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까치의 우산
김미혜 지음, 한수진 그림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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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1



동시와 관찰일기

― 아기 까치의 우산

 김미혜 글

 창비 펴냄, 2005.1.12.



  가만히 지켜보면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지켜보는 기운은 어느새 빛이 되기 때문에, 예부터 ‘잘 보라’고 했습니다. 잘 보는 일이 무척 대수롭기 때문에, 한국말에는 ‘눈여겨보다’라는 낱말이 있고, 찬찬히 보라는 뜻에서 ‘들여다보다’라는 낱말이 있어요. 그리고, 하나를 보면서 둘레를 함께 느끼라는 뜻에서 ‘살펴보다’라는 낱말이 있고, 오늘과 어제를 서로 비추면서 모든 삶은 한 갈래 흐름으로 잇닿는 줄 보라는 뜻에서 ‘돌아보다’가 있고, 다시금 흐름을 보라는 뜻에서 ‘되돌아보다’가 있으며, 더 깊이 흐름을 보라는 뜻에서 ‘뒤돌아보다’가 있습니다.


  보면서 제대로 알라는 뜻에서 ‘알아보다’가 있어요. 내가 보는 눈길과 눈빛과 마음씨를 곰곰이 건사하라는 뜻에서 ‘두고보다(두고 보다)’가 있습니다.



.. 동글동글 / 몸을 만다 ..  (콩벌레)



  잘 보는 사람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보기만 해서는 볼 수 없습니다. 보면서 뜻을 헤아려야 볼 수 있습니다. 보면서 생각을 길어올려야 볼 수 있습니다. 보면서 생각을 씨앗으로 마음에 심어야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보기만 한다면 ‘관찰일기’는 쓸 수 있어요. 그리고, 관찰일기는 틀림없이 ‘본’ 대로 쓰는 글입니다만, 언제나 한 가지만 보고 다른 모든 것을 못 보기 일쑤예요.


  관찰일기가 나쁘거나 잘못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보는’ 까닭은 관찰일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보는 까닭은 잘 알고 제대로 알며 바로 보면서, 사랑스레 껴안고 싶기 때문입니다. 보는 까닭은 깊이 알고 두루 알며 넉넉히 알면서, 아름답게 빛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 봄 햇살 따스한 논 / 아파트가 빼앗았어요. / 개골개골개골개골개골개골 ..  (땅 한 평만!)



  관찰일기는 어떤 글인가요. 그리고, 수필은 어떤 글인가요. 그리고, 감상문이나 독후감은 어떤 글인가요. 그리고, 논술은 어떤 글인가요.


  우리 아이들은 어떤 글을 쓸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글을 쓰면서 기쁜가요.


  모름지기 글이라고 할 적에는 언제나 사랑이 꿈과 같이 피어날 때에 글이라고 느낍니다. 사랑이 꿈과 같이 피어나지 못할 적에는 으레 ‘관찰일기로 머문’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담지 못할 적에는 ‘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느낍니다. 꿈을 보여주지 못할 적에는 ‘글’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을 비롯한 모든 목숨을 살리는 빛입니다. 꿈이 무엇인가 하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숨결을 버티는 힘입니다.


  ‘기록하는 역사’는 글이 아닙니다. ‘기록하는 기억’은 글이 아닙니다. 아이도 어른도 ‘쓰는 글’이 될 때에 즐겁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글쓰기’를 해야지, ‘감상문 쓰기’나 ‘보고서 쓰기’나 ‘관찰일기 쓰기’나 ‘문학 창작’을 할 때에는 즐겁지 않습니다.



.. 꽃들 찾느라고 / 땅만 보고 걸어요 ..  (꽃 탐사)



  동시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른시도 문학이 아닙니다. 그저 ‘문학’이라는 틀을 따로 만들어서 이러한 이름을 붙일 뿐입니다. 아이한테 읽히는 글은 ‘문학’도 ‘어린이문학’도 아닌 ‘글’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이야기를 밝히는 글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글입니다.


