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98
이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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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70



내 속에 숨은 노래

―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이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2.2.6.



  봄이 되어 시골은 부산합니다. 집집마다 경운기를 몰고 논과 밭으로 갑니다. 기계를 써서 땅을 갑니다. 논둑과 밭둑을 태우고 트랙터가 움직입니다. 풀을 베는 칼날이 윙윙거리고, 풀을 잡는 농약을 쏴아 뿌립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으면 제비가 깨어납니다. 처마 밑은 새벽부터 복닥복닥 시끌시끌합니다. 제비는 알을 낳기 앞서 보금자리를 손질합니다. 진흙을 물어 날라서 붙이고 지푸라기를 바닥에 깝니다. 제비가 새로 집을 짓거나 옛 집을 고치는 모습을 볼라치면, 예부터 우리들도 이렇게 흙과 짚으로 집을 지었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입니다.



.. 두 남자는 위장 크림 민얼굴에 덧칠한다 / 폐도 위로 카메라 레일이 깔리고 / 석탄 운반차 대신 이동차가 지난다 / 왜 따라오셨어요, 환갑 앞둔 아버지는 / 묵묵부답 허리 굽혀 짚신을 묶는다 ..  (화장하는 父子, 엑스트라 4)



  흙으로 지은 집에서 사람이 살았고, 새 또한 흙을 물어다가 처마 밑에 집을 지어 살았습니다. 흙에서 돋은 풀에는 풀벌레가 대롱대롱 매달리며 풀노래를 부릅니다. 흙에 뿌리를 내린 나무에서 돋은 새 잎사귀는 나비 애벌레가 갉아먹으면서 자랍니다. 개구리는 풀밭에서 노래하다가 봄비가 내리고 난 뒤에는 둠벙과 논을 찾아갑니다. 시원한 물에 몸을 적십니다. 저마다 왁왁거리며 봄을 기뻐합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흙에서 비롯합니다. 쌀도 보리도 밀도 수수도 흙에서 태어납니다. 흙으로 이룬 논과 밭에 심거나 뿌린 씨앗이 자랄 때에 곡식이 됩니다. 사람이 먹는 열매도 흙에서 비롯합니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는 뿌리가 흙에서 받아들인 기운으로 익어요.


  시골에서 짓는 농사란 흙을 가꾸는 일입니다. 흙을 가꿀 때에 밥을 얻습니다. 흙을 살찌우고 살릴 때에 밥이 싱그럽습니다. 흙을 아끼고 사랑할 적에 맛나며 좋은 밥을 누립니다.



.. 전기가 나가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  (정전)



  매화나무에 꽃이 떨어진 뒤 열매가 익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구슬 같던 푸른 알이 날마다 굵어집니다. 매화일이 됩니다. 탱자나무에 꽃이 떨어진 뒤 열매가 익습니다. 탱자꽃이 지고 나서 맺는 탱자알도 구슬 같습니다. 푸른 빛깔이 싱그러운 구슬입니다. 감알도 발갛게 익기 앞서는 푸른 빛깔입니다. 풋감도 동글동글 예쁘장합니다. 고추도 빨갛게 익기 앞서 푸른 고추입니다. 까마중도 까맣게 익기 앞서 푸른 열매예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데, 생각해 보면, 어린이와 어른 사이를 푸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푸르고 몸이 푸르기에 푸름이일 테고, 마음과 몸이 한껏 무르익기 앞서 싱그럽게 빛나기에 푸름이로구나 싶습니다.



.. 주식으로 퇴직금까지 날린 큰아버지가 / 수년 만에 / 고조할아버지 제사에 돌아온 설에 / 아버지들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묏자리 얘기를 꺼낸다 ..  (묏자리)



  이하 님이 일군 시집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실천문학사,2012)을 읽습니다. 이하 님은 이녁 마음속에 숨어 사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꿈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노래를 이야기하고 춤을 이야기합니다.


  홀로 떠돌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버지와 이녁 사이에 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용히 생각에 잠기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맞닥뜨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시에 담는 넋은 무엇일까요. 시로 나누는 삶은 어떤 무늬가 될까요.



.. 이 도시엔 언제부턴가 커다란 공동묘지가 들어섰다 // 사람들은 아침마다 정장을 차려입은 채 그 회벽으로 걸어 들어갔고 / 저녁이면 죽음의 그림자를 하나씩 메고 나왔다 ..  (0호선)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머리카락을 날립니다. 햇볕이 내리쬡니다. 햇볕은 내 얼굴과 살갗을 태웁니다. 바람은 햇볕에 그을리는 내 얼굴과 살갗을 시원하게 어루만집니다. 햇볕은 이불을 보송보송 말리고, 씨앗과 새눈을 틔웁니다.


