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 24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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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71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 강철의 연금술사 24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3.25. 4200원



  낱권책으로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으면,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르는 줄 살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얼거리를 헤아리면서 만화를 그렸을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이 되는가 같은 이야기를 살필 만합니다.



“불사의 군단이라는군. 사람의 혼을 꼭두각시에 넣어서 만든, 죽음의 공포를 모르는 병사들이다.” (15쪽)


“너는 감정과 함께 소중한 것을 버리고 말았어. 감정을 버린 네가, 우리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50쪽)



  《강철의 연금술사》 스물넷째 권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는 낱권책입니다. 스물넷째 권에서는 꼭 한 가지를 묻습니다.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하고 물어요. 남이 시키는 대로 좇는 사람이 될는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 떡고물을 주겠다고 하는 사탕발림에 홀리는 대로 살는지, 아니면 스스로 삶을 지으려 하는지,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누리려 하는지를 묻습니다.



“네가 얕보고 있던 자들의 마음을 알아라.” (63쪽)


“일반인을 희생하고 너희 고관들만 불로불사의 몸이 돼서 세계를 통일하시겠다?” (126쪽)



  어느 길을 가든 모두 ‘내 길’입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나아가는 길도 내 길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나아가는 길도 내 길입니다. 나는 내 길을 갑니다. 바보스러운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서 ‘내 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때때로 바보스러운 길로 접어든 뒤에 아차 하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밥이나 국을 끓이면서 곧잘 바보짓을 하지요. 냄비를 태워먹기도 해요. 나중에 먹으려고 뒀다가 밥이 쉬고 말 때가 있고, 그릇이나 접시를 떨어뜨려서 깨뜨리기도 합니다. 모두 저마다 다르게 겪는 삶입니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아닙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삶도 잘못한 일은 아니에요. 아직 생각이 없으니 그리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스스로 생각하려 한다면, 남이 시키는 일을 섣불리 안 하겠지요. 남이 시키는 일이 있으면 어떠한 일인가를 곰곰이 살핀 뒤에, ‘시킨 일이든 아니든’ 스스로 즐겁게 할 만한지 아닌지를 따질 수 있어요.



“당신 자신을 믿어. 당신의 영혼에 수치스럽지 않은 삶을 택하면 돼.” (129쪽)


“허튼 소리 마! 나더러 킹 브래드레이와 똑같아지라는 거야? 저 녀석은 자기 나라 백성들도 버리려 하고 있어. 저건 내가 되고자 한 모습이 아니야!” (150쪽)



  내가 나를 믿으려면 내가 나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볼 적에 비로소 내가 나를 믿습니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나는 나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본다면, 나를 놓고 잘했다거나 잘못했다거나 함부로 따지지 않아요. 나로서는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는 셈입니다. 다만, 수십 해에 걸쳐서 똑같은 바보짓을 되풀이할 수 있는데, 어쩌면 수십 해에 걸쳐서 바보짓을 해 보는 엄청난 일을 겪는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르든 늦든 깨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깨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내 눈은 내가 뜰 노릇입니다. 눈을 뜨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 보고, 눈을 뜨지 않고서는 내 삶이 없습니다. 남이 시키는 일만 했기에 내 삶이 없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눈을 뜨지 않으며, 스스로 사랑을 짓지 않을 때에는 내 삶이 없습니다. 4348.1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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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다이家 사람들 1 삼양출판사 SC컬렉션
모리모토 코즈에코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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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70



두 가지 마음이 흐르는 잔잔한 바다

― 코우다이 家 사람들 1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4.16. 7000원



  어른은 몸이 고단하거나 힘들어도 야무지게 견디곤 합니다. 아이도 몸이 고단하거나 힘들 적에 씩씩하게 버티곤 해요. 그런데 어른은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가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기도 하지만, 아이는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를 잘 감추지 못합니다. 어른이면서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를 쉬 드러내는 사람을 보고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도 말하지만, 속마음을 가리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이란 무척 홀가분하면서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껴요. 왜냐하면, 고단할 적에 고단하다고 밝혀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더 빨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힘들 적에 힘들다고 밝혀야 얼른 손을 내밀어 도울 수 있어요.


