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쌀알
민퐁 호 지음, 최재경 옮김 / 달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야기로만 놓고 본다면 별 다섯을 주고 싶지만, 번역과 오탈자가 너무 많았고, 책값 12000원짜리로 만들기보다는, 이야기답게 수수하고 가벼운 책으로 엮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은 마음에 별 하나를 덜어 넷만 붙인다................ 아쉽다.



 이 책 하나 105 - 밥 한 그릇, 농사꾼, 지식인, 군대
 : 민풍 호, 《아버지의 쌀알》



- 책이름 : 아버지의 쌀알
- 글 : 민풍 호
- 옮긴이 : 최재경
- 펴낸곳 : 달리 (2009.4.17.)
- 책값 : 12000원



 (1) 밥 한 그릇과 내 삶


 어머니한테서도 배우는 삶이요, 아버지한테서도 배우는 삶입니다. 아름다운 삶도 배우며, 얄딱구리한 삶도 배웁니다. 아름다운 삶을 저버리기도 하지만, 얄딱구리한 삶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밥을 먹으며 밥알 하나 남기지 않습니다. 바닥에 떨어뜨렸어도 주워먹습니다. 옆지기도 밥알을 남기지 않습니다. 바닥에 떨어뜨린 먹을거리를 모두 주워먹지는 않으나, 집에서는 으레 주워먹습니다.

 언제부터 이러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아주 어릴 적부터 밥알 하나까지 다 비워야 비로소 밥을 다 먹은 셈이었으며, 조금이라도 남기면 구두주걱이나 어떤 몽둥이로 맞았다는 일은 떠오릅니다.

 맞으면서 배우는 일이란 좋지 않습니다. 맞으면서 가르치는 일도 좋지 않습니다. 지난날 우리 삶자락은, 어버이가 아이를 손찌검과 몸둥이로 다스렸다고 하더라도 이런 가르침과 배움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집뿐 아니라 학교와 마을에서도 온통 손찌검과 몽둥이질만 있다면, 아이들은 아이 깜냥껏 생각힘을 키우지 못합니다.


.. 그 노래는 벼에 관한 노래였다. 그 노래는 볍씨를 뿌리고, 모판에 모종을 기른 다음 새로 갈아둔 논에 조심스럽게 모를 옮겨 심는 과정을 노래했다. 그 노래는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벼 포기가 높이 자라나 초록빛으로 물들기를 기다리고, 그런 다음 잘 익어 누렇게 말라가는 과정을 노래했다. 또한 추수하고, 타작하고, 키질하고, 쌀을 빻는 나날, 그러니까 한 공기의 쌀밥이 만들어지기까지를 노래했다 ..  (41쪽)


 지난날에는 잘 몰랐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그무렵 그렇게나 손찌검과 몽둥이질이 흔해빠진 까닭은, 다름아닌 군사독재라고 하는 서슬 퍼런 몹쓸 정치가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으르릉거린다는, 아니 가난에 찌든 북녘 빨갱이가 남녘을 잡아먹으려고 더러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노려보고 있다고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 거짓말 아닌 참말로 여겨지던 문화가 크게 한몫했다고 깨닫습니다.

 틀림없이 북녘에서는 간첩을 남으로 보냅니다. 간첩배도 보내고 미사일도 쏩니다. 그러면 남녘은 무엇을 할까요. 남녘에는 미국에서 가지고 온 핵무기를 곳곳에 숨겨 두고 있었습니다(저 같은 꼬맹이는 나중에 머리통이 굵어진 다음에 비로소 알았습니다만). 남녘에서도 북으로 간첩을 보냅니다. 다만, 남녘이 보내는 사람은 ‘북파공작원’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지난 정권 때에야 비로소 ‘북파공작원’이 있음을 나라에서 밝혔습니다만, 북녘이 남으로 보낸 간첩 숫자 못지않게, 남녘이 북으로 보낸 간첩이란 대단히 많았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세월을 보내던 1995∼97년에 북파공작원을 처음 알았는데, 그때 제가 있던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군부대에는 “북파공작원으로 뽑아들여 가르치려 하다가 부적격판정을 받은 ‘무연고 입대차출자’(법에 따르면 군복무예외자이나 배운 것 없고 연고도 없어 말 않고 군대로 뽑아들인 사람)”가 제법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재수가 없다면 재수가 없는 노릇이겠지요. 저는 눈과 코가 안 좋아,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면제를 받았어야 할 몸입니다. 그렇지만 줄을 잘못 선 탓에 군대에 끌려갔고, 군대에 끌려가서도 남녘땅 군부대에서 가장 깊숙한 데로 꼴아박혔으며, 이렇게 꼴아박힌 탓에 ‘어느 책에도 안 나온 갖가지 군대 비리와 잘잘못’을 몸소 부대끼고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적 살던 옛동네 이웃 아저씨가 우리 꼬맹이(국민학생이었을 때라서)를 둘러앉히고 당신이 북파공작원으로서(그때에는 북파공작원이라 하지 않고 유디티라고 말씀했습니다) 몰래 북녘으로 들어가서 평양에도 가고 김일성궁에도 가고 뭐도 하고 했다는 이야기를 입을 쩍 벌린 채 듣던 일이 무엇을 뜻했는가를 군대를 마치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북파간첩이건 북파공작원이건 또 알파벳으로 줄여 가리키는 무슨 이름이건, 또 남파간첩이건 남파공작원이건 또 무슨무슨 이름이건, 우리 세상은 더없이 뒤죽박죽이요 숨겨진 것투성이에다가 뒤틀린 얼거리일 뿐임을 차츰 느꼈습니다.


.. 천천히 인톤은 자신의 논 두 군데서 수확한 벼를 탈곡한 쌀더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자신을 촘촘히 둘러싼 사람들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인톤은 한 줌 가득 쌀을 퍼서는 쌀알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게 했다. “올해로 50년째야.” 특별히 누구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 논에서 벼농사를 지은 지가. 그리고 50년 동안, 내가 키운 곡식의 절반을 빼앗겨 왔어.” 인톤은 눈앞에 펼쳐진, 햇볕 아래 그루터기만 남은 채 메말라 있는 논을 바라보았다. “난 이 논에 대해서라면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지. 내가 갈아엎고, 파종하고, 김을 매고, 비료를 주고, 수확하고, 그 벼를 탈곡해서 쌀을 얻었으니까. 난 이 땅을 내 땅처럼 생각했어.” 인톤의 눈에서 꿈꾸는 듯한 빛이 사라지더니, 별안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띱.” 인톤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의 그 1만 평방미터가 넘는 땅 말인데, 그거 자네 땅처럼 생각하지 않아?” 룽 띱이 고개를 끄덕였다 … “사실은 그렇지 않지. 저기 보이는 저 땅은 우리 소유가 아니라 손가락에 흙 한 톨 묻혀 본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의 것이지. 매년 우리가 수확한 곡물의 절반을 가져가는 작자 말이야 … 왜일까? … 왜 우리가 그렇게 많이 주어야 하지?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이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을 때조차 말이야. 왜 우리는 그렇게 용기 없고, 멍청하고, 고분고분해야만 하는 거지?” ..  (126∼128쪽)


 군대라는 곳은 군대 나름대로 저를 여러모로 가르쳤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저를 가르쳤고,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저를 가르쳤어요. 아버지는 제가 김치를 안 먹는다고 밥상머리에서 윽박지르기만 하였고, 어머니는 아버지 눈치를 보아 가며 김치를 억지로 먹이려 하시면서도 맵지 않은 김치를 얹어 주시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어릴 적처럼 밥상머리에서 꿀밤이나 회초리를 맞지 않아도 된 이즈음 제 밥버릇을 돌아봅니다. 저는 매운 먹을거리를 못 먹습니다. 고추장은 곧잘 즐기긴 했어도 고추는 못 먹습니다. 고추가루 또한 젬병입니다. 이제는 고추장에도 거의 손을 안 댑니다만, 하얀김치는 먹어도 빨간김치는 속이 뒤집어집니다. 찬국수 또한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제 배속인 탓에 찬국수 물뿐 아니라 동치미 물도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어찌 찬국수나 동치미를 못 받아들이느냐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잖아요. 얼굴과 몸매와 목소리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과 넋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몸속 얼거리도 다릅니다. 어떤 이는 허파가 좋아 오래 달려도 안 지칩니다. 어떤 이는 팔심이 좋다든지, 어떤 이는 간이나 염통이 안 좋다든지 합니다. 저 또한 배속 얼거리가 여느 사람과 같지 않아 ‘빨간 양념’이 깃든 반찬은 아예 손을 댈 수 없는 몸입니다. 다만, 이런 제 몸을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는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알아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군대에서 밥을 어찌 먹었느냐 궁금해 하실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네, 군대에서는 참말 아무 걱정 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제가 몸담은 군부대는 가장 ‘끄트머리에 처박힌 곳’인 탓에, 언제나 보급품은 ‘윗줄에서 다 잘라먹’어 주시면서, 찌끄레기 가지고 밥을 해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군대란 데가 요즈음도 그리 나아지지 않았고, 예전에는 더 나빴잖습니까. 때때로 ‘빨간 깎두기’나 ‘빨간 배추김치’가 턱없이 모자란 만큼이기는 했지만 배급으로 티끌만큼 오기는 했으나, 우리가 쓸 수 있는 ‘빨간 양념’은 거의 없었고, 이런 까닭에 어떤 반찬도 ‘빨간 물’이 들지 않았으며, 게다가 된장국(찌개 아닌 멀건 국)은 양배추를 숭숭 썰어 때깔만 누런 국물이기만 했습니다. 다만, 군부대는 깊디깊은 산골짜기였기 때문에, 사단장이나 연대장이나 군간부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취나물 사역’을 해서 몇 마대씩 갖다 바쳤는데, 이러한 일을 겪으며 우리들(군인)은 우리 먹을거리를 산에서 얻는 슬기를 몸에 익혔습니다. 이러면서 저 또한 비로소 제 몸에 맞는 먹을거리란 들과 산에서 나는 나물임을 알았고, 날로 먹는 나물이나 살짝 데친 나물만큼 제 몸이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따로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 빈민가를 통과하는 동안, 진다는 이상하게 편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기 엄마들이 방금 목욕을 시킨 아기들의 얼굴에 하얀 밥풀을 발라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늙은 남자들은 시골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방식대로 난초나 레몬그라스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소년들은 남들이 보는 곳에서 샤워를 했고, 머리에는 하얀 비누거품이 덮여 있었다. 이 지역은 방콕에 속해 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 출신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들은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자기들만의 임시 마을을 만들어 둔 것 같았다 ..  (218쪽)


 저와 오래 사귀어 온 동무라고 해서 제 몸을 잘 헤아려 주지 않습니다. ‘빨간 물’ 든 먹을거리는 손도 안 대는 제 밥버릇을 모르고, 찬국수 물을 마시면 곧바로 배탈이 나 여러 날 죽은 듯 엎어져야 하는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누군가 저를 괴롭히고 싶다면 빨간김치와 찬국수를 하루에 한 번씩만 먹여도 됩니다. 저한테 이보다 더 끔찍한 고문이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밥버릇을 깨닫고 나니, 저 스스로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던 제 몸을 바로보면서 제 몸을 옳게 사랑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내 몸이 이러하다면 다른 사람들 몸은 어떠할까 하는 데로 눈길을 뻗칠 수 있었습니다.