  아침부터 신나게 뛰놀던 작은아이가 꾸벅꾸벅 좁니다. 작은아이를 무릎에 앉힙니다. 어느새 눈을 지긋이 감고는 까무룩 잠듭니다. 아이를 살며시 눕힙니다. 오월바람은 작은아이 얼굴을 가볍게 스치면서 마당을 감돕니다.


  큰아이도 졸린 얼굴입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좀처럼 자리에 누우려 하지 않습니다. 더 버티고 싶을까요. 더 놀고 싶을까요. 큰아이는 졸린데 더 버티면서 놀려 하다가 으레 코피를 쏟습니다. 코피를 쏟으면서도 더 개구지게 뛰놀려 합니다.



.. 회화나무展은 건물 안이 아닌, 바깥도 아닌 / 길의 복판에서 한겨울에만 열린다 / 겨울은 계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니 / 대부분의 생을 길에서 보낸 사람은 / 티켓 없이도 볼 수 있으리라 ..  (회화나무展, 정동 일기 3)



  시집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은 이하 님이 이제껏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즐겁게 살던 웃음과 고단히 살던 눈물을 보여줍니다. 애틋하게 누리던 사랑과 안타까이 보낸 하루를 보여줍니다.


  시 한 줄로 말문을 엽니다. 시 한 줄로 어버이 넋을 헤아립니다. 시 한 줄로 가만히 눈을 감으며 생각에 젖습니다. 시 한 줄로 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시가 있어 새롭게 기운을 내는 삶인지 모릅니다. 시가 있어 다시금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는 삶일 수 있습니다. 시가 있어 오늘도 어제와 같이 활짝 웃으면서 어깨동무하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 거즈에 물 묻혀 깨어난 아버지에게 건넨다 / 패혈증 올 때까지 어떻게 참으셨어요 / 17년 전 넌 어떻게 참았니 / 가족들 걱정할까 맹장 터져 복막 찢겼던 아들과 / 자식들 애먹을까 복막염도 참다 피가 거꾸로 흐른 아비가 국립의료원 병실에 앉아 할 말을 고른다 ..  (유전)



  해가 질 무렵 제비들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암수 제비 두 마리는 서로 엉키듯이 날갯짓을 하고는 처마 밑으로 깃듭니다. 아직 손질을 마치지 않은 조그마한 둥지이지만, 암수 제비 두 마리한테는 더없이 포근한 쉼터이자 삶터입니다. 작은 둥지에서 제비 두 마리가 노래하고, 작은 둥지에서 어린 제비 여러 마리가 태어납니다. 작은 둥지에서 새로운 사랑이 퍼지고, 작은 둥지에서 날마다 웃음이 흐릅니다. 살아가는 기쁨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를 쓰는 즐거움은 늘 우리 둘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347.5.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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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시선 3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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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4



시와 무게

― 뺨에 서쪽을 빛내다

 장석남 글

 창비 펴냄, 2010.8.20.



  이 나라는 재미있습니다. 저마다 재미있게 살아가니 재미있습니다. 재미없구나 싶어 쓸쓸한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런 사람들한테 재미보따리를 안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2000년대에 버스삯이 50원쯤 하는가 하고 읊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달세로 이천만 원을 내면서 가난한 살림이라고 읊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옥탑방도 반지하도 어떻게 생긴 줄 모르고 이런 이름은 처음 들었다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배고파서 북녘을 떠난 이들을 두고 밥이 없으면 라면을 끓여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 말린 고사리 두어 뭉치 더 담아서 / 이름난 백화점 봉지에 넣어서 / 사랑스런 분에게 주었다 치자 / 또 받았다 치자 ..  (말린 고사리)



  나도 잘 모르는 일이 많습니다. 나도 잘 몰라서 잘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몰 줄 모르고, 자동차 이름을 볼 줄 모릅니다. 손전화 기계를 쓰지만 손전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며, 비밀번호 단추를 눌러 들어가는 아파트에 놀러갈 적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것저것 겪으며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2004년이었는데 국립국어원에서 한글문화학교 강사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첫날에는 양복을 입고 강의를 갔다가 아무래도 내 삶하고 도무지 안 맞는다 싶어 이튿날부터는 내 여느 차림새대로 반바지에 민소매옷을 입고 자전거를 몰고 갔습니다. 양복을 입고 국립국어원 건물을 들어가니 척 거수경례를 합니다. 왜 왔느냐고 묻지도 않습니다. 반바지에 민소매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문간에서 붙잡고 밖으로 잡아끕니다. 왜 왔느냐고 묻지 않기는 똑같으나, 사람을 ‘미친놈’으로 다룹니다. 이윽고 내가 그곳에 ‘우리 말 강의’를 하는 사람인 줄 깨닫고는 미안하다며 굽신굽신합니다.