  ‘동시’라는 이름을 붙이니 ‘동시’라고 합니다만, 어른인 사람이 아이인 사람한테 어떤 글을 주어서 읽히려는 까닭은, 글을 쓴 어른과 글을 읽는 아이 모두, 마음속에서 꿈이 사랑스럽게 피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보여주려고 쓴다면 글(동시)이 아니라 보고서(문학)가 됩니다. 정보를 알리려고 쓴다면 글(동시)이 아니라 관찰일기(문학)가 됩니다.



.. 할머니는 다시 / 봄을 풀어 놓으신다 ..  (봄 쫓는 호랑이가 와도)



  김미혜 님이 쓴 동시 《아기 까치의 우산》(창비,2005)은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이 동시는 ‘글’일까요? 이 동시는 ‘이야기’일까요? 이 동시는 ‘사랑’이거나 ‘꿈’일까요?


  김미혜 님은 ‘문학’을 하고 싶은 마음일까요? 김미혜 님은 ‘관찰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일까요?


  아이들하고 ‘영양소’를 나누려고 밥을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즐겁게 살면서 웃고 뛰놀려고 사랑스러운 기운을 얻도록 이끄’는 밥을 먹습니다. 아무쪼록, 동시가 문학이나 관찰일기가 아닌 글이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글빛을 여미고 글숨을 불어넣기를 바랍니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동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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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을 줍다 창비시선 240
유안진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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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6



시와 숟가락

― 다보탑을 줍다

 유안진 글

 창비 펴냄, 2004.10.15.



  숟가락 하나만 있으면 밥을 먹습니다. 네 식구가 숟가락 하나로도 밥을 넉넉히 먹습니다. 숟가락 하나로 네 사람 입이 즐겁습니다. 서둘러 먹지 않는다면, 넷이서도 숟가락 하나로 얼마든지 기쁩니다.


  숟가락 하나로 밥을 풉니다. 숟가락 하나로 국을 뜹니다. 숟가락 하나로 반찬을 집습니다. 아이들은 숟가락질을 기다립니다. 어른도 숟가락질을 기다립니다. 몸을 살찌우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우는 밥 숟가락을 서로 나눕니다.



.. 나는 늘 사람이 아팠다 / 나는 늘 세상이 아팠다 / 아프고 아파서 ..  (내가 가장 아프단다)



  마실을 다니면서 수저를 챙깁니다. 어른 몫 수저는 따로 안 챙깁니다. 두 아이 수저를 챙깁니다. 집에서 쓰던 수저를 잘 건사해서 가방에 넣습니다. 이웃집으로 찾아갈 적에 이웃집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가 있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밥집에는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가 없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있거나 눈썰미가 밝은 어른이 있거나 아이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어른이 있는 바깥밥집이 아니라면,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를 두지 않습니다.


  더 헤아려 보면,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를 두는 바깥밥집은 아이가 먹을 만한 덜 짜고 안 매우며 덜 달며 안 시큼한 밥이나 국이나 반찬을 마련합니다.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를 안 두는 바깥밥집은 어른이 먹을 만한 밥만 차리기 마련인데, 어른 가운데 맵거나 짜거나 달거나 시큼한 것을 못 먹는 사람을 못 헤아리기 일쑤입니다.



.. 벌건 대낮에 도깨비를 기다린다 ..  (도깨비를 기다리며)



  요즈음 아이들은 풀을 잘 못 먹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풀을 먹어 본 일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젖먹이 아기라면, 어머니가 풀밥을 즐겨먹어야 풀맛을 압니다. 왜냐하면, 풀밥 먹는 어머니한테서는 풀내음이 감도는 젖이 나오거든요. 풀밥을 먹던 어버이는 젖떼기밥을 마련할 적에 풀죽을 쑬 수 있습니다. 풀죽을 쑤는 어버이는 풀물을 갈아서 아이한테 먹입니다. 풀물을 갈아서 먹이는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풀물을 마시고, 날풀을 뜯어서 먹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수저를 쥐고 밥을 먹을 즈음,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즐거이 풀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란 늘 어버이와 먹는 밥입니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란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늘 어른들과 먹는 밥입니다. 아이들이라서 밥가리기를 하지 않아요. 모두 어른들이 시킵니다. 아이들이라서 소시지나 과자만 즐기지 않아요. 아이 곁에서 어른들이 소시지나 과자를 즐기니까 아이들 입맛이 달라져요.