  아이들은 밥이 맛이 없으면 맛없다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수저를 내려놓지요. 어른들은 밥이 맛이 없어도 끝까지 먹곤 하지요. 아이들처럼 밥이 맛이 없다고 할 적에 곧 티를 내면, ‘어디에서 뭘 잘못해서 이렇게 맛이 없을까’ 하고 돌아볼 만합니다. 어른들처럼 밥이 맛이 없어도 제대로 티를 내지 않으면 ‘맛이 없게 지은 밥’을 못 깨닫고 지나가 버릴 수 있어요.



“우와우와거리지 말고, 키에 너도 쫄지 말고 한번 노려 봐.” “네? 아뇨, 그 정도 스펙이면 저랑은 다른 세계 사람인걸요. 현실감이 안 들어요.” (9쪽)


“히라노 씨,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 안 할래요?” “네에에? 어, 어째서요?” “아니, 어째서긴요. 같이 먹고 싶으니까 그렇죠.” (22쪽)



  모리모토 코즈에코 님이 빚은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삼양출판사,2015)은 ‘다른 사람 마음속을 읽는 힘’이 있는 ‘코우다이 집안 사람들’을 다룹니다. 마음속을 읽는다니, 어느 모로 보면 대단한 사람들일 수 있으나, 다르게 보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며 지내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겉과 속으로 다른 마음과 몸짓이 되어 마주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네 마음을 읽고 싶지 않으나 네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가 늘 들리’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아도 마음 소리를 듣는’ 삶입니다.



‘코우다이 씨는, 의외지만, 내가 지어낸 공상과도 같은 황당무계한 스토리를 좋아한다. 나는 웃거나 센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목소리로 맞장구치는 것밖에 못 하지만.’ (25쪽)


“근데, 그런 능력이 있다면, 불행하겠지.” “응? 어째서? 엄청 편할 것 같은데.” “타인의 속마음은 모르는 편이 낫지. 상대방의 안 좋은 점을 알게 돼 상처 받거나 실망할 일도 많이 생길 것 아냐.” (27쪽)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으면 나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기에 다른 사람하고 한결 사이좋게 지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기에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괴롭히거나 홀리는 짓을 할까요.


  우리는 입으로 말을 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입으로 하는 말에 속마음을 안 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과 마음이 달라요.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듯 말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안 아끼거나 안 사랑하기도 해요. 앞에서는 번드르르하게 말하지만, 뒤에서는 아주 사람을 괴롭히는 짓을 벌이기도 해요. 사람들 앞에서는 이렇게 하겠노라 다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물러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기도 해요.


  겉으로나 속으로나 한결같이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요. 남을 속일 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남을 속일 줄 모르기에 남한테서 자꾸 속는 사람도 있고, 남을 속일 줄 모르기에 언제나 착하면서 참다운 살림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치만, 코우다이 씨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전해진다면 좋을지도. 난 하고 싶은 말을 좀처럼 입 밖으로 못 뱉으니까. ‘좋아해’라는 말은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못 할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라면 큰소리로 외칠 수 있어.’ (29쪽)


‘그렇다면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난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거야? 타인의 속마음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정작 나 자신의 속마음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 (51쪽)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에 나오는 코우다이 집안 세 남매는 할머니한테서 ‘마음 읽는 힘’을 물려받았습니다. 세 남매는 말없이 둘러앉아도 서로서로 어떤 마음인가를 훤히 압니다. 그래서 세 남매는 제 마음을 알려주기 싫어서 깊이 감추려 하지만, 세 남매 사이에서는 도무지 감추지 못해요. 감추려고 해도 훤히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세 남매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말이 않는 사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작 마음속으로는 어마어마하게 수다를 떨지요. 왜 내 마음을 읽느냐는 둥, 네 마음이 왜 그러느냐는 둥, 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어요. 겉으로는 낯빛 하나 안 바뀌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세 남매는 ‘다른 사람 마음을 쉽게 읽기’는 하되, 누구보다 ‘내 마음’은 제대로 못 읽곤 합니다. 뜻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 마음속이 훤히 보여서 그 마음을 살피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무엇을 생각했더라?’ 하면서 잊거나 지나칩니다. 내 삶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사람 삶을 바라보면서 제 앞길을 제대로 못 가기 일쑤라고 할 만해요.



