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왜 오지않는가
이기형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58



시와 봄

― 봄은 왜 오지 않는가

 이기형 글

 삶이 보이는 창 펴냄, 2003.10.24.



  저녁에 빨래를 걷는데, 우리 집 마당으로 갑자기 참새떼가 파라락 들어옵니다. 쉰 마리쯤 될 듯한 참새떼는 후박나무에 내려앉다가 헛간 지붕에 앉다가 전깃줄에 앉다가 하면서 놉니다. 너희들,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괜찮구나. 게다가 우리 집은 우리 마을에서 농약 한 방울 안 치는 곳이야. 너희들이 숨을 돌릴 만한 곳이고, 후박알을 따먹든 애벌레를 잡아먹든 재미난 곳이기도 하지.


  깊은 밤에 소쩍새와 휘파람새를 비롯해 온갖 새들이 노래합니다. 새벽이 되니 부지런한 멧새가 깨어나 우리 마을과 집 둘레에서 맑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곧 처마 밑 제비집에서도 제비들이 깨어나서 돌아다닐 테지요.



.. 80년 전 내 어린 날을 회상한다 / 오늘은 옛날의 시냇가 돌 도마 대신 / 세탁기 버튼만 누르면 / 십여 벌 옷가지도 후딱 빨아버린다 / 트랙터로 수천 평의 땅도 단숨에 갈아 제낀다 ..  (돈때 묻은 오늘을 침 뱉는다)



  새끼 제비는 처마 밑 둥지에서 한참 기다립니다. 몸뚱이가 어른 제비만큼 자랐어도 새끼 재비는 좀처럼 날아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새도 이와 같을까요? 아마, 어느 새이든 비슷하리라 느낍니다. 아무래도 둥지는 처마 밑이든 우듬지이든 나뭇가지이든 높은 곳에 있어요. 뜸부기처럼 논에 둥지를 짓는 새가 있고, 꿩처럼 수풀에 둥지를 마련하는 새가 있지만, 웬만한 새는 높다란 곳에 둥지를 마련해요. 높다란 곳에 둥지가 있으니 아직 날개에 힘이 제대로 붙지 않았을 때에 섣불리 날갯짓을 하다가는 둥지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제대로 날개를 펼쳐 훨훨 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싶어요.


  처마 밑 제비집을 날마다 바라보고 새끼 제비 움직임을 살핍니다. 새끼 제비는 처음 날갯짓을 익혀 둥지를 떠나 빨랫줄이나 전깃줄이나 이곳저곳에 내려앉습니다. 이렇게 한 번 내려앉고서 다시 날갯짓을 해 본 뒤, 십 분쯤 지나면, 집을 떠나요.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르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누리는 제비는 새벽같이 둥지를 떠나서 해가 기울 무렵에 돌아옵니다. 여름이 저물어 찬바람이 불 무렵까지 이렇게 날아다니면서 힘을 기르고 몸을 더 키웁니다. 제비와 함께 찾아오는 봄이 지나고, 새끼 제비가 깨어난 여름이 흘러서, 가을이 코앞에 이르면, 제비는 무리를 지어 태평양을 건넙니다. 머나먼 바닷물을 쉬잖고 날아갑니다.



.. 동강 어라연엘 가 봐도 분통은 풀리질 않아 / 돌아온 들에 봄은 왜 오지 않는가 / 꿈별을 바라 밤마다 통곡한다 ..  (봄은 왜 오지 않는가)



  예부터 봄은 제비와 함께 느낍니다. 옛날부터 봄은 개구리 노래잔치와 함께 느낍니다. 예전부터 봄은 들꽃과 함께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들은 스스로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을 잊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들은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이 깃들 터를 모조리 없애거나 뒤집어엎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도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을 누리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을 누리기 어렵지만, 시골에서도 시멘트와 농약이 물결치니, 이들 봄동무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달력에 적힌 숫자로는 틀림없이 봄이라지만, 사회는 봄이 아닙니다. 방송 광고에서는 봄을 외치고, 가게마다 봄 물건을 사고팔지만, 나라는 봄이 아닙니다.