  아이들은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만들지 않습니다. 어른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만듭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내민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받습니다. 어른이 만든 캐릭터 상품을 아이들이 받습니다. 어른이 만든 도시나 시골에서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랍니다.



.. 그러나 그는 / 그를 버린 세상 어디서나 핀다 / 태양보다 태양다운 외로움의 이름 / 빈센트 반 고흐 / 는, 해바라기꽃 이름이다 ..  (고흐 꽃)



  어른이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아이도 날마다 마십니다. 어른이 늘 마시는 물을 아이도 날마다 마십니다. 어른이 날마다 보는 바깥모습을 아이도 날마다 봅니다.


  어른이 두 다리로 걷기를 즐기면, 아이도 두 다리로 걷기를 즐깁니다. 어른이 노래와 춤을 즐기면, 아이도 노래와 춤을 즐깁니다. 어른이 맑은 눈망울로 온누리를 따사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펼치면, 아이도 맑은 눈망울로 온누리를 따사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기쁩니다. 사랑을 물려받으며 기쁜 아이들은 이윽고 새롭게 가꾼 사랑을 이웃한테 돌려줍니다. 꿈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꿈을 이웃한테 돌려주고, 웃음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웃음을 이웃한테 돌려줍니다.



.. 내 하늘은 이 오두막이야, 우리집이야, 마당 쪽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까르르 밀려왔지요 ..  (선녀의 선택)



  유안진 님이 빚은 시집 《다보탑을 줍다》(창비,2004)를 읽습니다. 유안진 님은 길에서 다보탑을 줍습니다. 유안진 님은 이녁 아이한테 다보탑을 물려줄 만합니다. 다보탑을 물려받은 아이는 이웃한테 다보탑을 돌려줄 수 있겠지요.


  유안진 님은 이녁 어머니 말씀을 돌이키고, 어릴 적 숟가락을 되새기며, 날마다 늙는 이녁 몸을 곱씹습니다. 이리하여, 이 모든 넋과 숨결이 고스란히 싯말 하나로 태어납니다.


  즐겁게 웃을 적에는 즐겁게 짓는 웃음이 시로 태어납니다. 슬프게 울 적에는 슬프게 짓는 울음이 시로 태어납니다. 삶이 고스란히 시가 되고, 시는 다시 삶이 됩니다. 사랑이 그대로 시가 되며, 시가 다시 사랑이 됩니다.



.. 우물가엔 구기자나 향나무를 심어야, 그윽한 물맛으로 우물과 사람이 함께 편안하다면서, 쓰고 난 물로 토란을 키우셨지 ..  (어머니의 물)



  어떤 삶이 아름다울까요. 아니, 삶을 아름다움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이렇게 흐른 삶이라면 아름답고 저렇게 흐른 삶이라면 안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랑이 빛날까요. 아니, 사랑을 빛으로 가를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이라면 안 빛나고, 저 사랑이라면 빛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유안진 님은 유안진 님대로 웃고 노래하면서 살아온 나날을 시로 그렸으리라 느낍니다. 유안진 님이 바라보고 마주하며 부대낀 대로 찬찬히 노래하고 꿈을 꾸는 하루였으리라 느낍니다. 아무쪼록 마음 가득 평화와 나무 한 그루가 깃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5.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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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삶창시선 39
함순례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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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5



시와 눈물밥

― 혹시나

 함순례 글

 삶창 펴냄, 2013.12.6.



  오월이 무르익습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는 어느새 복숭아알을 몇 맺습니다. 아직 조그마한 알입니다. 지난해에 심은 자그마한 나무인데 올해에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습니다. 씩씩한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면서 대견하구나 싶고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아이들을 불러 복숭아나무한테 인사합니다. 복숭아알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라고 얘기합니다.


  뒤꼍에서 자라는 감나무와 탱자나무에 하늘타리 넝쿨이 꽤 올라옵니다. 어느새 또 올라왔느냐 싶어 가시에 찔리면서 두둑두둑 뜯습니다. 너희가 나무 말고 돌울타리를 타고 자라면 그대로 두는데, 왜 나무를 타고 자라니. 너희가 나무를 타고 자라니 나뭇가지가 아프고 힘들어 하는구나. 너희한테 안 된 일이지만, 다른 데에서 자라면 어떻겠니.


