 달러값이 솟느니 주식값이 떨어지느니 하며 걱정할 일도 많이 걷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할 일을 안 하면서 투정만 부리는, 아니,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으면서 우리 삶터가 지저분하거나 엉망이거나 좋지 않다며 투덜거리고만 있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자전거길은 새로 만들지 않고, 찻길 50센티미터쯤만 페인트를 그어서 자전거한테 내주어도 넉넉합니다. 자전거 세울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면 건물 한쪽 빈자리에 마련하면 되기도 하지만, 자기 책걸상 옆에 접어서 놓아도 됩니다. 바퀴 큰 26인치짜리만 자전거가 아니라, 10인치와 16인치와 20인치짜리도 자전거입니다. (4341.11.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소년들 - 수단 내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전하는 세 소년의 충격 실화
벤슨 뎅 외 지음, 주디 A. 번스타인 엮음, 조유진 옮김 / 현암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72 ― 총칼 든 전쟁과 돈다발 든 전쟁
 : 수단 난민 세 소년이 쓴 《잃어버린 소년들》



- 책이름 : 잃어버린 소년들
- 글 : 벤슨 뎅, 알폰시온 뎅, 벤자민 아작
- 엮은이 : 주디 A. 번스타인
- 옮긴이 : 조유진
- 펴낸곳 : 현암사 (2008.6.20.)
- 책값 : 13500원


 (1) 평화란 어떤 삶일까


 우리 집 아기를 보러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느즈막하게 찾아온 손님은 저녁을 미처 못 먹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찐 다음, 먹기 좋게 송송 썰어서 도시락에 담아서 내어 드립니다. 한손에는 도시락통을 들고 한손으로는 냠냠 집어먹으면서 율목동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따 집에 와서 마실 술 몇 병과 안주거리를 가게에서 산 다음, 가까운 닭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닭집 안이 무척 시끄러워서 우리는 밖에서 먹기로 합니다. 조금 선선하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이라서 우리 둘은 호젓하게 앉아서 튀김닭을 밥 삼아 맥주를 마십니다.

 집에서 가까운 골목길 닭집이기에, 두 시간쯤 옆지기가 저한테 말미를 내어주어서, 고맙게도 아기 돌보는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쉽니다. 아기를 혼자서 돌보기에는 옆지기 혼자서 힘들 텐데, 제 몸을 생각해서 이럴 때 손님하고 쉬기도 하고 술도 한잔 걸치라고 해 줍니다.

 이리하여 손님과 저는 닭집 둘레 오래된 골목가게 간판을 구경하면서 간판 이야기도 하고, 서울 골목길과 전국 골목길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울산은 아마 시내버스로 다니기가 전국에서 가장 나쁜 곳이라며, 모두들 자가용을 끌게 되니 자연히 시내버스가 줄게 되어, 낯선 이들이 울산을 찾아가면 택시 아니고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아직 울산을 못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울산만한 도시라면, 자가용보다는 자전거를 몰면 훨씬 즐거울 테고, 찻삯도 아낄 테며, 몸도 한결 나아질 텐데. 가까우면 걷고, 조금 멀면 자전거를 타고, 좀더 멀면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 될 텐데. 우리들은 지구자원이 메마르는 일에는 거의 걱정을 않으면서 살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술잔을 걸치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지난날 서울에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던 때 동무나 선후배를 만나 술집에 가던 때를 떠올립니다. 술집을 찾아가는 길은 늘 시끄러웠고 불빛이 번쩍거렸으며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웬만한 술집은 노래소리로 시끄럽거나 텔레비전 소리로 귀가 따가웠습니다. 술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시끄러운 소리보다 높은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우리도 목소리를 안 높일 수 없었습니다. 술집에서 두어 시간 술을 걸치고 나오면, 술기운보다는 귀가 홀가분해지고 머리도 가벼웠습니다. 젊을 때는 시끌벅적한 데를 곧잘 즐겨찾았는데,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면서 호젓하고 조용한 술집이 아니면 있기 어려워집니다. 같은 술이고 같은 사람이지만, 시끄러운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한테 오롯이 마음을 기울이기 힘들어 애써 마신 술도 그리 맛나지 않게 됩니다. 조용하고 호젓한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 얼굴을 더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고, 이야기도 훨씬 너르고 그윽하게 나눌 수 있어 술맛도 한결 맛나곤 합니다.