  국가보안법이나 4대강사업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주한미군이나 밀양송전탑이나 세월호사고 때문에 봄이 봄이 아니지는 않습니다. 이런 짓 때문에도 봄을 봄답게 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봄에 봄바람을 누리지 못해요. 봄에 봄비를 누리지 못합니다. 봄에 봄볕을 쬐지 못하고, 봄에 봄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여름에는 어떤가요. 여름에 여름바람을 누리는가요,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누리는가요. 여름에 여름비를 누리는가요, 수돗물이나 정수기나 페트병을 누리는가요. 여름에 몇 사람이나 여름볕을 쬐는가요. 여름에 몇 사람이나 여름노래를 부르는가요.



.. 신새벽 시를 쓰는데 /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 검은 제복 셋이 신분증을 내민다 / “경찰입니다.” / 가잔다 / “전화면 되지, 이런 식으루…….” / 나는 나무랐다 / 다리 아픈 아내는 같이 간다고 우긴다 / 옥인동 서울경찰청 보안과로 끌려가니 / 여든 셋의 나를 문초한다 / 도대체 통일하자는 게 뭔 죈가 / 국가보안법이 망가뜨려놓은 막된 세상 ..  (신은 죽었는가)



  1917년에 태어나 2013년에 숨을 거둔 이기형 님은 지난 2003년에 《봄은 왜 오지 않는가》(삶이 보이는 창)라는 이름을 붙여 시집을 선보였습니다. 참말 봄은 왜 오지 않을까요. 참말 우리들은 왜 봄을 헤아리지 않을까요. 참말 사람들은 왜 ‘철’을 잊은 채 철부지로 살아가는가요.



.. 철창 속 0.75평 암흑방 가시방석 32년에도 어쩌면 저리 고운 홍안에 빛나는 눈을 지녔을까 일흔 다섯 나이를 뺨치는 단단한 구슬 몸매 해방 전 일본 동경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사회주의에 경도 독립과 통일의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  (통찰의 더듬이)



  봄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봄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봄제비를 맞이하지 않습니다. 봄제비를 맞이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봄꽃과 봄풀을 어깨동무하지 않으니 봄글을 쓰거나 읽지 않습니다.


  봄이 한껏 꽃피우다가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여름입니다. 여름은 한껏 무르익을 테며, 소나기와 뭉게구름과 무지개와 잠자리와 나비와 풀벌레를 잔뜩 이끌면서 찾아오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여름이 머물 자리는 어디인가요. 이 나라에 여름이 깃들어 춤출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요.


  봄에 봄을 부르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여름에 여름을 꿈꾸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가을에 가을을 사랑하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겨울에 겨울을 그리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58



시와 우산

― 오늘 아침 단어

 유희경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1.6.6.



  일산마실을 하면서 송전탑을 봅니다. 곁님 어버이가 지내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조그마한 집 코앞에는 아주 커다란 송전탑이 있습니다. 이 송전탑은 일산 바깥쪽에 있는 논 한복판에 버티고 섭니다. 얼마나 높고 큰지 고개를 위로 한참 쳐들어야 꼭대기를 볼 만합니다. 요즈막에 한전에서 경남 밀양에 박으려 하는 송전탑도 이만큼 클까 하고 헤아려 보곤 합니다.


  전기를 쓸 사람이 많으니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박습니다. 큰도시에 커다란 아파트를 잔뜩 지을 뿐 아니라 온갖 건물이 많으니 발전소도 송전탑도 많아야 합니다. 게다가, 큰도시는 땅값이 비쌀 뿐 아니라 사람들한테 안 좋다고 하니까 시골이나 숲에 발전소를 지으려 하겠지요.