‘코헤이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그 역시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하지만, 마음속엔 항상 봄바다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운 색이 있다.’ (45쪽)


‘처음 만났을 땐 깜짝 놀랄 정도로 감탄했었지. 남자들은 다 그랬었으니까. 그래서 난 손에 넣을 수 없는 벼랑 위에 핀 꽃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단념했지. 파란 눈, 이런 색에도 여러 계열이 있지만, 이 녀석 눈은 따스한 바다 같은 부드러운 색이야.’ (82쪽)



  나는 아이들 마음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읽습니다. 눈빛뿐 아니라 몸짓으로도 읽습니다. 눈빛이랑 몸짓뿐 아니라 기운으로도 읽습니다. 아이들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마음인지 읽을 테지요. 입으로 말을 해서 아는 마음이 있고,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서로서로 마음을 못 읽기도 해요. 가까이 있는 곁님 마음을 못 읽는다든지, 곁님한테 내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기도 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어떤 마음인가를 못 읽기도 합니다.



“한번 제대로 마음을 전해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이, 이제 와서 뭘, 미츠마사 오빠한텐 약혼자도 있다며?” “그러니까, 한번 제대로 차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잖아.” “잠깐만, 차이기 위해 고백하란 거야?” (134쪽)



  마음을 읽는 사이라면, 그야말로 한마음이 되어 살아가는 사이입니다. 마음을 못 읽는 사이라면, 그야말로 딴 생각으로 딴 자리에 있는 사이입니다. 한집에서 산다고 해서 한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몸에 깃든 다른 넋인 목숨이라 하더라도 오직 사랑으로 기쁘게 하나되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한마음이라고 합니다. 즐겁게 웃을 때에 한마음이 되고, 스스럼없이 노래할 때에 한마음이 되어요.


  즐겁게 웃지 못하기에 한마음이 되는 길을 가려고 말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스스럼없이 노래하면서 함께 기쁜 살림을 지으려고 애써 글도 쓰고 말도 섞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해요.


  두 가지 마음이 흐르는 잔잔한 바다라고 할까요. 내 마음이 흐르는 바다와 네 마음이 흐르는 바다가 만난다고 할까요. 찬바다만 흐르는 곳이나 더운바다만 흐르는 곳보다는, 찬바다와 더운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바닷물고기가 훨씬 많이 산다고 해요. 한쪽 마음만 흐르는 곳보다는 두 마음이 서로 사이좋게 얼크러지면서 어깨동무하는 곳에 시나브로 사랑이 흘러서 아름다운 삶자리가 되는구나 싶어요.


  삶을 노래하면서 한마음으로 지내고, 삶을 꿈꾸면서 한마음으로 사귑니다. 삶을 빛내면서 한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삶을 새롭게 일구면서 한마음으로 웃습니다. 4348.1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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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9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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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55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면

― 악의 꽃 9

 오시미 수조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25. 4500원



  열한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만화책 《악의 꽃》입니다. 아홉째 권에서는 이 만화책을 이끄는 사내 주인공이 드디어 굳게 마음을 다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껏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하던 이 아이는 여러 해에 걸친 긴 수렁길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루 빨리 삶을 끝내고 이 지구별에서 없어지기를 바랐는’지, 아니면 ‘하루 빨리 살아갈 뜻을 찾고 이 지구별에서 웃고 노래하기를 바랐는’지를 스스로 생각하여 마무리짓기로 합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신경 쓰지 마.” “괜찮아. 나도 괜히 폐를 끼쳤다 싶고, 게다가, 그렇게 계속 도망치기만 해선,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으니까.” (20쪽)


“그건 너 혼자 멋대로 그렇게 믿어버린 거잖아? 넌 의존하고 있을 뿐이야. 그 소설을, 너 자신을 위로하는 도구로 삼고 싶은 거잖아? 넌 쭉 의존해 왔어. 책에, 사에키에, 나카무라에, 그리고 넌 이제, 도키와와 그녀의 소설에 의존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 난…….” “뭐가 다르지? 넌 나카무라가 왜 널 밀쳤는지도 모르잖아.” (52∼53쪽)



  다짐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다짐하는 삶이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어려울까요. 스스로 다짐하고 이 다짐처럼 살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스스로 꿈을 품으면서 이 꿈을 이룰 길을 걷자고 다짐하는 삶이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하지만, 난 할 수 없어. 평생을 유령의 세계에서 살 순 없어.” (67쪽)


“아, 아, 따뜻해.” (106쪽)



  아이들을 섣불리 학교에 넣지 말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악의 꽃》을 보아서 이런 대목을 느낀다기보다, 모든 아이는 저를 낳은 어버이한테서 더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다섯 살이든 열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제대로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어른도 그렇잖아요?