..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려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 갔다. 난민촌에서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다 … 난민촌의 삶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곳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야수에게 먹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배급날이 되어 새벽에 나가서 하루 종일 줄을 서는 일이었다. 3일을 굶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는 그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끓어오르는 뙤약볕 아래에서 경찰에게서 곤봉으로 얻어맞으며 줄을 섰다 ..  (알레포, 403, 407∼408쪽)


 옆지기가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전화를 합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나 싶어 시계를 보고는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율목동 골목 닭집에서 일어납니다.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동 골목길 안쪽을 살짝 돌아봅니다. 오래된 문패, 오래된 대문, 오래된 방범창살, 오래된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 들을 어둠 밝히는 거리등불에 기대어 살짝살짝 느끼면서 걷습니다.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길이라 밤에는 더 한갓지며 고즈넉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고요함, 이 한갓짐, 이 고즈넉함, 이 아늑함,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느낌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주는 평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 한켠에 조그맣게 마을을 이루어서 쉰 해고 백 해고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평화를 맞이할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스무 해조차 한 집에서 버틸 수 없이 서너 해에 한 번씩, 아니 전월세 계약이 끝나는 한 해나 두 해마다 새로운 살림집을 알아보고 또 짐을 꾸리며 옮겨서 다시 짐을 풀고 해야 하는 삶이란 싸움터와 마찬가지로 고달프고 힘겹고 마음아픈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재개발에 따르는 이익이 아니라 재개발에 따라 자꾸만 집터에서 내쫓기며 더 구석과 더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는 삶이란 전쟁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피터는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나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형 모습이 조금도 못 자란 어린아이 같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피터를 뒤로 하고 요셉 형과 내가 팔라타카를 떠난 뒤부터 지금까지 지내 온 고통스런 순간들에 대해 어떻게 이제 와서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팔라타카에서 피터를 버리고 떠날 때와 같은 고통과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나팅가에 남은 요셉 형, 벤슨 형, 벤자민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요셉 형은 수없이 많이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비록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안전한 곳에 도달했는데, 요셉 형은 이미 전선에 배치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더러운 감옥에 갇힌 벤자민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모두 벤슨 형 덕분이었다. 다른 소년들과 함께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아픈 나를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한 벤슨 형은 이제 나 때문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난 아팠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였다 ..  (알레포, 349∼350쪽)


 집으로 돌아와 옆지기까지 마주앉아서 술잔을 부딪힙니다. 옆지기도 모처럼 가볍게 술 한잔을 하면서 마음을 쉽니다. 아기는 우리 두 사람과 손님을 너그러이 헤아려 주는지, 잠에서 깨지 않고 시간마다 오줌만 눌 뿐,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새벽 네 시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고,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엊저녁에 불려 놓은 콩과 쌀을 냄비에 담고 밥을 끓입니다. 손님은 열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고, 말끔히 씻은 다음 둘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 마실을 합니다. 서울에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지만, 약속은 뒤로 미룬 채 자전거를 타다가 그냥 끌다가 하면서, 골목집 텃밭을 구경하면서 사진으로 담고, 텃밭에 우뚝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며 인사를 하다가 사진으로 남기고, 바람에 나부끼며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를 흐뭇하게 올려다보다가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받이 골목길 끝까지 올라가면서 곳곳에 알뜰히 가꾸어 놓은 꽃그릇에 웃음꽃을 돌려줍니다.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고 하면서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사진찍기에 빠집니다. 아름다이 여미어 놓은 골목길은, 이곳에 깃들어 사는 사진쟁이한테도, 또 이곳을 처음 밟는 낯선 손님한테도 즐거운 사진 놀이터가 됩니다.

 숭의3동 109번지와 송림동이 갈리는 세 갈래 골목길에서 나이든 할아버지가 우리를 불러세우면서 몇 가지 다짐 말씀을 해 줍니다. 당신도 젊을 적에는 자전거 참 많이 탔다고, 타다가 넘어져서 다치고 이가 나가고 여기가 나가고 깨어나니 병원이고 했는데, 이런 비탈길 같은 데에서는 조심조심 타라고, 사람보다 차가 더 빠르니까, 차보다 더 빨리 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몸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몇 번씩 힘주어 말씀하시다가는, 즐겁게 자전거를 타라며 한손을 내밀며 뜨겁게 붙잡아 줍니다. 이발소집에서 사는 할아버지를 앞으로 또 뵐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쟁 앞에 우리는 바람에 흩어지는 나방과 같이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혼자 떠돌아다니는 나 같은 아이는 발길로 걷어차고 나뭇가지로 때려도 되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벤슨, 235, 275쪽)


 (2) 전쟁은 어떤 삶일까


 옆지기 옛동무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기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집 가까이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은 다음, 저는 집에서 아기를 돌보기로 하고, 세 사람은 바깥마실을 나갑니다. 아기는 잠들 듯 말 듯하다가는 잠들지 않고 칭얼댑니다. 안으면 칭얼거림을 멎고 자리에 눕히면 칭얼거립니다. 히유, 아빠도 좀 다리 뻗고 누워 보자, 응, 하고 아기한테 말을 걸지만, 아기는 아빠 말을 알아듣지 못할 테지요. 외려 아기는, 여봐 아빠, 아기는 아빠 품에 안기고 싶어한단 말이에요, 잘 좀 안아 보시라구요, 하고 말을 걸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허리는 아프고 눈은 감기는데, 아기를 품에 안고 둘리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노래를 잇달아 부르면서 아기를 달래고 놀아 주고 어릅니다. 한참을 이렇게 있어도 도무지 잠들 낌새가 없어서, 아기가 꿉꿉해서 이러나 싶어, 물을 끓여 씻기기로 합니다. 뜨거운 물이 튈까 아기를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아기는 싫다며 앙앙 웁니다. 주전자를 한 번 붓고 나서 아무래도 한 팔로 안으면서 해야겠다 싶어, 한 팔로 안고 주전자에 물을 받고 끓이고 하니 아기는 조용합니다. 원, 녀석두, 이렇게 아빠를 힘들게 하고 싶니, 하고 말을 하지만 눈만 말똥말똥.