 제 몸이 여느 사람들 몸과 비슷하거나 같았다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을는지 모르고, 그렇다 하여도 깊이 생각했을는지 모르나, 아주 오래 걸려서야 비로소 이웃을 생각하지 않았으랴 싶고, 생각한다고 해 보아야 그지없이 더디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몸이 아플 때 내 몸뿐 아니라 나보다 더 몸이 아플 사람들 마음앓이와 몸앓이를 돌아본다고 하듯, 저 또한 제 몸에 깃든 온갖 모습을 느끼면서 이웃사람 마음앓이와 몸앓이를 살포시 들여다보는 눈을 기를 길머리를 텄습니다. 이 길머리는 어떤 높거나 대단한 학문자리보다는, 우리가 늘 부대끼는 가장 낮으면서 너른 자리에서 터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를테면, 농촌봉사활동이라는 자리에 가는 동무나 선후배 가운데, ‘몸쓰는 고된 일은 마다 않는다’고 하면서도, 고맙게 받아먹는 밥상에서 밥알과 반찬을 깨끗이 비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에서 몸과 마음이 동떨어지거나 생각과 몸가짐이 어긋나는 대목을 느꼈습니다. 입으로는 진보니 개혁이니 떠들어도 술자리나 밥자리에서 젓가락으로 들쑤셔 놓고 다 비우지 않아 ‘밥쓰레기’가 잔뜩 나오도록 하는 분들 모습을 보며 언제부터인가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날’에는 빈 도시락통을 챙겨 ‘남는 안주나 반찬이나 밥’을 옮겨 담아 제가 집으로 가져가서 먹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 “정의라구요!” 진다는 격렬하게 말했다. “오빠는 정의를 맛볼 수 있나요? 평등을 냄새 맡을 수 있나요? 오빠가 말하는 그 모든 멋진 말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난 내가 맛볼 수 없고, 냄새 맡을 수 없고, 내 손에 쥘 수도 없는 것들을 위해 내 인생을 걸 수는 없어요. 비 온 뒤의 흙이라면 너무나 촉촉해서 달콤한 냄새를 풍기죠, 그리고 타마린드 순도 우리의 혀에 환상적인 맛을 남기죠. 이러한 것들은 진짜예요. 난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만 살 거예요 … 난 오빠가 나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하길 바라요. 그래요, 통통한 아기들도 몇 명 함께 낳아서 키우고 싶어요. 난 살고 싶어요. 그리고 곡식을 기르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게 그토록 잘못됐나요?” ..  (320∼321쪽)


 냉장고를 안 쓰는 삶은 옆지기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한테 있던 작은 김치냉장고는 먹을거리를 담는 통이라기보다 물과 술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게끔 간수하는 통이었습니다만, 물 마시는 버릇을 조금씩 찬물 아닌 여느 물로 바꾸었고, 찬술을 마시고 싶다면 그때그때 구멍가게에서 사 오면 됨을 익혔습니다. 가게에서는 언제나 냉장고를 돌려야 하니, 냉장고를 쓰더라도 하나라도 덜 쓰도록 해야 한달까요. 그리고 우리 먹을거리는 틈틈이 저잣거리 마실을 하면서 꼭 그날이나 그 이듬날까지 먹을 만큼만 장만하고요.

 냉장고에 그득 채워 넣는 삶이 되면 더 싼 먹을거리를 찾을밖에 없고, 더 싼 먹을거리를 찾는다 하여 ‘먹을거리 사는 데 쓰는 돈이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먹을 부피보다 더 사들이게’ 되고, 이렇게 싼값에 더 사들이면서, 나라안 농사짓기로는 부피가 모자라서 나라밖에서 곡식을 사들이는 얼거리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으레 ‘중국산-국산’을 따집니다만, 우리 삶자락은 일찌감치 ‘중국산 없이 못 살게’ 되었습니다. 국산만으로 우리 밥상을 차릴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 나라 농사꾼이 거둔 곡식만큼 밥을 먹자면, 우리 스스로 씀씀이를 줄여야 합니다. 냉장고를 버려야 합니다.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알맞게 장만해서 먹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갖가지 농약과 비료를 쓰며 농사꾼 스스로를 괴롭히는 농사가 되지 않도록 하자면 생활협동조합에 한손을 거들어야 하며, ‘돈 많은 이들이 사먹는다는 비싼 유기농’이 아니라 ‘돈 적은 이들 스스로 알맞는 값에 함께 나누는, 이러는 가운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한테 기쁜’ 틀거리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 일을 도와야 합니다.


.. “불쌍한 벼 포기들 … 난 벼 포기들이 계속 초록색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은 시원한 바람처럼 그녀의 뒤통수를 간질였다. “하지만 계속 초록색으로 있으면 씨를 맺을 수 없단다, 꼬마야. 그리고 씨앗들이 없이는, 벼가 다음해에 곡식을 만들 수 없고, 어른 벼들이 죽어야만 새로운 벼들이 그 뒤를 이어서 다시 자랄 수 있는 거란다.” “왜요?”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란다. 늙은 생명들이 그들의 힘을 포기해야만 새로운 생명들이 자랄 수 있지.” “왜요?” “그게 바로 생명이 이어지는 방식이니까.” “하지만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아버지는 껄껄거리며 진다를 들어올려 공중으로 몇 번 던졌다 받았다 했다. 심장이 멎을 듯 아슬아슬한 순간 동안, 그녀는 갈색 들판 위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튼튼한 팔을 향해 날아갔다. “왜냐고? 왜냐하면 아버지가 널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게 바로 이유란다!” ..  (344∼345쪽)


 그렇지만 꽤 많은 분들은, 이들 가운데 대단히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생협을 가까이하지 않고, 찾아보려 하지 않으며, 어깨동무하려 하지 않습니다. 으레 바빠서 날마다 저잣거리 마실을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왜 바쁜 줄 생각하지 못하고, 그렇게 바쁘도록 매인 일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며, 나 스스로 아름다운 진보를 이루어 내는 삶이 아니라면 세상사람한테도 아름다운 진보를 나눌 수 없음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마, “밥이 하늘이다”라든지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라든지 “밥 한그릇에 담긴 즐거움과 고마움” 같은 말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밥이 왜 하늘이며, 밥 한 그릇이든 나락 한 톨에든 왜 우주가 담겼는지 깨달아 보고자 나서는 몸짓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다른 사람을 말하기 앞서 저부터 그러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밥풀떼기 하나라도 샅샅이 비우는’ 밥버릇을 왜 들여야 했는지는, 빨간김치를 먹을 수 있도록 다그친다 하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농사는 온누리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이라는 글월을 외우고 다닌다 한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내 밥그릇을 보듬지 않고서야 깨달을 수 없습니다.


 (2) 아기와 내 삶


.. “저희는 학생으로서, 우리 나라의 농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여태껏 아무도, 더욱이 방콕에서 온 대학생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그냥 살고 싶다고 한 적은 없었거든.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자네들은 여기서 뭘 하려는 거지?” ..  (44∼45쪽)


 아기가 잠들어 있습니다. 아기가 잠들어 주었기 때문에, 아빠는 조용히 일어나서 글을 쓰고 기저귀를 빨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깨어 있을 때에는 엄마이든 아빠이든 할머니이든 외삼촌이든 누구 한 사람 옆에 붙어 함께 놀아야 합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아기와 놀 수 없습니다. 오로지 아기를 생각하며 아기와 함께 놀아야 합니다.

 아기는 엄마젖을 물어야 비로소 새근새근 잠듭니다. 잠투정도 많고 깊이 잠들지 않고 두어 시간 자고 나면 바로 깨어나며 골머리를 앓게 하지만, 아기는 잠들 무렵에는 언제나 엄마젖을 뭅니다.

 엄마젖은 엄마가 먹는 밥으로 이루어진 젖입니다. 엄마가 제 살을 바쳐서 내어주는 먹을거리입니다. 엄마는 이 땅을 떠도는 바람을 마시고, 이 땅에 뿌리내린 곡식을 먹으며, 이 땅에 내리비치는 햇볕을 머금습니다. 아기가 먹는 젖이란 바람과 곡식과 햇볕이 고루 섞여 있습니다.


.. 닭장이 비고 돼지우리가 버려진 것은 그들(농사꾼들)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뭄 때문에 키우던 가축을 다 내다 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정말이지 부끄러워할 것은 전혀 없었다 … (도시에서 온 대학생) 소리는 봉지를 다 비우더니, 진다가 막을 틈도 없이 봉지를 구겨서 불 속에 던져 버렸다. 진다는 종이봉지에 불이 붙는 것을 보았다. 구멍 하나 없는 두꺼운 갈색 종이가 불타 버리다니, 그건 낭비였다! … 스리는 말끔한 하얀 손수건을 꺼내 팔에 튄 국물을 닦았다. “음식이겠지…… 그렇지?” … “당연히 이것도 음식이죠.” 진다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스리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음식이라고…… 우리가 먹을 거야?” 스리가 물었다.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진다는 솥을 불에서 내려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아내, 돼지들한테나 먹여야죠!” 진다가 소리쳤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돼지우리에 새끼 돼지들이 우글거리는 거 못 봤어요?” … 스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네드가 그랬어. 태국 대학생들은 손을 잘 쓰지 않는다고.” 스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거야말로 오늘날 태국 지식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의 하나라나. 우리가 이제까지 배운 거라곤 그저 생각하는 것뿐이야.” 스리가 하는 말은 교과서에서 읽은 것을 암송하는 것처럼 들렸다. ‘당연하지.’ 진다는 속으로 맞장구쳤다. ‘그러니 당신들은 우리 돼지우리들을 보고도, 텅 비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  (61, 64∼67쪽)


 젖을 먹는 아기는, 엄마가 싱그럽고 시원한 바람을 마시면서 싱싱하고 알찬 곡식을 먹으며 따뜻하고 맑은 햇볕을 머금어야 좋은 먹을거리를 받아들입니다. 아기 엄마가 싱그럽지도 시원하지도 못한 바람을 마셔야 한다면, 싱싱하지도 알차지도 못한 곡식을 먹어야 한다면, 따뜻하지 맑지도 않은 햇볕을 머금어야 한다면, 배는 무언가로 가득 찰는지 모르나, 아기가 아기답게 자라나는 참힘을 얻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마땅히 우리 세상을 읽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세상을 아름다이 가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세상을 깨끗하게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야 합니다. 돈만 버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벌되 세상을 맑고 밝게 키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 즐거운 놀이를 찾아서 누리되 내 이웃과 함께 아름다워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내 살림을 알뜰히 꾸리되 우리 세상이 어찌 흐르는가를 꿰뚫으면서 바른 쪽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다스려야 합니다.

 아기를 낳아 기르지 않는 사람이라 할 때에도, 아기란 내 아기뿐 아니라 이웃 아기가 있고, 형이나 언니네 아기가 있으며 동무나 선후배네 아기가 있습니다. 이웃집 아기가 있고,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세계 여러 나라 아기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나 스스로 혼인하여 아기를 낳지 않는 살림살이라 하여도 세상을 옳게 읽어야 합니다. 우리 세상을 아름다이 가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세상을 깨끗하게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이라고 할 까닭 없이, 아기가 아기답게 살아가고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이란, 어른인 우리 스스로도 더없이 즐겁고 기쁘고 신나고 아름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니까요. 아기가 아기답게 살 수 없는 터전은 어른도 어른답게 살 수 없는 터전입니다.


.. 진다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 족쇄를 쳐다보았다. 양쪽 발목에 각각 두꺼운 쇠고리를 채운 다음, 그 두 개의 고리를 다시 두꺼운 쇠사슬로 함께 연결해 두었다. 그에게만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일개 농부가 마약 암거래상이나 도박꾼들보다 더 위험한 죄수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 동생! 요즘엔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거든. 수많은 나이 어린 농촌 여자들이 똑같은 일들을 하고 있어. 그리고 하나같이 사연은 똑같지. 아버지가 땅을 팔아야 했고, 어머니는 패물들을 전당포에 팔고, 그러고 나서 딸은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자기가 팔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팔게 되는 거지. 바로 자신의 몸.” … “더 숙이라니깐!” 솜분이 꾸짖었다. 훨씬 더 머리를 숙이자 몸이 거의 반으로 접힐 지경이었다. 진다는 마을의 주지스님에게 음식을 공양할 때도 이렇게까지 몸을 숙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렇게 낮게 몸을 숙여야 한단 말인가? ..  (164, 190, 209쪽)


 아기를 돌보느라 엄마나 아빠는 몹시 고단합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태어난 뒤로 잠 한 번 느긋하게 잔 적이 없습니다. 하루 한때 여태까지 해 온 일에 온힘 쏟아 즐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있어 주었기 때문에 잠을 미루면서까지 할 만한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아기와 함께 살기 때문에 내가 더 힘을 내어 바칠 만한 일은 어디에 있는가를 느낍니다.