  어른은 툭하면 연애소설을 읽고 툭하면 연속극을 보며 툭하면 사랑영화를 봅니다. 그런데, 어른으로서 저희가 낳은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저 나이에 맞추어 학교에 툭툭 집어넣고는 아이하고 얼굴 볼 틈조차 얼마 안 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돈을 벌러 바깥일을 하느라 바쁘다면서 아이랑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틈도 제대로 안 내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나요? 그러면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셔요. 하루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스물네 시간을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이 아이들 마음을 읽으려고 해 보셔요.



“카스가. 산책이라도 갈까? 날씨도 좋고 하니.” “아, 글 안 써도 돼?” “잠깐 휴식.” (128쪽)


“시골이라도 상관없어. 카스가가 자란 곳이라 가 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카스가. 전부터 좀 궁금했던 건데, 무슨 일 있었어? 중학교 때. 뭔가 있었던 거지?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고.” (164∼165쪽)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스스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러한 생각대로 씩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수저를 들면 삶이 무엇인가를 놓고 골머리만 앓기 마련입니다. 죽는 길도 어렵지 않아요. 죽으려면 그냥 죽으면 돼요. 그러나 살아야 할는지 죽어야 할는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이도 저도 하지 못합니다. 살아야 할 뜻도 죽어야 할 뜻도 모르니까, 더군다나 죽은 뒤에 어떻게 되거나 무엇이 되는지는 까맣게 모르니까 이도 저도 아닌 삶이 됩니다.


  자, 생각해 보아야지요. 이대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아무것을 하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대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아무것을 하지 않고 죽으면, 곧바로 이러한 삶대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렵니까? 스스로 내 굴레를 내가 깨닫고 내가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가 떨치지 않으면, 이 굴레는 스스로 빨리 목숨을 끊어서 죽어버린다 한들, 곧바로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나서 이 굴레를 고스란히 뒤집어쓴다면, 그래도 그냥 쉽게 죽음길로 가렵니까?



“나도 갈래.” “아니, 하지만 널 그 마을에 데려가는 건.” “그래, 이제 겨우 3년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 이 상처가 설령 아문다 해도, 흉터는 사라지지 않을 거야. 어디선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날이 올 거야.” (180∼181쪽)



  죽는다고 빚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는다고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는다고 걱정이나 근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입니다. 죽으려 하면 그저 죽을 뿐입니다.


  빚을 없애고 싶으면, 살면서 빚을 없애면 됩니다. 괴로움을 떨치고 싶으면 살면서 이 괴로움에 당차게 맞서면서 씩씩하게 떨치면 됩니다. 걱정도 근심도 잊고 싶다면 살면서 기운차게 꿈을 품고 사랑을 나누면 됩니다.


  만화책 《악의 꽃》에 나오는 아이는 이 만화 흐름에서 아홉째 권에 이르러 드디어 스스로 제 삶을 마주하려 합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아무도 돕지 않으나, 이 주인공 아이 곁에서 이 아이를 지켜보는 따사로운 눈길을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주인공 아이가 ‘살아야겠다’는 뜻을 북돋아 준 따사로운 동무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면서 비로소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새로 내딛는 한 걸음은 두렵거나 무서울 수 있지만, 새롭기 때문에 언제나 기쁨입니다. 새로 내딛는 한 걸음은 가시밭길을 헤치고 지나가야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새롭기 때문에 언제나 노래하며 웃을 수 있습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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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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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0



기나긴 삶을 어떻게 가꾸겠니

― 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9.30. 5500원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1권부터 5권까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묻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어요. 그러니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묻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나라면’이 아닌 ‘너라면’이라고 하는 마음이 되어서 묻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다가 학교에서 여린 동무를 따돌리는 재미를 느꼈을 적에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지요. 이러다가 하나를 더 물어요. 네가 따돌림을 받는 아이라면, 또 네가 따돌림을 하는 아이라면,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느님 제발 조금만 더 나한테 힘을 ㅈ세요. 더 이상 뭐 싫은 게 있다 해서 도망치고 그러지 않을게요. 니시미야 핑계 안 댈게요. 내일부터 애들 얼굴 제대로 볼게요. 내일부터 애들 목소리도 제대로 들을게요. 내일부터 제대로 살게요.’ (15쪽)