  우리 사회에서 전기를 안 쓴다면 모르되, 전기를 꼭 써야 한다면,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쓸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밥을 안 먹는다면 모르되, 누구나 밥을 꼭 먹어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손수 밥을 지어서(그러니까 씨앗을 뿌리고 보살피며 거두어서) 먹는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 비밀은 비밀이어야 한다고 / 나는 돌멩이처럼 말했다 / 내 말이 굴러가는 소리, / 물이 흔들리는 소리 ..  (深情)



  평화를 바라지 않으니 전쟁을 일으킵니다. 어깨동무를 바라지 않으니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사랑을 키우거나 꿈을 보듬고 싶지 않으니 싸웁니다.


  전쟁으로 이루는 평화는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내세우는 어깨동무는 없습니다. 싸우면서 자라는 사랑이나 꿈은 없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이루려면 삶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우리가 전쟁무기를 없애면서 서로 돕고 아끼는 어깨동무를 이루자면 삶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우리가 날마다 즐겁게 사랑하거나 꿈꾸자면 삶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 노래는 끝나고 그들이 떠난 뒤 / 술집은 단단히 문을 잠글 테지만 / 끝은 끝내 알 수 없는 것 ..  (어쩔 수 없는 일)



  아침 낮 저녁으로 늘 생각합니다. 내 마음을 살찌울 이야기를 언제나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심고 내 몸에 담을 낱말을 늘 되새깁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돌아봅니다.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이라는 낱말을 마음에 심습니다. 글 한 줄을 쓰건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건, 언제나 사랑이 되도록 하자고 여깁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다닐 적에도 사랑을 떠올립니다. 아이들과 하얀 종이를 펼쳐 그림을 그릴 때에도 사랑을 슥슥 그립니다.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 적에도 사랑을 헤아립니다. 옷가지를 개고,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길 적에도 사랑을 품습니다.


  읽을 책을 책방에서 고르면서 사랑을 생각하고, 기쁘게 장만한 책을 손에 쥐어 펼칠 적에도 사랑을 생각합니다.



.. 우산에 대해서라면 오래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검은빛이고 나는 펼쳐진 시간을 사랑한다 ..  (우산의 과정)



  유희경 님이 내놓은 시집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2011)를 전철에서 읽습니다. 고흥을 떠난 시외버스가 서울에 닿고, 서울에서 내린 뒤 아이들과 함께 해바라기를 하며 숨을 고르고 나서 전철로 갈아타서 일산으로 가는 길에 시집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해바라기를 하는 동안 신나게 뛰놉니다. 전철을 탄 뒤에도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싶습니다. 아마 아이들 눈높이로 보자면, 전철에서 멀뚱멀뚱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는 어른이 재미없지 싶습니다. 전철에서든 버스에서든 사람들이 가만히 앉거나 서면 따분하지 싶습니다. 노래해야지요. 뛰놀아야지요. 춤을 춰야지요.


  개구진 아이들을 타이르다가 문득문득 생각이 스칩니다. 그래, 전철에서 다 같이 뛰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시외버스이든 시내버스이든, 버스 일꾼과 손님이 저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춤을 출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빛나면서 놀라울까요.


  어른이라는 이들은 왜 양복을 빼입고 회사에 가서 돈을 버는 ‘일’만 할까요.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요. 신분과 계급과 재산을 가르지 말고 서로 즐겁게 얼크러지면서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를 누리면 그야말로 기쁠 텐데요.



.. 이곳은 쓸쓸합니다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기 때문이죠 사실 혼자 있고 싶었어요 발바닥을 밟고 걸어가는 것처럼 문득 돌아보아도 여전히 나는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들판은 없어요 ..  (보내지 못한 개봉 엽서)



  유희경 님은 ‘우산 이야기라면 오래오래 할’ 수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산의 과정〉이라는 시를 씁니다. 유희경 님은 유희경 님 나름대로 이녁 삶을 빛낼 만한 낱말을 골라서 시집 《오늘 아침 단어》를 선보입니다.