.. 진다는 단단하게 움켜쥔 스리의 주먹을 붙잡고는 부드럽게 손가락을 펴 주었다. 진다의 검게 타고 못이 박인 손에 비하면 스리의 손은 하얗고 부드러웠다. 진다는 스리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고 진다는 생각했다. 스리 언니는 모든 것을 가졌고,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그녀를 위로해야 하는 건 나라니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잘 먹었단 말인가? 네드와 소리가, 진다네 집에서 먹는 부서진 쌀로 지은 밥과 생선소스를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진다는 그 신발들을 내려다보며 바깥에 서 있었다. 신발들 대부분은 하얗고 깨끗한 캔버스 천으로 된 테니스화였지만, 가죽구두도 있었고, 어떤 것은 고무 슬리퍼였고, 심지어 한 쌍의 반짝이는 하이힐도 있었다. 천천히 진다는 자신의 고무 샌들을 벗어 놓았다. 진다의 신발만 유난히 낡고 때가 묻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흙이 묻은 자국이 있는 신발도 그녀의 신발뿐이었다 … 스리는 작은 가방에서 열쇠 다발을 꺼내더니 빨간 차의 앞문을 열었다. “내 말 잘 들어.” 그녀가 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지금, 네 가족이 30년 걸려야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비싼 차를 타고 떠나려는 주제에 네 마을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어. 어쩌면 까몰이 옳을지도 몰라, 진다야. 나야말로 겁쟁이 위선자인 거야.”..  (214, 232∼233, 242쪽)


 아기와 옆지기와 제가 오늘 하루 머무는 일산 옆지기 식구네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새로 올려세우는 아파트가 퍽 많습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오는 전철길에서도 북한산을 에워싸며 새로 올라서는 아파트를 대단히 많이 구경합니다. 우리 사는 인천에도 곳곳에 새로 올려세우는 아파트를 끝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즈음,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자전거 공부를 하고 있는데, 파주책도시에 있는 대안학교를 찾아가 보면 학교 둘레에 큼직큼직 선 출판사 건물은 많은데, 우리 나라 곳곳에 수없이 올라서는 아파트마냥 ‘자연 삶터를 헤아린 마음결’은 조금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시늉이라도 햇볕 전지판을 달아 놓고 승강기나 계단 등불을 밝힌다든지, 빗물통을 달아 뒷간 물 내릴 때라도 쓴달지 하는 마음씀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오로지 돈으로 세우고, 오로지 돈으로 사고팔며, 오로지 돈을 들여 관리비 내고 전기 쓰고 가스 쓰고 물 쓰는 아파트요 건물들일 뿐입니다. 이러한 아파트와 건물은 두 다리나 자전거가 아닌 오로지 자가용으로만 오가도록 합니다.

 아파트를 바라보고 건물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집이건 저런 집이건 다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일 테고, 아이로 자라온 사람일 테며, 둘레에 조카나 어린 동생이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는지를. 아이 생각을 넘어 내 생각을 하고 내 집 생각을 하고 내 식구 생각을 한다 할 때에도 이렇게 아파트를 세우고 건물을 세워도 될는지를.


 (3) 어린이책 《아버지의 쌀알》은 어린이책일까


 태국사람 삶과 발자취를 담은 어린이책 《아버지의 쌀알》을 읽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참말로 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1970년대에 태국에서 일어났던 일이요, 태국땅 농사꾼이 겪은 아픔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이야기는 태국땅 농사꾼만 겪은 일이요 아픔은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세계 어느 나라 농사꾼이든 똑같은 길을 걸었고 세계 어느 나라 땅임자이든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세계 어느 나라 권력자와 지식인이든 똑같은 몸짓으로 살았다고 느낍니다.


.. 진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래요. 아버지가 이렇게 침울해 하시는 건 처음 봐요. 올해는 수확이 너무 나빠서 두싯에게 절반씩이나 뺏기고 나면, 우리 먹을 곡식이 충분치 않을 테니까요.” “왜 절반이나 줘야 해?” 네드가 소를 씻기면서 말했다. 진다는 못 믿겠다는 눈으로 네드를 쳐다보았다. 하도 바보 같은 질문이라서 진다는 네드가 그걸 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대답하려 하니, 마땅한 설명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왜냐고요? 그러니까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냥 그렇게 해 왔으니까요. 우리는 농지를 빌리는 조건으로 수확의 절반을 주기로 했거든요. 그게 다예요.” “하지만 왜 절반이냐고?” … “만약 싸움에서 진다면, 우리는 땅과 곡식, 집을 잃고 말 거야. 자칫하면 우리 목숨까지도.” “하지만 이장님, 싸움에서 이긴다면 얻게 될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네드가 주장했다. “뭐 말인가? 한두 줌의 쌀 말인가?” “아니죠. 더 나은 음식, 더 건강한 아이들, 더 밝은 미래죠.” “말뿐이야.” 인톤이 콧방귀를 뀌었다. “꿈일 뿐이지.” ..  (99, 103쪽)


 《아버지의 쌀알》에 나오는 마을 어르신 ‘인톤’을 비롯한 모든 농사꾼들은, 당신들이 태어나기 앞서부터 당신들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오늘날까지 어느 한 번도 ‘땅에 바친 땀을 내 배를 채우는 보람’으로 맛보지 못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소작삯을 바쳐야 했고, 엄청나게 소작삯을 챙기는 땅임자는 도시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아갑니다. 도시에서 ‘시골마을 문제’를 풀겠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은 언제나 책상물림으로 말다툼을 일삼다가 때때로 군중집회를 열지만, 총과 몽둥이와 깡패를 앞세우는 정부마냥 똑같이 총과 몽둥이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평화를 찾는 길을, 아름다움을 찾을 길을, 즐거움을 찾아나설 길을 밝히지 못할 뿐더러 느끼지 못합니다.


.. 다시 정치 이야기잖아. 진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건 도시 사람들이나 해당되는 문제다 … “오빠는 총을 쏘고,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그들을 죽일 건가요? … 집회 때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 사람들을 죽이는 일은 … 절대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  (174, 319쪽)


 ‘진다’ 같은 농사꾼 아가씨가 태국 방콕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이 나라 농사꾼들이 서울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매한가지입니다. 태국 농사꾼 삶하고는 동떨어진 채 흐르는 태국 정치 흐름은, 한국 농사꾼 삶하고는 동떨어진 채 굴러가는 한국 정치 흐름과 마찬가지입니다.

 태국은 방콕으로만 이루어진 나라이고, 한국은 서울로만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태국 지식인은 오직 방콕에만 모여들고 있으며, 한국 지식인은 그저 서울에만 모여들고 있습니다. 태국 방콕은 태국 시골에서 젖줄을 빨아들여 머리만 디룩디룩 커지고 있으며, 한국 서울은 한국 시골에서 젖줄을 뽑아들여 머리만 대롱대롱 커지고 있습니다.


.. 마을 사람들도 집 밖으로 뛰어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진흙이 묻은 옷을 벗어 버리고 맨몸으로 따뜻한 빗속을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발가벗은 갈색 엉덩이들이 비에 젖어 번들거렸다. 아낙들은 약초가 심겨진 광주리들을 빗속으로 옮겨 놓았고, 그러는 동안 남자들은 지붕에서 떨어지는 비를 받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배수관 아래에 유약을 바른 항아리들을 밀어넣었다. 한 늙은 남자는 자기 뜰의 구석에 홀로 선 채, 얼굴을 높이 쳐들고서 혀로 빗방울을 받아먹고 있었다 …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하던 일이나 계속하려무나 … 빗속을 뛰어다녀. 나도 뛸 수만 있다면, 당장 바깥으로 나가 달리고 있을 거야!” … 달리는 동안 맨발바닥에 밟히는 땅은 부드럽고 유연했다. 진흙을 다시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 비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이렇게 거의 말라가던 모들도 다시 살아나, 줄기를 꼿꼿하게 위로 쳐들고 있었다 .. (338∼339, 348쪽)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쌀알》은 어린이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어른책’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면 ‘그냥 문학’이라 하지 않았겠느냐고. 이러면서 어른들이 먼저 읽고 생각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어린이책이라면 어린이만 읽는 책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일쑤인데,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작품이건 문학이건 무엇이건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눈높이로 다스린’ 책이 바로 어린이책입니다.

 한결 쉬우며 부드럽고, 더욱 살가우며 따스합니다. 좀더 아름답고 눈물겹습니다. 훨씬 사랑스럽고 믿음직합니다.

 아버지가 거두는 쌀알은 어머니가 함께 거두는 쌀알입니다. 어머니가 함께 거두는 쌀알은 할머니가 예부터 거두어 온 쌀알입니다. 할머니가 예부터 거두어 온 쌀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아 기르던 아버지가 나란히 거두어 온 쌀알입니다.

 이 쌀알은 누구 손에서 나와 누구 손을 거쳐 누구 입으로 갈까요. 이 나라 한국에서 우리가 나날이 받아먹는 쌀알은 어디에서 어떤 손길로 나와 어느 자리에서 어느 손길을 거쳐 우리 입으로 들어올까요. (4342.5.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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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양이들 봄나무 문학선
어슐러 K. 르귄 지음, S.D. 쉰들러 그림, 김정아 옮김 / 봄나무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잘 쓴’ 책이지만, ‘가슴에는 안 남는’ 책
 [잠깐 읽기 34] 어슐러 K.르귄, 《날고양이들》



- 책이름 : 날고양이들
- 글 : 어슐러 K.르귄
- 그림 : S.D.쉰들러
- 옮긴이 : 김정아
- 펴낸곳 : 봄나무 (2009.4.15.)
- 책값 : 1만 원


 (1) 잘 쓴 작품이면서 ‘가슴에는 안 남는’ 작품


 지난날 《날개 달린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으나 모두 나오지는 못했다고 하는 ‘어슐러 K.르귄’ 님 책이 《날고양이들》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옮겨졌습니다. 판이 끊어진 예전 책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린 분이 많았을 테며, 르귄 님 작품은 널리 사랑받고 있는 터라, 이 책 《날고양이들》 또한 두루 사랑받는 작품으로 우리 품에 안깁니다.


.. 뭔가 생각하던 셀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는 좋은 손을 만나면 다시는 사냥 나갈 필요가 없다고 그랬어. 하지만 나쁜 손은 개보다도 못하다고 했어.” … 해리엇이 오빠 제임스에게 속삭였습니다. “야아, 아이들 손길이 따뜻하고 기분 좋아.” ..  (38, 49쪽)


 어린이책(판타지 동화)으로 갈래를 나눌 《날고양이들》은 책날개에 적힌 소개글을 살피면, ‘르귄은 호기심을 자아내면서도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보석 같은 책을 썼다(퍼블리셔스 위클리)’라든지 ‘이 시대의 것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 타인과의 차이에서 오는 자긍심과 소외감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부드럽게 일깨워 주는 책(뉴욕타임즈 북리뷰)’이라든지 ‘간결하고 유려한 문체로 쓰여진 매력적인 책이다. 쉰들러는 섬세한 펜선과 수채화 기법으로 아름답고 진지한 판타지 속의 날고양이들을 보여 준다(북리스트)’라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이렇게 짤막하게 적힌 추천글이 아니더라도 《날고양이들》은 금세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이야기흐름이 빠릅니다. 글은 단출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고양이’를 내세워 우리 삶터를 구석구석 살피거나 훑는 눈매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나와 남이 어떻게 다른가를 돌아보는 한편, 서로 오붓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삶터를 어떻게 이루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살며시 느끼게 합니다. 사람 스스로도 사람 삶터인 도시에서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는 가운데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얕고 안타까운 발자국을 걱정하는 가운데, 우리가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는 길은 누가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펼쳐 보입니다.


.. 하늘을 나는 얼룩고양이들을 처음 본 순간,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철창에 가두거나, 서커스나 애완동물 쇼에 내보내거나, 실험실로 보내거나, 돈벌이에 이용하거나, 아예 팔아넘길까 봐 겁이 났거든요 ..  (55쪽)


 틀림없이 《날고양이들》은 우리한테 빛줄기 가득 담긴 구슬 같은 책이 아닌가 느낍니다. 우리 모습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우리 앞날을 찬찬히 헤아리도록 이끄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홀딱 읽고 난 이 책을 다시 펼쳐서 살피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 벌써 이야기가 다 끝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뒤끝이 없는 깔끔한 작품이기는 한데 왜 이리 허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르귄이라고 하는 분이 굳이 ‘날고양이’라는 판타지로 이 작품을 써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판타지를 쓴다 하여 달라질 대목이 없으리라 느끼고, ‘날아다니는 사람’이 아닌 그예 ‘걷기만 하는 사람’ 이야기를 펼친다 하여도 《날고양이들》하고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느낍니다.