 발부터 살며시 넣으면서 천천히 씻깁니다. 머리를 감길 때까지 보채던 아이가 몸에 조금씩 물을 끼얹어 주니 조금씩 조용해집니다.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 아기, 하면서 구석구석 꼼꼼하게 물을 끼얹고 문질러 줍니다. 아기를 거의 다 씻을 무렵 옆지기가 돌아옵니다.


.. 그 무렵, 나팅가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소년들은 모두 모여 지휘관의 연설을 들었다. 그건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너희는 이제 군사 교육을 받을 거다. 학교에 갈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나 총을 가지고 다니게 될 거다.” 소년들 대부분은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좋아했지만, 내가 듣기에 그것은 슬픈 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 생각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우리 소년들을 나팅가에 데리고 와서 잡아 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반군 병사로 만들기 위해 잡혀 온 것이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전선으로 보내져 죽든 말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게 되겠지? 나팅가의 병사들은 말했다. “하루에 천 명이 죽으면 백 명이 태어나는데, 누가 너희 또래 아이들이 죽든 말든 싱경이나 쓴다던?” ..  (벤슨, 336쪽)


 아기를 안으며 지낸 지 어느덧 두 달. 말이 두 달이지, 이 두 달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거의 종잡지 못하겠습니다. 하루 같은 두 달인지 이태 같은 두 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기를 안고 어르는데 무슨 광고 전화가 오면 몹시 짜증스럽지만, 건너편에서 광고 전화 해대는 사람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아주 큰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아기가 깜짝 놀랄까 걱정이지만, 기차를 모는 분들은 당신들이 오가는 이 기차길 옆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삶은 거의 헤아리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기차 승무원들은 기차길 옆 동네 사람들 삶터를 두 다리로 거닐면서 기차소리가 사람들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몸으로 좀 느껴 보아야지 싶어요.

 이런 마음씀은 때때로 아기를 안고 어디를 다녀와야 할 때에도 느낍니다. 아기 포대기를 안고 살금살금 걷고 있는 저나 옆지기를 툭툭 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아기 포대기인 줄 모르기 때문에 저러느냐 싶기도 하고, 아기 포대기이거나 말거나 자기 갈 길이 더 중요하니까 저르느냐 싶기도 합니다. 아기가 찬바람이라도 맞을까 걱정되어 살살 포대기를 안으나 그 옆에서 대놓고 뻑뻑 담배 태우며 걷는 아저씨들이 꼭 있습니다. 당신한테 아이가 없어서 못 느끼는지, 당신도 이 아이와 똑같은 어린 날이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지 못해서 그러시는지.

 아기와 옆지기만 두고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전철을 타는데, 전철간에서 아기를 업고 타는 아주머니나 아기를 안고 타는 아주머니를 으레 봅니다만, 이이들한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분들을 만나기 퍽 어렵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날이 갈수록 애 어머니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는 눈길이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 나는 리니 형과 티크 형이 하는 얘기를 귀기울여 들었지만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일 나는 다시 가족을 다시 만나겠지만, 전쟁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이상 파제리에서의 평화로운 시간도 다 되어 가는 듯했다. 같은 나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늘에서는 정부군이 폭탄을 떨어뜨리고, 땅에서는 반군이 무기를 굴리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소리를 지르는 곳. 반군 병사가 피투성이가 되고, 총알구멍이 뚫린 군복을 입고 정부군 병사의 시체를 치우는 곳. 아, 과연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이기에! ..  (벤슨, 290∼291쪽)


 왜 이렇게 우리들 삶이 팍팍할까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바쁘기에, 얼마나 고되기에, 얼마나 전쟁통 같은 삶이기에, 얼마나 내 이웃을 적처럼 여기며 밟고 올라서서 우뚝 서는 ‘나홀로 1등’과 ‘나홀로 부자되기’를 이루어야 하기에 이렇게 착한 마음을 잃는지 모르겠습니다.

 착한 마음을 잃고 돈버는 마음만 키워도 되나요.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 뒷사람들한테, 착한 마음이 아닌 돈버는 마음만 물려주어도 되나요.

 어려운 이웃한테 베푼다는 ‘불우이웃돕기’는 성금모금함 부피나 크기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나누고, 돈이 없으면 돈이 아닌 품으로 나누면 됩니다. 품을 들여서 일손을 거들고, 마음을 쏟아서 따뜻하게 감싸 줍니다. 돈 몇 닢을 나눈다고 해도 사랑과 믿음을 담는 돈닢이어야지, 주기 싫으나 눈치 보여서 억지로 내어놓는 돈닢은, 이 돈닢을 받는 사람한테도 고마움을 느끼게 하기 어렵습니다.