  하늘타리잎은 쌈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하늘타리 열매는 여러 곳에서 약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늘타리뿌리도 무엇엔가 쓰지 싶습니다. 해마다 하늘타리는 이 나무 저 나무를 감돌고 자랍니다. 이레쯤 눈여겨보지 않으면 어느새 나무마다 친친 감습니다. 등나무나 칡처럼 넝쿨이 빠르게 뻗습니다.



.. 나는 왜 누가 내놓은 길만 따라왔는지 / 이 겨울 산골에 들어온 건 / 사랑을 놓치고 사랑에 서러워서였네 ..  (담양)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되면, 하늘타리잎은 모두 마릅니다. 잎이 모두 떨어집니다. 이러면서 하늘타리 넝쿨줄기도 죽는가 하고 생각하는데, 이듬해 봄에 보면, 말랐다 싶은 넝쿨줄기에서 새롭게 잎이 돋습니다. 죽은 듯이 보이지만 죽은 넝쿨줄기가 아니에요. 말랐거니 하고 나무에 얽힌 넝쿨을 그대로 두면 더 굵고 단단하게 나무를 감싸고 오릅니다.


  넝쿨도 넝쿨대로 자랄 뜻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틀림없이 무엇인가 할 일이 있어 감나무도 감싸고 뽕나무도 모과나무도 매화나무도 감싸면서 오르리라 생각해요.


  무엇일까요. 넝쿨줄기는 왜 온갖 나무마다 감싸면서 오르려 할까요.


  숲에서도 넝쿨줄기가 이처럼 뻗을까요. 어떤 나무는 넝쿨줄기한테 몸을 모조리 빼앗깁니다. 어떤 나무는 넝쿨줄기가 깃들지 않습니다. 어떤 나무는 넝쿨줄기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저마다 어떤 삶이거나 숨결일까 궁금합니다.



.. 나무에 깃들어 붉은 열매 쪼아 먹고 / 이파리를 갉아 먹던 / 벌레들의 생애가 한순간에 지나간 것이다 / 누군가는 까치발 세워 그 자릴 건너가고 / 누군가는 아예 멀리 돌아가고 / 몇몇은 성큼성큼 밟고 간다 ..  (검은무당벌레)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있는 놀이터에 마실을 갑니다. 초등학교에 들어서서 자전거를 세우기 무섭게, 두 아이는 놀이터로 달려갑니다. 토요일 낮, 초등학교 운동장은 조용합니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가 백 남짓 되는데, 아무도 토요일 낮에 이곳에서 놀지 않습니다.


  면소재지 초등학교라 하더라도 꽤 먼 데서 노란버스를 타고 다니는 아이가 많습니다. 면소재지 어린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골 아이들은 집에서 인터넷게임을 할는지 모르고, 이냥저냥 마당에서 놀거나 텔레비전을 볼는지 모릅니다. 시골에 살면서 바다나 숲이나 들로 나들이를 가는 어린이는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어버이 일손을 거들면서 바닷일이나 들일을 하는 어린이 또한 거의 없습니다.



.. 하루쯤 학원 좀 쉬자 하더니 / 내가 잠시 조는 틈에 사라진 아들 녀석 / 얼굴 뿔그족족 술 냄새 확 풍기며 돌아왔다 ..  (술국)



  아이들은 배부르면 사이좋게 잘 놉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난 뒤 개운한 몸으로 상냥하게 잘 놉니다. 아이들은 배고플 적에 곧잘 툭탁거립니다. 아이들은 졸음이 몰려들면 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립니다.


  어른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어른은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다투고 마나요. 어른은 주머니가 후줄근하기에 웃음기 없이 차가운 낯빛으로 살아가나요. 어른은 언제나 고단하기에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서 손전화 기계나 텔레비전을 멍하니 들여다보면서 하루를 보내는가요.