.. “아아, 우리 아기 고양이는 떠나야 한단다. 아기 고양이가 무사하다는 것도 알았고, 너희들이 잘 돌봐 주리라는 것도 알았으니,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아기 고양이의 안전뿐이란다. 날개 달린 고양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이 도시에는 없어. 얘들아, 그건 너희도 알지?” … 하늘 높이 날던 제인이 개들 가까이로 내려가면, 개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사팔눈이 될 때까지 짖어댔습니다. 꽤 재미있었습니다만, 제인은 아무 데서도 친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인은 생각했습니다. ‘날개가 있으면 외톨이로 지내야 하는 걸까?’ 날개 달린 고양이 제인은 친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들은 날개가 있었지만, 날개 달린 고양이를 보고는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올빼미와 매는 위험했어요 ..  (94, 163∼164쪽)


 문득, 만화책 《기생수》가 생각납니다. 만화책 《기생수》나 동화책 《날고양이들》이나 빼어난 생각힘으로 놀랍게 펼쳐내는 줄거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손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만화 《기생수》는 내 둘레 고마운 분한테 여덟 권 한 질(44000원)을 선물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그처럼 선물하고프다’는 쪽이지만, ‘동화 《날고양이들》(1권 마무리, 책값은 1만 원)은 굳이 선물해 주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쪽입니다.

 무엇이 두 작품을 이처럼 다르게 느끼게 하는지, 왜 두 작품을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스스로 궁금합니다. 내 눈길이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작품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외곬로 기울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되씹습니다.

 다른 이들은 ‘더없이 좋다’거나 ‘더없이 훌륭하다’고 느끼는 책을 나 혼자 ‘그리 시덥잖은데?’ 하고 느끼는 마음그릇은 아닌가 곱씹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다음에 마음 한구석을 쩌렁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책이었는걸요. 크게 쩌렁 울리지 않더라도 살짝 통통 울리지도 못한 책이었는걸요.


.. 제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왜 있는지 알아!” 셀마가 물었습니다. “왜 있는데?” 제인이 소리쳤습니다. “하늘을 날라고 있지요!” 제인은 곧장 하늘 위로 날아올라 두 번 옆으로 구르고, 한 번 앞으로 구른 다음, 잠시 날갯짓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는 알렉산더의 잔등 위로 털썩 내려앉았습니다 … 제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왜 아무 데도 가지 않지? 어디로든 날아가서 무엇이든 볼 수 있을 텐데?” 오빠 로저가 말했습니다. “에이, 제인, 너도 왜 그런지 알잖아.” 언니 해리엇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날개 달린 고양이를 발견하면, 동물원 철창에 가둘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오바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아니면 실험실 철창에 가둘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맏언니 셀마가 말했습니다. “남과 다르면 살기 어려워. 남과 다르면, 아주 위험할 때도 있어.” ..  (156∼157쪽)


 그러고 보면, 만화 《20세기 소년》을 보다가 뒷권으로 갈수록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짙게 느끼던 때하고 비슷합니다. 좀 묵은 작품이지만 《Z 마징가》를 보던 때에는 참 재미있다고 느끼며 여러 번 다시 보았고, 《초인 로크》나 《바벨 2세》 같은 작품 또한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보았습니다. 모두들 ‘터무니없다’고 말할 만한 이야기를 다루고, ‘놀랍다’고 느낄 만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나 글감이나 만화감을 ‘터무니없거나 놀랄 만한 데’에서 잡아챘다고 해서 ‘훌륭하거나 가슴 찡하거나 아름답거나 재미있거나 멋지거나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뛰어난 붓솜씨를 보여준다고 해서 뛰어난 그림이 되지 않는 셈입니다. 뛰어난 짜임새며 눈길로 잡아챈 사진이라고 해서 뛰어난 사진이라 할 수 없는 셈입니다. 글씨를 곱게 잘 쓴 글이라고 해서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없는 셈이고요.


 (2) 가슴에는 안 남으나 ‘되새기는’ 이야기


 그렇지만 글쓴이 르귄 님은 우리한테 아낌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우리 스스로 쉽게 놓치거나 언제나 잃고 있는’ 삶자락이 무엇인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사이사이 톡톡 건드리듯 슬그머니 보여줍니다.


.. 모두 곱게 잘 커 준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인 부인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남몰래 속을 태웠습니다. 이 동네의 환경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자동차 바퀴와 트럭 바퀴가 온종일 지나다녔습니다.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굶주린 개들이 어슬렁거렸습니다. 신발과 장화가 끝도 없이 걸어가고, 뛰어가고, 짓밟고, 걷어찼습니다. 안전하고 조용한 곳은 점점 사라졌고, 먹을 것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참새들은 오래 전에 다른 데로 이사갔습니다. 시궁쥐는 난폭한 데다 위험했고, 새앙쥐는 비쩍 마른 데다 좀처럼 잡히지 않았습니다 … 도시 비둘기 한 쌍이 먼지 구름을 보고 날아왔다가 한 마디씩 하고 날아갔습니다. “빈민가를 또 철거하는구나.” “이게 발전이란 거야.” ..  (12, 67쪽)


 우리 스스로 우리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이고, 우리 손으로 우리 터전을 가꿀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밝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다움을 지키는 길이란 아주 쉽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터전을 가꾸는 길 또한 참으로 수월합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알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쉬워도 안 하는 일이요, 수월하여도 껴안으려 하지 않는 일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 하여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고 다 함께 뜻을 모아 할 수 있는데, 혼자서도 안 하고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할 마음조차 없는 일이기조차 합니다.


.. 보드라운 땅, 이상야릇한 땅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사 남매가 알던 땅은 포장도로, 아스팔트, 시멘트뿐이었습니다. 마른 흙, 젖은 흙, 죽은 나뭇잎들, 풀, 나뭇가지들, 버섯들, 벌레들, …… 이런 땅은 처음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너무너무 재미있는 냄새가 났습니다. 작은 샛강도 있었습니다 ..  (23쪽)


 어쩌면, 아무래도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르귄 님 작품은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더없이 낯익으면서 쉽게 받아들여 읽을 수 있었는데, 언제나 이와 같은 매무새로 살아가고 있는 터라 굳이 이런 작품을 읽지 않아도 제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또한,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은 이런저런 일을 알고 있으나 ‘먹고살기 바쁜데 어떻게?’라고 핑계를 둘러대기에 바쁩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런 작품조차 눈여겨보지 않고 가슴에 새기지 않습니다. 아예 읽을 마음조차 없어요.

 그러니, 이 작품이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하여도 허전합니다. 두루 읽히고 팔린다 하여도 씁쓸합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새책방 책시렁에서 새로운 책손을 만날 수 있다 하여도 허거픕니다.


.. 사라 (할머니)는 제인의 목에 감겨 있던 자주색 리본을 풀어 휴지통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저런 거 없어도 예쁘단다.” ..  (195쪽)


 출판사에서는 애써 펴내 주었고, 글쓴이 르귄 님 마음도 가없이 푸근하다고 느낍니다만, ‘판타지 옷’을 안 입어도 괜찮고 ‘이름난 작가 작품’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지 않아도 괜찮으며 ‘깔끔하고 예쁘장한 작품’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투박한 글이어도 괜찮고 어설픈 그림이어도 괜찮습니다. 조금 모자라거나 어설픈 작품이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직 어리숙하거나 얕은 눈길이라도 재미가 없지 않아요.

 길은 지름길로만 가야 하지 않으며, 반드시 가장 빨리 거쳐가야 하지 않습니다. 100미터를 10초에 끊어야만 하겠습니까. 초중고등학교를 차근차근 밟아 대학교를 네 해 만에 마무리해야만 하겠습니까. 무슨 자격증이 있고, 어떤 예쁜 얼굴과 몸매가 있어야만 하겠습니까. 우리 스스로한테든 우리 어버이한테든 넉넉한 돈이 있어야만 하겠습니까.

 없어도 괜찮고, 외려 없으니 즐겁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지없이 깔끔하고 아름답다 할 만한 《날고양이들》가 아닌, 수수하고 곱지 않은 ‘길고양이들’이어도 반갑습니다. (4342.5.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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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양철북 청소년 교양 5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 양철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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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8 ― ‘푸르고 여린(청소년)’ 심지에 폭력을 들이대지 마셔요
 : 김진아 외 아홉 사람, 《열정세대》


- 책이름 : 열정세대
- 글 : 김진아 외 아홉 사람
- 펴낸곳 : 양철북 (2009.2.16.)
- 책값 : 9800원



 (1) 아이들을 폭력에 길들게 하는 학교


 엊저녁, 옆지기가 동생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처남(옆지기한테는 막내동생)은 오늘 학교에서 ‘두발검사’를 한다면서, 이때 걸리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했는데 깜빡 잊었다고 합니다.

 열네 살 처남이 학교 다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학교 공부보다는 동무들하고 뛰어놀기를 훨씬 더 좋아하지 않느냐 싶던데, 아마도 학교에서 담임 교사가 ‘두발검사’를 한다고 알려주었어도 곧 잊어버렸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요.

 처남 머리는 그리 짧지 않습니다. 제가 다닌 중학교를 떠올리면, 더구나 제 고향이며 일터인 인천에서 중학생인 요즈음 아이들 머리길이를 살피면, 경기도 일산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처남 머리길이는 ‘인천에서는 고등학생 머리길이’라 할 만합니다.


.. 우선 가출이라는 용어는 항상 청소년에게만 사용되고 있어. 그렇지? 너 ‘가출 어른’이라는 말 들어 봤냐? 없지? … 어른들에게는 가출 대신 다른 멋들어진 단어가 사용되지. 독립. 음, 이 얼마나 장대한 말이냐 … 사실 학교 폭력은 학교의 폭력적인 구조와 문화 때문에 가능하거든. 일종의 폭력적 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거야. 그런데도 청소년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희석해 버리지. 그래서 폭력 청소년을 학교 바깥으로 쫓아내면 모두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야 … 가출하고 나서 나는 진짜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어. 전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미래가 조금씩 명확하게 보익 시작했다 … 하지만 이 따스한 공간(집)이 가장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부모님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해서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16∼19, 22쪽)


 옆지기가 처남 머리를 잘라 주는 동안, 때가 어느 때인데 학교에서 ‘머리길이 살피기’를 하는가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아이들 머리길이를 살피는 일을 ‘교육’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지시사항을 내리는 교육부도 놀랍고, 이런 지시사항이 없었다면 학교장 스스로 이런 지시사항을 마련했을 테니 이 학교 교장 또한 더없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학교장이 이런 지시사항을 내렸다 하여도 담임을 맡은 교사 스스로 ‘터무니없을 뿐더러 해서는 안 되는 짓’을 곧이곧대로 따르며 아이들을 억누르는 셈이기 때문에 한 번 더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교사 되는 사람들은 ‘아이들 머리카락 길이를 짧게 맞추어야, 아이들이 바르고 착하고 얌전하고 슬기롭게 크리라’ 생각하고 있을까요? 이런 짓에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도 경제적 가치 앞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서글플 뿐입니다. 감동을 주지 못하고,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회와 삶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  (55쪽)


 제가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간 때는 1988년입니다. 이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인천에서) 중학생은 머리길이가 3센티미터가 넘어가면 안 되었습니다. 그나마 앞머리는 눈썹에 안 닿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예 빡빡이 머리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말이 3센티미터이지 빡빡 밀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머리통이 허옇게 드러나는 아이들이 우글우글 모여 학교에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모습은 조금도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런 모습이야말로 ‘참교육’이 이루어진다며 좋아한 분들이 있었겠지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단발령’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깜짝 놀라던 일이 떠오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머리카락이란 몸뚱아리와 마찬가지였기에,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하여 목숨을 끊은 사람이 나왔다고 했는데, 지난날 우리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중학교에서 우리들 머리카락을 이토록 밀어대는 일은 ‘우리가 스님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습니다. 스스로 밀고 싶으면 밀며, 깎고 싶으면 깎도록 해야 할 뿐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우리한테 이름을 빼앗고 말을 빼앗고 땅을 빼앗고 문화와 몸 모두를 빼앗은 아픔과 생채기를 목소리 높여 가르치던 교사들인데, 정작 이런 교사들이 가위를 들고 교실과 학교 구석구석 누비며 어디 숨은 ‘놈’이 없는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두발검사’ 하는 날이면 교사들은 하나같이 새벽밥 지어먹고 학교 곳곳에서 눈알을 부라리며 지켜서곤 했고, 이렇게 지켜선 다음에도 운동장으로 죄다 불러내어 하나하나 자로 머리길이를 재면서 다시금 가위질을 해대었고, 조리로 돌을 솎아내듯 하루 동안 교실과 골마루와 뒷간에서 서너 차례 가위질을 해댄 다음에야 비로소 살얼음판 같은 가위질이 끝나곤 했습니다.