‘아아, 그때 낸 상처, 아직 남아 있었구나. 나, 제대로 사과했던가? 미안. 미안해, 니시미야.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늦었겠지만. 아직도 화났어? 아, 맞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 둘 걸 그랬어.’ (19쪽)



  마지막 7권을 앞둔 《목소리의 형태》는 이제 물음을 바꿉니다. 그동안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었으나, 너한테 아무리 물어도 아무 실마리가 나올 수 없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꼬치꼬치 캐묻거나 따질 노릇이 아니라, 나는 바로 나한테 물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앳된 아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두 해째 다니기는 하되, 어릴 적부터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일 빼고는 따로 해 본 일이 없는 앳된 아이들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앳된 어른도 똑같아요. 아이들보다 나이는 더 들었어도 그동안 스스로 가꾸려 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으며, 고단하기도 했어요. 먹고사느라 바쁘기도 했을 테지만, 아이들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돌보거나 보듬을 틈을 미처 못 냈습니다.



“나오는 남의 마음을 너무 무시해!” “나왔다! 우리 니시미야 특기! 남을 이용한 공격!” “남이 아니라 친구야! 나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멋대로 단정 짓지 마!” (39∼40쪽)



  모든 사람은 똑같이 삶을 누립니다. 한 살을 두 해 동안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 살이나 스무 살 나이를 두 해나 세 해를 누린다든지, 아니면 한두 달만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다섯 살은 꼭 한 해뿐입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일곱 살 여름은 꼭 한 번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너와 내가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너와 나 사이에 맺은 어머니와 아들로 꾸리는 삶은 바로 한 번뿐입니다. 두 번이나 세 번도 아닌 오직 한 번입니다. 너와 내가 이웃이나 동무라면, 너와 나 사이에 이러한 얼굴이랑 몸매랑 마음이랑 생각으로 맺는 이웃이나 동무라는 모습도 오로지 한 번입니다.



‘소용없었어. 전부 다.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어. 제대로 말로 하는 게 더 나았던 걸까? ‘죽지 마’라고. 그럼 달라졌을까? 이시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난 어떡했어야 해?” (55쪽)



  물러서고 싶다면 얼마든지 물러설 수 있습니다.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릴 수 있습니다. 안 쳐다보아도 돼요. 모르는 척해도 되어요. 다만, 눈을 감아도 하루하루 흐르고, 고개를 돌려도 삶은 흐릅니다.


  자,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너한테 묻지 말고, 내가 나한테 물을 일입니다. 자,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사내 주인공 이시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던 니시미야를 붙잡습니다. 니시미야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움직였어요. 4층 툇마루에서 껑충 뛰어내렸지요. 도무지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풀 수 없어 아프고 괴롭던 니시미야는 죽음길로 가려 했습니다. 이때에 이 모습을 이시다가 보았습니다. 이시다는 멈칫하면서 니시미야가 스스로 죽으러 가는 길을 놓칠 수 있었어요. 이때에 이시다는 생각해요. 이제 스스로 생각해요.


  나도 죽고 싶지 않지만, 다른 동무도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짧은 겨를이었을 테지만, 툇마루에 한손을 버티고 다른 한손으로 니시미야 손을 붙잡으면서, 이렇게 가까스로 잡아채어 버티다가 자꾸 생각합니다. 힘이 빠지는 다른 손을 끝내 버틸 수 없다고 느끼면서 생각하지요. 이제부터 제대로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랑을 품으며 살고 싶다고, 그야말로 1초도 안 될 겨를에 기나긴 생각을 합니다.



‘갈고닦자. 나 자신을. 계속해서 변해 가자. 앞으로도 쭉 변치 않고.’ (96쪽)



  《목소리의 형태》 첫째 권을 돌아보면, 이시다는 어릴 적에 높은 곳에서 냇물로 뛰어내리는 놀이를 날마다 즐겼습니다. 왜 이런 놀이를 즐겼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바로 이날, 니시미야라는 아이가 4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죽으려 할 무렵, 이 아이를 살려내고 이시다가 이 높은 곳에서 마을 냇물로 뛰어내리면 ‘죽지 않을 수 있겠네’ 하는 대목을 미리 배운 셈일는지 모릅니다. 앞날은 알 수 없으나, 스스로 앞날을 지은 셈이라고 할까요.