  스스로 빛나기에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노래하기에 삶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하기에 삶이 사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거꾸로, 스스로 골을 내기에 언제나 골부림입니다. 스스로 주먹다짐이기에 이곳저곳에서 싸움과 다툼이 판칩니다. 스스로 쇠밥그릇을 붙잡는다면 이 사회에는 전쟁이 자꾸 불거질 테지요.


  아침에 품은 낱말을 저녁에 거둡니다. 아침에 뿌린 ‘말 씨앗’을 저녁에 갈무리합니다. 아침에 건넨 사랑을 저녁에 받습니다. 아침에 노래한 빛이 저녁에 곱게 퍼집니다. 4347.6.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님이 누고 간 똥
정세기 지음, 고성원 그림 / 창비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32



어린이와 부르는 바람노래

― 해님이 누고 간 똥

 정세기 글

 고성원 그림

 창비 펴냄, 2006.1.20.



  나무그늘에서 놀면 시원합니다. 나무그늘에서 자면 시원합니다. 나무그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시원합니다. 건물이 드리우는 그늘에서는 시원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서는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큰 자동차가 만드는 그늘에서도 시원하다고 느끼지 않지만, 나무가 그늘을 만들면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나무 곁에 서서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소리가 납니다. 바람이 옅게 부는 날에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살랑살랑 속삭이는 소리가 납니다. 바람이 새근새근 자는 날에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가만히 서서 해바라기를 하는 웃음소리가 조용히 흐릅니다.



.. 단독주택에 살 때는 / 우리 집을 / 한결이네 집이라 했는데, / 아파트로 이사 오니 / 모두들 503호라고 해요 ..  (아파트 1)



  나무가 있는 곳에서 놀 때에는 한참 놀다가 나무 밑에 모입니다. 저마다 줄줄 흘리는 땀을 식히고 다리를 쉽니다. 살짝 쉬다가 나무 밑에서 새로운 놀이를 떠올립니다. 나무 밑에서 흙을 밟으면서 놀고, 그저 맨손이라 하더라도 온갖 손놀이를 만들어 내요. 이러다가 땀이 식을 즈음 나무를 타지요. 높이 올라가든 몇 발 못 올라가든 나무를 탑니다. 나무를 만지고, 온몸을 나무에 기대며, 낭창거리거나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를 느낍니다.


  이때 나무는 무엇을 느낄까요. 저를 타고 오르겠다는 조그마한 아이들을 만날 적에 나무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꼬맹이를 귀엽다고 여길까요. 꼬맹이가 디디는 발도 아프다고 여길까요.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나뭇잎이 떨어지면 서운하다고 여기려나요.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찾아와서 놀아 줄까 하고 먼먼 나날을 그릴까요.



.. 할 수 없이 강아지를 / 외갓집에 다시 데려다 주었습니다. // 엄마, 우리도 /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요. // 내 말에 엄마는 /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  (아파트 2)



  나무가 서면 새가 모입니다. 새는 나무가 있는 곳에 내려앉습니다. 새는 섣불리 맨땅에 내려앉지 않습니다. 새는 맨땅에 내려앉더라도 가까이에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살핍니다. 새로서는 제 몸을 숨길 만한 나무가 있어야 느긋합니다.


  나무가 서고 새가 모이면, 나무에 깃들던 애벌레는 숨을 죽입니다. 그렇지만 새는 곧바로 알아채요. 웬만큼 자란 애벌레는 머잖아 고치를 틀어 나비로 깨어날 텐데, 마지막 한때를 버티지 못하고 새한테 먹이가 됩니다.


  나무는 모두 지켜봅니다. 나비가 낳은 알이 애벌레로 깨어나서 제 잎사귀를 갉아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비가 되기 앞서 새한테 잡아먹히는 애벌레를 지켜봅니다. 그리고, 새한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아서 나비로 깨어난 뒤, 나무 둘레를 팔랑팔랑 날아다니면서 나무가 피운 꽃에 가만히 앉아서 꿀이나 꽃가루를 빨아먹으면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모습까지 낱낱이 지켜봅니다.