.. 문득, 어른들은 ‘십대 동성애자’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십대는 미성숙하고 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잖아 ..  (64쪽)


 가위질은 고등학교에 갔어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등학교에서는 3센티미터는 아니었습니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지 말고, 옆머리가 귀를 덮지 않으며, 뒷머리가 옷깃에 닿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인천이라는 데에서는 ‘학교옷’을 안 입어도 누가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인지를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고, 신분증이 없어도 신분증처럼 알아보았습니다. 극장에 들어갈 때이든 전철을 탈 때이든 버스표를 살 때이든 머리길이만으로 우리 ‘신분’이 드러났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사를 비롯한 모든 어른은 우리 ‘푸름이(청소년)’를 ‘한꺼번에 다스릴(일제단속)’ 수 있었습니다.

 시험점수에 따라 줄세우기 하는 짓만으로도 모자라, 아니, 줄세우기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못하니까 심심했는지(?) ‘두발검사’에다가 ‘복장검사’에다가 ‘소지품검사’를 수도 없이 해댔고, 굵직한 몽둥이를 어깨에 얹고 다니는 교사들 가운데에는 중고등학생한테까지 ‘손톱검사’를 하면서 골마루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매질을 일삼는 사람이 어김없이 학년마다 한둘씩 있었습니다.


.. 처음에는 집으로 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차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 몇 푼 더 벌지 모르지만, 촛불집회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유는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  (99쪽)


 어린 처남이 “아이! 내일 두발검사 하는데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하기에 옆지기는 머리를 손수 잘라 주었습니다만, 제 마음은 “얌마, 머리 그냥 그대로 두고 학교에 가. 가서 청소년 인권을 말하면서 따져!” 하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에 따르는 어떤 앙갚음을 교사들이 해댄다 할지라도, 아이들한테 ‘인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교칙만 있다’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교사들한테,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과 똑같은 사람이다’고 당차게 외쳐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2) 학교에서 폭력에 길들지 않고자


 그러나 처남한테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반항이 아닌 저항은 앞으로 언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머리가 잘리지 않으면서 지내며 폭력에 조금이라도 물들지 않아야 하지만, 처남 스스로 이런 대목까지 살피는 눈길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인권’을 말하는 일은 샛길로 샌다든지 잘못 받아들일 걱정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다루어야 하며, 혼자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길이를 살핀다고 하는 날 갑작스레 홀로 외치는 말이 아니라, 오래도록 차근차근 생각하고 돌아보고 동무들하고 이야기를 나눈 끝에 함께 움직여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처남 스스로 학급회의 같은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감을 꺼내어 교사가 함께하는 가운데 ‘인권이란 무엇이며, 학교란 어떤 곳이고, 교사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교칙은 터무니없습니다만, 깊은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말 또한 교사한테도 학교한테도 동무들한테도 살갗 깊숙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나 몸짓으로 스며들기란 어렵다고 느낍니다.


.. 청소년 시절에는 입시 위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 전국의 청소년들을 성적순으로 등수를 매기고(일제고사), 아름다운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영어 몰입 교육),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는(0교시 수업, 야간 자율학습) 걸까? ..  (29쪽)


 그러면서 제가 중고등학교 때 해 본 저항을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반항이었지만, 한낱 맞대꾸하는 일(반항)만으로는 제 뜻을 교사와 학교한테 알릴 수 없을 뿐더러, 동무들한테도 제대로 나눌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가벼운 맞대꾸나 철없는 맞대꾸를 딛고 서서, 차분한 맞섬이나 올바른 거스르기를 해야 교사도 생각을 고치고 학교도 다른 매무새로 나오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1988년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아직 세상을 제대로 모르던 때였기에, 전두환이 얼마나 나쁜 놈인 줄 몰랐고, 그때까지 학교에서 한 주에 한 번씩 거두던 ‘평화의 댐 성금’이라든지 다달이 거두던 ‘방위성금’이 어디로 들어가는 돈이었는지를 비롯해 ‘독재’라는 말도 몰랐습니다. ‘쿠테타’를 알 턱이 없었을 뿐더러, 어느 교사도 우리한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마을운동 체험 독후감’을 쓰는 숙제를 ‘더 얻어맞지 않으려고 쓸’ 뿐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국민학교 6년을 마칠 때까지 쓰던 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늘 ‘새마을일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레 머리를 빡빡이로 밀어야 하는 일은 제 마음에 깊이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왜 깎아야 하는데? 안 깎으면 깡패가 되나? 안 깎으면 공부를 안 하나? 깎으면 모두 천재라도 되나?

 더구나 한 달에 한 번씩 가야 하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거칠게 휘젓는 가위질과 마구 문지르는 머리감기는 고달플 뿐이었고, 머리 깎는 돈이 몹시 아까웠습니다. 늘 그렇지는 않았으나 국민학생 때에는 집에서 어머니가 머리를 깎아 주시곤 했는데, 중학생이 되건 고등학생이 되건, 머리를 깎아야 한다면 집에서 스스로 깎도록 하면 될 노릇이고, 저마다 제 머리와 몸과 마음에 따라서 간수할 노릇이 아닌가 싶었기에, 이 마음을 곰곰이 다스려서 토요일 학급회의를 할 때에 늘 안건으로 올렸습니다. 받아 주든 안 받아 주든 ‘안건으로 올려야 할 까닭’을 예닐곱 가지나 열 몇 가지씩 쪽지에 적어 놓고는 읽었고, 우리 학교는 우리 인권을 너무 짓밟고 있으니 이러한 일들을 고쳐야 한다고 거듭 외쳤습니다.


.. 이제 중ㆍ고등학교에서 풍물 동아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한가하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도 부모들이 반대해 동아리실이 폐쇄되기도 한다. 학생은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다 … “우리 학교가 생긴 지 1백 년이래요. 선생님들도 우리 학교 출신이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선생님들이 자신들이 배운 교육 방식 그대로 우리를 가르친다는 점이에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예전 방식 그대로예요. 정말 심해요. 앞뒤가 꽉 막힌 선생님들이 많아서 친구들도 무척 힘들어 해요 … 제가 학교를 떠난 이유는 학교 안에만 있으면 많은 걸 놓칠 것 같아서였어요. 생각과 상상력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라는 거대한 배가 흘러가는 방향대로 같이 흐르니까요 … 학교 안에서 상상하지 못하던 아이는 밖에 나와도 상상할 수 없어요. 그러면 그 아이는 아예 상상할 수 없게 되어 불행해지는 거예요 ..  (138, 144∼145쪽)


 나중에, 중고등학생 가운데 생각있는 학생이 모여 ‘대학생처럼 하는 학생운동 모임’이 있음을 알았는데, 이 모임에 있던 이들 가운데 우리 인권을 따진 동무들은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모임이 있다 했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책도 읽는다 했는데, 물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반장을 뽑을 때 ‘전교 몇 등에 드는 테두리’에서 후보자를 고를 수 있던 일이라든지, 교사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질이 없어져야 한다는 외침 따위에는, 반 동무들이 뜻을 같이했어도 담임 교사는 언제나 ‘오늘 이 이야기는 이 교실에서만 있었던 걸로 한다’며 끝맺고는, 교감이나 교장한테 한 번도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학급회의 주제는 대충 아무것이나 바꾸어 적고 토론한 줄거리도 대충 채워 넣었습니다. 이를테면, ‘학교를 깨끗이 하자’라는 주제로, 청소를 잘하자라느니 쓰레기를 줍자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고 적습니다. ‘공부를 잘하자’라는 주제로, 다가오는 시험에서는 더 부지런히 공부하자라느니, 예습과 복습을 잘하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느니 하면서.


.. “청소년 운동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나라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현재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공무원도 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어요. 또 원하기만 하면 군대도 갈 수 있고요. 그런데 유독 참정권만 없어요. 이건 좀 말이 안 돼요.” ..  (180쪽)


 중학교 세 해에 걸쳐 끝없이 싸우고 싸웠습니다. 맞으면서도 우리가 왜 맞아야 하느냐고 따졌고, 교사들이 잘못하면 우리가 교사를 때리면 되느냐고 따졌습니다. 소지품검사를 거스르고자 했으나 언제나 거스르지 못하게 되었고, 교과서 아닌 책을 빼앗아 갈 때면, 그 책이 무슨 불량불온도서라도 되는데 빼앗느냐고 따졌습니다. 자율학습이라면 자율로 하고픈 사람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보충수업은 보충해야 하는 아이들만 해야 하지 않느냐며 따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가지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한 가지도 나아지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딱 한 번, ‘청소년 인권선언문’을 전지에 옮겨적어 한 주 동안 학교 문간에 세워 놓도록은 했는데, 한 주가 지난 다음에는 쓰레기통에 처박혔습니다.

 교사들은 버젓이 동무들 뺨따귀를 올려붙이거나 코피가 터져도 주먹질을 그치지 않는 일을 교실에서도 해댔습니다. 이런 학교를 다녔다는 일은 ‘내 창피’라고 여겨, 중학교 졸업사진책은 안 사기로 했습니다. 졸업장도 안 받으려고 했으나 어머니 얼굴을 생각해서 받기로 했습니다. 기껏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까요. 전교에 너 혼자만 졸업사진책을 안 산다니 말이 되느냐고 담임이 몇 번이나 달래고,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이 도장을 찍어 주십시오 하고 했어도 끝내 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어처구니 학교를 다닌 일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게 비싸게 팔아치우는 졸업사진책도 마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연합고사를 마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입니다. 중학생 때에도 1학년 때부터 아침 여덟 시 이십 분부터 0교시를 해서 밤 열 시까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이어졌는데, 연합고사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0교시와 자율ㆍ보충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런 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지 않았고, 수업 때에는 비디오를 틀어 주었고, 때로는 운동장에서 나가 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끼리 웃고 떠들고 찧고 노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수학 교사 한 사람이 “왜 이렇게 떠들어!” 하면서 우리보고 책상을 들고 벌을 서라 했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저도 얼결에 책상을 함께 들고 벌을 받았지만(저는 동무들하고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맨 뒷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늘), 수학 교사가 비꼬듯 되뇌는 설교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네가 그동안 우리한테 한 짓이 있는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읊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십 분쯤 팔이 덜덜 떨리도록 책상을 들고 있다가, 이 수학 교사가 우리한테 한 시간 내내 책상을 들고 있으라고 하는 소리에 불뚝 성이 나서, 교단으로 책상을 냅다 집어던졌습니다. 동무들만 떠들었어도 나 또한 한 반 동무로 벌을 받기도 해야 할 테지만, 십 분 넘게는 벌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어차피 이 학교는 한두 달 뒤면 나하고도 인연이 끝인데, 너 같은 사람한테 입발린 설교는 듣기 싫으니 입을 다물라는 뜻으로.

 수학 교사 얼굴에 대고 책상을 던졌는데, 안타깝게도 수학 교사 얼굴은 살짝 스치고 칠판에 꽝 하고 박았습니다. 갑자기 날아온 책상에 놀란 수학 교사는 더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책상을 던진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쳐다보고 무어라 한 마디를 더 했으면, 이번에는 걸상을 들고 뛰쳐나가 휘둘렀을는지 모르니까요.

 수학 교사가 아무런 대꾸도 없고 시늉도 없기에 걸상에 털썩 주저앉아,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팔짱을 끼고 앉았습니다. 동무들보고 “야, 니들도 앉아. 저런 놈이 시키는 대로 할 게 뭐야?” 하고 말했는데, 다들 끽소리 없이 책상을 들고 있기만 할 뿐입니다.


.. “후문 개방 사건 이후로 생각이 많았어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어른들도 학생들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 어른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을 아무 생각이 없는 존재로 치부해 버려요. 고등학생도 그렇게 생각하니 중학생은 더하죠.” ..  (219, 224∼226쪽)


 마침종이 울리고 모두들 책상을 내리고 팔 빠져 죽는 줄 알았다느니 투덜투덜댑니다. 수학 교사는 교무실로 돌아갑니다.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학 교사가 학생과로 부르면 한판 몸싸움이라도 벌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이 일을 쉬쉬하고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뒤로 우리들 ‘연합고사 끝나고 나서 졸업 때까지 이루어진 수업’은 더 개판이 되었고, 교사들도 더는 몽둥이질을 해대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중학생 때 일을 돌아보면, 조금도 잘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 철이 없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철이 없었기 때문에 당돌한 짓을 저질렀고, 저 또한 폭력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에 찌들고 길드는 바람에 ‘폭력에 맞서는 폭력’밖에는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폭력은 폭력으로는 어떻게든 이길 수 없음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이음고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로 읽으라 내준 책 가운데 이러한 이음고리를 보여준 책은 하나도 없었고, 이무렵 국민학교 교감 자리에 오른 아버지 또한 아들인 저한테 ‘사람됨 이끄는 가르침’이라든지 ‘사람다움을 보여주는 책’을 하나도 일러 주지 못했습니다.