.. 나는 멀리서, 정부군이 사로잡은 마을 주민들의 손과 발을 묶고 목에 긴 밧줄을 걸어 엮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부군은 줄줄이 엮인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도록 눈을 가리고는 끌고 갔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강물에다가 버려. 총알도 사실 낭비야.” 그날 밤, 나는 야자나무가 무성한 우리의 사랑스러운 마을 주올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  (알레포, 177쪽)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울과 부산을 더 빠르게 잇는 고속철도를 놓는 데에 돈을 쓰기보다, 우리 이웃이 서로서로 고르게 권리를 누리고 집없이 살아가는 설움과 고달픔을 맛보지 않도록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을 뚫는다며 공사를 벌이기보다, 또 이런 공사를 하느니 마느니 알아보느라 적잖은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남녘과 북녘 모두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밥나눔을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새 고속도로를 뚫어서 어느 한 곳과 다른 한 곳을 빠르게 잇는 길을 닦는 데에 수십 조라는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이 나라 모든 어린이들이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거저로 배우고 넉넉히 자기 배움을 사회로 되돌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 보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스무 해만 되면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비싼 돈 들여 지은 아파트 때려부수지 말고, 적어도 이백 해는 너끈히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지어서, ‘재건축에 들어가는 돈’을 어려운 살림살이 꾸리는 가난한 이웃나라 돕는 데에 쓴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 “벤슨, 넌 아직 옳고 그른 걸 판단할 줄 모르는 나이야. 그래서 엄마는 너를 두고 걱정이 많구나. 네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과 의지가 되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다. 그러니 아들아, 엄마가 살아 있는 한, 엄마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너도 꼭 살아남아야 해. 앞으로는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전보다 총소리가 가깝거나 크게 들리면 집에서 도망쳐야 해. 죽어라 뛰어서 덤불 속에 숨어. 절대 잡히거나 노예로 붙들려 가면 안 돼. 다쳐서도 안 된다.” 내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동물의 울부짖음 같았다. “총을 든 병사 흉내도 내지 마라. 딩카 족의 아이답게 너는 소나 다른 동물들의 인형을 만들면서 놀아야 해. 딩카 족은 총을 가지지 않아. 총은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사악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반군 병사 흉내를 내며 총놀이를 하는 건 불운을 가지고 올 뿐이다.” ..  (벤슨, 90쪽)


 이룰 수 있다면 그지없이 반갑고 고맙습니다만, 이루지 못하게 되더라도 꿈이나마 꾸고 싶습니다. 꿈을 꾸면서 앞으로 언젠가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 눈앞에서 즐겁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3) 수난 내전과 끔찍한 죽음, 《잃어버린 소년들》


 종교를 놓고 다툼이 생겨서 서로를 끔찍하게 죽이고, 끔찍하게 죽은 뒤 앙갚음을 하려고 똑같은 죽임을 되풀이하게 되는 수단 내전 이야기가 담긴 책 《잃어버린 소년들》을 읽습니다. 《잃어버린 소년들》에 나오는 ‘잃어버린 소년들’은 처음부터 어떤 종교를 믿고 살던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며, 이 아이들 아버지와 어머니도 처음부터 어떤 종교에 몸이나 마음을 맡기지 않으면서 살았습니다. 수단사람 어느 누구도 종교뿐 아니라 전쟁무기 만드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나라를 쳐들어간다든지, 이웃에 뿌리내린 겨레를 짓밟는다든지 하는 일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갈린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만 하지 않고 죽여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도 잃고 고향도 잃고 삶터조차 잃으며 일자리조차 꿈을 꾸지 못하는 데다가 아무런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 연필이 주어지는 일은 드물고, 나이가 차면 자연스레 소총 한 자루 쥐어주어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몹니다. 열서너 살에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몰린 아이들은 소총 한 자루를 믿고 손쉽게 남 목숨을 고꾸라뜨릴 뿐더러, 가볍게 강간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약탈과 도둑질을 일삼습니다.


.. 벤자민이 밑에 깔려 죽어 갈 때 다른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병사만은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이제 더는 세상은 우리 같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곳이 아니었다. 엉덩이에 총을 들이민 어린 병사처럼, 나도 총을 가지고 낄낄거리는 얼굴에 들이대고 싶었다 ..  (벤슨, 310쪽)


 책을 덮고 한숨을 내쉽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하나라도 더 무너뜨리며 밟고 올라설 적’으로 삼아서,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 바쁩니다. 비록 총칼을 들지 않았으나, 어쩌면 총칼보다 훨씬 무서운 돈다발을 들고서 누가 이기나, 누가 지나, 누가 죽나, 누가 죽이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러느라 너무도 바쁜 나머지, 총칼을 들고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는 수단 같은 나라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펼치지 못합니다. 돕지는 못할망정 우리 삶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독이거나 다스리면서 평화로움을 찾도록 애쓰지 못합니다.