  방송국에서도 이런 일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방송국에 일이 있어 그때에도 늘 내 차림새대로 반바지에 민소매에 자전거에 고무신을 꿰고 갔더니 건물 지킴이가 붙잡습니다. 방송국 일꾼이 승강기를 타고 문간으로 마중을 나오고서야 비로소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아버지의 사진틀을 갈았다 / 수염을 깎은 듯 미소도 조금 바뀌었다 / 이발소를 데리고 가던 아버지의 손가락 마디가 두엇 없던 손을 생각한다 / 언 몸을 금세 녹여주던 이발소의 연탄난로도 생각한다 ..  (입춘)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지냅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도 고무신 차림새는 눈길을 받습니다. 마을에서 흙일을 하는 할매와 할배가 아니라면 아무도 고무신을 발에 꿰지 않습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도 면소재지나 읍내로 볼일 보러 갈 적에는 아주 말끔하게 차려입습니다. 할배는 까만 구두를 신습니다. 할매도 고운 차림새로 꾸밉니다. 마을에서 여느 때에 마주치던 모습이 아니기에, 군내버스나 읍내에서 마주쳐도 한동안 누구인지 못 알아보곤 합니다. 시골 읍내 저잣마실을 가면, 외려 나더러 ‘그 고무신 어디서 샀느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흥 읍내에 지난주에 새 옷집이 커다랗게 문을 열었습니다. 달포쯤 앞서도 커다란 옷집이 문을 열었어요. 지난해에도 커다란 옷집이 자그마치 3층 건물로 새로 열었습니다. 옷집들이 이 두멧시골에 어떻게 새로 문을 열까 아리송하지만, 시골 어르신이든 시골 젊은이이든 시골 어린이이든, 상표가 붙은 비싼 옷을 아무렇지 않게 척척 장만해서 입는구나 싶어요.



.. 마른 빨래는 방안으로 던지고 / 덜 마른 빨래들을 처마 아래 건다 ..  (처서)



  장석남 님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창비,2010)를 읽습니다. 뺨에 서녘을 빛낸다니 무슨 말인가 궁금합니다. 동녘이나 남녘은 안 빛낼는지 궁금합니다. 무언가 깊은 뜻을 담고 쓴 말이지 싶지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게 있게 들려주는 시요 노래일 텐데,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빨래를 마당에 널어 말리면 잘 마릅니다. 빨래는 햇볕과 바람을 먹으며 곧 마릅니다. 한여름에는 십 분이나 이십 분만에 보송보송 마르기까지 합니다. 한여름에 빨래가 다 말랐어도 부러 한참 그대로 두며 뒤집습니다. 구석구석 오래오래 햇볕을 머금으면서 좋은 냄새가 감돌기를 바랍니다. 그래, 나는 빨래는 좀 압니다. 두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어 탁탁 털어 눈부신 햇볕을 쬐며 빨랫줄에 너는 빨래는 좀 압니다. 큰아이를 낳고서 세이레를 치를 적까지 날마다 기저귀를 쉰넉 장씩 빨았고, 백일이 될 무렵에는 마흔두 장씩 빨았으며, 돌이 될 무렵에는 스물넉 장씩 빨았습니다. 기저귀 빨래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똥이 묻은 기저귀이든 오줌만 묻은 기저귀이든 똑같습니다. 졸려서 두 눈이 감기더라도 밤똥을 눈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고 잠을 안 깨우면서 밑을 씻겨 다시 기저귀를 채워서 눕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느라 두어 시간쯤 자장노래를 부를 수 있고, 아이를 업거나 안으며 너덧 시간을 걸을 수 있습니다. 깜깜한 밤에도 쌀을 씻어 불릴 수 있고 밥물을 맞춰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불을 안 켜도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들 옷을 갈아입힐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도 옷을 갤 수 있고, 아이들 이불깃을 여밀 수 있습니다.


  참말, 누구나 살아가는 대로 시를 씁니다. 참으로, 누구나 살아가는 대로 시를 읽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며 즐겁게 노래합니다. 기쁘게 살아가며 기쁘게 춤춥니다. 슬프게 살아가며 슬프게 이야기합니다. 아프게 살아가며 아프게 글을 씁니다.