 동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폭력에 맞선 폭력을 ‘짱’이라느니 ‘멋있다’라느니 하는 말로밖에 바라볼 줄 몰랐고, ‘네가 잘못했어’ 하고 말해 준 녀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폭력은 폭력으로 이기려 해서도 안 되지만, 폭력을 굳이 이겨야 한다고 해서도 안 됨을 알 길이 없기도 했습니다. 제도권 학교 틀거리와 교과서로는 우리가 ‘틀에 잘 짜여진 톱니바퀴’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먹이는 대로 잘 먹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고 ‘민주시민’이 된다고 앵무새 말을 거듭 할 뿐이었습니다.


 (3) 푸름이 목소리를 푸름이 입으로


 이야기책 《열정세대》를 꼼꼼히 읽고 난 지 여러 달 지났습니다. 푸름이들 나이와 자리를 헤아리면서, 제가 그 나이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책을 찾고 어떤 공부를 하는 가운데 무슨 꿈을 키웠는가 곱씹습니다.

 우리를 낳아 기른 어른들은 우리를 보며 ‘너희는 전쟁도 겪지 않고 평화로운 세대야’라느니 ‘너희는 보릿고개도 부대끼지 않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배부른 세대야’라느니 하는 말을 일삼았는데, 어찌 보면, 어른들은 우리 푸름이를 ‘배부른 돼지’로 기른 셈 아니었으랴 싶습니다.

 틀림없이 당신들처럼 배를 곯거나 헐벗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당신들처럼 학교도 못 가고, 학교에서도 더 끔찍한 콩나물시루에서 더 모진 몽둥이질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한테도 당신들처럼 고단함이 있었고, 허구헌날 운동장 돌 줍기를 해야 했으며, 날이면 날마다 매타작에 엉덩이와 허벅지와 뺨따귀가 성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고작 한 학년 위인 선배들은 건들거리면서 종아리를 걷어차거나 침을 찍찍 뱉었고 돈을 빼앗기는 동무가 많았습니다. 후미진 골목에서는 너구리 소굴 같은 하얀 연기가 피어났으며, 자유공원과 화도진공원 같은 데는 동네 양아치들이 학교옷을 구겨입고 술판을 벌여 이 옆으로 지나가기도 무서웠습니다.


.. 청소년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권리를 인정한다면 법으로 명시된 최정임금을 준수하는 건 기본이 아닐까? 그게 진짜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 아니겠냐고 ..  (24쪽)


 《열정세대》를 읽는 동안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눈을 뜬’ 아이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이 아이들한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어른이 한둘쯤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보았자 턱없이 모자란 손길입니다만,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는 날까지 따뜻한 손길이라곤 ‘학교 둘레’에서 한 번도 못 받았던 제 삶을 생각해 보니,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잘되었다며 한숨이 나오기도 하며, 이렇게 살가운 어른이 있어도 좀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어른들 모습이 보인다는 느낌에 아쉽기도 합니다.


.. “조중동의 문제는 자신들의 시선이 옳고, 전부이고, 객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이 일부이고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만 옳고 다른 신문들은 틀리다’는 식이잖아요. 그게 가장 잘못된 점이죠 … 주위 친구들을 보면 지금 당장 자기와 상관이 없어 보인다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뭐든지 세상과 연결되지 않은 건 없잖아요. 쇠고기 수입 문제, 쌀 수입 개방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들이 커다란 고리에서 보면 결국 자신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160, 165쪽)


 무엇인가 허전하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들춰봅니다. 이 아이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 어슷비슷하게 생채기를 입어 보았던 어른이었기에 기꺼이 이 아이들한테 손길을 내밀 수 있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예전에 겪은 생채기하고 아이들이 오늘 겪는 생채기하고는 같지 않습니다.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하나도 같지 않습니다. 사회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경제가 다릅니다. 학교 시설이 다르고 교육제도가 다르며 입시지옥이 다릅니다. 지난날 같은 군사독재자가 나라를 어두움에 내몰지 않습니다만, 군인이 아닌 사람이라 하여도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교육밭이나 문화밭에 평화와 자유와 민주를 심지 않았습니다. 너나없이 돈벌이를 외치지만, 돈벌이를 왜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못합니다. 자립형사립고니 교육평준화니 외칠 줄은 알아도, 이런 교육이 푸름이인 오늘 아이들한테 어떤 눈높이에서 다가가는 일인지를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가슴팍에 뜨거운 심지 하나를 붙안고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손길 내민 어른들 또한 어른들대로 가슴자리에 따뜻한 촛불 하나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와 촛불이 제대로 만날 수 있다면, 심지와 촛불이 오래도록 어깨동무를 하면서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여린 심지가 무럭무럭 자라나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 새롭게 커 나갈 더 작은 심지한테 촛불이 되어 다가설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 하나로 빈틈없는 끝마무리를 바라서는 안 될 노릇이요, 이 책 《열정시대》에서는, 심지와 촛불이 만나는 이야기를 읽어내면 넉넉하며, 이 심지와 촛불이 다음 심지와 촛불로, 또 다음 심지와 촛불로 꾸준히 이어나가면서 우리 손으로 차츰차츰 새롭게 일구는 우리 터전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하는 이야기를 새겨낼 수 있으면 즐겁다고 느낍니다. 그래, 한 걸음씩 아닌가?

 겨우 마음을 놓으면서 책을 덮고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우리 처남이 이 책을 알아보면서 스스로 집어들어 읽을 날을 기다립니다. (4342.5.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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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배우는 자의 권리를 찾아서
츠지모토 마사시 지음, 이기원 옮김 / 지와사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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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01 - 학교를 다니며 자유와 창조를 빼앗긴다
 : 츠지모토 마사시,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책이름 :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글 : 츠지모토 마사시
- 옮긴이 : 이기원
- 펴낸곳 : 知와사랑 (2009.3.30.)
- 책값 : 13000원


 (1) 자전거 타는 어린이는 자전거 타는 어른이 된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부터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무나 형이나 누나나 동생을 본 일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탄다 하면 집 둘레 골목길이나 아파트 주차장 같은 데에서나 탈 뿐이었습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과 학교를 자전거로 오간 동무나 선후배를 본 일은 없습니다. 딱 한 번, 새벽에 신문배달 하는 동무가 자전거 타고 신문 돌리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 뿐입니다. 1994년에 잠깐 대학교에 들어가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둘 때까지 대학생 동무나 선후배 가운데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자가용 끌고 학교 오는 사람을 본 적은 있습니다.


.. 지금의 우리는 교육이라면 언제나 학교교육을 생각한다. 학교가 널리 보급되어 있고 서양의 근대 학문을 전제로 성립한 학교가 가장 보편적인 교육 수단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일본에서도 겨우 1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근대사적 산물이다 … 모든 아이가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는 근대 공교육 제도의 사상은 오랜 역사의 눈으로 볼 때 최근에 나타난 상당히 편협한 사상이다. 그렇기에 공교육 제도를 자명하다거나 최상의 교육 형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후에도 변함없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  (8, 196쪽)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일터를 오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학생이나 회사원이 생각이 밝거나 훌륭하다고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집과 학교 사이, 집과 일터 사이가 십 킬로미터가 되지 않는다면 걸어서도 오갈 수 있는 한편 자전거를 타고 오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와 같은 길은 자가용이든 버스든 전철이든 타고 오가기보다는 오로지 우리 두 다리를 믿고 오간다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고.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학교길이나 자전거를 타고 삼십 분 남짓 들이는 회사길은 조금도 시간을 ‘길에 내버리는’ 일은 아닐 터이라고.


.. 데나라이쥬크에 다닌다는 것은 어느 데나라이 선생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데나라이쥬크라는 교육 기관에 입학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학문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어느 선생의 제자로 들어갈지는 배우는 쪽의 의지로 결정하였다. 선생의 인격, 서도의 유파, 글솜씨, 사람들의 평판 등을 여러모로 고려했을 것이다 … 가이바라 에키켄은 데나라이 선생을 올바로 선택하는 것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에키켄은 선생에 대한 신뢰감이야말로 교육과 학습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본 것이다 … 교사와 아이의 관계는 결코 제도적인 관계가 아니라 신뢰와 존경으로 맺어진 인격적이며 개인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 쥬크는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어떤 규제도 없이 자유로웠다 … 아침 몇 시에 등교하는지 그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각자 가정의 생활시간 안에서 아침식사를 마치는 대로 등교한다 … 언제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배우는 이의 의사에 달렸으며 존중되었다. 교사는 학습하는 주체의 주문에 맞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30∼31, 33, 34∼35쪽)


 국민학교 적 동무, 중고등학교 적 동무, 대학교 적 동무, 그리고 군대와 회사에서 만난 동무 가운데 새롭게 ‘자전거를 타겠다’며 나선 사람은 다섯손가락으로 꼽지 못합니다. 모두 꼽으면 두엇쯤?

 곰곰이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때때로 자전거모임에 들어가면서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자전거모임에라도 나가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자전거모임에 나간다 하여도 자전거 사랑을 키우는 사람보다는 쉬는날에 가끔 자전거 굴리며 놀러다니는 테두리에 머무는 사람이 거의 모두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자전거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올바르고 살가운 말’에 익숙하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올바르고 살가운 말을 나누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곤 합니다. 어릴 적부터 바른 말은커녕 알맞거나 마땅한 말을 듣거나 읽거나 말할 겨를이 없었다면, 나이가 들어 국어학자가 되고 교수나 강사가 된다 하여도 말씀씀이며 말매무새고 아름다운 쪽으로 거듭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 데나라이쥬크에서 아이들이 이혼장 쓰기까지 배웠던 것이다. 아이니까 아직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발상은 애당초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배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 개별적인 자기학습 시스템이 일반적이었던 데나라이쥬크에서는 원칙적으로 경쟁 원리는 없었다. 모두들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배우면 되었다. 어느 정도의 학습이 필요한가는 아이들의 능력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 부모의 생각 등에 따라 각기 달랐기 때문에 학습자는 스스로가 혹은 그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배우면 되었다 ..  (45, 48쪽)


 아이들이 어릴 적에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제대로 배우기 어려울 뿐더러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에 어릴 적에 가르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면, 영어만 어릴 적에 가르쳐야 좋을까요. 영어 아닌 다른 이야기는 어릴 적에 가르칠 만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영어 한 가지만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다른 모든 이야기는 안 가르쳐도 괜찮을까요.

 착한 마음씨랄지, 따순 마음결이랄지, 넉넉한 마음밭이랄지, 푸진 마음그릇이랄지, 깊은 마음씀씀이랄지를 어릴 적부터 온몸에 고이 배어들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꿰뚫어보도록 어릴 적부터 슬기롭게 이끌고, 사람을 사람 그대로 껴안을 수 있게끔 어릴 때부터 꾸밈없이 어루만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들 어른이 아이 앞에서 ‘교육’이라는 말을 꺼내고 싶다면 말입지요. 우리들 어른이 아이를 ‘학교’에 넣으려 한다면 말입지요. 이 나라에 ‘교육부’가 있고, 교육부장관이며 교육감이며 교장ㆍ교감ㆍ교사가 있다면 말입지요.


.. 내제자가 식사 시중을 드는 중에 스승의 마음을 읽는 것이 샤미센을 연주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물론 직접적으로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러나 스승을 섬기면서 샤미센을 연주하는 스승의 리듬이나 숨소리, 그리고 마음의 움직임까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높은 경지의 예술에 오를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제자가 스승으로부터 깨달아 알아차리는 능력은 일상생활의 시중이든 예술의 수련이든 간에 차이가 없다. 예술을 수련할 때만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을 떠난 일상의 장에서도 끊임없이 스승의 숨소리까지 느끼려는 노력이야말로 내제자가 되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 스승은 실제로 해 보일 뿐이다. 그러고 난 후에는 제자가 직접 스승이 했던 것과 똑같이 해 보고, 생각하고 연구하며 노력을 거듭해 가는 수밖에 없다 … 스승이 가르쳐 주는 것을 제자가 기다렸다가 그것을 배운다는 수동적인 방법은 아니다 ..  (184∼186쪽)


 자전거 타는 어린이는 자전거 타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린이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동무들을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어린이는 세상사람과 이웃 모두를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줄 어른으로 커 단다고 느낍니다. 어린 나날부터 거짓말이 아닌 참말로 생각을 나누고 키운 사람일 때라야, 뒷날 정치꾼이 되든 공무원이 되든 지식인이 되든 무엇이 되든, 거짓말 아닌 참말로 사랑과 믿음을 고이 베풀 줄 알게 된다고 느낍니다.