.. 서울 모퉁이에 / 집 한 채 들였습니다 / 웃풍 심한 살림에도 찡그림 없던 / 시누이 / 저리 펄펄 납니다 ..  (첫눈)



  함순례 님 시집 《혹시나》(삶창,2013)를 읽습니다. 눈물밥을 먹으면서 지낸 이야기를 싯말로 읽습니다. 눈물밥과 함께 곧잘 누리던 웃음밥 이야기를 싯말로 읽습니다. 삶에는 눈물밥도 있고 웃음밥도 있구나 싶습니다. 눈물밥만 있는 삶은 없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웃음밥만 있는 삶도 없을까요. 웃음밥만 짓는 삶은 참말 없을까요. 노래밥을 짓고, 춤밥을 지으며, 이야기밥을 짓는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꿈밥과 사랑밥을 짓는 삶은 누가 어디에서 지을 수 있는가요.



.. 사대강 사업으로 뒤틀린 금강 자락 / 차고 높은 나포길에서 / 우린 사이좋게 / 장딴지에 힘주고 칼바람을 밀고 나갔다 ..  (금강하구언, 차고 높은)



  햇볕이 누그러지는 때부터 개구리가 논마다 울어댑니다. 햇볕이 기울 즈음 개구리 노래는 한껏 솟습니다. 달이 뜨고 별이 돋을 무렵 개구리는 그예 노래잔치입니다. 시골마을에 마지막 군내버스가 끊기는 여덟 시 반 언저리에는 온통 왁왁 소리로 가득합니다. 멧골에서 노래하는 멧새 노래는 개구리 노래에 잠깁니다.


  아이들을 재웁니다. 모기 한 마리가 내 뒷통수로 윙 나는 소리가 들려 잽싸게 손바닥을 찰싹 맞부딪습니다. 모기가 살짝 걸렸으나 잡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는 방은 문을 가만히 닫고 불을 켭니다. 내 손바닥에 살짝 스친 모기가 방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재빨리 왼손바닥으로 모기를 철썩 내리칩니다. 모기 주검은 내 손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습니다. 부엌으로 가서 손바닥을 씻습니다. 작은아이가 낮에 먹다가 남긴 밥그릇을 봅니다. 아이들이 저녁에 남긴 밥은 내가 치워야지요.


  깔깔대고 놀다가 서로 툭탁거리기도 하던 아이들은 새근새근 가늘게 숨소리를 내며 잡니다.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두 아이 사이에 가만히 누워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작은아이가 노랫소리를 듣고 살짝 깹니다. 그대로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코코 자고 아침에 다시 즐겁게 일어나서 웃음꽃을 피우렴. 새 하루에 새로운 웃음으로 이야기보따리를 꾸리렴. 4347.5.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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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 정호승 동시집 행복한 동시 1
정호승 지음, 정지예 그림 / 처음주니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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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9



서로서로 별이 되어

― 참새

 정호승 글

 정지예 그림

 처음주니어 펴냄, 2010.7.27.



  참새는 노래합니다. 참새는 날마다 노래를 들려줍니다. 참새는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며 노래를 베풉니다. 참새는 도시에서조차 사람들 곁에서 살그마니 깃을 부비면서 아침저녁으로 노래합니다.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쐬면 참새가 어떤 노래를 하는지 들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멈추고 두 다리로 동네를 거닐면 참새가 나누려 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전화기를 끄고 고개를 들어 둘레를 살피면 참새가 이 나라 곳곳에서 아름다이 부르는 로래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들깻잎에 초승달을 따서 / 어머님께 드린다 ..  (여름밤)



  참새가 먹는 곡식은 아주 적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먹는 밥은 아주 적습니다. 참새를 손에 쥘 수 있다면, 손바닥으로 살그마니 감싸 보셔요. 부풀린 깃털 안쪽으로 몸뚱이가 얼마나 작고 가녀린지 헤아려 보셔요. 이 조그마한 몸으로 하늘을 날고, 이 조그마한 몸에 조금씩 밥을 넣습니다.


  아이를 번쩍 안아 하늘바람을 마시도록 해 보셔요. 내 아이이든 이웃 아이이든 따사로운 손길로 아이를 안아 보셔요. 맑게 웃고 노래하다가 아이를 안아 보셔요. 아이 몸이 얼마나 작고 가벼우며 싱그러운가를 온몸으로 느껴 보셔요.