.. 하지만 열 살 정도 된 소년들 가운데 많은 아이가, 어른들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 한다.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그 아이들 마음속에는 복수심만 자라난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자비나 용서를 몰랐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돌처럼 굳어 버린 것 같았다 ..  (알레포, 203∼204쪽)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아름답다고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좋다고 가슴에 돋을새김하면서 일하고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서 발자국을 남기면 좋다고 몸뚱이에 남기고 있는지 곱씹어 봅니다.

 수단은 총칼을 든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돈다발을 든 전쟁 때문에 이 나라 아이들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내동댕이치고 있는 모습을 날마다 수없이 보고 또 보고야 맙니다. (4341.10.14.불.ㅎㄲㅅㄱ)

 

***

엉성한 번역이 퍽 많고, 잘못된 번역도 틀림없이 있는 듯하지만, 그런 잘잘못은 건너뛰기로 한다. 다만, 104쪽과 133쪽과 136쪽에는 "빨간 팬티"로 나오지만, 151쪽과 338쪽에는 "빨간 반바지"로 나온다. 책 겉그림에도 빨간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나온다. 그 겉그림을 보아도 알겠지만, "빨간 팬티"가 아닌 "빨간 반바지"이다. 이 잘못된 대목은 2쇄에서는 고쳐지기 바란다.

이밖에 너무 눈에 도드라지는 잘못된 곳은 '묵다'를 '묶다'로 자꾸 잘못 적은 대목. 아무래도 번역자나 편집자가 놓쳤다기보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보여진다. 한 번만 틀렸으면 모르되, 서너 차례 되풀이된다. 또, '처지다-뒤처지다'처럼 적어야 올바르지만, 한 번은 '처지다'로 잘 썼으나, 그 뒤로 여러 차례 '뒤쳐지다'로 잘못 적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봄나무 밝은눈 1
강수돌 지음, 최영순 그림 / 봄나무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하나 70 ―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구 살리기’
 : 강수돌,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 책이름 :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 글 : 강수돌
- 그림 : 최영순
- 펴낸곳 : 봄나무 (2005.3.10.)
- 책값 : 9500원



 (1) 책으로 읽는 세상


 지난주, 서울 홍익대 둘레에서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잔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날에 헌책방 아주머니가 ‘한국적 책마을을 생각한다’는 이야기감으로 당신 삶을 들려주어야 하는 자리가 있어서, 길잡이 노릇을 하고자 함께 찾아갔습니다. 책잔치 마지막날이기도 했으나 일요일이었고, 여느 때에도 일요일 저녁이면 사람으로 득시글득시글하는 홍대 앞 주차장골목은 발디딜 틈이 없이 붐비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을 안내요원한테 묻고 또 물으면서도 길을 찾기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길을 헤매는 동안 ‘출판사에서 차려 놓은 매대’를 얼핏설핏 들여다보면서 까마득함을 느꼈습니다. 책잔치란 ‘책을 싸게 내다 팔아서 출판사로서는 재고정리를 하고, 읽는이한테는 적은 돈으로도 더 많은 책을 사도록’ 하는 일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을 즐기면 무엇이 좋고, 책을 사랑하면 어떻게 기쁘며, 책을 가까이하면 우리 삶이 얼마나 나아지는가를 신나게 느끼도록 해 주는 자리가 ‘책잔치’라고 생각합니다.

 잔치가 끝난 뒤 사람들이 남긴 글을 살피면서, ‘인터넷 새책방 ㅇ 같은 데에서도 여느 때에 30퍼센트 할인을 해 주고 있는데, 이번 잔치에서 고작 20∼30퍼센트 할인만 해 주느냐’는 투덜거림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올해로 네 번째 치르는 책잔치인데, 앞으로도 이렇게 ‘깎아파는 재고 책 털이’에 그치고 말는지 걱정스럽고, 서울국제도서전도 ‘깎아파는 재고 책 털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새로 꾸리며 당차게 선보인다는 책잔치도 똑같은 눈높이에서 헤매인다면, 우리 책마을이나 문화를 돌아볼 때 그지없이 슬픈 일이 아니랴 싶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어떤 물건이든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판다고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까요? 우리 나라 사람 모두가, 아니 세계의 모든 사람이 무조건 많이 만들어서 쓰고 살면, 과연 이 지구가 견딜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돈이 많아서 물건을 많이 살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우리 사회는 예전보다 돈이 엄청 많아졌는데, 만약 돈이 많은 만큼 행복해진다면 지금이 훨씬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  (머리말)


 그러고 보면, 요즘 사람들은 헌책방에 가서 책 한 권을 살 때 ‘헌책이니 한 권에 천 원이면 되지’ 하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새책을 살 때에는 ‘한 해만 지나면 인터넷 새책방에서 40퍼센트까지 깎아서 파는데’ 굳이 동네책방에 가서 온돈 다 치르고 살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동네책방뿐 아니라 큰책방에서도 ‘한 해 지난 책’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매대에서 거두어들입니다. 안 그러면 손님이 다 떨어집니다. 책을 보는 우리들은 책을 ‘속에 담긴 줄거리 받아들여 나 스스로 새로워지기’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싸게 장만할 물건이 될까’에 마음을 쏟습니다.