  기나긴 삶은 스스로 지을 때에 즐겁고, 기나긴 삶은 누구한테나 주어지며, 기나긴 삶을 사랑으로 가꾸든 미움이나 슬픔으로 차곡차곡 여미든, 모두 우리 몫입니다. 앳된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려는 첫발을 뗍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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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Kitchien 4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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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8



수수한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이 피어난다

― 키친 4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0.10.29. 1만 원



  어제 읍내로 마실을 가서 ‘소고기 설도’라는 고기를 조금 장만했습니다. ‘설도’라는 이름은 언제나 낯설고, 이 이름이 어디를 가리키는가 하고 이야기를 들어도 이내 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설도’라는 낱말은 아예 안 나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아야 비로소 ‘泄道’라는 한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泄道’라는 고기는 소에서 어디일까요?


  인터넷에서 찾아본 백과사전에서는 예전에 ‘구녕살’이나 ‘밑살’이나 ‘비역살’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말 이름이 ‘먹는 것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듣기에 안 좋다’고 해서 한자말 이름으로 바꾸어서 쓴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泄道’라 하든 ‘비역살(밑살, 궁둥살, 구녕살)’이라 하든 “궁둥이 쪽에 있는 사타구니 살”을 가리킵니다. 어떤 이름을 쓰든 소고기 가운데 한 곳을 가리킬 뿐이에요.


  가만히 보면, 고깃집이나 푸줏간에서는 ‘앞다리’나 ‘뒷다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나, ‘전지(前肢)’나 ‘후지(後肢)’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전지·후지’는 듣기에 좋은 이름일까요? 알아들을 만한 이름일까요?



“태워 줄까? 수학여행?” “……. 따돌려졌어요.” “늘 그렇지만, 혼자 여행이 최고지. 차 돌릴까? 저거 너네 학교 차 맞지?” (10∼11쪽)


‘언니는 막 피어난 꽃의 싱싱하고 분명한 향기보다, 은은하고 포근한 말린 꽃향기가 나는 사람 … 어느 사진작가 집을 방문했을 때 집에 가득했던 매화나무. 꽃차를 즐겨 만드는 언니를 위해 시골의 야생국화를 꺾어다 준 남자. 내가 마신 건, 사진을 찍어내듯 소중하게 말려져 봉인된 기억들이었어.’ (43, 48쪽)



  오늘 아침에 ‘밑살구이’를 합니다.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처음부터 알맞게 썰어서 굽습니다. 밑살이라고 하는 고기를 먹은 일은 퍽 드물다고 떠오릅니다. 곁님이 아기를 배거나 낳아서 몸을 돌보며 미역국을 끓이던 무렵 밑돈을 살뜰히 모아서 모처럼 한 번 밑살을 장만해서 쓰곤 했어요. 밑살을 구워서 먹은 일은 마흔 해 남짓 살며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으로 밑살구이를 아이들하고 먹었어요.


  조주희 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0) 넷째 권을 읽으며 아침으로 먹은 밑살구이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네 식구는 밑살 사백오십 그램쯤을 한 끼니로 깨끗이 먹습니다. 이만 한 무게라면 고깃집에 가서 먹으려 할 적에 돈을 꽤나 써야 했겠지요. 집에서 구워도 돈은 꽤 치른다고 할 만하지만, 나와 곁님으로서는 처음이요 아이들로서도 처음인 새로운 고기구이입니다.


  자, 그러면 처음으로 먹어 본 밑살구이는 어떤 맛이었을까요? 자주 먹을 수 있다면 참으로 즐거웁겠네 싶도록 맛있더군요. 밑살구이를 하면서 불판 둘레에 고구마랑 당근을 함께 구워 보았는데, 고구마구이와 당근구이도 맛있습니다.



‘뭐야, 짜증나게 탈북자가 뭐야. 전학생은 늘 한방으로 처리했는데. 쳇, 어쩔 수 없지. 없는 사람 치자. 뭐, 자기도 알아서 조용히 하잖아.’ (58쪽)


“내 어머닌 5년 전 함께 국경 넘다 강물에 빠져 죽었다. 내 아버진 2년 전 공안에게 붙들려 북조선으로 끌려갔고. 니 아나? 네 어머니, 아버지.” (68쪽)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면서 오늘 짓는 이 밥 한 그릇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맛으로 스며들면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오늘 지은 이 밥 한 그릇을 비운 우리 아이들은 어떤 기쁨을 몸이랑 마음에 담으면서 씩씩하게 놀까 하고 돌아봅니다.