  아이는 넋으로도 하늘과 맞닿습니다. 아이는 몸으로도 하늘과 잇닿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하늘숨을 마십니다.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하늘빛을 마음에 담습니다.



.. 엄마가 날 낳기 전 / 나는 무엇이었을까 / 오월의 나뭇잎에 어리는 햇살이었을까 / 길가에 핀 한 송이 작은 풀꽃이었을까 ..  (씨앗)



  아이를 아끼지 않는 삶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삶은 즐겁지 않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다녀야 할 학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오롯이 아이입니다. 아이는 삶을 배우고 사랑을 익히며 꿈을 키울 숨결입니다. 아이는 예비대학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예비취업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예비 어른’이 아니에요.


  참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수호지》에 나오는 원숭이는 사람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옛조선 이야기에 나오는 곰과 범은 애써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잠자리는 잠자리대로 아름답습니다. 거미는 거미대로 예쁩니다. 제비는 제비대로 빛납니다. 달팽이는 달팽이대로 눈부십니다.


  사람은 그예 사람입니다. 지구별을 이루는 수많은 숨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하는 숨결 가운데 하나인 사람입니다.



.. 내 가장 친한 친구 / 노근이 엄마가 /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 / 청소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부터 /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 오줌을 깨끗하게 눈다 ..  (노근이 엄마)



  정호승 님이 쓴 글에 정지예 님이 그림을 붙인 동시집 《참새》(처음주니어,2010)를 읽습니다. 보드랍게 밝은 글에 보드랍게 밝은 그림이 붙습니다. 정지예 님은 정호승 님이 쓴 글에 걸맞게 밝은 빛이 춤추는 그림과 바늘땀을 한껏 선보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글을 배우는데, 아이가 연필 아닌 실바늘을 손에 쥐고 천에 한 땀 두 땀 무늬를 놓듯이 글을 놓아도 참 곱겠네 싶습니다. 이 땅 아이들 누구나 바느질을 배우고 붓질을 배우며 빨래질과 걸레질과 비질을 배우면 아주 곱겠구나 싶습니다.



.. 겨울이면 / 하늘에 찍힌 / 새 발자국들이 / 함박눈으로 내린다 ..  (눈길)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손맛’을 말하는데, ‘어머니 손맛’은 따로 없습니다. 내 어머니는 내 할머니한테 딸입니다. 내 할머니는 할머니를 낳은 분한테 딸입니다. 나는 내 아이한테 어머니나 아버지입니다. 내 아이는 앞으로 커서 새롭게 어머니나 아버지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머니 손맛’은 없습니다. 오직 ‘내 손맛’입니다. 어머니가 차려서 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면, 우리 아이들한테는 어른인 우리가 손수 차려서 내주는 밥이 가장 맛있기 마련이에요.


  차근차근 흐르는 손빛이요, 곱게 잇는 손넋입니다.



..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 별들이 하나씩 있다 /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 내 마음속에 있는 그 별을 / 빛나게 해 주는 일이야 ..  (밤하늘)



  오늘 아이로 살아가는 숨결만 하늘숨을 마시지 않습니다. 어느새 어른으로 자란 사람도 하늘숨을 마십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하늘숨을 마십니다. 모든 사람이 하늘숨을 마십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우리들이니, 하늘숨이 깨끗할 때에 깨끗한 빛을 가슴에 담아 깨끗한 말을 꽃피웁니다. 하늘숨이 깨끗하지 않도록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과 관광단지와 고속도로 따위만 자꾸 만들어서 세우면 어떻게 될까요. 하늘숨이 깨끗하지 못하도록 숲과 들을 밀어서 없애며 아파트와 시멘트 건물만 자꾸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 빗방울 하나가 / 바다로 가서 / 그대로 바다가 되어 버린다 // 바람 한 줄기가 / 매화밭으로 가서 / 그대로 매화 향기가 되어 버린다 // 나는 마을버스를 타고 / 집으로 가서 / 그대로 엄마의 가슴이 되어 버린다 ..  (엄마)



  서로서로 별이 되어 사랑합니다. 서로서로 별이 될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서로서로 별빛을 가슴에 품습니다. 서로서로 별빛으로 웃음을 주고받습니다. 서로서로 별내음을 맡고, 서로서로 별노래를 불러요.