 책은 수없이 넘쳐나는데, 이렇게 넘쳐나는 책을 가슴 깊이 기뻐하면서 살포시 껴안는 흐름은 깊어지지 못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이나 훌륭하다고 할 만한 책은 끊임없이 나오지만, 애써 나와도 꾸준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책이 책이 아니게 되고, 새로 나오는 번들번들한 물건만 책처럼 여겨지는 판입니다. 대학교 앞에서 인문학책을 다루는 조그마한 책방은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훌륭한 인문학책은 한 해만 반짝하고 파는 책이 아니라, 열 해 스무 해 쉰 해 백 해를 이어가며 꾸준하게 읽히고 곰삭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싸구려로 넘겨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읽을거리, 곧 마음밥이어야 할 인문학책인데, 몇 해 앞서 바뀌어 버린 도서정가제법에 따라서, 인터넷새책방은 값 후려치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고, 출판사는 책방에 넣는 할인률을 더 깎아야 하며, 이에 따라 출판사는 책값을 뻥튀기로 더 올려붙일밖에 없는 가운데, 정작 좋은 원고를 묶어낸 작가들은 제몫을 못 받습니다. 이렇게 되는 세상에서는 누가 돈을 벌고 누가 보람을 얻으며, 누가 즐겁게 될까 궁금합니다.


.. 그냥 재미나게 공부하면서, 1등 2등 가리지 말고 살 수는 없을까요? … 자기가 좋아서 하는 공부나 일이라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겠어요 ..  (18, 27쪽)


 책을 읽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서 무엇을 얻고, 책을 읽어서 얻은 깜냥을 어떻게 펼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는 이야기하지 못하는 운동으로 그치기 일쑤입니다.

 도서관을 만들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나 도서관에 어떤 책을 얼마나 갖추어야 하고, 이 도서관에 어떤 사람이 어느 때에 얼마나 찾아오도록 하느냐에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드뭅니다. 새벽밥 먹고 늦은밤 별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시 노동자들한테 어떤 책을 어떻게 읽히도록 하는 책쉼터로 가꿀 도서관인가에까지 마음을 기울이자면 아직 머나먼 일이 될는지요.

 유럽을 본따서 책마을이나 책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그런데 책마을이나 책도시가 관광상품인지, 세금 쓰려는 일인지, 참으로 그곳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빛과 소금이 되면서 우리 삶을 속속들이 돌아보면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도록 하자는 일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 먹고사는 데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무조건 많이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면 많이많이 행복해질까요?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말이에요 ..  (32쪽)


 우리들 학력은 나날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높아지는 학력에 걸맞게 우리 슬기는 어느 만큼 깊어지고 있을까요. 많이 배우거나 얻은 깜냥을 서로서로 나누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들 살림살이는 차츰 나아집니다. 그러면 나아지는 살림살이를 이웃과 함께 즐기려는 매무새 또한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요. 혼자 배부르는 일은 나쁘지 않을 테지만, 내 배는 터지도록 살이 찌는데 이웃사람은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굶고 있다면 어떠한가요.

 학력은 높아지고 학교 오래 다닌 이들은 늘어나고 있어도, 사람들이 읽은 책은 너무 적습니다. 살림살이 번듯하고 집 평수 넓으나 집구석 어느 자리에도 책 놓는 자리가 따로 없기 일쑤입니다.


.. 혹시 아빠가 받는 월급에, 아빠가 회사에서 나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밥을 다 해 주었다고 엄마한테 주는 수고비도 들어 있을까요? 세상에 어떤 기업가가 엄마의 수고를 알아 줄까요? ..  (51쪽)


 겉읽는 책이 아니라 속읽는 책입니다. 겉장이 떨어져도 줄거리가 달라지지 않는 책입니다. 겉장이 긁히고 생채기가 나도 줄거리가 다치거나 긁히는 일이란 없는 책입니다. 김치국물을 쏟고 라면국물이 튀었어도 알맹이가 달라지지 않는 책입니다.

 껍데기가 온갖 빛깔로 아름답게 꾸며졌다고 하여 줄거리 또한 아름다워지지는 않는 책입니다. 멋진 꾸밈새로 엮인 책이라 하여 줄거리까지 멋지게 바뀌지는 않는 책입니다.

 《햄릿》은 헌책방에서 2000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어도 《햄릿》이고, 새책방에서 1만 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어도 《햄릿》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헌책방에서 3000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든, 동네책방에서 9000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든, 인터넷새책방에서 20퍼센트 깎아 7200원에 사서 읽든, 옛날 문학과지성사 세로쓰기판을 사서 읽든 똑같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입니다.