  무게란 무엇일까요. 삶은 어떤 무게일까요. 시 한 줄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시집 한 권은 어떤 무게를 담을까요. 장석남 님은 장석남 님대로 아름다운 삶빛과 삶노래를 고운 가락에 실어 즐겁게 불렀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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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네 개흙 잔치
안학수 지음, 윤봉선 그림 / 창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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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8



동시를 어떻게 쓰면 아름다울까

― 낙지네 개흙 잔치

 안학수 글

 창비 펴냄, 2004.11.30.



  경운기가 지나가면 큰소리가 한참 울립니다. 경운기 소리가 퍼지는 동안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트랙터가 땅을 간다든지, 경운기 앞쪽을 떼내어 땅을 뒤집을 적에도 다른 소리를 못 듣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버스가 지나갈 적에도 바람이 나뭇잎을 살랑이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경운기가 멈춥니다. 트랙터가 멎습니다. 자동차도 버스도 이제 길에 없습니다.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습니다. 나뭇잎과 꽃잎이 춤추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꽃 곁에 앉으면 꽃송이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먹는 벌과 나비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은 온통 소리입니다. 맑은 소리가 흐릅니다. 밝은 꽃내음은 산뜻한 꽃노래와 같습니다. 꽃노래를 듣는 사람들 마음에서 저절로 삶노래가 흘러나옵니다.



.. 핥아먹고 키가 크는 고둥 조개들 / 찍어먹고 모래 빚는 칠게 방개들 / 갯지렁이 개불 쏙 짱뚱어까지 / 개흙을 좋아하면 아무나 오라 ..  (낙지네 개흙 잔치)



  시골에 농기계가 들어선 뒤로 시골에서 노래가 사라집니다. 시골에 노래가 있을 적에는 농기계가 없었습니다. 농기계를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볼 일은 없습니다. 다만, 농기계가 들어서면서 시골은 노래를 잃고, 노래를 잃은 시골에서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은 이야기를 낳지 않거든요. 손전화도 이야기를 낳지 않아요. 컴퓨터도 이야기를 낳지 않습니다. 자가용도 경운기도 이야기를 낳지 않습니다. 콤바인과 이앙기가 이야기를 낳는 일은 없습니다.


  이야기는 삶이 낳습니다. 이야기는 삶에서 샘솟습니다. 이야기는 빙그레 마주보며 웃는 얼굴에서 태어납니다. 이야기는 흙에서 자라고 풀빛으로 싱그럽습니다. 이야기는 도란도란 나즈막하게 속삭일 수 있는 곳에서 기지개를 켭니다.



.. 진흙 속에 살아도 / 나는 안다 ..  (참갯지렁이)



  이제는 시골에서 일노래를 캐지 못합니다. 모내기노래가 없고 베틀노래가 없습니다. 방아노래라든지 빨래노래가 없습니다. 자장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직 있으나, 먼먼 옛날부터 내려온 자장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요. 스스로 삶에서 새로운 자장노래를 빚어서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어요.


  삶에서 노래가 사라진 까닭은 살아가며 노래를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며 노래를 부르지 않는 까닭은 노래를 부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척척 일을 끝내는데 언제 노래를 부를까요. 농약으로 풀을 다 죽이는데 무슨 풀베기노래를 부를까요. 소를 뜯기지 않고 사료를 먹이는데 무슨 소먹이노래를 부를까요. 지게를 지지 않고 짐차로 실어 나르는데 무슨 노래가 나올까요.


  노래란 몸으로 움직이고 손으로 일하는 어른이 부릅니다. 노래란 몸으로 뛰고 손으로 노는 아이가 부릅니다. 노래란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노래란 아이 스스로 동무들과 어울리면서 짓습니다.



.. 깨어진 유리 조각들이 / 조가비처럼 파도랑 노는 건 / 고운 자개 빛을 얻으려는 마음이다 ..  (소문난 바닷가)



  예부터 노래가 이야기요 시입니다. 예부터 이야기가 시요 노래입니다. 예부터 시가 노래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한테 따로 동시를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따로 동시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동시책을 꼭 사다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꼭 동시를 써서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아이가 동무하고 어울리며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언제나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이야기가 늘 노래이면서 시예요.