.. 애국 조회 시간에 /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 줄을 똑바로 섭시다 / 깟 / 청소를 잘합시다 / 깟깟 / 조용히 합시다 / 깟깟깟 ..  (까치 소리)



  그런데, 사람들이 나무를 벱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벤 자리를 깊이 팝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벤 자리를 깊이 파더니 돌을 쏟아붓고 시멘트를 붓거나 아스팔트를 깝니다. 때로는 우람한 쇠붙이를 파묻습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된 사람들은 나무가 아파 하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아이를 지나 어른이 된 사람들은 나무가 얼마나 눈물을 흘리는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납니다. 새로운 송전탑이 섭니다. 새로운 발전소가 들어서고, 새로운 공장과 골프장이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종이를 많이 써야 하기에 나무를 베고 또 베며 자꾸 벱니다. 새로운 나무가 자라기 앞서 자꾸자꾸 나무를 벱니다.


  옛날에는 배도 나무로 뭇고, 집도 나무로 지으며, 땔감도 나무로 썼어요. 그러나 옛날에는 나무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무를 끔찍하게 베어 없앤 몇몇 유럽 문명은 이슬처럼 사라졌어요. 나무가 사라지면서 숲이 사라지면 냇물이 마르고 가뭄이 들면서 논이고 밭이고 말라비틀어질밖에 없습니다. 나무를 아끼지 않는 문명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나무가 우거지는 숲을 지키지 않는 문화는 모조리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 와글와글 개구리 떼 / 그 소리만큼이나 수많은 / 밤하늘에 / 총총한 별들 / 들꽃 향기로 밀려온다 ..  (여름밤)



  정세기 님 동시집 《해님이 누고 간 똥》(창비,2006)을 읽습니다. 정세기 님은 동시가 아닌 어른시를 쓰던 분인데, 이녁 몸이 몹시 아파서 끙끙거릴 적에 손으로도 못 쓰는 글을 입으로 읊으면서 옮겨적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세기 님은 왜 이녁 마지막 삶자락을 어른시 아닌 동시로 마무리지었을까요. 정세기 님은 어떤 넋을 동시 한 줄에 담고 동시 두 줄에 실으며 동시 석 줄로 들려주려고 했을까요.



.. 민속촌에 가서 / 호미를 보았어요. // 민속촌에 가서 / 쟁기를 보았어요. // 민속촌에 가서 / 따비도 보았어요 ..  (민속촌에서)



  요즘 도시 아이들은 호미도 쟁기도 모릅니다. 요즘 도시 어른들도 호미나 쟁기를 모릅니다. ㅅㄱㅇ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다니는 젊은이는 호미나 쟁기를 알까요. 요즘 시골 아이들도 호미나 쟁기를 잘 모르는데, 신문기자나 방송피디는 호미질이나 쟁기질을 할 줄 알까요. 먹는 풀과 실을 얻는 풀과 바구니를 엮는 풀을 가릴 줄 아는 아이나 어른은 요즘 몇이나 될까요.


  아이들과 부를 바람노래를 생각합니다. 나는 시골집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나 스스로 바람노래를 부르자고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물려주는 바람노래이면서, 어른인 내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바람노래를 부르자고 생각합니다.


  바닷가에 서면 바닷내음 물씬 흐르는 바람노래를 부릅니다. 들에 서면 들빛 곱게 번지는 바람노래를 부릅니다.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 솔솔 밥 익는 냄새 고이 감도는 바람노래를 부릅니다. 척척 빨래를 하면서 싱그러운 새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바람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이 불어 지구별이 푸르고, 바람이 불어 여름이 시원하며, 바람이 불어 온누리 풀과 나무가 기쁘게 웃습니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절한 문장 애지시선 29
서영식 지음 / 애지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57



시와 한 줄

― 간절한 문장

 서영식 글

 애지 펴냄, 2009.10.10.