.. 아무리 달러가 많아졌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땅이 병들었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우리가 마실 물이 구정물이 되었다면 미국 달러가 다 무슨 소용일까요? … 한 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물과 공기를 더럽히고, 땅과 흙을 병들게 하면서 되는 것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번 사람은 좋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기 마련이랍니다. 그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까지도요 ..  (138, 156쪽)


 오늘날 지구자원과 지구환경에 눈길을 안 둔다고 하는 이는 없다고 할 만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린’을 말하고 ‘탄소세’를 말합니다. 그러나, 새책방이고 헌책방이고 통틀어서 가장 안 팔리는 책은 ‘생태와 환경을 다룬 책’입니다. 몇 가지 띄엄띄엄 팔리는 책은 있으나, 생태와 환경을 다룬 책을 읽는 일이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고치도록 하는 일하고 이어집니다. 지식으로 머리에 넣는 환경책이나 생태책이 아닙니다. 몸바꿈으로 다스리는 환경책이나 생태책입니다.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을 알아가려는 까닭은 지식을 넓히려는 뜻이 아니라, 내 삶터와 내 둘레 삶터를 제대로 깨달아 참답게 살려는 뜻 때문입니다.

 입으로만 기름값 걱정과 이라크전쟁 근심을 하기보다, 나부터 스스로 자가용을 버리고 자전거와 두 다리를 사랑하려는 매무새를 단단히 다스리고 더 나은 길을 찾고자 읽는 환경책과 생태책입니다. 아직 잘 모르는 대목을 깨우쳐서 스티로폼 농사라도 지으며 내 밥상을 고치겠다고 애쓰는 길잡이인 환경책과 생태책입니다. 귀농을 하건 시골에 뿌리내리건, 사람이 사람다이 사는 길을 헤아리면서 남이 아닌 내가 먼저 내 삶을 새로 일구는 힘을 얻으려고 들추는 환경책과 생태책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지식이 아닌 실천으로 읽어야 하는 환경책과 생태책인 터라, 다른 어느 책보다 덜 읽히거나 안 읽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읽었어도 지금으로서는 자기 스스로 무엇 하나 바꾸고픈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읽다가 접어두거나 아예 등돌리게 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더 많이 도시물질문명을 누리고 싶고, 더 빨리 자가용을 몰면서 놀고 싶으며, 더 큰 아파트에서 아토피에서 벗어나 부동산값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환경책과 생태책은 우리 품에서 자꾸자꾸 멀어지지 싶습니다.


 (2) 지구 살리기와 미국


.. 쌀을 모두 미국에서 사다 먹으면 미국 쌀은 지금보다 더 싸질까요, 비싸질까요? ..  (63쪽)


 지구를 살리는 일은 우리를 살리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를 살리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고 떠나는 참뜻을 깨닫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한테 한 번 주어진 고운 목숨을 깨닫는 일은,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을 싫어하고, 미국 삶을 거스르며, 미국 문화는 손사래치고 싶습니다. 끝없이 써대기만 하는 미국 물질문명은, 이러한 물질문명을 지키고자 끝없이 새 식민지를 뚫어야 하고, 새 식민지를 뚫자면 전쟁무기를 어느 나라보다도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내야 하며, 이 전쟁무기를 새로 쓰고 또 만들어야 경제발전이 되는 얼거리로 짜여 있습니다. 미국은 석유만 노리지 않습니다. 석탄도 노리고 주석도 노리고 금도 노립니다. 커피도 노리고 오렌지도 노리며 바나나도 노립니다. 밀을 노리고 보리를 노리며 쌀을 노립니다. 옥수수와 콩과 감자를 노립니다. 얼마 앞서부터 이 나라에 들여오게 된 소고기는 미국이 온누리를 집어삼키면서 미국사람들 물질문명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려는 발버둥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소고기에 앞서 밀이 들어왔고, 밀에 이어 쌀이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곡식과 고기 가운데 미국에서 유전자조작을 한 곡식 아닌 곡식은 거의 없고, 미국에서 거느리는 농장에서 키운 고기 아닌 고기 찾기가 어렵습니다.

 의료 민영화만 미국을 본따지 않습니다. 학교 틀거리도 미국을 본땄습니다. 보험 틀거리도 사회 틀거리도 문화 틀거리도 송두리째 미국을 따르고 있습니다. 겉으로야 ‘미국말 함께쓰기’를 안 할 뿐이지, 어쩌면 ‘미국말 함께쓰기’를 나라에서 정책으로 밀어붙일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영어과외와 영어학원과 영어학교와 영어마을 만들고 꾸리고 이끌고 밀어넣고 하는 데에 바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혹시 궁금했던 적 없나요? 공주와 왕자는 일을 조금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늘 좋은 옷을 입고 비싼 음식만 먹는지 말입니다 ..  (36쪽)


 영어교재는 불티나게 팔립니다. 영어학원은 보물단지와 같습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영어교육 안 받은 사람 드물며 토익 토플 시험 안 치른 사람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영어로 된 문학을 가슴 깊이 새기고, 영어로 된 인문학을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낸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뿌리〉를, 〈황무지〉를, 〈모비딕〉을, 〈대지〉를 영어로 된 책으로 읽으면서 가슴벅참을 느끼는 이들은 얼마나 될는지요. 〈달과 육펜스〉를, 〈빨간머리 앤〉을, 〈산체스네 아이들〉을, 〈초원의 집〉을 영어로 된 책으로 읽으면서 가슴뿌듯함을 느끼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는지요.