  곧, 모든 어른이 시인입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시인입니다. 모든 어른은 아이와 함께 시를 쓰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릅니다. 모든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시를 쓰듯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 오빠도 가지런한 / 밀알 글씨 또박또박 // 언니도 곱다라니 / 깨알 글씨 조솜조솜 // 나도 시원시원 / 콩알 글씨 사삭사삭 ..  (글씨 쓰기)



  안학수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낙지네 개흙 잔치》(창비,2004)를 읽습니다. 낙지는 개흙에서 언제나 잔치입니다. 게도 쏙도 조개도 모두 개흙에서 잔치입니다. 물고기도 바다도 개흙에서 잔치요, 갈매기도 바닷새도 개흙에서 잔치예요.


  언제나 잔치이니 잔칫날 이야기가 감돕니다. 언제나 잔치이니 잔치노래를 부릅니다. 너도 나도 잔치를 생각합니다. 너와 함께 잔치를 즐기고, 나도 같이 잔치에 섞입니다.



.. 공기알이 춤춘다 / 손 따라 콩당꽁 / 한 알 따기 조막손은 / 모이 쪼는 꼬꼬닭 ..  (공기놀이)



  동시를 쓸 적에 이래저래 꾸미지 않아도 됩니다. 동시를 쓰면서 글잣수를 맞춘다거나 예쁘장한 낱말을 넣어야 하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도시 아이한테 꼭 보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시 아이가 하나도 모르는 숲과 들과 바다 이야기를 굳이 섞어야 하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넋을 들려주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삶을 아끼는 꿈을 보여주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삶을 즐기는 웃음을 함께 나누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삶을 가꾸는 땀방울을 서로 북돋우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안학수 님이 책상맡에서 동시를 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뛰놀고 조금 더 웃으며 조금 더 노래하면서 동시를 쓰면 한결 홀가분하면서 싱그러우리라 생각합니다. 깔깔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스스럼없이 또박또박 적다가 새근새근 잠들면 한결 아름다우면서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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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요 선생님 - 남호섭 동시집
남호섭 지음, 이윤엽 그림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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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6



함께 살아가면 모두 노래

― 놀아요 선생님

 남호섭 글

 창비 펴냄, 2007.1.10.



  사월 십육일은 우리 면소재지에서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면민잔치를 합니다. 그러께에는 면민잔치 하는 날에 체육대회를 했는데, 올해에는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께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줄다리기나 달리기를 함께 했지만, 올해에는 순천에 일이 있어 다녀오느라 면민잔치 자리에 가지 못합니다. 해가 기우는 저녁에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에 살짝 들러 봅니다. 잔치를 마무리하는가 하고 살짝 들여다봅니다. 면소재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노래가 울립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곳곳에 치고 북적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데.” 하고 말합니다. 오늘은 놀이터에서 놀 만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댈 만한 자리도 없고 너무 시끌벅적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자. 오늘은 안 되겠어.” 하고 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자전거에서 잠듭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저기 꽃길로 가요.” 하고 말합니다. 큰아이 말이 아니더라도 유채꽃이 물결치는 들길로 갈 생각입니다. 들길로 접어드니 큰아이는 “나 걷고 싶은데.”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러면 같이 걸어 볼까.


  자전거를 세웁니다. 큰아이는 콩콩 뛰듯이 걷습니다.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하염없이 잡니다. 천천히 유채꽃 들길을 지나가니 꽃내음이 물씬 퍼집니다. 큰길로 지나가는 자동차는 하나도 없고, 아주 호젓합니다. 호젓하며 조용한 들길에는 바람소리만 흐릅니다.



.. 숲 속 나무들처럼 / 우리는 그저 지켜 주었고 / 숲 속에서 정식이는 / 천천히 아주 천천히 / 마음 문 열어 갔다 ..  (정식이, 간디학교 7)



  보름달이 밝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애들아, 마당으로 나와 보렴. 달 구경 하자.” 하고 부릅니다. “달이요?” 하면서 두 아이가 쪼르르 나옵니다. 아주 환한 보름달인데, 달 둘레로 별이 몇 보입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지만 달빛이 워낙 밝아 별빛은 사그라듭니다.


  까르르 웃고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 사이로 개구리 소리가 들립니다. 응? 우리 집 옆밭에 개구리가 있나? 아이들더러 “쉿. 조용히 해 보렴.” 하고 말하면서 귀를 기울입니다. 왁 왁 하는 개구리가 두 마리 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 집 개구리입니다. 겨울잠을 깬 개구리이지 싶습니다. 밤에도 포근한 날씨이니 개구리가 깨어나서 노래할 만합니다.