  도시에서도 새벽 서너 시는 몹시 조용합니다. 이무렵이 되면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사람도 잦아들고, 자동차도 거의 다 잠듭니다. 버스도 전철도 다니지 않으니 훨씬 조용합니다. 때로는 고요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도시가 맞나 싶기도 합니다.


  시골에서도 새벽 서너 시는 아주 조용합니다. 이무렵이 되면 개구리 노래잔치까지 잦아들고, 밤에 노래하는 새도 쉬 찾아보지 못합니다. 멧새와 들새 모두 막 깨어나기 앞서이니 더더욱 조용합니다. 드문드문 개구리 한두 마리가 울고, 밤새 노래가 살며시 퍼지기도 하지만, 새벽 서너 시는 시골에서 아주 고요한 때입니다.



.. 문득 홍어에 탁주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 잘 삭힌 그런 안주들은 잘 삭은 술집에서 / 제법 삭은 내를 풍기는 사람들만 먹는 것 같아서 ..  (홍탁)



  아이들 사이에서 자다가 살며시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차지 않았나 살핍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자는 동안 틈틈이 이불을 살핍니다. 눈을 감고 자면서도 손을 뻗어 이불을 헤아리고, 문득 눈을 떴으면 깜깜한 방에서 밤눈으로 돌아보면서 이불을 추스릅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앞서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자다가도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적에, 자다가, 또 아이들을 재우면서, 아이들한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너희들은 어여쁜 아이들이요 너희들은 튼튼한 아이들이요 너희들은 눈부신 아이들이라고 말을 건넵니다.


  아이들은 이 소리를 들을까요. 아이들은 이 말을 알아차릴까요. 아마 아이들 마음속에서 소리를 들을 테고, 아이들 가슴속에서 말을 듣겠지요.



.. 내 어머니가 준 유산은 / 머리카락이다 곱슬곱슬한 / 쉰 머리 두 개가 전부다 ..  (유산)



  풀을 뜯습니다. 네 식구가 먹을 풀을 뜯습니다. 우리 집 뒤꼍에 온갖 풀이 수북하게 잘 자랐기에 풀을 뜯습니다. 풀은 뜯은 자리에서 입에 넣고 씹어도 맛나지만, 여러 풀을 골고루 뜯어서 잘게 갈면서 물을 내어 마셔도 맛납니다. 풀잎을 하나씩 뜯어서 맛보면 풀마다 다른 기운이 스며듭니다. 풀잎을 찬찬히 갈아서 마시면 여러 가지 풀이 골고루 섞이면서 새롭게 빛나는 냄새가 퍼집니다.


  이름을 아는 풀을 입에 넣고 씹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풀을 입에 넣고 씹습니다. 다 다르게 생긴 풀은 다 다르게 퍼지는 맛입니다. 다 다르게 돋는 풀은 다 다르게 스며드는 맛입니다. 풀은 언제부터 이처럼 다 다른 모습으로 자랐을까요. 풀은 어느 때부터 이렇게 골고루 돋고 자라면서 들과 숲에 푸른 물결을 베풀까요.


  풀밭을 천천히 거닐어 풀을 뜯으며 땅바닥을 살핍니다. 풀밭을 이루는 땅바닥은 까맣습니다. 까만 흙입니다. 풀밭을 이루는 땅바닥은 여러 풀이 뿌리를 내리면서 빗물에 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이만 한 흙이라면 나무가 자라기에도 좋고, 수많은 벌레가 살아가기에도 좋으리라 느낍니다. 참말 우리 집 풀밭에는 갖가지 딱정벌레가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농약 등쌀에 숨죽이던 갖가지 딱정벌레가 죄 우리 풀밭으로 찾아와서 지내는구나 싶습니다.