.. 만약에 자전거 길이 많이 생겨서 시골이나 도시 할 것 없이 자전거로 다닐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자동차가 필요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자동차가 덜 팔리겠지요. 자전거 한 대에 10만 원이라면 자동차는 아무리 싼 것도 5백만 원은 넘습니다. 요즘엔 천만 원, 2천만 원 하는 자동차가 더 흔하기도 하지요. 그럼 자동차가 안 팔리면 누가 제일 싫어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회사하고, 휘발유를 팔아 돈을 버는 회사가 가장 싫어할 것입니다. 자동차 한 대 파는 게 자전거 30대 파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남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자동차를 많이 팔려면 도로는 될수록 많이 만들어야겠네요! 또 2차선은 4차선으로 … 결국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버는 회사나 휘발유를 팔아 돈을 버는 회사는 도로가 자꾸 넓어지길 바랄 거예요. 해가 바뀔수록 도로가 자꾸 넓어지는 걸 보면 그런 회사들이 원하는 대로 척척 되어 가고 있는 거지요 ..  (95∼97쪽)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미국을 알아도 물위로 드러난 빙산 쪼가리만 알 뿐입니다. 미국은 무엇을 바라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고 하는지, 미국은 무엇을 생각하면서 제 나라 군대를 이 땅 곳곳에 수만 사람씩 보내 놓고 있는지, 찬찬히 꿰뚫어보는 눈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 안방에 미국 연속극이 흘러들고, 우리 영화관에 미국 영화가 지나치게 많이 걸리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마음결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가 왜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해야 하는지, 우리가 왜 미국에서 수입을 많이 하고 있는지, 문화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와 정치 모두를 톺아볼 줄 아는 눈썰미가 너무 없습니다.

 미국을 바로보지 못하니 지구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미국을 옳게 느끼지 못하니 지구를 걱정하지 못합니다. 미국 참모습을 벗겨내지 않으니 지구 살리는 길을 찾을 엄두조차 안 냅니다.


 (3)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지구를 구하는 경제학》은 초등학교 높은학년쯤 되면 읽을 수 있습니다. 경제학 교수 강수돌 님이 어린이와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아주 쉽고 낱낱이 풀어낸 ‘경제 아닌 살림살이’ 이야기책입니다. 책이름에는 어쩔 수 없이 ‘경제’라는 낱말을 넣었지만, 정작 책장을 넘기면 ‘경제’도 아니요 ‘돈벌이’도 아닌, ‘우리 살림살이 가꾸기’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 우리 나라의 옛 어른들은 농약을 치지 않고 채소도 가꾸고 과일도 심어 먹었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먹고, 식구들이 먹고, 이웃하고 나눠 먹으려고 농사를 지었으니까요. 그런데 시장에 내다 팔려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약을 치게 되었습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팔아야 돈을 버니까 그랬던 거지요 ..  (70쪽)


 우리한테 있던 우리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지구를 구하는 경제학》입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으나 제대로 몸으로 못 옮기는 일을 일깨워 주는 《지구를 구하는 경제학》입니다. 힘있는 사람이 정치를 잘 펼쳐서 고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힘여린 이들이 스스로 나설 때 비로소 고칠 수 있는 세상임을 알려주는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입니다.

 괜히 대놓고 ‘지구를 구하는’이라는 말을 앞에 내건 책이 아닙니다. 참말 손쉽게 깨닫고 펼치고 지키고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지구 살리기’를 하자면서 외치는 책입니다. 대단한 사람이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니며, 어른만 나설 일이 아니며, 경제에 맡길 일이 아닌 ‘지구 살리기’임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누구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지구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힘을 내어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로워지자고 이끌어 주는 이야기책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글쓴이 강수돌 님부터 먼저 길을 나서겠다고 다짐하면서 당신 삶을 오롯이 녹여낸 이야기책입니다.


..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이 같이 일해서 먹고살 적에는 가난한 사람하고 부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식구처럼 살았거든요 ..  (165∼166쪽)


 책을 덮고 여러 날 동안 푸근해집니다. 얼굴 모르는 길동무가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애쓰고 있구나 하면서 흐뭇하게 웃음이 나옵니다. 부산 나들이에서 도움을 준 아주머니한테 책을 소개해 주면서, 나중에 우리 아이가 자라면 즐겁게 건네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에 다시 한 번 싱긋 웃습니다. (4341.10.3.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