.. 진선이와 수람이가 얘기했습니다. // 별이 정말 예쁘지 않니? / 그래, 우리 침낭 들고 나가서 자자 ..  (굼벵이, 간디학교 12)



  순천으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이웃 봉서마을에서 군내버스를 내렸습니다. 우리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버스는 없어, 이웃마을에서 내린 뒤 걸었습니다. 이웃마을부터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는데, 들판을 날며 노는 제비를 여섯 마리 즈음 봅니다. 고흥에도 비로소 제비가 오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제 읍내에서 제비 두 마리를 보기도 했습니다. 제비들은 멋진 날갯짓으로 싱싱 하늘을 가릅니다. 우리 집 처마 밑으로도 제비가 찾아올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까지 우리 집을 찾아오던 제비는 마을에서 끔찍하게 뿌려댄 농약 때문에 모두 숨을 거둔 듯한데, 우리 집뿐 아니라 우리 마을에 제비가 깃들는지 궁금합니다. 부디 농약물결에서 살아남은 제비가 있어 다시 우리 집 처마 밑으로도 깃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에서 농약물결은 멀리하거나 줄이면서 흙을 살찌우고 가꾸며 돌보면 얼마나 즐거울까 싶습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도 뻔히 알거든요. 도시로 떠난 이녁 딸아들은 ‘농약을 쳐서 키운 남새’를 가져가지 않아요. 농약을 쳐서 키운 남새는 죄 ‘농협 수매’를 합니다. 이녁 딸아들이 도시로 떠난 뒤 낳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아토피를 앓으니 모두 도시에서 비싼값을 치르며 유기농 곡식과 남새를 사다 먹는데, 막상 시골 어르신들은 농약을 줄이거나 없애지 못합니다. 일손이 달리니 농약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고,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시골 일손을 거들지 못합니다.



.. 우리 손으로 / 교실도 지을 수 있다면, // 먼 산이 보이는 큰 창에는 / 하늘을 한가득 담아 두고 / 반대쪽 창에는 숲을 들어앉히고 / 새잎 나서 단풍 들 때까지 / 다 볼 수 있을 텐데 ..  (우리 교실, 간디학교 15)



  지난주에 며칠 서울마실과 일산마실을 했습니다. 도시는 벌써부터 찜통입니다. 도시는 봄이 없는 듯합니다. 고흥과 이웃한 순천도 벌써 찜통입니다. 시골이 아닌 도시는 모두 후끈후끈 덥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봄이 사라졌다’고만 말합니다. 왜 봄이 사라졌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시골은 사월에 사월빛이 어립니다. 시골은 밤이나 낮이나 후끈후끈 무덥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흙이 있고 풀이 있으며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흙이 있으니 햇볕을 받아들이는데, 흙만 있대서 햇볕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야 햇볕을 받아들입니다. 풀이 싱그럽게 우거진 흙이 있을 때에 봄볕이 포근합니다. 풀이 없이 메마른 흙만 있으면, 풀이 없는 민숭민숭한 밭이나 논이라면 도시와 똑같이 후끈후끈 달아오릅니다.


  나무가 있어도 나뭇가지를 뭉텅뭉텅 베어 나무가 나무답게 살아갈 수 없으면,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무덥습니다. 가지를 잘린 나무는 그늘을 베풀지 못합니다. 가지를 잃은 나무는 싱그러운 잎바람을 나누어 주지 못합니다.



.. 우산을 같이 씁니다. / 동무 어깨가 / 내 어깨에 닿습니다 ..  (사랑)



  남호섭 님 동시를 그러모은 《놀아요 선생님》(창비,2007)을 읽습니다.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겪은 이야기가 꽤 많이 있습니다. 간디학교에서 아이들과 마주한 즐겁고 예쁜 눈빛이 싯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간디학교이기에 이만 한 시가 태어날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느 학교에 있든 아이들 눈빛을 읽을 수 있으면 아름다운 시가 태어납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고 배우며 사랑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습니다. 함께 놀지 못하고 함께 배우지 못하며 함께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시 한 줄 노래하지 못합니다.



.. 시골 갔다 오던 / 버스가 갑자기 끼이익! / 섰습니다. // 할머니 자루에 / 담겨 있던 / 단감 세 알이 / 통, 통, 통, / 튀어 나갔습니다 ..  (가을)



  글 한 줄은 삶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로 글로 옮깁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로 그림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찍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없으면 글도 그림도 사진도 없어요.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로 길어올리지 못하면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더 좋거나 덜 좋은 노래란 없습니다. 모두 노래입니다. 굳이 꾸미려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이야기요 삶이며 노래입니다. 애써 덧바르거나 만지작거려야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사랑하면서 노래입니다. 투박하게 어깨동무하면서 꿈입니다. 살가이 손을 맞잡으면서 시 한 줄입니다.