.. 저기요 / 너는 나를 이렇게 불렀다 ..  (호칭)



  서영식 님 시집 《간절한 문장》(애지,2009)을 읽습니다. 한자말 ‘간절(懇切)’은 무엇을 뜻하던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사전을 뒤지니, “(1) 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 (2)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정성(精誠)스러움’은 “보기에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 있다”를 뜻한다 하고, ‘지극(至極)’은 “더할 수 없이 극진하다”를 뜻한다 합니다. ‘절실(切實)’은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있다”를 뜻한다 하는군요.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한 마디요, 알뜰한 마음으로 적는 글 한 줄이며, 참된 빛을 담으려는 이야기 한 자락입니다. 애가 타는 마음이기도 하고, 애를 태우는 넋이기도 합니다.



.. 7번 국도 숲길을 달리다가 /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건너던 / 새를 치고 말았다 살아라 죽지 마라 / 뺑소니를 치면서 빌었다 / 차에 있던 사내들도 / 입을 굳게 다물어 주었으나 / 우리는 이미 참담했다 ..  (소나기)



  두 다리로 달리면서 새를 들이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다가 새를 들이받을 사람도 없습니다. 자동차를 달리니 새를 들이받습니다. 더욱이, 자동차가 달릴 만한 길을 닦느라 새가 지내던 보금자리를 죄 밀어냅니다. 자동차가 달릴 만한 길을 닦느라 새뿐 아니라 벌레와 숲짐승이 어우러지던 보금자리를 몽땅 망가뜨립니다.


  사람들은 고속도로나 국도에서만 짐승과 벌레를 치어 죽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짐승과 벌레를 밟아 죽입니다. 공장과 발전소에서 내보내는 쓰레기로도 짐승과 벌레가 죽습니다. 골프장과 논밭에서 뿌리는 농약으로도 짐승과 벌레가 죽습니다.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로도 짐승과 벌레가 죽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전쟁무기로 벌이는 끔찍한 싸움질로도 짐승과 벌레가 죽습니다.


  삶이 삶으로 되자면 삶을 생각하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삶을 삶으로 밝히자면 삶을 꿈꾸는 빛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나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는가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며 하루를 새로 맞이하나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기에 도시와 문명과 문화를 자꾸 만들려고 하나요.


  숲이 없어도 삶을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숲이 없어도 문학을 하거나 교육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숲이 없어도 밥을 먹거나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7.6.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그릇 경전 - 2010 제4회 시작문학상 수상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0
이덕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57



손바닥에 새기는 노래

― 밥그릇 경전

 이덕규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9.2.16.



  시 한 줄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해가 넘어갈 무렵 왁왁거리는 소리가 흘러넘치는 시골집에서 개구리를 떠올리면서 시 한 줄은 어떤 글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이 깊이 잠든 밤에 홀로 일어나, 어느덧 잦아든 개구리 노래잔치를 가만히 그리면서 시 한 줄은 어떤 글인가 하고 곱씹어 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갈까요. 시를 쓰는 사람은 날마다 어떤 빛을 볼까요. 시를 쓰는 사람은 마음속에 어떤 꿈을 품을까요. 시를 쓰는 사람은 이웃과 어떤 사랑을 속삭일까요.



.. 거센 물살에 떠밀려 치고받히며 만신창이로 구르고 구르다가 / 읍내 개울 옆 순댓국밥집 마당에서 / 다리 부러진 평상 한 귀퉁이를 다소곳이 떠받들고 앉아 있는 닳고 닳은 몽돌까지 ..  (머나먼 돌멩이)



  시 한 줄은 손바닥에 새기는 노래이리라 생각합니다. 손바닥에 따사롭게 그리는 노래일 때에 시가 되리라 느낍니다. 손바닥에 고즈넉하게 스며드는 노래인 싯말이리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굳은살로 박히고 때로는 아련한 빛으로 젖어드는 노래가 될 시가 되리라 느낍니다.