 (2) 맞고 자란 어린이는 때리는 어른이 된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교사한테 흠씬 두들겨맞았다고 떠올립니다. 더 어릴 적에도 어머니한테 얻어맞지 않았으랴 싶으나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초등학교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릅니다만, 제가 떠올리는 1980년대 인천 국민학교는 1학년이고 6학년이고 가리지 않고 머리박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나무막대기나 밀걸레막대가 부러지도록 두들겨팼습니다. 손바닥이나 종아리는 아주 가벼운 매질이었고,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놓고도 ‘평등’이라 할 분이 있을까 궁금한데, 매질 앞에서는 늘 평등이기는 했습니다. 다만, 공부 좀더 잘하는 아이와 학교 임원인 아이와 뭔가 있는 아이를 빼놓고는.


.. 근대가 되면서 아이와 부모는 학교 시간에 맞춰 자신들의 생활시간을 결정해야 했다 … 지금의 학교 수업은 일제수업 시스템으로 등교 시간이 제각각이면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다 … 일제수업은 가르치는 쪽이 정한 커리큘럼을 따른다. 그것은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반면, 아이의 학습을 아이 자신이 아니라 가르치는 쪽이 정하게 된다 ..  (33∼35쪽)


 중고등학교 때에 ‘체벌 아닌 매질’을 놓고 학급토론 비슷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 교사는 우리한테 역사를 가르치며 ‘일본사람은 조선사람을 두들겨패야 말을 잘 듣는다고 말했다’며, 이런 말이 얼마나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는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우리한테 휘두르는 매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라는 데에 한동안 몸담을 때에 선배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얼차려를 시켰고, 군대에서는 계급에 따라 아주 마땅하다는 투로 주먹다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회로 돌아와 회사에 다닐 때에는 얼차려나 주먹다짐은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푸대접이 있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욕설과 인신공격이 있었습니다.

 모습을 조금씩 달리할 뿐, 어린 나날부터 이날까지 제 둘레에는 온통 폭력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주먹질이 될 수 있고, 국가보안법이 될 수 있으며, 어처구니없는 집임자 폭리일 수 있으며, 난데없는 재개발과 철거일 수 있는데다가, 날벼락 같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될 수 있습니다.


..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익숙해진 습관으로 몸에 배인 것은 선이든 악이든 자각적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 소유한 천성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에키켄은 행동은 선천적인 천성이라기보다는 습관, 즉 생후 교육에 의해 몸에 배는 것이 많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는 분명한 자각 없이 이루어지는 모방과 숙달의 과정이야말로 인간 형성의 가장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했다 … 아이에게 부모는 최초이자 최대의 환경이지만,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 인적 환경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본다면 부모가 자각하여 스스로의 행동양식을 규제하면서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150, 156쪽)


 크고작은 폭력에 길들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폭력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들은 우리를 억누르는 힘에 눌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보다 여린 이웃을 억누릅니다. 우리보다 고단한 이웃을 들볶습니다. 우리보다 낮아 보이는 이웃을 등처먹거나 울궈먹습니다. 우리보다 못 배운 이웃을 깔보고 업신여깁니다.

 오래도록 폭력에 길들다 보니, 주먹질 폭력과 입질 폭력과 따돌림질 폭력 따위가 수없이 판치고, 이러한 폭력을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차곡차곡 물려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엄마 말 안 듣는다’느니 ‘아빠 말 안 듣는다’느니 하면서 아이 스스로 싱그러이 피어나는 꽃망울을 밟거나 찢거나 꺾고야 맙니다.

 왜 아이들은 ‘엄마 아빠 말을 고스란히 들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엄마 말이든 아빠 말이든 ‘옳은 말이면 옳게 받아들이고 그른 말이면 그릇되었기에 바로잡거나 고쳐서 곰삭일’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가요. 왜 아이들은 어느 누구 말이라 하든 ‘아름다운 말과 살가운 말을 찾아나서거나 알아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가요.


.. 커다란 책가방과 다 들어가지 못한 교재를 몇 개의 손가방에 나누어 담고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들을 밑으로 축 늘어뜨린 채 등하교하는 조그마한 일본의 초등학생들을 보라 ..  (201쪽)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몰아놓고 가르치자니 교과서를 쓰게 됩니다.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쓰자니 시험점수에 목매달게 됩니다. 시험점수에 목매달게 하자니 교칙을 세우고 교복을 입히고 도덕을 가르치면서 국민의례를 시킵니다. 이러는 동안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한 가지 틀에 얽매이게 됩니다. 홀가분한 삶터를 못 보게 됩니다. 정답이라는 올가미에 갇힙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과 슬기를 모두어 어깨동무하는 물줄기를 못 보고야 맙니다.

 그런데 그토록 아이들을 다잡아 놓는 교과서는 고등학교를 마치기만 하면 쓰레기로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하느님처럼 떠받들리던 교과서이건만, 입시를 치르고 나면 헌신짝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옳고 바르며 알맞다는 이야기를 담아 아이들 누구한테나 가르쳐야 하는 책이 교과서라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성경 하나를 온삶 바쳐 거듭 읽듯, 교과서 또한 내 아이한테까지 물려주면서 가르칠 만한 앎이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결국 대학 관계자는 물론 국민 대다수는 내심 지금의 대학 입시와 그것을 위한 공부를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 현행 입시는 학습 능력이 높은 학생을 선택하는 시스템으로서 매우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 수험 세계는 경쟁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서 습득하려는 실력이란 수험 실력 외에는 없다. 그 실력의 배후에 사상적인 의미 부여 같은 것은 없다. 일류 대학에 합격할 정도의 공리적인 목표가 설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일본의 학교 교사는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아이들 측에서 보면 교과서를 배우는 일이 목적이므로 교사는 그를 위한 가이드에 지나지 않는다 … 사실 교사도 ‘교과서를 가르치는’ 편이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 그러나 결국 그것이 교사를 나타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  (205, 222, 229∼232쪽)


 맞고 자란 어린이는 때리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옳게 배우며 자란 어린이는 옳게 가르치며 나누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이 배우며 큰 어린이는 아름다움에 사랑과 믿음을 담뿍 싣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제길과 제자리를 어릴 때부터 스스로 찾도록 배운 어린이는, 어른이 된 다음 맑은 윗물이 되어 아랫물 또한 맑게 흐르도록 뒷배하는 착한 이가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건 안 보내건, 우리들 어른 된 사람한테 주어진 몫이라면, 우리 어른 스스로 올바른 어른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아이들 스스로 올바른 어린이로 살아가도록 손을 맞잡는 데에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른을 보고 배우는 어린이일 테니까요. 어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흉내내는 어린이요, 어른들이 나누는 사랑을 고스란히 따르는 어린이이며, 어른들이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사랑하면 아이들 또한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크고자 하는 어린이일 테니까요.


 (3)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책


 일본에서 나올 때 붙은 책이름은 “배우는 자의 권리를 찾아서”였다고 하는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가 굳이 일본사람이 예부터 공부해 온 길을 알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우리 길을 찾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는 “배우는 사람이 누릴 권리를 찾는” 일은 틀림없이 값이 있다고 느끼면서 집어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교육이 뒤틀렸다고 느낍니다만, 일본 또한 일본 스스로 일본 교육이 뒤틀렸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 책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는 우리한테 우리 앞길을 살며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습니다.


.. 서점의 앞쪽에는 언제나 수험 참고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험 참고서는 전부 자습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시험 공부에서 강조되는 것은 오직 텍스트를 반복하는 학습이다 ..  (203쪽)


 저는 일본에 꼭 한 번 가 보았습니다. 저한테 돈이 있다면 몇 번 더 가 보고 싶은 일본인데, 둘레에서 일본을 다녀온 분들 말씀을 듣거나 제가 보았던 일본을 떠올리면, ‘일본 책방에서 수험 참고서는 그리 안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를 쓴 분은 “서점의 앞쪽에는 언제나 수험 참고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기는, 이렇게 말할 까닭이 있습니다. 일본 교과서를 보신 분이 있는가 궁금한데, 일본은 교과서를 아주 빼어나게 잘 만듭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가장 재미없고 따분하게 만든 책이 일본 교과서’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교과서는 어떠하느냐? 일본 교과서 발가락 때만큼도 좇지 못합니다. 일본사람이 한국이라는 나라 교과서를 들여다보아야 ‘일본 교과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터이나, 일본사람들은 제 나라 일본이라는 ‘앞선 책나라’를 헤아린다면 ‘교과서를 너무 못 만든다’고 늘 뉘우치면서 고쳐 나가려 합니다. 이와 달리 우리 나라 한국에서는 ‘교과서를 제대로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조차 헤아리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가 또한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엉터리 줄거리를 담는다 하여도 한결 슬기롭고 알차고 싱그럽게 엮어내는 손길마저 없어요.


.. 모두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일본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신체상의 구제를 사소한 부분까지 정해 놓고, 교칙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복을 정하고, 일정한 두발 형태를 강요하고, 혹은 여학생의 치마 길이나 주름의 숫자, 남학생의 바지 형태나 길이, 신발이나 양말의 형태, 색깔 등을 규제하고 있다 … 의복이나 머리 모양 등은 본래 아주 기본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대한 통제가 교칙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성 존중 교육을 추구하면서 이와 정반대로, 학교생활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용인되고, 그것을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 단체수업의 방법으로 아이들 수십 명의 개성을 어떻게 육성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그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서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도로 규정된 우연적인 관계이다 ..  (242∼243, 256쪽)


 아이들한테 사입혀야 하는 학교옷이 수십만 원이라면서, 학부모 된 분들은 한결같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러면,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안 입히면 됩니다. 학교옷을 왜 입혀야 하느냐고 따져야 하며, 꼭 학교옷을 입혀야 하면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옷을 나눠 주고 입도록 하라고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어버이도 아이들한테서 학교옷을 벗기지 않습니다. 먹혀들지 않을 소리로 생각하기도 할 테지만, 미운털 박히기 싫을 뿐더러 아이들 스스로 ‘예쁘고 멋지고 다리 길어 보이는 이름난 회사’ 학교옷을 입고 싶어합니다.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입히고, 머리길이를 따지며, 신발이 어쩌고저쩌고 배지와 이름표가 이러쿵저러쿵하는 나라에서는 자유란 없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일찌감치 그 푸른 나날을 학교에서 지내는 사이 ‘빼앗기는 자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유뿐 아니라 민주와 평화와 평등과 창조와 통일을 빼앗기고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더욱이, 아이 부모 된 분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이토록 한 나라 사람들 모두를 바보로 삼으려고 하는 ‘겉보기 자유민주주의’ 나라는 일본하고 한국 두 나라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아이들 옷을 ‘틀에 가두어’ 놓겠습니까. 세계 어느 겨레에서 아이들 몸을 ‘틀에 매어’ 놓겠습니까.