  동시집 《놀아요 선생님》은 ‘놀아요’ 하고 노래하기는 하는데, 막상 어른들은 어떤 놀이를 하는지, 또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골고루 즐기는지는 그리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 흐드러지게 놀고, 더 신나게 놀며, 더 실컷 놀기를 빌어요. 놀이 아닌 삶이 없어요. 밥짓기도 놀이이고, 빨래하기도 놀이입니다. 마냥 뛰고 달리면서 놀이요, 책읽기나 풀뜯기도 놀이입니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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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40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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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1



시와 술집
― 즐거운 일기
 최승자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4.12.5.



  네 식구가 서울로 마실을 나옵니다. 람타학교 강의를 듣는 자리가 있기에 아침부터 부산하게 길을 나섭니다.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놓치고, 이웃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들길을 걷습니다.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면 이십 분 남짓 걸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웃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면 제법 걸어야 합니다.


  유채물결 일렁이는 들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마을 어귀에서 손쉽게 버스를 타도 즐겁지만, 이웃마을까지 아이들과 천천히 걸어가면서 들빛을 누려도 즐겁습니다. 아니, 어느 모로 보면, 서울 언저리에서 배기가스 그득한 바람을 여러 날 쐬어야 할 테니, 시골 들바람을 조금 더 마시면서 바깥마실을 하면 한결 나을 만합니다.


..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 일년을 생산했고 /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 벨이 울리고)


  서울은 낮에도 밤에도 자동차가 많습니다. 시골 읍내에서 자동차가 가장 붐비는 때에 오가는 자동차 숫자조차 서울에서 가장 한갓진 때에 오가는 자동차 숫자에 댈 수 없이 훨씬 적습니다. 하루를 묵고 이틀을 머무는 아이들 이모네 집에 있는 동안, 창밖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는 모두 자동차 오가는 소리입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창밖에서는 자동차 소리만 흐릅니다.


  지은 지 제법 된 아파트 옆을 걸어가면, 심은 지 제법 된 나무가 꽤 있어, 이 나무에는 참새나 직박구리가 앉아서 노래합니다. 새잎 돋는 느티나무에 앉은 직박구리가 노래합니다. 꽃이 다 떨어진 벚나무 둘레에서 참새가 먹이를 찾습니다. 이제는 온통 아파트와 찻길과 건물만 있는 이 도시라 하지만, 쉰 해쯤 앞서를 떠올리거나 백 해쯤 앞서를 헤아린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무렵에는 들길이거나 숲길이지 않았을까요.


.. 꿈 대신에 우리는 확실한 손을 갖고 싶다. / 확실한, 물질적인 손. // 아랍의 정에는 칼! 아메리카의 정의에는 총! / 한국의 정의에는 술! 수울? ..  (꿈 대신에 우리는)


  아이들을 재우며 토닥토닥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 이모네 집 창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큰아이가 문득 “삐뽀차 소리다!” 하면서 창턱에 기댑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외친 소리를 따라 함께 창턱에 기댑니다. 아이들로서는 뭔가 재미난 구경거리입니다. 술집에서 술에 절다가 툭탁거리는 사람들이 경찰한테 붙들려 경찰차에 타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꽤 볼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찹니다. 한 시에 두 시에 세 시에 부시시 일어나서 이불깃을 여밉니다. 이불깃을 여미고 다시 자리에 눕는데, 창밖에서는 아직도 깔깔 호호 하하 소리가 울립니다. 오피스텔 건물 8층에 있는 이곳 둘레 다른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씻는 소리가 들리며 콩콩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깊은 밤이기에 이웃집 소리가 이렇게 또박또박 들리는군요. 어느 집에서는 아직도 텔레비전을 볼 테고 영화를 볼 테지요. 어느 집에서는 사랑을 속삭일 테고, 어느 집에서는 전화기를 붙들고 밤 깊은 줄 모르는 수다를 떨 테지요.


.. 봄에는  속이 환히 비치는 옷을 입고 / 일곱 송이의 꽃을 머리에 꽂고 / 마지막으로 신발을 벗어 버리고서, / 청파동에서 수유리까지 손가락질하며 / 희죽거리며 걸어가고 싶다 ..  (望祭)


  대한민국에는 술집이 아주 많습니다. 도시에도 시골에도 온통 술집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여관이 아주 많습니다. 도시에도 시골에도 온통 여관입니다. 초등학교 가까이에 술집과 여관이 많습니다. 중학교 둘레에 술집과 여관이 가득합니다. 고등학교 언저리에 술집과 여관이 줄을 섭니다.