  맑게 웃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볼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아이 볼을 어루만진 기운은 오래오래 손바닥에 남습니다. 아이 볼에는 내 손바닥 기운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나는 아이한테서 새로운 숨결을 얻습니다. 아이는 나한테서 새로운 숨결을 받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둘레에서 온갖 숨결을 얻습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시인한테서 갖은 숨결을 받습니다.



.. 볕 좋은 절집 뜨락에 /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 고요히 반짝입니다 ..  (밥그릇 경전)



  이덕규 님은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2005)이라는 시집을 내놓습니다. 밥그릇을 경전으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싯말로 풀어놓습니다. 어느 밥그릇이든 경전이 될 수 있다고 느껴 시를 씁니다. 어느 밥그릇이든 삶을 살찌우고 사랑을 북돋우는구나 하고 깨달아 시를 씁니다.



.. 풀을 베다가 낫 끝에 손등을 찍혔다 / 순간, 허옇게 눈뜨는 상처를 / 와락 감싸 쥐고 / 팽개친 낫 앞에 두 무릎 꿇은 채 / 엎드려 여러 번 머리 조아렸다 ..  (낫께서 나를 사랑하사)



  밥그릇이 경전이듯이, 숟가락이 경전입니다. 빨래비누 한 장이 경전이고, 종이 한 장이 경전입니다. 호미 한 자루가 경전이요, 풀 한 포기가 경전입니다.


  온누리 어디를 둘러보아도 경전입니다. 이 땅 어느 곳을 찾아가 보더라도 경전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경전을 만납니다. 누구라도 언제 어디에서 날 경전을 마주하면서 새롭게 빛 한 줄기 받습니다.


  이리하여, 먼먼 옛날부터 책 한 권 없고 글 한 줄 읽지 못한 시골내기 흙일꾼과 고기잡이는 숲과 들과 바다와 마을에서 경전을 만났어요. 숲이 경전이고 바다가 경전입니다. 들과 냇물이 경전입니다. 절구와 베틀이 경전입니다. 낫과 쟁기가 경전입니다. 박꽃과 찔레꽃이 경전입니다.



.. 개똥 무더기 위에 / 분홍빛 복숭아 꽃잎이 / 팔랑팔랑 날아와 찰싹 / 달라붙었습니다 ..  (찰떡궁합)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고단한 사람이라면, 전철이나 버스가 경전이 됩니다. 택시가 경전이 되고, 고속도로가 경전이 돼요. 손전화도 경전이 됩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얼마든지 경전이 됩니다.


  스스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느낍니다. 스스로 바라보아 느끼면서 알아차릴 때에 마음에 담습니다. 마음에 담아 살포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와요.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올 때 이야기꽃이 피고, 이야기꽃이 피면 뒤따라 웃음꽃이 핍니다.



..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들판에는 참 많은 꽃들이 피어나지만 그 이름들을 / 낱낱이 아는 이는 우리 동네엔 아무도 없었다 ..  (식물도감을 던지다)



  식물도감에도 꽃은 나와요. 그리고, 식물도감 아닌 들과 숲과 골목과 마을에도 꽃은 피어요. 꽃이름은 무엇일까요. 꽃이름은 누가 붙여야 할까요. 학자가 붙이는 꽃이름을 알아야 할까요, 아니면 한의사가 붙이는 풀이름을 알아야 할까요. 시골마을마다 다 다르게 붙이는 이름을 알면 꽃이나 풀을 잘 아는 셈일까요. 꽃이나 풀마다 나 스스로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옛날 옛적에 꽃마다 풀마다 나무마다 벌레마다 새마다 짐승마다 다 다르게 이름을 붙여 주었듯이, 오늘 나는 내가 발 딛은 이곳에서 모든 꽃과 풀과 나무한테 새롭게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까요.


  손바닥에 이름을 새깁니다. 손바닥에 사랑을 새깁니다. 손바닥에 빛을 새기고, 손바닥에 노래를 새깁니다.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집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