.. 물론 번교에 따라 작은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영민함과 둔함의 차가 있었고 진도도 다르고, 사용하는 텍스트나 학습 부분도 다르기 때문에 일제수업은 불가능했으며 단시간의 개별 지도와 혼자 행하는 비교적 장시간의 자습 활동이 기본이었다. 이 점은 어떠한 번교라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학교처럼 연령, 학년에 따라 정해진 일정한 커리큘럼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람마다 이해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각자의 속도로 학습하며, 차이에 따라 개별의 학습과 지도가 부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75쪽)


 앞으로 누군가 쓸는지 모르는데, “한국사람은 어떻게 배웠을까?” 같은 책이 나올 날을 기다려 봅니다. 그리고,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에 걸쳐, 우리들 한국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도록 길들여지는가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 줏대를 찾거나 키우면서 바르고 곱고 맑은 사람이 되자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다룰 만한 우리 이야기책을 기다려 봅니다. ‘의무 교육’이 아닌 ‘자유 교육’으로 우리한테 ‘의무’가 아닌 ‘자유’를 심는 배움길에서 우리 손으로 새 세상을 힘차게 가꾸고 일으킬 빛줄기가 우리들 누구한테나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4342.5.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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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카르페디엠 12
토마스 야이어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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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을 전쟁 미치광이로 만든다
 [잠깐 읽기 32] 토마스 야이어,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책이름 :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글 : 토마스 야이어
- 옮긴이 : 신홍민
- 펴낸곳 : 양철북 (2009.3.25.)
- 책값 : 9800원



 (1) 제도권학교와 정치


 4월 29일 국회의원 재보선을 마치면서, 인천 부평을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뽑히고, 울산 북구에서는 진보신당 후보가 뽑혔습니다. 인천에서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시민들한테 지난 1월 편지를 띄우며 ‘새 차를 살 때 대우 자동차를 사면서 지역경제를 살려 주십시오’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자동차 공장 한 곳이 지역살림을 크게 움직이는 셈이라 할 테지만, 이 편지를 받아 읽는 마음은 가볍지 못했습니다. 왜 자동차 공장을 살려야 지역살림이 산다고 하는가 싶어서. 기름을 먹는 자동차는 석유값이 끝없이 오를 뿐 아니라 오래잖아 석유가 마르면 그예 깡통이 되어 버릴 텐데, 더구나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동안에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공기를 더럽히는데, 지역살림 살리기를 오로지 ‘대우 자동차 한 대 더 사며 살리기’로만 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 “우리 아버지 머리속에는 미식축구밖에 없어. 우리 아버지에게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세상의 중심이야.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남편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따라. 어떤 때는 우리 어머니가 앨라배마의 촌구석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아버지하고 결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  (15쪽)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뽑힌 조승수 님은 진보신당으로서는 첫 번째 의원입니다. 꼭 어느 정당 첫 번째 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정치밭에 진보정당 사람이 발을 디딛기 어려운 모습을 돌아본다면 좀더 뜻있게 이와 같은 소식을 다루어 줄 법하지만, 옆지기 식구네 집에서 모처럼 텔레비전으로 이런 소식 저런 소식 찾아 들어 보아도 딱히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인터넷이나 종이신문 소식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온통 ‘여당-야당’이라는 두 갈래길만 있고, 두 갈래길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학입시를 앞두고 ‘대학교 가는 아이들’만 신나게 다룰 뿐, ‘대학교 안 가는 아이들’은 거의 한 번조차 다루지 않는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잡지 들은 ‘수험생 아이를 둔 독자님’을 생각한다며 ‘수능 문제’를 따로 찍어서 나누어 주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꽤 넓은 자리를 내주며 입시 이야기를 실어 놓습니다. 그러나 입시가 아닌 ‘초중고등학교 삶’을 다루는 일이란 없으며, ‘대학교 안 가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딜 청소년한테 도움이 될 삶’을 다루는 일 또한 없습니다.


.. “나, 린다 코르먼은 모든 적군에 맞서 미합중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린다는 의식에 맞추어 진지하게 대령의 말을 복창했다. 심지어 장교가 금빛 소위 계급장을 건네주며, “이 세상 끝까지 행운을 빈다.”고 했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린다는 멋진 외출복 차림을 한 자기를 보고 몹시 자랑스러워 할 아버지를 생각했다 ..  (54쪽)


 열네 살 처남은 다섯 해 뒤면 선거권을 받습니다. 어쩌면, 처남한테는 어느 날 갑자기 선거권이랍시고 뚝 떨어지는 셈일 텐데, 그때까지 학교나 집에서나 ‘정치란 무엇이고 선거란 어떤 일인지’를 제대로 배울까 궁금하곤 합니다. 아니, 가르칠 일이란 없을 테지요. 학교 공부 시키는 데에도 바쁠 테니까요. 처남한테는 학교 공부보다도 놀기에 바쁘기도 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문이든 잡지든 다른 어느 매체이든, 아이들한테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이야기만 들먹일 뿐입니다. 적어도 ‘대학교에 들어갈 아이들이 정치 바라보기’를 어찌 해야 하는가를 들먹이지도 못합니다. 대학생이 되면 대학 공부를 비롯해 동아리라든지 학생운동도 있기 마련이지만, 토익-토플, 학과공부, 사랑, 놀이를 빼고 이 아이들한테 세상과 사회와 나 스스로를 읽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조금도 들먹이지 못합니다.

 하기는. 언론 탓을 하기 앞서 어버이 탓을 해야 할 노릇이요, 학교 교사 탓을 해야 할 노릇입니다만. 제도권교육 틀거리를 탓할 노릇이요, 교과서를 탓할 노릇이지만.


.. 데비는 지미가 어떤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오래전부터 데비는 종종 학교를 더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한껏 차려입고 하루 종일 ‘미식축구팀의 화끈한 남자아이들’과 외모와 옷에 대해서 수다를 늘어놓는 치어리더들을 만날 때는 더 그랬다 ..  (153쪽)


 지금은 어떠한 과목으로 이름이 바뀌었을는지, 또는 그대로 과목이 남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정치ㆍ경제’라는 과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과목 이름은 이러하여도 ‘고등학생인 제가 겪는 이 나라 정치와 경제’를 곧바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고등학생인 우리한테 선거권이 있다 할 때에 선거 후보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공약을 내놓는지를 알 수 없었고, 안다 할지라도 이런 발자취와 다짐을 어떻게 지켜보아야 할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상은 우리들(고등학교를 마칠 사람)을 교과서 지식으로만 머리가 가득 차도록 하고 나서 사회로 내보낸다고 해야 할까요. 기껏 아는 재주라 해 보았자 시험풀이 하는 재주요, 몇 가지 자질구레한 지식쪼가리뿐입니다. 실업계학교는 인문계학교하고는 달라 바로바로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우리들이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할 수 있는 일이라 한다면 찻집에서 물잔 나른다거나 공사판에서 잔심부름 하기쯤? 이를테면 삽질 호미질 낫질조차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아니, 학교에서 이러한 일매무새를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세상 보는 눈을 슬기롭게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거들지 못하고,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을 우리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일솜씨를 하나하나 가다듬도록 북돋우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우리들을 ‘책상물림 지식인’으로만 키우는 공장하고 같다고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 밤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물었다. “베트남은 어땠니?” “더웠어요.” 린다가 대답했다 ..  (307쪽)


 대통령을 뽑는 1992년 선거를 지켜보던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들한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정주영 백기완 이러한 분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해 줄 만한 교사는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저마다 어찌 다른 공약을 내놓았는지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란 고작 ‘선거에서는 가장 나쁜 사람을 하나씩 덜어내어 마지막 사람을 뽑아야 한다’에 머물 뿐이었고, 그렇게 덜어낼 ‘나쁜 사람’이 누구이냐고 물으면 ‘모두 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비판적 지지’라지만,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비판’은 없이 ‘지지’만 있는 채로 ‘1번 찍기’와 ‘2번 찍기’에 그치도록 하는 우리네 학교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르는 일이긴 하나, 아이들을 낳은 어른이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키우는 어른 모두 ‘슬기롭게 비판하는 정치눈’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아이들 앞에서도 옳고 바른 눈썰미를 기르도록 못 가르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맞고 자라던 교사가 오늘날 학교에서 때리며 가르치는 쳇바퀴가 이어지듯, 어릴 때부터 정치눈을 기르지 않으며 얕은 생각에 허우적거리던 어른이 오늘날 아이들을 당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들이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2) 전쟁 미치광이 미국을 이야기하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거짓되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키면서 허울좋은 평화로 사람들 눈을 속이는가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꾼과 군인이 말하는 평화란 ‘돈많은 미국 시민권자 평화’일 뿐, ‘미국사람 모두가 누릴 평화’조차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1등으로 세계경찰 노릇을 해야 할 미국이 지구에서 지켜 주는 평화’이지, ‘1등이나 꼴등에 매이지 않으며 스스로 조촐하게 살림을 꾸리는 크고작은 뭇나라마다 애틋하게 어깨동무하는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싸움터에서 총에 맞아 죽는 군인한테 훈장을 주는 미국입니다. ‘평화를 지키려 했’기 때문에 상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평화를 지키려다가 다치거나 죽었으니 ‘동료 군인을 비롯한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적을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숱한 주검과 핏물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싸움이 벌어졌고, 이 싸움은 누구를 지켜 주는 일인가’는 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원수! 돌격!’ 두 가지만 생각하게 됩니다.


.. “당신은 악마예요.” 린다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잔인한 악마! 당신들이 우리 병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 눈으로 봤어요.” 린다는 자기가 수술한 수많은 부상자들과, 희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분류해 옆으로 제쳐 놓았던 병사들을 생각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우리 마을을 파괴하고, 우리 식구들을 살해했는지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그 사람(베트콩)이 비난하듯 물었다. “미군 장군들은 딴소리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가 아니에요.” ,,  (225쪽)


 공산주의가 퍼지지 않도록 막는다고 했지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를 사람들한테 옳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이기는 하나, 사회주의란 참말로 어떠한 틀거리인가를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라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있을 뿐 아닐, 집회ㆍ시위ㆍ결사 같은 자유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한테 재갈을 물리고, 제 생각과 뜻을 펼칠 자유란 민주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녀는 평등해야 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평등해야 하며, 학력에 따라 일삯을 달리 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언제나 말에서 그칩니다. 우리 나라에는 자유도 없고 민주도 없고 평화도 없으며 평등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길들어 버립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되고 회사 정규직이 되면, 그만 제 이웃과 동무를 싹 잊습니다. 금을 그어 놓습니다. 울타리를 쌓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미국은 총칼을 들고 힘여린 나라에 군화발로 쳐들어갔지만, 우리들은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하는 짓에 손뼉을 치고 나팔수가 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총칼만 안 든 전쟁 미치광이 짓’을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 미 공군이 작전을 도맡아 이 지역에 있는 베트콩의 보급로에 샅샅이 고엽제를 뿌렸다.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벌건 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231쪽)


 그런데, 이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이 나라 청소년 가운데 얼마나 속속들이 알아보거나 느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어떠한 나라인지 하나하나 배우지 못할 청소년들 아닙니까. 한국 사회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는 눈길조차 안 둘 뿐더러 슬기롭고 바르게 가르치는 어른이 없는 우리 청소년들 아닙니까. 청소년들한테 보여지는 이야기란 〈꽃을 든 남자〉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이 이야기에 똑같이 얼이 빠져 버리지 않습니까. 〈꽃을 든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꽃을 든 남자〉에만 묻히며 우리 눈에 흐리멍덩해지고 우리가 걸을 길과 우리 이웃이 걷는 길을 모두 놓쳐 버리면 우리 삶이 어찌 되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 군은 부상병들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았다. 여섯 달이 지난 뒤에도 건강이 회복되지 못한 사람은 퇴원 조치되어 친척과 친구들 손에 맡겨졌다. 그 사람들은 팔다리가 없고, 목 아랫 부분이 마비되고, 급히 임시방편으로 꿰맨 탓에 얼굴과 상처 부위가 기형이 되고, 자기 이름조차도 모르는 정신 장애인이 된 절망스런 남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베트남에서 청춘을 잃고, 무기력한 불구자가 된 20대 남자들이었다 … 그 남자들은 따뜻한 정을 절실하게 바랐지만 받지 못했다. 아들이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마치 무슨 치욕이라도 되는 듯, 부모들이 거의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들과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그 남자들 곁을 떠났다 ..  (338∼339쪽)


 《그리운 매화향기》(2001)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우리 삶터를 어떻게 옥죄었는가를 깊이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2008)이라는 어린이문학이 하나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를 잊고 지내던 우리들이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보가 되어 무너졌는가를 너른 눈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2003)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에는 가해자 나라와 피해자 나라가 나뉘지 않고, 힘센 이가 힘여린 모두를 찍어누를 뿐임을 환하게 밝히는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배경 지식’이 좀 모자라거나 없더라도 작품으로 말하는 이야기에 어렵잖이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우리네 아이들한테는 좀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경 지식’도 있어야 할 테지만, 문화와 삶자락이 아주 다른 서양 청소년 눈길에 따라 그려지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흐르는 빛줄기는 틀림없이 ‘전쟁이 싫고 평화가 좋다’입니다만, 그리고 이 빛줄기가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우리 청소년과 어른 들한테도 고운 목소리로 다가오겠지만, “미국은 말 그대로 전쟁 미치광이 나라이지. 자, 그러니 그 미치광이 짓이 무언지 차근차근 살펴볼까?” 하면서 우리 목소리와 눈높이와 마음결에 알맞게 맞춘 작품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어 주는 어른들이 있으면 얼마나 더 기뻤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번역 백 권이 나오는 동안 좋은 창작이 한 권이라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2.4.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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