  아이들한테 술을 가르치거나 먹이는 어른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벗어나기 무섭게 술에 절어 지냅니다. 적잖은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조용히 술을 마시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어른들은 놀 줄 몰라 술만 들이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놀이를 물려주지 않고 술집만 물려줍니다.


  학교 둘레에 쉼터가 없습니다. 학교 둘레에 숲이 없습니다. 학교 둘레에 냇물이 흐르지 않고, 학교 둘레에 들이 없습니다. 학교 둘레에 술집이 있고, 공장이 있으며, 널따란 찻길이 있습니다. 학교 둘레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가 있으며, 관광단지와 골프장이 있습니다. 학교 둘레에 아파트가 있고 병원이 있으며 백화점과 할인마트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볼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은 어떤 터전에 둘러싸이면서 자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 네가 나를 차 버렸으 때 / 너는 즐거웠었니, 내 사랑 내 아가야. / 어느 날 네가 병든 낙엽처럼 / 내 문간에 불려 떨어진다면 / 어느 날 네가 허깨비처럼 / 내 창가에 돌아와 선다면 ..  (너는 즐거웠었니)


  최승자 님 시집 《즐거운 일기》(문학과지성사,1984)를 읽습니다. 꿈을 가르치지 않고 술을 가르치는 이 나라 얼거리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최승자 님 시를 읽습니다. 꿈을 노래하지 않고 입시지옥을 노래하는 이 나라 틀거리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최승자 님 시를 읽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꿈을 배우지 못합니다. 시험문제만 배웁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열두 해에 걸쳐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교과서와 학습지만 배웁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꿈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시험문제만 가르칩니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들은 열두 해뿐 아니라 이녁이 정년퇴직을 하는 날까지 오직 교과서와 학습지에 얽매인 채 꿈과 동떨어진 지식조각을 머릿속에 담습니다.


.. 오늘 나는 기쁘다. 어머니는 건강하심이 증명되었고 밀린 번역료를 받았고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받았으므로 ..  (즐거운 일기)


  즐겁게 쓸 적에 비로소 글입니다. 즐겁게 쓰지 않으면 글이 아닙니다. 즐겁게 할 때에 공부입니다. 대학교에 가려고 하면 공부가 아닙니다. 즐겁게 가꿀 적에 삶입니다. 즐겁지 않으면 삶이 아니고 살림이 아니며 사랑이 아닙니다.


  검사를 받아야 하니까 쓰는 일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도록 하는 일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어른 아닌 교사가 검사하고, 어버이 아닌 학부모가 슬그머니 들여다보는 일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쓸 때에 즐거운 일기입니다. 사랑 담아 꿈꾸는 이야기를 적을 때에 즐거운 일기입니다. 빙그레 웃고 깔깔깔 웃음꽃 터뜨리는 빛이 흐를 무렵에 비로소 즐거운 일기입니다.


.. 어이어이 거기 계신 이 누구신가, / 평생토록 내 문 밖에서 / 날 기다리시는 이 누구신가? // 이제 그대가 내 적이 아님을 알겠으니, / 언제든 그대 원할 때 들어오라 ..  (放)


  새벽 다섯 시쯤 되니 비로소 창밖에 조용합니다. 아직까지 불빛 밝은 술집이 있을 테고, 아직도 술에 전 어른들이 있을 테지만, 새벽 다섯 시를 지나 여섯 시가 다가오니 창밖이 조용합니다. 그러나, 새벽 여섯 시가 다가오니 버스와 자동차 소리가 새롭게 울립니다. 술에 전 어른들 술투정과 술싸움은 그치지만, 다른 투정과 싸움이 일어나는군요.


  술집이 가득한 곳을 오가면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잘 모르겠습니다. 술집이 가득한 곳에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야 한다면 어른들은 무엇을 나눌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에 씨앗 한 톨 심어 가꿀 수 있는 이라면, 시골숲에서 노래하든 도시 한복판 복닥거리는 술집 사이 시끄러운 아파트 한켠에서 춤추든, 이야기 한 자락 거둘 수 있겠지요. 고즈넉하거나 한갓진 곳에서 숲바람을 마셔야 아름답다 싶은 시를 쓰지 않습니다. 어지럽고 어수선한 도시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기에 아름답다 싶은 시를 못 쓰지 않습니다. 마음밭에 사랑을 놓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웃으며 시를 씁니다. 4347.4.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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