  밥이랑 국만 단출하게 차리기도 하고, 마당에서 뜯은 풀을 신나게 올리는 봄밥도 있고, 카레나 짜장을 하기도 하고, 부침개를 한다든지 달걀말이를 하기도 합니다. 손이나 품이 가는 밥은 잘 안 해 버릇하는데, 아이들은 늘 고맙게 밥상을 받습니다. 웃고 떠들고 놀며 딴짓도 실컷 하며 수저를 쥡니다. 큰아이는 왼손 젓가락질이랑 숟가락질을 하겠다면서 늘 용을 씁니다. 작은아이는 한 숟가락 뜨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또 한 숟가락 뜨고 다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놉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살이 되거나 마흔 살이 되면 저마다 어떤 밥을 손수 차려서 하루를 즐길 만할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들이 차린 밥상을 받을 날이 있을 텐데, 그때에 이 아이들은 어떤 밥으로 기쁜 아침이나 저녁을 베풀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완이 엄마, 여기서 뭐 해?” “정말, 이유식이 맛이 없네요. 이런 걸 먹으라고 주다니. 아줌마, 전 엄마 노릇 못하겠어요. 아이 하나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엄마라니. 으흐흑, 흐흑.” “아이고 이를 어째, 진정해. 아니, 대체 맛이 어떻기에. 음, 좀 맹탕이네. 소금 좀 치면 나으려나.” “네? 책에서 이유식엔 소금 치지 말라고. 알레르기 반응 살피면서 야채부터 고기로 하나씩.” “에이, 그게 다 뭐야. 아기도 맛있어야 먹지. 고기 야채, 다 때려넣고 양념해서 끓여. 우리 애들은 그냥 짠 국에 밥 말아 키웠구만.” (96∼97쪽)



  조주희 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은 밥 한 그릇하고 얽힌 삶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맛있는 밥이든 맛없는 밥이든, 고단한 제삿상이든 카페타 레스토랑에서 잔뜩 차려입고 멋부리면서 먹는 밥이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삶을 누리며 다 다른 밥을 지으면서 마주한 삶을 만화로 엮어서 넌지시 보여줍니다.


  밥 한 그릇에서 웃음이 솟고, 밥 한 그릇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밥 한 그릇으로 하하하 웃는 동안 기쁨이 솟고, 밥 한 그릇을 마주보며 뚝뚝 눈물을 흘리다가는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정말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가까워지고 싶어요. 다시 만나고 싶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두부조림 좋아해요. 해 주시면 더없는 영광이겠고, 이런 분명한 의사표시, 뭐가 나쁜가요?” (133쪽)



  날마다 밥을 지으며 생각해 보면, 내가 지은 밥이 나로서는 가장 맛있습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지어 주신 밥은 늘 고마웠습니다. 이웃하고 밖에서 사다가 먹는 밥은 내 품과 겨를을 아껴 주어서 새삼스레 반갑습니다. 이웃집에 나들이를 가서 받는 밥 한 그릇은 집집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기에 재미있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지은 밥을 받는다면, 이때에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마 온갖 마음이 골고루 어우러지겠지요. 그야말로 밥 한 그릇에 삶이요 사랑이요 꿈이요 노래요 웃음이요 눈물이요 기쁨이요 아련함이요 그리움이요 놀라움이요 해님이요 달빛과 같다고 할 만합니다.



엄마, 아빠는 3년 전, 고향으로 돌아가 초보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식구들은 읍내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완벽한 시골 생활은 처음인 것이었죠.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최고의 외가가 생긴 겁니다. (167쪽)


여름엔 상추와 오이, 고추를 뚝뚝 꺾어다, 수돗가에서 흙만 씻어내고는 된장에 찍어 먹거나 매실 소스를 쳐서 샐러드를 해먹습니다. 금방 땄기 때문에 시원하고 청량한 감칠맛이 한가득합니다. (172쪽)



  수수한 밥 한 그릇으로 수수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만화책 《키친》이 사랑스럽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밥 한 그릇에서도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꿈이랑 사랑을 넌지시 보여주는 만화책 《키친》이 즐겁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밥을 짓고 밥을 먹으며 밥을 나누는 만큼, 수수하면서 새로운 노래는 어느 집에서나 따사로이 흐르리라 생각해요.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기우는 저녁입니다. 저녁에도 오붓하고 조촐한 밥상을 잘 지어야겠습니다. 4348.10.2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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