  가슴에 깃든 별이 샘솟습니다. 가슴에서 자라는 별이 이웃을 밝힙니다. 가슴에서 돋는 별이 내 삶을 가꾸는 씨앗이 됩니다. 별을 품고 별을 느끼며 별을 사랑하는 사람이 시를 쓰고 읽습니다.



..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  (꽃과 나)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가 나를 바라봅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나를 바라봅니다. 숲을 바라보면 숲이 나를 바라봅니다. 사랑을 담아 씨앗을 심으면 씨앗은 사랑을 받아 자랍니다. 따스한 마음을 담아 한 마디를 건네면, 따스한 말 한 마디는 지구별을 돌고 돌아서 나한테 찾아듭니다. 4347.5.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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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98
이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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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70



내 속에 숨은 노래

―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이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2.2.6.



  봄이 되어 시골은 부산합니다. 집집마다 경운기를 몰고 논과 밭으로 갑니다. 기계를 써서 땅을 갑니다. 논둑과 밭둑을 태우고 트랙터가 움직입니다. 풀을 베는 칼날이 윙윙거리고, 풀을 잡는 농약을 쏴아 뿌립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으면 제비가 깨어납니다. 처마 밑은 새벽부터 복닥복닥 시끌시끌합니다. 제비는 알을 낳기 앞서 보금자리를 손질합니다. 진흙을 물어 날라서 붙이고 지푸라기를 바닥에 깝니다. 제비가 새로 집을 짓거나 옛 집을 고치는 모습을 볼라치면, 예부터 우리들도 이렇게 흙과 짚으로 집을 지었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입니다.



.. 두 남자는 위장 크림 민얼굴에 덧칠한다 / 폐도 위로 카메라 레일이 깔리고 / 석탄 운반차 대신 이동차가 지난다 / 왜 따라오셨어요, 환갑 앞둔 아버지는 / 묵묵부답 허리 굽혀 짚신을 묶는다 ..  (화장하는 父子, 엑스트라 4)



  흙으로 지은 집에서 사람이 살았고, 새 또한 흙을 물어다가 처마 밑에 집을 지어 살았습니다. 흙에서 돋은 풀에는 풀벌레가 대롱대롱 매달리며 풀노래를 부릅니다. 흙에 뿌리를 내린 나무에서 돋은 새 잎사귀는 나비 애벌레가 갉아먹으면서 자랍니다. 개구리는 풀밭에서 노래하다가 봄비가 내리고 난 뒤에는 둠벙과 논을 찾아갑니다. 시원한 물에 몸을 적십니다. 저마다 왁왁거리며 봄을 기뻐합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흙에서 비롯합니다. 쌀도 보리도 밀도 수수도 흙에서 태어납니다. 흙으로 이룬 논과 밭에 심거나 뿌린 씨앗이 자랄 때에 곡식이 됩니다. 사람이 먹는 열매도 흙에서 비롯합니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는 뿌리가 흙에서 받아들인 기운으로 익어요.


  시골에서 짓는 농사란 흙을 가꾸는 일입니다. 흙을 가꿀 때에 밥을 얻습니다. 흙을 살찌우고 살릴 때에 밥이 싱그럽습니다. 흙을 아끼고 사랑할 적에 맛나며 좋은 밥을 누립니다.



.. 전기가 나가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  (정전)



  매화나무에 꽃이 떨어진 뒤 열매가 익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구슬 같던 푸른 알이 날마다 굵어집니다. 매화일이 됩니다. 탱자나무에 꽃이 떨어진 뒤 열매가 익습니다. 탱자꽃이 지고 나서 맺는 탱자알도 구슬 같습니다. 푸른 빛깔이 싱그러운 구슬입니다. 감알도 발갛게 익기 앞서는 푸른 빛깔입니다. 풋감도 동글동글 예쁘장합니다. 고추도 빨갛게 익기 앞서 푸른 고추입니다. 까마중도 까맣게 익기 앞서 푸른 열매예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데, 생각해 보면, 어린이와 어른 사이를 푸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푸르고 몸이 푸르기에 푸름이일 테고, 마음과 몸이 한껏 무르익기 앞서 싱그럽게 빛나기에 푸름이로구나 싶습니다.



.. 주식으로 퇴직금까지 날린 큰아버지가 / 수년 만에 / 고조할아버지 제사에 돌아온 설에 / 아버지들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묏자리 얘기를 꺼낸다 ..  (묏자리)



  이하 님이 일군 시집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실천문학사,2012)을 읽습니다. 이하 님은 이녁 마음속에 숨어 사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꿈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노래를 이야기하고 춤을 이야기합니다.


  홀로 떠돌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버지와 이녁 사이에 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용히 생각에 잠기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맞닥뜨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시에 담는 넋은 무엇일까요. 시로 나누는 삶은 어떤 무늬가 될까요.



.. 이 도시엔 언제부턴가 커다란 공동묘지가 들어섰다 // 사람들은 아침마다 정장을 차려입은 채 그 회벽으로 걸어 들어갔고 / 저녁이면 죽음의 그림자를 하나씩 메고 나왔다 ..  (0호선)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머리카락을 날립니다. 햇볕이 내리쬡니다. 햇볕은 내 얼굴과 살갗을 태웁니다. 바람은 햇볕에 그을리는 내 얼굴과 살갗을 시원하게 어루만집니다. 햇볕은 이불을 보송보송 말리고, 씨앗과 새눈을 틔웁니다.


  아침부터 신나게 뛰놀던 작은아이가 꾸벅꾸벅 좁니다. 작은아이를 무릎에 앉힙니다. 어느새 눈을 지긋이 감고는 까무룩 잠듭니다. 아이를 살며시 눕힙니다. 오월바람은 작은아이 얼굴을 가볍게 스치면서 마당을 감돕니다.


  큰아이도 졸린 얼굴입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좀처럼 자리에 누우려 하지 않습니다. 더 버티고 싶을까요. 더 놀고 싶을까요. 큰아이는 졸린데 더 버티면서 놀려 하다가 으레 코피를 쏟습니다. 코피를 쏟으면서도 더 개구지게 뛰놀려 합니다.



.. 회화나무展은 건물 안이 아닌, 바깥도 아닌 / 길의 복판에서 한겨울에만 열린다 / 겨울은 계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니 / 대부분의 생을 길에서 보낸 사람은 / 티켓 없이도 볼 수 있으리라 ..  (회화나무展, 정동 일기 3)



  시집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은 이하 님이 이제껏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즐겁게 살던 웃음과 고단히 살던 눈물을 보여줍니다. 애틋하게 누리던 사랑과 안타까이 보낸 하루를 보여줍니다.


  시 한 줄로 말문을 엽니다. 시 한 줄로 어버이 넋을 헤아립니다. 시 한 줄로 가만히 눈을 감으며 생각에 젖습니다. 시 한 줄로 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시가 있어 새롭게 기운을 내는 삶인지 모릅니다. 시가 있어 다시금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는 삶일 수 있습니다. 시가 있어 오늘도 어제와 같이 활짝 웃으면서 어깨동무하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 거즈에 물 묻혀 깨어난 아버지에게 건넨다 / 패혈증 올 때까지 어떻게 참으셨어요 / 17년 전 넌 어떻게 참았니 / 가족들 걱정할까 맹장 터져 복막 찢겼던 아들과 / 자식들 애먹을까 복막염도 참다 피가 거꾸로 흐른 아비가 국립의료원 병실에 앉아 할 말을 고른다 ..  (유전)



  해가 질 무렵 제비들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암수 제비 두 마리는 서로 엉키듯이 날갯짓을 하고는 처마 밑으로 깃듭니다. 아직 손질을 마치지 않은 조그마한 둥지이지만, 암수 제비 두 마리한테는 더없이 포근한 쉼터이자 삶터입니다. 작은 둥지에서 제비 두 마리가 노래하고, 작은 둥지에서 어린 제비 여러 마리가 태어납니다. 작은 둥지에서 새로운 사랑이 퍼지고, 작은 둥지에서 날마다 웃음이 흐릅니다. 살아가는 기쁨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를 쓰는 즐거움은 늘 우리 둘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347.5.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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